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의 시신을 갖고 튀어라

(Adam Cuerden)

1865년 4월 14일 밤 10시 15분경.

포드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던 에이브러햄 링컨이 무방비 상태에서 총격을 당한다.

모두가 아는, 링컨 대통령 암살 사건이었다.

헌데..

이 암살 사건 당일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르는 또 다른 역사적 사실이 존재한다.

남북전쟁 직후, 미국은 위조지폐로 인해 골머리를 앓게 된다.

1862년,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이었던 링컨은 국가 통화 제도를 확립하는 법안에 서명한다.

암살 당일 아침, 링컨은 위조지폐 단속을 위한 법 집행기관인 미국 비밀경호국 USSS(United States Secret Service) 창설 법안에 서명한다.

1865년 7월 6일, 비밀경호국이 워싱턴 D.C.에 설립되며 위조지폐 억제 임무가 시작된다.

1865년경 촬영된 비밀경호국 요원들의 사진

그리고..

1876년 10월, 미국에서 제일가는 위조지폐판 제작자인 벤저민 보이드가 마침내 체포되면서 일리노이주 졸리엣 교도소에 수감된다.

한편..

이 위조지폐 조직의 두목이었던 제임스 키넬리는 기상천외한 계획을 고안한다.

바로, 다음과 같은.

"야, 이거 링컨 시신을 훔치면 다 해결되는 거 아니냐?"

아일랜드계 미국인 범죄 조직의 두목이었던 키넬리. 그는 한때 세인트루이스에서 마구간을 하던 자였으나 천부적인 사기꾼 기질을 토대로 당시 범죄 계에서 막 유행 중(?)이었던 위조지폐 세계에 뛰어든다.

허나, 그렇게 위조된 50달러 지폐를 사용하다 발각되며 일리노이 주립 교도소에서 5년 형을 복역한 후 마음을 고쳐먹는다.

"그래! 내 손을 직접 쓰지 말고 다른 놈들을 이용하자!"

그리하여,키넬리는 위조지폐 제작자들과 그러한 위조지폐를 밀매 및 유통하는 범죄 조직을 상호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도매업자가 된다.

당시 미국 내의 위조지폐 범죄는 주요 가내수공업 산업과도 같았다. 1865년 창설된 비밀경호국이 실태 조사에 나섰을 때, 유통되는 지폐의 절반 가까이가 가짜였을 정도.

한편..

그런 시대상에서 일로노이주를 거점으로 빠르게 세력을 키워간 끝에, 키넬리는 당대 최고의 제작자&도매업자&유통업자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갱단의 수장이 돼 있었다.

특히, 키넬리의 밑에서 일하던 위조지폐판 제작자인 보이드는 아무런 뒤탈 없이 30만 장 넘게 유통시키는 위조 업적을 달성하며 미국 재무부로부터 경탄을 받을 정도였다.

허나, 비밀경호국의 집중적이고도 집요한 추적 끝에 1875년 보이드가 체포되면서 징역 10년 형과 함께 1876년 10월경 일리노이주 졸리엣 교도소에 수감된다.

벤저민 보이드

그리고..

최고의 조각가를 잃게 된 키넬리의 갱단원들은 일순 실업자가 되면서 와해될 처지에 놓이게 된다.

깊은 고심에 빠진 키넬리.

그런 키넬리가 상황을 단박에 타개할 역전 홈런의 방책을 고안한다.

"링컨의 시신을 훔치는 거야! 그리고 시신의 반환을 조건으로 주지사에게 사면 석방이랑 20만 달러를 요구하는 거지!"

1865년 4월 24일 촬영된 링컨의 마지막 사진 (Springfield History Library & Archives)

그렇게..

보이드를 감옥에서 빼냄과 동시에 20만 달러라는 거액의(지금 가치로 약 500만 달러 이상) 돈을 요구하고자 이른바 '링컨 시신 탈취' 작전에 돌입하는 키넬리.

황당무계한 'I have a plan'으로만 보이겠지만, 사실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 볼 때 충분히 납득이 가는(?) 계획이었다.

당시 미국 전역의 시골 지역에서는 갓 매장된 시신을 파내어 의과 대학에 몰래 판매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고, 이로 인해 장례식 직후 유족들이 한동안 무덤가 경비를 서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또, 일리노이 스프링필드의 시골 지역 오크 리지 묘지에 안치된 링컨의 시신은 보안 정도가 무척이나 허술했다. 정식 관리인 직책이 있었으나 24시간 상주하는 파수꾼이 없었으며 무덤 출입문의 자물쇠만이 유일한 보안책이었을 정도.

그리하여..

키넬리는 마침내 1876년 11월 7일을 '최종' 결행일로 잡고서 멤버를 '재구성'하며 만반의 준비에 들어선다. (11월 7일은 대통령 선거일이었기에 모두의 관심사가 투표 집계에 쏠려있으므로 '캔자스 시티 셔플'을 하기에 적합하다는 이유에서)

어찌하여 '최종'과 '재구성'이냐면..

그 이전 있었던 첫 시도가 허무하게도 무위로 돌아갔기 때문.

키넬리는 이미 1876년 여름에 '링컨 시신 탈취' 작전을 시도했었다.

그는 일리노이주 로건 카운티 내 협잡꾼들의 아지트와도 같은 악명 높은 술집에서 갱단원들을 집합시킨다. 이곳은 그의 중개상 역할을 하던 벤 셰리든이 운영하는 곳이기도 했다.

한편, 키넬리는 셰리든과 갱단원 넷을 묘지가 있는 스프링필드 지역으로 보내 시내에 술집을 차리도록 한다. 그렇게 키넬리의 자금으로 술집이 차려지고, 셰리든이 바텐더이자 주인으로 그리고 나머지 갱단원 넷은 이 술집에 상주하며 현지 상황을 살피는 동시에 작전에 차질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꾀하고 있었다.

그렇게 결행 예정일인 7월 3일을 불과 2주 남긴 어느 날 밤.

두뇌 역할을 맡은 영악한 성격의 소유자인 셰리든이 예상 밖의 일을 저지르고 만다. 술에 잔뜩 취해서는 매음굴을 돌아다니다 어느 여성에게 자신들의 계획을 자랑하듯 과시하고 만 것.

그렇게 셰리든은 여성에게 링컨 시신의 몸값으로 받을 거액의 돈을 여성의 가계에다 흥청망청 쓰겠다고 허풍을 늘어놓았고, 여성은 날이 밝자마자 보안관에게 이같은 사실을 고했다.

하여, 키넬리는 셰리든과 갱단원 넷을 그대로 전력에서 제외함과 동시에 계획을 잠정 중단시킨다.

물론, 키넬리가 '링컨 시신 탈취' 작전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그는 막바로 시카고의 이른바 '위조지폐범 전용 멤버십 룸'이 있는 술집에 살다시피 하며 새로운 계획을 다듬어가고 있었다.

링컨의 흉상이 기념물로 전시 중인 이 술집의 바텐더이자 주인은 테런스 멀렌이었다. 그리고, 이곳의 단골 손님 중 하나였던 잭 휴즈가 막 보석으로 풀려난 상태이기도 했다.

휴즈는 뛰어난 위조지폐 유통상이었다.

그럴듯한 수염과 점잖고 말쑥한 옷매무새를 하고선 이 가게 저 가게를 돌아다니며 물건값으로 위조지폐를 내미는 게 일과였고, 상점 주인들은 그런 그에게서 어떠한 의구심도 품지 않았다.

좌측이 잭 휴즈, 우측이 테런스 멀렌 (Abraham Lincoln Presidential Library and Museum)

그러던 1876년 9월, 뜻하지 않게 비밀경호국에 의해 체포되면서 기소되는 처지가 된다. 여기서 불과 5장의 위조지폐 유통 혐의로만 기소되면서, 보석금을 내고는 잠시 자유를 누리고 있던 찰나였다.

그렇게..

멀렌과 휴즈가 작전의 새로운 멤버로 구성되면서 셋은 가을 내내 구체적인 계획안 설립에 들어선다.

이들의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결행일은 대통령 선거일인 11월 7일로. 스프링필드 오크 리지 묘지에 침입해 링컨의 시신을 훔쳐 마차에 싣고서 300km 떨어진 미시간호 남쪽 끝의 모래 언덕까지 운반한다. 중간지점마다 말을 준비해 교체해 가며 빠르게 이동한다.

도착지에 도달하면 영구적으로 변화가 없을 지형지물을 기준으로 정확한 삼각측량을 통한 매장지다 시신을 이장한다. 시시각각 끊임없이 변해가는 모래 언덕은 정부가 요구안을 받아들일 때까지의 은폐에 충분할 것.

링컨의 본래 무덤 안에다가는 <The Catholic Union and Times> 1면의 지면 조각을 넣어둔다.

이 신문은 시카고 지역에선 가판대 판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희귀하다. 따라서 경찰은 해당 조각을 주요 증거로 보존할 것이고, 나머지 조각을 술집의 링컨 흉상 장식물 내부에 숨겨 보관한다. 이후 요구안을 발표할 때 이 나머지 조각을 제시하며 진짜 시신 도난범임을 입증한다.

요구안은, 보이드의 석방 및 현금 20만 달러."

결행일을 약 1개월 앞두고서..

키넬리는 고심했다.

자신과 멀렌 그리고 휴즈에게 있어 도굴은 비전공 과목이었다. 분명, 전문가 영입이 절실했다.

그러던 와중 키넬리는 멀렌의 술집에 자주 드날니던 루이스 스웨글스에게 주목한다. 스웨이스가 전직 선원 출신인 범죄자로 도굴꾼들과의 커넥션이 좋았으며, 당대의 유명 강도들과도 교류가 있고 서신을 주고받는 인물이었기에.

그리하여 키넬리는 스웨글스를 꼬득이며 작전 결행 멤버로 스카웃하고, 스웨글스는 도주용 마차를 운전할 마부로 빌리 브라운이라는 인물을 섭외한다.

그렇게 모든 계획이 수립되고..

마침내 11월 6일 선거일 전야..

키넬리들이 야간열차를 타고서 다음 날(결행일) 오전 6시경 스프링필드에 도착한다.

이후 각자 짧은 숙면과 휴식을 취한 후, 오후부터는 휴즈와 스웨글스의 현장 답사에 이어 키넬리들의 마지막 세부 사항 검토 과정이 진행됐다. 멀렌의 작업 가방에는 폭파용 화약통, 도화선, 망치, 강철 드릴과 톱, 줄과 같은 작업 도구들이 들어 있었다.

오후 6시경, 스웨글스는 브라운이 묘지 주변 접선 지역에서 도주용 마차를 잘 대기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마침내 해가 지고서..

키넬리, 멀렌, 휴즈, 스웨글스는 링컨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기념 건조물 묘지 앞에 당도한다.

(Library of Congress)

이 묘지는 광활한 규모의 공원 한가운데로 우뚝 솟아들 있는 참나무 밀집 지대에 위치해 있으며, 30m가 넘는 화강암 오벨리스크, 5m 높이의 테라스 난간과 지붕으로 구성된 지하 묘지였다.

장대한 기념관으로 들어서선 매장실 문 앞에 선 키넬리 일당.

휴즈가 강철 톱으로 호기롭게 자물쇠를 공략하나..

미숙한 솜씨와 경험으로 인해 거의 처음부터 톱을 부러뜨리고 만다. 하여, 한참을 줄로 갈아대야만 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마침내 매장실로 들어가 지하 묘지에 안치된 링컨의 관 앞에서 일당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관을 둘러싼 대리석 덮개의 중량감이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

그래도 여차저차 덮개를 뜯어냈으나 안쪽은 또 이에 비할 게 아니었다.

마호가니 재질의 관은 여러 군데가 구리 못으로 꼼꼼하게 고정돼 있었다. 하나씩 못을 제거하고서 관을 들어 올리려 했으나 마호가니 재질의 관은 200kg이 훌쩍 넘는 무게였다.

어찌저찌 관을 수십cm 정도 옮기는 데에 성공한 키넬리는, 스웨글스에게 도주용 마차에서 대기 중인 브라운을 묘지 근처로 불러들이라 지시한다.

헌데, 문제는 또 있었다.

이번 문제는..

이 스웨글스가..

실은, 비밀경호국의 전문 프락치였다는 것이다.

시간을 잠시 돌려서..

키넬리가 멀렌과 휴즈를 끌어들이고는 결행일을 1개월여 앞두고서 도굴 관련 전문가 영입을 타진하던 무렵..

비밀경호국 인디애나폴리스 지부 담당 요원은 한 범죄자로부터 제보를 받는다.

이 범죄자는 해당 요원이 과거 호의를 베풀며 부탁을 들어줬던 은혜를 잊지 않고선, 키넬리가 황당무개한 범죄 계획을 추진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해 그대로 전달한 것이다.

그렇게 제보를 전달받은 요원은 즉시 시카고 지부장인 패트릭 티렐에게 보고했고, 이에 티렐은 과거 범죄자 출신이자 비밀경호국 측의 전문 정보원(건 바이 건 보수를 받는)으로 탈바꿈한 스웨글스를 호출하기에 이른다.

한편..

임무를 받은 스웨글스는 키넬리들의 모임 장소였던 멀렌의 술집을 드나들며 본인의 커리어를 티 나지 않게 뽐내면서 서서히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렇게 마침내 키넬리로부터 스카웃 된 스웨글스는 도주용 마차 임무에 또 다른 위장 잠입 역의 브라운을 섭외한다.

물론, 키넬리들의 계획안은 스웨글스에 의해 매일마다 시카고 지부장인 티렐 앞으로 보고가 이뤄졌다. 그리고 티렐은, 키넬리 일당이 진지하게 범죄를 생각하고 있다며 상부에 사태의 심각성을 호소한다.

그리하여..

티렐은 전 비밀경호국장 엘머 워시번과 함께 링컨의 장남인 로버트 링컨과 해당 범죄 모의 대비책에 대해 논의하기에 이른다.

좌측이 패트릭 티렐, 우측이 초대 비밀경호국장 엘머 워시번

결과적으로..

티렐과 전 비밀경호국장은 당시 최고의 탐정사무소이자 보안업체였던, 미국 군대보다도 그 위용이 대단했던 핑커튼 탐정 사무소에 의뢰하기로 결심한다.

이에 탐정 사무소의 수장인 앨런 핑커튼에게 전화해 믿음직한 첩보 요원 둘을 고용한다. 또, 일리노이주 법적 권활 기관의 탐정 1명과 비밀경호국 출신의 조력자 1명이 추가로 고용됐다.

1850년 일리노이 시카고 워싱턴 거리에 첫 사무실 오픈 이래 명실상부 최고의 탐정 사무소로 발돋움한 핑커튼 탐정 사무소. 1861년에 링컨 대통령 암살 모의를 사전에 파악하고서 기발한 방식으로 보호를 한 바가 있음 (Pinkerton National Detective Agency)

그렇게..

1876년 11월 6일 밤.

키넬리 일당과 티렐 팀원이 각각 스프링필드로 향하는 야간열차에 몸을 싣는다.

1876년 11월 7일 해질녘.

각기 다른 야망을 품고서 두 무리가 링컨의 묘지로 향한다.

먼저 도착한 쪽은 티렐 팀원이었다. 팀원은 각기 찢어져 묘지 관리인의 안내에 따라 묘실과 묘실 사이 잠복하기에 적합한 내부 벽 길과 기념관 구석으로 위치한다.

그렇게 암흑 공간에서 신발까지 벗은 채 키넬리 일당을 기다리던 티렐 팀원. 2시간 정도가 흐르고서 마침내 일당 무리의 발자욱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도주용 마차에서 대기 중인 브라운을 묘지 근처로 불러들이라 지시받은 스웨글스가, 실은 있지도 않은 도주용 마차 쪽으로 가는 척하고선 반대로 뒤돌아와 기념관의 티렐에게로 향한다.

"지금이에요! 와서 잡으세요!"

숨을 헐떡이며 스웨글스가 말을 내뱉는 동시에, 티렐 팀원은 각자 총기를 꼬나들고선 맨발로 매장실을 향해 달음질하기 시작했다.

헌데..

그 와중 핑커튼 측 요원 하나의 구식 캡 앤 볼 리볼버에서 의도치 않게 탄약이 발사되고 만다.

발사음이 장막을 가로지르며 참으로 요란히도 울음을 터뜨렸고, 티렐은 이렇게 된 거 이판사판이다라는 심정으로 매장실로 돌진해선 권총을 들이밀며 큰 외침으로 항복을 권고했다.

허나..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키넬리 일당이 도주용 마차가 있다고 믿는 곳을 향해 도주했다고 여긴 티렐 팀원은, 신발을 신을 여유도 없이 각자 위치에서 맨발로 묘지 기념물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위로 살짝씩 내려오는 달빛 사이로 실루엣들이 어른거리는 가운데 사내들이 저마다 손에 쥔 총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모퉁이 너머의 실루엣을 향해 총질을 하던 사내들은, 서로 팀원을 부르는 목소리 끝에 자신들이 같은 편끼리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운 좋게도..

키넬리, 멀렌, 휴즈는 스웨글스를 기다리지 않고서 미리 매장실 바깥으로 나와 묘지 기념물 바깥의 떡갈나무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던 도중 기념관 모퉁이를 돌아 매장실로 향하려던 티렐 팀원을 목격했던 것.

그렇게 키넬리 일당은 생각보다 빠르게 이미 도주 중이었으며 농지 길을 가로질러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렇게 일당은 새벽 간에 어둠 속을 걸으며 10km 넘게 도주했다.

키넬리 일당이 현장에 버리고 간 범행 도구들 (Abraham Lincoln Presidential Library and Museum)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링컨의 시신을 도난당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사건 직후 관리인이 파손된 부분을 시멘트로 막아야 했음)

그리고 티렐 팀원 간의 총격전에서 사상자가 없었다는 것도.

티렐은 비밀경호국에 올린 보고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제가 경험한 것 중 가장 불행한 밤이었습니다. 그래도 신께서 우리가 옳은 일을 하는 동안 보호해 주셨습니다."

한편..

해당 사건이 전국의 신문을 통해 보도되면서 여론은 급격히 악화된다. 비난과 모욕은 물론이요, 작전에 함께 참여했었던 전직 비밀경호국장이 실은 시카고 경찰서장 자리를 탐내어 홍보 효과를 위한 자작극을 펼친 것이라거나, 핑커튼의 요원이 키넬리 일당과 내통하고서 고의로 경고 발사를 한 것이라는 음모론들이 무분별하게 퍼져나갔다.

그나마 하나 위안거리는..

스웨글스가 자신의 본 정체를 키넬리 일당에게 들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키넬리 일당은 스웨글스와 도주용 마차 담당 브라운이 자신들처럼 도주했겠거니 여겼다.

그리고..

멀렌의 술집에 스웨글스가 나타나 죽다 살아났다며 너스레를 떨자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스웨글스는 멀렌의 술집을 드나들며 나머지 일당이 찾아오길 기다린 끝에 마침내 휴즈가 술집을 방문했고..

사건 10일 후인 1876년 11월 17일, 티렐 팀원과 시카고 경찰은 멀렌과 휴즈의 손에 수갑을 채우는 데 성공한다.

당시 일리노이주에는 무덤 도굴죄를 다루는 법이 명확하게 제정되지 않은 상태였기에, 멀렌과 휴즈는 '링컨 국립 기념물 협회의 개인 물품 및 재산을 불법적으로 훔치고자 중범죄를 시도했다'라는 혐의로 기소된다.

이어 반년 후 재판에서 멀렌과 휴즈는 모든 게 비밀경호국의 음모라며 무죄를 주장하나, 애초 여론도 둘의 편이 아니었으며 또 위증을 꾸미려던 게 발각되면서 재판 이틀 만에 배심원단으로부터 유죄 평결을 받는다.

그리하여..

둘은 일리노이주의 도굴꾼 최대 유죄 판결인 징역 1년형을 선고받는다.

물론, 괘씸죄로 인해 둘은 1년 중 딱 하루만 독방에 수감되고서 나머지 형기는 강제 노동형에 처해진다.

한편..

끈질기게 법의 망을 피해 가던 키넬리는..

1888년 4월 21일, 뉴멕시코주에서 토지 사기 사건에 연루되며 체포된다.

그렇게 뉴멕시코 주립 교도소에서 3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후에는..

위조지폐에 직접 손을 대지는 않으리란 자신의 규칙을 깨고서 1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사용하다 세인트루이스에서 체포되며, 일리노이 주립 교도소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기에 이른다.

마침내, 자신이 빼내려던 보이드와 같은 교도소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링컨 무덤 기념관의 관리인이었던 존 파워. 사건 직후 커다란 충격을 받은 그는, 링컨의 유해를 보호하는 데에 남은 여생을 바친다 (Abraham Lincoln Presidential Library and Museum)

해당 사건이 있고서 3년 후.

일리노이주 입법부는 무덤 도굴에 대한 법령을 개정하면서 최대 형량을 징역 10년으로 제정한다.

링컨 무덤의 관리인이었던 존 파워는 믿을 수 있는 친우들과 함께 링컨의 시신이 안치된 관을 비밀리에 묘지 시설 내 지하실로 이장한다.

그렇게 파워들은 스스로를 링컨 명예 근위대로 자칭하며 수년간 링컨 시신 매장 위치의 비밀을 수호했고, 1882년 링컨의 아내 메리가 사망하자 그녀의 관을 남편 곁으로 이장한다. (이후 그녀를 비롯한 링컨의 아들들의 관이 따로 추가 지하 매장실로 이장 및 매장)

아내와 아들들의 관이 안치된 전경으로 자리한 링컨의 흰색 대리석 석관 (Abraham Lincoln Presidential Library and Museum)

그리고 세월이 흘러..

몇 차례의 시설 내 이장과 보수를 거친 끝에..

100년도 훌쩍 넘은 지금, 링컨은 수 톤의 콘크리트 아래에서 누구의 방해도 없이 길고 긴 안식을 취하고 있다.

오늘날 일리노이 역사 보존국의 관리 감독하에 안치 중인 링컨의 관 (WUIS)

참조

<American Heritage/The Plot To Steal Lincoln’s Body> Peggy Robertson
<The History Reader/The Plot to Kidnap a Dead President> Philip Jett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