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있었던 전대미문의 납치극

* 본 글은 단순히 범죄사건과 관련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오락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사건의 악랄한 범행성을 알림과 동시에 범죄의 연보年譜를 통한 교육에 그 목적을 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2012년 7월 24일 저녁 8시가 조금 지난 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군의 북동쪽 교외에 위치한 화이트 마쉬.

이곳 교차로 인근 작은 갓길에 고급 세단인 1998년형 은색 링컨 타운카 하나가 정차 중인 것을 보고서 마침 주변을 거닐던 한 부부가 관심을 쏟게 된다.

첫 번째 이유, 해당 갓길이 부부가 소유한 부지였어서.

그리고 두 번째 이유, 뒷좌석 좌측 창문이 흰색 셔츠 내지 천 같은 것으로 가려져 있었으며 한 노파가 무언가를 얼굴에 뒤집어쓴 채였던 것.

부부는 차량 근처로 서 있던 남자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30도에 육박하는 날씨에서도 장갑을 끼고 있던 남자는 짧고 명료하게 대답했다.

"제 어머니입니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어서요."

대답과 동시에 남자는 운전석으로 돌아가 곧장 시동을 걸고는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일련의 과정을 살펴본 부부는 수상함이 도를 넘었음을 직감하고는 차량 번호판을 적어 두고서, 바로 911로 전화를 걸어 신고하기에 이른다.

한편..

부부의 신고를 받고서 볼티모어 지역 번호판인 'SMR-308'의 차주를 확인한 경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차주가 바로, 볼티모어의 근방의 대표적인 명사이자 역사적으로도 지역의 손꼽히던 유명 인사 가문의 어머니 74세 바이올렛 립켄이었기 때문이다.

볼티모어에서 북동쪽으로 약 50km 떨어진 인구수 15,000 정도의 작은 도시 애버딘에서 자란 바이올렛은, 고등학교 시절 연인이었던 캘 립켄과 결혼해 슬하에 3남 1녀를 둔다.

학생 시절부터 야구 선수를 목표로 삼았던 남편 캘은 7년 동안 프로 생활을 이어가던 중 메이저리그에서 이렇다 할 커리어를 쌓지 못한 채 부상에 시달리며 은퇴, 선수 생활 은퇴 뒤로는 애버딘 지역 구단인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3루&불펜 코치에서부터 감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보직을 역임한다.

립켄 가문의 명성을 드높였던 것은 아들 쪽이었다.

첫째와 둘째가 아버지가 감독이던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지명되며 메이저리거 생활을 보냈으며, 특히 첫째인 캘 주니어는 선수 생활 20년 전부를 해당 구단에서만 활약하며 전무후무한 2,632경기 연속 출장 기록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야구계 불세출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다.

좌측에서부터 바이올렛, 캘 주니어, 캘 시니어 (The Baltimore Sun)

한편..

남편인 캘 시니어는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 아내인 바이올렛과 여전히 고향인 애버딘의 옛 주택에서 기거하며 애향심을 과시했고, 이에 볼티모어 변두리에 위치한 조용한 소촌 애버딘의 주민들은 립켄 가문을 지역 명물이자 특산물로 자랑스러워했다.

특히, 1999년 남편인 캘 시니어가 폐암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고서 60대 초반에 과부가 된 바이올렛은 여전히 홀로 집을 지키며 가정의 손길에서 벗어난 아동 및 청소년을 위한 프로젝트들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면서 지역의 존경받는 명사가 됐다.

그리고..

그런 지역의 명사가 미국 메릴랜드주 범죄 역사상 가장 기이하고 미스터리한 납치 사건의 당사자가 되리라곤 누구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납치범 본인 또한.

(The Baltimore Sun)

바이올렛의 아침 루틴.

현관 앞의 신문을 챙기고서 차량을 몰고 근처 맥도날드에 들르기. 종종 아들 캘 주니어가 소유한 3개의 마이너리그팀 중 하나인 애버딘 아이언버즈(애버딘 지역이 연고인)의 홈구장 립켄 스타디움(립켄 가문의 이름을 딴)을 찾아 경기를 관람하기.

2012년 7월 24일 화요일 아침 역시 그러했다.

그러했을 것이다.

40년 넘게 살아온 홈 스위트홈에서 아침을 맞은 바이올렛.

7시가 조금 넘어 차고에 들어서자 그녀의 1998년형 링컨 타운카 앞으로 웬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짙은 색 스키마스크를 덮어쓴 채 장갑 낀 손으로 쥐어진 권총을 들이밀며 그녀를 겁박하기 시작했다.

손목 발목을 밧줄로 묶은 뒤 눈 위로 덕트 테이프로 둘러 감싸려던 그때..

바이올렛은 폐소공포증이 있다며 남자에게 사정했고, 이에 남자는 순순히 타협하고는 그녀의 안경 위로 테이프를 두르고선 뒷좌석에 타도록 지시했다.

바이올렛의 시야가 불완전하게 차단됐다는 것을 알고선 얼굴 위로 마스크와 같은 것을 덮어씌운 남자는, 운전석 쪽 뒷좌석 창문을 흰 셔츠 또는 천 같은 것으로 가린 채 차량을 몰기 시작한다.

24시간 동안 이어진 미스터리하고도 기이한 납치극 드라이브의 서막이었다.

남자는 바이올렛을 뒷좌석에 태운 채 온종일 볼티모어 근방 수십km 반경을 돌아다녔다.

남자는 바이올렛에게 일체의 설명도 없이, 그저 다음과 같은 말을 할 뿐이었다.

"당신을 해치지 않을 거요. 다시 데려다 줄 겁니다. 단지 돈이랑 차가 필요할 뿐이니까."

그리고..

남자는 이리저리 운전하며 월마트, 편의점, 패스트푸드점 등을 들려 바이올렛의 신용카드를 태연하게 사용했으며 음식을 함께 나눠 먹기도 했다. 심지어, 담배를 물려주고는 불까지 붙여줬다고.

한편..

이러한 기괴한 납치극은 이날 저녁 8시가 지나서까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았고, 최초 이변을 알아챈 부지(바이올렛의 자택에서 약 30km 떨어진) 주인인 부부의 기지로 인해 경찰이 확인 작업을 펼치면서야 비로소 세간에 전파되기 시작한다.

말인즉슨..

남자는 12시간 넘도록 뚜렷한 목적지 없이 돌아다니며 당초 이야기했던 것처럼 돈과 차량을 가지고서 내빼지도, 바이올렛의 가족에게 납치 사실을 알리거나 몸값을 요구하지도 않고선 그저 정처 없이 드라이브를 이어갔다는 것이다.

저녁 8시 35분경.

볼티모어군 경찰은 먼저 애버딘 관할권인 하퍼드군 보안관 사무소에, 은색 링컨 타운카의 차주인 바이올렛이 수상쩍은 남자에게 태워진 채 납치된 것 같다는 정보를 알려왔다.

이에 보안관 사무소 인력들이 바이올렛의 집이 비어 있다는 것과 그녀의 가족 모두 그녀의 행방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한편, 집안 수색에선 그녀의 핸드폰이 방치돼 있었다.

이날 저녁 9시를 넘어서부터 주변 일대에 본격적인 수색이 시작되면서 집 근처는 중무장한 경관들로 메워지며 차도가 폐쇄되면서 주민들은 멀리 우회로를 이용해야 했다.

그도 그럴 게..

하퍼드군 보안관 사무소, 애버딘 경찰, 볼티모어군 경찰, 볼티모어시 경찰, 메릴랜드주 경찰, 그리고 FBI까지 총출동하며 즉각적인 수사에 돌입했기 때문.

그렇게 밤새 가택 수색과 이웃집 탐문이 모두 끝난 새벽 5시 30분경.

바이올렛의 납치가 유력시되던 상황에서, 애버딘 경찰은 그녀의 안전한 귀환을 도울 방책으로 빠르게 언론에 발표문을 전달한다. (지역의 대표적인 명사에게 변고가 생겼다는 속보가 적잖아 충격이었는지, 보도 당시 지역 언론 기자는 '립켄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우리 모두의 일로 받아들여집니다'라고 언급한다)

하여, 언론을 통해 바이올렛의 실종 및 납치 가능성을 대중 앞에 공표됨과 동시에 범 수사 조직은 공개수사를 준비한다.

이 무렵, 그녀의 집에 모여있던 수사 당국 인력들은 여타 납치 사건들의 피해자 생환 골든 타임이 3-5시간에 불가하기에 패색이 짙은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고.

게다가, 납치범은 이때까지도 어떠한 요구는 물론이고 심지어 연락조차 취해오지 않았다.

그렇게..

보도자료가 배포된 지 약 45분 후인 아침 6시 15분경.

바이올렛의 이웃 중 하나가 수사로 인해 막혀진 도로를 우회하던 곳에서 주차된 은색의 링컨 타운카를 목격한다.

차량 뒷좌석으론 포박된 노파가 손짓을 해가며 동시에 손에 들린 스웨트셔츠를 애처롭게도 흔들어대고 있었다.

바이올렛은 어는 곳 하나 다친 데 없이 꼬박 하루 만에 무사 귀환했다.

납치범은 운 좋게도 수사대 야간 조와 주간 조가 바뀌는 교대 시간에 맞물려 차를 정차하고는 그대로 여명 빛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종합하자면..

납치범은 하루 꼬박 바이올렛을 겁박한 채 뒷좌석에 태우고는 메릴랜드 중부&서부에서 펜실베이니아주 인근에 이르기까지를 드라이브하며 배회했다.

그가 갈취한 것이라곤 바이올렛의 신용카드를 빌려 월마트에서 물품들을 구매하고 패스트푸드점에서 음식을 사 그녀와 나눠 먹은 것이겠다. (담배도!)

바이올렛은 납치범과 면식이 없으며, 납치범은 차량 안의 야구팀(그녀의 아들이 소유한) 굿즈들을 보고선 이게 무어냐고 물어오는 등 애초에 그녀의 정체를 그저 '부유해 보이는 노파'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그렇게..

이 기이한 납치극은, 피해자가 24시간 동안 드라이브를 함께 하며 무사히 집 방향으로 인도된(?) 미스터리극으로 해피엔딩(?)이 난다.

날이 밝자마자 애버딘 경찰서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간략한 사건 브리핑을 가졌다.

수사 보안을 위해 바이올렛 납치극의 극히 간략한 개요만이 공개됐으며, 이러한 보안은 심지어 그녀가 덕트 테이프로 손발이 포박됐었는지 밧줄로 그랬는지조차도 비공개 처리할 정도였다. (일반적인 수사 매뉴얼에 따른 것이기도 했지만, 워낙 유명한 지역의 명사에게 벌어진 수수께끼의 사건이기에 허위 자수자들을 방지하려는 등의 목적도 있었음)

다만 사건의 특이성으로 인해, 익명의 수사관이 언론지를 통해 '일반적인 납치 사건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라고 토로할 정도였다

(본 글에서 언급하는 사건 디테일들은 이후 언론 취재 과정에서 밝혀진 것들이며 경찰 측이 제공한 것이 아님)

바이올렛의 무사 귀환 다음 날인 2012년 7월 26일.

경찰은 납치범이 상점 감시 카메라에 찍힌 캡쳐샷과 영상을 공개한다. 상점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조차 보안을 이유로 밝히지 않았으나, 볼티모어에서 남쪽으로 약 40-50km 떨어진 글렌 버니에 위치한 월마트로 추정됐다.

납치범은 30대 후반-40대 초반의 백인 남성으로 짧은 갈색 머리에 평범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으며, 신장이 약 178cm에 체중 80kg 정도의 건장한 체구로 짐작됐다.

또, 납치 당시엔 옅은 색 셔츠에다 카무플라주 바지 차림이었으나 영상에선 흰색 긴팔 셔츠 및 청바지를 입고 있던 것으로 미루어 중간에 옷을 갈아입은 것으로 추정됐다. (바이올렛은 납치범이 가방 같은 것을 지니고 있었으며 트렁크가 열리는 소리를 들은 바가 있었다고 진술)

이렇듯..

미국 전역에 뜨거운 감자가 된 해당 납치극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납치범의 모습이 꽤나 적나라하게 노출됐음에도 뚜렷한 용의자 하나 나타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간다.

상황이 이렇자..

여러 상점가들에서 납치범의 감시 카메라 영상들을 확보 중임에도 보안에 신경 쓰며 한 곳의 영상만을 공개했던 경찰은, 2012년 11월경 또 하나의 캡쳐샷을 공개한다.

(Aberdeen Police Department)

해당 캡쳐샷은, 납치범이 바이올렛의 귀환 다음 날에 볼티모어에서 동쪽으로 약 20-30km 떨어진 미들 리버에 위치한 월마트에서 찍힌 것이었다.

납치범은 이곳에 들려 전날 글렌 버니 지역 월마트에서 바이올렛의 신용카드로 구매한 물품들을 반품했던 것. (경찰은 그게 어떤 물품들이었는지, 애초에 납치범이 납치 당시 어느 상점가는 물론이고 어떤 루트로 이동했는지조차 보안 처리함)

한편..

이 밖에도 납치범의 몽타주가 실린 수배 전단이 볼티모어 주요 도로 광고판마다 설치됐으며 제보 현상금도 걸렸다.

메릴랜드주 경찰은 전용 핫라인을 개설했으며, FBI는 자사 팟캐스트를 통해 수배 정보 전파와 더불어 감시 카메라 영상 확인을 안내했다.

미국 내에서 가장 유명한 범죄 수사 방송 프로그램인 <아메리카스 모스트 원티드>의 진행자이자 제작자인 존 월시는 자신의 웹사이트와 SNS를 통해 제보 협조 촉구를 구했으며, 심지어 조지아주의 한 맥주 회사는 납치범의 얼굴을 자사 맥주 캔에 인쇄할 정도였다.

(The Baltimore Sun)

앞서 뚜렷한 용의자 하나 나타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갔다고 언급했었는데..

이러한 전국적인 관심을 빌어 제보가 폭주하며 바인더 3권으로 추릴 정도였으나..

수사 당국은 뚜렷한 용의자 하나 선별하는 데에도 실패하고 만다. 제보에 따른 수십 명의 잠재적 용의자들을 모두 검토하고, 심지어 바이올렛의 손자손녀까지도 용의자 선상에 놓고서 수사를 진행할 정도로 그야말로 모든 가능성을 열어뒀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2012년 말.

30년 경력의 하퍼드군 검찰총장이 수사 참여 기관들의 대표를 모두 모은 회의에서 놓친 게 없는지, 더 해볼 수 있는 게 없는지를 촉구하나..

돌아온 대답은, 새로운 그 무엇도 더 확인해 볼 어떤 것도 없다는 의미가 담긴 침묵뿐이었다.

결국..

패전보를 알리는 이때의 침묵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좌측이 2012년 사건 당시의 몽타주, 우측이 2017년의 예상 모습 (Aberdeen Police Department)

2017년, 수사 당국은 납치범의 나이 변화 몽타주를 공개하며 언론을 통해 다시금 사건을 환기시키고자 한다.

허나..

그뿐이었다.

여전히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는 제보에 10만 달러의 포상금이 걸려있는 상황 속에서, 해당 납치극은 미제화가 돼가고만 있는 실정이다.

물론, 수사 당국인 애버딘 경찰 측은 본 사건이 결코 미제 사건이 아니며 여전히 진행 중인 수사로 처리하고 있다지만.

그렇게..

애버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수사가 진행됐음에도(진행됨에도), 지난 10년 넘도록 납치범에 대한 그럴듯한 단서 하나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애버딘 경찰 측에 공조했었던 각 수사 기관들은 모두 손을 뗀 상태이며, 실질적으로 해당 사건의 관리 감독을 맡고 있는 건 애버딘 경찰 소속의 형사 존 디벨 하나뿐이다.

한편..

존은 여지껏 초기 수사 방침인 '구체적인 사건 내용에 대한 보안'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때문에, 일반에 공개된 납치범의 모습은 30초가량의 감시 카메라 영상 하나가 전부이며 나머지 곳들에서 찍힌 영상들은 모두 기밀 처리인 그대로 유지 중이다.

사실, 이러한 매뉴얼에 따른 시행은 일반적으로 수사 전체에 가장 해 되는 부분이 없는 방식이기에 지금도 전 세계 수사 기관에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일반에 하나의 영상만 공개된 것도, 이미 그 영상 자체가 다른 영상들을 모두 포함하는 것 이상으로 납치범의 특징을 잘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또한, 언론을 통해 대중에 공개된 해당 납치극의 개요로도 충분한 정보들이 전파된 상태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범인은 누구이고 왜 그런 기이한 행각을 벌였던 것일까?

본 납치 사건에서 납치범이 자행한(?) 이례적인 양상들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아침 7시가 조금 넘어 차량 채로 납치해 뒷좌석에 태우고는 24시간 동안 정해진 목적지 없이 방황하고는 집 주변 방향에 차와 피해자를 유기하고선 달아남.

납치 동안 피해자에게 결박 및 시야 차단을 제외하고선 어떠한 물리적 가해나 위해를 범하지 않음. 함께 패스트푸드 음식을 나눠 먹고 담배를 건네줌.

이동 간에 월마트에서의 물품 구매(어떤 물품들인지는 경찰이 보안 처리)나 주유비, 음식 등과 같은 결제에 피해자의 신용카드를 사용한 게 금전적 갈취의 전부."

분명..

이상하다.

그렇다면, 납치범의 범행 당시 심리는 무엇이었던 것일까?

먼저, 납치범 본인이 피해자에게 말했던 것과 같이 '돈이랑 차가 필요하다'라는 목적에서 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이른 아침부터 차고에 잠입해 준비한 물품들로 바이올렛을 속박하고 차량에 태웠다는 것은, 사전 조사에서 '홀로 사는 넉넉해 보이는 노파의 생활 루틴'을 어느 정도는 파악했던 것이겠다.

한여름에 장갑 착용, 월마트에 들릴 때면 준비한 의상으로 갈아입기, 모자와 안경 착용을 통한 위장은 납치범이 사전에 범행에 대한 계획을 수립한 상태에서 벌인 것임을 시사한다.

이제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자신이 납치한 노파의 정체를 사전에 알았든 아니면 중간에 알아차렸든 혹은 끝까지 몰랐든, 굳이 범행 노출 위험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장시간 피해자의 차량을 몰며 이곳저곳에 자신을 노출한 이유가 납득되지 않는다. 최소한, 사전에 범행 대상과 계획을 수립한 범인이 벌일 짓으론 말이다.

사전 조사에서 바이올렛의 부유함 정도나 루틴을 파악했을 정도라도 그녀의 가족친지 또는 주변 인물들과의 교우 정도를 철저히 파악하기란 불가능하기에, 당연히 그녀의 차량을 24시간 동안 몰고 다니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어느 순간 그녀의 납치 사실이 파악돼 동시에 차량을 수소문하는 게 일반적이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납치범은 정신적인 문제를 소유하고 있었기에 뚜렷한 철학 없이 그저 범행 후 흘러가는 대로 행동했던 것일까?

그렇다기엔 사전 준비 과정이 모자람 없이 꼼꼼했으며, 바이올렛에게 일체의 위해도 가하지 않고서 오히려 그녀를 말(해치지 않겠다는)과 행동(음식을 나눠 먹는)을 통해 자연스레 자신의 손아귀 안에서 컨트롤하는 모습은 그를 반증하는 것이다.

마찬가지의 이유로 납치범이 사이코패스 성향일 가능성도 낮다.

사이코패스 성향이었다면 범행 과정에서 피해자를 도구화하는 게 일반적인데, 납치범이 범행 초기에서부터 바이올렛의 호소(폐소공포증)를 받아들였으며 중간에 음식을 나눠 먹고 담배까지 제공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마지막으로, 납치범은 바이올렛의 가족에게 연락을 취해 몸값을 요구하는 행위나 시도 자체를 일체 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이는 납치범의 초기 목적이..

'제압하기 쉽고 홀로 사는 넉넉한 집안의 노파를 납치, 주변에서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이른 아침 빠르게 납치한 뒤 노파의 차량을 이용해 신용카드를 통한 ATM 현금 갈취, 이를 위해 위장을 준비'

였음이 가장 들어맞는 시나리오일 것이다.

하여, 납치범은 바이올렛 주변에서 그녀의 납치 사실을 파악하기도 전에 범행을 마무리 짓고서 그녀를 차량 채로 유기하려던 것일 수 있고 말이다. (납치범은 바이올렛에게 해치지 않을 것이며 그저 돈과 차량이 필요할 뿐이라고 말했었음)

분명 이게 가장 합리적인 추론일 터인데..

문제는, 납치범이 납치 후 그저 지역 일대를 방황하며 시간을 소요했을 뿐이라는 것이겠다.

그렇다면 남는 시나리오는 하나뿐이겠다.

납치범은 금품을 목적으로 바이올렛을 납치, 그녀의 차량에 태우고선 운전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납치범은 바이올렛에게 차량 안의 마이너리그 야구팀 굿즈들을 보고서 무엇이냐고 물어왔는데, 어쩌면 그즈음 자신이 납치한 노파가 지역의 명사인 립켄 가문의 어머니라는 것을 알아챘을 수가 있겠다.

납치범은 당황했을 수 있다.

애초 목적은 '빠르게 신용카드 갈취를 통한 현금 출금 직후 피해자를 유기'라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사소한 잡범 정도의 행위였을 터인데, 하필 납치한 사람이 지역을 넘어서도 알아주는 유명 인사였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곧바로 바이올렛을 풀어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정신에 문제가 있어 극단적인 범죄나 범죄 과정에서 돌발적인 짓을 저지르는 류의 행위가 없었고, 따라서 반사회적인 성향을 통해 범죄를 꾀했을지언정 사이코패스 성향을 지닌 것은 아니었기에, 남자가 납치극을 벌인 연유는 금전이 절박했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납치범에게 있어선 재앙이었을 수가 있다. 금전적 이득은 없고 자신의 정체가 노출될 리스크만 커졌으니(유명 인사를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렀으니)까.

또, 중간에 계획을 변경해 유명 인사이니까 가족 앞으로 거액의 몸값을 요구할 정도의 중범죄자 성향도 아니었고 말이다.

어쩌면..

납치범은 금전적 이득을 포기하지 못한 채,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고심하는 가운데 속절없이 시간을 보냈을 가능성도 있겠다. 그 과정에서 납치된 피해자에게 극진한 대접을 하면서 말이다.

이렇듯 납치범은 바이올렛에게 친절을 베풀고서 무사히 풀어준다면 그녀가 납치극을 사건화시키지 않을 수도 있으리란 희망을 품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혹시..

납치범이 납치 당일 저녁 8시경 볼티모어군의 북동쪽 교외에 위치한 화이트 마쉬의 갓길에 차량을 정차하고서 바깥으로 나와 있던 것은, 이처럼 자신의 실패한 납치극을 마무리 지으려던 과정이었던 것은 아닐까?

허나, 우연찮게도 그 순간을 갓길 부지의 주인인 부부에게 들키면서 하릴없이 곧바로 차량을 몰고서 또다시 정처 없는 드라이브에 나섰던 것은 아닐까?

이후 내면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갈팡질팡하며 혼란스러워하던 납치범은 밤을 넘기기에 이르고, 혹여나 바이올렛의 납치 사실이 경찰에 알려지지 않았을까 걱정에 뉴스에 귀를 기울이던 중 언론을 통해 발표된 경찰의 공표를 접하자 더는 리스크를 감수할 수 없다는 판단에 곧장 바이올렛의 집 방향 쪽 우회로에 차량 채로 유기했던 것이 아닐까?

이제 마지막으로 남는 의문.

납치범의 특징이 제법 담긴 감시 카메라 영상이 미국 전역에 공개되고 전파됐음에도 어째서 유력한 제보 하나 발생하지 않았을까?

이는 납치범이 비교적 장기간 전형적인 외톨이 성향이었음을 시사한다.

납치 당일은 화요일이었다.

납치범은 화요일 꼭두새벽부터 현장으로 향하고는 24시간 동안을 드라이브했다.

말인즉슨, 일정한 직업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동거 또는 가깝게 맞닿아있는 관계의 사람이 주변에 없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사회적 고립 속에서 당장 필요한 금전을 확보하고자 범행을 계획했던 것으로 유추된다. (납치 다음날 자신의 이야기가 모든 언론에서 다뤄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위장한 채 다른 지역 월마트에서 납치 당일 구매했던 물품들을 반품했던 점은, 그만큼 당장의 금전이 중요했으며 더 시간이 지나 납치 사건 사실이 전파되기 전에 아예 빠르게 금전화하려던 목적이었을 수 있음)

따라서, 납치범은 불안정한 일용직/노동직 종사자였으며 최소한 과거 메릴랜드 또는 볼티모어 지역의 지리에 적을 둔 적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이렇듯 오랜 기간 주변과의 교류가 끊겨있다시피 하며 애초에 제보를 할만큼의 지인이 없었던 것일 수가 있겠다.

바이올렛이 귀환한 날 저녁, 그녀의 가족들은 성명을 통해 어머니의 무사를 알림과 함께 경찰에 감사함을 표했다.

또 그로부터 일주일 후에는 기자회견을 통해 대중과 언론을 향해서도 감사함을 표했으며, 다만 사건 해결이 되지 않아 바이올렛이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음을 언급했다.

사건 이후 바이올렛이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에 나선 것은 1년 뒤인 2013년 7월에서였다.

그제서야 겨우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던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숨어 있고 싶지가 않네요. 그렇게 계속 피하다 보면 제 인생은 전혀 즐겁지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냥 맞서야 하죠."

그렇게 그녀는 다시금 예전처럼 아들이 소유한 마이너리그 야구팀의 경기에 모습을 드러내며 일상을 재개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2013년 10월경, 바이올렛은 은행에서 나와 주차장을 향하던 중 권총을 들이미는 노상강도와 마주치는 일이 벌어진다.

다행히 바이올렛은 재빨리 차량 열쇠의 경보 버튼을 누르며 주변의 시선을 모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현장에서 바로 도주한 범인은 2시간 후 경찰에 체포되기에 이른다.

범인은 지역 주민인 33세 남성이었으며, 과거 바이올렛을 납치했었던 납치범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본 납치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총기를 사용한 납치였기에 범인이 잡힌다면 메릴랜드 주법상 최대 30년 형이 선고될 수 있다.

중범죄이기에 공소시효도 없다.

한편, 바이올렛 립켄 여사는 2021년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립켄 가족은 성명을 통해 다음과 같은 헌사를 남겼다.

"어머니는 일생 동안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놀라운 여성이었습니다. 그녀의 죽음으로 우리 삶에 남겨진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겠지만, 그녀가 우리에게 준 것이 오늘날 우리를 형성했으며 그녀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남은 생애 동안 지속될 겁니다."

(AP)

참조

<Deadspin/Whatever Happened To The Ripken Kidnapping Case?> Dave McKenna
<ESPN/Cal Ripken's mom abducted, now safe>
<The Washington Post/Police search for gunman who abducted Cal Ripken Jr.’s mother> Peter Hermann
<The Washington Post/Police: Ripken Jr.’s mom OK after kidnapping> Alex Dominguez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