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대규모 학살 사건
1939년 여름이었다.
그러니까..
제2차 세계대전 발발 1개월 전이었다.
영국은 NARPAC(국가 공습 대비 동물 위원회)라는 위원회를 구성한다.
그리고 가을 초입.
정부 차원의 팸플이 사람들에게 배부된다.
해당 팸플릿에는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적혀 있었다.
안내문은 곧이어 대부분의 신문과 BBC를 통해서도 발표됐다.
"가능하다면,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가정 내 동물들을 시골 지역으로 보내거나 데려가십시오."
"만약 이웃에게 맡길 수 없다면, 그들을 처분하는 것이 사실상 가장 자비로운 방법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사실, 영국은 1822년 세계 최초로 동물보호법을 제정한 대표적인 동물 애호 국가이며 동물 복지 수준 또한 최상위를 기록하는 곳이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에서 버려진 반려동물들의 야생화로 큰 문제가 있었고, 이에 국가 차원의 예방 조치로서 대도시의 반려동물을 시골로 대피시킬 것을 제안하고자 이같은 캠페인을 펼친 것이다. (처분은 권고문의 마지막 선택지로)
허나..
이는 오히려 전쟁을 목전에 둔 사람들의 심리를 부정적으로 건드리는 촉매가 됐다.
'전쟁터로 향해야 하니까', '폭격을 당할 수 있으니까', '배급제가 시행되면 굶주릴 테니까'와 같은 공황에 따른 지극히 당연한 심리 외에도..
'국가가 반려동물을 처리하라고 했으니까', '전쟁이 시작되면 그래야 하는 거니까', '반려동물이라는 사치를 누리는 것은 부적절하니까'와 같이 '국가에 대한 기여'라는 측면의 심리적 요소가 자극받은 것.
그리하여..
1939년 9월 3일,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발표하자 수많은 이들이 수의사들에게 반려동물 안락사를 요청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불과 일주일 만에 런던 전체 반려동물 개체수의 4분의 1에 해당하던 약 75만 마리가 안락사됐다고 집계된다.
국가는 전쟁의 준비를 말했고, 그러한 준비는 거실의 한켠에서 가장 먼저 시작됐던 것이다.
이와 같이 국가가 주도한 공공 캠페인은 본 의도와 달리 '전쟁 공황' 및 '국가에 대한 의무감 조장'을 야기하며 부작용을 낳았다. (보급품이 생각보다 부족하지 않았고 독일의 영국 본토 폭격 역시 1년 후에나 이뤄짐)
허나, 앞서 상술했듯 영국은 대표적인 동물 애호국이었다.
전쟁 기간 동안에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 구조 센터(1860년 설립)인 Battersea는 약 14만 5천 마리의 개와 고양이를 먹이고 돌봤다. (당시 Battersea의 정식 직원은 고작 4명에 불과)
또, 신문 및 잡지 광고 지면으론 자신의 반려동물을 안락사한 이들이 명복과 용서를 구하는 추모 광고를 싣기도 한다.
어찌 보면, 이 모든 이야기가 인간의 불필요한 감성이자 적자생존의 논리에 들어맞지 않는 비효율과 과잉의 방증으로 보일 수 있겠다.
그렇지만, 바로 이러한 '거추장스러운 인간성'이 지금 우리를 계속 존재시키는 수렴진화의 열쇠이자 문명의 뿌리와 발전을 견인케하는 경계선이었을 수도 있다.
거룩한 낭비.
어쩌면 그것은, 종의 지탱을 위해 허락된 가장 숭고한 요소일는지 모른다.
참조
<BBC News Magazine/The little-told story of the massive WWII pet cull> Alison Feeney-H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