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전설ARG-다빈치가 숨겨놓은 또 다른 모나리자

도시전설
:
진위가 검증되지 않은 허구와 소문 사이의 어느 것
허나, 때로는 특정 개인 혹은 특정 집단에 의해 괴담으로 격하된 사건의 잔류 형태

ARG
:
Alternate reality game, 대체현실게임

아르고스 신탁
:
Argus Trust, 범지구적 이격 징후를 감시하는 '감시국'을 운용하며 세계 곳곳의 비현실적인 사건을 수집·은폐·관리하고 필요할 경우 그것을 도시전설의 형태로 격하시키는 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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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IO DE CA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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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 REGIO PER SATELLITEM CONNEXA
[LOC] RESPUBLICA COREANA
린케우스 위성 접속 지역 기준 언어팩으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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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IUM UNIVERSALE VIGILANTIAE DISIUNCTIONUM
아르고스신탁 범지구이격징후감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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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일자 | 1897년 11월 14일 - 1898년 3월 2일
사건 위치 | 이탈리아 왕국 롬바르디아, 밀라노-비메르카테 권역 사설 수장고
사건 분류 | 회화 내부층-도상 불일치형
감시국 관할 | 서지구 본부 / 북이탈리아 사설 수장품 정보망
식별 코드 | 1519GiocondaSalai
열람 고지 | 본 자료는 열람용 발췌본에 한하며 원본 및 전문은 각 지구 본부에서 관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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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보고서는 '모나리자 모작', '라 조콘다 변형본', 또는 '또 다른 모나리자' 계열로 낮게 전승되어 온 한 점의 르네상스 패널화를 대상으로 한다.

감시국은 본 건을 루브르본 라 조콘다, 일명 모나리자의 미술사적 지위와 대표본으로서의 위치에 대한 이의 제기로 분류하지 않는다. 공개 미술사 체계에서 루브르본은 리사 게라르디니, 곧 프란체스코 델 조콘도의 아내를 모델로 한 초상으로 알려졌으며 본 보고서는 이 전제를 정정하거나 대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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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첨 - 루브르본 라 조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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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건의 핵심은 별개다.

프랑수아 1세의 구입으로 프랑스 왕실 컬렉션에 편입된 라 조콘다와는 별도로, 레오나르도의 동반자였던 살라이의 자산 목록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또 하나의 라 조콘다 계열 작품이 정말로 존재했는가. 그리고 해당 패널화가 단순한 모사 또는 후대 변형본이 아니라, 레오나르도가 생전에 직접 그린 또 다른 모나리자였는가가 핵심 쟁점이다.

살라이, 본명 지안 자코모 카프로티 다 오레노는 레오나르도가 1490년 무렵 자신의 생활권 안으로 들인 인물이다. 기록상 그는 열 살의 나이에 레오나르도의 집과 작업실에 들어왔고 이후 단순한 견습생이나 하인으로만 분류하기 어려운 위치를 차지했다. 레오나르도는 그에게 옷과 생활비를 제공했으며 동시에 그가 돈과 물건을 훔치고 거짓말을 한다는 기록을 반복적으로 남겼다.

'살라이'라는 호칭은 레오나르도가 그를 불렀다던 별칭으로 전해지며 이는 당시 이탈리아어권에서 '작은 악마'에 가까운 별칭으로 풀이된다. 별칭에 어울리게 살라이는 집에 머물게 된 바로 다음 날 의복류를 사주려던 레오나르도의 지갑에 손을 대고는 끝끝내 발뺌을 했으며, 얼마 후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메모에다 그를 '도둑, 거짓말쟁이, 고집불통, 탐욕스러움'이라고 표기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레오나르도가 살라이를 결코 내쫓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통상적인 공방 관계라면 반복 절도와 물품 손실은 견습 관계를 끊거나 내보낼 충분한 사유가 될 수 있었다. 살라이는 공방의 은필을 훔치거나 지갑과 다른 물건에 손을 대며 과자를 사 먹고는 절대 자백하지 않는 말썽꾼이었음에도, 레오나르도는 그를 교육시키고 의복과 장식 비용으로 꾸준히 지출했던 사실이 메모에 남아 있다.

후대 전기에서 살라이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얼굴과 곱슬머리를 지닌 젊은 제자로 기록된다. 그는 28년 동안 하인, 조수, 제자, 모델로서 레오나르도의 생활권과 작업권 주변에 머물렀던 가장 오래 지속된 남성 동반자였다. 감시국은 이 관계를 세간의 풍문에 기대어 확정된 연애 관계로 분류하지 않는다. 다만 둘 사이의 관계가 단순한 사제관계, 고용관계, 또는 작업실 관습만으로 환원되기 어렵다는 점을 본 건의 해석에 필요한 배경으로 관리한다.

공개 전승에서 루브르본 라 조콘다는 레오나르도 말년 프랑스 왕실권으로 편입된 공인본으로 분류된다. 루브르의 공식 설명은, 프랑스 왕국의 국왕 프랑수아 1세가 1518년 레오나르도에게서 해당 회화를 구입했고 이로써 작품이 왕실 컬렉션에 들어갔다고 정리한다.

감시국이 주목한 것은 그러한 공인본과 별도로 취급되는, 이른바 '살라이의 라 조콘다' 항목이다. 살라이가 1524년 사망한 뒤 1525년 상속 및 재산 분할 과정에서 작성된 자산 목록에는 '라 조콘다'로 연결되어 온 회화 항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살라이의 라 조콘다'를 두고서 레오나르도 사후 살라이에게 남겨진 회화 유산 중 하나였다는 후대 전승도 존재한다.

본 패널화, 즉 '살라이의 라 조콘다'가 감시국 정보망에 처음 포착된 것은 공개 미술시장이 아니라 1897년 밀라노권 사설 수장품 담보 목록을 통해서였다. 당시 감시국 서지구 본부의 후원자 중 하나였던 귀부인은 밀라노 보존 후원회 비공개 모임에서, 루도비코 카를로 리바 디 술비아테 백작이 자신의 가문 수장고에 보관된 한 점의 패널화를 '못난이 조콘다'라고 언급하는 것을 들었다.

리바 디 술비아테 가문은 밀라노 북동부 브리안차와 비메르카테 권역에 오래된 사유지를 보유한 지방 귀족가로 분류된다. 해당 권역은 살라이의 출생지인 오레노 및 그가 활동한 밀라노권과 지리적으로 크게 떨어져 있지 않다. 감시국은 이 지리적 근접성을 직접적인 소장 경로의 증거로 확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살라이 사후 재산망에서 이탈한 라 조콘다 계열 회화가 밀라노 주변 사설 수장가로 흘러들었을 가능성을 검토하는 데에는 충분한 배경 정황으로 기록했다.

귀부인은 이 발언을 단순한 사교적 농담으로 치부하지 않고 서지구 정보원에게 전달했다. 당시 리바 디 술비아테 가문은 누적된 채무를 정리하기 위해 부동산 일부와 가문 수장품을 담보로 제시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회화·가구·은기·문서류를 포함한 동산 감정표가 작성되고 있었다. 이 목록은 공개 경매를 위한 도록이 아닌 채권자 측 공증인과 사설 감정인, 그리고 보존 후원회 일부 인사에게만 제한적으로 회람되는 채무 정리 문서였다.

해당 정보원은 채권자 측 사설 감정인의 보조 서기로 위장해 밀라노권 미술품 담보 목록 검토에 참여했다. 이 신분을 통해 그는 리바 디 술비아테 가문의 채무 정리 문서와 그에 첨부된 동산 감정표를 열람할 수 있었다. 정보원은 귀부인의 진술을 바탕으로 회화 항목을 역추적했고, 그 결과 낮은 평가액과 주석이 함께 붙은 다음 항목을 확인했다.

Ritratto femminile lombardo, su tavola, maniera di Leonardo.
Detto in famiglia: «Gioconda brutta».
Stima modesta. Stato mediocre.
Supporto ligneo e traverse posteriori da verificare; non trasferire senza esame.
Conservare in luogo asciutto, al riparo da sbalzi d’umidità.

해당 항목은 외부 감정상 '롬바르디아식 여성 초상, 목재 패널화, 레오나르도 방식에 가까운' 낮은 등급의 회화로 처리되어 있었다. 가문 내부 호칭 또한 '못난이 조콘다'에 불과했으며, 백작 역시 해당 작품을 고가의 진품 후보가 아니라 오래된 가문 수장품 중 하나로 가벼이 언급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낮은 평가는 곧바로 허술한 취급을 의미하지 않았다. 해당 패널화에는 리바 디 술비아테 가문 수장고에서 오래전부터 관성적으로 유지되어 온 보존 지시가 붙어 있었다. 백작 본인은 그 이유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거나 미술사적 가치로 연결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수장고 관리인과 이전 감정 기록은 해당 패널을 다른 저가 회화와 동일하게 취급하지 않았고 채무 정리 과정에서 작성된 동산 감정표 역시 그 기존 관리 관례를 그대로 옮겼다.

감시국 정보원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불균형이었다. 평가액은 낮고 별칭은 조롱에 가까웠으나 취급 조건은 단순한 하급 모사품에 붙는 수준을 넘어섰다. 감정표에는 목재 지지체와 후면 보강틀 확인, 이동 전 별도 검사, 건조한 장소 보관, 급격한 습도 변화 회피가 명시되어 있었다. 이는 작품이 고가품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 표면 가치와 무관하게 지지체 또는 도막 내부에 불안정한 요소가 있다고 판단했을 때 붙는 보존 조건에 가까웠다.

정보원은 이를 즉시 진품 후보로 분류하지는 않았다. 다만 낮은 평가액, 조롱에 가까운 가문 내부 별칭, 그리고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신중한 보존 지시가 한 항목 안에 동시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을 이례적인 문서상 불일치로 보고 해당 항목을 귀부인 진술 및 담보 목록 발췌본과 함께 서지구 본부 측에 1차 이첩했다.

1897년 11월, 정보원은 귀부인의 동행인 명목으로 리바 디 술비아테 가문의 비공식 관람 허가를 얻어 해당 패널화를 직접 확인했다. 표면상 그림은 라 조콘다형 여성 초상으로 보였다. 인물은 어두운 의복을 입고 있었고, 두 손은 포개져 있었으며, 머리는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배경은 루브르본 라 조콘다에 비해 단순화된 외부 풍경처럼 처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못난이 조콘다'에는 분명 설명하기 어려운 어긋남이 존재했다. 표면의 얼굴은 라 조콘다형 여성 초상으로 충분히 읽혔고 입가와 눈가로 뒤늦게 조정된 듯한 어두운 스푸마토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머리의 기울기와 상체의 회전축은 하나로 자연스럽게 맞물리지 않았다. 레오나르도의 기존 공적 초상화들과 루브르본 라 조콘다에서 보이는 시각적 원근 효과를 위한 상체의 사선적 후퇴와 달리, 본 패널화의 몸통은 화면 전면에 더 크고 넓게 남아 있었으며 어두운 의복은 그 체적을 자연스럽게 설명하기보다 내부의 다른 상체 구조를 덮어 정리한 막처럼 보였다.

목과 어깨의 연결도 일반적인 여성 초상으로 보기에는 불안정했다. 머리가 작게 기울어져 있었으나 그 아래의 어깨선과 가슴의 부피는 동일한 인물의 자세로 완전히 수렴하지 않았다. 포개진 손 역시 라 조콘다 계열의 정숙한 손 배치를 따르고 있으나 손목의 방향과 소매의 접힘은 의복 아래 몸통의 회전과 미세하게 어긋났다. 배경의 외부 풍경 또한 루브르본에서 확인되는 대기 원근과 깊이감에 이르지 못한 채 평평하게 눌려 분명한 밀도 차이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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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첨 - 레오나르도의 여성 초상 계열 참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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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첨 - 표면층 초상: 리바 디 술비아테 가문 '못난이 조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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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국은 즉각적인 회수 절차를 개시하지는 않았다. 정보원은 먼저 목재 패널의 벌레 피해와 후면 균열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명목으로, 밀라노권 사설 보존업자를 통해 의학 실험용 로엔트겐선 장치를 보유한 실험실에 예비 투과 촬영을 의뢰하도록 권유했다. 촬영 목적은 미술사 판독이 아니라 지지체 상태 확인이었다.

예비 촬영본은 불완전했다. 그러나 표면 아래의 내부층에서 라 조콘다형 인물과 일치하지 않는 얼굴 방향, 머리 위치, 상반신 밀도, 그리고 야외 풍경으로 보기 어려운 배경 구조가 희미하게 기록되었다. 감시국은 해당 자료가 공개 감정시장으로 이동하지 않도록 조치하는 한편, 서지구 본부는 전면기관인 롬바르디아 패널화 보존협회를 통해 작품 접근권 확보를 개시했다.

협회는 리바 디 술비아테 가문의 채무 일부를 정리하고 장기 보관료와 목재 패널 안정화 비용을 대납하는 조건으로 해당 작품을 임시 보존 위탁받았다. 외부 등록명은 여전히 '북이탈리아 여성 초상, 16세기 초, 작가 미상'으로 유지되었다. 감시국 내부에서만 본 패널화가 1519GiocondaSalai 후보군으로 재분류되었다.

확보 이후 감시국은 표면 덧칠 제거를 즉시 진행하지는 않았다. 먼저 후면 보강틀, 목재 결, 바니시층, 납백 분포, 측면광 촬영, 제한적인 로엔트겐선 재촬영, 배경 하단부 극소 시험 개방을 통해 층위 구조를 확인했다. 최초로 열린 부분은 얼굴이 아니었다. 판독실은 표면 풍경의 내부층을 제한적으로 개방했고, 그곳에서 야외 지형과 맞지 않는 수직 벽면, 장막성 명암, 낮은 침상 또는 가구의 수평선을 확인했다.

이 시점에서 본 패널화는 단순 라 조콘다 모사품이 아니라, 사적 실내 초상을 풍경 초상으로 위장한 회화층으로 재분류되었다.

이후 목과 어깨 경계부, 의복 가장자리, 손목 주변, 입가와 눈가의 덧칠층이 순차적으로 판독되었다. 이 내부층에서는 표면의 여성 초상과 거의 같은 구도, 같은 손 위치, 같은 머리 기울기를 유지한 또 다른 초상이 확인되었다. 다른 점은 상체 방향 및 회전축이었다. 내부층 초상의 인물은 여성형 라 조콘다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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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첨 - 내부층 실내 초상 판독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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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국 판독실은 내부층 인물을 살라이로 연결할 수 있는 여러 도상적 정황을 기록했다. 긴 곱슬머리, 부드러운 중성적 턱선, 높은 광대와 얼굴 주변의 미세한 스푸마토, 그리고 레오나르도 후기 양성적 인물상과 연결되는 안면 처리 방식이 반복적으로 관찰되었다. 내부층 초상은 드러난 상반신과 옅은 천의 드레이프를 포함하지만, 구성 자체는 표면의 라 조콘다형 덧칠층과 거의 일치했다.

내부층의 도상 구조를 단순한 살라이 초상으로만 치부하기는 어려웠다. 판독실은 레오나르도의 기존 라 조콘다에서 확인되는 포개진 손과 반신 구도, 성모·성 안나 계열에서 보이던 상체의 정면적 안정감, 그리고 세례자 요한 계열의 머리 기울기와 비대칭적 시선 장치가 이 내부층 살라이 인물상 안에 결합되어 있다고 보았다.

특히 시선 방향은 표면층 초상보다 더 복잡했다. 한쪽 눈은 아래로 내려앉은 듯하고 다른 한쪽 눈은 화면 밖의 특정 위치를 미세하게 의식하는 듯했다. 판독실은 이를 단순한 시선 불일치가 아니라, 외부 제스처가 제거된 자리에서 눈동자만으로 화가와 관찰자의 위치를 동시에 암시하는 후기적 시선 장치로 기록했다.

이에 따라 감시국 내부에서는 본 패널화를 단순 모사품, 후대 변형본, 또는 공방 습작으로 분류하지 않았다. 감시국은 본 패널화를 루브르본 라 조콘다의 대체본으로 보지 않는다. 본 건은 별개의 계열, 곧 살라이 사후 자산 목록에 남아 있었다고 전해지는 또 하나의 라 조콘다 항목과 연결되는 비공개 패널화로 관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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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국 내부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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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초상은 살라이를 단순한 모델로만 취급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를 공적 초상의 인물로도 만들지 않는다. 내부층의 인물은 정돈되지 않은 침상과 베개가 놓인 어두운 방 안, 침대 바로 곁의 낮은 의자 또는 가구에 다리를 꼬고서 앉아 있다. 자연은 레오나르도의 기존 작품들과 달리 거대한 배경 역할이나 인물을 감싸는 것이 아닌 작은 창 너머의 여명으로 축소되어 있다. 본 패널화의 창은 세계를 닫힌 방 안으로 압축한다. 판독실은 이 차이를 공개 초상과 사적 초상 사이의 성격 차이로 보았다.

레오나르도가 반복적으로 다루었던 성모 계열의 상반신 정면 방향을 통한 안정감과 고개 기울기, 살라이가 모델설과 연결되어 온 세례자 요한 계열의 머리 기울기와 시선 장치, 그리고 과시되지 않지만 표정 전체에 걸쳐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만 표현된 스푸마토 기법과 그를 뚫고 나와 선명하게 처리된 살라이의 애수 서린 얼굴까지. 어떤 작품보다도 섬세하고 정교하게 처리된 신체 굴곡과 입체감, 또 가까이서 볼수록 한쪽 시선이 화가의 위치를 남몰래 의식하는 듯한 시각적 장치는 세례자 요한의 그것보다 더 신경 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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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첨 - 레오나르도의 성모 계열·세례자 요한 도상 참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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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첨 - 내부층 실내 초상 판독본: 안면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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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국은 본 패널화를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레오나르도 친필 가능성이 높은 내부 후보로 분류했다. 다만 레오나르도와 살라이의 관계를 어떤 확정된 관계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본 패널화가 보이는 지극히 사적인 밀도는 통상적인 공방 모델 초상이나 후대 라 조콘다 변형본의 범위를 넘어선다. 판독실은 해당 구조를 레오나르도가 가장 오래 곁에 두었던 인물에게 적용한 특별한 사례로 기록했다.

따라서 식별 코드 1519GiocondaSalai의 핵심은 루브르본의 권위를 흔드는 데 있지 않다. 핵심은 레오나르도의 후기 초상 언어가 어디까지 사적인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살라이가 그 이동의 대상이자 수신자였을 가능성이 어디까지 남아 있는가에 있겠다. 감시국은 이 가능성을 공개 미술사 체계에 제출하지 않고, 서지구 보존망의 제한 열람 자료로 봉인하기로 최종 결론지었다.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