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유명한 퓰리처상 사진의 뒷이야기

(Kevin Carter)

위 이미지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퓰리처상 사진으로 유명하다.

또, 사진과 관련한 이야기 역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허나, 그러한 이야기는 너무도 축약된 채로 포토저널리즘에 대한 화두로만 소비돼 왔다.

하여, 이 <독수리와 어린 소녀The Vulture and the Little Girl>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사진의 비하인드 스토리(국내에 일반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를 있는 그대로만 담담하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

되도록 간략하게, 정제되지 않은 짧은 글에 익숙한 당신이 읽기를 포기하지 않기를 희망하며.

(Kevin Carter)

해당 사진은 케빈 카터라는 사진기자가 1993년 3월 수단에서 촬영한 것이다.

카터는 1960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대 도시인 요하네스버그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백인들의 거주지역에서 자랐다.

카터는 어려서부터 당시 남아공에 횡횡하던 인종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 속에서 흑인들이 주거 분리, 이동 통제, 교육 및 직업 차별 등으로 억압받는 것들을 봐온다.

군대에 징집돼 4년간을 복무했을 시기엔, 같은 백인 군인들이 식당의 흑인 웨이터를 모욕하자 이를 제지하고 나서다가 집단구타를 당하기도 한다.

1983년 5월 20일 남아공 수도에서 벌어졌던 차량 폭탄 테러를 목격한 것을 계기로 카터는 뉴스 사진기자를 꿈꾸게 된다.

그렇게 군 제대 후 사진용품점에서 일하며 사진기자들과 안면을 쌓은 끝에 주말 스포츠 사진기자가 된 카터.

1984년부턴 아파르트헤이트의 잔혹함을 폭로하는 사진기자로 발돋움했던 카터는, 처음으로 '죽음의 목걸이Necklacing' 처형 사진을 촬영해 일반에 공개한다.

이 죽음의 목걸이는 당시 남아공에서 흑인들에게 자행된 린치로, 휘발유를 묻힌 고무 타이어를 피해자의 몸에 걸어 불을 붙이는 공개처형 방식이었다.

카터는 훗날 해당 사진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그들이 하는 짓에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진을 보고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 행동이 잘못된 것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93년, '수단 생명선 작전(1989년부터 UN 기구와 유니세프가 시작한 전쟁 피해와 기근으로 고통받는 수단 남부에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작전)' 과정에서 남아공의 유명 전쟁 사진기자 주앙 실바가 카터와 함께 현장으로 초대를 받는다.

같은 그룹원의 동료였던 실바와 카터는 수단 남부 아요드에서 각자 기근 희생자들의 사진을 촬영하고자 잠시 동행을 중단한다.

바로 여기서, 카터는 어린 소녀로 보이는 아이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서 흙바닥에 몸을 지탱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한다. 아이는 800m가량 떨어진 UN의 급식소를 향하던 중 그만 힘에 부쳐 절망하듯 고꾸라진 것이었다.

카터는 카메라를 들어 이러한 광경을 사진으로 남기고는, 실바와 합류한 자리에서 시종 얼굴을 쓸어내리고 담배를 피우며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방금 촬영한 걸 믿지 못할 거야! 아이가 무릎을 꿇고서 있는 것을 촬영하다가 각도를 틀었는데.. 갑자기 독수리가 바로 그 뒤에 있었던 거야! 나는 계속 촬영 버튼을 눌러댔어. 그러고는 그 독수리를 쫓아냈지. 이 모든 광경을 보고서.. 내 어린 딸 메건이 떠올랐어. 집에 가면 그 애를 꼭 안아 줄 거야."

해당 사진과 관련 기사가 1993년 3월 26일 자 <뉴욕 타임즈>에 게재되며 전 세계적으로 파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이 사진은 전 세계 언론과 미디어 그리고 구호단체 및 기금 모금 포스터로 사용된다.

그리하여, 1994년엔 그해 퓰리처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해당 사진이 일반에 공개되면서 즉시 많은 독자들이 아이에 대한 근황을 물어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뜨거운 관심에 <뉴욕 타임즈>는 1993년 3월 30일 자 특별 사설을 남기기도 한다.

"지난 금요일 수단 관련 기사와 함께 게재된 사진에는 아요드의 급식소로 향하던 중 굶주림으로 쓰러진 어린 수단 소녀의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소녀의 뒤에선 독수리가 모습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많은 독자분들이 소녀의 상황에 대해 문의해 왔습니다. 당시 사진작가는 독수리를 쫓아냈고, 소녀는 직후 다시 걸을 수 있을 만큼 회복됐다고 전해왔습니다. 소녀가 급식소에 갔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카터는 남수단의 기근 현장을 세상에 알릴 목적으로 UN과 협력해 작업을 하던 중 일련의 상황을 겪었던 것이었다.

사실..

당시 실바와 카터는 UN에 협력하는 반군 사령관 측의 호위를 받아 동행 중이었으며, 아이를 촬영하고서 막바로 UN의 비행기로 이동해야만 했기에 아이를 끝까지 보호할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이가 예정대로 급식소에 도착했는지 여부를 알 수가 없었던 것.

한편..

사진이 세상에 전파되면서 카터를 향해 분노하는 사람과 옹호하는 사람들 간의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다.

이러한 공방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소녀의 안위보다 사진을 촬영하는 게 더 중요했느냐'라며 분노하는 측의 입김이 거세져 갔다.

분노한 사람들은 <뉴욕 타임즈>에 전화와 편지를 통해 항의했고, 카터가 사진 속 소녀를 돕고자 개인적으로 취한 행동이 있는지 여부를 따져 묻는 항의 역시 잇달았다.

이처럼 격렬한 반응들로 인해 카터는 공식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타임즈 측에 보내온다.

"이게 바로 수천 명의 어린이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여주는 끔찍한 이미지입니다. 남부 수단은 지구상의 지옥이고 그곳에서의 경험은 내 경력 중 가장 끔찍했습니다."

허나..

카터를 향한 비난 여론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 칼럼니스트는 '소녀의 고통의 순간을 포착하고자 렌즈를 조정하던 그는, 현장에 있던 또 다른 포식자 독수리였을 수 있다. 그가 사진작가로서는 자신의 일을 잘 해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인간성은 1에서 10중에서 -10에 해당한다.'라며 거세게 비난해 오기도.

그리고..

1994년 7월 27일.

퓰리처상 수상 4개월 후인 이날, 카터는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자신의 트럭에서 배기관에 정원용 호스를 연결하고는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카터는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겼다.

"정말로, 정말로 죄송합니다. 삶의 고통이 기쁨이란 게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우선하고 있습니다. 우울증에.. 전화도 없고.. 집세도 없고.. 양육비도.. 빚도 있고.. 돈도 없습니다! 저는 살인과 시체, 분노와 고통에 대한 생생한 기억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굶주리거나 다친 아이들, 방아쇠를 쥐곤 행복해하는 광인, 종종은 경찰이, 처형해 대는 살인자들에 대한 것들이요.. 운이 좋다면 저는 켄과 함께하러 떠나겠습니다."

해당 사진과 관련한 이야기에서, 카터는 사람들의 비난에 견디지 못하고서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졌다.

퓰리처상 수상 직후, 카터는 자신의 그룹원 동료들과 함께 남아공 토코자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를 촬영하고자 계획한다.

여기서 그의 가장 절친한 동료였던 켄 오스터브록이 바로 근처에서 총격으로 사망하고 만다.

그리고 이를 기점으로 카터는, 애써 외면해 왔던 지난 수년간 자신이 마주했던 세상의 불행들로부터 잠식되고 만다.

그의 유서 마지막에 언급한 '켄'이 바로 켄 오스터브록이었던 것이다.

비록 그가 문제의 사진으로 인해 수많은 비난을(심지어 같은 기자들로부터도) 온몸으로 맞으며 우울증이 심화하긴 했으나, 퓰리처상 수상에 이어 기타 상들을 수상한 직후엔 자신의 작품이 인정을 받았다며 크게 기뻐했다고 가족들은 전한다.

오히려..

이 무렵 남아공 경찰이 가하는 즉결 처형 장면을 목격하고 켄이 사망하면서, 또 업무 과정에서 묘하게 일들이 꼬이면서 좌절하던 와중 작업물이 담긴 필름을 분실하면서 마침내 모든 용기를 잃고 만다.

말인즉슨..

여러 복합적인 사태들이 연달아 터지면서 카터 자신이 그간 목격해 온 세상의 불행들을 한꺼번에 마주하게 된 것.

카터의 죽음 이후..

그가 남긴 '세상의 모든 1면을 장식한 사진'과 관련한 도덕적 및 정치적 의미와 더불어 포토저널리즘에 대한 화두가 사회학적으로 오래도록 논쟁거리로 남게 된다.

지금까지도.

그렇다면..

그날의 소녀는..?

2011년경, 스페인 신문 <El Mundo> 기자들이 추적 끝에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낸다.

아버지에 따르면, 사진 속 소녀는 사실 Kong Nyong이라는 이름의 소년이었다고 한다.

소년은 사진이 찍힌 날 무사히 급식소에 도착했고, 이후 기근에서도 살아남았다고 한다.

허나, 2007년경 알 수 없는 열병을 앓다가 그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1993년 3월 26일 자 <뉴욕 타임즈>의 기사. 옆의 지면 광고가 인상적이다 <The New York Times>

참조

<The Bang-Bang Club: Snapshots from a Hidden War> Greg Marinovich & Joao Silva
<The Guardian/From the archive, 30 July 1994: Photojournalist Kevin Carter dies> Eamonn McCabe
<The New York Times/Sudan Is Described as Trying to Placate the West> Donatella Lorch>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