마피아 암시장에 존재하던 '러시아가 과거 UFO와 외계인을 회수한 기밀영상'의 정체
1998년 9월이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미스터리/음모론 /오컬트 붐이 최고조에 오르던 시대였습니다. 노스트라다무스의 앙골모아 대예언과 Y2K 종말론을 1년 남짓 남긴 때였죠.
또, 1995년 발발된 레이 산틸리 필름 사건(로즈웰 UFO 사건 당시 회수된 외계인 시신을 해부하는)으로 인해 제3차 UFO/외계인 붐이 일어난 시기였죠. (1차는 50-60년대, 2차는 70-80년대)
바로 그런 시절에 있었던 일이랍니다. 일명, 'KGB UFO 파일'이죠. 명칭부터 가슴 떨리죠? 소련의 정보기관&정치경찰이었던 KGB(1954-1991)의 UFO 파일이라니!
본격적으로 소개하겠습니다.
1998년 9월, 미국의 케이블 민영 방송사 TNT(터너 네트워크 텔레비전)에서 유명 미디어 제작사 ATI(Associated Television International)가 제작한 다큐멘터리가 공개됩니다. 타이틀은 'The Secret KGB UFO Files'였습니다.
제임스 본드로 유명한 로저 무어가 사회자를 맡아, 역대 UFO/외계인 다큐멘터리 중 사회자 이름값이 가장 높은 프로그램이기도 하죠.
프로그램에서 해당 사건의 스토리 진행을 이끄는 건, 카베린 베레시챠긴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러시아의 UFO 연구원이자 작가로, 자신의 저서 '소련의 UFO'를 통해 사건의 내막을 폭로했다고 합니다.
그가 설명하는 사건의 전말을 이렇습니다.
"1968년 11월 27일, 지역 주민들에 의해 5개의 빛나는 구체가 상공을 비행 중인 게 목격된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고도를 잃기 시작하더니, 곧 농촌 지역인 베료조프스키 부근 숲에서 귀청이 터질 듯한 굉음이 들려온다.
한편 소련은, 곡물 저장고 직원의 과실로 인해 폭발이 발생한 것이라는 공식 성명을 내놓는다. 이러한 내용은 11월 29일 자 스베르들롭스크 지역신문에도 언급되고 있다.
1969년 3월, 지역의 한 농부가 베료조프스키 부근 숲에서 문제의 추락 현장을 발견한다. 보고를 받은 KGB 측은, 2명의 장교가 소련군 부대를 이끌고서 현장에 출동한다.
KGB는 현장에서 지면에 처박힌 UFO 잔해와 외계인 시신을 회수한다. UFO 잔해는 직경 5m 정도였으며, 외계인 시신은 남아있는 게 상체 일부분뿐이었다.
일련의 작전은 '스베르들롭스크 난쟁이'이라 명명됐으며, 당시 공군 총사령관이 KGB에 모든 지원을 협조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한편, 프로그램 제작사 ATI는 수소문 끝에 러시아 암시장을 찾아갑니다. 러시아의 마피아가 관리하는 암시장에 문제의 기밀작전과 관련한 기밀문서가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죠.
참고로 설명하자면, 소련이 1991년에 해체되면서 자연스레 KGB 역시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죠. 이후 KGB의 요원과 같이 기밀파일에 액세스가 가능했던 이들이, 이러한 붕괴 과정의 혼란을 틈타 기밀을 팔고는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제작진은 마피아와 거래를 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곤 현장을 직접 방문해 마피아들에게 1만 달러를 지불하고는 마침내 손에 넣기에 이르죠.
스베르들롭스크 난쟁이 작전 1급 기밀문서를 말입니다.
스베르들롭스크 난쟁이 작전은 실재했습니다.
문서 속 내용은 베레시챠긴의 주장과도 일치했습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제작진은 베레시챠긴에게 추가로 놀라운 제보를 받습니다. 그건 바로, 어느 암시장 딜러가 스베르들롭스크 난쟁이 작전 촬영 필름 중 일부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었죠. 이미 수년 전부터 암시장 내에서 소문이 돌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문제의 암시장 딜러와 접촉한 제작진은, 마침내 필름을 제공받게 됩니다.
그리고..
필름에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장면들이 찍혀 있었습니다.
(다음은 본문 속 다큐멘터리 'The Secret KGB UFO Files'의 주요장면 편집본입니다)
해당 챕터에선 사담을 좀 늘어놓겠습니다.
위 스틸샷은, 분명 UFO 마니아들의 뇌리에 강력히 새겨져 있었을 겁니다.
해외에서는 'The Secret KGB UFO Files'의 TV 방영/VHS/DVD로 인해 릴리즈 날짜인 1998년부터 크게 화제가 됐었던 사건이죠. 국내에서는 '소련군(러시아군)의 UFO 회수' 또는 'KGB의 UFO 회수'라는 명칭으로, 주로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 짤막한 영상 버전으로 나돌곤 했었고요.
이상한 옴니버스는 본 사건에 대해 언젠가 자세한 내막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했었습니다. 사건 자체도 흥미로운 스토리 구성이지만, 시각적 자료 역시 진위를 떠나 두근거리게 만드는 요소였으니까요.
특히 해당 사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사장되다시피 한, 이른바 '로스트 미디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건 자체가 오래돼 기록의 소실이라는 측면도 존재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이 사건이 '컬트적 인기'에 한정됐기 때문입니다.
클래식할지라도 범대중적으로 논의가 이뤄진 사건의 경우, 그러한 과정에서 발생한 자료들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보존됩니다. 헌데 해당 사건과 같이 국부적으로 화제가 된 경우엔, 그 사건과 관려한 시각적 자료 일부와 빈약한 설명만이 전설 따라 내려져 오곤 하죠.
또 이 'KGB UFO 파일' 사건은, 당시 몇몇 소수의 UFO 연구가들에 의해서만 분석이 이뤄졌던 케이스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당시의 분석 자료들은 현재 상당수가 소실돼, 웨이백 머신으로도 일부만이 소생 가능할 따름입니다.
이상한 옴니버스에서도 블로그를 통해 2011년에 20세기의 UFO 사건 역사들을 다룬 글에서 아주 짧게 몇 줄로 소개한 게 전부입니다.
다행히도 이처럼 '로스트 미디어' 화로 인해 소실된 과거 사건들 자료를 개인적으로 백업해왔고, 해당 사건 역시 보존돼 있기에 이렇게 글을 씁니다.
여담으로, 이러한 '로스트 미디어' 현상은 인터넷 환경의 급변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볼 수 있겠네요. 지금이야 개인 블로그나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 반영구적인 자료 보존이 가능하지만, 20세기 및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그렇지 못했거든요.
당시는 모두가 개인 홈페이지 및 개인 계정을 통해 자신의 컨텐츠를 구축하던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언제든 개인 사정이나 홈페이지 및 계정 사이트의 사정으로 부지불식간에 자료가 소실되던 환경이었죠.
당시엔 다양한 분야의 여러 전문가들이 각자의 자료와 컨텐츠를 구성해 왔고, 정말 아쉽게도 따로 서적물 등과 같이 영구적인 텍스트 자료화를 꾀하지 않은 경우 그대로 디지털 세계에서 흔적만 간신히 남기는 게 전부였답니다.
사담 끝!
본 사건의 자세한 내막과 분석은 해외에서도 한시적으로만 존재해 왔고, 국내에서는 지금껏 아예 전무하다시피 했습니다. 소련군이 불시착한 UFO를 배경으로 있는 시각적 자료들과 더불어 KGB의 기밀 영상이다라는 설명만으로 전파돼 왔고, 다들 그렇게로만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본 글의 서두에서 소개한 사건의 자세한 서막조차 처음 접하실 겁니다.
심지어 문제의 UFO도 추락하며 땅에 박힌 것으로 알고들 있을 텐데, 실은 지면에 추락하며 반파되면서 그 일부가 현장까지 굴러갔던 것이죠.
또 암시장 딜러가 보유하고 있다는 필름도 전체 중 일부이기에, 나머지 잔해 및 외계인 시신의 자세한 회수 장면은 볼 수가 없던 것이고요.
자, 그럼 이 'KGB UFO 파일'의 분석 파트로 들어가 보죠.
1998년 9월 이후 해당 다큐멘터리가 미국과 서방세계에 전파되면서, 당연히 사건의 배경인 러시아에서도 큰 화제가 됩니다.
곧이어 미국과 칠레(UFO에 대한 관심도가 남다른 두 국가) UFO 연구가들의 뜨거운 감자가 됩니다. 물론, 러시아의 UFO 연구가들도 그러했고요.
여기서, 러시아의 대표적인 UFO 연구가이자 회의론적인 분석으로도 유명했던 보리스 슈리노프도 분석에 뛰어듭니다.
그렇게 슈리노프는 자신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해당 다큐멘터리의 민낯을 밝혀냅니다.
슈리노프는 영상 속 군인들의 모습을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봐도 1960년대 소련군의 모습과 부합합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파고들면 고증 오류가 존재합니다.
영상 배경은 1969년 3월입니다. 군인들이 착용한 군복 역시 실지로 1969년 당시의 군복입니다. 허나 더 세세하게 파고들자면, 해당 군복은 1969년 7월에 새로이 교체된 군복 모델입니다.
그렇습니다. 슈리노프는 문제의 군복이, 1969년 7월 26일 자로 '소련 국방부장관 명령 N 191'에 따라 교체가 이뤄진 모델임을 밝혀냅니다.
또, 눈이 쌓이는 추운 날씨임에도 군용트럭에 방수포 없이 군인들이 탑승해 출동한 것을 짚었습니다.
이는 군대 상식에서 용납될 수 없는 그림이죠. 추가로, 영상 속 군용지프 역시 소위 오픈카 상태입니다. 이는 군인들이 실지로 오픈카 상태로 현장까지 이동했다기보다는, 처음부터 현장에서 제작진의 인위적 연출에 따랐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여기 덧붙이자면, 영상 속 군용지프는 어째서인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Willys MB 모델입니다. 영상 배경이 1969년이 아니라는 또 하나의 증표인 셈이죠.
슈리노프는 부검 영상편(본문에 첨부한 다큐 편집본 2부 중 2부에 해당하는)에서도 고증 오류를 잡아냈습니다.
부검의 3명이 부검을 진행하는 가운데, KGB의 속기사인 여성이 메모를 하고 있는 모습이죠. 부검의들은 방호복은 물론이고 모자나 마스크, 보호경 따위를 하지 않은 채입니다. 분명 이상하죠.
헌데, 다큐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1969년 소련이라는 시대적 배경에선 특이한 게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체르노빌 사건 당시까지도 소련에선 이러한 의학적 보호에서 허술함을 보였다는 거죠. 오히려 이와 같은 그림이 부검이 사실이었음을 증빙한다는 겁니다.
슈리노프는 이에 반박합니다.
기본적으로 부검 시 착용 복장은 모자, 앞치마, 부검 전용 장갑(팔뚝까지 커버하는)이라는 거죠.
영상에서처럼 긴팔의 흰 가운에 일반적인 의료 장갑을 착용한 모습은, 마치 일반 대중에게 등장인물들이 의사라는 인식을 주고자 인위적 연출을 꾀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영상 속 부검의들의 복장 상태는 일반적인 실험복 내지 좋게 봐줘도 부검 실습 과정에 견학으로 참가한 학생 정도로만 볼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부검 과정에서도 기본적인 고증 오류가 보입니다.
상반신에서 장기를 꺼내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힘들게 갈빗대 안에서 내장으로 보이는 것을 꺼내는 장면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부검 시 내부 장기의 노출을 위해 가슴 부위를 먼저 제거하는 게 기본 절차인데 말이죠.
다큐에서 제작진은 부검의 3명의 신원을 확인하고서 조사에 들어갔는데, 3명 모두 부검으로부터 일주일 후인 1969년 3월 24일에 사망했음을 알게 됩니다. 사망 진단서를 떼 본 결과 3명 모두 같은 날 뇌출혈로 사망했다고 기록돼 있는데, 이는 확률적으로 제로라 할 수 있죠.
따라서 부검의 3명 모두 KGB에 의해 '처리' 됐거나 혹은 외계인의 바이러스로 인해 사망했음을 암시합니다.
허나 슈리노프는 부검의 3명의 사망 진단서에서도 오류가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1969년 당시 러시아의 국가 명칭은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RSFSR, Russian Soviet Federative Socialist Republic)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상 속 사망 진단서의 인장 및 표기에는 러시아 연방(RF,Russian Federation)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이는 러시아 연방 초대 대통령인 옐친 정권(1991-1999) 당시 사용되던 형식입니다.
실제 1969년 당시의 사망 진단서와도 문서 형식이나 색상에서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큐 속 진단서의 형식은 70년대 초 이후 수정된 형태의 것을 따르고 있습니다.
슈리노프는 제작진이 마피아에게 구매했다는 기밀문서 역시, 정식 직위 표기명에 있어서 소소한 오류들이 있음을 꼬집습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사망 진단서의 사인 부문에 단순히 '뇌출혈'이라고 기입된 것도 오류입니다. 본디 사인 기입란에는 뇌출혈 중에서 어떠한 종류의 것이었는지 병명을 자세하게 기입해야 합니다. 예컨대, '출혈성 뇌졸중'처럼 말이죠.
결론적으로, 제작진이 비교적 급하게 연출에 임하느라 제대로 된 고증을 재연하는 데에 무리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겠네요.
이번엔 멕스 헤프먼이 등장할 차례입니다.
그는 뉴욕에 거주하던 러시아인 사업가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문제의 다큐멘터리가 전파되면서, 당연히 조국의 UFO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됩니다. 남들보다 더 깊은 관심을요.
헤프먼은 직접 사건 분석에 뛰어듭니다.
처음 그는 다큐에 대해 호의적이었습니다. 허나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점차 생각이 바뀌게 됐죠. 그러다 마침내, 완전히 변절(?)하기에 이릅니다.
헤프먼은 해당 사건이 언급돼 있다던 1968년 11월 29일 자 스베르들롭스크 지역신문에 집중합니다. 다큐에서는 신문명이 절묘하게 잘려있었지만, 마침내 문제의 신문이 'Vecherny'임을 알아내죠.
그렇게 갖은 고생 끝에 1968년 11월 29일 자 'Vecherny' 신문을 입수한 헤프먼은 허탈감에 빠지게 됩니다. 다큐에 나온 기사는 존재하지 않았던 겁니다. 심지어 어떠한 UFO나 폭발 관련 기사도 없었습니다.
헤프먼은 이러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여겨 웹사이트를 개설합니다. 그리곤 자신의 조사 결과를 올림과 함께 다큐 제작사인 ATI의 사기극이었음을 공표하죠.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헤프먼은 웹사이트를 폐쇄합니다. 자세한 내용을 밝히긴 꺼려했으나, ATI의 변호사 측이 대대적인 소송 제기를 예고하며 압박해 왔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다큐에 출연한 UFO 연구가들 역시 제작진에 대한 비판을 공개적으로 쏟아냈습니다. 제작진이 자신들 입맛에 맞도록 유도 질문과 짜깁기를 했다는 거였죠.
특히 유명 UFO 연구가이자 작가였던 안토니오 후니우스는, 1999년 1월 미국의 유명 대중지 'Fate'를 통해 억울함을 토로합니다.
후니오스는 제작진이 문제의 영상을 보여주고서 감상평을 요청했고, 이에 '지금 당장 진위를 판단할 수 있는 요소가 없지만, 만약 이게 진짜라고 친다면 내가 여지껏 본 UFO 및 외계인 영상 중 최고일 것이다'라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큐에서는 앞부분은 편집해 '내가 여지껏 본 UFO 및 외계인 영상 중 최고이다'라는 발언만 나갔다는 거죠.
이 밖에도 해당 다큐에 대해 너무 많은 오류가 존재한다고 꼬집음과 동시에 놀라운 이야기 두 가지를 알립니다.
하나는, 다큐에서 전직 미국 DIA 요원인 H로 출연한 사람에 대해서입니다.
H는 다큐에서 시종일관 미국&영국&소련의 UFO 기밀 정보 존재에 대해 옹호적인 발언을 제공하고, 특히 스베르들롭스크 지역에서 소련이 무언가 기밀리에 회수 작전을 펼쳤다고 증언 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후니오스는 동료 UFO 연구가인 알렉스 끼오네티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끼오네티는 LA에서 영화 및 TV 배급 비즈니스 업계에 있던 사람이었죠. 끼오네티에 의하면, 이 전직 비밀 요원 H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으로 프로덕션 하우스의 배우라고 합니다.
또 끼오네티는 다큐 속 문제의 영상을, 러시아를 로케이션으로 한 헐리우드 제작의 연출작이라 확신한답니다.
다른 하나는 이보다 더 충격적입니다.
해당 다큐의 스토리는 러시아의 UFO 연구가이자 작가인 베레시챠긴의 설명에 따라 진행됩니다. 이 'KGB UFO 파일'의 구성 모두가 베레시챠긴과 그의 저서 '소련의 UFO'의 증언을 답습하고 있죠.
그런데 놀랍게도 세계 각국의 UFO 연구가 중 다큐 이전부터 이 'KGB UFO 파일'을 알고 있던 사람은 전무했으며, 심지어 베레시챠긴을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물론, 그의 저서 역시 마찬가지고요.
후니오스는 자신과 더불어 동료 UFO 연구가 중 누구도 베레시챠긴을 아는 이가 없으며, 앞서 소개한 러시아의 유명 UFO 연구가 슈리노프 역시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꼬집습니다.
결론적으로, 해당 다큐의 모든 것들이 제작진의 연출이었던 셈입니다.
자, 이제 결정적인 한 방을 소개해 보죠.
더불어, 해당 다큐의 비하인드 스토리도요.
반복해서 언급했듯, 1998년 9월에 해당 다큐가 미국 TV 쇼를 통해 런칭하고서 러시아에서도 이슈가 됐다고 했죠. 그렇게 러시아에서도 본격적으로 이슈가되자, 1998년 11월경 지역신문사 'Moskovsky Komsomolets-Ural'를 통해 누군가가 충격적인 폭로를 합니다.
폭로자는, 모스크바의 고르키 필름 스튜디오에 소속된 올가 돌갈레바였습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1998년 초 모스크바에 두 젊은 미국인이 방문했다고 합니다. 둘은 미국의 TV 회사 소속인 감독과 카메라맨이었죠. 둘은 방문 목적을 '광고 관련 작업 협력차'라고 밝혔답니다.
돌갈레바는 이에 흔쾌히 응했으며, 그렇게 2월 말 소규모 팀을 조직해 촬영에 임했다고 합니다.
미국 제작진 측에선 모스크바 근처의 한적한 장소와 실제 군인들 섭외를 원했고, 이에 돌갈레바는 모스크바에서 기차로 40분 거리인 시골 지역 아라비노를 섭외했습니다. 자연경관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곳이기도 했으며, 주변에 여러 군부대가 상주했기에 부대 차원의 섭외 역시 수월하리란 판단에서였습니다.
그렇게 근방의 소규모 부대원을 섭외함과 동시에 군용품도 협찬받을 수 있었답니다. 미국 제작진이 부대 장교에게 금전을 지불하자 너무도 쉽게 촬영 협조가 이뤄진 거죠. 심지어 그리 많은 액수도 아니었답니다.
미국 제작진 측은 1968년의 군인처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답니다. 그리하여 그 시대의 군복을 공수했으며, 이러한 군복이 모자라 몇몇은 외투로 안에 상하의를 잘 가려야 했다고 하네요.
이어, 미국 제작진은 숲의 나뭇가에다 폼플라스틱으로 제작한 원반 모형을 고정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폼플라스틱이 원체 가벼운 재질인지라 이따금 돌풍으로 인해 움직였다고 합니다.
당시 돌갈레바 팀원들과 촬영에 협조한 군인들 모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저 미국의 TV 제작진이 광고 관련 촬영을 온 것이고, 무엇보다도 사전에 비용을 완납했기 때문이죠. 당시 시대가 소련이 막 붕괴했을 때였으니 더 그랬을 겁니다.
이후 문제의 다큐가 러시아 내에서도 알려지면서 신문에 실리게 됐고, 자신들이 참여한 작업물이 난데없이 KGB의 기밀 작전이 돼 버린 것에 놀란 돌갈레바가 언론을 찾았던 겁니다.
이제, 영상 속 군인들의 얼떨떨하고 생기 없는 표정과 짜임새 없던 동선이 이해가 될 겁니다.
이렇듯 세기말 감성과 로즈웰 외계인 해부 필름, 그리고 노스트라다무스 컨텐츠가 전 세계를 강타하던 무렵 탄생했던 'The Secret KGB UFO Files'의 내막을 들춰봤습니다!
과연, 그 시대에 가능했던 과감한(?) 제작 방식의 미스터리 관련 미디어 컨텐츠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히려 진한 향수마저 불러일으키는 사건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렇지 않나요?
정말이지, 조지 아담스키와 빌리 마이어의 접시형 UFO가 그리워지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