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가장 기괴했던 살인 사건

* 본 글은 단순히 범죄사건과 관련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오락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사건의 악랄한 범행성을 알림과 동시에 범죄의 연보年譜를 통한 교육에 그 목적을 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영국에서 가장 기괴했던 살인 사건'

위 문장을 보고서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희대의 살인마 '잭 더 리퍼'를 떠올릴 것이다.

물론, 잭 더 리퍼가 역사에 처음으로 악명을 새긴 극장형 연쇄살인마이긴 하다.

허나, 현대 영국 범죄사에서 가장 기괴했던 살인 사건은 따로 있었다.

1958년 1월 31일, 영국 하트퍼드셔 내 위트웰 외곽에 위치함 숲 로즈 그로브.

이날 오후 4시경, 본가로 휴가를 나온 공군 조종사가 동생과 반려견과 함께 근처를 드라이브 중이었다. 여기서 숲길에 도달하자 반려견을 따라 100m 정도를 들어갔고, 그곳 공터에 가만히 누워있는 한 소녀를 발견한다.

곧이어 그것이 소녀의 시신임을 감지한 그들은 즉시 집으로 돌아가 경찰에 신고한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다음의 사실들을 파악한다.

(Ron Burton)

"일반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숲속의 공간에서, 마치 잠에 빠진 듯 흐트러짐 없이 똑바로 누워선 양손을 포개고 있었음. 소녀의 몸과 그 주변으로 은화와 구리 동전들이 놓여져 있었음."

이 소녀의 신원은 곧바로 밝혀졌다.

소녀는, 1달 전인 1957년 12월 30일경 현장으로부터 약 11km 떨어진 자신의 집 근처에서 실종됐던 17세의 앤 노블렛이었다.

당시 500명이 넘는 인근 경찰력과 300명이 넘는 마을 주민 및 자원봉사자가 합심해 지역 일대를 샅샅이 수색했으나 끝끝내 행방을 알 수 없었던 앤이었다.

그런 앤이, 1달 후 갑자기 숲속의 잠자는 공주와도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어진 조사에서 다음과 같이 믿기 어려운 기괴한 사실들이 드러났다.

(Ron Burton)

"시신은 부패하지 않은 채 얼어붙어 있는 상태였음.

부검 결과, 실종 직후 수 시간 내에 사망했으며 사인은 목에 가해진 압력으로 인한 질식. 허나, 외력에 의한 경부 압박 징후나 뚜렷한 외상 및 흔적이 없음. 즉, 순간적으로 극심한 정서적 동요 또는 강력한 정신적 긴장 상태로 인한 우발적 질식사일 가능성이 있음.

시신이 뉘어 있던 곳의 식물과 그 주변 식물의 성장 속도 및 색의 변화를 비교한 결과, 시신은 2주 정도 현장에 방치됐던 것으로 추정."

정말이지..

기괴했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현지의 사냥터 관리인이 매일마다 산책하며 새에게 먹이를 주던 경로 부근이었다.

또한, 당시의 현지 겨울 날씨는 평년에 비해 제법 온화한 상태였다.

습도가 높은 영국, 비교적 온화한 겨울 기후의 남부, 그리고 숲속의 설치류와 조류들 가운데에서 부패와 훼손 없이 2주간 얼어붙어 있었던 시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어느 날 갑자기 어떤 곳에 나타난 해당 사건..

바로, 영국에서 가장 기괴했던 'Deep Freeze 살인 사건'이었다.

(Hertfordshire Police)

사건은 1957년 12월 30일에 벌어졌다.

17살의 앤 노블렛은 헬멧 제조 회사 이사 집안의 딸로, 스위스 몽트뢰에서 4년간 유학하다 불과 몇 개월 전 귀국한 부유한 집안의 여식이었다.

앤은 유학 당시의 전공을 살려 지역의 기술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며 아동 간호사가 되기를 희망하던 소녀였다.

이날 운전 강습에 이어 오후 4시 10분경 매주마다 진행되던 로큰롤 댄스 교실 수업에 참여한 앤은, 오후 5시 30분경 수업을 마치고서 친구와 함께 버스 정류소로 향한다.

여기서 앤의 집으로 향하는 391번 버스가 막 지나갔고, 버스를 놓친 앤은 친구의 목적지인 처치 그린까지 함께 걷기로 한다.

앤은 처치 그린의 버스 정류소로 향하면서 친구에게 다음 댄스 수업 일에 보자고 작별 인사를 했다고 한다.

오후 6시경, 스쿠터를 타고서 퇴근 중이던 근로자가 앤이 집인 마샬스 히스 레인 부근의 정류소에서 홀로 걷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이곳 길은 인적이 드문 외딴곳이기도 했다.

앤은 그렇게 집에서 불과 약 500m 떨어진 곳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됐다.

(Anne Noblett)

이날 앤이 귀가하지 않으면서 그녀의 부모가 곧장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고, 가출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한 경찰은 그날 밤부터 본격적인 수색 작업을 펼친다.

그렇게 1달간 대대적인 수색이 이뤄졌다.

주 경찰 400명과 수색견, 100명이 넘는 자원봉사형 군부대, 300명의 마을 주민이 현장을 중심으로 한 수천 에이커에 달하는 숲과 농지를 이른바 평떼기 수색한다.

이러한 수색은 샛길, 골목길, 도랑과 같이 한적한 곳을 중심으로 이뤄졌으며 당시 동런던 지역의 쓰레기가 모이던 400에이커 큐모의 쓰레기장도 수색 대상이었다.

당연히 집집마다 방문도 이뤄졌으며, 수색 범위는 인근 지역으로까지 확대됐다.

수색은 현장 주변 10km 이내 주변으로 광범위하게 진행됐다. 구덩이, 웅덩이, 연못, 강 일대 역시 수색 범위였다.

허나,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그저, 앤이 차량을 몰던 범인에 의해 유인 또는 순식간에 태워져 범죄에 연루됐을 가능성을 추정할 뿐이었다.

앤은 172cm 신장, 체중 71kg, 브라운 헤어, 그리고 평상시 안경을 착용했다 (Anne Noblett)

1958년 1월 31일, 집에서 약 11km 떨어진 위트웰 외곽의 숲 로즈 그로브에서 앤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이곳 숲속의 공터는 현지인조차 거의 방문하는 이가 없는 곳이었다. 근처 사냥터 관리인이나 주변에 새 먹이를 주러 왕래하는 게 전부였을 정도.

말 그대로 시신은 싸늘하게 얼어붙은 상태였다. 한겨울 숲속이긴 하나, 평년보다 온화한 기온이었음을 감안할 때 자연적으로 발생하기엔 어려워 보였다.

그렇다면, 앤은 냉동된 상태에서 범인에 의해 현장에 유기됐다는 말이 된다.

헌데..

현장은 애초에 차로 접근할 수 있는 길로부터 400-500m 떨어져 있었으며, 가장 가까운 들판으로부터는 약 70m, 농로로부턴 300m 정도 거리가 있었다.

말인즉슨..

범인은 172cm에 71kg의 사람을, 그것도 얼어붙은 상태의 사람을 맨몸으로 400m가량을 운반했다는 말이 된다.

설명이 쉬이 되지 않은 기괴한 사건이었다.

경찰은 기상청을 통해 실종 기간 동안의 낮밤 기온 기록을 제공받은 뒤, 평년보다 온화한 날씨로 인해 앤의 시신이 그간 냉동고에 보관되오다 숲속에 유기됐던 것으로 추측했다. 그리고 현장의 특성으로 인해 범인은 최소한 현지인 정도로 지리에 밝은 것으로 여겨졌다.

하여, 주변 일대에 농산물 및 어패류 등을 보관할 목적으로 냉동 장비를 보유하고 있는 이들을 조사 대상으로 놓는다. 이러한 냉동고는 해당 지역에서만 약 200대에 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 급속 냉동고는 흔하지 않은 고가의 장비였음에도, 지역 일대에 농산물 등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이들이 주거했기에 말이다.

허나, 이러한 급속 냉동 장비는 당연하게도 거의 모두 공동 관리와 같은 보관 시스템이었다. 애초부터 범인이 아무도 모르게 그러한 장비를 장기간 시신 보관용으로 사용하는 게 가능했을까?

경찰은 300년 이전 얼음을 채워 음식 보존용으로 사용하던 지하 얼음집들마저 수색 대상에 올려놨으나, 끝내 용의자를 색출하는 데엔 실패한다.

경찰은 앤의 시신이 얼마나 유기됐을지를 파악하고자 정부 산하 실험 연구소 내의 식물학자에게 조사를 의뢰한다.

1958년 2월 초, 식물학자는 실제 크기의 석고에 옷을 입히고서 현장에 뉘어 석고 밑의 식물과 그 주변의 식물 차이를 관찰한다.

그렇게 식물의 성장 속도 및 색상 변화를 따져본 결과, 앤의 시신은 약 2주 정도 현장에 유기됐을 것으로 추측됐다.

그러니까..

범인은 앤을 약 보름 정도 냉동고에 보관한 뒤, 이후 꽁꽁 언 상태의 172cm 71kg의 시신을 짊어지고서 300-400m가량의 나무 사이 숲길을 지나치고는 30m 거리의 두텁고 높다란 덤불길을 통과했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시신은 2주간 자연환경 및 야생동물에 의해 손상되지 않은 채 그대로 얼어붙은 상태로 발견됐다는 뜻이 되고 말이다.

게다가..

시신은 외투에서부터 안경과 신발에까지 실종 당시의 그 모습 그대로였으며, 똑바로 뉘인 시신 위로 은화와 구리 동전들이 올려져 있었다.

경찰은 2,000명을 인터뷰하고 차량 소지자들을 수사했으나 뚜렷한 용의자 색출에도 실패한다 (Archant)

그렇게..

앤 노블렛 살인 사건은 '딥 프리즈 살인 사건'이라는 별칭과 함께, 영국에서 가장 기괴한 미제 살인 사건으로 남고 만다.

그렇다면..

과연 그날 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며 그녀를 해한 이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또, 쉬이 납득이 가지 않는 사건 세부 사항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거의 70년이 돼가는 미제 사건이며, 당시 일반에 공개된 자료 범위를 감안하면 가뜩이나 기괴한 사건이 더욱 그 정도가 심해진 실상이다.

허나, 최대한 이성적으로 사안들을 따져보면 분명 현실에서 이뤄진 범죄 사건임을 알 수가 있다.

먼저, 검시 결과부터.

앤의 뱃속에서 실종 당일 먹은 아침이 완전히 소화되지 않았기에 실종 수 시간 내에 살해됐을 것이다.

시신이 발견되고서 열흘 후, 병리학자는 사인을 목에 가해진 압력으로 인한 질식사로 결론 내렸다. 그러면서 꼭 손과 같이 외부 압력에 의한 질식사만은 아닐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로부터 다시 1달 뒤에는, 뚜렷한 외상을 찾을 수가 없기에 순간적으로 극심한 정서적 동요 또는 강력한 정신적 긴장 상태로 인한 우발적 질식사일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고 언급한다.

정리하자면, 실종 현장의 특성상 범인은 범행 목적으로 앤을 차에 태워 납치를 했을 것이다.

그녀가 지역에서 유명한 부잣집 여식이긴 하나, 이날 우연찮게 버스를 놓치면서 평소와 다른 시간대와 장소에서 납치를 당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즉, 범인은 인적 없는 외딴 길목에서 무작위로 범행 대상을 물색했던 것이라 보는 게 맞겠다.

그렇다면, 납치 이후 앤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수사 내내 경찰은 범인이 앤의 시신을 냉동 장비에 숨겨왔다고 판단, 지역 일대의 냉동 장치를 수색했다.

헌데, 헛간이나 별채에서 한동안 유기됐을 경우에도 시신은 부패하지 않고서 차디찬 상태를 유지가 가능하다.

물론, '딥 프리즈'라는 명칭이 하나의 표현으로 그렇게 사용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성에가 낄 정도로 시신이 꽁꽁 얼어붙은 상태였는지 정확한 상태를 현재 일반에 공개된 정보만으론 판단이 어렵다. 시신이 실종될 당시와 마찬가지였다는 표현도 역시나 실지 부패 정도가 어떠했는지를 추정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쨌든, 현시점에서 영국 남부의 일반적인 최저 기온이 2도 정도임을 감안해보겠다.

헛간과 별채와 같은 곳은 낮 동안 태양열의 흡수가 없어 열 축적의 부족으로 외부보다 기온이 떨어진다. 또, 단열이 없고 틈새가 많아 찬바람이 내내 자유롭게 드나든다.

내부의 습기와 더불어 이러한 외풍 친화적 환경에선 냉각 효과 강화로 인해 기온이 더욱 떨어지고 자연 결빙 현상도 발생할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계속해서 외부의 찬 공기가 내부 공기가 정체되지 않도록 야기하면서 시신의 부패도는 완전히 멈추진 않을지언정 분명 속도는 크게 느려질 가능성이 커진다. 만약 이러한 환경이 유지된 채라면 몇 주 정도까지도 비교적 보존이 온전히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현실적으로,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 급속 냉동고와 같은 장비는 개인용이 아니라 사업용이기에 독단적인 관리 및 보안 유지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시신은 잠시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냉동고에 보관됐더라도 결국엔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을 다른 장소에 머물렀다고 보는 게 타당하겠다.

그리고, 지역적 특성상 그러한 장소로 가장 현실적인 곳은 헛간 내지 별채와 같은 곳이겠다.

만약, 범행 또한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그러한 헛간 또는 별채에서 이뤄졌다면?

수사 결과 앤의 옷은 벗겨졌다가 다시 입혀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 인해 어떤 성적인 목적의 범행이 이뤄졌을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범인이 자신의 헛간 내지 별채로 앤을 끌고가 위에 올라탄 채 억지로 옷을 벗겼다면?

체감온도가 영하에 달하는 범행 장소, 피해자의 몸 전체에 가해지는 물리적 압박(172cm 71kg 체구의 앤을 범행 대상으로 삼을 만큼 범인은 체격에 자신이 있었을 것), 점차 심화되는 극도의 심리적 스트레스와 공포감까지..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심박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호흡 역시 억제되면서 자연적 질식에 다다랐을 수가 있겠다.

게다가, 오후 6시경 납치된 이래 범인이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고자 얼마간 앤을 방치했었다면 폐쇄된 공간에서의 추위 노출로 인해 저체온증도 한몫했을 수 있다.

추가로..

영국 남부 지역은 어지간해선 겨울에 온도가 영하권으로 떨어지지 않지만, 섬나라이기에 습도가 높고 바람이 세며 일조량이 1시간도 채 되지 않을 정도다.

그렇기에 우리가 열을 빼앗기며 느끼는 추위 정도를 나타내는 체감온도가 실제보다 낮은 편이다.

다음으로..

앤의 시신이 숲 로즈 그로브 내 공터에서 2주 정도 유기됐다는 분석 결과에 대해서다.

이는 당시 의뢰를 받은 식물학자가 현장을 재구성해 유사한 크기의 석고로 식물의 변화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도출한 분석이다.

허나, 당시의 기술만으론 지금처럼 정교한 분석이 불가능하다.

정량적 데이터의 부족, 정밀 장비의 부재, 곤충의 생태를 통해 유기 시점을 추정하는 법곤충학의 미비까지..

당시 진행됐던 시신에 눌린 식물의 상태 정도로는 수개월 단위의 추정은 가능해도 주 단위의 정밀한 분석에는 분명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과학수사에선 당연히 정황 증거보다 물적 증거가 우선시라지만, 해당 사건의 경우 분명 정황에도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앤의 시신이 언제 왜 어찌하여 그곳에 유기됐는가가 유의미한 추정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앤의 실종 직후 1달간 대대적인 수색 작업이 펼쳐졌었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그때까지 수색 장소로 포함되지 않은 곳이었다. 당시 실종 현장으로부터 10km 이내 범위까지 샅샅이 수색이 진행됐었으며, 아무런 소득이 없자 범위를 확대함과 동시에 수천 에이커에 달하는 숲과 농지 역시 평떼기 수색을 할 계획이라 공표했다.

또 실종 현장 지역인 위트햄프스테드 지역 일대(종로구 정도의 크기)의 모든 정원, 헛간 및 별채와 건물들을 수색해야 할 필요성과 함께 경찰이 그러할 것이라는 논지의 신문이 시신 발견 일주일 전에 보도됐다.

그렇게..

수색 예정지 범위에 해당했던, 실종 현장에서 약 11km 떨어진 숲 로즈 그로브에서 앤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만약 범인이 사건에 대한 신문 보도를 확인했으며 더 나아가 수색 작업을 돕는 자원봉사자 일에 나섰더라면, 언제 어느 곳에 시신을 유기해야 하는지 적합한 때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실지로 보도 내용을 확인하고 세세한 수사 진척도 파악을 위해 수색 자원봉사 일에 참여하는 범인의 행위는 드문 게 아님)

또, 시신 발견 일주일 이내에 유기됐다는 가정은 꽤나 합리적이다.

먼저, 현지 사냥터 관리자가 매일같이 왕래하던 루트 상이라는 점과 시신이 숲 산책에 나선 인근 마을 형제들에 의해 발견됐음을 고려할 때 2주나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서 방치됐다는 점은 쉬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숲속의 지면은 일반적으로 외부보다 기온이 낮기는 하나, 상기에 서술한 헛간 또는 별채에 비하면 환경적으로 부패에 덜 유리하다.

그리고 상술했듯 영국의 겨울은 습도가 높다. 헛간이나 별채에서처럼 열 축적 없이 계속되는 외부의 찬 공기 유입으로 인한 자연적인 빙결 현상과 반대로, 숲은 낮 동안 볕이 들긴 하며 영국 남부의 기온 특성상 습도로 인한 부패 가속화가 이뤄진다.

또한, 설치류나 작은 포유류 그리고 조류로 인한 훼손 가능성도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훼손에 걸리는 시간은 겨울철임을 감안하더라도 유기 후 3-5일 정도가 한계일 것이다.

물론, 숲 속의 기온이 영하권이더라도 부패는 3-7일 후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게 일반적이겠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하겠다.

범인은 172cm 71kg의 젊은 여성을 가볍게 제압할 만큼 완력에 자신 있는 남성이었을 것이며, 자신의 범행 아지트 격인 헛간 내지 별채에서 범행을 시도하던 중 앤이 사망에 이르렀을 것이다.

한편, 실종 당일부터 경찰의 본격적인 수색이 이뤄지자 시신을 유기하지 못하고서 그대로 자신의 아지트에 보관해 온다.

이후 한동안 상황을 살피던 범인은, 세간의 눈이 쏠리자 행동거지에 주의하며 일상을 보내온다.

그렇게 신문 기사와 자원봉사 참여 등을 통해 수사 진행 과정에 집중하던 범인은, 곧 자신의 아지트 역시 수색 범위에 포함될 것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아직 수색 범위에 해당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이전부터 인지하고 있던 인적 없는 숲속에다 시신을 유기한다.

차량에서 빳빳이 굳은 앤의 시신을 내려 현장까지 400m에 달하는 험준한 길을 이동했음을 고려할 때, 이러한 유기 작업에는 조력자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다.

물론, 범인이 육체적 노동에 익숙하고 완력에 자신 있는 유형이었다면 혼자 짊어지거나 손수레와 같은 도구를 이용해 운반이 가능했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범인은 위트햄프스테드 지역에 적을 두고 있으며 그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농업 등과 같은 육체노동자로(헛간 또는 별채를 보유한), 냉동 기능이 있는 냉동 차량을 소유하고 있거나 트럭과 같이 운반에 용이한 대형 차량을 소지하고 있어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부류였을 것이다. (당시 개인 소유의 단순 이동에 목적을 둔 차량은 많이 드문 편이었음)

범행 직후 예상 밖에 경찰이 즉시 집중적인 수색 작업을 펼치자 한동안 상황을 살피던 범인은, 이후 수사가 자신의 턱 끝까지 다가오자 하릴없이 평소 인적이 없으며 수색의 손도 뻗치지 않아 사람의 눈을 피해 유기가 가능한 곳으로 시신을 운반한다.

시신이 옷이 벗겨졌다가 다시 입혀졌으며 안경이 삐뚤게 착용됐던 것으로 볼 때, 범인은 앤이 숲속에서 저체온증으로 자연사한 것처럼 보이려는 의도였을 수 있다.

그럼, 어찌하여 범인은 시신의 몸 위로 동전들을 놓았던 것일까?

사건이 발생한 해인 1957년.

영국에선 사형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극에 달하면서 사형 선고의 범위를 대폭 제한하는 사형법이 공표된다.

하여 강도 과정에서 발생한 살인, 총격 또는 폭발로 인한 살인, 체포에 저항하거나 회피 및 탈출 과정에서 저지른 살인, 직무 수행 중인 경찰관 및 그를 돕는 사람에 대한 살인, 수감자의 신분으로 살인을 저지르거나 직무 수행 주인 교도관 또는 그를 돕는 사람에 대한 살인의 경우에만 사형을 선고하는 법이 제정된다.

그렇기에, 범인이 앤을 성폭행하고 살인했다면 당연히 그 죄를 물을 수 있으나 사형을 선고할 수는 없다.

반면, 그 과정에서 강도 행위가 포함돼 있었다면 법리적 해설에 따라 사형 선고가 가능해진다.

더군다나, 당시 17세의 소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여론이 집중된 사건이었다.

바로 이로 인해 범인은 시신 위로 당시 앤의 지갑에 소지 중이던 동전들을 보란 듯이 올려놨던 것일 거다.

만약 자신이 잡히더라도, 어디까지나 강도 행위는 저지르지 않았다는 어필로서 말이다.

따라서 육체노동에 익숙하고 완력에 자신 있는 범인상에 비추어 볼 때, 능숙한 납치와 시신 유기까지의 과정에서 차분하게 상황을 살피는 것을 고려하면 그리고 범죄 관련 보도에 관심을 지니고 있음을 미루어 이미 범죄 전력이 있던 자라고 보는 게 맞겠다.

17세의 앤은 오후 6시경 인적 드문 버스 정류소 부근에서 차량으로 납치돼 현장에서 약 11km 떨어진 곳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리고..

앤이 납치되던 날로부터 6일 후인 1958년 1월.

이날 저녁 10시 45분경, 인적 드문 버스 정류소에서 19세의 메리 크릭이 차량으로 납치돼 다음 날 현장에서 약 16km 떨어진 도랑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둔기에 의해 반복해서 머리를 가격당한 게 사인이었다.

앤이 납치되던 곳에서 약 40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사건이었으며, 메리 크릭은 앤과 마찬가지로 10대 소녀에 키가 큰 체구였으며 컬이 들어간 단발을 하고 있었다.

또, 앤과 마찬가지로 불과 몇 개월 전 영국으로 건너온 상황이었다.

해당 사건 역시 경찰의 집중적인 수사가 있었으나, 마찬가지로 끝내 미제로 남게 된다.

1958년 2월 14일.

위트햄프스테드에서 앤의 장례식이 거행됐다.

소녀를 추모하는 마음에서 이날 지역 상점들은 자발적으로 문을 닫는다.

2017년 12월 22일, 하트퍼드셔 경찰은 해당 미제 사건의 실마리를 위해 60년 만에 사건에 대한 정보를 일반에 공개한다.

허나, 수사 진척을 위한 유의미한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당시 앤이 실종됐던 마샬스 히스 레인의 현재 모습 (BBC)

참조

<BBC/Anne Noblett 'Deep Freeze' murder: New calls to police>
<BBC/'Deep Freeze' Anne Noblett murder leads dismissed>
<BBC/The 'Deep Freeze' murder: Who killed Anne Noblett?>
<St Albans and Harpenden Review/The ‘Deep Freeze’ Murder Ann Noblett, 17, of Marshalls Heath>
<Unsolved Murders/Ann Teresa Noblett>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