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재앙을 막으려 사람을 죽였다는 연쇄살인마


본 글은,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미국의 기괴한 연쇄살인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연쇄살인마는 불과 4개월 동안 13명의 사람을 잔혹하게 살해했는데, 이는 모두 대재앙을 막기 위한 일종의 등가교환이었다고 주장합니다. 미국 연쇄살인마 계보에서 단연코 기괴한 케이스 중 하나로 분류되는 해당 이야기. 직접 확인해 보시길.


* 본 글은 단순히 범죄사건과 관련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오락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사건의 악랄한 범행성을 알림과 동시에 범죄의 연보年譜를 통한 교육에 그 목적을 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연쇄살인마.

이들의 동기는 지극히 원초적이고 지극히 세속적이다.

이들은 오래도록 내재한 삐뚤어진 분노 및 사디즘적 환상을 해소하고자 살인을 위한 살인을 하는 자들이다.

대부분은 말이다.

간혹은..

환상의 해소가 아닌 그저 눈앞의 필요한 이익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 유형이 있다.

그리고 아주 간혹은..

결코 다른 사람은 이해할 수가 없을 그런 '자신만의 공익'을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마가 있다.

통제할 수 없는 성적 가학증, 금전적 이득, 혹은 특정한 대상층에 대한 뒤틀린 분노.

허나, 범죄학의 역사에는 이 모든 범주를 벗어나는 기괴하고 이해하기 힘든 소수의 변종이 존재한다.

허버트 멀린이 바로 그러한 변종의 대표 격인 살인마였다.

그는 스스로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한 숭고한 의무'를 품고서 살인을 집행했노라 굳게 믿는다.

허버트 멀린 (Born To Kill?)

허버트 멀린.

25세 청년이었던 그는 1972년 말부터 1973년 초까지, 캘리포니아의 평화로운 해안 도시 산타크루즈를 피로 물들였다.

그는 불과 4개월 동안 무려 13명의 남녀노소를 도살했다.

살인 동기는 단 하나였다.

"내가 사람을 제물로 바쳐 사망률을 높이지 않으면, 거대한 지진이 캘리포니아를 바다 밑으로 가라앉힐 것이다."

단순히 미치광이의 행적으로만 일축하기엔 그가 남긴 시체의 수가 너무 많았고 범행은 또 섬뜩할 정도로 치밀했다.

고등학교 시절 '가장 성공할 것 같은 학생'으로 뽑혔던 전도유망한 청년의 뇌 속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저 흥미 유발을 위한 자극적인 서술에서 벗어나, 어떠한 의학적&심리학적 이유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해하는 인격으로 발전했는지를 되짚어보겠다.

짐 지아네라. 짐의 바로 아래 학생이 멀린 (Born To Kill?)

허버트 멀린은 1947년 4월 18일 캘리포니아 살리나스에서 태어나 샌프란시스코 근교 산타 크르주에서 유년기와 성장기를 보냈다.

그에겐 유년기에서 전형적인 연쇄살인마들이 겪는 심각한 트라우마가 존재하지 않았다. 규칙이 엄격한 아버지를 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성적이 우수했으며, 미식축구팀에서 활약하는 끈기 있는 소년이었다.

그는 학창 시절 인기가 꽤나 많은 편이었으며 여자 친구도 있었다. 1965년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엔 동급생들이 그를 '가장 성공할 것 같은 학생'으로 선정할 정도였다.

그러던 1965년 6월.

그의 인생에서 크나큰 갈림길이 생겨난다.

가장 친한 친구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게 그것이다.

베프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멀린의 정신 체계를 무너뜨린 첫 트리거였다. 그는 방 안에 친구를 기리는 제단을 세우고서 환생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이 불안정한 정신 상태에 기름 역할을 한 것은 약물이었다. 이 베프의 또 다른 친구를 통해 마리화나를 처음 접한 멀린은 이후 LSD 등 환각제를 복용하며 점차 심연으로 깊이 한다.

(Born To Kill?)

이 무렵 대학 생활에 들어선 멀린은 가톨릭 신앙을 버리고서 동양 종교들에 심취한다.

약물에 취해 동양 종교들을 뉴에이지풍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당시 시대상에 비추어 볼 때 그리 드문 건 아니었으나,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마리화나와 LSD의 실험 장소로 여긴 멀린은 나날이 그 기행이 빈번해졌다.

저녁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매형이 포크를 들면 포크를 들고 물을 마시면 물을 마시는 등 매형의 모든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하기 시작했다. 마치 무의식 상태의 인형 같이 말이다.

여기서 잠시..

멀린이 매형의 행동을 기계적으로 따라 한 현상은 일종의 동작모방증인 Echopraxia로 볼 수 있겠다.

이는 비자발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을 반복해서 모방하는 현상으로, 아직까지도 명확한 기전이 밝혀지지 않았으나 신경세포인 거울 신경 세포로 인한 신경과학적 문제라는 이론이 존재한다.

간략히 말해, 건강한 뇌는 타인의 행동을 볼 때 거울 신경 세포가 활성화되더라도 전두엽이 이를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반면, '거울 신경 세포 시스템의 억제 기전 결함'으로 인해 동모방증이 발현된다는 것.

해당 증세는 주로 투렛 증후군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알려졌었으나..

이밖에도 간질, 실어증, 자가면역 질환, 자폐 스펙트럼 장애, 치매 환자에게서 관찰된 바가 있으며..

또한, 조현병 환자에게서도 관찰된 특징이기도 하다.

그렇게..

21세이던 멀린은, 1969년 주립 병원에 자발적으로 입원하며 약물 남용으로 조현병이 악화됐다는 진단을 받고서 항정신병 약물로 치료를 받기 시작한다.

허나 치료 프로그램에 비협조적으로 나서며 고작 6주 만에 스스로 병원에서 퇴원한 멀린은, 그해 여름 공원의 산림 경비원에게 칼을 뽑아 들었다가 구치소 신세를 지기도 한다.

하여 지역 약물 남용 예방 센터에 거주하며 다시 치료에 들어갔으나, 불이 붙은 담배로 자신의 성기를 의식적으로 지지는 자해를 하는 등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이후에도 환청을 듣고 누군가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며 점진적으로 증세가 악화되면서, 자신과 타인에게 위험을 야기할 수 있는 중증 상태로 진단받으며 급기야 종합 병원 정신과 병동에 강제 입원된다.

그리고..

이미 증세는 심히 심화된 상태였다.

편집성 조현병을 진단받은 멀린은 8주간 입원 치료 후 예후가 좋지 않음에도 지역 정신건강 클리닉에 출석하는 조건으로 이른바 조건부 퇴원을 한다.

한편, 이후 멀린은 부모에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힌다.

그는 본디 2년 전인 1967년 한 여성과 약혼한 바가 있었으나, 1968년 약혼 파기 이후 스스로를 양성애자로 규정짓기도 했었다.

두 번의 입원 치료와 퇴원.

그러나 예후가 좋지 않았음에도 장기 치료를 거부했던 멀린.

그는 이번에도 클리닉에 간헐적 방문만을 했으며 집단 치료 세션에는 거의 결석이었다. 무엇보다도, 약 복용을 소홀히 했다.

이후 약 반년간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던 멀린은, 한 공동체 집단에서 알게 된 친구와 하와이로 간 곳에서 그곳의 정신건강 클리닉에 자발적으로 입원한다.

그리고 역시나 정신과의는 분열정동형 조현병 진단을 내린다.

여기서 잠시..

중증 조현병 환자들이 치료를 거부하고 약물을 중단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단순한 고집 때문이 아니라 '병식 결여' 때문이다. 이는 자신의 뇌 기능이 망가졌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신경학적 증상이다.

따라서 의료진의 개입을 자신을 방해 또는 위협으로 느끼기에 철저히 배척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는 것.

그렇게 1970년서부터 1972년 가을까지..

20대 초중반이었던 멀린은 인생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서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세월과 함께 병을 키워만 나갔다. 약물이나 술에 취해 소란을 부리다가 구치소 신세를 지기도 하고 말이다.

이 무렵 그와 그의 정신적 질환에 있어서 크나큰 악영향을 끼치는 일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1971년 5월경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온 그가 약물 및 알코올 중독자 그리고 정신 질환자들이 대거 거주하던 한 낡은 아파트에 똬리를 틀었다는 것이다.

치료나 세션과 같이 특수한 목적으로 인해 모여진 것이 아닌 이상, 방치된 중증 정신 질환자들과 약물 중독자들 사이의 군집은 최악의 환경이다. 망상을 교정해 줄 이성적인 외부 자극이 완전히 차단되면서, 필연적으로 멀린의 현실 검증 능력이 영구적으로 상실되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급기야..

멀린은 환청을 누군가로부터의 텔레파시라 믿게 됐으며, 곧이어 자신은 신으로부터 특별한 임무를 하달받은 사람이라 믿기에 이른다.

그리고..

우연히 도서관에서 아인슈타인에 대한 책을 접하면서..

자신이 아인슈타인의 기일인 4월 18일에 태어났다는 사실에 강렬한 운명을 느낀다.

이는 자신과 전혀 무관한 외부 사건을 자신과 특별한 연관이 있다고 믿는 관계 망상이, 자신이 세상을 구원할 특별한 임무를 띠고 있다는 과대망상으로 진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 무렵 멀린은 수백 장의 노트에 도무지 해독할 수 없는 글들을 써 내려갔다.

복싱 체육관에 나가 스파링을 하면서도, 코치가 링 구석에 그를 세워두고 잠시만 등을 돌리면 그는 허공에 대고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기서 잠시..

멀린의 이러한 행동은 Hypergraphia의 특징과 일치한다.

이는 글쓰기나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아주 강력한 강박적 욕구로 인해 반복된 행동을 구현하는 증세로, 측두엽 간질 및 양극성 장애 또는 기분과 에너지를 증진시키는 약물과 같이 화학물질로 인한 도파민을 통해 유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종합하자면..

멀린에게선 이미 뇌의 인지 기능과 현실 감각이 심히 파괴되고 있었으며, 기존의 유전적 및 기질적으로 잠재됐던 조현병 성향이 환각제를 만나면서 이미 빠르게 촉발이 이뤄진 것이라 추정이 가능하겠다.

추가로, 이미 20대 초반 증상의 발현과 함께 외부로 배출됐던 폭력성 역시 심화된 상태였다. 체육관을 나가 복싱이라는 운동을 시작하며 전체적인 증세 완화의 기회가 될 수도 있었으나, 아마추어 복싱 대회에서 상대를 공격하는 것을 멈추지 않아 트레이너들이 강제로 떼어내어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멀린의 분열된 뇌는 무관한 정보들을 조합하여 거대한 우주적 망상을 완성해 나간다.

이 망상의 핵심 축은 자신의 생일인 4월 18일이었다.

자신이 태어난 4월 18일, 아인슈타인이 사망한 날 4월 18일, 그리고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발생한 날짜가 모두 같다는 사실에 집착한다.

그는 이를 우연이 아닌 계시로 여겼다.

그의 망상 속에서 아인슈타인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지진 발생일에 맞춰 스스로 제물이 된 것이었으며, 자신은 그 운명을 이어받은 '13번째 사도'였다.

약 복용도 중단하며 나날이 증세가 심해지던 멀린.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온 25세의 멀린은, 이제 환청이 살인을 속삭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인간의 피(사망률)가 떨어지면 지구는 균형을 맞추려 자연재해를 일으켜! 4월 18일에 태어난 내가 사람들을 제물로 바쳐 캘리포니아의 대지진을 막아야 해! 사람들을 구해야만 해!"

1972년 10월.

지역 레스토랑의 버스 보이로 취직한 멀린.

허나..

그 자신은 오로지 첫 번째 의식의 실행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10월 13일, 멀린은 자신의 첫 번째 의식을 집행할 날짜를 선택했다. 범행 방식은 특정 타겟을 은밀히 미행하는 것 같은 게 아니었다. 그는 희생자의 '동의'를 갈구했다.

산타크루즈 외곽의 도로변.

멀린은 58년형 쉐보레 차량의 보닛을 열어두고서 차가 고장 난 척 서 있었다.

바로 그때, 55세의 부랑자가 다가와 엔진룸을 들여다보며 도움을 주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멀린의 귀에 환청이 들려왔다.

그 부랑자가 이렇게 텔레파시로 속삭여왔다.

"나는 요나(Jonah, 구약성경 속 기원전 8세기경의 유대인 예언자)입니다. 나를 밖으로 던지십시오."

첫 피해자 로렌스 화이트 (Born To Kill?)

멀린은 주저 없이 야구방망이를 꺼내어 부랑자를 때려 숨지게 했다.

이어 시신을 길가에 아무렇게나 유기했다.

대지진을 막기 위한 첫 번째 제물이었다.

10월 24일.

두 번째 피해자는 24세의 여대생이었다.

히치하이킹을 하던 그녀를 차에 태운 멀린.

멀린은 그녀 역시 텔레파시로 죽음을 허락했노라 믿는다.

그렇게 운전 중 칼을 꺼내 그녀를 난자하고는, 시신을 밖으로 끌어내어 배를 가르고 내장을 모두 꺼내어 펼쳐 놓는 엽기적인 시신 훼손을 자행한다.

시신은 언덕길을 따라 유기됐으며, 다음 해 2월에야 발견된다.

여기서 잠시..

피해자가 자신을 죽여달라고 텔레파시를 보냈다는 멀린의 주장은, 그가 이미 중증 편집성 조현병에 이르렀으며 그에 따른 전형적인 망상 방어기제가 발현됐음을 암시한다.

자신의 파괴적 행위를 정당화하고자, 뇌가 스스로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희생을 요청'이라는 청각적 환각 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1972년 11월.

세상을 구원한다는 멀린의 망상은 점차 모순적인 사적 분노와 결합되기 시작했다.

11월 2일, 로마 가톨릭 교리의 세상을 떠난 모든 신자를 기리는 전례일.

가톨릭 신앙에 비판적으로 돌아선 멀린은 로스가토스의 한 가톨릭 성당을 찾는다. 그곳의 고해소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레지스탕스로 활약했던 지역의 존경받는 신부가 있었다.

멀린은 고해소에 들어가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한 직후, 자신이 소지하고 있던 사냥용 칼로 신부의 심장을 무참히 찔렀다. 기록에 따르면, 멀린은 자신의 고해 내용이나 정황이 발각되는 것을 막고자 그같은 짓을 자행했다고 한다.

피해자 헨리 토메이 신부 (Born To Kill?)

한편..

이후 수사관의 증언에 의하면, 피를 쏟으며 죽어가던 신부는 놀랍게도 멀린의 행위에 대해 용서를 입에 올리며 숭고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허나, 이미 정신적 붕괴 상태였던 멀린은 신부의 이 숭고한 용서 발언조차 자신이 집행한 제물 의식에 대한 '자발적인 텔레파시적 동의'라며 철저히 왜곡한다.

1972년 12월 16일.

아인슈타인의 생전 언행과 행적들을 기록한 서적을 읽고서 총기를 구입한다.

해당 서적에서 '스위스의 모든 성인 남성이 민병대에 속해 자기방어 목적으로 총을 소지한다'라는 구절을 보고서 자신은 3분의 1이 스칸디나비아인이기 때문에 총이 필요하다고 여겨서였다.

이 무렵 멀린은 해안경비대 및 해병대 입대를 꿈꾸나 심리 평가 불합격이나 전과 기록 열람 동의 거부로 인해 좌절된다. 분명, 이러한 좌절은 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리라.

여기서 잠시..

아인슈타인의 행적을 담은 책에서 하필 '스위스인의 총기 소지' 구절을 찾아내 자신의 핏줄(스칸디나비아계)과 억지로 연결한 것 역시 전형적인 증상이라 할 수 있겠다.

그의 뇌에서 구축된 거대한 망상 시스템은, 현실에 존재하는 객관적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 총이 필요하다는 것을 합리화하고자 필요한 조각으로만 왜곡해 끼워 맞추는 것이다.

1973년 1월 19일.

평소 계속해서 부모에 대한 분노를 무분별하게 표출하고 끊임없이 비판을 가해오던 멀린에게 지칠 대로 지치면서, 그의 부모는 집에서 나가라는 통보를 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허름한 아파트로 이사한 멀린.

그는 자신의 인생이 망가진 근본적인 이유가 처음 친구 딘을 잃었을 때 마리화나를 건네준 딘의 친구 짐 때문이라는 원망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1월 25일.

멀린은 짐의 옛 주소로 찾아갔으나 그곳엔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여기서 짐이 다른 곳으로 이사 갔다는 사실을 전해 들은 멀린은, 그곳으로 찾아가 짐과 그의 아내를 총으로 쏜 뒤 칼로 반복해서 찌르며 살해한다. 지진을 막기 위한 제물이라는 핑계 뒤에 이른바 사적인 보복 살인이 끼어든 것이다.

그리고..

짐의 옛 주소를 다시 방문한 멀린은, 그곳에 거주하던 여성과 그녀의 두 아들을 칼로 무참히 살해한다.

피해자 캐시 프렌시스와 실지 범죄 현장 (Born To Kill?)

고해성사 직후 신부 살해와 더불어 해당 살인까지..

이는 비록 멀린이 망상에 의한 환자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행동을 인지하고서 그러한 행적을 덮거나 목격자를 제거하려 했다는 강력한 방증이었다.

불과 3개월 만에 8명이 끔찍하게 살해되면서 산타크루즈 카운티 일대는 공포에 휩싸인다. 더군다나 피해자의 연령, 성별, 살해 방식이 완전히 무작위였기에 경찰은 수사에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1973년 2월 6일.

주립공원의 외진 산속에서 텐트를 치고 캠핑을 하던 4명의 10대 소년이 각자 머리에 총탄을 맞고 살해당한다.

멀린은 공원을 걷던 중 이 소년들이 불법적으로 텐트를 치고서 자연을 훼손하는 규칙 위반을 저지른 것이라 여긴다.

여기서 조현병 증세가 자극되며 강렬한 처벌 욕구가 일어났고, 그의 환상 속에서 텔레파시로 소년들에게 살해 동의를 받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텐트에 난입해 아이들을 차례대로 사살한다.

(Born To Kill?)

12명 째..

그야말로, 피의 질주였다.

그리고..

막이 내려진 건, 1973년 2월 13일이었다.

멀린은 차를 몰고 가던 중, 앞마당에서 정원을 가꾸고 있던 73세의 노인을 발견한다. 멀린은 차를 세우고는 대낮의 주택가에서 노인에게 총격을 가한 뒤 그대로 차를 몰고 현장을 떠난다.

천만다행이도..

노인이 총에 맞는 것을 목격한 이웃이 즉각 차량 번호를 신고했고, 대낮임에도 기초적인 은폐 본능마저 상실했던 멀린은 경찰에 의해 순순히 체포된다. (중증 정신질환에 다다른 연쇄살인마의 경우 무계획적이고 비규칙적인 데다 이미 범행 은폐 및 은닉 과정을 신경 쓰지 못하는 상태인 게 보통)

한편..

현장 일대에서 검문 중이던 경찰에 의해 체포된 멀린은 저항 없이 그대로 묵비권을 행사한다.

그렇게 체포된 멀린은 평온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캘리포니아를 바다로 가라앉게 할 대지진을 막고자 그들을 희생시켰을 뿐이오."

(Born To Kill?)

가택 수사에 돌입한 경찰은 곧바로 유력한 증거물들을 발견한다. 멀린의 아파트에서 짐(옛친구 딘의 친구였던)의 주소가 적힌 주소록, 그가 저지른 살인 사건에 관한 신문 기사들, 그리고 고해성사 당시 살해됐던 신부의 묵주 주머니가 나온 것이다.

한편..

멀린은 사건들이 있었던 기간에 캘리포니아에 눈에 띄는 지진이 없었으므로 이것이 자신의 공로라고 믿었다.

또, 재판이 열리는 가운데 국선 변호사가 당시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과 충분히 닮지 않았다는 황당한 이유로 선임을 거부하려 드는 등 기행을 보였다.

이에 변호인단은 그의 조현병 망상이 인지 능력을 완전히 장악했으므로 정상적인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허나, 검찰은 멀린이 짐(옛친구 딘의 친구였던)을 살해하던 당시 범행을 은닉하고자 목격자의 집을 다시 찾아가 범행을 저지른 점 등을 근거로 그가 자신의 행동이 범죄임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노라 반박한다.

여기서 잠시..

영미형사법에는 형사책임능력 판단을 기준하는 맥노튼 규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러한 심신미약을 판단하는 주요 기준인 맥노튼 규칙은, 피고인의 정신 질환 유무가 아니라 '자신의 행위가 도덕적 및 법적으로 틀렸다는 사실을 인지할 능력이 있었느냐"를 따진다.

따라서, 멀린이 세상을 구한다는 환상에 빠져 있었더라도 목격자를 제거하려 한 행위는 법적 인식을 전제로 하기에 사법 시스템은 그저 맹목적으로 병원에 보내는 대신 그의 고의성을 심판대에 올리는 것이다.

(Born To Kill?)

1973년 8월.

4개월 동안 13명을 살해한 멀린에 대해 배심원단은 범행 당시 심신 상실 상태가 아니었다고 판단한다.

그렇게 26세의 멀린은 1급 살인 유죄 2건, 2급 살인 유죄 8건을 선고받고서 가석방 가능성이 있는 종신형으로 교도소에 수감된다.

에필로그

사망 3주 전 촬영된 멀린의 사진 (California Department of Corrections and Rehabilitation)

멀린은 수감된 이후에도 수십 년간 신념을 굽히지 않고서 자신이 캘리포니아를 구했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유명 심리학자이자 당시 캘리포니아 지역 강력 사건의 피고인들을 주로 인터뷰하던 데이비드 말로우 박사는, 멀린이 편집형 조현병 반응을 보인다고 진단 내렸다.

멀린은 1980년 이래 총 8번에 걸쳐 가석방이 거부됐다.

2022년 8월 18일, 멀린은 노환으로 75세에 자연사하면서 마침내 수감 생활을 끝낸다.

에필로그 2

동시기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 지역에선 10명을 살해한 악명 높은 연쇄살인마 에드먼드 켐퍼가 있었다.

켐퍼 역시 멀린과 동시기에 체포돼 옆방을 쓰기도 했었다.

한편, 재소자들이 TV를 보려고 하면 어느새 나타난 멀린이 노래를 부르고 시끄럽게 굴며 방해를 하는 버릇이 있었다고.

이에 짜증이 난 켐퍼는 멀린에게 물을 뿌렸고, 멀린은 이내 입을 다물고는 얌전해졌다.

그처럼 2m가 넘는 거구의 켐퍼는 멀린이 노래를 부르고 시끄럽게 굴면 물을 뿌리는 체벌을 가한 뒤 조용해지면 그가 좋아하던 땅콩을 줬고, 이에 행동 수정 치료가 된 멀린은 노래를 부를 때면 항상 먼저 허락을 구했다고 전해진다.

에필로그 3

보통 정신 질환을 앓는 환자의 경우 자신의 상태를 은폐하는 성향이 있기에 가족과 주변인들이 만성적인 상태에서나 알아채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간혹 그러한 정신 질환 상태에서 벌어지는 범죄 사건들에 대해 사람들은 질환 자체에 대한 악의의 깊이를 키워나가곤 한다.

결국, 현실적으로 사회 구조 및 시스템상 가장 중요한 예방법은 정신 질환에 대한 대중적 인식 및 환기일 것이다.

참조

<Born To Kill?/Herbert Mullin>

<Radford University Department of Psychology/Serial Killer Timeline Herbert Mullin> Vernetta Watts, Virginia Douglas, Doreen DeWitt, Erin Walker, Kelly Thompson, Adam VanZandbergen, John Stacy, Benjie Soberano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