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에서 마지막으로 빠져나온 남자의 이야기

(Francis Godolphin Osbourne Stuart)

전장 269m, 폭 28m, 높이 32m, 무게 46,328GRT, 출력 46,000마력.

300만 개의 리벳과 2,000장의 철판, 그리고 침수 차단벽을 포함한 15종의 최신 안전 기술까지.

3,500여 명을 태울 수 있는 세계 최대의 호화여객선이자 '신도 침몰시킬 수 없는 배'라는 카피를 내세우며 불침선이라는 칭송을 받은 타이타닉호.

(Fortunino Matania)

허나..

1912년 4월 10일, 영국의 사우샘프턴에서 2,224명을 태우곤 뉴욕을 향해 첫 항해에 나선 타이타닉호는..

갖가지 우연과 미스가 겹쳐 4월 14일 밤 11시 40분경 거대 암초형 빙산(전체 높이 약 120m)에 부딪히면서, 2시간 40분에 걸쳐 침몰하기에 이른다.

(J.W. Barker)

당시 타이타닉호에는 탑승 인원의 절반 정도를 태울 수 있는 총 20척의 구명보트가 구비돼 있었다.

하지만 위험 인식 부족, 훈련 미흡, 장비 안전성에 대한 불신과 같은 이유로 인해 생존 인원은 31.9%에 불과한 710명이었다.

한편..

침몰 순간 아이와 여성을 우선시하라는 선내 지시에 따라 아이&여성의 생존율은 70%였으며, 성인 남성의 생존율은 19.8%였다.

여담으로, 이 '우선시' 명령이 임의적으로 해석되면서 일부 데크에선 성인 남성 전체가 배제됐고 3등석의 경우 초기 진입 통로 차단과 함께 언어 장벽으로 인해 전체 생존율이 25.2%에 불과했다.

1912년 당시의 찰스 조우긴

다시 돌아와..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인 잉글랜드 체셔주 버커헤드 태생의 찰스 조우긴(만 33세).

당시 사우샘프턴에 거주하던 베테랑 선상 제빵사 이력의 찰스는 타이타닉호에 수석 제빵사로 배정된다.

1912년 4월 14일 밤.

비번을 틈타 선체 중앙부 좌현 엔진 케이싱 인근 침상에서 숙면 중이었던 찰스는, 자정 무렵 격렬한 흔들림에 깨어나선 끔찍한 소식과 마주한다.

빙산과의 충돌로 선체가 심하게 휘어졌으며 북대서양의 차디찬 바닷물이 엄청난 속도로 선내에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이에 찰스는 제빵실 직원 13명을 소집해 다 함께 선내의 빵들을 모으고는 각 구명정마다 비상식량으로 비치하기 시작했다.

또, 그는 영어를 못해 우왕자왕하고 있던 삼등석 탑승객들을 도와 구명정으로 안내하기도 한다.

또한, 그는 갑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아이와 여성을 찾아 구명정으로 인도했다.

(A Night to Remember)

한편..

1시간 동안 정신없이 자신의 의무를 행하는 동안..

찰스는 자신이 성인 남성이며 특히나 선박에 배정된 승무원이므로 구명정에 자신의 자리가 없으리라는 사실을 되뇌이며 직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술이 안 땡기고 배기겠는가?

찰스는 틈틈이 선실로 내려가 그곳에 비치된 위스키를 홀짝이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일종의 긴급피난법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배 속이 뜻뜨읏해지고 든드은해지니 용맹함과 더불어 침착함이 샘솟았다.

하여..

용맹함, 소형 목재 보트에 목숨을 의지하길 거부하며 불신하던 아이와 여성들을 거의 집어던지다시피 하며 구명정으로 밀어 넣는다.

할 일을 다 했다고 여긴 찰스.

당연히 선실로 돌아가 위스키를 홀짝인다.

이미 차디찬 북대서양 물이 발목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침착함, 갑판이 흔들리는지 머릿속이 흔들리는지 잠시 비틀거리던 찰스는 물에 빠지거나 구명정에 탑승하지 못한 사람들이 뗏목으로 사용하면 굿이겠다는 생각에 수십 개의 목재 의자 및 쿠션들을 미친 듯이 바깥으로 던진다. 이따가 자신이 사용할 수도 있고 말이다.

(A Night to Remember)

이제 정말 할 일을 다 했다고 판단한 찰스.

위스키를 니트로 너무 홀짝였다 싶어 일등석 라운지 부근으로 가 물을 들이켠다. 이따가 바닷물을 마실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바로 그 순간..

타이타닉호가 사지가 뒤틀려 꺾이는듯한 굉음을 내면서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고, 이어 선내의 군중 무리들을 계속해 자신의 몸에서 떼어내기 시작한다.

한편..

니트로 위스키 찰스는 공황에 빠지지 않은 채 차분히 우현 선체 위로 기어 올라가 난간을 잡고는 타이타닉이 수직으로 가라앉는 내내 매달려있는다.

그리고..

마침내 타이타닉호의 선미가 완전히 잠기는 동시에..

찰스는 아주 부드러이 미끄러지듯 대서양으로 발을 디디며 타이타닉호에서 마지막으로 빠져나가게 된다.

여기서 잠시 의학적 측면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당시 북대서양 바닷물은 -2도로 아주 차가웠다.

사람은 15도보다 차가운 물에 들어가면 과호흡과 동시에 혈관 수축 유발과 혈압 상승을 동반한다.

-2도라면 몇 분 만에 심정지 위험이 급증한다. 당시 물에 빠진 인원 중 약 20%가 여기에 해당했다.

15분 내외부터는 근신경 냉각으로 인해 호흡근이 마비되며 의식만 의지한 채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의식 상실 위험이 급증한다. 당시 물에 빠진 인원 중 약 50%가 여기에 해당했다.

여기까지가 이른바 콜드 쇼크 반응이다.

30분 넘어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저체온증이 진행되며 쇼크 및 혼수로 인해 익사 위험이 급증한다.

허나, 사실 여기까지 이르러 사망하는 경우보다는 대게 콜드 쇼크 반응 단계에서 사망하곤 한다.

여기에 플러스..

알코올은 혈관 확장을 일으키며 피부로의 혈류를 증가시켜 열 손실을 유발하므로 저체온증의 위험을 증가시킨다.

요컨대, 저 맨 꼭대기에서 가장 늦게 탈출한 이가 바로 찰스였던 것 (Charles Dixon)

자, 그러므로 니트 위스키 찰스에게 있어 결코 유리한 상황이 아니었다.

헌데..

분명, 그에겐 행운도 뒤따르고 있었다.

찰스가 비록 위스키를 홀짝였으나 결코 만취 상태는 아니었다.

오히려,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적정량의 취기가 적절하게 그의 정신과 육체를 받들고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결코 예상할 수 없었던 사고의 순간에서도 남들과 다르게 공황에 빠지지 않은 채 침착하고 대담하게도 구명 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다. 무려, 배의 선미가 물에 잠기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마, 타이타닉 침몰 사고에서 가장 평정심을 유지했던 이가 바로 찰스일 것이다.

그렇게 그는 평소보다도 침착한 심신으로 배가 완전히 가라앉는 마지막에서야 바닷물에 닿게 됐고..

이러한 점이 그에게 있어선 또 딱 맞아떨어지는 행운이었던 셈이다. 왜냐하면, 당시 수온에서는 60분을 넘어서부턴 저체온으로 인한 심장 부정맥 단계가 필연적으로 찾아올 수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Titanic)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이렇다.

당시 바닷물에 빠진 인원 중 대다수가 15분 내외를 기점으로 서서히 사망에 이르렀다. 콜드 쇼크 반응으로 인해서 말이다.

이러한 콜드 쇼크 반응 유발 원인으론 물론 영하의 수온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더불어 중요한 요인으론 공황에 빠져 교감신경이 폭주하고 과호흡을 통해 혈압 급상승과 부정맥으로 심정지가 유발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이러한 공황으로 인해 제자리에서 허우적대며 흉부는 물론이고 머리 전부까지 물에 적셔져 상부 체열 손실을 통해 핵심이라 할 수 있었던 신체 체온 냉각률 부분에서 몇 배나 손실을 입고 말았던 것.

반면..

어려서부터 이미 바다 사나이 생활을 영위했던 찰스는..

거기에 더해 우연찮게 딱 들어맞은 알코올 섭취량 상태였던 찰스는..

비록 말초 혈관이 확장돼 열 손실이 늘어나 신체적으론 디버프 상태였으나 심리적 안정감, 불안 및 통증 지각의 둔화, 주관적인 추위 감각의 흐려짐과 같은 정신적 버프 요인을 받고 있었다.

그렇게 바닷물에 발이 닿기 시작한 순간서부터,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있었던 찰스는 흉부와 머리 부위로 물이 들어차지 않도록 자맥질하듯 이동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했던 포인트는, 그처럼 공황에 빠지지 않은 채 상부의 열 손실을 최소화하며 기도를 확보하고는 지속적으로 천천히 헤엄질했다는 것이다. (물에 빠졌을 경우 초기 가장 위험한 부분이 공황으로 인한 과호흡과 동시에 소위 물을 먹게 되는 순간임)

여기엔 바다 사나이였던 그가 평소 일반인보다 훨씬 더 냉수에 잘 적응하는 신체를 지니고 있었던 덕분도 있겠다.

아, 그리고 160 초반대의 땅땅한 체구로 인해 체열 손실 속도 부문에서 유리했던 점도.

영화 <타이타닉>에서의 찰스 조우긴 씬 (Titanic)

콜드 쇼크 반응과 저체온증 진행 사이에서 극심한 피해를 주는 것은, 바로 사지 근육의 기능 손실이다.

헌데, 찰스는 지속적으로 팔다리 근육 펌핑을 통해 헤엄질을 하며 혈류 유지를 이어갔던 것. 이로 인해 근육 수축을 통한 열 생성이 지속됐는데, 만약 지나친 움직임을 보였다면 오히려 체열 및 체력 소모가 촉진되며 상황이 나빠졌을 것이다.

그렇게 1시간 내외를 수영하며 버티던 찰스는..

마침내, 여유 공간이 있던 구명정과 마주하면서 구조될 수 있었다.

이후 찰스는 타이타닉호의 생존자들을 구출하고자 도착한 카르파티아호에 무사히 승선할 수 있었고..

발 부종으로 인해 승선 당시 사다리를 무릎으로 올라가야 했던 점 말고는 신체에 특별한 이상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물에서 나와 구명정에 앉아 있으니 추위가 느껴져 불편했다고 술회한다.

잠시간의 요양 이후 일상으로 돌아간 찰스.

그는 타이타닉호의 자매선으로 유명했던 올림픽호에서 근무하던 중, 2년 후인 1914년 유럽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해군 함대에서 복무한다.

여기서도 무사할 수 있었던 찰스는, 1916년 SS 콩그레스호에서 제빵사로 근무하던 중 선창에서 발생한 화재로 배가 파괴되며 좌초되는 사고를 맞이한다.

물론, 그는 여기서 무사히 구명정에 탑승하며 탈출에 성공한다. 탑승 과정에서 그만 물에 빠지는 일이 있었으나 부상 없이 구조되면서 말이다.

1919년, 셋째를 임신 중이던 아내가 출산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하면서 찰스는 아내와 아이를 한꺼번에 잃게 된다.

1920년대에 들어서선 두 자식을 영국에 남겨둔 채 홀로 미국 선박에서 일하며 그곳에서 영국 태생의 여인과 1925년 재혼까지 한 그는, 1930년 미국 시민권까지 획득하며 여러 유명 선박에서 제빵사로 근무하며 커리어를 이어간다.

1941년, 63세로 커리어 말년이었던 찰스는 마지막으로 위기 상황에 빠지니..

그건 바로, SS 오리건호와 USS 뉴 멕시코호 간의 의도치 않은 상호 충돌로 인한 침몰 사고에서였다.

그리고..

찰스는 여기서도 생존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그처럼 평생을 바다 사나이로 보낸 찰스는..

1956년 78세의 나이로 병원에서 병사한다.

애석하게도, 그 역시 노환에선 끝내 탈출할 수가 없었다.

(William B. Grice)

참조

<Encyclopedia Titanica/Charles John Joughin>
<Fascinating Footnotes From History> Giles Milton
<McGill University/The head baker of the Titanic spent two hours in frigid water and emerged with only swollen feet!> Ada McVean B.Sc.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