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범을 인터뷰하러 간 대학생

* 본 글은 단순히 범죄사건과 관련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오락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사건의 악랄한 범행성을 알림과 동시에 범죄의 연보年譜를 통한 교육에 그 목적을 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1940년 미국 테네시주 잭슨에서 태어나 미시시피주 리치에서 유년기를 보낸 토마스 해리스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책을 사랑하는 아이'였다.
해리스는 텍사스주 명문 사립대 베일러 대학교에 영어 전공으로 있으면서 지역 신문 기자로 경력을 시작했고, 졸업 후 4년 뒤에는 AP 통신에 취직하며 뉴욕으로 이주한다.
35살이 되던 해엔, 마침내 자신의 데뷔작인 <Black Sunday>를 출간한다. 그즈음 있었던 뮌헨 올림픽 참사 사건에서의 테러에서 영감을 받아 쓴 소설이었다.
해당 소설은 제법 히트하며 영화로 각색되기까지 했으며, 이후 한동안 해리스는 휴식기를 가지며 차기작 구상에 나선다.
해리스가 아직 대학생이던 1963년이었다.
그는 유명 펄프픽션 잡지 에 기자로 있으면서 '닥터'라고 불리우는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이는, 잡지사의 요청으로 멕시코의 사형수 다이크스 시몬스를 인터뷰하러 간 자리에서였다.
정신 병력이 있던 텍사스 출신의 크레인 운전사였던 시몬스는, 1959년 10월경 휴가차 방문한 멕시코에서 한 가족의 젊은 구성원 셋을 살해한 혐의로 멕시코 당국에 체포된다. 피해자 중 죽어가던 소녀가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던 것이다.

소녀가 그 말고도 범인으로 지목한 이는 그녀의 주치의를 비롯해 다른 몇몇이 있을 정도였으나, 멕시코 당국은 그를 범인으로 확신하고서 1961년 3월경 사형 선고를 내리기에 이른다. (이후 30년 형으로 감형됨)
그렇게 멕시코에서 최초의 사형 선고를 받은 미국인 시몬스를 접견해 인터뷰를 따고자, 잡지사의 명을 받은 해리스가 멕시코 누에보레온주의 주립 교도소로 향한다.
교도소 측의 허락을 구한 해리스는 교도소 내 의료 사무실에서 '닥터'와의 인상 깊은 만남을 갖게 된다.
닥터는 많은 죄수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간단한 수술도 진행하던 외과의로, 1962년 시몬스가 탈옥을 시도하다 총상을 입었을 때 즉각적인 지혈 및 치료로 목숨을 구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주워들은 해리스는, 시몬스의 탈옥 과정에서의 스토리 취재차 닥터를 인터뷰하기로 결심한다.
닥터는 자신의 시그니처인 밝은 색상의 의상, 정장, 흰색 신발, 선글라스, 그리고 황금색 프레지던트 브레슬릿의 롤렉스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해리스는 똑바로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닥터를 이렇게 묘사했다.
"짙은 적색 머리에 밝은 피부, 작고 날씬한 남자였습니다.. 꼿꼿이 서 있는 자세에서 어떤 우아함을 볼 수가 있었죠.
시몬스의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일순 분위기가 바뀌면서 닥터가 제게 물어왔습니다.
'그에게 살해된 사람들의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까?'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닥터는 사진 속 피해자들의 생김새에서 무엇을 느꼈느냐고 물었습니다.
피해자들은 매력적인 외모를 하고 있었다고 대답하자, 닥터는 가만히 이렇게 쏘아붙였습니다.
'그들의 그런 매력이 시몬스를 도발했다고 말하는 건 아니겠죠?'
이어 닥터는 저와 시몬스의 흉측한 외모, 고통이란 것의 본질에 대해, 그리고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딥해졌습니다.
닥터는 시몬스의 구순구개열과 몇몇 흉터가 그의 삶에서 어떤 경험과 영향을 미쳤을지를 추측하며 심리적 프로파일을 진행했습니다.
닥터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저널리스트죠. 그렇죠, 해리스 씨. 당신 기사에 무어라고 적을 겁니까.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저널리스트로서 어떻게 표현할 겁니까. 고통이란 것을 그저 지옥이 따로 없다와 같은 상투적 표현으로 담아낼 수가 있는 걸까요?'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고서 진료소를 나와 교도소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교도소장은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 직원이 아닙니다! 여기서 장기 수감 중인 죄수죠. 바깥에서 외과의였는데 살인을 저지르고서 이곳에 왔답니다. 피해자를 아주 아주 작은 상자에다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잘게 썰었대요. 체포 직후에 교도소에서 발생한 수감자들 간의 싸움에서 부상자를 치료하면서 이렇게 사무실도 갖고 치료도 하고 있는 거죠.
어쨌든 평생 여기 갇혀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완전히 미친 사람이거든요!'
세월이 흘러 1980년대.
해리스는 데뷔작 <Black Sunday>의 차기작으로 시리즈물을 내놓는다.
그건 바로..
그날 '닥터'와의 만남에서 영감을 받은 해리스의 불세출 대표작이자..
전 세계인의 머릿속에 결코 잊을 수 없는 빌런을 새겨놓는 작품이었던..
'한니발 렉터'의 서사극이었다.
누에보레온주 주립 교도소의 '닥터'.
닥터, 그에 대해 남아있는 공식적인 기록은 1960년대 멕시코 현지의 법정 기록물 및 몇몇 기사를 제외하곤 별다른 정보가 없다.
그는 멕시코 타마울리파스 멘데스의 저명한 가문에서 태어난 알프레도 트레비노라는 남자였다고 한다. 엄격한 가정 분위기 속에서 그는 다른 형제자매와 마찬가지로 일찍이 학업에 두각을 드러냈다고.
그는 20대 무렵에 이미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누에보레온주의 몬테레이 내 탈레레스에서 개업한 젊은 외과의였다고 한다. 해당 지역에선 의료 혜택으로부터 소외받는 사람들을 돌보며 존경을 받았다고.
그런 그가 28세이던 1959년 10월 8일이었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20세 헤수스 랑헬과 감정적이고도 격렬한 다툼을 벌인다. 금전적 문제로 인한 우발적 살인이었다는 말도 있는데, 그 이면에 동성의 연인관계였던 둘 사이에서 남들이 알지 못했던 골이 있었음을 추정할 뿐이다.
당시 전 세계적 시대상이나 멕시코 사회는 물론이고 몬테레이와 같은 보수적인 도시에선 이같은 '치정' 스캔들이 충격적이었기에, 현지 신문에선 제법 떠들썩하게 다뤘던 것 같다.
당시..
트레비노는 다툼 과정에서 랑헬에게 진정제를 투여해 기절시키고는, 자신의 수술 도구를 사용해 살아있는 상태에서 피를 빼내고선 잘게 절단한다.
그렇게 조각 조각들을 상자에 담아 지역 목장에 묻었으며, 이 과정에서 시신 유기인 줄 모르고 그를 현장에 데려다줬던 그의 지인이 몰래 땅을 파본 뒤 실상을 알고는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야기도..
그리고 범행 직후 트레비노가 스스로 범행을 자백하며 경찰이 그의 수술실로 출동했을 때 랑헬의 시신이 조각난 상태로 상자에 담겨져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살해 및 시신 유기로 1961년 트레비노에게 사형이 선고된다.
한편..
보수적 도시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 그리고 범인이 젊은 의사였다는 사실로 인해 갖가지 소문이 존재한다. 당시 멕시코 일대에서 히치하이커들이 실종되던 사건들의 범인이 그였으며, 그렇게 살해된 사람들은 조각 조작 잘려져 유기됐다는 것.
물론, 물증이 존재하지 않는 소문이었다.
치정 살인을 저지른 20대의 동성애자 의사.
멕시코 교도소에선 결코 수감자드롤부터 환대를 바랄 수 없는 조건이었다.
허나, 예상과 전혀 달리 트레비노는 수감자들을 치료하며 자신의 사무실을 가질 정도로 환대와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시그니처 의상과 우아함을 잃지 않는 행동거지로 인해, 젊은 날의 해리스(당시 아직 이곳저곳의 기자 일을 하던)의 뇌리에 분명한 인상을 새겨 놓는다.
그렇게..
전 세계적으로 대중문화계에 빼놓을 수 없는 인상적인 빌런 '닥터 한니발 렉터'가 탄생하기에 이르른다.
이른바 한니발 렉터 시리즈 3부작을 위해 해리스는 여러 프로파일러를 인터뷰하고 자문을 구하며 동시에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수집했다.
하여, 그의 시리즈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직간접적으로 어떤 FBI 프로파일러와 미국 내 연쇄살인마를 모델로 했는지 찾아내는 '놀이'가 유행하기도 했다.
한편, 해리스 자신이 지금껏 직접 공표한 캐릭터 모델로는 이 알프레도 트레비노가 거의 유일무이하다고 할 수 있겠다.
해리스는 자신의 불세출 대표작 <양들의 침묵> 25주년 기념판 서문을 통해 트레비노와의 만남을 소회하며 이렇게 말한다.
"범죄자의 마음에 대해 특별한 이해도를 갖춘 캐릭터가 필요했습니다. '닥터 살라자르(그는 트레비노의 본명을 숨긴 채 이와 같은 가명으로 대체했음)' 덕분에 그의 동류인 한니발 렉터를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사형을 선고받고서 감옥에 갇혔던 트레비노는 이후 어떻게 됐을까?
당시 실지론 사형이 이뤄지지 않던 멕시코 사법 당국이었기에 트레비노는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는 감형을 받으며 20년 간의 징역형을 끝으로 출소했으며..
자신이 개업하고 살인을 저질렀던 지역에서 의료 활동을 이어가며, 많은 노인들에게 무료로 또는 최소한의 비용만을 받으며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트레비노는 2009년 2월, 77세의 나이로 전립선암으로 인해 잠을 자던 중 사망했다고 한다.
참조
<BBC Mundo/Alfredo Ballí, el asesino mexicano que inspiró el personaje de Hannibal Lecter>
<Latin Times/Dr. Alfredo Balli Trevino Knew He Was The Real ‘Hannibal’ And Other Unknown Details Of His Life> Maria G. Valdez
<Latin Times/The True Story Of Hannibal Lecter: How The Real Life Hannibal Murdered His Last Victim And Tried To Bribe Arresting Officer> Maria G. Valdez
<Latin Times/Thomas Harris, ‘Silence Of The Lambs’ Author, Reveals Hannibal Lecter Was Inspired By Real Life Mexican Doctor> Maria G. Valdez
<Latin Times/Who Was The Real Hannibal Lecter? See Photo Of Gay Mexican Doctor Alfredo Balli Trevino Who Was Inspiration For 'Silence Of The Lambs' Character> Maria G. Valdez
<VICE/My Girlfriend and I Found the Real Hannibal Lecter for Thomas Harris> Diego Enrique Osor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