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우리 엄마가 친엄마가 아님을 알게 됐을 때


본 글은,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친엄마가 아님을 알게 된 한 흑인 여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엄마가 내 엄마라고 당연히 여기며 20년 넘게 살아오던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알고 있던 근본이 송두리째 뒤집어진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떤 행동을 취할까요? 그리고 모든 이야기의 시작을 알게 된다면? 그럼 또 여러분은 어떤 감정을 품게 될까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 (Julia Xanthos)

1980-90년대 미국 코네티컷주 브리지포트의 한 빈민가.

흑인 가정의 편모 아래에서 네드라 낸스는 유년기와 성장기를 보냈다.

네드라의 엄마인 앤 펫웨이는 지역 시민 센터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네드라를 양육했다.

그녀는 또 네드라가 지역의 더 좋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주중에는 보다 사정이 나은 동네에 살던 자신의 친정엄마 집에 가서 살도록 했다. (초등학생 시절 네드라의 교장은 그녀를 너무 예쁘고 쾌활한,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학생으로 기억)

빈민가에서 피어난 엄마의 사랑.

여기까지는 다소 뻔하지만 마음 편안한 이야기일 것이다.

허나 현실은 드라이한 법이다.

80년대 후반의 뉴욕은 살인 사건이 역사적 최고치를 향해 치닫던 시기였으며, 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뉴욕 빈민가는 여전히 살벌한 환경하에 놓여 있었다.

앤은 평소 딸인 네드라에 대해 엄마의 책임을 다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던 여성이었다.

반면 일상적으로 그녀 주변으로 약들이 널려 있는가 하면 종종 약에 취해 있던 중독자이기도 했다. (남편은 가끔씩 약을 팔던 딜러였으며 어쩌다 한 번 얼굴을 비추는 사람이었음)

그리고, 약기운에서 깰 무렵이면 폭력성을 띄기에 네드라는 그때마다 미리 집 밖으로 도망치곤 했다.

네드라는 훗날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도시의 빈민가 가정에서 자라면 이유가 무엇이든 매를 맞게 마련이죠. 사람들은 눈물 짜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데, 전 학대받지 않았어요. 평범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건 다 가졌었으니까요. 앤은 다정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책임감이 있었죠. 잔인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렇다고 따뜻한 사람도 아니었지만요. 최고의 엄마라고 말하진 않겠어요. 그래도 저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을 했고 엄격하지만 멋진 사람이었죠. 제 친구들도 다들 멋진 엄마라고 말하곤 했어요."

네드라의 아기 시절 (Douglas Healey)

네드라가 10살이던 무렵 앤이 트레본이라는 남자아이를 낳으며 남동생이 생긴다.

한편, 네드라는 하루의 대부분을 이모들과 사촌들과 함께 보낸다. 특히 앤의 여동생인 카산드라 이모와 아주 각별해 서로가 절친이자 단짝일 정도였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네드라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해에..

그녀가 임신을 하면서 그녀 인생의 모든 것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네드라는 임신한 사실을 알리고서 엄마가 될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전 관리 외에도 행정적 절차 역시 필요했는데, 주에서 제공하는 혜택을 받기 위해 자신의 출생증명서가 필요했다.

네드라는 엄마인 앤에게 어떻게 서류를 발급받는지 물었다.

그러자 앤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엄마가 나중에 알아서 할게."

허나..

앤이 너무나 늦장을 부리면서 네드라는 지쳐버렸다. 그래서 앤의 물건들을 뒤진 끝에 자신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서류를 발견했고, 지역 보건부 산하 기관인 통계국을 찾아가 이를 제출한다.

헌데, 서류를 접수한 직원은 서류 속 내용으론 네드라의 기록이 찾아지지가 않는다고 답해왔다. 이에 재차 확인을 요청하다 당황스럽고 화가 난 네드라가 따져 묻기에 이르렀고, 통계국의 관리자는 가짜 신분을 도용하려는 것으로 간주해 기소할 수도 있다며 몰아붙였다.

하릴없이 네드라는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가운데가 앤, 앤이 안고있는 아이가 네드라 (Robin Nelson)

집에 돌아온 네드라가 엄마 앤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며 하소연하자 앤이 한숨을 내쉬고는 대답한다.

"그러니까, 내가 다 알아서 한다고 했잖니."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아동가족부 사람이 집으로 전화를 걸어와 앤과 무언과 이야기를 나눈다.

얼마 전 통계국에서 있었던 서류 문제에 대해서?

아니면 네드라의 적절한 신분 관련 서류에 대한 부재로 인해?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앤은 그로부터 며칠 후 네드라에게 이야기를 좀 하자며 얼굴을 마주한다.

이날 밤, 딸인 네드라의 방으로 와 침대에 앉은 앤은 곧이어 흐느끼며 울음을 터뜨린다.

네드라는 심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의 눈물을 봤으니 말이다.

조심스레 왜 우느냐며 묻는 네드라에게 앤이 이렇게 말했다.

"너.. 네 진짜 엄마가 널 버렸어! ..그리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어!"

그렇게..

몇 주간을 속이 뒤집힌 채 보낸 네드라.

간신히 정신을 놓지 않고 있던 그녀는 계속해서 앤에게 질문했다.

친엄마가 누구인지, 자신이 어디서 온 것인지, 친엄마를 직접 만났던 것인지, 그냥 문 앞에 버려져 있던 것인지, 왜 경찰이나 병원에 신고하지 않았는지.

어째서 지금껏 단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던 것인지를.

그리고..

네드라의 계속되는 질문에 앤은 그저 다음과 같은 대답만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그녀가 널 버린 거야! 그리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어! 이름도 모르고 아무것도 몰라!"

생각해보면..

네드라는 이전부터 자신을 둘러싼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을 도무지 떨쳐낼 수가 없었다.

그 위화감은 거울을 볼 때마다 한층 더 심해져 갔다.

자신과 엄마 앤의 생김새가 너무도 달랐다. 엄마인 앤은 짙은 피부색에 풍만한 체격을 지녔지만, 네드라는 상대적으로 밝은 피부톤에 호리호리한 체형이었다.

앤의 친척들이 말하기론 다음과 같았다.

앤은 학창 시절 주변에서 인기가 많고 소위 좀 놀던 아이였다. 이웃 마을에서 절도 혐의로 한 달간 수감된 적도 있으며 이후엔 자잘한 절도 및 위조 사건에 연루되거나 대마초 단속에 걸린 바가 있었다.

허나 당시 뉴욕 빈민가의 환경을 놓고 볼 때, 앤은 지역의 골칫거리 범주에 낄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고 한다.

1987년, 앤이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자신이 임신을 했다고 밝힌다.

다들 앤이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던 남자 친구 로버트 낸스(훗날, 가끔씩 약을 팔던 딜러였으며 어쩌다 한 번 얼굴을 비춘다던 바로 그)가 아이의 아빠일 것이라 짐작했다.

한편, 앤은 한동안 마을을 떠나 있다가 돌연 어느 날 갓난아기를 안고서 나타났다. 이에 모두들 그녀가 아기를 낳으러 떠났다가 돌아온 것이라 여겼다.

네드라의 고등학교 졸업 앨범 사진 (Douglas Healey)

우여곡절 끝에..

2005년, 네드라의 딸 아이 사마니가 태어났다.

네드라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고서 숙박업소 안내 데스크 일자리를 구해 돈을 모으고는 1년 후 출가한다. 그리고 또 그 1년 후에는 절친이자 단짝이었던 카산드라 이모가 있는 애틀랜타로 이주한다.

그곳에서 미용실에서 일자리를 얻은 네드라는 카산드라에게 그간 있었던 비밀 이야기들을 모두 털어놓았고, 이에 카산드라는 친엄마를 찾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말라며 격려한다.

허나..

네드라는 막다른 길목에 처해 있었다.

친엄마로 알고 있었던 앤은 끝내 출생의 비밀에 대해 밝히지 않았으며, 그저 손녀딸 앞으로 카드와 선물을 보내올 뿐이었다.

하지만..

막막했다.

친아빠로 알고 있었던 로버트는 성범죄로 수감 중에 네드라와 통화를 가졌는데, 여기서 그는 네드라가 태어날 시기엔 함께 있지 않았다며 자신 역시 상황을 제대로 모른다고 토로한다.

아동가족부 담당자에게 연락해 혹시 자신의 DNA를 실종 아동의 DNA 데이터베이스에 돌려서 교차 대조할 수 있는지를 묻기까지 했다.

돌아온 대답은 냉정했다.

"안타깝지만, 그건 TV에서나 나오는 얘깁니다."

보살필 가족이 생기며 자신 외에도 책임질 사람이 생긴 네드라이지만, 그럼에도 틈틈이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열망을 꺼뜨리지 않았다.

일을 마치고서 늦은 밤이면 인터넷에 접속해 실종 아동 이야기를 검색했다.

자신이 자란 '코네티컷' 혹은 근처 지역명에다 자신의 탄생 연도인 '1987년'을 덧붙여 실종 아동 키워드를 검색해 봤으나 소득은 없었다.

그렇게 찾아 헤메길 1년여..

2010년 12월, 국립 실종학대아동센터 웹사이트에 접속해 전국 각지의 수백의 아이들 사진을 마주한 네드라는 문득 깨닫는다.

자신이 자란 코네티컷과 그 주변 일대, 그곳들에서 자신이 태어났거나 옮겨졌으리라 확신할 수 있을까?

앤이 자신을 어디에서든 데리고 왔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여..

국립 실종학대아동센터 웹사이트의 사진 보관소를 샅샅이 뒤진 끝에..

마침내 직감적으로 피가 반응하는 한 갓난아기의 사진과 조우하게 된다.

네드라는 해당 사진을 바탕화면으로 끌어와 저장한 뒤 다시금 확인했다.

아기의 얼굴은 자신의 아기 사마나와 똑 닮아있었다.

이 아기의 실종 설명란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1987년 8월 4일, 뉴욕 맨해튼 할렘 병원에서 태어난 지 불과 19일 만에 실종된 신생아

(Joy White and Carl Tyson)

2010년 12월.

네드라는 바탕화면 실종 아기 사진을 매번 꺼내보며 혼돈으로 빠져들어 갔다.

앤은 자신의 친엄마가 아니었다. 앤은 네드라의 친엄마(이름도 모르는)가 네드라를 버렸기에 데려온 것이라 주장했었다. 헌대 자신임이 확실한 이 과거 사진 속 아기는 실종된 것이라 한다.

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크리스마스 3일 전.

네드라는 마침내 진실과 마주할 용기를 내고선 국립 실종학대아동센터 직통 번호로 전화를 건다.

그리곤 수화기 너머의 센터장에게 간신히 눈물을 터뜨리지 않고서 말한다.

"제가.. 제가 도대체 누군지 정말 모르겠어요! 엄마가.. 제가 엄마로 알고 있던 사람이.. 제가 태어난 무렵에 저를 납치했던 것 같아요!"

문제의 실종 아기(생후 19일 무렵의) 사진.

그리고 네드라의 아기 시절 무렵 사진.

또 아기 때부터 존재했던 네드라의 우측 팔에 위치한 점.

이러한 단서를 토대로 실종학대아동센터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하여..

불과 며칠 후인 크리스마스 직후..

센터는 과거 갓난아이 자식을 잃어버렸던 조이와 칼에게 연락을 취하게 된다.

여기서 둘은 이메일에 첨부된 네드라의 아기 시절 사진을 확인하고는 이렇게 답해온다.

"우리 딸이 분명해요!"

병원.

흔히 우리가 이 공간에 대해 갖는 맹목적인 신뢰가 있다.

생과 사의 최전선이자, 하얀 가운을 입은 전문가들이 24시간 불을 밝히며 생명을 감시하는, 바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철옹성일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허나..

1987년 8월 4일의 뉴욕 맨해튼..

그중에서도 할렘 병원에선 그것이 위험한 오만에 가까웠다.

조이와 칼 (John Pedin)

1987년 7월 15일.

여고생 조이 화이트는 갓 20살을 넘긴 칼 타이슨과 교제 1년여 만에 아이를 낳게 된다. 둘은 할렘의 서로 다른 동네에 위치한 공공 주택 단지에서 자란 커플로, 칼은 낮이면 트럭을 몰고 밤에는 주차장에서 일하던 근로자였다.

비록 계획된 임신은 아니었으나 둘은 여전히 함께하며 맨해튼의 할렘 병원에서 약 3.6kg의 건강한 딸 아이를 낳는다. 부부는 아이에게 칼리나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렇게 조이와 그녀의 모친이 집에서 칼리나를 돌보고 칼은 퇴근 후 밤마다 들르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러던 8월 4일.

생후 19일 된 칼리나가 한밤중 갑작스레 고열에 시달리는 일이 벌어진다. 부부는 아이가 태어났던 할렘 병원으로 향했고, 병원 입구 부근에서 체격이 큰 20대 흑인 여성 간호사로부터 안내를 받는다.

칼리나의 상태를 확인한 의사는 출산 당시의 감염 문제로 보고서 하루 동안 입원을 권유했고, 칼은 걱정하고 있을 양가 부모에게 소식을 전하고자 공중전화를 찾기 시작한다.

바로 그때, 칼은 복도에서 자신들을 안내했던 흑인 간호사가 조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 간호사는 아기가 괜찮다며 다소 이상한 방식의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아기는 엄마 때문에 우는 게 아니에요. 근데 엄마는 아기 때문에 울죠."

아이의 입원을 위해 부부는 엄마인 조이가 병원에서 밤을 지새우고 아빠는 출근을 위해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허나, 그러기 위해 먼저 집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고자 자정을 30분쯤 넘긴 시각 함께 병원 문을 나선다. 그렇게 칼은 조이를 처가댁 아파트에 내려주고서 집으로 돌아가 잠에 든다.

그러던 새벽 6시경..

부부는 경찰로부터 믿을 수 없는 소식을 건네받는다.

그건 바로, 새벽 3시 40분경 병원 측에서 칼리나가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는 말이었다. 당시 칼리나는 항생제 정맥 주사를 맞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링거관을 빼고서 아이를 납치해 간 것이었다.

헌데, 그 과정이 참으로 미스터리했다.

병원에선 거의 5분마다 아기를 체크했다고 주장했다. 외부의 수상한 침입자도 없었다. 헌데 칼리나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설상가상, 사건 전후로 병원 내에선 하필 영상 감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누가, 어떻게, 도대체 왜?

한편..

칼은 병원 입구에서, 그리고 자신의 아내 조이에게 말을 건네던 체격이 있던 20대 흑인 여성 간호사가 일순 떠올랐다. 기억을 떠올려 보니, 그녀의 간호복엔 이름표가 없었던 것 같았다.

조이 역시 이 흑인 간호사가 자신에게 건넸던 의미심장한 말이 떠올랐다.

"아기는 엄마 때문에 우는 게 아니에요. 근데 엄마는 아기 때문에 울죠."

사건 당시 아이 대신 슬픔이 채워져 있는 빈 요람 앞에서 (Michael Schwartz)

칼리나 실종 사건 직후 뉴욕 경찰 및 형사들은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나..

이렇다할 수사 진척은 없었다.

조이와 칼로부터 전해 받은 신원 불상의 흑인 여성 인상착의, 그리고 병원 경비원이 새벽 3시 30분경 비슷한 인상착의의 여성이 병원을 떠나는 것을 목격했다는 증언이 전부였다. 당시 이 여성은 맨손으로 병원을 떠났으나, 큰 체격 위로 걸쳐진 겉옷 속에 갓난아이를 숨기는 건 충분 가능했다.

기가 막힌 사실은, 이 문제의 간호사는 실지론 간호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여성은 이미 최소 수 주 전부터 간호복 같은 흰색의 의복을 입은 채 병원과 그 주변 일대를 서성였고,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병원 간호사들로부터 동료인 것처럼 인식되도록 녹아들고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간호사들 간의 교대 타임이나 보안의 취약점들을 파악하며 무언가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그렇게..

조이와 칼은 1년간 지속적으로 스트레스와 자책으로 항불안제를 복용하며 치료를 받는 등 고통 속에서 나날을 보냈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서 그날의 아픔을 매 순간 상기하게 되면서 결국은 헤어지기에 이른다.

그리고 각자 가정을 꾸리며 자녀를 낳기도 하지만, 여전히 칼리나의 존재는 이들 마음속 진한 흉터로 남게 된다. (조이는 자신의 이메일 주소로 칼리나의 이름을 사용)

시간은 더욱더 흘러..

2010년 12월.

네드라의 집념으로 말미암아 국립 실종학대아동센터는 그녀를 칼리나와 연결시킬 수 있었고, 조이와 칼로부터 확인을 받은 센터는 뉴욕 경찰의 실종자 전담반에 연락을 취한다.

그리고 2011년 1월 6일.

실종자 전담반은 조이와 칼의 DNA 샘플을 채취한 직후 네드라의 샘플 역시 채취하고자 애틀랜타로 향했다.

한편..

DNA 결과를 기다릴 수 없었던 네드라와 조이&칼은 보름 동안 끊임없이 전화 통화를 나누며 시간의 간극을 일시적으로나마 메울 수 있었고, 마침내 네드라는 둘에게 자연스레 엄마와 아빠라는 호칭을 사용하기까지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조이는 네드라와 네드라의 딸 사마니가 뉴욕을 방문할 수 있도록 1월 15일에 비행기표를 보내주면서 네드라&사마니 조이&칼 간의 해후가 성사되기에 이른다.

그렇게 며칠간 뉴욕에서 시간을 보낸 네드라가 애틀랜타로 돌아가던 무렵..

깜짝 놀랄 일들이 연이어 벌어진다.

먼저, 뉴욕 경찰이 DNA 결과 네드라는 칼리나였음이 확인됐으며 따라서 그녀의 친부모가 조이와 칼이였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리고, 이에 따라 네드라의 엄마였던 앤이 바로 칼리나를 납치했던 유력 용의자로 특정되면서 FBI가 나서게 된다.

뉴욕에서의 주 납치법에 따르면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된 상태였으나, 연방 납치법에는 공소시효가 없었기에 FBI가 체포 영장을 발부받은 것이었다.

동시에..

당연하게도 미국 전역의 언론과 미디어들에선 해당 사건을 특보로 다룬다.

왜냐하면, 미국 현대 역사상 이토록 오랫동안 실종됐다가 다시 부모와 재회한 실종 아동은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유사한 건 캘리포니아에서 18년간 갇혀 있다 재회한 제이시 두가드 유괴 사건뿐이었다.

한편..

FBI는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주방 보조로 일하며 지내던 앤을 기소와 함께 체포한 데 이어 곧장 자수 합의를 받아내기까지 한다.

앤의 변호사는 그녀가 네드라, 아니 칼리나를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여느 다른 부모와 같이 희생하고 사랑을 줬음을 강조하며 여론 반전을 꾀했다.

더불어, 칼리나 역시 앤에 대한 어떠한 부정적인 의견도 내지 않으며 침묵으로 일관한다.

사실, 칼리나에게 있어선 아이러니하게도 태어나서부터 그때껏 쭈욱 앤이 엄마였던 것이다.

체포 당시 앤의 머그샷 (AP)

자수 과정에서 앤이 FBI 앞으로 털어놓은 진술은 다음과 같았다.

그녀는 사건이 벌어진 여름 어느 시점에 유산을 했으며, 그 직후 엄마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게 됐다고 한다.

하여 할렘 병원에서 생후 19일이었던 칼리나를 납치 시도하는데, 그 누구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자 그대로 집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는 가족 친지 및 친구들에게 자신의 아이라고 말했단다.

이는 앤의 여동생이자 칼리나(네드라였던 시절)의 절친 이모였던 카산드라가 했던 이야기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한동안 마을을 떠나있던 언니가 기차를 타고 돌아와서는 아기를 안고 있었다는)

이게 바로, 9개월간 맨해튼의 연방 구치소에 있으면서 앤이 진술한 전부였다.

FBI 측에선 이러한 진술 자체가 사실상 납치에 대한 자백과 다름없다고 여겼으나, 앤의 변호사는 앤이 사건 당시 병원에 있었다는 직접적인 물리적 증거가 여전히 부재중이라고 맞섰다.

더불어..

변호사는 당시 납치 유력 용의자였던 흑인 여성 간호사의 인상착의가 25-30세, 키 약 173cm, 체중 약 81-86kg으로 앤과 일치할지 모르나 그녀 외에도 여기에 들어맞는 유력 용의자가 있음을 지목했다.

아니, 있었음을 말이다.

사실, 사건 당시 뉴욕 경찰의 형사들은 수사 과정에서 유력 용의자를 하나 확보했었다.

이 용의자는 31세의 루시 브로킹턴이라는 여성으로, 얼굴 사진을 확인한 병원 내 목격자들 및 조이로부터 범인으로 생각된다고 지목됐던 인물이었다.

허나, 당시 형사들은 그녀에게 알리바이를 비롯해 별다른 혐의점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이후 수사선상에서 배제했었다.

2012년 7월

그간 앤의 변호사는 칼리나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안정적이고 사랑이 넘치는 행복한 가정을 제공했음을 어필했다.

앤 또한 선고 심리를 앞두고서 서신을 통해 사건에 대한 일체의 사과와 함께 당시 유산에 대한 정신적인 문제에 대해 전문적인 도움을 받았다면 납치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항변과 동시에, 칼리나를 멋지고 똑똑한 여성을 키웠음을 어필해 왔다.

한편, 검찰은 체포 당시 유죄 인정 협상의 일환으로 10-12년 사이의 징역형을 판사에게 권고할 예정이었으나 최종적으로 20년으로 상향 조정했다.

그리고..

미국 연방 지방 판사는 선고 공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페트웨이(앤)는 아기의 건강을 걱정하던 젊은 부부에게 부모로서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악몽을 안겼습니다.

금번 판결이 이들 부부에게 잃은 것을 완전히 보상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도 그 끔찍한 날에 생겼던 상처가 조금이나마 치유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페트웨이에게 12년 징역형, 여기에 더해 3년의 보호관찰을 선고하는 바입니다."

에필로그

최종적으로 앤은 큰 감형을 선고받았다.

처음 검찰 측과 자수 및 유죄 인정 합의를 통해 권고 예정이었던 10-12년 사이의 징역형을 받은 것이다. (앤의 변호사는 합의 후 검찰이 20년형으로 상향 조정한 것에 대해 유죄 인정 합의 위반이라고 공개적인 비난)

검사는 사건 당시 앤의 감정 상태나 정신 상태가 어떠했든 이후 23년간 이어진 거짓과 기만은 결코 정당화할 수가 없다며 상향 권고 이유를 밝혔다.

판사는 해당 사건이 일반적인 탐욕 또는 복수심에서 비롯된 범죄가 아닌 개인의 이기심에 의한 범죄였던 점을 양형 사유로 꼽았다.

한편, 죄수복 차림으로 재판장에 참석한 앤은 발언 기회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피해 가족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리고..

네드라, 아니 칼리나의 친부모였던 조이와 칼은 언론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손을 뻗어 페트웨이(앤)의 목을 조르고 싶었습니다. 지난 23년 동안 고통받아 왔습니다. 그녀가 최소한 23년의 징역형을 받았어야 합니다."

에필로그2

해후 당시의 셋 (Tamara Beckwith)

칼리나가 친부모를 찾고서 그들과 해후한 뒤 진정한 행복을 맞이한다는..

그런 '피가 이끄는 드라마'는 현실에서 곧바로 방영되지 않았다.

이들은 셋 모두 지난 20년 넘도록 각자의 환경에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살아왔던 감정이 있는 인간이었다.

처음 칼리나는 엄마인 조이와의 만남에서 즐겁게 수다도 떨면서 빠르게 모녀 관계를 회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빠인 칼과의 만남에서도 비록 조이와는 조금 달리 어색하고 거리가 느껴졌긴 했지만 시간 문제로만 보였다.

허나 첫 만남 과정에서 칼리나는 칼과 크게 삐걱대기 시작한다. 당시 23세 미만이었던 칼리나는 차량을 렌트할 수가 없었고, 칼은 행여라도 민감한 시기에 자신의 명의로 빌린 렌터카를 칼리나가 몰다가 문제라도 생길까 봐 딸의 요청을 거절한다.

그렇게 칼리나는 친아빠와의 첫 만남에서 무조건적인 사랑보다는 냉정함을 느꼈고, 이에 아직 철부지인 20대 초반 딸아이의 틱틱거림에 칼은 서서히 감정이 상하기 시작한다.

그 직후 미국 전역의 언론과 미디어가 앞다퉈 셋에 대한 취재 열기를 뿜어내던 과정에서 서로 간의 골이 깊어지게 된다.

사실 과거 1992년에 조이와 칼은 할렘 병원을 운영하는 뉴욕시를 상대로 1억 달러의 소송을 제기했었다. 여기서 결과적으로 75만 달러 지불에 합의하며 최종적으론 각각 162,643달러를 받게 된다.

여기서 이미 오래전에 헤어졌던 둘이지만, 각자 받은 돈의 반반씩을 합쳐 16만 2천 달러를 칼리나를 위한 신탁 기금에 넣는다. 칼리나를 꼭 되찾겠다는 희망에서였다.

한편, 2008년에 해당 신탁이 청산되며 둘은 각자 돈을 회수했고 이후 서로의 가정을 위해 생활비 등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이 신탁 기금을 둘러싸고서 조이, 칼, 칼리나는 해후 직후 서로 간에 미묘한 감정을 품게 된다.

분명 이런 몹쓸 사건에 휩쓸렸던 셋으로서는, 이런 현실적인 돈 문제에 대해 여러 복잡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핏줄이 이어져 있기에 더욱 말이다.

비록 고성이나 큰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오히려 해당 문제에 대해 서로 간에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감정을 확인하지 않은 채 어찌 보면 조심성을 부리며 당연히 가질만한 서운한 감정들을 외면했던 게 악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조이와 칼은 칼리나가 신탁 기금에 대한 것을 알고서 냉랭해졌다며, 이런 신탁 기금에 대한 부분이 친부모와의 재회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린 것 같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칼리나는 여태껏 친부모를 찾기 위했던 일련의 과정은 돈 때문이 아니었으며, 조이와 칼에게 신탁 기금에 대해 물었던 것은 변호사의 조언에 따른 것에 불과했다고 항변했다.

담백한 사실을 나열하자면..

처음 신탁 기금에 대해 칼리나가 조심스레 문자로 물어오자, 조이는 세간의 사람들이 여전히 막대한 신탁 기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면 그건 사실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여기에 칼리나는 그저 짧게 'Okay'라고 답변했다.

이 오케이라는 단문 답장에는 분명 여러 감정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의 감정들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고 말이다.

(Tamara Beckwith)

아마..

칼리나의 주된 감정은 '알았어요'라는 것이 보다 컸을 것이고, 조이가 받아들인 것은 '그럼 됐어요'라는 감정으로 받아들인 측면이 더 컸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러한 냉랭한 분위기에 대해 이들 셋은 서로 언론 및 미디어를 통해 섭섭함을 토로하며 점차 균열은 깊어져만 갔던 것이다.

추가로, 조이와 칼은 당시 흑인들의 우상이었던 오프라 윈프리의 쇼에 칼리나와 함께 출연할 기회가 생겼었다.

허나 칼리나의 반대로 결국 무산되고 만다. 칼리나는 방송에 얼굴을 비추며 자신의 과거와 앤의 부정적인 이야기를 강요받는 것에 대한 당사자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러 이유들로 인해, 그리고 아마 20년 넘도록 서로 다른 사람으로 살던 이들의 갑작스러운 해후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설명하기 애매한 감정들로 인해..

비록 훗날 다시 연락을 주고받게 되기는 하지만, 칼리나는 조이와 칼과 한동안 연락을 끊기까지 한다.

에필로그3

앤 페트웨이는 앨라배마주의 연방 교정 시설에서 복역을 마치고는 2021년 4월 석방됐으며 3년간 감독관 아래 보호관찰을 이행했다. 이후의 행적에 대해선 공개된 바가 없다.

칼리나는 아동 범죄 관련 또는 기타 컨퍼런스에 연사로 활동을 이어가며 범죄로부터 영향을 받은 아이들의 옹호자가 되고자 해왔다. 최근엔 애틀랜타에서 자영업자로 지내고 있으며, 그녀의 딸 사마나는 어느덧 성인이 돼 육군에 복무하고 있다.

(Carlina White SNS)

자신의 이름을 네드라 낸스로 알고서 20년 넘게 살아왔던 칼리나.

그녀는 친부모인 조이와 칼, 그리고 자신을 납치해 20년 넘게 양육한 앤에 대해서 복잡한 감정을 내비친다.

이러한 복잡한 감정의 원인으로는, 납치 당사자인 앤이 홀로 생계를 책임지며 그녀를 남들과 다를 바 없이 끝까지 책임지고 양육을 해오며 엄마로 있었던 점이 클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결국 평가는 시점과 환경에 따라 차등을 줘야하는 법일 것이다)

아니, 사실 이건..

아니, 사실 본 이야기의 모든 부분에서 결국 칼리나가 어떠한 감정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감정들에 대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우리는 결코 판단해선 안 될 문제겠다.

물론, 가장 잔인한 형태의 범죄를 저지르고 일련의 카오스를 유발한 죄인이 누구인지는 명백하다.

또 중요한 건, 그녀 스스로가 뿌리를 찾고자 했던 집념을 통해 칼리나 화이트(친엄마의 성)라는 진짜 이름을 되찾았다는 사실이겠다.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을 모두 겪은 그녀는 사람들에게 애칭으로 불렸던 '네티'라는 이름을 선호한다고 말한다. 앤 페트웨이나 친부모가 붙여주지 않은, 유일한 자신 만의 호칭이었기 때문이란다.

그녀의 SNS 메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 있다.

"우리 모두는 이야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챕터를 좋아할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참조

<New York Magazine/Kidnapped at Birth> Robert Kolker
<The New York Times/Woman Abducted as Infant in 1987 Meets Family> Anahad O’Connor & Al Baker
<The New York Times/Woman Admits to Kidnapping Baby in 1987> Michael Wilson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