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대사에 악명과 논쟁을 낳은 무법자

* 본 글은 단순히 범죄사건과 관련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오락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사건의 악랄한 범행성을 알림과 동시에 범죄의 연보年譜를 통한 교육에 그 목적을 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무법자'라는 것이 존재한다.

살면서 한 번은 직간접적으로 겪고야 마는 인간상이다.

헌데 만약, 이런 무법자가 당신의 주변에서 당신과 당신 가족의 잠재적인 위협이 된다면..

그런 당신에게 법과 질서가 아무런 도움도 제공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어디에서 어떻게 정의를 찾을 것인가.

이 이야기는, 이러한 의문에 대한 글이다.

(Greg Kozol)

미국 중서부 지역 미주리주.

이 미주리주의 북서부 끝으로 전통적인 농업지역 노더웨이 카운티가 있다.

그리고 노더웨이 남서부 끝자락 부근엔 스키드 모어라는 작은 시골 마을이 있다.

스키드 모어는 명동보다도 더 작은 면적에 지금껏 인구수가 600명을 넘은 적이 없는 전형적인 미국 소촌이다.

헌데, 이런 작은 마을에 미국 현대사에 악명을 남긴 무법자가 존재했었다.

이 무법자는, 1960-1970년대에 걸쳐 스키드모어의 주민 440여 명을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끝없는 절망감에 빠뜨리며 유린했다.

이 무법자는, 켄 맥엘로이라는 이름의 남성이었다.

맥엘로이는 1934년 가난한 부부 사이에서 열여섯째 중 열다섯째로 태어났다.

부부는 이곳저곳을 떠돌며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노동을 하는 소작농이었다. 부부는 이주 끝에 미주리 북서부 지역에 정착했다. 그렇게 맥엘로이는 스키드모어와 인접한 지역에서 성장기를 보낸다.

검은 상의가 10대 시절의 켄 맥엘로이 (SundanceTV/No One Saw a Thing)

맥엘로이는 성장기를 방목된 채로 보냈다.

의무교육을 제대로 마치지 않아 문맹이었고, 10대 무렵엔 너구리 사냥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며 보냈다. 이 무렵 익힌 사냥과 도둑질은 장차 그의 삶의 방식이 된다.

그는 평생 남의 물건을 갈취하고 훔쳐댔다.

농작물, 휘발유, 귀중품, 골동품, 그리고 가축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도둑질한 물건을 다른 지역에 내다 팔면서, 스키드모어 근방의 제일가는 현금 부자였다.

동시에 맥엘로이는 색정광이자 소아성애자였다.

그는 자주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가정의 10대 초중반 소녀들을 꾀어냈고, 그러한 과정에서 강압적으로 관계를 갖기 일쑤였다. 이렇듯 10대 후반 무렵부터 20년간, 10대 초중반의 소녀들과 그녀들의 가족을 겁박하고 위협하는 방식으로 여러 명의 아내를 두었다.

(SundanceTV/No One Saw a Thing)

맥엘로이의 마지막 아내였던 트레나가 14살에 처음 임신을 했을 무렵, 그는 마흔이 다된 나이였다.

또한, 이미 맥엘로이의 배다른 자식이 10명에 달할 정도였다.

(SundanceTV/No One Saw a Thing)

트레나는 출산 직후 맥엘로이의 또 다른 아내와 도망을 나오나, 이후 맥엘로이가 총을 들고서 그녀들의 가족을 협박하고 집을 불 싸지르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그녀들은 어쩔 수 없이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그녀들은 세뇌되다시피 하며 순응하는 삶을 살게 된다.

(Jupiter Entertainment)

맥엘로이는 키가 180cm를 넘겼으며 120kg에 육박하는 육중함을 지니고 있었다.

몸에는 위압적인 문신이 새겨져 있었고, 항시 총과 칼을 소지한 채 사람들을 겁주곤 했다.

그는 폭행, 절도, 강간, 방화, 살인미수와 같은 각종 중범죄를 저지르며 기소된 것만 20건이 넘을 정도였다.

(SundanceTV/No One Saw a Thing)

이렇듯 1년에 3-4건씩 중범죄로 기소되면서도 맥엘로이는 한 번도 유죄를 받은 적이 없었다.

그는 재판 때마다 캔자스 지역의 유능한 변호사인 맥페딘에게 거액의 현금을 지불했고, 맥페딘은 재판을 연기하며 상황을 컨트롤했고 동시에 맥엘로이에게 적절한 법적 조언을 제공했다. 그러면 맥엘로이는 한발 더 나아가 증인을 매수하거나 심지어 피해자나 배심원을 교묘히 위협하고 겁을 줬다.

(SundanceTV/No One Saw a Thing)

1976년, 맥엘로이가 40대 농부였던 헨리에게 심각한 중상을 입힌다. 헨리에게 생트집을 잡아 산탄총을 두 차례나 발사한 것이다.

그렇게 살인 미수로 기소됐고, 지역 주민들은 이번에야말로 맥엘로이가 감옥에 갇히게 됐다며 크게 기대한다.

허나, 변호사와 맥엘로이는 언제나와 같은 전략을 고수하며 이번에도 무죄를 판결받는다. 이에 스키드 모어 주민들은 깊은 절망감에 빠지게 된다.

행정력과 경찰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구석진 시골 소촌인지라, 법의 힘마저 악용하는 이 무법자를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맥엘로이는 경찰도 아무렇지 않게 위협하면서 경찰들마저 그를 꺼릴 정도였다.

이렇듯 스키드 모어 주민들은 사시사철 자연재해를 곁에 두고 사는 신세였다.

맥엘로이는 정말이지, 악의를 품고서 내킬 때마다 몰아쳐 대는 재난이었다.

한밤중에도 아이들이 홀로 돌아다니고, 가장 큰 범죄 사건이라고 해봐야 수박 서리가 전부였던 평화로운 농촌 마을이 한 무법자로 인해 산산이 파괴되고 있었다.

그렇게 20여 년간 신음하던 스키드 모어에서 문제의 사건이 발생한다.

(SundanceTV/No One Saw a Thing)

1980년 4월 25일이었다.

맥엘로이家의 어린 자녀들이 군것질을 하고자 식료품점에 들렀다.

여기서 4살짜리 막내가 멋모르고서 계산을 하지 않은 채 캔디를 들고 나갔고, 점원은 뒤쫓아와 계산을 하라고 타일렀다. 이에 함께 있던 맏언니는 민망함으로 인해 모욕감과 분노를 느껴 도둑질을 한 것이 아니라고 소리를 질렀다.

한편, 이러한 해프닝을 알게 된 맥엘로이와 트레나는 가게를 찾아가 욕설을 퍼부으며 분노를 터뜨렸다.

(SundanceTV/No One Saw a Thing)

맥엘로이가 주머니칼을 든 채로 역정을 내며 소란이 발생하자, 가게 주인이었던 노부부는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하며 서로 간에 오해가 있었던 것이라고 진정시킨다.

이에 맥엘로이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됐는지 화를 누그러뜨리고는 담배를 구매하려고 한다.

허나, 노부부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노부부는, 문제를 일으킨 맥엘로이 가족은 앞으로 가게 출입을 금한다고 선언한다.

이날 이후로 맥엘로이의 집요한 괴롭힘이 시작된다.

시도 때도 없이 노부부가 사는 집 앞으로 찾아와 과거 다른 피해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노부부를 노려보며 무언의 위협을 가했다. 또한, 아내들끼리 길거리 싸움을 붙여서 분쟁을 해결하자는 지극히 무례하고 모욕적인 제안을 거듭하기도 한다.

사건 1달 후인 5월 29일 저녁, 노부부의 집 앞을 찾은 맥엘로이는 하늘을 향해 산탄총을 두 차례 발사한다. 그리곤 30분 후에 다시 찾아와선 한 번 더 발사한다.

다음 날 아침, 노부부는 차를 몰고선 주 보안관 사무실로 찾아가 신고를 접수한다.

허나, 보안관은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 접수받은 신고서를 검사에게 제출하지도 않고서 따로 조치를 취하지도 않는다. 설상가상, 그 이틀 후 맥엘로이가 또다시 노부부의 집 근처에서 위협사격을 가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1980년 7월 8일 저녁, 결국은 일이 터지고야 만다.

(SundanceTV/No One Saw a Thing)

노부부 중 남편 쪽이 늦게까지 가게에 남아있던 날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맥엘로이가 노인을 향해 산탄총을 발사했다.

천만다행히도, 노인은 목 부위에 총상을 입고도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한편, 맥엘로이는 사건 발생 몇 시간 만에 체포된다. 자신은 현장 근처에도 있지 않았다며 발뺌했으나 어림없었다.

그러나 곧장 변호사 맥페딘에게 전화를 건 맥엘로이는, 다음 날 아침 3만 달러라는 거액의 보석금을 지불하고서 풀려나고는 그날 밤 태연히 술집에 들린다.

맥엘로이는 여느 때처럼 사건 조작을 시도한다.

노부부의 주변 인물들을 위협하고 다니면서 피해자의 고립화를 꾀했고, 노인이 먼저 칼을 휘둘렀기에 정당방위로 총을 사용한 것이라는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또한, 파트타임 보안관 업무자를 찾아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말라며 총을 겨누고선 협박한다. 이에 파트타임 보안관은 보안관사무실에 해당 사실을 알리나, 돌아온 건 조치할 수 있는 일이 마땅히 없으므로 맥엘로이를 자극하지 말라는 대답뿐이었다.

결국 파트타임 보안관은 회의를 느껴 보안관 뱃지를 반납한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맥엘로이는 자신을 체포한 경찰관 집에 협박 전화를 거는가 하면, 경찰관의 아내가 혼자 있을 때를 노려 집 앞에서 무언의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SundanceTV/No One Saw a Thing)

1981년 6월 25일, 마침내 재판이 시작된다.

사건이 발생한 지 거진 1년 만이었다.

그동안 맥엘로이는 착실하게도 준비를 해왔다.

그는 일관되게 정당방위를 주장했고, 그가 준비한 목격자는 맥엘로이가 먼저 공격을 받았다고 증언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배심원들은 유죄를 평결한다.

허나 배심원들은 스키드 모어의 주민이 아니었기에 맥엘로이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자세히 알 수가 없었으므로, 전과가 없던 그에게 2급 폭행으로 징역 2년 형을 부여했다.

또한 초범이었기에 보석이 허가됐고, 25일간의 통상적인 항소기간 동안 석방될 것을 허가받는다.

(SundanceTV/No One Saw a Thing)

그렇게 풀려난 맥엘로이는 나흘 후 총검이 달린 소총을 매고선 술집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술을 마시며, 언젠가 식료품점 노인의 머리를 쏴버린 후 총검으로 토막 내겠다며 행패를 부린다.

당시 술집에 있던 일부 마을 주민이, 보석 중에 태연히 총을 들고 다니면서 사람을 위협하는 맥엘로이의 행태를 사건 담당 검사에게 신고한다.

이에 검사는 맥엘로이의 보석 취소 청문회를 열 것을 명령한다.

(SundanceTV/No One Saw a Thing)

다만 문제는, 맥엘로이의 변호사가 연기신청을 내면서 청문회가 예정보다 2주나 늦게 열리게 됐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2주 동안 마을 주민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맥엘로이가 마을 주민들이 자신을 신고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SundanceTV/No One Saw a Thing)

7월 10일 아침, 마을 회관에서 50-60명의 주민들이 회의를 진행한다.

한편 그 무렵, 회관 건너편 술집으로 맥엘로이가 트레나를 동반한 채 방문한다. 이에 회관에 있던 주민들은 술집으로 향해 맥엘로이를 둘러싸고선 그를 성토하기 시작했다.

이렇듯 20년 만에 처음으로 주민들이 한데 뭉치는 모습을 보이자, 맥엘로이는 아무말 못하고서 트레나를 데리고 주차된 자신의 차량으로 돌아간다.

이에 주민들은 첫 번째 승리를 기념하는 환호성을 내지르며 그대로 맥엘로이를 뒤쫓아 나섰다.

(SundanceTV/No One Saw a Thing)

차량에 탑승한 맥엘로이가 담배에 불을 붙이려던 차였다.

그 순간, 응어리진 지난 세월의 시간이 커다란 굉음과 함께 주변을 수놓는다.

맥엘로이는 그대로 운전대 앞으로 고꾸라지듯 쓰러졌다.

주민들은 비명을 지르는 트레나를 차량에서 꺼내어 근처 건물로 격리시켰다.

(SundanceTV/No One Saw a Thing)

현장의 주민들 모두가 맥엘로이를 둘러싸고선 말없이 노려보기만 했다.

숨을 거두는 순간 이 마흔일곱의 무법자는, 조용한 분노야말로 가장 깊은 분노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한편, 현장에서 맥엘로이가 숨을 거두자 주민들은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갔다. 구급차를 부르거나 신고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스키드 모어 특급 살인사건 현장에 더는 아무도 없었다.

(SundanceTV/No One Saw a Thing)

해당 사건은 즉각 언론을 통해 미국 전역에 알려지면서 FBI가 개입하는 데에까지 발전한다.

이렇듯 취재 및 수사 열기가 날로 고조되자, 스키드모어 주민들은 이제야 자신들에게 관심을 쏟냐며 분개했다.

한편 맥엘로이는 군중 속에서 각기 다른 총에 2발을 맞았는데, 마을 주민들은 수사 과정에서 목격한 것이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한다.

목격자 진술을 한 유일한 사람은 맥엘로이의 아내 트레나뿐이었으며, 그녀는 술집 공동 소유주였던 남자가 라이플을 들고 있었다고 진술한다.

허나, 주민 중 누구도 그녀의 진술에 동조하지 않았으므로 결국 해당 사건은 아무도 기소되지 않은 채 미제로 남게 된다.

지금까지도.

해당 사건을 두고서 정당한 자경활동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사적제재에 불과했던 것인지 격렬한 논쟁이 존재한다.

한편 사건 다음 해인 1982년, 빈집이 된 맥엘로이의 집이 어느 날 원인 미상의 화재로 소실된다.

원인 미상인 이유는, 누구도 화재를 신고하지 않아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서였다.

참조

<Crime Library/Ken McElroy> David Krajicek
<In Broad Daylight> Harry N. MacLean
<SundanceTV/No One Saw a Thing>
<The New York Times/Town Mute for 30 Years About a Bully’s Killing>  A. G. Sulzberger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