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기밀 시공간 이동 프로젝트 음모가 폭로되다
* 다음은, 본문 텍스트으로 들어가기 전 내용 파악을 돕기 위한 전반부 개요 및 요약 AI 프레젠테이션입니다. 이미 정독&완독을 결심한 분이라면 스킵하고서 본문으로 들어가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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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itgeist, 시대정신.
미국의 90년대 시대정신.
이런 거창한 화두에 조금은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나, 그 무렵 그곳의 대중 인식 속 시대정신으론 '미스터리&음모론 컨텐츠'가 뿌리 깊고 높도록 가지가 치켜세워졌었다.
드라마 <X-파일>이 전역에 신드롬을 형성하고, '정부의 외계인 은폐' 음모론이 마침내 완성형으로 진화를 끝마쳤으며, 누구든 '정부가 우리 몰래 사악한 짓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믿을 준비가 돼 있었다.
모형 마네킹을 어설프게 해부하는 영상을 가지고서 '로스웰에 불시착한 외계인의 부검 장면'이라며 방송 역사상 손꼽히는 시청률을 기록한 시대이기도 하다.
이런 시대정신의 초입이었던 1992년, 프레스턴 니콜스라는 남자가 <The Montauk Project: Experiments in Time>이라는 서적을 출간한다.
그에 따르면, 70-80년대에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동쪽 끝 몬탁 포인트에선 미 정부의 공식적인 지원 없이 은밀하게 기밀 프로젝트가 운영됐다.
프로젝트는 초자연적 능력과 시공간 이동을 연구하던 것으로, 미군이 발견한 100억 달러 상당(현재 가치로 약 2,000억 달러)의 나치 금괴를 자금 기반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해당 프로젝트는 존 폰 노이만이 개발한 '컴퓨터를 이용한 인공적인 지구 환경 시뮬레이션 송출 기술'과, 니콜라 테슬라의 설계를 기반으로 제작된 특수 수신기 등을 통해 진행됐다고 한다.
프로젝트 결과..
피실험자는 갖가지 믿을 수 없는 초자연적 능력을 선보였으며 심지어 시공간 여행에도 성공했단다.
그리고 훗날..
당시 프로젝트의 기술 감독관 중 하나였던 전기공학자 프레스턴 니콜스가 가장 강력한 초자연적 능력 보유자였던 피실험자와 함께 <The Montauk Project: Experiments in Time>를 통해 내부고발 폭로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동쪽 끝으로 자리한 몬탁에는 캠프 히어로라는 명칭의 폐쇄된 공군 기지가 존재한다.
이곳은 1969년 공식적으론 폐쇄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거대한 레이더가 흉물처럼 세워진 가운데 지하 시설의 입구는 봉인된 채 음산함을 자아내며 지역 주민들의 온갖 상상력을 자극하던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막연한 상상에 구체적인 서사를 부여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프레스턴 니콜스였다.
본 글에선 니콜스가 주창하던 '몬탁 프로젝트 음모론'을 아주 디테일하게 소개할 것이다.
해당 음모론은 그간 롱아일랜드 지역 현지의 대표적인 현대 신화이자, 비록 당대의 미스터리&음모론 컨텐츠로는 꼽히지 못하나 분명 그 컬트적인 매력으로 인해 마니악한 팬덤이 형성됐었던 주제이다.
지금껏 몬탁 프로젝트 음모론에 대한 글은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인터넷상에서도 정확하고 세세한 관련 글 없이 모두 겉핥기식으로만 존재한다.
하여, 언제나 그랬듯 이번에도 이상한 옴니버스에서 총망라된 구성으로 본 주제를 다루고자 한다.
이야기 서순은 순차적으로 진행되며, 모두 니콜스(몬탁 프로젝트의 기술 감독관이었다고 주장하는)의 서적 <The Montauk Project: Experiments in Time> 속 주장을 기본으로 한다.
1980년대.
40대의 뉴욕 롱아일랜드 토박이였던 프레스턴 니콜스는 주경야독을 충실히 실천하고 있었다.
그는 낮 동안엔 지역의 유명 방위 산업체 AIL(Airborne Instruments Laboratory)에서 레이더 시스템과 전자기파를 다루던 유능한 전자 공학자였고, 밤 동안엔 무선 주파수인 RF의 전문가답게(?) 텔레파시를 연구했다.
당시엔 심령현상 내지는 초자연현상과 같은 것들이 하나의 대안 학문으로 제법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며 '초심리학자'라는 개념도 존재할 정도였는데, 니콜스는 롱아일랜드에서 심령술사들과 모임을 갖고선 인간의 의식이 전자기파로 전송될 수 있는지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리고..
성과가 있었다.
심령술사들과의 텔레파시 실험 때마다 특정 시간대가 되면 마치 누군가 그들의 뇌파를 방해라도 하는 양 심령술사들이 정신적 혼란을 호소했는데, 여기서 니콜스가 전자 공학도로서의 기술을 발휘해 이 '정신적 재밍'의 원인을 추적하는 데에 성공한 것.
그는 고감도 수신 장비를 동원해 롱아일랜드 전역의 전파를 스캔했다.
덕분에, 410-420MHz 대역에서 통상적인 방송이나 통신 신호가 아닌 매우 강력하고 기이한 펄스 파동이 방출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해당 신호는 인간의 의식을 멍하게 만들거나 우울하게 만드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어 신호 발신의 진원지를 삼각 측량한 결과 놀라운 장소가 지목됐다. 롱아일랜드의 동쪽 끝, 1969년에 이미 공식적으론 폐쇄됐다고 알려진 몬탁 공군 기지 캠프 히어로였다.
당연히 니콜스는 호기심을 참지 않고서 곧장 캠프 히어로로 향했다.
그곳은 '캠프 히어로 주립 공원'으로 지정돼 있었으나 주요 시설물은 접근이 불가능하도록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상태였다.
니콜스가 챙겨간 장비에선 여전히 기지 내부로 강력한 전자기파가 뿜어져 나오고 있음을 가리켰다. 폐쇄된 기지의 거대한 SAGE 레이더는 멈춰 있었으나 지하에서는 분명 무언가가 돌아가고 있었다.
한편..
니콜스는 기지 주변을 탐사하던 중 주변 숲속에 거주하던 노숙자 무리와 마주친다. 그들은 몬탁 지역의 토박이이거나 갈 곳이 없어 흘러 들어온 부랑자들이었다.
헌데, 그들 중 일부가 니콜스를 보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거나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그들은 니콜스를 알고 있었으며, 그를 프로젝트의 책임자 혹은 기술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니콜스는, 기억 속에 자신도 모르는 구멍이 존재함을 직감하기에 이른다.
니콜스는 자신의 과거를 되짚어봤다. 그는 AIL에서 근무했던 기록은 있었으나 1970년대와 80년대 초반의 특정 시기들에 대한 기억이 흐릿하거나 완전히 비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중생활을 했음을 깨닫게 된다. 낮에는 방위 산업체에서 일하고, 밤이나 주말이면 몬탁으로 불려 가 기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그리고 임무가 끝나면 기억 소거를 당한 채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그러다 무언가가 잘못되면서 몬탁의 기억이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 무의식 속으로 파편화됐던 것이다.
이런 니콜스의 기억을 완전히 깨운 것은 한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1989년 7월.
니콜스는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열린 미국 사이코트로닉스(정신과 전자의 합성어. 정신 에너지와 물질 및 기술을 결합하는 초심리학 분야로, 텔레파시나 염력 등을 다룸) 협회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그곳에서 강연과 함께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한 자리에서 한 남성이 접근해 왔는데, 그가 바로 던컨 카메론이었다.
카메론은 니콜스를 보자마자 격렬한 반응을 일으켰다. 그는 니콜스를 알고 있다는 강한 기시감과 동시에 견딜 수 없는 두통과 구역감을 느꼈다.
니콜스 역시 카메론을 마주한 순간 설명할 수 없는 익숙함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의 과거에 깊이 얽혀 있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이에 니콜스는 카메론을 자신의 롱아일랜드 연구실로 데려와 심령 능력을 테스트했다.
여기서..
최면 혹은 트랜스 상태에 빠진 카메론이 전혀 다른 인격체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몬탁 체어'에 앉아 있었던 기억을 토해냈다.
또, 놀랍게도 카메론이 트랜스 상태에서 방출하는 뇌파의 패턴이 니콜스가 수년간 추적했던 몬탁 기지의 재밍 신호(410-420MHz)와 정확히 일치했다.
니콜스는 확신했다.
"이 남자가 바로 그 신호의 송신기였던 거야!"
두 남자가 기억의 퍼즐을 맞추는 과정에서 또 한 명의 결정적인 인물이 합류한다.
바로, 알프레드 바일렉이었다.
바일렉은 자신이 1943년 미군의 기밀 실험 당시 던컨 카메론의 형인 에드워드 카메론이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장교였던 그는 실험 과정에서 시공간이 뒤틀리자 일반병이었던 동생과 함께 패닉에 빠져 현장에서 탈출을 시도하던 과정에 40년 후인 1983년으로 워프하게 된다.
그렇게 둘은 시간의 웜홀로 연결된 몬탁 기지로 빨려 들어가게 됐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1943년 8월 12일경 미군의 공간 이동 기밀 프로젝트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고, 1983년 8월 12일경 마찬가지로 시공간 이동 기밀 프로젝트가 한창이던 몬탁 기지와 마치 운명 혹은 필연과 같이 서로 시간의 웜홀 통로가 형성된 것.
한편..
카메론 형제는 몬탁 기지에서 프로젝트를 감독하던 한 노인과 조우하는데, 그 노인은 바로 1943년 기밀 프로젝트를 담당하던 박사였다.
그리고, 일련의 사태를 파악한 박사는 과거와 미래의 두 실험을 연결하는 거대한 타임 루프가 생겨 지구가 위험해졌으니 다시 과거로 돌아가 그곳의 장비를 파괴하라고 형제에게 지시를 내린다.
이에 웜홀을 타고서 1943년으로 돌아간 형제는, 그곳에서 현장의 발전기와 송신기를 도끼로 깨부수며 실험을 중단시킨다.
이후..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한층 더 복잡(기괴)해지므로 잘 따라와야한다.
카메론 형제 중 형 쪽인 에드워드를 현장에서 체포한 1943년 기밀 프로젝트의 상부에서는, 그가 너무 많은 기밀을 접했다는 이유로 처음엔 처치하려고 마음 먹었었다. (동생 쪽인 던컨은 장비를 파괴하던 와중 재차 시공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1983년의 몬탁 기지로 튕겨 나갔다고)
허나..
과거와 미래 양측의 시공간 실험 가운데에 생성된 변수, 그 변수의 연결고리인 던컨 형제를 함부로 처리했다가 혹여라도 타임라인에 패러독스와 같은 어떤 악영향이 발생할지 모를 일이었다.
하여, 상부에서는 형 쪽인 에드워드 카메론을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어떻게?
여기서 외계 문명이 등장한다.
1940-1950년대에 미국 정부 혹은 그보다 위인 그림자 정부 측에서 시리우스 B 성계의 외계인들과 일종의 협력을 맺게 된다.
외계 문명 측에선 초광속 비행 기술, 마인드 컨트롤 기술, 그리고 훗날 몬탁 체어의 핵심이 되는 센서 기술을 제공했다. 이에 미국 정부 혹은 그림자 정부 측에선 인간의 유전자 등과 같은 무언가를 대가로 지불했다고.
다시 돌아와..
이러한 외계 문명의 기술로 구성된 장치들이 당시의 몬탁 기지에서도 기밀리에 운영 중이었고, 여기서 에드워드는 바로 이른바 연령 퇴행 장치에 넣어진다.
해당 장치는 세포의 생체 시계를 거꾸로 돌려 갓난아기 상태로 되돌리는 기술이었으며, 에드워드는 최면과 세뇌 기술을 통해 기억 일체가 기억의 깊은 무의식 속에 봉인된 채 아기가 된다.
그리곤, 아이 에드워드를 1943년 현재에 두기에 여러 위험 요소가 있기에, 당시 아직 초기형이었던 시간 전송 장치를 이용해 1927년 한 평범한 가정이었던 바일렉 부부의 집으로 보낸다.
그렇게, 에드워드는 기억이 모두 억압된 채 바일렉 부부에게 입양돼 알 바일렉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다.
1988년, 우연한 계기로 무언가를 감상하게 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기 전까지 말이다.
아마..
아직도 머릿속 복잡함이 다 가시지 않았을 텐데..
추가로 동생 쪽인 카메론의 서사는 보다 복잡기괴하므로 마음을 다시 다잡기를..
한편, 현장에서 장비를 깨부수던 중 재차 시공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1983년의 몬탁 기지로 다시 튕겨 나간 던컨.
헌데, 던컨은 연이은 시간 여행의 부작용이었는지 1시간마다 1년씩 늙어가는 급격한 노화 현상을 겪게 된다.
그렇게 단 며칠 만에 노화로 다 죽어가던 던컨. 이에 몬탁 기지의 연구진은 그를 어떻게든 살려내고자 시도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던컨은 기막힌 우연이자 필연적 존재였기 때문이다.
당시 몬탁 기지에는 이미 수년 간 최고의 초자연능력자로 활약하던 피실험자가 있었다. 그게 바로 던컨이었다. (편의상 던컨B로 표기)
몬탁 기지의 연구진은 이 던컨B가 결코 평범한 인간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던컨B의 육체에는 1943년에서 온 영혼과 의식이 깃들여져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1943년에서 시간 여행을 온 던컨A의 영혼과 의식이 바로 그것임을 연구진은 깨닫게 된다.
하여, 연구진은 타임 패러독스를 걱정하게 된다.
던컨B의 영혼과 의식은 본디 던컨A의 것이어야 한다.
허나 던컨A가 여기서 죽어버린다면?
그러니까, 타임 패러독스로 인해 던컨B의 존재에 문제가 발생한다면 일이 어떻게 꼬일지 장담할 수가 없는 상황.
게다가, 던컨A는 1943년 실험에서의 생존자이므로 고유한 전자기적 시그니를 보유하고 있었다. 해당 시그니쳐를 통해 1943년-1983년 간에 이어진 타임 터널을 안정적으로 유지가 가능해 보였다.
또한, 던컨B는 당시 몬탁 기지에서 진행되던 프로젝트의 최고 핵심 피실험자이자 초자연능력자였다.
그래서 연구진은 던컨A의 영혼과 의식을 과거 갓 태어난 던컨B에게 씌우고자 한다.
이건 말했듯 기막힌 우연이자 필연적인 선택인 동시에 결과였다.
몬탁 기지의 장치로 영혼과 의식을 이식하려면 반드시 유전자 레벨과 영적 주파수가 일치해야 했다.
그리고, 이 둘이 일치하는 존재가 바로 기막히게도 던컨B였던 것이다.
에드워드 카메론과 던컨 카메론 형제의 친부였던 던컨 카메론 시니어는, 두 아들을 잃고서 이후 재혼한 뒤 아들을 얻고는 또다시 던컨 카메론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시니어 주니어와 같이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주는 문화 때문이었는지, 혹은 생전 둘째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더 컸는진 몰라도.
즉, 던컨B는 던컨A의 이복동생이었던 셈.
그러므로 유전자 레벨(DNA)과 영적 주파수(이름&정체성) 일치 수준에 도달하는 것.
이에 마치 거부 반응 없이 장기 이식에 성공하는 것마냥, 1983년 노화로 죽어가던 던컨A의 영혼과 의식이 1951년 갓 태어난 던컨B의 육체에 씌워졌고, 훗날 이 던컨B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몬탁 기지에 피실험자로 참여 당하게 된 것이다.
형/실험 당시 해군 장교: 에드워드 카메론, 1916년 7월 15일생
동생/던컨A/실험 당시 해군 수병: 던컨 카메론, 1917년 6월 15일생
몬탁 기지 피실험자/던컨 카메론/던컨B: 1951년생, 던컨A의 이복동생, 1983년 몬탁 기지에서 던컨A의 영혼과 의식이 1951년 갓 태어난 던컨 B의 육체에 이식됨, 70-80년대 몬탁 기지에서 피실험자로 참여 당함, 프로젝트 종료 후 전자 공학자 니콜스와 해후한 것을 계기로 기억을 되찾음
알 바일렉/1943년 에드워드 카메론의 육체 및 영혼과 의식이 강제로 갓난아기화된 뒤 1927년 바일렉 가문으로 보내져 그곳에서 입양, 훗날 '무언가'의 감상을 통해 기억을 되찾고서 니콜스와 던컨B와 함께 동행
카메론(던컨B)과 바일렉(에드워드 카메론)과의 조우 과정에서 서로의 기억을 짜맞추던 셋.
허나, 니콜스는 기억에만 의존하기를 거부했다. 공학도였던 그는 직접 자신들의 기억을 방증해 줄 물리적 증거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이러한 조사 과정 중 그는 롱아일랜드 사우샘프턴에서 잉여 전자 부품을 파는 기이한 노인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이 노인을 닥터 라인하트라고 불렀다.
어느 날, 라인하트는 니콜스에게 자신의 진짜 정체를 밝힌다.
"나는 1957년에 사망한 것으로 위장된, 존 폰 노이만일세."
그렇다.
노인은 자신이 과거 1943년과 1983년 기밀 프로젝트 당시 양쪽에서 모두 실험을 주관하던 책임자, 노이만이었노라 고백했다.
그는 정부가 자신의 천재성을 계속해서 프로젝트에 이용하고자 죽음을 조작하고는, 인격을 분리해 관리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인은 몬탁 프로젝트의 기술적 배경, 특히 1943년 실험 당시의 '시간 기준점 상실' 문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컴퓨터 기술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에, 니콜스는 해당 정보를 통해 기술적 퍼즐을 완성했음과 동시에 노인이 정말로 노이만임을 확신하게 된다.
물론, 물리적 증거 역시 확보에 성공한다.
니콜스는 폐기물 처리장과 군수품 경매장을 샅샅이 뒤진 끝에 몬탁 프로젝트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비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FRR-24라는 무선 수신기였다.
니콜스는 해당 장비를 분해했을 때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는데, 그건 바로 각 수신기 유닛마다 통상적인 군사 장비에선 볼 수 없는 엄청난 양(약 34kg)의 은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었다.
니콜스는 은이 전도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에테르(빛과 힘을 전달하는 매질로 과거 연금술사들의 꿈의 물질) 에너지와 시간 파동을 수신하는 데 특화된 물질이라 결론짓는다.
말인즉슨, 이 장비는 몬탁 체어에서 방출되는 미세한 시간 왜곡 신호를 잡아내기 위한 특수 제작품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확신과 납득의 단계에 다다른 니콜스들.
운명적이게도, 이무렵 니콜스는 또다시 필연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그 대상은, 바로 피터 문이었다.
문은 오컬트와 미스터리에 관심이 많은 작가이자 출판업자였다. 그는 롱아일랜드 지역의 UFO 목격담과 미스터리들을 추적하던 중 니콜스의 존재를 알게 된다.
문은 니콜스를 방문한 자리에서 그의 차분하고 기술적인 설명에 매료 한껏 매료된다.
문은 니콜스의 구술과 메모, 녹음테이프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정리했다. 그는 니콜스의 기술적이고 건조한 설명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서사로 다듬어나갔다.
집필 과정에서 두 사람은 다양한 동시성 현상을 경험한다. 필요한 자료가 우연히 나타나거나 증인이 제 발로 찾아오는 일과 같은 것들이.
그들은 이것이 몬탁 프로젝트가 건드렸던 시간의 파동이 여전히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증거라 여겼다.
그렇게 1992년, 마침내 <The Montauk Project: Experiments in Time>이 출간되면서 미국 현지의 음모론자들과 미스터리 마니아들은 커다란 관심을 보인다.
그리고..
자신도 과거 몬탁 프로젝트에 피실험자로 강제 참여 당했다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들은 니콜스를 찾아와 '당신이 나를 세뇌했었다'고 증언하거나, 잊고 있던 납치 기억이 되살아났다며 호소하곤 했다. 스튜어트 스워들로우 같은 인물은 자신이 몬탁에서 겪은 끔찍한 실험을 상세하게 폭로하며 니콜스의 주장에 힘을 싣기도 했다.
한편, 니콜스는 책 출간 이후에도 끊임없이 감시당하고 위협받았노라 주장한다.
허나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일(비록 자신 또한 세뇌당한 상태였으나 피실험자들을 훈련시킨 책임)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또 인류가 다시는 이런 끔찍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하겠다는 사명감으로 몬탁 프로젝트 시리즈의 후속작들을 계속 집필해 나갔다.
'거대한 국가 권력이 국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개인의 삶과 기억을 어떻게 유린했는지 증명하는 투쟁'
니콜스들이 몬탁 프로젝트 음모론을 강하게 주장하며 내세우는 정당성이다.
니콜스는 자신의 여정이 단순히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과정 뿐만은 아니었으며, 그가 찾아낸 라디오존데의 회로도, 은이 가득 찬 수신기, 그리고 카메론 형제의 텅 빈 눈동자 역시 그들이 겪은 일이 단순한 망상이 아니었다고 웅변한다.
혹은..
그 망상이 너무나 정교해서 여러 사람의 현실을 덮어버린 것일는지 모른다.
자고로 망상이란, 형체가 만들어지면 끝끝내 더할 나위 없이 견고해지는 법이니까.
여하튼지건, 어느 쪽이든 니콜스는 몬탁의 유령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자!
지금부터는!
니콜스들의 이야기가 담긴 서적 속 <The Montauk Project: Experiments in Time> 내용을 본격적으로 소개해 볼 차례다.
처음의 시작과 끝.
그것은, 프로젝트 레인보우에서 있었던 필라델피아 실험에서였다.
1930년대 초, 미 해군은 적국의 레이더 기술의 발달에 대응하고자 함정을 레이더상에서 보이지 않게 만드는 스텔스 기술에 관심을 갖는다. 이에 대한 초기 연구는 역사적인 천재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가 지휘했다.
여기서 테슬라는 고전압과 고주파를 이용해 물체의 주변 공간을 왜곡시킴으로써 빛과 레이더파를 굴절시키는 이론을 정립한다.
핵심은, 함선 주변에 강력한 전자기장을 회전시켜 일종의 전자기 병(Electromagnetic Bottle)을 생성하는 것. 그럼 이 병 안의 물체는 외부의 관찰자에게서 없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허나, 테슬라는 해당 기술이 무생물에게는 효과적일지 모르나 생명체에 적용될 경우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할 것임을 예견했다. 그는 생명체에겐 따로 시간 기준점이라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그는 1942년 실험을 의도적으로 태업하며 지연시켰고, 해군 수뇌부와의 갈등 끝에 프로젝트에서 배제된다. 일설에 의하면 그가 자신의 죽음을 위장하고선 잠적했다고도 한다.
이런 테슬라의 뒤를 이은 것은, 또 다른 역사적인 천재 수학자 존 폰 노이만 박사였다.
그는 테슬라의 접근법관 달리 철저한 수학적 계산에 의존했다. 아인슈타인의 통일장 이론을 기반으로 중력과 전자기력을 통합해 공간을 접는 방식을 고안한 것.
노이만은 함선에 거대한 제너레이터와 변조기를 설치했다. 제너럴 일렉트릭(GE)사의 75KVA 발전기 2대, 거대한 RF 송신기 4개, 그리고 자기장을 변조하기 위한 3,000개의 6L6 파워 튜브가 사용됐다. 이 장비들은 함선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코일 역할을 했다.
그렇게..
함선 주위의 자기장을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으로 고속 회전시켜 레이더 신호를 튕겨내거나 흡수하는 방식이었다.
실제 작전 도입 전 최종 실험은 1943년 8월 12일, 필라델피아 해군 조선소에서 구축함 USS 엘드리지호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노이만이 스위치를 켜자..
배 주변으론 윙윙거리는 소리와 함께 짙은 녹색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어..
배가 레이더에서 사라진 후 육안으로도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됐다. 광학적 투명화에도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물리적 공간 이동을 일으키며 수백 km 떨어진 버지니아주 노퍽 항구에 나타났다가, 수 분 후 다시 필라델피아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약 4시간의 시간 차이점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렇듯 예상 못한 결실(?)과 함께..
돌아온 배의 상태는 그야말로 지옥도였다. 일부 선원은 선체 격벽의 강철에 몸이 융합된 채였다. 분자 단위 말이다. 비록 목숨은 건진 상태였으나, 곧 극심한 고통 속에 절규하다 사망해 버렸다.
또 일부 선원은 이유 없이 몸에서 불이 피어올라 그대로 타올랐다. 이는 전자기적 과부하로 인한 인체 발화 현상으로 추정됐다.
이 중 가장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현상은 동결이었다. 선원들이 시간의 흐름에서 튕겨져나가면서 허공에 굳어버리거나 반투명해졌다. 동료들이 그들을 만져서 마치 얼음땡하듯이 현실 시간대의 흐름 끌어와야 했다.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그들은 영원히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결과적으로..
해군은 해당 참사에 경악하며 프로젝트를 즉각 중단시켰다.
물론, 관련자들의 입도 철저하게 틀어막았다.
한편, 노이만은 맨해튼 프로젝트(원자폭탄 개발)로 전출됐다.
노이만은 이후 이 뼈아픈 실패를 복기하며 중차대한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은, 지구라는 행성이 제공하는 고유의 전자기적 배경과 더불어 시간적 기준점에 의존한 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헌데, 강력한 전자기 병 안에 갇힌 인간은 지구의 자기장과 차단되면서 해당 기준점을 상실하게 된다. 그 결과 육체와 영혼(또는 의식)이 분리돼 시공간을 표류하게 되는 것이다.
훗날 몬탁 프로젝트의 제1목표는..
바로 이 인공적인 시간 기준점을 생성해 인간을 전자기장 속에서도 안전하게 보호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필라델피아 실험이 중단된 후, 연구의 방향은 대기 과학과 심리학이 결합된 피닉스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라이히의 발견이 있었다.
심리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던 프로이트의 제자로, 성적 에너지와 생명 에너지의 관계를 연구하다가 학계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았던 라이히. 그는 우주에 충만한 푸른색의 생명 에너지인 오르곤과, 방사능이나 오염에 의해 변질된 죽은 에너지인 데드 오르을 발견했노라 주장하던 인물이었다.
라이히는 긴 파이프들을 물에 연결해 대기 중의 데드 오르곤을 흡수하고 오르곤은 방출함으로써, 폭풍을 없애거나 비를 내리게 하는 클라우드 버스터를 개발했다.
미 정부는 이 기술을 기상 무기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19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까지 해당 기술을 이용해 롱아일랜드 연안의 기상을 마음대로 주물러졌으며, 이것이 훗날 몬탁 프로젝트에서 사용될 '전자기파를 이용한 에너지 및 공간 조작'의 기초 데이터가 됐다.
1950년대 후반.
미 정부는 필라델피아 실험의 실패 원인을 규명하는 동시에 피닉스 프로젝트의 전자기파 기술을 결합한 새로운 통합 프로젝트를 출범시킨다.
이것이 피닉스 프로젝트 II이다.
브룩헤이븐 국립 연구소가 본거지였으며, 노이만이 다시금 지휘봉을 잡았다.
한편..
지난 10년의 연구 끝에 노이만은 필라델피아 실험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컴퓨터에 있음을 깨닫는다. 이에 그는 진공관 컴퓨터와 초기 트랜지스터 기술을 이용해 가상의 지구 환경을 시뮬레이션하는 데 성공한다.
지구의 배경 전자기장과 시간 기준점을 컴퓨터로 계산해 전자기 병 안에 있는 피험자에게 송출하는 것이 원리였다. 그러면 피험자는 자신이 여전히 지구상에 있다고 착각하게 되면서, 영혼(의식)이 육체에서 분리되는 것을 막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지난 필라델피아 실험에서와 마찬가지로..
연구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부작용이자 성과가 발견됐다.
전자기 신호(특히 425~450MHz 대역)가 인간의 뇌파와 공명하면서 피험자의 생각이나 감정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연구진은 10년의 연구 끝에 인간의 뇌에 원격으로 명령을 심어 넣는 기술을 완성시킨다.
그렇게..
1967년경.
연구진은 최종 보고서를 자랑스레 의회에 제출한다.
"우리는 인간의 의식을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허나, 그들의 바람과 달리 의회는 경악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국민을 세뇌하는 기술은 용납될 수가 없던 것이었다.
하여, 1969년경 의회는 프로젝트의 즉각적인 해체와 더불어 예산 전면 삭감을 명령한다. 브룩헤이븐 연구소의 관련 부서 또한 공식적으로 폐쇄됐다.
하지만..
군부 내에 영향을 끼치던 어둠의 세력, 즉 비밀 정부는 이 강력한 무기를 버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의회의 감시가 닿지 않는 곳, 즉 버려진 군사 기지로 장비를 옮겨 프로젝트를 계속하고자 결정한다.
몬탁의 도래였다.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끝자락, 몬탁 포인트.
이곳은 예로부터 원주민인 몬탁 부족의 성지였다. 몬탁 부족의 추장들은 이곳을 '세계의 에너지가 모이는 곳'이라 여겼다. 대서양으로 돌출된 지형으로 인해 지구의 자기장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이 바로 몬탁이었다.
미군은 제 2차 세계 대전과 냉전 시대에 이곳을 요새화해 캠프 히어로를 건설했다.
그렇게 이곳은 대서양을 바라보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나, 1969년 기술 노후화를 이유로 공식적으로 폐쇄됐다. 정부 소유이지만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인적 또한 드문 완벽한 장소였다.
그들에게 말이다.
기지에는 거대한 시대적 방증물이 잠들어 있었다. 높이 약 21m, 너비 약 36m, 무게 70-90톤에 달하는 SAGE(Semi-Automatic Ground Environment) 레이더가 그것이었다.
이 레이더는 막대한 출력을 자랑하는 장거리 탐지용이었으나 기지와 마찬가지로 공식적인 퇴역 상태였다.
그들, 즉 음모의 주동자들은 바로 이 레이더를 주목했다. 레이더의 작동 주파수 대역인 425-450MHz가 인간의 의식에 영향을 주는 '인간 의식으로의 창문 주파수'와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레이더를 거대한 마인드 컨트롤 송신기로 개조하고자 한다.
물론, 의회 몰래 이런 거대한 시설을 돌리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다.
간단했다.
1944년경, 미군이 프랑스의 한 터널에서 폭파된 나치 수송 열차를 발견했는데 그 안에는 약 100억 달러 상당(현재 가치로 약 2,000억 달러)에 달하는 나치의 금괴가 실려 있었다.
이 금괴는 공식 기록에서 사라졌고 동시에 몬탁 프로젝트의 자금으로 세탁됐다.
자금이 소진된 후에는 ITT, 크루프 같은 굴지의 대기업이자 군수 기업들이 자금을 댔다.
여담으로, 1920년경 설립된 ITT는 미국의 산업 제조업체로 다양한 산업에서 수백 건의 인수를 진행해 왔다. 이들이 취급한 분야로는 통신, 레이더, 핵융합로, 대서양 횡단 케이블, 항공우주, 무기, 에너지 등이 포함됐다고 전해진다.
몬탁 프로젝트의 최초 목적은, SAGE 레이더를 이용한 단순한 마인드 컨트롤 실험이었다.
실험의 방법론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지 내에 주둔 중이던 군인들 혹은 주말 파티를 빙자해 초대된 민간인들이 대상으로 삼아졌다. 이들 피험자를 기지 내 특정 건물에 넣고선 차폐된 방에 앉힌다. 이어 연구진은 레이더 접시를 돌려 해당 건물을 조준한다.
마이크로웨이브는 건물의 벽을 쉽게 통과한다. 그렇게 연구진은 주파수를 425-450MHz로 고정한 채, 펄스의 폭과 반복 주기 그리고 변조 방식을 다양하게 바꿔가며 피험자의 반응을 관찰했다.
마치..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듯 인간의 뇌파에 접속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연구진은 놀라운 결과를 얻게 된다.
특정한 펄스를 쏘면 피험자가 갑자기 깊은 잠에 빠졌고, 또 다른 펄스들을 쏘면 이유 없이 통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성적인 흥분을 유도하거나 극도의 공포심을 심어주는 것도 가능했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인간 감정의 주파수 지도를 작성했다.
즉, 어떤 주파수와 펄스 조합이 어떤 감정을 유발하는지를 코드화한 것이다. 이를 호핑 주파수(Hopping Frequency)라는 기술과 결합해, 여러 감정을 순차적으로 유발하거나 복합적인 명령을 내리는 단계까지 발전시켰다.
그렇게..
기술이 점차 안정화되면서 실험은 기지 밖으로까지 확대됐다.
연구진은 몬탁 마을 전체, 롱아일랜드 주민, 야생 동물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전파를 발사했다. 그들은 이를 마이크로웨이브 오븐 실험이라 불렀다.
연구진은 마침내(?) 범죄율 조작에까지 성공한다.
특정 주파수를 쏘는 날에는 몬탁 지역의 범죄율이 급증했으며, 2시간 동안 범죄가 폭주하다가도 전파를 끄면 거짓말처럼 평온해지는 현상이 반복된 것이다.
또, 청소년 통제에도 성공했다. 10대 청소년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거나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현상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이는 훗날 '몬탁 보이즈'를 납치하고 세뇌하는 데 필요한 기초 데이터가 됐다.
마지막으로, 사슴이나 새들이 갑자기 기지를 향해 돌진하거나 해변의 특정 장소에 모여드는 등의 동물 실험에서도 마찬가지로 성과를 낸다.
마인드 컨트롤 실험의 성공.
허나..
순수한 전자기파만으론 복잡한 생각이나 구체적인 명령을 정밀하게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연구진은 인간의 뇌파를 직접 읽고 증폭할 수 있는, 소위 인터페이스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여기서..
엄청난 전개가 시작된다.
프로젝트에 자금 지원 및 개발 참여 중이던 ITT.
1950년대에 이미 독심술 기계를 개발하고 있던 ITT는, 인간의 오라를 읽어내는 센서들이 달린 특 의자를 개발한 바가 있었다.
저자이자 폭로자인 니콜스에 따르면, 해당 기술은 시리우스 성계의 외계 문명으로부터 전수됐다고 속삭여진단다.
그리고..
몬탁 프로젝트에서 바로 이 의자의 개량판이 사용된다.
몬탁 기지의 지하, 그러니까 전자기적으로 완벽하게 차폐된 방에 바로 이 몬탁 체어가 설치됐다.
몬탁 체어는 의자 주변으로 헬름홀츠 코일이라는 것이 3세트 X, Y, Z축으로 배치돼 피라미드 형태를 이뤘다. 코일들은 피험자의 생체 전자기장인 오라를 수신하는 안테나 역할이었다.
또 코일은 RCA가 제작한 6개의 특수 수신기와 연결됐다. 수신기들은 테슬라의 1930년대 설계를 바탕으로 제작됐으며, 내부론 특별한 크리스탈 발진기가 탑재돼 시간적 위상을 조절하는 게 가능했다.
그렇게 수신된 아날로그 신호인 뇌파는, 디지털 신호로 변환을 거쳐 컴퓨터로 전송됐다.
여기서 마침내 컴퓨터가 등장한다.
컴퓨터 시스템은 크레이-1과 IBM-360이었다.
크레이-1은 당시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로, 수신된 복잡한 뇌파와 생각의 패턴을 해석해 32비트 디지털 코드로 변환하는 이른바 번역기 역할을 수행했다.
IBM-360의 경우엔, 기지의 메인프레임 컴퓨터로써 크레이-1에서 받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SAGE 레이더 송신기를 제어하는 역할을 맡았다.
정리하자면..
작동 과정은 다음과 같았다.
피험자가 의자에 앉아 특정 생각을 시작 -> 코일이 감지 -> 컴퓨터가 해석 -> 레이더 송신기가 그 생각을 수 기가와트의 출력으로 증폭해 방사 -> 이 강력한 전파가 다시 피험자의 뇌로 돌아와 생각을 강화
이러한 피드백 루프 과정을 통해 최초 미약했던 인간의 '생각'은, 현실 세계에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대한 에너지로 증폭이 이뤄졌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던컨 카메론이 등장한다.
카메론은 필라델피아 실험 당시의 던컨A의 영혼 혹은 의식이 씌워진, 그래서 그의 전자기적 서명이 이식된 막강한 사이킥 잠재력을 지닌 존재였다.
물론, 몬탁 프로젝트의 연구진은 이러한 사실을 훗날 1983년에야 알게 되지만.
한편..
몬탁 체어를 제대로 가동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사이킥 능력을 지닌, 그리고 의자의 파동과 동조될 수 있는 특별한 인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수많은 피험자의 뇌가 타버리거나 미쳐버린 끝에, 적임자가 발견된 것이다.
카메론이 몬탁 체어에 앉아 훈련을 거듭하면서 실험은 세 단계로 발전했다.
제1단계 (독심술&영상화): 초기에는 카메론이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이미지가 컴퓨터 모니터에 그대로 출력됐다. 더 나아가 프린터로 출력되기도. 또 생각의 오류(Glitch)가 그대로 화면에 나타났다.
제2단계 (3차원 홀로그램): 던컨이 시각화에 집중하면 기지 내부의 특정 공간에 3차원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만질 수는 없지만 눈에는 완벽하게 시각화된 상태로 보였다.
제3단계 (물질화): 이것이 결정적이었다. 던컨이 고체 물체를 강력하게 상상하면, 기지의 송신기가 공간의 에테르(빛과 힘을 전달하는 매질로 과거 연금술사들의 꿈의 물질)를 재배열해 실제 물체를 창조해 냈다.
가령..
어느 날, 카메론이 캔맥주를 상상하자 실제로 만질 수 있고 마실 수도 있는 캔맥주가 나타났다. 때로는 전원을 꺼도 사라지지 않는 영구적인 물체가 생성되기도 했다. 연구진은 이를 '솔리드 스테이트(Solid State)' 현실화라고 불렀다.
카메론의 주특기로는 '보는 눈'도 있었다. 일종의 군사 기술로써의 원격 투시가 그것이었다.
카메론이 타겟 인물의 머리카락, 시계, 사진 등의 물건을 손에 쥐고서 집중한다. 허면, 그 사람이 지구 어디에 있 그 사람의 눈을 통해 보고 귀를 통해 듣고 피부를 통해 느낄 수가 있었다. 또 모니터에 그 사람이 보는 광경이 출력됐고 스피커로는 그 사람이 듣는 소리가 나왔다.
이 능력은 전 세계적인 도청 및 감시 시스템으로 활용됐다. 몬탁의 연구진은 해당 기술을 이용해 냉전 시대 소련의 잠수함 기지 등을 손쉽게 감시할 수가 있었다.
이렇듯..
1970년대 후반 무렵..
탈 지구 문명의 기술력과 유일무이한 사이킥 능력자를 통해, 몬탁 프로젝트는 인간의 뇌파를 해독하고 증폭해 생각을 현실에 투영하는 마인드 컨트롤 및 물질화 단계에 도달한다.
몬탁 기지의 연구원들은 자신들이 신의 영역에 근접했다고 믿었다.
헌데..
아직 자만할 것이 더 있었다.
1979년, 실험실의 모니터 위로 기이한 현상이 관측된다.
카메론의 생각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이른바 인과율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장비의 오작동이 아니었다.
이것은, 인류가 3차원이라는 공간의 감옥을 탈출해 4차원인 시간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 균열이었다.
인류의 위대한 도약이자, 광기 어린 공학자들의 순간이었다.
시간적 글리치, 그리고 인과율의 붕괴.
몬탁 체어의 실험이 정점에 달했을 때 발생한 일이다.
연구진은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직면했다. 카메론이 의자에 앉아 특정 물체의 출현을 집중해서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험실에는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컨디션 난조였을까?
실험 실패로 간주하고서 퇴근한 연구원들이 다음 날 아침 출근했을 때, 실험실 한가운데로 카메론이 어제 생각했던 물체가 놓여 있었다.
역인과성도 발생했다.
카메론이 오후 4시에 생각하기로 예정된 물체가, 그가 생각하기도 전인 오전 10시에 이미 나타난 것.
니콜스와 연구진이 해당 현상을 분석한 결과, 몬탁 체어와 송신기 시스템이 인간의 사념을 '시간의 위상(Time Phase)' 밖으로 투사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인간의 의식은 본래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비물질적 에너지다. 몬탁 체어의 강력한 전자기장이 이 의식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과정에서, 현실 세계의 시간 축을 건너뛰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생각만으로 시간을 넘나들고 있다. 그렇다면 물리적으로도 이동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화두가 등장하면서, 몬탁 프로젝트의 방향성이 마인드 컨트롤에서 시공간 여행으로 급선회됐다.
급선회로 인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었다.
기존의 SAGE 레이더 송신기(지상 설치)만으로는 시간을 정밀하게 제어할 수 없었다. 레이더는 전자기파를 직선으로 쏘아내지만, 시공간을 구부리기 위해서는 보다 복잡한 기하학적 구조의 자기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델타-T(Delta-Time)' 이론을 도입했다.
시간은 공간의 변화율이다. 시간을 조작하기 위해서는 공간을 접어야 했다. 연구진은 이를 위해 특수한 형태의 안테나를 고안했다.
명칭은 오리온 델타-T 안테나였다. 이에 대해 니콜스는, 오리온자리 성좌의 기하학적 구조에서 영감을 받았거나, 혹은 관련된 곳의 외계 기술이 영향을 끼쳤으리라 추정했다.
이 안테나는 두 개의 피라미드를 밑면끼리 붙여놓은 8면체 모양이었다. 높이는 약 30-45m에 달하는 거대한 구조물로, 특이하게도 금속이 아닌 목재로 뼈대를 만들었다. 금속을 사용하면 원치 않는 유도 전류가 발생해 자기장을 왜곡시킬 염려가 있어서였다.
안테나는 몬탁 기지 지하의 거대한 벙커 공간으로 은밀하게 설치됐다. 8면체의 각 변과 면을 따라서는 특수하게 설계된 코일들이 감겼다.
이러한 코일들은 3축 제어 임무를 맡았다. X, Y, Z축으로 에너지를 순환시키며 3차원 공간 내에 폐곡선 형태의 자기장 루프를 형성하는 것이었다.
또 각 축을 담당하는 코일들은 서로 다른 색상으로 코드화 구분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작동 원리는 이른바 직교 위상(Orthogonal Phase)이었다.
시간 터널을 여는 핵심점인 원리는, 지상의 송신기와 지하의 안테나가 만들어내는 두 에너지장의 상호작용이었다.
지상의 SAGE 레이더가 강력한 전기적 파동(E-field)을 방사 -> 지하의 델타-T 안테나가 강력한 자기적 파동(H-field)을 형성하는 식.
연구진은 이 두 파동을 서로 90도 각도로 교차시키고, 펄스의 위상을 조절해 인위적인 간섭을 유도했다.
그리고 해당 과정에서 3차원 공간의 현실이 찢어지면서, 4차원으로 향하는 소용돌이인 '텐서 필드(Tensor Field)'가 형성됐다.
여기서 '널 포인트(The Null Point)'가 등장한다.
엄청난 에너지가 충돌하는 중심점은 인간이 견딜 수 없는 혼돈의 영역이다. 허나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지점이 존재하니, 그것이 바로 안테나의 기하학적 중심인 널 포인트였다.
몬탁 체어는 언제나 델타-T 안테나의 정확한 중심, 이 널 포인트에 해당하는 지상(혹은 지하 벙커의 특정 층)에 배치됐다.
이곳에서는 모든 전자기적 간섭이 상쇄되며 '0'이 된다. 피험자(카메론)는 이곳에서 시간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고서 자신의 의식을 텐서 필드 속으로 투사할 수가 있었다.
헌데..
하드웨어(안테나)는 준비가 완료였으나 소프트웨어(동기화)가 문제였다.
시간이란 존재는 매우 불안정한 에너지였다. 문을 열어도 금세 닫히거나 엉뚱한 곳으로 연결되기 일쑤였다.
이에 연구진은 시스템 전체를 시간적으로 동기화하고자 백색 소음을 도입한다. 백색 소음은 모든 주파수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차원 간의 불일치를 메워주는 접착제 역할을 수행했다.
또 니콜스는 캘리포니아의 아마딘 사에서 제작한 특수 펄스 변조기인 아마딘 변조기 (Amadyne Modulator)를 사용했다. 이 장비는 백색 소음을 생성해 펄스 트레인(Pulse Train)에 실어 보내는 역할을 맡았다.
이렇듯 백색 소음이 송신기와 안테나 그리고 피험자의 뇌파 사이를 오가며 상관관계를 형성했다. 이를 통해 시간의 문을 특정 시점에 고정(Lock)이 가능해졌다.
1980년 말.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안정적인 타임 터널이 열린다.
니콜스는 그 내부를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묘사한다.
먼, 델타-T 안테나의 중심부에서 빛이 소용돌이치며 터널 입구가 형성됐다. 처음에는 희미한 안개 같더니 점차 뚜렷한 구멍으로 변했다.
내부 구조는 마치 코르크스크류 나선형 계단과도 같았다. 터널 벽면은 매끄럽지 않고 굴곡져 있으며, 동시에 끊임없이 회전하는 빛의 고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터널 안은 무중력 상태와 비슷했다. 몸이 붕 뜨는 느낌을 받았다. 온도는 차갑고 전자기적 웅웅거림이 들려왔다.
출구는 터널의 저 끝으로 위치했으며, 목적지(과거 혹은 미래) 부분이 동그란 창문처럼 보였다. 그 창문을 통과하면 해당 시간대의 장소로 나오는 식이었다.
물론..
터널을 여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안전성은 보장할 수가 없었다.
하여, 초기에는 카메라가 달린 무선조종 자동차나 동물을 보냈다. 허나 전자 장비는 터널 내부의 강력한 자기장에 의해 고장 나기 일쑤였다.
결국, 인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몬탁 마을의 노숙자, 히치하이커, 혹은 기록이 없는 부랑자들이 납치된 채 실험에 투입됐다. 그들은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인력이자 소모품 취급을 받았다.
이들에게 부여된 임무는, 터널을 지나가서 무엇이 보이는지 무전으로 보고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돌아오지 못했다.
터널 중간에 갇혀 비명을 지르며 사라지거나, 벽에 부딪혀 분자 단위로 분해되거나, 도착하자마자 급격한 노화로 사망했다.
이 시기에만 약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니콜스는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우리는 그들을 1시간 뒤의 미래로 보냈지만 그들은 영원히 사라졌다"
실험을 거듭한 끝에 연구진은 시공간 여행이 아무 때나 가능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시간에도 이른바 물때가 있던 것이다.
즉, 시공간의 문을 열기 쉬운 때와 어려운 때가 존재했다.
그리고 여기서 바이오리듬이 등장한다.
연구진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지구 역시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서 고유의 생체 리듬을 가지고 있다고 여겼다.
또, 지구의 전자기장과 에테르 에너지가 20년 주기로 정점을 찍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정점의 시기에는 차원 간의 장벽이 얇아져 시공간 여행이 용이해진다는 것도.
정리하자면 이렇다.
1943년 8월 12일: 필라델피아 실험의 정점.
1963년 8월 12일: 중간 주기로, ITT 등에서 관련 실험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
1983년 8월 12일: 몬탁 프로젝트의 현재.
이 날짜들은 시공간을 연결하는 이른바 '닻(Anchor)'이었다.
타임 터널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이 닻에 연결해야 했다. 무작위적인 시점으로 가는 것은 매우 불안정했지만, 1943년이나 1963년으로 가는 것은 닻 덕분에 훨씬 수월했다.
특히, 1983년의 몬탁 기지는 1943년의 USS 엘드리지호와 강력한 웜홀로 연결돼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통로 간의 연결이 아니었다. 1943년 엘드리지호의 발전기가 생산하는 에너지와, 1983년 몬탁 기지의 발전기가 생산하는 에너지가 타임 터널을 통해 서로 순환하며 증폭됐던 것.
하여..
인과율의 고리가 생성된다.
니콜스는 1943년의 실험이 실패하고 배가 시공간을 표류하게 된 원인이, 1983년의 몬탁 기지에서 에너지를 빨아들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반대로 1983년의 몬탁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1943년의 에너지를 끌어다 썼기 때문이고 말이다.
그러니까, 과거와 미래가 서로 원인이자 결과인 타임 루프가 형성됐던 것이다.
기술적 디테일과 장비들에 대해 좀 더 알아볼 차례다.
니콜스는 전자 공학자답게 프로젝트에 사용된 장비들의 세부 사항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먼저, SAGE 레이더의 출력은 단순한 연속파(CW)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교하게 조작된 펄스였다.
펄스 폭(Pulse Width)은 10나노초(ns)에서 50마이크로초(µs)까지 가변적으로 조절됐다. 극도로 짧은 펄스는 차원의 틈을 찢는 데 사용됐다.
반복률(Repetition Rate)은 초당 100회에서 1,000회까지 조절됐다. 이는 인간의 뇌파 주파수나 지구의 공명 주파수(슈만 공명)와 동기화하기 위함에서였다.
복합 변조로는 진폭 변조(AM), 주파수 변조(FM), 그리고 위상 변조(PM)가 복합적으로 사용됐다. 특히나 위상 변조(Phase Modulation)는 시간 왜곡을 일으키는 핵심 키였다.
훗날 니콜스가 폐기된 장비 더미에서 찾아낸 FRR-24 수신기는 몬탁 프로젝트 기술력의 정수를 보여준다.
각 유닛마다 약 34kg의 순은이 포함됐는데, 이는 일반적인 군사 장비에서는 볼 수 없는 비정상적인 양이었다.
은은 구리보다 전도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에테르 에너지 및 시간 파동과 공명하는 특수한 성질이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수신기는 미세한 시간의 떨림을 감지하는 귀(Ear) 역할을 했다.
초전도 기술도 사용됐다.
델타-T 안테나의 일부 코일과 컴퓨터의 핵심 부품은 액체 헬륨을 이용해 절대 영도에 가깝게 냉각됐다. 이는 전기 저항을 없애고 에너지 효율을 무한대로 높여, 적은 입력으로도 시공간을 뒤틀 수 있는 거대한 자기장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시리우스의 선물'이겠다.
니콜스는 몬탁 체어의 센서 기술과 일부 데이터 처리 알고리즘은 인간 문명의 것이 아니었다며 단언한다.
그는 해당 기술이 시리우스 B 성계에서 온 외계인들과의 기술 교환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기지에는 프랭크라는 이름의 외계인이 상주하며 기술 자문을 했다는 증언도 있다고.
다음으로, 사이드 터널과 하이퍼스페이스에 대한 것이다.
타임 터널은 항상 안전한 고속도로는 아니었다. 주파수가 조금만 어긋나도 엉뚱한 샛길로 빠질 위험이 있었으니까.
카메론이 집중력을 잃거나 장비가 불안정해지면 메인 터널 옆으로 가지처럼 뻗어 나가는 사이드 터널이 열렸다. 이곳은 우리가 아는 현실이 아닌, 몽환적이고 뒤틀린 대체 현실 속이었다.
또 이곳은 피험자의 무의식 속 공포 구현된 악몽의 공간이기도 했다. 거미나 뱀,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터널도 있었다.
이곳에선 정체불명의 비인간적 존재와 마주칠 때도 있었다. 그들은 터널을 지나는 인간들을 관찰하거나 공격하기도 했다.
터널 바깥의 정체는 무엇인가?
니콜스는 그곳을 하이퍼스페이스 또는 보이드(Void)라고 불렀다. 빛도 소리도 없는 무無의 공간. 터널 벽이 깨지면 피험자는 이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 영원히 소멸된다. 몬탁 보이즈 중 많은 수가 이 보이드 속으로 사라져갔다.
한편..
1981년경.
몬탁 프로젝트는 시공간 여행 기술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듯 보였다.
그들은 과거로 가서 역사를 관찰하고(예컨대 남북전쟁 당시의 전투 장면이나 예수의 십자가 처형 장면을 촬영해 오기도 했다고) 미래를 정찰했다.
자신감을 얻은 프로젝트의 배후 세력은 더욱 대담한 목표를 세운다.
지구를 넘어 우주로, 시공간을 넘어 화성으로 가는 것이었다.
이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더 많은 '소모품'들이 필요해졌다.
이것이 바로, 수천의 소년들을 납치하고 세뇌한 몬탁 보이즈 프로그램의 서막이었다.
몬탁 프로젝트는 1943년과 1983년을 잇는 40년의 시간 고리를 완성하고,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시공간 터널을 개통했음을 컨펌했다.
허니..
인간의 욕망은 시공간의 정복에서 멈추지 않았다.
1981-1983년.
시간 여행 기술이 안정화되자, 프로젝트의 배후 세력은 몬탁 체어의 좌표를 시간 축이 아닌 공간 축으로 돌렸다. 그들의 목표는 화성이었다.
그들은 지구 밖, 붉은 행성의 지하에 잠든 고대 문명의 유산을 노렸다. 그리고 이 거대한 야망을 실현코자 수천 명의 아이들을 '소모품'으로 희생시켰다.
1970년대.
나사의 바이킹 탐사선이 보내온 사진들은 전 세계적인 논란을 일으켰다. 화성의 시도니아 지역에서 인간의 얼굴을 닮은 거대한 인면암 구조물과 기하학적으로 완벽하게 배치된 피라미드군이 발견된 것이다.
나사는 곧장 이를 빛과 그림자의 착시라고 발표했으나, 몬탁의 연구진은 이것이 고대 문명의 명백한 유적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허나, 난제가 있었다.
지표면의 사진을 분석한 결과, 피라미드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를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니콜스는 그곳이 이집트 기자의 대피라미드보다 더 완벽하게 밀봉된 상태였다고 기록한다. 그렇다고 물리적인 굴착 장비를 화성까지 가져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연구진은 공간 워프를 통한 침투를 꾀했다.
연구진은 몬탁 체어와 타임 터널 기술을 응용했다. 카메론에게 화성 피라미드 내부의 거대한 지하 공간을 시각화하게 하고는, 터널의 출구를 그곳으로 바로 연결하는 공간 이동을 시도했다.
성공이었다.
수차례의 시도 끝에 터널이 안정화될 수 있었다.
연구진은 먼저 카메라가 장착된 원격 조종 로봇을 보내 내부 환경(대기, 온도, 생명체 유무)을 확인했다.
한편, 안전이 확인되면서 니콜스를 포함한 이른바 원정대가 터널을 걸어서 통과했다. 그들은 순식간에 지구에서 화성 지하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한 것은 12만 5천 년 전 멸망한 초고대 문명이 남긴 거대 지하 도시와 기술의 보고였다.
그중 가장 중요한 발견은, 태양계 방어 시스템이라 불리는 고도의 방어망이었다. 이 시스템은 특정 주파수를 방출해 태양계 외부의 침입자(다른 외계 문명)를 막거나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몬탁 프로젝트의 배후 세력은 해당 시스템을 끄기를 원했다. 니콜스는 이 배후 세력이 외계인 연합과 모종의 거래를 하고 있었으며, 그들의 지구 진입을 용이하게 하고자 방어망을 무력화해야 했다고 추정한다.
허나..
그들은 1983년의 시점에서는 해당 시스템을 끌 수 없음을 깨닫는다.
하여, 타임 터널을 이용해 시스템이 아직 가동되기 전인 과거 혹은 시스템을 제어할 수 있었던 시점인 1943년으로 이동해 소급적으로 방어망을 해제한다.
니콜스는, 이것이 1943년 이후 지구상에 UFO 출몰이 본격화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몬탁 프로젝트의 가장 어둡고 비윤리적인 면모는 따로 있었다.
바로, 몬탁 보이즈 말이다.
니콜스는 프로젝트 기간 동안 수천 명의 소년들이 납치되어 실험체로 쓰였다고 폭로한다.
이러한 몬탁 보이즈로는 주로 10세에서 16세 사이의 백인 소년들이 착출(?)됐다고 한다. 니콜스는 아이들 대부분이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아리안 계통이었다고 묘사하는데, 이는 프로젝트 자금을 댄 배후 나치 세력의 유전적 선호가 반영된 것이라 추측한다.
납치는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등지에서 가출 청소년을 유인하거나 심지어 평범한 가정집에서 납치해 오기도 했다. 법적 기록이 없거나 사회적 관심이 적은 아이들이 주 타겟이었고 말이다.
그렇게 기지에 도착한 아이들은, 프로그래밍과 세뇌를 통한 자아의 말살을 위해 육체적 및 정신적 한계를 넘어서는 가혹한 과정을 겪는다.
라이히(앞서 언급했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분석학자)의 오르곤 에너지 이론이 아이들의 성적 에너지를 조작하는 데 악용됐다. 연구진은 아이들의 성적 충동을 자극했다가 급격히 억제하는 방식을 통해 에너지를 축적하고 폭발시켰다.
또 자아 파괴도 자행됐다. 극심한 구타, 성적 학대, 환각제 투여, 그리고 몬탁 체어에서 방사되는 공포 주파수를 통해 아이들의 원래 인격은 완전히 붕괴됐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재설계 과정이 진행됐다. 아이들의 텅 빈 의식 속에 새로운 명령어와 인격이 심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아이들은 통증을 느끼지 않고, 감정이 없으며, 특정 트리거에 절대복종하는 병사나 스파이 혹은 시공간 여행의 파일럿으로 개조됐다.
세뇌와 훈련 과정을 거쳐진 몬탁 보이즈는 타임 터널로 밀어 넣어졌다.
가장 빈번하게 보내진 목적지는, 서기 6037년의 미래였다.
니콜스는 그곳을 '폐허가 된 죽은 도시'로 묘사한다. 건물들은 무너져 있었고 생명체의 흔적은 없었다. 하늘은 기묘한 색을 띠고 있었다.
도시 중앙 광장으로는 거대한 황금 말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동상의 받침대에는 알 수 없는 비문이나 시계가 달려 있었다.
아이들의 임무는 터널을 통과해 광장으로 가서 이 동상을 확인하고, 비문을 읽거나 주변을 정찰한 뒤 돌아오는 것이었다.
프로젝트의 배후 세력이 왜 하필 6037년의 황금 말에 집착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일부는 그 동상이 시간 여행의 좌표를 잡는 일종의 앵커 포인트였다고 보기도 하고, 다른 이는 미래 인류에게 보내는 어떠한 메시지였다고 보기도 한다.
한편..
니콜스는 프로젝트에 약 3,000명에서 10,000명의 아이들이 피실험자로 동원됐다고 추산한다.
이 많은 아이들은 터널의 불안정성 때문에 시간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지거나 혹은 벽에 부딪혀 분자 단위로 분해됐다고.
또 살아 돌아온 아이들도 기억이 지워진 채(De-programmed) 사회로 돌려보내졌다.
아이들은 성인이 된 후에도 원인 모를 트라우마, 악몽, 그리고 몬탁 기지에 대한 막연한 공포에 시달린다. 니콜스는 훗날 기억을 되찾고 나서야 자신이 아이들을 훈련시키고 전송하는 역할을 맡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1983년 8월 초.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상부는 실험을 멈추지 말라고 지시를 내린다.
송신기는 24시간 풀가동됐다.
기지는 윙윙거리는 전자기 소음과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1983년 8월 12일을 기점으로 기지의 장비들이 이상 반응을 보였다.
1943년 8월 12일 진행된 필라델피아 실험의 에너지와, 1983년 현재의 에너지가 완벽하게 위상 동조(Phase Lock)가 이뤄진 게 그 원인이었다.
거대한 시공간의 웜홀이 고착화됐다.
과거와 미래가 충돌하기 직전이었다.
한편..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련의 광기 어린 실험에 회의감을 느끼던 니콜스, 카메론, 그리고 디렉터 잭 프루엣 등의 핵심 인물들은 이 미친 실험을 영원히 끝장내고자 비상 프로그램을 가동키로 비밀리에 결의했다.
1983년 8월 12일 밤.
몬탁 체어에는 언제나처럼 카메론이 앉아 있었다. 그는 며칠간의 연속된 실험으로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기 직전의 깊은 트랜스 상태였다.
니콜스가 그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건넸다.
"지금이야 (The time is now)!"
이것은 사전에 카메론의 잠재의식 속에 미리 심어둔, '파괴'를 위한 최면 트리거였다.
그리고..
카메론은 자신의 잠재의식 가장 밑바닥에 억눌려 있던 유년기의 원초적인 공포와 괴물의 이미지를 해방시켰다.
몬탁 송신기는 이 강력하고도 부정적인 감정 에너지를 수 기가와트의 출력으로 증폭하여 현실 세계로 투사했다.
이윽고 기지 내부(지하의 널 포인트가 아닌 기지 어딘가, 송신기 건물 주변)에 거대한 괴물이 물질화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약 2.7m에서 약 9m 크기의, 온몸이 털로 뒤덮인 흉포한 야수로 묘사된다. 혹자는 빅풋이나 거대한 고릴라, 또는 늑대인간과도 같았다고 한다. 니콜스는 1950년대의 대표적인 SF 영화 <금지된 행성>에 등장한 괴물 이드가 연상됐다고.
여하튼지건, 이 괴물은 홀로그램이 아니었다. 카메론의 심연 속 공포가 에테르를 뭉쳐 만든 살아있는 생명체였다.
괴물은 배고픔과 분노에 차 있었고, 기지를 돌아다니며 장비를 부수고 벽을 뚫었으며, 연구원들을 공격하거나 잡아먹어 댔다. 기지는 순식간에 지옥도로 변모했다.
이에 기지 사령관은 사태를 수습하고자 연구진을 향해 송신기를 끄라며 비명을 질렀다. 허나 전원 스위치를 내려도 송신기는 멈추지가 않았다.
프리 에너지 때문이었다. 1943년 엘드리지호의 발전기와 1983년 몬탁의 발전기가 시간 터널을 통해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는 무한 루프 상태에 빠졌고, 기지의 전력을 끊어도 1943년에서 에너지가 공급되고 있던 것이다.
결국엔 니콜스와 프루엣이 기지 밖 전력 공급소로 달려가 기지로 들어오는 메인 전선을 차단한다. 그럼에도, 기지의 일반 조명은 나갔으나 송신기 건물은 여전히 붉은 빛을 내며 윙윙거렸다. 괴물도 사라지지 않았다.
둘은 다시 송신기 건물 옆 변압기로 가서 땅속에서 올라오는 굵은 케이블들을 아세틸렌 토치로 절단했다. 불꽃이 튀고 케이블이 잘려 나가며 그제야 컴퓨터와 조명은 꺼졌으나, 놀랍게도 송신기 자체의 불빛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시간 루프의 에너지가 그만큼 강력했던 것이다.
최후의 수단으로 니콜스는 송신기 건물 내부로 뛰어 들어갔다. 그는 도끼와 토치를 이용해 본체인 송신기 장비 패널을 물리적으로 박살 내기 시작했다. 은이 포함된 도관, 회로 기판, 진공관들을 그야말로 난도질했다.
그처럼 장비가 물리적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핵심 부품이 파괴되면서, 송신기는 괴상한 신음 함께 마침내 동작을 멈췄다.
이렇듯 1943년과의 연결이 끊어지자 에너지를 공급받던 야수는 단말마와 함께 몸체가 투명해지더니 에테르 속으로 사라졌다. 시간 터널도 닫혔다. 카메론은 의자에서 그대로 쓰러졌다.
사건 직후..
기지는 긴급 소개疎開가 이뤄졌다.
이어 1984년 5월경엔 검은 베레모를 쓴 특수부대가 투입돼 기지를 싹 청소한다.
이들은 지하 8개 층에 달하는 비밀 시설과 엘리베이터 통로를 시멘트 믹서 트럭들을 동원해 가득 채워 영원히 봉인했다. 지상 건물 중 일부는 남겨졌으나 지하는 철저하게 은폐처리됐다.
한편..
니콜스를 포함한 주요 연구진 및 생존자들은 기억 소거 및 세뇌 프로그램이 거쳐졌다
니콜스는 자신이 몬탁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잊은 채 평범한 전자 공학자로 살아가게 됐다. 카메론 역시 마찬가지로 기억을 잃었고 말이다.
그러던 1980년대 후반.
니콜스의 호기심에서 비롯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몬탁 프로젝트의 생존자들이 서로 투합하며 기억을 되찾았고..
시멘트 밑으로 메꿔졌던 이 역사의 깊디깊은 공백이 세상 밖으로 폭로되기에 이른 것이다.
자, 여기까지가 1992년作 <The Montauk Project: Experiments in Time> 속 니콜스들의 주장이다.
과학과 오컬트의 끔찍한 결합으로 말미암아 벌어졌다는 기묘한 음모론.
과연..
몬탁 포인트의 캠프 히어로 시멘트 무덤 속으론..
1983년의 야수가 남긴 발톱 자국, 그리고 영원히 6037년의 미래를 떠돌고 있을 소년들의 비명이 여전히 봉인된 채인 걸까?
해당 서적과 니콜스들의 폭로(?)는 공개와 함께 당시 미스터리&음모론 업계에서 꽤나 화제를 모을 수 있었다.
80-90년대 미국 내에서 대유행하던 당대의 음모론&미스터리의 요소들(기밀 실험+초심리학+시공간 이동+뉴에이지)이 그야말로 적절하게 버무려진 스토리였으니 말이다.
이른바, 트랜드를 제대로 적절히 배합한 SF 공상적 음모론이었다.
한편..
자신의 음모론이 제법 히트를 치면서..
니콜스는 1993년, 1995년, 1997년, 1998년에 연이어 후속작들을 쏟아낸다.
모두 몬탁 프로젝트에 대한 음모론이었으며, 소재와 주장은 점점 더 자극적이고 거침이 없어졌다.
물론, 그만큼 일이 벌려지면서 점차 고증 오류라든지 학문적 모순이라든지 묘사 및 발언 불일치 또한 늘어났고 말이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어떠한 증명도 증빙도 없었던 몬탁 프로젝트 음모론은, 영상화의 시대에 발맞춰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기에 이른다.
2014년, 호러 영화를 주로 감독하던 크리스토퍼 가레타노가 <Montauk Chronicles>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가레타노에게 있어 몬탁 프로젝트 음모론은 유년기를 함께 한 추억 속 존재이자 동시에 진지하게 추적하던 미스터리였던 것이다.
이렇듯 가레타노는 프로젝트의 주요 연구진이었다던 니콜스와 바일렉(카메론의 형 쪽 영혼 및 의식이 씌어졌다는), 그리고 자신들이 프로그램의 피실험자인 몬탁 보이즈였노라 주장하는 이와 함께 이른바 폭로 다큐를 찍었다.
해당 다큐멘터리에서는 그간 서적들에서의 내용이 집대성된 것은 물론, 더욱더 장대해진 스케일의 음모론들이 등장한다.
다음처럼 말이다.
1971년부터 1983년까지 프로젝트 동안 약 30만 명의 아이들이 주로 납치된 채 실험에 동원. 아이들은 마인드 컨트롤 실험의 재료로 쓰이며 정신이 산산조각 난 채, 그 조각들마다 새로운 인격이 프로그래밍 돼 암살자나 스파이 혹은 시공간 여행의 파일럿으 길러짐. 이중 생존자는 1% 미만.
연구진은 처음 아이들을 극한의 공포로 몰아넣음. 먼저 물에 빠뜨려 익사 직전까지 간 뒤 구타하고 전기 충격을 가함. 아이들은 순수하고 어른보다 더 큰 공포를 느낌. 인간이 극도의 공포 느낄 때 뇌의 송과체에선 아드레노크롬이라는 화학 물질이 분비됨. 해당 물질이 프로젝트 배후의 세력 일루미나티나 엘리트층에게 있어선 금보다 더 귀한 신체 강화제이자 정신 확장제였음. 아이들은 이 물질을 추출하기 위한 도구였기도 한 셈.
몬탁 체어는 시리우스 A 외계 문명에서 온 기술. 우주와 시간의 모든 지점은 고유한 진동수를 지니고 있음. 몬탁 체어의 조종자가 특정 좌표의 진동수에다 자신의 뇌파를 초능력으로 맞추면, 몬탁 기지와 그 지점 사이로 웜홀이 열리는 방식. 바일렉은 자신이 터널을 통해 화성의 지하 기지로 갔으며, 그곳에서 고대 문명의 유적과 구조물들을 목격했다고 주장. 자신이 몬탁 보이즈였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이는, 과거로 보내져 예수 시대의 성경적 인물들의 DNA를 채취하거나 역사를 관찰하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주장.
자신의 아버지로 위장한 '본인 위장용 얼굴 가죽을 통째로 뜯어내고 덮어쓰는' 남자로부터 납치당했다고 주장하는 또 다른 몬탁 보이즈까지 등장.
그렇다면..
몬탁 프로젝트 음모론의 현실성은 어느 정도나 되는 것일까?
대표적으로 몇 개만 꼬집어보자면..
사실, 몬탁 프로젝트에서 핵심 사건으로 등장하는 1943년 필라델피아 실험의 경우 60-80년대에 유행하던 음모론 컨텐츠에 불과하다.
2011년 3월경 이상한 옴니버스에서 다룬 바가 있는데(구글에 [이상한 옴니버스] 시공간을 초월한 필라델피아 실험의 진실 검색), 해당 음모론에 대한 핵심적인 오류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943년 8월 12일경 엘드리지호가 필라델피아 해군 조선소에서 실험 도중 텔레포트했다고 주장하나, 해당 시기엔 아직 뉴욕 브루클린 해군 조선소에서 건조 중이었음. 정식 취역은 8월 27일이었음. 실험이 있었다고 주장되는 또 다른 날짜인 10월 28일에도 배는 뉴욕 항구에 정박 중이거나 호송 임무 수행 중이었음.
엘드리지호에서 실제로 근무했던 기록이 밝혀진 생존 승무원들 모두 1999년 전우회 모임에서 음모론 속 실험은 물론이고 필라델피아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고 일관되게 증언.
필라델피아 실험 음모론의 파생은, 칼 앨런이라는 사람에 의해서였음. 그는 거의 일생을 정신 질환 및 허언증에 시달렸던 이였으며, 1955년경 UFO 연구가 모리스 제섭에게 일련의 주장을 담은 편지를 보냈던 것. 제섭의 사후 해당 음모론이 꼭지로 담긴 서적이 출간됐고, 60년대부터 미스터리&음모론 컨텐츠로 소비되던 해당 스토리는 70년대 말 역사상 가장 성공한 미스터리 팔이 작가 찰스 베리츠에 의해 다뤄지면서 유명해짐.
허나, 앨런의 거짓말들이 하나둘 들통나면서 급기야 80년대 중반에는 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주장이 사기였음을 자백하기에 이름.
여담으로, 해당 음모론이 유명해지면서 당시 알프레드 바일렉(몬탁 프로젝트 음모론에서 자신이 형쪽 카메론의 영혼 및 의식이 씌워졌다고 주장한)은 자신이 문제의 배에서 실험을 직접 목격했다고 주장하며 세간에 등장. 하지만 실제 생존 승무원들은 그에 대한 기억이 없으며, 사건 당시 그가 16살의 미성년자였음을 지적. 한편, 바일렉은 이 무렵 자신이 해당 배의 전기 전문병이었으며 본명이 에드워드 카메론이었는데, 실험 직후 정부에서 자신의 과거 기록을 지우고는 자신을 알프레드 바일렉이라는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주장.
프로젝트들의 책임자였던 존 폰 노이만이 1957년에 실지론 죽은 게 아니라 신분을 세탁하고서 80년대까지 라인하트 박사로 있으면서 몬탁 프로젝트를 맡았다고 주장. 허나 노이만은 임종 당시 가족과 동료 과학자들을 비롯해 군 관계자들로부터 둘러싸여 있었음.
니콜라 테슬라 역시 필라델피아 실험이 있었다던 1943년 8월이나 10월경엔 이미 고인이 된 지 반년도 더 넘은 시점이었음.
니콜스는 400-450MHz 대역이 인간의 의식을 조종하고 시공간을 찢는 마법의 주파수라고 주장. 허나 해당 대역(UHF)은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업무용 무전기, 아마추어 무선, 차고 문 리모컨 등 비교적 일상적인 통신 기기에 널리 쓰인던 주파수. 만약 해당 주파수가 인간을 미치게 하거나 시공간을 왜곡한다면, 이미 사달이 났어도 진즉에 났어야 함. 또 SAGE 레이더의 출력이 아무리 강했다 하더라도 전파의 본질적인 성질이 바뀌지는 않음. 또한 강력한 마이크로웨이브는 인간을 세뇌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익혀버리는 식임.
니콜스는 에테르를 통해 물질을 창조한다고 설명. 이 에테르는 19세기 말 마이컬슨-몰리 실험에 의해 존재하지 않음이 이미 과학적 사실로 증명됨. 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완전히 폐기된 개념임. 20세기 후반의 첨단 프로젝트가 19세기의 폐기된 이론을 기반으로 했다는 것은 넌센스.
전기장과 자기장을 90도로 교차시키면 차원이 열린다는 주장도 있었음. 허나 맥스웰 방정식에 따르면, 전자기파(빛, 전파)는 본질적으로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 90도로 교차하며 진행하는 파동임. 우리는 매일 수없이 많은 직교하는 전자기장 속에 살고 있음. 이것이 시공간을 찢는다면 우주는 존재할 수가 없음. 시공간을 왜곡하려면 블랙홀 수준의 중력이나 막대한 에너지 밀도가 필요함. 고작 나무 재질로 만든 안테나와 레이더 따위로는 어림도 없음.
미국 현대 역사상 가장 기괴하고 기묘한 음모론 중 하나로 꼽히는 몬탁 프로젝트 음모론.
허나, 그 이면을 자세히 파악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향함을 알 수가 있겠다.
"몬탁 프로젝트 음모론은 80-90년대 미국 내에서 대유행하던 음모론&미스터리의 요소들(기밀 실험+초심리학+시공간 이동+뉴에이지)이적절하게 버무려진, 이른바 트랜드를 잘 반영한 SF 공상적 음모론."
아마도..
니콜스의 폭로.. 아니.. 주장이 담긴 문제의 서적 <The Montauk Project: Experiments in Time> 서문에서 언급된 다음의 말이, 몬탁 프로젝트 음모론에 대한 감상 방법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을는지 모르겠다.
"이 책을 SF 공상 과학 소설로 읽든 논픽션으로 읽든, 여러분은 놀라운 이야기에 푹 빠지게 될 겁니다."
아!
그렇다 하더라도, 혹여나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동쪽 끝 몬탁을 방문하게 된다면..
절대로 '그 주립 공원의 지하'와는 손끝 하나 접촉하지 말 것!
'뒤집힌 세계'의 데모고르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을는지 모르니까 말이다.
참조
<Montauk Chronicles> Christopher Garetano
<The Montauk Project: Experiments in Time> Preston B. Nichols & Peter 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