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커뮤에서 베스트 미스터리 사건으로 선정된 '카마르 다반 사건'
제목 그대로입니다.
영어권 최대 규모 커뮤니티인 레딧은 이제 국내 인터넷 유저들에게도 익숙할 겁니다. 이런 레딧의 '미스터리 서브레딧(서브레딧=국내 커뮤의 갤러리 개념)'에서 올타임 베스트로 선정된 게시물이 있습니다. 바로, 이번 글의 주제인 '카마르 다반 사건'이 그 주인공입니다.
'카마르 다반' 사건은 1993년 8월 러시아 시베리아의 남부의 카마르 다반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산맥에서 발생한 미스터리한 사건입니다.
미스터리 마니아시라면 어딘가 익숙한 내용이죠?
그렇습니다. 1959년 2월, 당시 소련의 우랄산맥에서 발생한 미스터리한 사건과 유사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디아틀로프 사건'으로 유명하며, 여러 미스터리 컨텐츠로 다뤄지는가 하면 영화로도 제작된 바가 있습니다.
이 '디아틀로프 사건'은 아무래도 러시아권 사건이다 보니, 국내에 자세하게 전파되지 않음은 물론이고 영어권 사이트들에서도 세밀한 내용 및 분석이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상한 옴니버스에서 2011년 10월경 국내 최초로 자세한 내용과 분석을 소개해 드린 바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그간 미스터리하고 초자연적인 사건으로만 알고 있던 많은 분께서 사건의 실체를 접하셨을 겁니다. (우랄 산맥 미스터리 실종 사건의 진실)
이번엔 '카마르 다반' 사건을 정확하고 자세한 내용과 분석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해당 사건은 애초에 국내에선 사건 개요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사건입니다. 영어권 사이트들에서도, '디아틀로프 사건'처럼 유명세를 타지 못해서인지 훨씬 더 정보와 자료가 부족한 사건입니다. 오로지 현지인 러시아에서만 국소적으로 상세한 정보 및 자료가 존재합니다. 사건 자체에 대한 미스터리함 외에도 아마 이러한 부분이 레딧 유저들을 위시한 영어권 유저들을 자극한 것이겠죠.
이상한 옴니버스에서는 2023년 5월경, 국내는 물론이고 영어권 사이트들에서도 제대로 전파되지 못한 해당 사건의 '자세한 내용과 분석'을 영상화 컨텐츠로 소개해 드렸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재정리해 텍스트 컨텐츠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야기 시작!
그녀가 사람들에게 발견된 건, 1993년 8월 9일이었다.
러시아 시베리아의 남부에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가 존재한다. 바이칼 호수가 그 주인공이다. 이날 이곳에서 래프팅을 즐기던 관광객 무리가 10대 후반의 소녀를 발견한다.
그녀는 단박에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무들 사이로 홀로 처연히 서 있던 그녀는, 입고 있는 옷 사방으로 말라 굳은 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관광객들과 마주한 그녀는 이내 히스테리 상태로 돌변하더니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저 위에서, 저기서 전부 죽었어요! 피를 뿜으며 다들 쓰러졌어요! 갑자기.. 모두 미쳐버리더니요!
그녀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근방의 바이칼산맥과 인접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산맥 카마르 다반이었다.
1993년 8월 2일이었다.
남자 세과 여자 넷, 총 7명으로 구성된 하이킹 그룹이 카마르 다반의 등반에 나선다.
위 이미지가 이들의 등반 당시 실제 모습이다.
앉아있는 남성이 알렉산더 크리신(23), 그리고 우측부터 타티아나 필리렌코(24), 류드밀라 코로비나(41), 티무르 바파노프(15), 빅토리아 잘레소바(16), 데니스 슈바츠킨(19), 발렌티노 우토첸코(17)이다.
그룹을 이끄는 건 코로비나(41)였다.
그녀는 베테랑 하이킹 강사로, 카리스마와 열정으로도 유명해 동료와 제자들로부터 마스터라는 칭호로 불리던 사람이었다. 나머지 여섯은 그런 그녀로부터 수개월 넘도록 훈련을 받은 제자들이었다.
그룹원 절반이 10대인 것을 보고 다소 의아해할 수도 있겠다.
카마르 다반은 해발이 2,396m이다. 이보다 해발이 약간 낮은 한라산과 지리산의 경우 초심자에게도 무리가 없는 난이도이다. 따라서 카마르 다반 등반은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높다.
또, 이들 그룹이 선택한 하이킹 경로는 네 번째 난이도일 정도로 쉬운 코스였다. 코로비나(41)의 경우, 첫 번째 난이도의 코스도 수월하게 소화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기상청에서 예보한 것과 같이 날씨는 맑고 쾌청했다.
그룹원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하이킹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정상에서 그 기쁨을 만끽하고는 3일 차인 8월 4일 하산을 시작한다.
8월 4일.
하산을 하는 그룹원에게 이변이 발생한다. 그룹원의 경로상에 느닷없이 폭풍우가 몰아친 것이다. 예정에 없던 악천후였다.
퍼붓는 비는 그룹원의 몸과 마음을 무겁게 짓눌러갔다. 리더인 코로비나(41)는,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악화되리란 판단하에 강행군을 선택한다.
허나, 계속된 악천후와 누적된 피로로 인해 그룹은 하릴없이 야영에 들어가야 했다. 여기서 코로비나(41)는, 4km 떨어진 숲이 아니라 사방이 뚫린 개활지를 선택한다.
이상했다.
퍼붓는 비바람으로부터의 은신과 젖은 몸을 데워줄 불을 포기한 것이었다. 마스터 레벨의 전문가가 취한 선택으론 여겨지지 않았다.
다음날인 8월 5일.
그룹은 아침 식사 후 정오가 되기 전부터 하산을 서두른다. 그렇게 경사면을 따라 내려간 지 불과 몇분, 그 누구도 상상치 못한 이변이 발생한다.
처음 시작은, 남자 중 가장 연장자였던 크리신(23)이었다.
신체적으로도 가장 건장했던 그가 일순 걸음을 멈추더니, 눈과 코 그리고 귀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어 입으로 거품이 새어 나오더니 곧 지면으로 고꾸라졌다. 너무도 황당하고 갑작스레 벌어진 일인지라 누구도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일 새가 없었다.
코로비나(41)가 가장 먼저 쓰러진 크리신에게 달려갔다. 그녀는 크리신네 가족과 친분이 있는 사이로, 크리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봐오면서 아들이나 다름없이 여기고 있었다.
그렇게 크리신의 의식을 되찾기 위해 애쓰던 코로비나는 갑자기 거친 음성으로 그룹원들을 향해 외쳤다.
"다들 멀리 떨어져! 서 있지 말고 빨리 내려가! 절대 멈추지 마!"
그룹원 쪽으로 향한 코로비나의 얼굴에선 크리신과 똑같은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간절한 외침도 소용이 없었다. 현장에서 얼마 못 간 자리에서 그룹원에게도 차례로 이변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코로비나(41) 다음으로 연장자였던 필리펜코(24)는, 갑자기 극심한 고통이 도래한 듯 두 손으로 목을 움켜쥐며 괴로워했다.
이어 고통을 견디다 못해 근처 바위로 달려가서는 머리를 사정없이 찧어댔다.
두 막내였던 잘레소바(16)와 바파노프(15)는, 잔뜩 겁에 질려 내달리나 얼마 못 가 고통스러운듯 목을 긁어대고 옷을 쥐어뜯더니 곧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공포심에 함락된 슈바츠킨(19)은, 바위 아래로 몸을 웅크리고 주저앉더니 역시나 경련과 함께 피를 흘리기 시작한다.
오로지, 우토첸코(17)만이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녀는 현장을 벗어나서도 코로비나(41)가 외쳤던 것처럼 멈추지 않고서 계속해서 내달렸다.
동료들의 피가 튄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몸에서 나온 것인지, 그렇게 몸 사방으로 묻은 정체 모를 피들이 말라 굳을 때까지도 도망을 멈추지 않았다.
우토첸코(17)는 그로부터 나흘간을 남은 음식과 침낭으로 버텨낸다.
그러다 마침내 강가를 발견하고서 정처 없이 강줄기를 따라간 끝에, 래프팅을 즐기던 관광객 무리에게 발견된 것이다.
한편, 신고를 접수한 러시아 경찰은 어째서인지 곧장 수색에 나서지 않는다.
경찰은 우토첸코가 발견된 지 2주 후가 돼서야 헬기를 동원한 수색에 돌입한다. 그리고 수색 이틀 후에야 시신을 수습한다. 이어지는 검시에선, 사망 원인을 다음처럼 발표한다.
저체온증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산맥에서 벌어진 미스터리한 참극.
도대체, 그날 카마르 다반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사건의 내막에선 또 어떤 모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해당 사건은 개요만 훑다 보면 자연스레 호러틱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십상이다.
특히나 베테랑 하이킹 강사를 리더로 한 그룹이 평탄한 코스지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마지막에 홀로 살아남은 10대 소녀가 기적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된다는 사실은, 분명 사람들의 뇌와 입을 자극하기에 충만하다.
때문에 사건 당시부터 유일한 생존자였던 우토첸코(17)에게 언론의 관심이 쏟아졌으며, 우토첸코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고향인 페트로파블롭스크를 떠난다.
그녀는 그 뒤로 25년간 사건에 대한 말을 결코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신문과 TV 그리고 인터넷상에서 해당 사건은 점차 몸집을 키워나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저마다의 추리를 통해 사건의 내막을 들춰보고자 시도한다.
이렇듯 사건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면서, 카마르 다반 사건은 1959년 우랄산맥에서 10명 중 9명이 사망했던 디아틀로프 사건과 함께 대표적인 산에서 벌어진 미스터리 사건 반열에 오른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산맥 및 호수 근방에서 벌어진 미스터리한 사건', '러시아의 생화학무기 실험 장소였다', '초저주파 노출에 의한 사망이다', '미지의 고대 바이러스와 접촉한 것이다', '초자연현상의 발현', '외계인의 개입과 이를 은폐하려는 러시아 정부'와 같이 자극적인 소재로서 말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해당 사건의 진실은 디아틀로프 사건과 그 궤를 함께한다.
2018년이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가십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에서 우토첸코의 행방을 추적한 끝에 그녀를 찾아낸다.
우토첸코는 가정을 꾸리고서 아이도 슬하에 두고 있었는데, TV에서 재차 카마르 다반 사건을 다루면서 남편이 그녀가 사건의 생존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 그녀의 집에 찾아간 기자가 끈덕지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결국 그녀는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던 사건의 진상을 다시금 털어놓기에 이른다.
다음은 그녀가 1993년 사건 당시에 했던 진술 내용과, 2018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나눈 내용을 종합한 것이다.
"저희 그룹원 모두 카자흐스탄 페트로파블롭스크 출신이었어요.
경로 자체가 쉬운 난이도였고 다른 그룹들과 여러 교차점이 맞닿는 곳인지라 무전기도 준비하지 않았어요.
매번 모닥불을 피워 따뜻한 식사를 했습니다. 하루에 4번의 식사를 했고 간식도 챙겨 먹으면서, 2,400칼로리에 맞춰 섭취했습니다.
정상에서부터는 정말 너무도 추웠어요.
코로비나(41) 선생님은 사전에 기상청으로부터 날씨가 좋을 것이라는 확답을 받았습니다. 폭풍우나 산사태가 찾아오리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죠.
8월 5일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자고 있던 우리를 선생님이 깨웠어요. 당장 짐을 싸고 협곡으로 가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바람이 너무나 강했어요. 우리는 걷는 게 아니라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죠. 그러다 갑자기, 알렉산더 크리신(23)이 쓰러지더니 귀에서 피가 나고 입에선 거품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이 크리신을 감싸 안고는, 남자 중에 다음으로 연장자였던 데니스 슈바츠킨(19)에게 명령했어요. 계속해서 갈 수 있는 만큼 내려가되 숲 쪽으로는 절대 향하지 말라고요.
선생님도 곧 움직임이 없어지면서 이내 공포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구르다시피 내려가던 그룹원 모두 귀와 입, 코에서 피를 흘리고 입에선 거품을 내며 차례로 쓰러졌어요.
슈바츠킨이 저를 구했어요. 저를 발로 걷어차면서 기어서라도 내려가라고 외쳤죠.
아래로 내려가 적당한 바위를 찾은 저는, 침낭에 들어가 그날 밤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숲의 나무들을 쓰러뜨리던 돌풍은 다음 날 아침에서야 멎었습니다.
저는 그룹원이 쓰러졌던 곳을 찾아가 죽어있는 그들의 눈을 모두 감겨줬습니다.
이후 그들의 짐에서 지도와 나침반 그리고 필요한 것들을 챙긴 뒤에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4일 동안 길을 헤매고 다닌 끝에 강줄기를 따라 바이칼 호수에 도착했어요. 그리고 제가 생각해도 이상하지만, 그 순간 더러운 모습으로 죽을 순 없다는 생각에 그곳에서 목욕하고 옷을 세탁하고 있었죠. 그런 곳에서 홀로 그러고 있었으니 저를 발견한 관광객들이 굉장히 놀라 했죠.
제 생각엔, 저희 그룹원의 사망 원인은 고산병에 의한 폐부종인 것 같아요. 그러면 사망 직전 증상이 모두 설명돼죠.
저는 시골에서 자라면서 늘상 농장일 중 가장 어려운 일을 해왔어요. 어려서부터 가축을 방목하고 벌목장에서 장작을 구해왔으며 크로스컨트리 스키도 탈줄 알았죠. 항상 육체적으로 강건했던 게 제가 살아남은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비나 선생님에게는 그룹원의 죽음에 결코 책임이 없습니다. 우리를 구하려고 했으나 손쓸 틈이 없었던 거죠.
저는 구조된 후로는 사건 당시의 일을 부모님에게야 겨우 전할 수 있었어요. 그 직후 몸에 마비가 와 1달 넘게 병원 신세를 져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완치될 때까지 오랫동안 먹는 걸 거부했죠.
이게 그날 카마르 다반에서 있었던 사건의 전말입니다."
종합하자면 이렇다.
코로비나그룹은 카마르 다반 등반을 위해 사전에 6개월 동안의 훈련을 이수했다. 그들이 선택한 경로는 초급자들도 훈련만 이수한다면 무리가 없을 정도의 난이도였으며, 기상청을 통해 날씨를 확인한 뒤 하이킹에 알맞는 날짜를 선택했다.
헌데 예정에 없던 날씨가 그룹원을 덮쳤다.
당시 카마르 다반에 몰아친 폭풍우와 돌풍 그리고 산사태는.. 정말이지 기이하다는 표현으로밖에 설명될 수 없는 그런 불운한 악천후였다.
게다가 그 무렵 카마르 다반 등반에 나섰던 다른 그룹들은, 2명이 조난됐다 구조된 것 외에 큰 피해가 없었다.
오로지 그 시간대에 코로비나 그룹이 등반하던 경로에서 악천후로 인한 최악의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마치, 불운과 불행의 퍼즐 조각들이 서로 짝을 이루듯 손을 맞잡으면서 말이다.
그렇게 8월 5일 아침, 악천후가 절정에 이르면서 그룹원 모두 심각한 우발성 저체온증에 노출된다.
일반적으로, 해발 2,000m 정도의 산악지에서 이렇듯 우발성 저체온증으로 인한 급성 사망은 굉장히 드문 케이스이다. 그만큼 사건 당시 카마르 다반을 덮친 악천후가 악질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토첸코가 진술한 그룹원의 사망 당시 증상은, 전형적인 산악지에서의 저체온증으로 말미암은 증상이다.
한편 해당 사건을 두고서 리더였던 코로비나의 대응에 의문이 존재한다는 전문가들도 있다.
폭풍우로 인해 몸과 장비가 모두 흠뻑 젖었는데, 어째서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근방의 숲으로 가지 않고서 사방이 뚫려있는 허허벌판의 개활지에서 야영을 했느냐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저체온증의 악화를 야기했다는 주장인데, 이는 어디까지나 사건에 대한 정보를 그저 겉핧기식으로만 접했기 때문이다.
사건 당시 우천보다 위험했던 요소는 바로 돌풍이었다.
이러한 돌풍은 숲속의 나무들을 하나둘 쓰러뜨릴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때문에 코로비나는 하산 내내 돌풍에 의한 직간접적 피해 방지를 최우선시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2차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장소로 고저 차의 이점이 있는 능선 주변을 야영지로 선택한 것이다.
허나 8월 5일 이른 아침, 기상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악화하면서 코로비나는 급히 경로를 이탈해 가장 가까운 협곡으로 향하고자 한다.
추위로 인한 피해 그리고 돌풍을 통한 2차 피해에서 벗어나는 게 당시 서바이벌 상황에서 가장 급선무였기에, 코로비나는 쓰러져 가는 와중에도 나머지 그룹원에게 절대 숲으로 향하지 말고 협곡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라고 외쳤다.
그러한 조언 덕분에 우토첸코는 협곡의 바위로부터 추위와 돌풍으로 인한 재난에서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우토첸코가 구조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악천후가 이어지면서 헬기 수색 또한 지연되고 말았다.
이렇듯 카마르 다반 사건은, 때때로 우리를 급습하고는 하는 대자연의 격정적인 재난이 예의 그 흉포한 어금니를 드러낸 사건이라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이처럼 예상 못 한 사건일수록 대중의 호기심을 자아낸다는 법칙으로 인해, 그러한 대중의 호기심을 촉발하고자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점차 기괴하게 발전해 갔다.
마치, 디아틀로프 사건처럼 말이다.
한편, 카마르 다반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우토첸코는 2018년 기자와의 인터뷰 당시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무것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참조
<infpol / В Бурятии существует свой «перевал Дятлова»> Владимир Жапов, Татьяна Родионова, Леонид Актинов
<Komsomolskaya Pravda / Бурятский «перевал Дятлова»: Шесть туристов не прошли школу выживания> Наталья ВАРСЕГОВА
<Komsomolskaya Pravda / Что произошло на бурятском «перевале Дятлова»> Наталья ВАРСЕГОВ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