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건의 범죄를 저지른 완전범죄 그녀
* 본 글은 단순히 범죄사건과 관련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오락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사건의 악랄한 범행성을 알림과 동시에 범죄의 연보年譜를 통한 교육에 그 목적을 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얼굴 없는 여인', '하일브론의 유령'이라 일컬어지며 독일 범죄 역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범죄자 중 하나였던 그녀.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국내에서도 제법 전파가 이뤄지곤 했을 정도다.
허나, 아직 독일 현지만큼의 자세한 내용과 디테일 없이 그저 단편적으로만 소개됐었기에 이번에 이상한 옴니버스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2007년 4월 25일이었다.
독일 남서부의 주요 무역 중심지이자 와인 산업지로 유명한 하일브론에서 사회적 충격을 야기하는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이날 오후 2시경, 정예 마약 단속반 소속의 22세 여경 미셸은 한 대형 주차장 구석으로 향해 25세 동료와 함께 BMW 순찰차에서 점심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2인조로 추정되는 무장 괴한들이 차량 뒷좌석으로 올라타선 총격을 가했고,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진 공격인지라 조수석의 미셸은 그대로 즉사했으며 그녀의 동료는 심각한 중상을 입고 쓰러진다.
경찰과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두 경관 모두 열려진 차량 양쪽 문 방향으로 바닥에 뉘진 상태였으며, 권총과 수갑은 도난당한 채였다.
제복 차림을 한 수십의 경관들이 갑작스레 살해된 동료의 웃는 얼굴이 담긴 액자를 들고서 흐느낌 속에 행진을 이어갔고, 이는 곧 나라 전체에 충격과 슬픔 그리고 분노를 일으키며 이내 독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범죄 수사를 촉발한다.
범인은 현장에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아니, 그런 것처럼만 보였다.
사람의 눈으로는 쫓을 수 없는 흔적.
그렇다.
순찰 차량 중앙 콘솔과 뒷좌석에서 분자 단위 흔적이 발견됐다.
그 흔적이란, 바로 DNA였다.
현장에서 채취한 미세한 DNA 흔적을 완전한 샘플로 확보하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처음, 사건 수사관들은 안도의 마음뿐이었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강력 범죄 사건에서, 21세기 과학 수사의 총아인 DNA 분석 기술이라면 범인을 특정하는 게 비단 시간문제에 불과하다고 여겼으니까.
그렇게 며칠 후..
연구소로 보내진 DNA 샘플이 독일 중앙 범죄 데이터베이스 조회를 통한 비교 작업에 들어간다.
그리고..
결과를 확인한 분석관은 그 자리에서 망연자실 읊조릴 수밖에 없었다.
"..맙소사.. 그녀야.. 그녀가 또 나타났어."
당시 독일 경찰 내에선 풀리지 않는 불가사의가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1993년부터 강력 범죄 현장에서 발견되던 동일범의 DNA 흔적이었다.
이 DNA 흔적은..
1993년 5월부터 2007년 4월 경관 피습 사건에까지, 총 4명의 살해 사건 및 20건이 넘는 강도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바가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DNA 샘플 분석 결과, 여성의 DNA로 판명 났다.
말인즉슨..
정체불명의 여성 하나가 15년 가까이 정체가 탄로 나지 않은 채 다음과 같이 갖은 강력 범죄들을 저질러왔다는 것.
1993년 5월 25/26일, 독일 남서부 보석의 도시 이다르-오버슈타인. 62세 여성이 살해된 현장의 컵에서 그녀의 DNA 흔적 발견.
2001년 3월 24일, 독일 남서부 국경 인접 프라이부르크임브라이스가우. 61세 남성이 살해된 현장의 주방 서랍에서 그녀의 DNA 흔적 발견.
2001년 10월, 독일 남서부 휴양지 게롤슈타인. 한 삼림 지대에서 발견된 헤로인이 담긴 주사기에서 그녀의 DNA 흔적 발견.
2001년 10월 25일, 독일 남서부 라인강 인근 부덴하임. 밤 중에 침입 사건이 있었던 캠핑카 현장의 쿠키 부스러기에서 그녀의 DNA 흔적 발견.
2004년 9월, 프랑스 동부의 역사적인 와인 생산지 아르부아. 보석상을 상대로 한 강도 사건 현장의 모조 권총에서 그녀의 DNA 흔적 발견.
2005년 5월 6일, 독일 남서부의 포도주 유명 도시 보름스. 살인 미수 총격 사건의 발사체에서 그녀의 DNA 흔적 발견.
2006년 7월 6일, 오스트리아 중북부 마우트하우젠. 한 전자제품 매장의 강도 사건 현장에서 그녀의 DNA 흔적 발견.
2006년 10월 3일, 독일 남서부 헬러 강 인근 부르바흐. 주상복합 건물 강도 사건 당시 창문을 부수는 데 사용된 돌에서 그녀의 DNA 흔적 발견.
2007년 3월, 오스트리아 중북부 구센 강 인근 갈노이키르헨의 한 안경점 강도 현장에서 그녀의 DNA 흔적 발견.
기타 2003년-2007년 사이 독일 서부, 남서부, 오스트리아 북부에서 20건 이상의 강도 및 절도 사건에서도 그녀의 DNA 흔적 발견.
한편..
2007년 이후에도 갖가지 범죄 현장에서 해당 여성의 DNA 흔적이 발견된다.
그녀는 주로 독일에서 암약했으나,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에서도 흔적이 발견되곤 했다.
독일 전역에서 100명이 넘는 수사관과 검사들이 독일의 FBI인 BKA와 공조해 수백이 넘는 사건 파일을 기록해 가며 1만 시간을 훌쩍 넘기는 초과 근무를 펼쳐왔건만, 그녀의 정체는 15년 넘도록 여전히 갈피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법 집행 기관 내에서 은밀하게 마치 볼드모트마냥 입에 담기조차 꺼려지는 존재였던 그녀는, 2007년 4월 경관 살인 사건을 계기로 독일 내 모든 언론 및 미디어에 의해 그 존재가 광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한다.
이제 독일에서 그녀는 경관 살해 장소였던 지명을 따 '하일브론의 유령'이라고 부르거나, 혹은 그간 15년 동안 연이어 완전 범죄를 저지른 것을 들어 '얼굴 없는 여인'이라 칭하기 시작했다.
얼굴 없는 여인.
그녀는 15년 동안 좀도둑질부터 살인에 이르기까지 40건에 달하는 갖가지 범죄를 자행했으며, 믿을 수 없게도 수사 당국에 어떠한 꼬리도 잡히지 않았다.
15년 동안 자행된 얼굴 없는 여인의 완전 범죄 목록
분류 | 시기 | 장소 | 종류 |
---|---|---|---|
1 | 1993년 5월 | 독일 남서부 이다르-오버슈타인 | 살인 |
2 | 2001년 3월 | 독일 남서부 프라부르크임브라이스가우 | 살인 |
3 | 2001년 10월 | 독일 남서부 게롤슈타인 | 불법 약물 취급 |
4 | 2001년 10월 | 독일 남서부 부덴하임 | 카라반 침입(정원 부지) |
5 | 2003년 1월 | 독일 남서부 디첸바흐 | 사무실 침입 |
6 | 2003년 12월 | 독일 남서부 하일브론 | 차량 절도 |
7 | 2004년 4월 | 독일 남서부 프라부르크임브라이스가우 | 사무실 침입 |
8 | 2004년 9월 | 프랑스 동부 아르부아 | 보석상 강도 |
9 | 2004년 10월 | 오스트리아 남서부 슈타이나흐 암 브레너 | 주택 창고 침입 |
10 | 2005년 2월 | 오스트리아 중북부 안스펠덴 | 식료품점 침입 미수 |
11 | 2005년 5월 | 오스트리아 중부 바트이슐 | 회사 건물 침입 |
12 | 2005년 5월 | 독일 남서부 보름스 | 살인 미수 |
13 | 2005년 7월 | 오스트리아 중북부 갈노이키르헨 | 레스토랑 침입 |
14 | 2005년 10월 | 오스트리아 중북부 로이비흘 | 오토바이 절도 |
15 | 2005년 12월 | 독일 남서부 두를라흐 | 레스토랑 침입 |
16 | 2006년 2월 | 오스트리아 중북부 슐리어바흐 | 호텔 침입 |
17 | 2006년 4월 | 오스트리아 중북부 리트 | 회사 건물 침입 |
18 | 2006년 6월 | 오스트리아 중북부 린츠 | 차량 절도 |
19 | 2006년 6월 | 오스트리아 중부 바트이슐 | 오토바이 판매점 침입 |
20 | 2006년 6월 | 오스트리아 중부 가르스텐 | 레스토랑 침입 |
21 | 2006년 7월 | 오스트리아 중북부 마우트하우젠 | 전자제품 매장 침입 |
22 | 2006년 8월 | 오스트리아 중부 감페른 | 회사 건물 침입 |
23 | 2006년 9월 | 오스트리아 서부 트레펜 | 회사 건물 침입 |
24 | 2006년 10월 | 독일 남서부 자르브뤼켄 | 주택 창고 침입 미수 |
25 | 2006년 12월 | 오스트리아 중북부 디타크 | 회사 건물 침입 |
26 | 2007년 3월 | 오스트리아 중북부 갈노이키르헨 | 안경점 침입 |
27 | 2007년 4월 | 독일 남서부 하일브론 | 살인 및 살인 미수 |
28 | 2007년 5월 | 오스트리아 서부 임스트 | 차량털이 |
29 | 2007년 8월 | 독일 남서부 코른베스트하임 | 주택 창고 침입 |
30 | 2008년 1월 | 독일 남서부 헤펜하임 | 3중 살인 |
31 | 2008년 3월 | 독일 남서부 키어슈트 | 자택 강도 |
32 | 2008년 3월 | 독일 남서부 키어슈트 | 자택 강도 |
33 | 2008년 3월 | 독일 남서부 톨리 | 자택 강도 |
34 | 2008년 3월 | 독일 남서부 니데르스테덴 | 폐쇄 실내 수영장 침입 |
35 | 2008년 4월 | 독일 남서부 리올 | 자택 강도 |
36 | 2008년 4월 | 독일 남서부 오버슈텐펠트-그로나우 | 빈집털이 |
37 | 2008년 5월 | 독일 남서부 자르횔츠바흐 | 회관 침입 |
38 | 2008년 10월 | 독일 남서부 바인스베르크 | 사망 사건 |
39 | 2008년 10월 | 독일 남서부 만하임-네카르슈타트 | 자택 침입 |
40 | 2009년 3월 | 독일 남서부 자르브뤼켄 | 2007년 여름 연쇄 침입 사건 |
그녀의 장기간 행적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주로 독일 남서부 지역을 활동 무대로 삼았으며, 프랑스에서의 보석상 강도 건을 제외하곤 역시 오스트리아 중부-중북부 지역에서 때때로 침입 및 절도 건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다만, 모든 살인 사건 관련은 독일에서만 이뤄졌다.
특히, 2007년 4월 경관 살인 건으로 독일 전역에 자신의 존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음에도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잦은 빈도로 자국 내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은 기묘할 뿐이었다.
얼굴 없는 여인에 대한 기묘한 사실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분명, 그녀가 연루된 40건의 범죄에서 그녀의 DNA 흔적만을 발견했을 뿐 끝내 그 이상은 진척이 없었다.
허나, 몇몇 범죄에서는 범죄자들이 체포돼 유죄 판결을 받기도 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범죄 현장에서 그녀의 DNA 흔적이 발견됨+이후 수사에서 범죄를 저지른 남성을 붙잡음' 식으로 진행되기도 했다는 것.
그렇다.
말인즉슨, 그녀는 단독 범행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공범과 함께 움직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공범으로 붙잡힌 남성들은 침입 및 절도 그리고 강도 건에서였다.
그녀는 살인은 반드시 단독으로 수행하는, 일종의 범죄계의 히트맨과 같은 존재였던 것일까?
한편..
그렇게 붙잡힌 공범들은 슬로바키아인, 세르비아인, 알바니아인, 루마니아인과 같은 동유럽 계통이었다.
허면, 그녀는 동유럽 지하 범죄 조직 카르텔과 어떤 커넥션이 있는 자였을까?
놀랍게도, 이 공범들은 수사 과정에서 끝까지 그녀의 존재를 부인하며 기꺼이 자신들이 모든 죄를 뒤집어썼다.
이건, 범죄 세계에서의 그녀의 위상을 시사하는 방증인 것일까?
그녀는 보안 카메라에 포착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다만, 그녀의 DNA 흔적이 발견된 범행 현장에서 사건 당시 유력한 단독 범행 용의자를 한 목격자가 목도한 적이 있다.
그건 2006년 10월 3일, 독일 남서부 헬러 강 인근 부르바흐에서였다. 어느 주상복합 건물의 유리문에 누군가가 큰 돌멩이를 던져 깨뜨렸는데, 바로 이 돌이에서 그녀의 DNA가 발견됐던 것이다.
그리고..
아래의 몽타주가 이 용의자의 인상착의이다.
또, 2007년 경관 살인 건에서는 현장 근처에서 목격된 잠재적 용의자의 몽타주가 작성됐는데 여기서 여성이 하나 등장한다.
15년 동안 40건의(드러난 것만) 완전범죄를 저지른 얼굴 없는 여인.
독일 범죄 역사에 다시 없을 족적을 남긴 그녀.
그녀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첫 사건부터 짚어나가 보자.
1993년 5월 25/26일, 독일 남서부 이다르-오버슈타인.
사건은 전형적인 은퇴자 커뮤니티인 6세대 주거 단지에서 벌어졌다. 이곳은 언덕가에 위치한 평화로운 주거 단지로, 인근으론 군부대가 넓게 펼쳐진 곳이기도 했다.
25일 정오 무렵, 1층에서 홀로 거주하던 62세의 슐렌거 부인이 이웃과 저녁 인사를 나눈다.
그 이웃이 슐렌거 부인을 다시 마주한 것은 26일 정오 무렵으로, 그녀는 거실 문지방에서 목이 졸려 교살된 채 쓰러져 있었다.
그녀는 앞치마와 슬리 차림이었으며, 집안은 옷장과 서랍들이 온통 헤집어진 상태였다.
과학수사팀이 현장에서 컵과 옷가지, 그리고 꽃집에서 사용되는 철사 하나를 수거해 분석에 돌입한다.
교살은 문제의 철사를 마치 올가미처럼 부인의 목에 두르고서 엄청난 힘으로 조인 것이라 추정됐다.
경찰은 당시 신문이나 잡지 구독 판매원들이 집집마다 초인종을 누르고 방문하던 일이 흔했기에, 근방의 판매원들로부터 수백의 타액 샘플을 채취하나 소득은 없었고 그렇게 사건은 미제로 남게 된다.
피해자인 슐렌거 부인은 결코 유복하지 않았으며 범행 현장인 주거 단지 역시 은퇴 노동자들의 커뮤니티였기에 무언가 큰 금전적 범행을 노리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얼굴 없는 여인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한편, 21세기 들어 DNA 분석 기술이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하며 현장에서 수거했던 컵에서 첫 얼굴 없는 여인의 DNA를 검출한다.
반면, 범행 도구였던 철사 올가미에선 남성의 DNA가 검출됐다.
2001년 3월 24일, 독일 남서부 프라이부르크임브라이스가우.
화창한 토요일이었던 이날 늦은 오후에서 이른 저녁 사이, 61세의 요제프가 부엌에서 자신의 허리띠 세 개로 목이 졸려 교살됐고 이후 월요일 아침에야 시신이 발견된다.
요제프는 남성 하나가 간신히 누울 수 있을 정도로 좁았던 부엌에서 살해됐으며, 사라진 금품은 없는듯했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문제의 허리띠에서는 요제프의 DNA 외에는 발견되지가 않았다. 범인은 사전에 장갑을 끼고서 범행을 저지른 것일까?
한편, 수사관들은 부엌 서랍들을 꼼꼼하게 조사한 끝에 땀자국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분석 결과, 얼굴 없는 여인의 DNA였다.
수사관들은 1993년 사건에서처럼 근방의 잡지 및 신문 구독 판매원 수백을 대상으로 타액을 채취했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요제프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그는 동성애와 소아성애를 지닌 전과자로 주로 도박에 몰두하던 이였다고 이웃들은 전한다. 결코 부유하지 않았으며 차량조차 소유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묘하게도, 당시 한 이웃이 불면증으로 인해 늘상 창가에 앉아 있었음에도 사건 당일 요제프의 집으로 드나드는 이를 본 적이 없었다고.
2001년 10월경, 독일 남서부의 휴양지 게롤슈타인.
한 삼림 지대의 숲에서 산책을 하던 소년 하나가 주사기를 밟는 사고가 발생한다.
이에 부모는 즉각 경찰에 신고했고, 그렇게 수거된 주사기는 연구소로 보내져 분석이 실시됐다.
그 결과, 주사기에선 저급한 불순물이 함유된 헤로인이 검출됐다. 다행히 소년에게 감염 위험은 없었다.
한편, 문제의 주사기에서 DNA 하나가 검출됐는데 바로 얼굴 없는 여인의 것이었다.
2001년 10월 24일에서 25일로 넘어가던 늦은 밤, 독일 남서부 부덴하임.
이곳의 한 주말농장 단지 내 주거용 트레일러에 침입 사건이 있었다.
다친 사람은 없었고 없어진 물건도 없었다. 그리고 바로 옆 캠핑 인원들을 포함한 그 누구도 침입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었다.
당시 현장 수사에서 한 과학 수사관이 기지를 발휘했다. 트레일러 내부의 한입 베어 문 듯한 쿠키가 혹시 범인의 짓이 아니었겠느냐고 추측했던 것.
그렇게 DNA 검사 결과, 쿠키에서 얼굴 없는 여인의 DNA가 검출됐다.
그녀는 무슨 연유로 트레일러에 침입해 그저 쿠키 하나만을 베어 물고는 그대로 방치한 채 현장을 떠났던 것일까?
2004년 4월, 독일 남서부 프라부르크임브라이스가우.
박람회장, 산업 단지, 비행장 사이로 위치한 시립 망명 신청자 및 노숙자 쉼터 사무실에 침입 사건이 발생한다. 밤사이 누군가가 금고를 용접해 절단한 것이다.
금고 용접을 통한 절단은 분명 기술자의 소행임이 확실했다. 게다가 목격될 위험이 큼에도 자행했다는 사실은 이미 사전에 충분히 현장 정보를 확보했음을 의미했다.
현장에선 마시다 만 물병 하나가 발견됐다. DNA 분석 결과 얼굴 없는 여인의 DNA가 검출됐다.
이번에도 대범한 범행과 더불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는 치밀함까지..
더불어 현장에 자신의 흔적을 그대로 방치하는 오만함까지..
수사관들은 근방 지역의 약물 중독자들을 중심으로 수사를 펼치나 성과는 없었다.
2003년을 기점으로 독일 남서부를 비롯해 오스트리아 중부 및 중북부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이어진 침입/절도 사건 현장에서 얼굴 없는 여인의 DNA가 검출됐다.
독일 수사기관은 오스트리아 수사당국과 공조해 대대적인 수사를 펼쳤고, 린츠와 빈 사이의 수많은 휴대전화 통신 기록 및 기지국 조사가 이뤄진다.
그렇게..
마침내 몇몇 사건에서의 범인들을 검거할 수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남성이었으며, 주로 동유럽 출신의 중범죄 전과 소유자였다.
헌데..
이상했다.
이들 모두 검거 후 순순히 자신들의 죄를 자백했건만..
어째서인지 얼굴 없는 여인에 대한 것과 관련해서는 알고 있는 게 없다며 끝끝내 침묵을 지켰다.
앞서 1993년과 2001년의 두 살인 건 외에도, 그녀는 추가로 네 명의 살인에 대해 연관돼 있다.
먼저, 2008년 1월의 3중 살인 건이다.
1월 30일, 독일 남서부 헤펜하임에서 낡은 흰색 포드 에스코트 차량에 세 명의 조지아인이 살해된다. 이들은 총격을 당하거나 기도가 막힌 채 사망했으며, 시신은 차량 채 뻘이 많은 강가의 지류에 유기됐다.
2월 10일, 실종 신고를 받고서 수사를 펼치던 경찰이 범인을 체포한다. 범인은 뜻밖에도 이라크 출신의 범죄수사국 비밀 정보원 남성이었으며, 평소 중고차 딜러로 활동하던 그는 피해자들에게 벤츠를 싸게 판매하겠다고 유인해 포드 에스코트 차량에 태우고는 이후 살해한 것이었다.
2월 27일, 경찰 잠수부들이 현장에서 차량과 시신을 인양한다.
그리고 차량 안팎에서 찾아낸 총 80개의 DNA 흔적을 분석한 결과..
여지 없이 얼굴 없는 여인의 DNA가 검출됐다.
한편, 체포 후 범인은 소말리아인 남성 하나를 공범이었다고 진술했으나 이 얼굴 없는 여인과의 연관성에 대해선 끝내 부정했다.
다음으로, 2008년 10월 독일 남서부 바인스베르크에서 발생한 사망 사건이다.
10월 26일, 한 병원 인근 등산로 주차장 근처 커다란 물웅덩이가에서 45세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여성은 이 병원에서 근무하던 사람으로, 외상의 흔적이나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여성은 자신의 차량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쓰러져 있었다. 평소 내성적이고 친절한 성격의 그녀였기에 주변에 원한을 산 적은 없었다.
경찰은 수사를 이유로 사망 원인을 밝히지 않았으며, 다만 성범죄의 징후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사망자의 차량에선 얼굴 없는 여인의 DNA가 검출됐다.
총 6명의 사망 관련됐으며, 30건이 넘는 침입/절도/강도 건을 일으킨 얼굴 없는 여인.
그녀는 전과가 없으며, 드러난 것만 40건의 범죄 가운데에서 부주의하게(또는 오만하게) 자신의 DNA를 남겨두고서도 결코 잡힌 적이 없다. 또 감시카메라에 찍힌 적도 없다.
그녀는 때때로 다른 범죄자들과 어울려 공모를 하는데, 정말 이상하게도 이 공범들은 체포된 뒤 결코 그녀에 대한 진술을 하지 않는다.
그녀가 저지르는 범죄 아이덴티티는 프로파일링이 불가능할 정도다.
다만..
독일의 각 기관별 법의학자 및 분자생물학자들이 만장일치로 얼굴 없는 여인이 유전학적으로 명백히 여성이라 입을 모았다는 점이겠다.
이처럼 범죄 역사에서 유례가 없던 여성의 장기간 연쇄적인 중범죄 및 규칙적이지 않은 범행 방식과 더불어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없는 공범들과의 공모라는 사실로 인해..
그나마 다음과 같은 프로파일링만이 가능할 뿐이었다.
"25-50세 사이의 여성. 약물 중독 가능성 있음. 독일 서부와 남서부의 경계 지역인 라인란트팔츠 또는 바덴뷔르템베르크주에 거점을 두고 있을 가능성 있음. 혹은 오스트리아 독일 남부 경계와 맞닿은 오스트리아 중북부 오버외스터라이히주의 거점 가능성도 있음.
주로 교외나 소도시 또는 대도시 외곽 지역의 범죄 현장을 사전에 잘 파악하는 감각을 지님. 때로는 필요로 인해 오토바이나 전자제품 혹은 차량을 절도함.
임기응변에 능하고 유연하게 행동하며 현장에서 쿠키를 먹거나 음료를 마시는 등 대범함과 자신감을 내보임. 범행 중 발각되는 순간이 닥치면 그때까지와 다르게 극도로 잔혹하게 대상자를 공격."
한편..
독일 프라이부르크 경찰의 수석 형사인 베테랑은 이 얼굴 없는 여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언젠가 이 여성을 취조실의 내 앞에 앉히게 되면, 함께 커피를 마시며 어떻게 나를 포함해 다른 모든 전문가들과 프로파일러들을 오래도록 농락할 수 있었는지 물을 겁니다.
제 이론은 뭐냐고요?
단순합니다. 행운. 이 여성은 목숨이 30개인 고양이에 불과합니다. 그 행운 중 하나가 바로 2005년 5월 케이스에서였죠."
2005년 5월 6일, 독일 남서부 보름스.
이 사건은 얼굴 없는 여인과 관련해 가장 기묘하면서도 그녀에게 가장 근접했던 사건이다.
이날 해당 지역의 한 형제 사이에서 주도권을 둘러싼 격렬한 다툼이 벌어졌다. 다툼 끝에 동생이 형에게 총을 여러 발 발사해 중상을 입혔는데, 수사관들은 현장에서 총알 하나를 수거해 DNA 분석을 실시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총알에서 얼굴 없는 여인의 DNA가 검출됐다.
즉, 이 형제와 얼굴 없는 여인이 분명 어떠한 관계가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문제의 총기는 형제의 부친이 생전 소유하던 것이었다.
허면, 얼굴 없는 여인은 바로 이 형제의 부친과 어떤 연관이 있던 것이었을까?
한편, 이 형제의 가문은 이른바 떠돌이 민족이라 불리던 혈족 출신이었다.
그렇게 경찰은 얼굴 없는 여인이 과거 형제의 부친에게 총기 또는 최소한 총알을 직접 건네줬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선 끈질기게 가문을 거슬러 올라가 주변인으로까지 추적을 뻗어나가나..
결국, 끝내 연관 가능성이 있는 어떤 인물도 찾아내지 못한다.
얼굴 없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독일 언론 및 미디어와 다큐 등의 컨텐츠를 통해 전역에 전파된 데 이어 거액의 포상금도 걸렸건만..
도통 그녀의 정체는 파악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허나..
오랜 기간 여러 케이스가 쌓이면서 독일 경찰은 다음의 두 가지 시나리오로 가능성으로 좁힐 수가 있었다.
"지하 범죄 조직 카르텔에서 은밀하게 이른바 '위장용 DNA 샘플'이 사용되고 있다. 이 샘플을 교묘하게 범죄 현장에 남기면서 수사에 혼선을 야기하는 것이다."
"DNA 분석 과정에서 샘플 채취에 사용되는 면봉 자체에 오염이 있었던 것일 수 있다. 그렇기에 오염의 원인자였던 인물의 DNA가 반복해서 검출됐던 것이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웠다.
얼굴 없는 여인이 관여된 40건의 범죄 중 공범인 이들이 대부분 동유럽 계통이긴 했으나, 이들이 어떤 특정 카르텔에 몸담아 서로 간에 커넥션이 있는 것이라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첫 번째 사건이자 첫 번째 살인 건의 경우 1993년에 시작됐으며 이어 2001년부터 본격적인 연쇄 범죄가 발생했는데, 이 무렵엔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일선 수사기관에서도 범죄 현장에서의 DNA 샘플 채취와 분석 및 검출 작업은 그 개념 자체가 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그렇다면 두 번째 시나리오는?
해당 시나리오는 2009년 초부터 대두되던 시나리오였다.
이는 특정 면봉 수확 및 포장 단계를 비롯한 생산 과정에서 사전에 오염이 있을 수 있다는 가설이었다.
하여, 슈투트가르트 지역의 법의학 분석가들이 미사용 면봉들을 통해 얼굴 없는 여인의 DNA를 검출하고자 테스트하나 끝내 그러한 오염의 증거를 찾지 못한다.
하지만..
아주 의미심장한 케이스가 하나 발생한다.
2002년 발견됐던 불에 탄 시신의 신원 확인 작업 과정에서 과거 채취했었던 한 남성 망명 신청자의 지문을 재검토하게 되는데..
바로 여기서, 얼굴 없는 여인의 DNA가 검출된 것!
그렇다면 이 남성 망명자가 얼굴 없는 여인이었을까?
허나, 그는 분명 남성이었으며 이미 2002년에 사망했을 터였다.
하여, 수사관들은 새로운 면봉으로 새로이 DNA 분석을 시도했고..
그 결과, 이번에는 얼굴 없는 여인의 DNA가 검출되지 않았다!
DNA 분석 과정에서 샘플 채취에 사용되는 면봉은 그 생산 단계에서 당연히 살균 처리가 이뤄진다.
그러나, 이러한 살균 과정에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그리고 곰팡이 같은 것들은 제거되지만..
DNA는 파괴되지가 않는다.
그렇다!
얼굴 없는 여인의 정체는, 바로 DNA 분석용 면봉 생산 과정에 참여했던 어느 여성이었던 것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수사 당국은 즉각 문제의 DNA 분석용 면봉 브랜드 사용을 일체 중단한다.
해당 면봉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여러 주에서 애용되던, 그라이너 바이오-원 인터내셔널 AG의 제조 제품이었다.
그리고..
당연히 수사관들과 분석관들 모두 이처럼 DNA 분석 단계 이전부터 이러한 오염물이 존재하리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기에, 지난 15년간 가상의 완전범죄 그녀 얼굴 없는 여인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DNA 분석은 흔적을 식별하는 완벽한 도구였다.
그리고 그라이너 바이오-원 브랜드는 면밀한 생산과 이중 포장 등을 통해 면봉계의 벤츠라 불리던 브랜드였다.
그렇게..
두 자만이 서로 맞물린 결과, 이처럼 한 국가의 역사에 기록될 오점이 탄생하게 됐던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겠다.
문제의 면봉 키트는 독일 남부 오버프랑케현 지방의 포장 업체 뵘 쿤스트슈토프테크니크에서 수작업을 통해 마개 조립 및 플라스틱 튜브로 포장이 이뤄졌다. (얼굴 없는 여인의 주 범행 장소가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특정 지역들에 분포했던 것을 설명)
그리고 해당 작업을 하던 한 여직원의 DNA가 바로 얼굴 없는 여인의 DNA와 일치했다.
직원들은 면봉의 오염을 막고자 보호복을 착용한 채 작업을 진행하나..
문제는, 어디까지나 이는 위생 면봉 키트의 생산 과정이지 'DNA가 없는 면봉' 생산 과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법적 DNA 증거 확보를 위한 구속력 있는 품질 기준-세균 등뿐만 아니라 DNA 오염이 없는 면봉'이라는 개념이 명확하지 않았기에, 독일과 오스트리아 지역 분석관들은 따로 'DNA 분석을 위한 규정을 통해 생산된' 위생 면봉 키트를 사용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2009년 여름을 기해 독일에서는 DNA 채취 과정에서 산화에틸렌으로 세척된 면봉만을 사용하도록 규정했으며, 면봉 조달 역시 경찰 중앙 구매처를 통해서만 이뤄지도록 개정을 한다.
*
그렇다.
'얼굴 없는 여인'은 비단 독일 태생만이 아니다.
그녀는 어느 곳에서든 탄생할 수 있었다.
또 어느 곳의 역사에서든 그 악명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녀는 어떠한 상징성을 지닌 존재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징성은 비단 범죄학 분야에서만 해당하는 게 아닐 것이다.
참조
<DerSpiegel/Jagd auf das Phanto> Jörg Diehl
<Die Zeit/Die Unsichtbare> Christian Schüle
<STIMME/Polizistenmord: Phantom kehrt in die Region Heilbronn zurück> Helmut Buchholz & Andreas Tschürtz
<The Guardian/Germany's hunt for the murderer known as 'the woman without a face'> Ned Temko
<TIME/Germany’s Phantom Serial Killer: A DNA Blunder> Claudia Himmelrei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