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 침몰을 정확히 예언한 책'의 진실은?
전장 269m, 폭 28m, 높이 32m, 무게 46,328GRT, 설계 출력 46,000마력(최대 약 51,000마력).
300만 개의 리벳과 2,000장의 철판, 그리고 침수 차단벽을 포함한 15종의 최신 안전 기술까지.
3,500여 명을 태울 수 있는 세계 최대의 호화 여객선이자 '신도 침몰시킬 수 없는 배'라는 카피를 내세우며 불침선이라는 칭송을 받은 타이타닉호.
허나..
1912년 4월 10일, 영국의 사우샘프턴에서 2,224명을 태우곤 뉴욕을 향해 첫 항해에 나선 타이타닉호는..
갖가지 우연과 미스가 겹쳐 4월 14일 밤 11시 40분경 거대 암초형 빙산(전체 높이 약 120m)에 부딪히면서, 2시간 40분에 걸쳐 침몰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생존 인원은 31.9%에 불과한 710명이었다.
'타이타닉 침몰'로부터 14년 전인 1898년.
미국 뉴욕 태생의 소설가 모건 로버트슨이 <타이탄의 난파>라는 소설을 내놓았다.
소설에서는 '타이탄'이라는 거대 선박이 등장하며, 4월 어느 밤 자정 무렵 빙산과 충돌하며 침수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 속 '타이탄'과 14년 후 '타이타닉'의 놀라운 공통점으로 인해..
해당 소설은 '예언서'라는 호칭을 얻게 된다.
자, 그렇다면 세간에 알려진 '타이탄'과 '타이타닉'의 공통점을 나열해 보도록 하겠다.
이렇듯..
'타이탄'과 '타이타닉'은 마치 같은 운명선에서 나온 것 같은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니, 마치 작가인 모건 로버트슨이 잠시 미래의 모습을 보고선 기억을 되살려 소설의 형태를 빌린 채 이야기를 구성한 것만 같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적지 않은 인원이 해당 이야기를 인터넷상에서 접해봤을 터이다.
허나, 이러한 '예언서 전설'이 과연 진실인지 그리고 정말로 얼마만큼 유사성을 띠고 있는지 상세한 분석안은 접해본 바가 없을 것이다.
하여..
지금껏 소개한 여타 다양한 주제의 컨텐츠에서처럼, 해당 이야기 역시 이상한 옴니버스에서 보다 제대로 된 정보와 교차 검증된 디테일로 드라이하게 구성을 해보고자 한다.
3년 전인 2022년, <내가 본 미래> 만화책에 대한 상세 분석안을 국내 최초로 소개하며 이후 SBS <당신이 혹하는 사이> 해당 에피소드 방영분에서도 자문을 맡았던 것과 같이 말이다.
(<내가 본 미래>에 대한 분석안은 구글에 일본 만화가 타츠키 료의 <내가 본 미래>, 정말 예언서일까? 검색)
선박명
소설에서 '타이탄(Titan)'이라는 선박명으로 등장하며, 한눈에 봐도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겠다.
이 소설 속 선박과 현실의 선박 '타이타닉(Titanic)'은 모두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거인 신족 '티탄(Titan)'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티탄은 올림포스 신들 이전 우주를 지배했던 강력한 신들의 종족으로, 거대한 신체와 인간을 초월하는 힘을 지닌 존재로 묘사된다.
즉, 시대의 지배자이자 원초적이고 거대한 힘 그 자체를 상징했기에 당대는 물론이고 그 전후로도 '거대함'을 상징하기 위한 훌륭한 어원의 교보재 역이었다.
타이탄과 타이타닉 모두 당대 기술력의 정점을 상징하는 거대 선박이었기에 어찌 보면 더없이 적절할 자연스러운 작명 선택이었던 셈.
물론, 그렇다손 치더라도 분명 이같은 이름의 유사성은 놀랄만한 부분이다.
헌데, 해당 소설의 작가 로버트슨은 작가이기 이전에 베테랑 바다 사나이라는 이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동 세대 동일계통에서의 작명 센스라는 점을 산정해 볼 때 분명 불가해한 부분은 아닐 것이다. 특히나 '선박명의 선정'과 같은 좁고 특정한 풀에서 정해지는 사안의 경우에는 말이다.
극단적인 예시일 수도 있겠으나, 자식의 작명 같은 경우에도 분명 시대상과 세대에 따라 유사성에서 차이가 존재하며 동명이인 케이스의 경우에도 그 폭이 작을수록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시 말해, 거대함을 상징하는 단어의 풀 자체가 제한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해야겠다. 당시 기술력의 정점을 상징하는 배에 신화 속 거인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발상이었고, 타이탄은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이름 중 하나였다. 따라서, 작가와 선박사가 동일한 신화적 상상력을 공유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당대 명성
타이탄과 타이타닉 모두 '불침선(Unsinkable)'이라는 명성을 지녔었다.
이는 두 선박 모두 당대 가장 거대한 규모와 최신 구조를 지니고 있어 어찌 보면 필연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두 선박이 일종의 아명으로 불침선이라 불렸던 것은 아니다.
먼저..
소설 속에선 서장 부분에 타이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9개의 구획이 침수돼도 배는 여전히 떠 있을 것이고, 바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어떠한 사고도 이만큼 많은 구획을 채울 수는 없었기에, 이 증기선 타이탄호는 사실상 침몰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이처럼, 불침선이 타이탄의 아명이었다기보다는 해당 선박의 위용을 자랑하는 구절이었던 셈. ("Titan was considered practically unsinkable")
한편..
현실 속 타이타닉호 역시 불침선이라는 아명으로 불린 적은 없다.
선박회사인 화이트 스타라인이 안정성과 최첨단 기술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던 시기에, 조선업 전문 매거진이었던 이 최신 구조로 인해 사실상 침몰이 불가능하다고 평가한 것이 본질이다. (practically unsinkable)
즉, 타이탄과 타이타닉 모두 당대의 최신 기술이 집약된 선박임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침몰 위험이 없다는 평을 받았던 것이 정확한 사실이겠다.
다만, '불침선' 또는 '신도 침몰시킬 수 없는 배'처럼 후대에 널리 알려지는 아명이 타이타닉의 침몰 이후 언론에 의해 인간의 오만과 기술의 과신을 꼬집고자 일종의 멸칭으로 사용되곤 했다.
충돌시기
두 선박 각각 4월의 어느 날 자정 무렵과 4월 14일 밤 11시 40분경으로 아주 유사하다.
소설에선 "4월의 어느 추운 밤 / 자정 무렵"으로 시기를 특정하고 있으며, 현실에선 4월 14일 밤 11시 40분경 빙산과의 충돌이 발생했다.
먼저, 선박 횡단 항로의 경우에도 당연히 항공 노선처럼 뚜렷한 성수기와 비수기가 존재했다.
둘 모두 항로가 북대서양인데, 이 경우 비수기가 11월-3월이며 성수기의 시작이 4월이다. 왜냐하면, 4월부터 기나긴 겨울 끝에 날씨가 안정되는 시기이며 주요 항해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 때문.
추가로 유럽의 사교 시즌을 즐기거나 혹은 미국으로 복귀하려는 부유층 승객들이 본격적으로 이동을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더불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던 이민자들의 수도 증가하는 시즌이고 말이다.
특히나 타이타닉의 경우 거대 여객선이었기에 첫 항해의 이상적인 달은 바로 이 시즌의 개막을 알리는 4월이야말로 상업적으로나 상징적으로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해당 소설의 작가 로버트슨은 작가이기 이전에 베테랑 바다 사나이라는 이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소설 속 타이탄이 사고를 겪는 시기로 이 상징적인 달을 차용하는 게 어찌 보면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4월이 가장 확률 높은 재난 발생 시점이었기에 상징성과 현실성에 모두 부합했던 것.
또한..
소설에서 사고 발생 시각을 자정 무렵이라고 선정한 것은, 물론 대부분의 승객이 잠들어 있고 선실에선 휴식을 취하는 시간대라는 점도 있겠으나..
하루의 끝과 시작,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비극적 순간을 암시하는 강력한 문학적 상징성으로 말미암은 것이기도 할 것이다.
즉, 바다 사나이와 작가라는 양면의 경계 가운데에서 현실성과 문학성이 가미된 시각으로 자정 무렵이 채택됐으리라 추정이 가능하겠다.
항해경로
둘 모두 영국과 뉴욕 사이를 항해했다.
다만, 조금 차이가 존재한다.
타이탄은 미국 뉴욕에서 영국 리버풀로, 그리고 타이타닉은 영국 사우샘프턴에서 미국 뉴욕으로 항해했다.
타이탄의 경우 소설 속 주인공이 미국인이었던지라 대서양을 건너는 와중 사건에 휘말리기에 그 시작점을 미국으로 설정했다.
타이타닉은 영국의 조선소에서 건조됐고 영국의 선박회사 소유였기에 첫 출항이라는 상징성에 부합하도록 모항母港인 사우샘프턴에서 출발했다. 더불어 당시의 뉴욕은 수많은 유럽인들에게 기회의 땅으로 여겨지던 미국으로 진입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지 중 하나였다.
추가로, 타이탄은 세 번째 항해 도중 사고를 당하지만 타이타닉의 경우엔 첫 출항이었다.
즉, 당대의 가장 중요한 무대였던 북대서양을 횡단하는 게 시대적 공통성과 역사적 필연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
사고지점
둘 모두 북대서양 뉴펀들랜드에서 약 400해리 떨어진 해상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분명, 타이탄과 타이타닉의 유사성에 있어서 가장 놀랄만한 대목이라 하겠다.
먼저, 타이탄의 경우 뉴펀들랜드에서 400해리(740km)가 떨어진 곳이라고 명시된다.
이 뉴펀들랜드란 캐나다의 섬으로, 당시 대서양 횡단 선박들에게 있어 '뉴펀들랜드'라 함은 이곳 섬의 남동쪽 끝에 위치한 케이프 레이스를 지칭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케이프 레이스는 유럽과 북미 대륙 간의 항해 경로상 아주 중요한 지점이었으며, 당시 가장 강력한 마르코니 무선국 중 하나가 존재했다. 따라서 대서양을 횡단하는 모든 선박은 케이프 레이스 무선국과 교신을 취했다. (타이타닉으로부터 조난 신호를 받은 곳이 바로 케이프 레이스의 등대)
그리고..
타이타닉의 경우 바로 이 케이프 레이스에서 약 370해리(690km 떨어진 해상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그렇다.
타이탄과 타이타닉의 각 사고 지점은 불과 50km 떨어진 곳이었다.
광활한 대서양을 감안할 때, 이는 분명 예언적 결과라고 보기에 충만하다.
물론..
여기에도 과학적인 시선이 개입될 여지는 분명히 존재한다.
해당 소설의 작가 로버트슨은 작가이기 이전에 베테랑 바다 사나이라는 이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선박을 지휘하던 선장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십 대 무렵 집을 떠나 상선단의 최하급 선원부터 선원 생활을 시작해서는 갑판원과 숙련 선원을 거쳐 일등 항해사 자격까지 취득했다. 해운업의 과도기였던 시기에 바다 사나이 생활을 시작해 전통적인 돛 범선부터 최신 기술인 증기 기관 기선까지의 배들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런 그였기에, 이야기 구성으로 주인공이 탑승한 선박의 침몰을 구상하며 다음과 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불침선이라 여겨지는 거대하고 최신의 선박, 거인 신족의 이름을 따 명명된 이 오만한 선박이 대서양에서 침몰하는 구성으로 가자. 그러한 침몰은 인간의 오만에 대한 심판으로 자연이 내리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빙산 충돌이 현실적으로 가장 합리적이고 문학적으로도 부합한다.
대서양의 겨울이 끝나는 4월, 이 시기에 북극에서 떨어져 나온 빙산들은 차디찬 래브라도 해류를 타고서 캐나다 동부 해안을 따라 남하한다. 이러한 해류의 흐름인 빙산 골목은 물리적 특성상 대서양 횡단 항로라 맞닿는다.
래브라도 해류는 뉴펀들랜드 남동쪽에 위치한 광활한 대륙봉 지역에 도달하면서 세력이 약해지고 넓게 퍼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로 인한 해류로 말미암아 남하하던 빙산들이 병목 현상에 따라 빙산의 밀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영국과 뉴욕 간의 최단 거리 항로는 바로 이 빙산의 병목 현상이 발생하는 지점을 아슬아슬하게 통과한다. 이러한 '자연의 위험'의 교차로에서 사고가 나는 것이 가장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이다.
즉, 배가 가장 빨리 가고 싶어 하는 길에서 자연이 그 오만함을 심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최단 거리 항로 및 위험 지점이 교차하는 곳이 바로 뉴펀들랜드에서 약 400해리 떨어진 지점이었던 것.
즉, 해양학과 항해술에 대한 깊은 이해를 지니고 있던 작가 로버트슨이 유럽-미국 간의 빙산 사고 핫 스팟 지역을 소설 속 사고무대로 구성했던 것이다.
실지로 소설에서 타이탄은 속도를 최우선으로 건조됐기에 최고 속도 25노트(시속 46.3km)로 항해했다고 언급된다.
결론적으로..
당시 전문가 입장에서 거대 선박이 침몰할 사고 이유로 빙산과의 충돌이 가장 합리적인 시나리오였으며, 4월의 뉴펀들랜드에서 400해리가량 떨어진 북위 41도 부근은 시나리오상 가장 부합하는 곳이었던 셈.
추가로..
타이타닉호는 영국 사우샘프턴에서 출발해 프랑스와 아일랜드 경유지를 거쳐 뉴욕을 향해 대서양으로 향하던 중 사고를 당했으며, 약 4일에 걸친 3,100km의 항해였다.
반면 타이탄은 미국 뉴욕에서 대서양을 타고서 영국 리버풀로 향하던 중 불과 740km를 항해하고서 사고를 당했던 것.
이는 소설의 주인공이 미국에 거주하던 미국인이기도 했지만, 자연의 압도적인 힘을 강조하는 구조를 위해 갑작스러운 재앙을 빠르고 강력하게 선사하고자 작가가 의도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담으로, 타이타닉의 침몰이 있던 1912년 봄은 유난히 따뜻한 겨울의 영향으로 평년보다 훨씬 많은 수의 빙산이 이 빙산 골목으로 쏟아져 나와 과거 반세기 중 최악인 상황이었다고.
충돌 부위
둘 모두 선박 우현이 빙산과 충돌했다.
소설 속 타이탄은 빙산을 피하고자 급선회를 시도하다 우현을 빙산에 들이받으며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현실 속 타이타닉은 빙산을 피하고자 급선회를 시도하다 우현이 수면 아래의 빙산에 약 90m에 걸쳐 긁혀지면서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들이받는 것과 긁혀지는 것의 차이만 존재할 뿐 나머지 요소는 아주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에도 과학적인..
아니, 항해학적인..
그리고, 문학적인 시선이 개입될 여지가 분명히 존재한다.
타이탄과 타이타닉은 동일하게 빙산을 발견 후 급선회를 시도하다 우측 측면에 손상을 입는다. 이는 좌현(선박 진행 방향의 좌측면)으로, 그러니까 좌회전을 했다는 뜻이다.
상공에서와 마찬가지로 해상에서도 원칙적으로 준수해야 할 국제적인 규칙들이 존재한다.
여기서, 선박이 서로 마주칠 때의 충돌을 피하고자 '우현 회피'라는 것이 있다. 이는 서로가 우현(선박 진행 방향의 우측면)으로 변침(침로를 변경)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양측이 우회전으로 하면서 서로 충돌하지 않고 빗겨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항해학적인 측면에서 무언가 장애물과 맞닥뜨렸을 때 본능적으로 우회전을 가하는 것이 더 어울려 보인다. 항해학을 벗어나 오른손잡이가 다수인 인간의 신체 신경학적 측면에서도 말이다.
그럼, 타이탄과 타이타닉은 어째서 좌회전을 했던 것일까?
타이타닉의 경우, 망루의 감시원으로부터 정면에 빙산이 있다는 보고가 올라오면서 일등 항해사가 확인 후 좌회전을 지시했다. 충돌까지의 시간이 약 37초였기에, 긴박한 순간 속에서 수면 위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을 접하고는 본체의 형태가 좌우 중 어느 곳이 더 크고 어느 방향으로 회피해야 공간이 더 많을 지를 판단해야했다.
당시 이 일등 항해사였던 머독이 타이타닉과 그 운명을 함께했기에 정확한 사실관계를 결론 내리기가 힘들겠다.
다만, 당연히 해상에서의 비대칭 형태인 빙산의 특성을 파악하고 있던 그가 당연히 좌현으로 트는 게 충돌 없이 지나치거나 혹은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실지로 문제의 빙산이 한쪽이 더 뾰족하고 거대했는데, 따라서 그러한 빙산의 수면 속 형태를 나름대로 머릿속에 그렸던 것일 거다.
혹은, 타이타닉 이전 유사 모델인 올림피호를 이미 수차례 운항했던 경험에서 비롯한 것일 수도 있겠다. 체감적으로 선박의 프로펠러의 영향을 감안해 어느 방향으로의 급선회가 보다 민첩하게 반응해 오는지 경험적 데이터를 지녔을 수 있다.
보다 자세히 들어가 보겠다.
당시 머독은 조타 명령으로 좌현으로의 지시를 내리고는 거의 동시에 양쪽 엔진 레버를 후진으로 밀어 넣었다. 만약 좌회전으로 빙산 회피에 실패해 충돌이 불가피할 경우, 항해술의 기본 원칙에 따라 충돌 시의 속도를 최대한 줄여 충격 에너지를 최소화하려는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속도가 절반으로 줄면 충격 에너지는 1/4로 줄어든다. 따라서 머독은 차선책으로 전속 후진 역시 시도했던 것일 거다. 눈앞에 나타난 거대하고 장엄한 자연의 장애물에 맞서 인간이기에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듯이.
허나..
지금에 와선 오히려 좌회전만 가해졌다면 선회 능력의 극대화를 통해 어쩌면 빙산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갔거나 혹은 치명적이지 않는 손상이 가해졌지 않겠느냐는 가정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오히려 좌회전 명령과 전속 후진 명령이 충돌하면서 오히려 서로의 효과를 증대가 아닌 상쇄를 시켜 그처럼 비극적인 결과가 발생했다는 이론이 말이다. (선박의 프로펠러가 만들어내는 강한 물살이 방향타에 효과를 가중시키는데, 엔진 후진으로 인해 이런 물살이 역류화 되며 방향타의 효력이 떨어지는)
한편..
소설 속 타이탄의 경우 망루의 감시원이 선수 바로 아래에서 빙산을 발견하며 대응할 시간이 타이타닉보다도 훨씬 짧았다.
여기서 일등 항해사는 타이타닉 케이스와는 달리 본능적으로 우현할 것을 지시한다. 앞서 설명했듯, 오랜 항해학에 따른 본능적 발현이었던 것이다.
헌데, 여기서 소설의 주인공은 그것이 파멸로 향하는 어리석음이라고 직감하고는 조타수를 밀친 뒤 온 힘을 다해 좌현으로 키를 돌린다. (판본에 따라 직접 나서거나 아니면 조타수에게 지시를 했다는 차이가 존재)
허나, 주인공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코 앞에 있던 빙산으로 인해 결국 충돌을 피할 수가 없었다.
주인공이 어째서 우현이 아닌 좌현을 선택했는지는 소설에선 자세하게 언급되지 않는다.
아마 기술적 타당성에 의한 서술이 아니라, 기존 세상의 평범성과 규칙성의 한계를 뚫고서 비범함과 영웅성을 드러내며 서사를 이끌어가기 위한 문학적 장치이기 때문이 아닐까?
추가로..
소설 속 타이탄은 밤하늘이 맑고 별이 총총하며 시야가 좋은 가운데 부주의와 오만으로 인해 빙산 발견이 늦어져, 빙산이 마치 양철판을 찢듯 강판을 뚫고 들어와 수 분 내에 전복하게 된다. 이처럼 자연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인간의 굴복을 표현하고자 약 3,000명의 승무원 거의 모두가 사망하고 생존자는 주인공을 포함해 단 13명뿐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침몰 직후 빙산 위로 뛰어올라 살아남는 데다 이후 북극곰과 싸우며 소설의 초점인 모험 활극의 모습을 충실히 수행해 낸다.
반면 현실 속 타이타닉의 경우, 달빛이 없고 파도가 전혀 없어 빙산 주변 부서지는 흰 파도를 보지 못해 발견이 늦어진다. 감시원에게 쌍안경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고 말이다.
이후 수면 아래의 빙산에 우현이 긁히면서 약 2시간 40분에 걸쳐 침수와 침몰을 겪게 된다. 승객들이 대피하고 구명정이 내려질 시간이 충분했으나 혼란과 소통 혼선 등을 이유로 약 2,224명 중 약 1,514명이 사망하며 1/3만이 생존한다.
사고 원인 및 과정
둘 모두 빠른 속도로 항해하던 도중 빙산과 충돌 및 구명정 부족으로 대량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다만, 분명 차이점이 존재한다.
타이탄은 최고 속도에 가까운 25노트(시속 46.3km)로 항해하면서 시계가 잘 확보된 환경에서도 갑자기 맞닥뜨린 빙산과 충돌하게 된다.
이는 1800-1900년대 해상에서 만연(?)하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선박' 명성을 위한 상업주의를 잘 표현하고 있다.
해당 시기에 블루 리밴드라는 대서양 횡단 최고 평균 속도 수상이 비공식적 영예로 존재해 왔다. 그리고 작가는 안전보다 속도와 명예를 추구하는 당대의 기술적 오만 및 상업주의를 소설에 정확하게 반영했던 것이다.
한편 타이타닉의 경우 블루 리밴드를 의식해 최고 속도로 항해하다 빙산을 뒤늦게 발견했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훗날 낭설로 밝혀졌다.
타이타닉은 설계 당시부터 속도 경쟁을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세계 최대 규모의 호화 여객선을 목표로 건조됐다. 가장 빠른 배가 아니라 가장 크고 안전하며 호화로운 배가 목표였던 것. 사고 당시에도 최고 속도인 24노트가 아닌 22.5노트로 운항 중이었다.
즉, 소설에서는 작가가 당대 해상에서 만연하던 선박사들의 사고방식을 꼬집고자 최고속도에 대한 욕망을 하나의 장치로 사용했다면..
현실에서는 정시 도착에 대한 상업적 압박 및 안전 주의에 대한 방만과 우연하게 겹친 여러 가지 혼선 및 상황들로 인해 끝내 대형 참사가 발생한 셈.
그리고..
타이탄의 구명정이 24척이고 타이타닉의 구명정이 20척이라는 유사점 역시 작가의 현실 비판으로 말미암은 것이라 볼 수 있다.
당시엔 규정이 기술력을 따라잡지 못해 이 구명정 수를 승객 수가 아닌 선박의 톤수를 기준으로 삼았다.
때문에, 10,000톤 이상의 선박은 16척의 구명정만 설치하면 그만이었다.
이로 인해 소설에서 40,000톤이 넘어가는 타이탄은 승객수가 3,000명에 달하는 데도 고작 24척의 구명정만을 탑재한다.
한편, 현실 속 타이타닉 역시 갑판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고작 20척의 구명정만을 탑재한다. 법적 최소치 16척에 관행적 추가분인 접이식 보트 4척을 추가한 것이다.
즉, 당시 대형 여객선에선 갑판의 미관과 효율성을 따져 16척에다 관행적 추가분을 추가해 20-30척 사이에서 설치하는 게 일종의 암묵적 관행이었다.
작가인 로버트슨은 바로 이같은 업계의 생리를 비판하고자 현실적인 모습을 그려냈고, 현실 속 타이타닉 역시 그러한 생리를 따르고 있었던 것.
선박 제원
소설 속 타이탄: 길이 244m / 총톤수 45,000톤 / 3축 스크루 프로펠러 추진 방식 / 마스트 수 2개 / 최고속도 25노트 / 총탑승 가능 인원 3,000명 / 사고 당시 탑승 인원 약 2,500명
현실 속 타이타닉: 길이 269.1m / 총톤수 46,328 / 3축 스크루 프로펠러 추진 방식 / 마스트 수 2개 / 최고속도 24노트 / 총탑승 가능 인원 3,500명 / 사고 당시 탑승 인원 약 2,224명
보다시피..
아주 흡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오차율은 약 10% 정도다.
그리고..
이와 같은 유사성은, 작가 로버트슨이 현장 업무뿐만 아니라 얼마나 당대 선박 산업의 흐름을 잘 읽고 있었는지를 방증한다.
타이탄과 타이타닉 모두 당시 조선 기술로 구현 가능한 최대 규모의 호화 선박 기술 제원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말인즉슨, 로버트슨이 당대 최첨단 대형 선박들의 제원을 모델로 소설 속 타이탄을 구성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유사성은 예지력이 아니라 그 시절 가장 최신 모델+보편적이고 효율적인 설계를 차용한 것이라는 거다.
물론, 로버트슨이 이런 '기술적 제원' 외에 선박의 규모를 예측한 것은 그 혜안이 경이로울 정도이긴 하다.
당시 최대 규모의 선박은 길이 198m에 톤수가 14,349톤에 불과했다.
로버트슨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해당 소설에서 당시 급변하던 강철 선박 기술의 빠른 발전 속도를 감안해 길이 1.2배, 톤수 3.2배의 증가율을 설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 발전의 추세는 거의 정확했다. 이러한 제원에 따라 현실적인 탑승 가능 인원을 산출했기에 해당 부문 역시 유사성을 갖출 수밖에 없겠다.
허나, 이를 두고서 로버트슨이 '특정 시점'의 미래를 예언했다고 보기는 적절치가 않겠다.
그는 어디까지나 선박 업계의 기술 방향성에 따라 규모가 이런 식의 비율로 발전하겠다고 일종의 추세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기 때문.
이와 같이..
소설가 모건 로버트슨의 1898년 作 <타이탄의 난파>는 1912년 침몰한 타이타닉호와 많은 유사성을 띠고 있다.
허나, 그러한 것들은 이른바 풍부한 현장 지식과 해당 산업 동향에 내한 날카로운 시선 그리고 업계에서 자행되던 관행들을 향한 일종의 경고이자 폭로였던 셈이겠다.
물론, 메인은 주인공의 영웅담에 포커스를 맞춘 모험 활극이고 말이다.
그리고..
본래 해당 소설의 제목은 <무용Futillity>이었으나..
타이타닉 침몰 사건이 발생하면서 해당 책 속 내용과의 유사성에 착안한 출판사가 <타이탄의 난파The Wreck of the Titan>이라는 제목으로 소위 개정판을 출간한 것이었다.
더불어, 타이탄의 본디 마력은 40,000마력이었으나 타이타닉의 51,000마력에 맞추고자 50,000마력으로 수치를 조정하기도. (판본마다 차이 존재)
한편..
출판사의 상업적 꼼수로 재출간이 이뤄지며 해당 서적이 대중의 입방아에 올라 화제를 모으면서 작가인 로버트슨 역시 큰 주목을 받는데..
바라지 않던 형태의 관심과 자신을 예언자로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그는 다음의 말을 남겼다.
"저는 예언자가 아닙니다. 제가 쓰는 글에 대해선 제가 잘 알고 있어요. 그뿐입니다."
참조
<Encyclopedia Titanica>
<Futillity> Morgan Robert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