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호실의 시신: 미국 범죄 역사상 최악의 밀실 살인
* 본 글은 단순히 범죄사건과 관련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오락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사건의 악랄한 범행성을 알림과 동시에 범죄의 연보年譜를 통한 교육에 그 목적을 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문학작품에서의 '밀실 살인'은 분명 독자를 가슴 뛰게 만드는 최고의 무대 장치 중 하나라 할 것이다.
현실에서의 '밀실 살인'은 그저 모두를 당혹케 만들 뿐이지만.
여기, 미국 범죄 역사에 있어 모두들 가장 당혹케 했던 밀실 살인이 있다.
348호실의 시신.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그날의 참극을..
이 시신은 자신의 육신을 통해 조용히 고하고 있었다.
2010년 9월 15일 수요일, 미국 텍사스주의 거대한 유전 도시 보몬트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날 유명 컨퍼런스 호텔 체인인 MCM 엘레강트 348호실에 그렉 플레니켄이 체크인한다.
언제나와 같은 루틴이었다. 석유업자 그렉(55)은 주말이면 루이지애나의 집에서 머물고, 주중엔 호텔에서 일상을 보내는 소위 여행하는 사업가였다.
이곳 보몬트의 엘레강트 호텔은 그렉이 정기적으로 왕래하는 그의 단골 출장지였다.
호텔 보안 카메라에 따르면, 그렉은 오후 5시 3분경 체크인을 마치고서 룸에 입실했다.
익숙함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애착을 형성하는 법이다.
친형제와 함께 텍사스의 작은 도시에서 유전 임대 사업을 번창시켜 나가던 그렉은, 언제나처럼 평화로운 호텔 룸에서의 저녁을 만끽하고 있었다.
만끽했을 터였다.
수년간 출장 생활을 이어오던 그렉은, 이날 역시 단출하고 깔끔하게 짐이 수납된 여행 가방을 들고서 엘레강트에 입실했다.
입실하자마자 그는 웃옷과 청바지 그리고 때가 잘 탄 갈색 가죽 부츠를 벗어제끼고는 면 파자마로 갈아입었다.
이후 착실하게 루틴을 진행한다.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는 침대에 몸을 뉘어 머리판으로 베개 두 개에다 등을 기댔으며, 바로 옆 침대보로 손수건을 깔고는 그곳으로 필수품(담배, 재떨이, 리모컨, 초코바, 블랙베리 휴대폰)을 배치한다.
담배 필터와 초코바를 번갈아 입에다 넣어가며 TV를 보는 게 바로 그렉을 완성시키는 루틴이었다.
2010년 9월 15일 수요일 밤.
그렉은 348호실에서 자신의 루틴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밤 7시가 조금 넘은 가운데, 담배를 태우며 리세스 크리스피 크런치 초코바를 먹고 루트비어도 마시며 <아이언맨 2>를 관람 중이었다.
관람 도중 아내에게 온 세금 신고 관련 보고에 짧게 답장한 그렉은, 영화 막바지에 다다라 브라운관 너머의 결투씬에 완전히 몰입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몰입이었다.
일순 영화에서와 같은 강렬한 타격을 느낀 그렉은 본능적으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문 쪽으로 상반신을 향했다.
허나, 머지않아 눈앞이 캄캄해지며 의식이 끊기는 바람에 그는 카펫으로 얼굴부터 떨어지며 바닥에 쓰러지고 만다.
다리가 약간 벌어진 채였으며 손 마디론 태우던 담배가 그대로 꽂혀 있었다.
그렇게 그렉은 <아이언맨 2>의 엔딩을 놓치고 만다.
다음 날 아침.
날이 밝자마자 그렉의 아내는 사무실로 확인 전화를 건다.
평소대로라면 부부는 루틴에 따라 아침마다 통화를 했다. 허나, 그렉은 전화를 하지 않았고 전화를 받지도 않았다.
한편, 그렉이 사무실에도 출근하지 않자 동료 둘이 직접 호텔로 찾아가 그의 방문을 두드리기까지 한다.
아무런 응답이 없었고, 이에 호텔 매니저를 불러 문을 열기에 이른다.
이윽고 외마디 외침들과 함께 구급차와 더불어 보몬트 경찰이 현장에 출동한다.
후덥지근한 방 사이로..
회청색 피부로 변한 그렉은 파자마 차림으로 카펫 위에 엎드린 채 웅크린 형태로 쓰러져 있었고, 뻣뻣해진 왼손 손 마디 사이론 다 타고 필터만 남은 담배 한 개비가 꼿꼿이 끼워져 있었다.
한 시간 남짓 흘러..
현장에 전문 수사관인 스콧 애플 형사가 도착했다.
스콧은 경찰 SWAT 팀의 돌격팀장 중 하나로, 일단 일을 맡으면 결코 멈추는 법이 없는 사내였다.
허나..
현장의 흔적은 이런 그를 멈춰 세우기에 충분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았으니까.
"방문은 잠겨있는 상태. 강제 침입 흔적 없음. 다툼의 흔적 없음. 출혈이나 외상의 흔적 보이지 않음. 방 내부는 소지품 등을 뒤진 흔적 없음. 지갑은 벗어둔 청바지 뒷주머니에 그대로 위치. 인근 객실 숙박객들 모두 어떠한 다툼의 소리도 듣지 못함. 호텔 객실 복도 카메라엔 오로지 그렉 만이 입실."
인근 객실의 숙박객들 심문을 모두 마치고서 스콧은 그렉의 사인을 자연사와 같은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렉의 짐가방을 수색하며 약병과 같이 어떤 지병에 대한 방증을 찾고자 한다.
실패였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지병에 의한 것이 아닌, 돌연사였다는 말인가?
한편..
그렉의 사망 소식을 전해들은 그의 가족과 오랜 지기들은 커다란 충격과 슬픔을 맞이한 동시에, 내심 한편으론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다.
55세의 그렉은 평소 과음이나 과식을 하지 않고서 여전히 늘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편이었다.
허나..
평소 습관이 너무 지독했다.
타고난 체질로 인한 체형을 과신한 탓인지 결코 운동을 하는 법이 없었다. 단 것을 너무도 좋아해 초코바를 입에 달고 살았다.
무엇보다도, 성인이 된 이래 매일같이 줄담배를 피워대며 주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할 정도로 극성적인 기침을 연신 내뱉을 정도였다. 처음 소식을 접한 그의 유년 시절 친구는 '그 빌어먹을 담배가 결국 그놈을 잡았구나'라며 한탄했다고.
특히 그렉의 아내가 가장 큰 비통함에 빠졌는데, 그나마 그렉이 자신이 원하던 방식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에서 약간의 위안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렉은 평소 주변에 누군가가 갑자기 죽게 될 때마다 이렇게 내뱉곤 했기 때문.
"운 좋은 자식. 나도 갈 때 저렇게 가고 싶네."
그렉의 사망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의학적인 부문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게만 보였다.
현장 기록용 촬영 작업이 모두 끝나고서 그렉의 시신은 운송 서비스 차량에 실린 채 제퍼슨 카운티 지역 검시관에게 이송됐다.
검시를 맡은 이는 지역의 최고 베테랑이자 명사였던 토미 브라운 박사였다.
토미는 언제나처럼 꼼꼼하게 측정하고 양식을 채워나갔다.
그리고..
정말로 자연사로만 보였다.
토미가 발견한 외상이라고는, 쓰러질 때 얼굴이 카펫에 부딪히며 발생한 좌측 뺨의 2-3cm 찰과상뿐이었다.
아니, 한군데가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음낭 부위의 약 1cm짜리 열상이었다.
또 음낭은 부어오르고 변색된 채였으며, 상처 주변으론 부종 현상으로 인한 소량의 유체 현상이 포착됐다. 사타구니 부위를 거쳐 우측 엉덩이에 이르기까지 멍도 퍼져 있었다.
무언가가 그렉을 세게 가격했음을 의미했다.
토미는 이어 그렉의 시신 흉복부를 절개했다.
그리고..
그 내부는 분명 무언가를 확실히 고하고 있었다.
내부엔 다량의 혈액 및 광범위한 내부 손상이 발견됐다. 장과 위, 간에서 작은 열상이 발견됐으며 일부 소화된 음식물은 장에서 찢겨 나온 상태였다.
또한, 갈비뼈 두 개가 부러지고 심장의 우심방에선 구멍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가격에 의한 심각한 타격과 더불어 과다출혈을 의미했다.
아마, 그렉은 30초도 안 되어 사망했을 게 분명했다.
도대체 그렉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언가에 심히 짓눌려 사망했을까..
폭행에 의해 사망했을까..
토미는 고심 끝에 그렉의 생식기 부위로 강한 발길질과 같은 가격이 가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부검 양식서의 사망 종류란에 '살인'이라 기입한다.
사건이 벌어진 보몬트는 한해 평균적으로 십수 건의 범죄가 벌어지던 제법 평화로운 곳이었다. 이런 십수건의 범죄에서 살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지 않았으며, 대부분 중범죄 카테고리에 끼워넣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헌데..
이런 보몬트에서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양 '완벽 밀실 살인 사건'이 벌어졌다니.
미국 전역에 체인점을 거느린 유명 호텔에서, 보안 카메라에 전혀 모습이 찍히지 않은 채, 침입의 흔적도 없이 건장한 성인 남성을 순식간에 가격으로 살인을 저지른 범인.
(참고로, 미국 내 호텔의 경우 로비나 엘리베이터 또는 주차장과 비상구와 같은 곳에 보안 카메라를 집중하는 편이다. 객실 복도에 설치하는 곳도 당연히 존재하지만 모든 층의 전체 복도에 설치하는 곳은 드물다. 개인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나 관리 시스템상의 효율을 위해서 말이다. 당시 사건이 벌어진 객실은 엘레강트 호텔 내 수영장을 둘러싼 3층짜리 별관에 해당했기에 특히 더 그랬다)
분명, 보몬트는 물론이고 미국 범죄 역사에서도 그 유례가 없는 밀실 살인 사건이었다.
한편..
부검 결과 살인이라는 통보를 접한 사건 담당 형사 스콧은 즉시 검시관인 토미에게 전화를 걸어 적절한 설명을 요구했다.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교통사고 피해자 또는 대형 낙하물 밑에서 발견된 사람에게서나 볼 법한 심각한 내부 손상을 보임'이었다.
도대체가..
도심 복판 유명 호텔 객실 안에서, 게다가 주변 숙박객 누구도 눈치채지 못한 상태로 그러한 피해를 입을 수가 정녕 있는 것일까?
물리적 증거가 전혀 들어맞지 않는 사건을 맡게 된 스콧 형사.
원칙대로 현장 수사를 진행하며 현장과 피해자로부터 가장 지근거리에서 조사에 착수한다.
현장은 그야말로 말도 안 됐다.
'교통사고나 대형 낙하물과의 충돌'을 암시하는 정황은 결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객실 내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의 손길이라고는, 피해자 그렉이 방치한 짐가방이나 침대 매트리스 위 흔적이 전부였다.
그나마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였다.
다른 곳에서 피해를 입은 상태에서 객실 내부의 침대 카펫으로 옮겨져 뉘진 것.
물론, 어디까지나 소거법에 의한 가능성이었지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살인 사건에서는 그 주변인부터 용의 대상으로 조사에 임하는 게 비공식적&암묵적 룰이 아니던가.
스콧 형사는 그렉의 아내와 친형제를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허나, 아내는 그렉과 각별한 사이로 평소 다툼도 없었으며 사업체를 공동 운영하던 친형제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렉은 가족은 물론이고 동료들로부터 두루 사랑받던 캐릭터로, 사교 활동이나 음주에 별반 관심도 없었다. 즉, 자기 영역 안에서 스스로를 즐기는 타입이었다. 당연히 외부로부터 원한을 사거나 깊은 관계를 맺는 일 또한 없었다.
사건 당일은 물론이고 이전에도 문제의 호텔에 일단 체크인하면 그는 도통 객실 밖을 나서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정해진 루틴대로 에어컨 빵빵, 군것질, 담배, 그리고 TV를 보는 게 그의 방식이었다.
하여..
스콧 형사는 여전히 제대로 된 갈피를 구하지 못한 채였다.
다만, 하나 특이 사항을 발견하며 가상의 시나리오를 세울 수는 있었다.
사건 당일, 평소와 다른 이벤트 하나가 발생했었다.
이른 저녁 무렵, 그렉이 머물던 348호실을 비롯해 인접한 349호실과 더불어 아래층 방들에서 일순 정전이 발생한다.
그렉은 프런트에 정전 사실을 알렸고, 전기 차단기를 점검하러 온 직원에게 멋어하며 자신이 전자레인지용 팝콘을 돌리다가 실수로 전기 회로를 차단시켰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스콧 형사는 가상의 시나리오 두 가지를 세운다.
하나는, 그렉의 시신에서 생식기 주변으로 외상이 있는 것을 들어 사건이 성과 관련된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당시 전기 점검을 실시하던 호텔의 유지 보수 직원에겐 놀랍게도 성범죄 전과가 있었다. 혹시, 이 직원이 평소 구비하고 다니는 긴 스크루드라이버와 같은 공구로 일종의 가학적인 공격이 발생했던 것은 아닐까?
허나, 스콧 형사는 해당 직원과의 긴 인터뷰와 알리바이 조사에서 그 의심을 거두게 된다.
다음 시나리오는, 당시 업무로 인해 호텔에 숙박 중이던 한 무리의 노동조합 전기 기술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이들은 석유 회사 관련 업무로 인해 장기 체류 중이었는데, 밤이 되면 음주를 즐기고자 서로의 방에 모이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사건 당일 그렉의 바로 옆 객실인 349호실에선 전기 기술자 둘이 숙박 중이었다.
만약 한창 흥겹게 파티를 즐기던 도중 정전이 발생하고, 취기로 인해 짜증이 난 상황에서 그렉과의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었다면?
정전의 원인이 그렉이었던 것을 알게 된 이들이 348호실 문밖에서 항의하던 과정에서 그렉을 폭행했고, 급하게 문을 닫고 객실로 돌아간 그렉이 충격으로 비틀거리다 침대 근처 카펫으로 쓰러졌던 것이라면?
최초 인터뷰에서 그렉의 바로 옆 객실이었던 349호실의 기술자들은, 옆 객실에서 기침하는듯한 소리를 한 차례 들은 것을 제외하곤 특이 사항이 없었다고 증언했었다.
당시 349호실은 뮬러와 그 룸메이트인 스타인메츠가 숙박하고 있었으며, 음주 파티를 위해 동료인 파사노가 놀러 와 있었다.
이들 셋은 음주를 즐기며 TV로 스포츠 경기를 관람했으며, 이후 파사노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고 룸메이트인 뮬러와 스타인메츠는 아래층 호텔 바로 내려가 한 잔 더 했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스콧 형사의 초동 수사에서도 이들 셋은 그렉과 어떤 연관도 없었으며, 보안 카메라들에 촬영된 영상에서도 수상한 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들은 호기심을 드러내며 옆 객실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고 물었고, 스콧 형사는 뭔가가 피해자를 위에서 짓누르거나 누군가가 건드렸던 것인지 조사 중이라 답했다. 그리고 이에 이들은 호텔 객실 안에 도대체 그런 무거운 물체가 어디있느냐며 반문했다.
한편, 이들 셋은 스콧 형사에게 자신들은 작업으로 인해 몇 달간 더 해당 도시에 머물 것이므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며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줬다.
계절이 바뀌고..
사건에 대한 진전이 없자 그렉의 가족은 5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기에 이르나 이 역시 소득은 없었다.
사건은 완전히 교착에 빠져버렸다.
한편..
이무렵 그렉의 아내 수지가 유명 사립 탐정 켄을 고용하기에 이른다. 수지는 자신의 지인인 한 변호사로부터 켄에 대한 명성과 소개를 받았던 것이다.
켄은 전직 롱아일랜드 경찰이자 마약단속국 DEA 특수 요원 출신으로, 은퇴 후엔 소위 잘 나가는 사립 탐정으로 나날을 보내던 환갑을 바라보는 중년이었다.
그렇게..
그을린 부에 강인한 외모와 몸집, 그리고 목과 손목으로 둘러진 금 장식과 손가락들의 반지들. 늘상 자신감 있는 스타일로 사건 의뢰를 해결해 나가던 켄이 이 완벽 밀실 살인 사건에 도전하게 됐다.
해가 바뀌고 봄이 도래한 시기..
켄은 최초 그렉의 아내 수지를 철저하게 조사하며 살해 동기 여부를 확인했다.
여기서 수지에게 혐의가 없음을 확신한 켄은, 당시 사건 현장에서 사소해도 좋으니 무건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없느냐고 물었다.
이에 수지는, 최초 객실에서 그렉의 시신을 확인했던 그의 직장 동료들이 내부가 너무 후덥지근했다고 전한 것을 떠올렸다.
이상했다. 왜냐하면, 호텔 객실에서의 그렉의 루틴은 분명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는 것이었으니까.
헌데, 그렉이 부지불식 간에 사망했다면 어째서 에어컨이 꺼져 있었단 말인가?
본격적으로 조사에 착수한 켄은 사건이 벌어진 무대 보몬트로 향했다.
켄이 이 도시에서 처음 한 일은, 사건 담당 형사인 스콧 형사와 스포츠 바에서 만나 미팅을 갖는 거였다.
여기서 켄은 늘상 그래왔듯 공조를 위한 존중의 손길을 내민다.
"이봐요, 난 독불장군이 아니랍니다. 멋대로 섣불리 행동하지 않아요. 당신이 함께하기로 결정한다면, 우리는 팀으로 움직이는 겁니다. 내가 하는 일 중에 당신이 모르는 일은 없을 거고, 당신이 하는 일 중에 내가 모르는 일은 없어야 하겠죠. 내가 절대 하지 않을 한 가지는, 당신 사건을 망치는 일이오. 난 이 일을 오랫동안 해왔소. 당신이 책임자라는 걸 압니다. 이건 당신 사건이오. 그리고, 난 당신이 마음에 들어요."
다음날부터 스콧 형사와 켄 탐정은 공조 수사를 펼치기 시작한다.
둘은 문제의 호텔 객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범죄 현상 사진 및 부검 결과, 그리고 스콧 형사가 지난 반년간 진행했던 수사 내용을 공유한다.
한편, 이야기를 모두 들은 켄은 곧장 수지에게 전화를 걸어 그렉이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를 묻는다. 또, 담배를 피울 때 어느 손으로 담배를 들고 피우는지도.
이에 수지는 그렉이 오른손잡이이며 담배 역시 오른손으로 들고 피웠다고 답한다.
통화를 끝낸 켄은 스콧에게 자신의 시나리오를 설명한다.
"그렉은 에어컨으로 방을 굉장히 차갑게 유지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다음날 객실은 후덥지근했다고 하죠. 보몬트의 9월은 빌어먹게 더우니까. 또 오른손잡이에다 담배를 피울 때 오른손으로 드는데, 시신은 왼손에 담배를 들고 있고 말이오.
내 보기엔, 그날 저녁 회로 차단기가 내려가면서 정전이 있었죠? 그때 에어컨이 꺼진 거요. 호텔 측 기록에 의하면 수리공이 저녁 8시 30분경 방문했을 때 그렉은 살아있었고 말이오.
이제 영화가 다시 시작됐는데, 그렉은 에어컨을 켜는 걸 잊었을 거요. 그 사실을 알기까지 방이 더워지는 데엔 몇 분 정도가 걸렸을 테니까. 바로 이 순간에 그렉은 사망했을 거고.
그렉은 객실 노크 소리에 피우던 담배를 왼손으로 바꿔 들고는 오른손으로 문고리를 열었을 테지. 그리고 객실 복도에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심하게 구타당하고는 심방이 파열되고 만 것이고. 직후 범인은 그렉을 객실 내부로 옮겼고 말이오. 만약 떨어진 담배를 범인이 그렉의 손 마디로 끼워 넣은 것이라면, 오른손이든 왼손이든 세심하게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을 테고."
스콧 형사와 켄 탐정은 검시관 토미를 방문해, 그렉이 만약 심한 구타를 당했을 경우 그같은 부검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를 물었다.
"그렇소. 음낭의 열상은 강한 발길질로 인해 생길 수도 있소. 특히 가해자가 코가 단단한 부츠 같은 것을 신고 있었다면 말이오."
스콧과 켄은 서로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단단한 코의 부츠.
그날 음주 파티를 즐기던 옆 객실의 기술자들은 공사장 부츠를 신고 있지 않았는가.
허나..
호텔 보안 카메라에 촬영된 그들의 모습에서 무언가 의심이 갈 만한 행동은 도통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당시 이들이 음주 상태였기에, 혹여 사건에 관여됐다면 부주의하게 다른 동료 중 누군가에게 발설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서 그 주변인들을 인터뷰해 봤으나 소득은 없었다.
그렇게 사건으로부터 8개월이 흘러..
막다른 길목에 부딪힌 가운데..
켄 탐정은 스콧 형사를 졸라 당시 기술자들이 묵었던 348호 객실을 다시금 수색해 보기로 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건 옳은 판단이었다.
스콧과 켄은 348호 객실 내부의 모든 곳을 그야말로 샅샅이 검사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리 성치만은 않은 양 무릎을 꿇어대며 손전등으로 가구 밑 이곳저곳을 비춰봤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사건은 장기 미제가 되는 것일까.
둘이 막 포기하려던 그 순간..
마침내 무언가 주목할 만한 사항을 발견한다.
그것은, 옆 객실과 맞닿는 벽 쪽으로 난 조그마한 마모된 흔적이었다.
흔적은 객실 내부 문손잡이가 닿는 위치에 해당했으며 전형적인 호텔방에 존재하는 그런 세월의 흔적으로만 보였다.
허나, 조심스레 문손잡이를 벽면으로 위치하자..
문제의 마모 흔적은 손잡이가 닿는 곳에서 살짝 우측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문손잡이에 의한 세월의 흔적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게다가, 그 흔적은 비교적 최근에 충전재 덩어리로 메워진 것처럼 보였다.
켄은 구멍 옆에 서서는 그 구멍이 자신의 엉덩이 어느 부분쯤의 높이인지를 체크하고는 그렉이 사망했던 옆 객실 349호실로 향했다.
그리고..
스콧과 켄은 349호실 벽면에서 문제의 구멍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구멍을 발견한다.
그 구멍은 충전재로 메워지지 않은 상태였으며, 348호실의 구멍과 정확히 일직선을 이루고 있었다.
또한, 그러한 일직선상으론 객실의 침대 매트리스가 위치해 있었다.
켄이 외쳤다.
"그렉은 총에 맞았던 거야!"
'349호실의 기술자 중 누군가가 발사한 총이 침대에 누워있던 그렉을 명중했다'
검시관 토미는 자신을 다시금 방문한 스콧과 켄의 열성적인 설득에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던 자신이, 다른 것도 아닌 총상을 놓쳤다고?
여하튼지건..
사실 관계를 확인하려면 시신 발굴 명령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비용이 많이 들고 가죽들에게 충격을 주며 엄청나게 성가신 절차들이 요구됐다.
무엇보다도..
그렉의 시신은 화장됐기에 더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하여..
셋은 부검 사진을 하나씩 짚어가며 되새김질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심장 사진에 이르렀을 때 켄이 외쳤다.
"이건 망할 총알구멍이입니다, 박사님!"
토미는 다른 장기에서처럼 이것은 걷어차이거나 둔기로 가격당했을 때의 흔적으로도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이처럼 보통 우심방이 터진다고도 덧붙였다.
"빌어먹을 총알구멍이라니까요!"
켄의 닥달에 토미는 사진을 다시 확인하고는, 이내 머릿속으로 다른 장기들의 사진과 대조해가며 상황을 종합해 나갔다.
분명, 명백하게 보이는 총알의 출구 구멍은 없지만..
이어 토미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총알구멍이네.. 언론에서 날 죽이려 들겠군.."
사건 당시 그렉의 옆 객실 349호실은 뮬러와 그 룸메이트인 스타인메츠가 숙박하고 있었으며, 음주 파티를 위해 동료인 파사노가 놀러 와 있었다.
2011년 6월 1일.
스콧 형사와 켄 탐정은 비행기를 타고서 인터뷰를 위해 스타인메츠가 거주하는 위스콘신까지 찾아간다.
그리고..
둘은 각자 굿캅 배드캅 역을 충실히 수행하며 스타인메츠를 은근히 압박했다.
"이봐, 그날 정말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봐. 우린 사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아니까. 뮬러와 함께 나란히 감옥에 가고 싶은 건가?"
"..제가 왜 감옥에 가야 한다는 거죠?"
"제가 잠깐 말해도 될까요? 좋아요. 켄이 말했듯이, 우린 그날 거기서 일어난 일을 모두 알고 있어요. 당신은 그저 친구를 보호하려고 하는 거죠. 그래요. 그건 고결한 행위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 자신과 당신의 가족 전체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는 거예요.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인가요? 아니오, 그렇지 않다고요."
"그래, 정말 가치 없는 일이야. 그러니까, 그냥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줘."
그렇게..
당시 349호실에 놀러 갔었던 파사노로부터 이미 인터뷰 과정에서 진술을 확보한 스콧과 켄은 스타인메츠에게서도 성공적으로 진술을 받아낸다.
파사노와 스타인메츠의 진술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았다.
"사건이 있었던 2010년 9월 15일 수요일 밤.
뮬려와 스타인메츠는 자신들이 묵고 있던 객실로 파사노를 초대하고는 다 같이 맥주를 마시며 스포츠 경기를 관람한다.
그렇게 한창 취기가 오른 가운데 뮬러가 파사노에게 자신의 차량에서 위스키 한 병과 자신의 권총 9mm 루거도 가져오라고 한다.
파사노가 위스키와 권총을 가지고서 돌아왔고, 뮬러는 권총을 꼬나들고는 위협하며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뮬러가 스타인메츠를 향해 권총을 치켜들었다. 스타인메츠는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욕지기를 뱉어냈다.
뮬러는 이어 파사노를 향해서도 권총을 치켜들었다.
헌데, 취기가 올랐는지 그만 파지를 부주의하게 하며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채 한 발이 발사된다.
최초, 파사노는 자신이 총에 맞은지 알고서 그대로 얼어버린다.
허나, 총알은 파사노를 지나 뒤쪽 벽면에 명중했다.
셋은 잔뜩 겁에 질려 버렸고, 뮬러는 총을 싸서 차에 다시 갖다 놓았으며, 파사노는 화가 단단히 나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 직후, 뮬러와 스타인메츠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자 아래층 호텔 바로 향해 자정 넘도록 술을 들이킨다."
2010년 9월 16일 목요일 아침.
그렉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돼 348호 객실로 경찰과 들것이 오가면서..
뮬러와 스타인메츠는 지난밤 총격으로 이 남자가 사망한 것이라 여기며 두려움에 떨게 된다.
총격 당시 옆 객실로 가 안전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서 자신들의 놀란 가슴만을 진정시키고자 호텔 바로 향했었던 둘은, 그제야 불길한 직감이 현실과 맞닿고 있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불안감은 객실로 난 총알구멍을 치약 따위로 메꾸는 것 정도론 해결되지 않았다.
헌데..
이 둘이 경찰에 진실을 고하기를 주저하는 동안..
뉴스에선 총격이나 총상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었기에 스스로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더불어..
뮬러는 자신의 총을 한동안 차량에 숨긴 채 도시를 떠나기 전 변호사와 접견을 가졌고, 여기서 부검 보고서를 입수한 변호사로부터 그렉의 사인이 낙하물 또는 가격에 의한 심장마비였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이에 뮬러는 문제의 총기를 변호사의 금고에다 보관하기로 하고는 도시를 떠난다.
자, 이게 '348호실 완전 밀실 살인 사건'의 전모였다.
*
만약에..
뮬러와 스타인메츠가 사고 당시 그렉의 안전을 확인했거나 다음날이라도 경찰에 진실을 고했더라면..
뮬러는 징역형을 피했을 가능성이 높다.
허나, 그는 끝끝내 내면의 불안감과 양심을 외면한 채 남겨진 그렉의 유가족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한편..
8개월 간의 추적 끝에 수수께끼가 풀리면서..
2012년 10월 29일, 텍사스 법정에선 최종적으로 뮬러에게 과실치사 최고 형량의 절반인 10년 형을 선고한다.
우발적인 총기 발사에 대해 다른 여느 주보다 관대한 텍사스 법정이었던 점과, 뮬러가 사건의 전말을 내심 알고 있었으면서도 고의적으로 은폐의 의도를 행했다는 법리적 해석이 범벅된 결과였다.
이날 법정에서 그렉의 아내 수지는 발언 기회를 얻어 뮬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한다.
"저는 당신의 얼굴, 당신의 눈을 마주하고서 그저 직접 말할 기회를 갖기 위해 2년을 넘게 기다렸습니다. 당신이 남편을 살해했어요. 당신이 의도적으로 한 것은 아니나 어쨌든 당신은 남편을 살해했어요. 당신이 했던 모든 거짓말들, 그리고 모든 의도적인 이기적인 기만들, 모든 은폐를 당신은 몇 번이고 반복했어요.
당신은 상대를 제대로 만난 거예요. 나는 내 평생을 바쳐 당신을 추적했을 거야. 그리고 마침내 당신을 찾았지. 그렉을 살해한 살인자. 내가 이렇게 너를 정의의 심판대에 세웠다."
참조
<ABC News/The Mystery Is Finally Solved>
<People/Police Thought Man in Room 348 Died of Natural Causes. The Truth Was Buried Inside His Body> Christina Coulter
<Vanity Fair/The Body in Room 348> Mark Bow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