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일본 공항으로 차원 이동한 평행우주에서 온 남자

UFO와 외계인만큼이나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게 있습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것은 가능한가? 평행우주는 존재하는가? 그렇게 혹은 그곳에서 온 사람이 있었을까?"

인터넷상에서 유명한 시간 여행자 이야기 중엔 대표적으로 '앤드류 칼슨'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2256년에서 2003년 3월 미국으로 시간 여행을 왔다는 사람으로, 800달러를 투자해 2주 만에 3억 5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면서 미국 정부에 의해 붙잡혔다는 이야기이죠.

위 이야기는 이상한 옴니버스가 2011년 3월에 국내 최초로 자세한 이야기와 내막을 소개했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이야기는 역시 국내에선 자세하고 정확한 개요조차 제대로 전파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전체 내막과 분석 또한 해외에서 종합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이야기입니다.

아, 일본만 제외하고요. 어째서 일본인지는 글을 전부 읽고 나면 자연히 이해할 수 있답니다.

이상한 옴니버스에서는 지난 5월 초 영상 컨텐츠로 소개했었는데, 이번에 텍스트 컨텐츠로 재정리해 소개합니다.

이 이야기는, 1959년 일본 하네다 공항에 불쑥 나타난 '평행우주에서 온 그대'를 다룹니다. 이 남자는 우리 지구에선 존재하지 않는 국가에서 불시착해 온 것으로, 당시 CIA가 보고서를 올렸을 정도랍니다. 더 나아가, 영국 국회에서도 입방아에 올랐을 정도!

그럼 시작합니다.

1954년 7월, 유난히 무더운 어느 날이었다.

일본 도쿄 국제공항인 하네다 공항에 한 남성이 도착한다.

(Exploring Old Tokyo)

남자는 지극히 평범한 백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입국심사대 앞에 선 남자가 여권을 제출했다. 여권에는 여러 국가를 방문하면서 찍힌 각국 공항들의 스탬프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전 방문에서 찍힌 듯한 하네다 공항의 스탬프도 존재했다.

(Exploring Old Tokyo)

헌데, 여권 속 내용엔 눈을 의심케 하는 부분이 있었다.

여권의 국가란에는 '타우레드'라는 국가명이 표기돼 있었다. 또한, 타우레드의 수도인 타만로셋에서 발급됐다고 기입돼 있었다. 여기서 공항 직원은 여러분들과 똑같은 의문을 품게 된다.

직원은 당황해하며 남자에게 타우레드 국가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남자 역시 당황해하며 반문했다.

"타우레드를 모르신다고요? 지금 장난하는 거죠?"

잠시간의 실랑이 끝에 남자는 입국심사관들의 심문을 받게 된다.

심사관들의 계속되는 질문에 남자는 답답해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자신은 국제적 기업의 자회사에서 근무하고 있고, 비지니스 차 일본을 방문한 것이며, 올해에만 벌써 4번째 방문이라는 것이었다.

허나 도쿄에 소재하고 있는 문제의 회사에서는 정작 남자를 모른다고 답해왔다. 남자가 예약했다는 호텔 역시 존재하지 않는 호텔이었다. 남자가 소지하던 여러 국가의 화폐는 모두 정상이었으나, 그중 수표만은 처음 보는 은행에서 발행된 것이었다.

상황에 진전이 없자 주제는 다시 타우레드로 넘어갔다.

남자는 프랑스어, 영어, 일본어 등 다개국어를 구사했다. 또 타우레드가 천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적잖이 답답해진 심사관들은 지도를 가져와 남자의 앞에 펼치고는 타우레드를 짚어보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남자는 거침없이 한 곳을 가리키다가 당황해하며 말끝을 흐렸다.

남자가 가리킨 곳은 프랑스와 스페인이 맞닿아있는 접경지역이었다. 그러나 그 주변으론 '안도라'라는 작은 국가만이 존재할 뿐, 타우레드라는 국가는 없었다.

(Encyclopedia Britannica)

남자는 천년의 역사와 200만 인구의 조국이 존재하지 않는 사실에 적잖게 혼란스러워했고, 그건 심사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8시간이나 심문이 이어졌으나 소득은 어느 쪽에도 없었다.

결국, 하릴없이 조사가 다음 날로 미뤄지면서 출입국관리 측은 남자를 도내의 호텔에 숙박하도록 지시한다. 더불어 경찰이 감시로 붙었으며, 방은 고층에 위치해 있고, 바깥 복도로 경찰 둘이 보초를 서고 있기에 결코 감시의 눈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음 날 아침.

외무부 직원이 남자를 데리러 호텔을 방문했다. 외무부 직원과 경찰 둘이 남자의 방문을 노크하나 안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끝내 반응이 없어 마스터키를 이용해 방문을 열기에 이른다.

놀랍게도 방 안엔 아무도 없었다.

남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어느 순간 갑자기 다른 공간으로 이동이라도 한 듯이.

그렇게 타우레드의 남자는 홀연히 사라진 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옛날 20세기에 유행하던 믿거나말거나식 미스터리 이야기로만 보일 것이다.

허나 이 남자의 행적은 놀랍게도 실제 기록으로 존재한다.

먼저 일본의 대표적인 신문인 <아사히>, <마이니치>, <요미우리>에서 당시 기사로 내보냈다. 또 캐나다의 한 신문사에서도 남자에 관한 기사를 내보냈다.

(読売新聞)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 CIA 산하기관인 과학기술국에서도 남자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었다.

(Foreign Broadcast Information Service)

더욱 놀라운 건, 영국 국회의원들 간의 회의에서도 남자가 입방아에 올랐다는 것이다. 해당 회의록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남자는 여러 국가를 여행한 것으로 보이나 여권 속 남자의 조국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나라였다고 언급된다.

남자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평행우주에 존재하는 또 다른 지구에서 자신도 모르게 우리의 지구로 불시착하고 만 것일까?

그러다 운 좋게 다시 원래의 세계로 차원 이동을 했던 걸까?

남자는 우주의 오류를 몸소 체험한 사람 중 하나인 걸까?

도대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신비로움과 미스터리를 넘어 어쩐지 낭만마저 느껴지는 타우레드에서온 남자 이야기. 허나, 낭만이란 본디 한 꺼풀 뒤로 잔혹함이 숨겨져 있는 법이다. 해당 이야기 또한 그렇다.

먼저, 실지로 일본 하네다 공항에서 문제의 사건이 벌어졌던 것은 맞다.

다만, 1954년이 아니라 1959년에 벌어진 일이다.

게다가 후일담도 존재한다.

1959년 10월 24일, 하네다 공항에 한 백인 남성이 입국한다. 여권에는 남자가 36살이며, 이름은 '존 알렌 지그루스'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 국가란에는 다음처럼 정체불명의 국가명이 적혀있었다.

네구시 하베시

정체불명의 국가명이었던데다 여권 역시 일반적인 여권과 달리 잡지 크기의 조잡해 보이는 모양새였다. 그럼에도 지그루스는 별도의 심문 과정 없이 무사히 입국할 수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조국을 사하라 남부의 인구수 200만인 나라로 소개했으며, 여권에는 이미 여러 국가를 돌아다닌 흔적이 존재했다. 무엇보다도, 직전 행선지인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서 일본 대사관으로부터 발급받은 비자를 소지하고 있었다. 이게 결정적이었다.

결국 당시의 시대상에 따라 공항에서는 생소한 변방의 국가라고 생각한 채 이전 다른 국가들의 방문 흔적, 특히 일본 대사관으로부터 발급받은 비자를 증빙자료로 여긴 셈이다.

지그루스의 비법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먼저 가상의 국가를 대상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위조 여권을 만들었고, 여러 국가를 돌아다니며 하나하나씩 가짜증거 위를 진짜 증거로 덧칠해 왔다. 그러니까 처음에 통과한 순간 진짜 증빙이 만들어진 것이다. 줄줄이 이어서 말이다.

그렇게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 모두 이처럼 만들어진 진짜 증거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1950년대라는 시대적 특성상 공항의 시스템 체계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었던 셈이다.

사실, 2001년 9.11 테러 이전까지만 해도 공항의 보안시스템이라는 것은 썩 정교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일본 입국을 통과한 뒤 여행을 시작한 지그루스. 허나 사기행각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히려 시작이었다.

그의 위조 스킬은 분명 여권보다 수표 분야에서 더 빛을 발했던 것 같다. 그는 도쿄의 대형 은행들을 돌면서 위조한 수표를 통해 현금을 손에 넣었다. 그 액수만 해도 무려 30만 엔을 넘길 정도였다.

물론, 세상만사 꼬리가 영원히 길어지기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지그루스는 1년도 안 되어 사기행각이 발각되면서 경찰에 체포돼 도쿄 지방법원에서 피고로 재판을 받는다. 한편 경찰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끈질기게 사기행각을 이어가며 진술을 번복한다.

14개 국어 유창

아랍 관련 기관에서 지령을 받아 일본에 왔음

미국 태생이며 미국 정보기관 업무와도 관련이 있음

여권은 이러한 미국 정보기관이 준비해 줌

알제리 민족해방전선과도 관련이 있음

국적은 에티오피아이며 UN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 직원

부친은 독일인, 모친은 체코인, 태생은 미국

여권은 에티오피아 정부가 발행한 정식 공무원 여권

그의 법정 발언 때마다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한 확인 작업이 뒤따랐으나 전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진정 어느 국가에서 태어났는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심지어 이름이 본명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의 여권이 위조됐으며 도쿄에서 위조수표를 사용해 거액의 현금을 갈취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1960년 8월 10일, 불법입국과 사기 혐의로 재판이 열린 끝에, 판사는 징역 1년을 선고한다.

헌데 통역으로부터 이를 전해 들은 지그루스가 난데없이 소동을 벌인다. 미리 입 안에 숨겨놨던 유리병 조각으로 자신의 양팔을 베면서 자살하겠다고 소란을 피운 것이다. 허나 즉시 제압되면서 병원으로 이송됐고, 상처는 전치 열흘가량의 경상이었다.

이러한 자살 소동은 다분히 의도적인 속셈에서였다.

지그루스는 도중에 재판이 중단됐으므로 판결은 무효 처리가 맞는다고 주장했다.

놀랍게도, 법률상 낭독이 끝나지 않은 판결은 완료된 재판이 아니라는 해석으로 인해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진다.

그렇게 다음 해인 1961년 12월 22일, 도쿄 지방법원에서 새로이 재판이 열린다. 여기서 판사는 처음 무효가 됐던 재판에서처럼, 지그루스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한다.

(読売新聞)
12월 22일 도쿄지방법원은 불법입국과 위조수표 사용 혐의로 기소된 국적 불명의 남성 존 알렌 K. 지그루스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미국인이며 FBI 및 CIA 요원으로 활동했다고 자칭한 지그루스는 1959년에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입국했다. (Foreign Broadcast Information Service)

이와 같이 당시 초유의 사기 사건이 일본을 뒤흔들자, 당연하게도 외신과 각국 정부들도 관심을 가질 쏟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 외에도 잠재적 피해국가가 존재하며, 그때까지의 각국의 미비한 공항 보안 시스템이 단박에 수면위로 드러난 셈이니까.

그리하여, 해외 뉴스를 브리핑하는 임무를 맡던 CIA 산하기관 과학기술국에서도 당연히 해당 뉴스를 다룬다.

또 영국에서 국회의원들 간의 회의에서도, 지그루스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종래의 여권이나 비자를 통한 입국 통과 과정에 보다 개선된 보안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말이 오간다.

즉....

평행우주 타우레드에서 온 남자는, 인류 문명의 초창기 공항 보안시스템 역사에서 발생한 경종을 울리는 소동극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현재 우리에게 무분별하게 소비되는 과거 여러 사기 범죄 이야기들과 마찬가지로, 해당 이야기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낭만이 깃들어진 일종의 범죄 낭만극이었던 셈이다.

(読売新聞)

당시 지그루스의 사기극이 외신 등을 통해 영어권 나라에 널리 알려지게 됐고,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조금씩 변형이 가해지면서 '미스터리한 타우레드의 남자' 이야기로 형태를 갖춰간다.

그렇게 60-70년대엔 '존재하지 않는 국가에서 온 불가사의한 남자'로, 80년대엔 '타우레드(Taured)라는 존재하지 않는 국가에서 온 남자'로, 그리고 21세기에 와 마침내 '평행우주에서 온 타우레드의 남자'로 최종 진화했다.

사건 당시 지그루스가 했던 주장 중엔, '여권은 사하라 남부 투아레드의 도시 타만라셋에서 발급받았다.'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이후 이야기 진화 과정에서 이 투아레드(Tuared)는 타우레드(Taured)로 철자 오기가 된 채로 변형된다. 마찬가지로, 타만라셋(Tamanrasset)은 타만로셋(Tamanrosset)으로 변형된다.

아마 지그루스는 사하라 남부 알제리(당시 프랑스 식민지령)의 도시 타만라셋을 의도했을 것이다. 또 투아레드는 사하라 사막에서 가장 많은 군집을 자랑하는 투아레그(Tuareg) 유목민을 의도했고 말이다.

지그루스의 또 다른 주장 중 하나였던 네구시 하베시(Negussi Habessi)의 경우, 에티오피아의 암하라인 민족이 사용하던 암하라어 'Negus Habessinia(Abyssinia)'를 의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에티오피아 왕국'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지그루스가 비밀 정보기관의 요원 내지 스파이였다는 추측도 존재하나, 세계 각국을 돌며 고위급 신분으로 위장해 금전적 이득을 꾀했던 사기꾼이었음이 유력하다.

한편,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지그루스는 이미 재판 전까지의 구금일수가 1년을 초과했기에 별도의 복역 없이 석방됐다.

그리고 일본 정부는 고심 끝에 그를 일본 입국 직전 기항지였던 홍콩으로 이송한다.

지그루수는 '앞으로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일본을 출국했다.

그의 진짜 정체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참조

<Snopes/The Mystery of the Man from Taured> David Mikkelson

<The Province> 1960.8.15
<朝日新聞> 1961.11.20
<毎日新聞> 1961.7.25 & 1961.8.10
<読売新聞> 1960.8.10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