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의 상속녀이며 호날두와 데이트했다는 마약왕 여성

* 본 글은 단순히 범죄사건과 관련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오락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사건의 악랄한 범행성을 알림과 동시에 범죄의 연보年譜를 통한 교육에 그 목적을 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문명사회에서 최초부터 존재했던 대표적인 범죄 분야(?)라면..

'사기극'이 있겠다.

이 분야에서 특히나 두각(?)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신분 사기'이다.

특히나, 누구든 월드와이드웹을 통해 몇 초 만에 각종 정보망에 접속이 가능한 지금에 와서도 신분 사기는 사그라들지를 모른다.

대한민국에서도 신분 사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꾼들이 즐겨 사용하던 방식이었다.

오죽하면, 이런 속설이 세간에까지 퍼졌을 정도.

"성이 전 씨라면, 클래식인 파라다이스 그룹의 혼외자 재료를 사용할 것"

(WBNS-TV)

2010년 여름.

미국과 한국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신분 사기극이 있다.

주인공(?)은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에서 자랐다는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평소 주변에 이렇게 자기 PR을 했다고 전해진다.

"나? 한국에선 제법 유명하지. 삼성 알지? 거기 상속녀가 나거든. 보그 표지 모델도 했었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은 사람들이랑 데이트도 했었지. 패리스 힐튼? 걔는 내가 고등학교 때 줄곧 괴롭히던 애야. 난 하버드를 졸업하고서 가족 회사 산하에서 고위직으로 있어."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딴 조직원들을 대동하며 마약류를 유통했다.

그녀가 약 반년간 유통한 마약류의 양은..

대한민국 관세청이 1년간 국경 단계에서 적발한 마약류 총 3.2톤과 맞먹었다.

참고로, 이 총중량은 관세청 개청 이래 역대 최고 수치에 해당한다.

자, 이야기 바로 시작하겠다.

2010년 6월 14일이었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포트콜럼버스 국제공항에 캘리포니아에서 날아온 전세기 한 대가 착륙한다. 비행기에서는 28세 여성 한 명과 일행 세 명이 내렸다.

그리고..

대형 여행 가방이 무려 13개나 따라 나왔다. 짐은 각자 어찌나 무거웠는지 일부는 성인 남성 둘이 함께 들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헌데,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마중 나온 차량들만이 아니었다. 캘리포니아 쪽에서 수상한 비행에 관한 첩보를 받은 DEA(미국 마약단속국) 요원들이 이미 공항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

가방을 수색한 요원들은 그 안에서 23개의 포장된 대마초 덩어리를 발견한다.

총중량 505.78파운드.

환산하면 약 229.4kg이었다.

일반적인 대마초 1회 흡연량을 약 0.5g으로 기준 잡았을 시, 이는 약 46만 명이 동시에 흡연할 수 있는 양이었다.

실제 상황임 (DEA)

상황만 놓고 보자면..

전세기를 이용해 대량의 마약을 운반하던 일당이 붙잡힌, 제법 전형적인 마약 사건처럼 보인다.

헌데..

그 중심에 있던 여성의 모습이 분명 조금 달랐다.

그녀에게는 경호원이 있었고 비서와 수행원들이 따라다녔다. 비싼 차량을 몰았으며 고급 주거 공간에서 생활했고, 전세기를 타고 움직이는 것 역시 그녀에겐 낯선 광경이 아니었다.

DEA 조사에서 그녀는 자신을 모델이자 음반 가수로 소개했다.

그리고..

그녀 주변의 사람들은 훨씬 거창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국 최대 재벌 가운데 하나인 삼성, 그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의 외손녀, 삼성 재산을 물려받는 상속녀, 일본 쪽으로는 Sony 창업가 모리타 가문과도 혈통이 이어지는 여자.

Rolling Stone의 취재에 따르면..

그녀는 LA에서 스스로를 'Korean Paris Hilton'이라고 칭했단다.

이 여자의 이름은 리제트 리(Lisette Lee)였다.

도대체,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고 누구였을까?

(AP)

리제트의 과거를 따라가려면 시작부터 일이 좀 복잡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본인과 가족이 들려준 이야기, 주변 사람들이 알고 있던 이야기, 훗날 확인된 기록들이 서로 매끈하게 맞아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후일 가족들의 법정 증언과 주변인들을 취재한 Rolling Stone에 따르면, 리제트는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당시 이름은 지연 리(Ji Yeun Lee)였다고 한다.

가족 측 이야기에서는 생모가 코린 리(Corine Lee), 생부는 일본인 요시 모리타(Yoshi Morita)였으며, 두 사람이 결혼하지 않으면서 어린 리제트는 범걸 리(Bum Geol Lee)와 그의 아내에게 맡겨져 미국에서 성장한 것으로 나온다.

헌데..

가족 측이 훗날 법정에서 '주장한 이야기'를 펼쳐놓으면, 리제트의 출생사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생모 코린 리는 삼성 창업주 이병철의 혼외 딸이었다. 허면, 리제트는 이병철의 생물학적 외손녀가 되는 셈이다.

생부 요시 모리타는 일본인이었다. 법정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한 내용에서는, 일본에서 카지노 사업을 하던(정확한 카지노 이름이나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훗날 리제트의 이모의 표현에 따르면 야쿠자였다는 이야기도 있음. 단, 당시 아시아에서는 카지노 업계 사람을 그렇게 표현했다는 이야기도 있음) 인물로 나온다. 리제트는 훗날 주변인들에게 아버지 쪽 가문이 소니(Sony)를 창업한 모리타 집안과도 연결됐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리제트를 실지로 양육한 범걸 리는 코린의 친척이 아니었다. 그는 생부 요시 모리타와 젊은 시절 무술 훈련을 함께하며 가까워진 오랜 친우였고, 요시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딸을 낳게 되자 리제트를 맡아 자신의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데려와 양육했노라 법정에서 증언했다. 당시 사회상에서, 한일 국제결혼과 혼외 출산이라는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그러했다고. (범걸 리는 태권도 6단으로 주변에서는 'Master Lee'라고 불렸으며 미국에서 개인 태권도 강사로 활동했다고)

그러니까 가족 측 설명을 그대로 그려보면 제법 기묘한 가족도가 완성되는 것이다.

삼성 창업주의 알려지지 않은 딸이라는 한국인 어머니.

일본의 카지노 사업가라는 생부.

그리고 생부의 친구였던 태권도 사범은 양부.

거기에 훗날 리제트 본인이 주장한 아버지 쪽 혈통과 Sony 창업가와의 연결까지.

어쨌건..

우선 이야기를 계속 진행해 보겠다.

그녀가 성장한 곳은 로스앤젤레스의 대표적 부촌인 베벌리힐스 일대였다. (그녀를 양육한 양부 범걸 리는, 베벌리힐스에서 태권도 개인 교습을 하던 사람)

허나 실지로는, 리제트가 훗날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만큼 학창 시절은 화려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Rolling Stone 취재와 리제트 자신의 후일담에 따르면, 어린 시절에는 지역 공립학교인 Hawthorne Elementary에 다녔고 8학년 이후에는 Laurel Springs의 홈스쿨링 과정으로 옮겨갔다고.

한편, 성인이 된 리제트가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준 학력은 조금 달랐다. LA의 유명 사립학교 Buckley와 Montclair Prep, 런던의 finishing school(상류층 예절/교양교육 학교), 그리고 하버드까지. 심지어 하버드에 자기 집안과 관련된 동상이 있다고까지 했단다.

훗날..

리제트는 교도소에서 Rolling Stone 기자와 인터뷰하며 하버드와 Buckley, Montclair Prep에는 다닌 적이 없었노라 인정한다. 더불어 Vogue 표지 모델이었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고 인정한다.

반면, 그녀가 고수한 '아시아에서 팝가수로 활동했고 유명한 노래까지 냈다'는 식의 주장은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활동 기록이 전무하다. 뭐, 확보된 자료만으로 리제트에게 모종의 음악 활동 자체가 전혀 없었다고 확정할 수만은 없겠지만은.

즉..

리제트 리라는 사람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특징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확실한 사실과 과장, 그리고 공개 자료만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주장이 같은 사람의 이력 안에서 뒤섞여 있다는 점 말이다.

사실, 이는 업계의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스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리제트는 당연히 업계의 불문율을 따라 이름도 때에 따라 여러 개였다.

어린 시절에는 다이애나(Diana), 십 대에는 샹텔(Chantel)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전해지며 이후에는 Lee Locascio Lee, Lisette Locascio, Lisette Lee Morita 같은 이름들도 등장한다.

물론, 이름을 여러 개 사용했다는 사실 자체가 곧 범죄나 사기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겠다. 중요한 건, 리제트가 각 이름과 함께 자신에 관한 배경까지 여러 형태를 구성해 사람들에게 어필했다는 것.

사람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쉬이 믿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최소한 겉으로 보이는 생활은 정말로 화려했으니까.

리제트는 고급 주거 공간에서 생활했고 메르세데스와 벤틀리, 아스톤 마틴과 같은 고급 차량을 이용했다. 항시 덩치 큰 경호원을 데리고 다녔으며 행사장에는 값비싼 옷과 가방을 걸치고 나타났다.

2000년대 중반에는 저예산 영화 The Doorman의 작은 배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훗날 취재에 따르면, 해당 영화에 등장하는 촬영진과 그 주변인들은 하나같이 리제트를 상당히 부유하고 특별한 배경을 지닌 사람으로 받아들였다고.

이게 꽤 중요(?)하다.

그녀는 아마추어는 아니었다.

강력하게 직접 입을 빌려 어필할 때와 그저 냄새만 은은하게 풍겨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알았다.

사람들 눈앞에다 비싼 차량을 두었고, 좋은 집에서 거주하고 있었으며, 경호원과 수행원이 액세서리 역할을 했다. 행사장에선 사람들이 그녀를 특별한 사람처럼 대했다.

그렇다면 그녀를 처음 마주친 사람의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설마 이 모든 게 다 거짓말이겠어?

여기서 중요한 게 하나 있겠다.

바로, 그 모든 연출을 가능케 하는 '돈'.

그 화려한 생활을 가능케 했던 돈이 정확히 어디에서 나왔는지가 말이다.

리제트 자신은 생부에게 한 달에 최대 10만 달러까지 받았다는 취지로 이야기했지만, 그녀를 키운 범걸 리가 법정에서 설명한 지원 규모는 그보다 훨씬 작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약혼 관계에 있었던 와인 사업가 연인으로부터 고급 차량의 구입 대금을 지원 받았다는 취재 내용도 존재)

같은 가족 이야기 안에서도 금액이 크게 달랐던 셈이다.

여기서 잠시..

리제트 리 사건을 따라갈 때 앞으로 계속 기억해야 할 특징(그리고 업계의 스킬도)이 하나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언제나 완전한 허공에서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었다.

실지로 돈을 쓰고 있었고 고급차를 탔으며 경호원까지 데리고 다녔다. 나중에는 삼성과 업무상 접촉했던 정황까지 등장한다.

오히려 리제트 리라는 사람에게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방식은, 실제 존재하는 몇 조각의 사실 사이에 훨씬 거대한 이야기가 들어가는 형태였다.

2006년 무렵.

메일리 케이디는 워싱턴주의 작은 도시 브레머턴에서 LA로 건너온 스무 살의 배우 지망생이었다.

고등학교에서는 학생회장을 지내고 성적도 좋았지만 할리우드에 도착한 뒤로는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았다. 연기 수업과 프로필 사진, 생활비로 준비해 온 돈은 빠르게 줄었고 오디션도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케이디 자신의 훗날 회고에 따르면 당시 많이 외로웠다고 한다.

그러던 중 두 사람의 공통 지인이었던 알렉스라는 남자가 케이디에게 자신의 오랜 친구 한 명을 소개해 주겠다고 나섰다.

그 친구는 부유하고 냉소적인 LA의 사람들에게 질려 있었고, 케이디처럼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알렉스는 성격과 배경이 정반대인 두 사람이 오히려 이른바 yin and yang, 음과 양처럼 잘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케이디는 처음엔 썩 내키지 않았다.

이미 상대의 MySpace(당시 유명 SNS)를 봤는데 고급차와 보석과 같이 잔뜩 꾸민 사진으로 가득한 모습이 자신과는 너무도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

허나..

당시 LA 생활에 지쳐 있던 데다 외로움도 컸던 케이디는 결국 한 번 만나보기로 한다.

그렇게 소개받은 여자가..

바로, 리제트 리였다.

우측이 메일리 케이디 (The Columbus Dispatch)

처음부터 케이디가 리제트에게 홀딱 빠졌던 것은 아니었다.

헌데..

막상 둘이 만나자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리제트는 케이디를 반갑게 맞았고 함께 멜로즈 거리를 돌아다니고 술을 마시며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케이디의 훗날 회고에서는, 리제트가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둘 사이가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관계인 것처럼 적극적인 친밀감을 표현했다고 한다. 자신은 부유하고 냉소적인 LA 사람들에게 질렸고, 케이디처럼 순수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물론..

리제트는 아주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나는 삼성 상속녀이고 아버지 쪽은 일본의 Sony 창업가와 연결돼 있으며 카지노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하버드에 다녔다. 패리스 힐튼과 킴 카다시안을 학교에서 알고 지냈다. 유명 배우들과 교제했다. 아시아에서는 팝가수로 활동해 1위 곡까지 냈다.

분명..

하나씩 따져들고 보자면 누구나 쉬이 의심해볼 법한 이야기들이다.

허나, 케이디가 당시 느꼈던 인상은 조금 달랐다고. 그녀가 보는 리제트는 그러한 역할에 지극히 어울려 보였다고 한다. 비싼 차를 몰고 돈을 쉽게 썼으며 경호원을 대동했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특별 대우를 받았다.

말만 들으면 황당할 수 있는데 막상 눈앞의 상황이 그러한 말들을 계속 보강해 주고 있었던 셈이다.

둘의 관계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가까워졌으나..

어느 순간부터 우정의 모양이 조금 이상해진다.

리제트는 케이디에게 이미 잡혀 있던 약속을 취소하고 자신에게 오도록 요구하거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누구와 연락했는지 확인했다고 한다.

한 번은 3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고선 약혼반지처럼 왼손에 끼고 다니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케이디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면서 관계가 더 불편해졌다는 회고도 이어진다.

Rolling Stone은 여러 주변인을 인터뷰한 결과, 리제트가 케이디뿐 아니라 연인과 수행원들에게도 강한 충성심과 복종을 요구하는 인물로 비쳤다고 묘사했다.

케이디만 리제트의 이른바 최측근으로 있었던 건 아니었다.

리제트가 살던 건물에는 헨리 에르난데스라는 젊은 도어맨이 있었다. 훗날 Rolling Stone 취재에서는 그가 리제트와 가까워져 연인관계가 된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던 어느 날..

충분한 돈을 벌지 못하던 그에게 리제트가 짧은 여행 도중 자신의 운전기사 역할을 해주면 3,000달러를 주겠노라 제안한다.

에르난데스는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훗날 연방대배심의 기소장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된다.

왜?

2010년 변경/추가 기소장에서, 그는 대마초 유통공모 혐의와 100kg 초과 대마초 유통목적소지 12건으로 함께 기소됐고, 이듬해에는 대마초 유통공모죄에서 유죄를 인정한 것.

한편..

또 한 명 더 있으니, 그는 바로 프랭크 에드워즈였다.

에드워즈는 키가 2m가 넘는 거구로 리제트의 경호원 역할을 도맡았었는데, 그 역시 훗날 연방법원에서 대마초 유통공모죄에서 유죄를 인정했다. DEA 측 설명에서는 리제트가 그를 운반책으로 모집한 것으로 정리된다.

말인즉슨..

처음에는 리제트의 화려한 생활을 구성하던 주변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전혀 다른 역할로 연방 수사 기록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친구와 경호원, 남자 친구, 운전기사, 개인비서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대마초 운반 조직의 구성원으로 이름을 올리게 된 것.

물론, 이들 모두가 처음부터 정확히 무엇을 알고서 개입된 것인지는 각각 따로 봐야 한다.

특히 케이디의 경우가 그렇다.

배우 일만으로 생활하기 어려웠던 케이디에게 리제트는 executive personal assistant(전담 개인비서)라는 일자리를 제안했다고 한다. 친한 친구 밑에서 현금을 받으며 일하고, 주된 업무는 리제트와 함께 전세기로 여행을 다니며 짐을 챙기는 정도였다.

이 거부하기 힘든 일자리의 보수는 후대 자료마다 조금 엇갈린다.

Rolling Stone에서는 여행 한 번에 약 1,500달러라고 하고, 케이디 자신은 훗날 CBS 인터뷰에서 약 2,000달러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어느 쪽이든 간에, 분명 당시 케이디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그렇게..

전세기를 타고 리무진과 고급차를 이용하며 수많은 여행 가방과 함께 LA와 오하이오를 오가는 일정이었는데..

여기엔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고 한다.

왜 여행 가방들이 그렇게 무거운지, 왜 굳이 오하이오를 가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케이디 본인의 은행 계좌를 통해 전세기 비용으로 수만 달러를 보내야 하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케이디는 2013년 ABC 인터뷰에서 자신도 당시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다만, 가방 안에는 현금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이는 리제트 가족이 카지노 사업을 하기 때문이라는 그녀의 설명을 믿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녀는 당시 적어도 자신들이 걸스카우트 쿠키를 파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단다.

전세기에서의 한 때 (Meili Cady)

여기서 잠시..

케이디의 이야기가 길어지는데..

케이디가 정말로 어디까지 알고 있었는지는 이 사건에서 꽤 중요한 문제다.

훗날의 인터뷰와 회고록을 통해 케이디는 처음 몇 차례의 여행에서는 대마초 사실을 몰랐으며, 어느 시점 기내에서 심하게 나는 냄새 등을 통해 자신들이 마약을 운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설명한다.

그 뒤에도 빠져나오지 못했던 이유로는 리제트가 청부살인업자와 사설탐정, 전화도청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으며 두려움을 느꼈다는 점을 들었다.

여하튼 지건, 케이디 스스로도 자신의 선택에 책임이 있다고 여러 차례 인정했다.

케이디는 대마초 유통공모죄에서 유죄를 인정했으며, 2011년 DEA 요원의 법정 증언과 정부 측 평가는 케이디를 조직에서 가장 경미한 가담자로 보았고, 형사사건에서 drug courier(마약 운반책)로 참여한 것은 2010년 6월 한 차례였다고 설명했다.

여기에서 자료 충돌이 있는데..

Rolling Stone과 케이디 본인의 회고에서는 여러 차례 전세기 여행을 했고 어느 시점부터 대마초라는 사실을 알아챘다는 식으로 서술된다.

반면, 2011년 법정 증언을 전한 AP 보도에서는 그녀를 한 차례의 drug courier로 설명한다.

이는 여러 번 일행으로 여행했지만 검찰이 형사책임상 마약 운반책으로 특정한 것은 마지막의 한 번이었을 수도 있고, 후대 회고와 법정 기록이 서로 다른 의미의 '여행'을 세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AP)

2009년.

리제트 '조직'으로 핵심인물 하나가 더 들어온다.

데이비드 개럿으로, LA에서 대마초를 판매하던 남자였다.

Rolling Stone과 법원자료를 종합하면 두 사람은 연인관계가 됐고, 개럿 쪽에는 대량의 대마초를 구할 공급망과 오하이오의 구매자가 있었단다.

문제는 하나였다.

캘리포니아의 대마초를 어떻게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오하이오까지 대량으로 옮길 것인가.

그리고 여기서..

리제트가 지금까지 만들어놓은 라이프 스타일이 뜻밖의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한다.

전세기를 타는 부유한 상속녀, 경호원과 비서, 운전기사와 수행원, 고급차를 타고 공항으로 들어오는 일행, 그리고 수많은 여행 가방.

평소에는 리제트의 재벌가 페르소나를 구성하던 요소들이었으나, 이제는 대규모 대마초를 옮길 수 있는 물류체계로 이른바 컨버팅이 가능해졌다.

훗날 Rolling Stone 인터뷰에서, 개럿은 자신이 마약의 구입과 판매를 맡고 리제트는 전세기와 인원 등 여행 logistics(운송/이동 실무)를 담당하는 형태로 역할을 나눴다고 했다.

연방검찰 역시 리제트를 조직의 primary courier and 'face', 즉 주된 운반자이자 대외적인 얼굴로 규정했다. 다른 운반책을 모으고 여행을 계획했으며 전세기를 빌렸고, 운송을 마친 참가자들에게 돈을 지급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리제트는 단순히 누군가가 싸놓은 가방 하나를 들고서 비행기에 타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조직의 보스였다.

뭐, 그렇다고 공급망과 판매망 전체를 지배하는 거대 카르텔의 보스였다고 확대해서는 안 되겠지만.

2009년 11월 무렵.

'그들'은 실지로 전세기에 몸과 짐을 싣기 시작한다.

캘리포니아에서 오하이오까지, 거리는 약 3,200km.

연방검찰과 후속 법원 기록에 따르면, 리제트와 일행은 2009년 11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약 14차례에 걸쳐 캘리포니아에서 오하이오로 대량의 대마초를 운반했단다.

한 번에 대략 500파운드.

약 227kg씩이었다.

일반적인 대마초 1회 흡연량을 약 0.5g으로 기준 잡았을 시, 한 번의 운송으로 약 46만 명이 동시에 흡연할 수 있는 양이었다.

운송방식은 리제트의 평소 허영만큼이나 대담하기 짝이 없었다.

트럭 바닥을 뜯어 숨기는 것도 아니고 국경을 몰래 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전세기를 빌렸다.

리제트의 유죄답변 당시 제시된 범행 사실에 따르면..

개럿(판매상)은 한 차례 여행에 약 6만 달러가량을 리제트에게 제공했고, 여기에는 왕복 전세기 비용과 여행 전반에 필요한 일종의 운영비 역시 포함돼 있었다.

리제트는 밴나이스 공항과 오하이오 여러 도시를 오가는 전세기를 예약하고 함께 갈 운반책을 조직했으며 일정을 짜고 참가자들에게 돈을 지급했다.

미국 법무부의 선고 자료에 따르면, 리제트가 개별 여행에서 받은 금액은 약 2만~6만 달러 수준이었단다.

통상 한 차례의 여행에는 리제트 외에도 몇 명의 운반책이 동행했고, 때로는 출발 전에 500파운드(약 227kg)가 넘는 대마초가 하루나 이틀 동안 리제트의 LA 자택에 보관되기도 했다.

말인즉슨..

리제트는 인력과 비행기, 일정과 비용을 연결하는 물류 실무 상당 부분에 직접 관여했던 것이다.

대마초를 실제 여행 가방에 나누어 포장하는 작업은 개럿 쪽에서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DEA 요원의 법정 증언을 전한 동시대 보도에서는, 대마초 냄새를 줄이기 위해 페브리즈와 향이 나는 건조기용 시트까지 사용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어쨌건, 대마초 200kg이 넘는 양을 가정용 탈취제로 감추는 방법이 완벽할 리는 없었을 것이다.

한편, Rolling Stone에 따르면 리제트는 일행에게 자신의 이니셜을 따 'Team LL'이라는 명칭까지 붙였다고 한다. 남자들은 재킷과 넥타이를 입었고 비서 역할의 여성은 단정하게 꾸몄으며, 리제트는 커다란 선글라스와 값비싼 옷차림으로 출몰했다고.

즉, 공항에 도착하는 모습만 보면 마약 운반 조직보다는 부유한 유명인과 수행원들처럼만 보였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 모습을 처음부터 수사기관의 의심을 피하고자 설계한 전문적인 위장술이었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미국 국내선 전세기였고, 무엇보다 리제트는 범행 전부터 원래 그런 라이프 스타일의 사람이었으니까.

다만 결과적으로는 수년 동안 만들어온 '부유한 상속녀와 수행원들'이라는 모습을 통해, 여러 사람이 대형 여행 가방을 들고 전세기에 오르는 광경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매칭이 됐던 셈이다.

오하이오에 도착한 뒤에는 본격적으로 일이 진행됐다.

법원에 인용된 유죄답변 기록에 따르면, 리제트와 다른 운반책들은 현지에서 대마초를 넘긴 뒤 판매 대금을 받아 다시 LA로 가져왔다.

그러니까 비행기는 갈 때와 올 때 모두 빈손이 아니었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갈 때는 대마초, 동쪽에서 서쪽으로 돌아올 때는 그 판매 대금.

연방검찰은 약 7개월 동안 이 조직이 운반/유통한 대마초를 보수적으로 약 7,000파운드로 추산했다.

이는 약 3.18톤에 달하는 양이며, 범행 기간 동안 발생한 순이익은 300만 달러 이상으로 추산됐다.

참고로..

대한민국 관세청이 1년간 국경 단계에서 적발한 마약류 총 3.2톤이 개청 이래 역대 최고 수치에 해당한다.

2010년 6월 14일.

또다시 리제트 일행이 밴나이스 공항에서 전세기에 올랐다.

이번 비행기에 탄 사람은 리제트를 포함해 네 명이었다.

훗날 Rolling Stone 취재에서는 나머지 세 명을 메일리 케이디, 크리스토퍼 캐시, 경호원 프랭크 에드워즈로 특정한다.

짐은 대형 여행 가방 13개였고, 일부 가방은 너무 무거워 성인 남성 두 명이 함께 들어야 했을 정도였다.

헌데 이번에는..

오하이오에서 DEA가 기다리고 있었다.

실제 압수된 여행 가방(DEA)

DEA가 최초에 어떤 경로로 제보를 받았는지는 자료마다 디테일이 조금씩 다르다.

공식 연방검찰 보도자료에서는 그 과정까지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다만 동시대 보도에서는 캘리포니아 쪽 DEA가 비정상적으로 많은 수하물을 싣고 출발하는 수상한 비행에 관한 정보를 오하이오 측에 전달했고, 이에 콜럼버스의 요원들이 착륙을 기다렸다고 전한다.

Rolling Stone은 여기에 공항 관계자들이 이전의 반복된 비행과 과도한 수하물을 의심했다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여하튼 지건, 중요한 건 비행기가 포트콜럼버스 국제공항에 착륙했을 때 DEA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겠다.

전세기의 문이 열리고서 일행은 여행 가방 13개를 대기 중인 차량 세 대에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DEA의 수사가 개입됐다.

가방 안에서는 23개의 대마초 포장물, 총중량 505.78파운드(약 229.4kg)이 발견됐다.

리제트가 체포 직후 내놓은 해명(?)은 꽤나 기묘했다.

동시대 보도가 법원 서류를 토대로 전한 내용에 따르면, 그녀는 처음에 친구에게 약 6만 달러를 받고서 여행 가방들을 오하이오까지 가져다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단다. 가방을 사람이 없는 호텔방에 두고 며칠 머문 뒤, 나머지 남은 가방(줄어든 수의 가방을 제외한)을 다시 가져오면 된다는 이야기였다.

또 다른 설명에서는 남자 친구가 오하이오에 구입한 말 농장에 필요한 장비와 물건을 운반하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조사 과정에서는 자신과 일행도 그 말 농장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고, 적어도 무기나 돈세탁 같은 불법적인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기록됐다.

이렇듯 체포 직후 오락가락하는 설명이 있었는데..

이후 리제트 자신의 유죄답변을 통해 당시 상황이 명확해진다.

체포 당시 리제트의 개인 가방에서도 몇 가지 물건이 더 발견됐다.

AP 보도에 따르면 휴대전화 세 대와 소량의 코카인/대마초, 마약 관련 용품, 그리고 수사당국이 약 30만 달러 규모의 거래와 관련된 마약 거래 장부로 의심한 기록 등이 있었다고.

같이 비행기에 탄 세 사람 역시 현장에서 조사를 받았다. 초기 연방검찰 발표에서는 리제트만 먼저 기소됐고 다른 세 사람은 그 시점에는 기소되지 않았단다.

물론, 수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흘 뒤인 6월 17일.

연방대배심은 리제트에게 100kg 이상의 대마초와 관련된 유통목적소지 공모 및 유통목적소지 혐의를 적용해 기소를 한다.

그리고 몇 달에 걸쳐 과거의 비행 기록과 주변 인물들을 대상으로 한 추적 조사가 펼쳐진다.

9월 16일에는 superseding indictment(변경/추가 기소장)가 제출된다.

리제트뿐 아니라 데이비드 개럿, 고영(Ko Young), 크리스토퍼 캐시, 프랭크 에드워즈, 헨리 에르난데스 등이 이름을 올렸다.

리제트에게는 1,000kg 이상의 대마초 유통공모 혐의와 100kg 이상 대마초 유통목적소지 12건 등이 적용됐다.

체포 당시의 리제트 (DEA)

한편..

리제트가 체포되고 사흘 뒤인 2010년 6월 17일.

정말 뜬금없게도..

삼성 측이 공식성명 하나를 내놓는다.

그러니까..

그 삼성 맞다.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리제트 리는 Samsung Electronics의 heiress(상속녀)가 아니며 Samsung의 Lee family 구성원도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왜 미국 오하이오의 마약 사건에 한국의 삼성이 공식성명까지 냈을까?

이유는..

229kg에 가까운 대마초와 함께 붙잡힌 여성이 자신을 삼성 재산의 상속녀로 소개해 왔기 때문이다.

헌데..

몇 달 뒤 이야기가 다시 복잡해진다.

이번에는 리제트 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한 삼성 명의의 문서까지 등장했기 때문.

이 문서는 삼성전자 미국법인이 로스앤젤레스의 밴나이스 공항 측에 보낸 것처럼 돼 있었다.

2010년 6월 30일 열릴 행사에 관한 내용이었고, 안에는 리제트를 삼성가의 'third-generation heiress', 즉 3세 상속녀로 소개하며 그녀가 삼성가를 대표해 행사에 참석한다는 취지의 표현이 들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진짜였던 것일까?

그러니까, 리제트의 평소 허풍이 말이다.

헌데..

삼성 측은 실제 존재하던 문서와 대조한 결과 문제의 문서가 변조/위조된 것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당시 삼성 측 설명에서는 원래 문서에는 리제트를 삼성가의 상속녀라고 소개하는 문장이 없었고, 서명과 이메일 주소 등도 실제 문서와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사실..

정말 리제트가 숨겨진 삼성가의 3세 상속녀였다면, 미국법인이 그러한 내용을 알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또 그걸 문서 내용 안에 구태여 버젓이 언급할 이유도 없겠다.

조금만 돌려 생각해 봐도 자못 유치한 사기 소품에 불과하다.

여기서 꽤나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있다.

리제트는 삼성과 아무 접점도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당시 삼성 측 설명을 전한 보도에 따르면 리제트는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과 관련해 삼성 LED TV를 설치업체에 전달하는 업무 등에 관여했고, 뒤이어 밴나이스 공항의 삼성 관련 행사에도 접점이 있었다고 한다.

하여, 삼성 측은 바로 이 실제 업무접촉 과정에서 얻은 문서를 토대로 이른바 가짜 문서가 만들어졌노라 추정한다.

이는 분명 업계의 클래식에 해당한다.

'과거의 접점을 최대한 부풀려 이용할 것' 말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미 답은 꽤나 심플해 보인다.

자신을 삼성 상속녀라 허풍을 치던 여성이 있었고, 그 신분을 뒷받침하는 듯했던 문서에는 강력한 조작 정황까지 드러났다.

헌데..

이 사건은 여기서 또 한 번 더 기묘해진다.

2010년 10월 26일.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의 연방법원에서 리제트의 보석심리가 열렸다. 여기에 리제트의 이모라는 여성 한 명이 증인으로 출석한다. 그녀는 진 리(Jin M. Lee/이진미)였다.

여기서 그녀는 통역을 거쳐 선서한 상태에서 상당히 뜻밖의 이야기를 내놓는다.

"리제트의 생모는 코린 리(Corine Lee)입니다. 그리고 그 코린 리의 아버지가 삼성 창업주 이병철입니다."

진 리는 자신과 코린이 어머니는 같지만 아버지가 다른 자매라고 설명했다.

그 증언대로라면 이병철에게 공개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딸 코린이 있었고, 그 코린의 딸이 리제트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허면, 이 이모라는 사람의 법정 증언은 얼마나 강한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연방법원에 직접 출석해 신원을 밝히고 선서한 상태에서 한 증언이라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리제트를 양육한 가족들 역시 그녀에게 삼성가 혈통이 있다는 취지의 설명을 내놓았다.

허나, 이들은 모두 리제트의 가족이다. 독립적인 제삼자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현재 공개된 자료에서는 출생 기록이나 가족관계 자료, 상속 기록, DNA처럼 이들의 주장을 독립적으로 확인할 혈연 자료가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

여하튼 지건, 리제트 가족의 주장은 애초부터 삼성가에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혼외 자녀가 존재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잠시..

이들 가족이 법정에서 선서했다는 이유만으로 위증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보증은 되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는, 이들의 말이 진실이라는 보증은 되지 않는다.

가족 증언에는 이해관계와 가족 내부 전승의 오류 가능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리제트와 그녀의 모친이 삼성 창업주 이병철과 혈연관계라는 증거는 전무하다.

당시 삼성 측이 공개한 공문 원본과 리제트의 위변조 공문. 삼성전자 북미 총괄 기획홍보팀장인 데이빗 스틸 전무의 사인이 상이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원본에선 이벤트 개최에 대한 사안들만 언급된 한편, 위변조 공문에는 뜬금 없이 리제트가 삼성가 3세라는 문장 등이 추가. 공항에 보내는 협조 공문에서 숨겨진 가족 이력을 설명하는 게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삼성 측이 밝힘 (삼성그룹)

한편..

리제트에게는 삼성가의 상속녀다 아니다 보다 훨씬 현실적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여행 가방 13개 안에서 229kg이 넘는 대마초가 발견됐다는 사실 말이다.

연방 수사는 이미 과거의 전세기 기록과 운반 조직 전체를 샅샅이 추적했고, 그로부터 몇 달 뒤 리제트는 법정에서 '조직에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 체포 직후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기에 이른다.

그건 2011년 2월 4일의 일이었다.

체포된 지 약 8개월 만에 리제트가 오하이오 남부연방지방법원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고, 이번에는 더 이상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 몰랐다'는 식의 이야기를 뱉지 않았다.

리제트는 1,000kg 이상의 대마초를 유통하고 유통할 목적으로 소지하기로 공모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guilty plea(유죄답변)를 했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그날 DEA 요원 매슈 휴펠더가 법정에서 범행의 전체 구조를 설명했고, 리제트는 자신이 2009년 11월부터 2010년 6월까지 대규모 대마초 유통에 알면서 참여했다는 사실관계를 인정했다.

약 14차례의 운송, 한 번에 대략 500파운드의 대마초.

그 기간 동안 자신이 대마초를 실어 나르고 판매 대금을 되가져오는 과정에 관여했으며, 다른 운반책을 조직하고 여행 일정을 짜고 전세기를 빌리고 참가자들에게 돈을 지급한 내용까지 포함돼 있었다.

이는 연방검찰이 그녀를 primary courier and 'face'라고 설명한 근거가 됐다.

그로부터 약 4개월 뒤인 2011년 6월 10일.

연방판사 앨저넌 마블리가 리제트에게 형을 선고한다.

징역 72개월, 6년 형이었다.

여기에 출소 뒤 5년간의 supervised release(감독조건부 석방), 벌금 2만 달러, 그리고 현금 6,538달러의 몰수가 명령됐다.

검찰은 선고 당시에도 리제트의 조직 내 역할 부분을 강조했다.

단순히 여행 가방을 나르던 사람이 아니라 다른 운반책들을 조직하고 여행 계획을 짜고 전세기를 빌렸으며, 운송이 끝난 뒤 참가자들에게 돈을 지급하는 사람이었다고 말이다.

헌데..

여기서 조금 이상한 숫자가 하나 있다.

리제트가 유죄를 인정한 죄에는 당시 연방법상 최소 10년형이 규정돼 있었고, 후속 법원 기록에 나타난 Sentencing Guidelines(연방 양형기준) 범위 역시 135~168개월, 그러니까 약 11년 3개월에서 14년이었다.

검찰도 80개월 형을 요청했고 말이다.

허나 실제 선고는 72개월, 6년 형에 불과했다.

왜, 어떻게 법정 최저형보다도 낮았을까?

여기에는..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 완전히 채우지 못한 빈칸이 하나 존재한다.

동시대 보도와 후속 기록에는 리제트의 유죄답변과 수사 협조 정황, 검찰과의 plea agreement(유죄답변 합의), 책임을 인정한 사실 등이 등장한다.

후속 법원 기록 역시 그녀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한 점이 선고에서 leniency(관용/감경)에 일부 고려됐다고 설명한다.

다만..

현재 확인된 공개 자료만으로는 정확히 어떤 motion(법원에 특정 판단이나 처분을 요청하는 신청)과 법률 규정이 적용돼 10년의 statutory minimum(법률에 정해진 법정 최저형) 아래까지 내려갈 수 있었는지를 원 사건기록 수준에서 확정하기가 어렵다.

그러므로..

'수사에 협조했기 때문에 자동으로 법정 최저형이 사라졌다'거나 특정한 감형 제도가 적용됐다고 임의로 확정 지을 수가 없겠다.

그렇게 사건이 모두 끝난 것처럼 보였다.

리제트는 유죄를 인정했고 6년 형을 받았다.

헌데..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녀는 법원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2012년 4월.

이번에는 28 U.S.C. §2255를 통해서였다. 이는 연방 수형자가 자신의 유죄판결이나 형에 중대한 법적 문제가 있었다며 취소/정정을 요구할 수 있는 절차였다.

리제트가 제기한 핵심 가운데 하나는 ineffective assistance of counsel(변호인의 불충분한 조력)이었다.

쉽게 말하면..

변호사들이 자신을 제대로 변호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리제트는 2011년 유죄답변 당시 인정했던 이야기와는 상당히 다른 버전을 내놓는다.

새로운 주장은 이랬다.

자신은 데이비드 개럿(판매상)과 '마르코'라는 인물의 협박과 강요로 범죄에 참여했단다.

여섯 명에 이르는 변호사들에게 이를 지속적으로 이야기했으나 변호사들은 법정에 그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으며, 실제보다 자신이 범행에 깊게 관여한 것처럼 인정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14차례 운송에 관여했다는 기존 인정과 달리, 그녀는 자신이 참여한 비행이 8-9회 정도였다고도 주장했다.

자!

이 2012년 이후의 이야기는 리제트가 새로이 제기한 주장이다.

반면 2011년의 plea hearing(유죄답변 심리)에선 판사 앞에서 자신의 권리를 이해한다고 답했고, 정부가 제시한 범행 사실을 인정했으며 약 14차례 운송과 운송 과정 전반에 관여했다는 내용에도 동의했다. 덕분에 최종적으로 법정 최저형보다 낮은 형을 받을 수 있었고 말이다.

리제트가 제기한 duress(강요) 항변에는 조금 독특한 논리도 포함됐다. 그녀는 자신이 성공한 음반 가수이자 모델이며 매우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자발적으로 마약 운반에 가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자신처럼 평생 가정교사와 조언자, 회계사, 경호원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온 Asian heiress(아시아계 상속녀)는 일반적인 사람과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으므로..

협박과 위협에 대한 자신의 반응 역시 그러한 배경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논리까지 펼쳤다.

헌데..

2013년 §2255 절차를 검토한 연방 치안판사의 보고/권고에서 이러한 핵심 duress 논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당연하게도 이같은 사건에 적용된 연방판례상 duress가 성립하려면 단순히 '무서웠다', '나쁜 사람들에게 휘말렸다'는 정도만으론 부족했기 때문.

현실적이고 임박한 죽음 또는 중대한 신체상해의 위협이 있었는지, 스스로 위험한 상황에 무모하게 들어갔던 것은 아닌지, 범죄를 거부하고 위험을 피할 합법적인 방법이 없었는지, 범죄행위와 위협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었는지, 그리고 강요된 행동이 필요한 기간 이상 지속되지 않았는지 등을 충족해야만 했던 것이다.

보고/권고는 리제트가 주장한 사정이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특히 자신의 행동을 일반적인 reasonable person(합리적인 사람)이 아니라 'reasonable Asian heiress', 그러니까 '합리적인 아시아계 상속녀'를 별도의 기준으로 삼아 평가해야 한다는 취지의 논리에도 법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말인즉슨..

자신이 잘 교육받은 아시아계 재벌 상속녀였기에 자발적으로 마약 운반에 가담할 이유가 없었다는 그녀의 주장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것.

결론적으로..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범죄에 가담했다'는 핵심 주장은 연방 사후구제 절차의 검토 단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2011년 자신이 선서 아래 인정한 범행 사실과도 상당한 충돌을 보였다.

그렇게 2014년 5월 19일.

연방판사 앨저넌 마블리는 치안판사의 두 차례 보고/권고를 검토한 뒤 리제트의 이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형을 취소/정정해 달라는 신청을 기각한다.

한편..

리제트가 6년 형을 받았다고 해서 해당 사건의 모든 사람이 같은 기준으로 처벌받은 것은 아니었다.

데이비드 개럿(판매상)은 2011년 4월 징역 10년 1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개럿 측은 선고 전 자료에서 체포 뒤 일정한 협조를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도됐지만, 적어도 법정 최저형 아래로 내려갈 만큼의 substantial assistance(실질적인 수사 협조)를 인정받지는 못했다.

반대로 메일리 케이디의 처분은 훨씬 가벼웠다.

케이디 역시 대마초 유통공모죄에 유죄를 인정했지만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고, 정부 측은 그녀를 조직에서 가장 경미한 가담자로 평가했다.

그 결과 케이디는 연방교도소 1개월, 그리고 1년의 가택연금 등을 받는 선에서 마무리된다.

가택연금 당시의 케이디. 이후 그녀는 회고록을 비롯해 활발한 언론 인터뷰 활동 등을 펼친다 (Meili Cady)

아이러니하게도..

배우 지망생이었던 케이디는 원래 바라던 유명세가 사건이 끝난 뒤 도래했다.

케이디는 자신의 경험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나서며 텔레비전 인터뷰에도 출연하더니 2015년에는 회고록까지 출간한다.

제목은..

Smoke: How a Small-Town Girl Accidentally Wound Up Smuggling 7,000 Pounds of Marijuana With the Pot Princess of Beverly Hills

우리말로 풀자면, '어떻게 작은 마을 출신 여자가 베벌리힐스의 마약 공주와 함께 7,000파운드의 대마초를 운반하게 됐나' 정도가 되겠다.

하여, 여러 언론매체에서 다시금 케이디의 이야기를 다루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야기에선 리제트는 화려한 재벌 상속녀를 연기하며 자신을 끌어들인 지배적인 친구였고, 케이디 자신은 처음에는 범죄의 실체를 모르다가 어느 순간 빠져나오기 어려운 상황에 갇힌 사람이었다.

허나..

법원의 사실 판단에 따르면 그녀 역시 대마초 유통공모죄에서 유죄를 인정했으며, 게다가 훗날 인터뷰에서도 당시 자신들이 하는 일이 정상적인 업무가 아닐 것이라는 정도의 의심은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니까, 리제트에게 어느 정도 휘둘렸느냐는 문제와 케이디 자신에게 어느 정도 책임이 있었느냐는 문제는 동시에 존재할 수가 있겠다.

자, 그렇다면 이후의 리제트는?

공개 기록에서 확인되는 훗날의 행적은 의외로 많지가 않다.

2015년 LA Weekly가 그녀의 상황을 취재했을 당시에는 이미 연방 교도소를 나와 캘리포니아 롱비치의 halfway house(사회복귀 시설)에 머물고 있었으며, 그해 9월에는 완전히 구금 상태에서 벗어날 예정이라고 전해졌다.

그 이후의 삶을 자세히 확인할 만한 공개 자료는 찾기가 어렵다.

도대체..

리제트 리 사건에서 결국 진짜는 무엇이었던 걸까?

우선 범죄는 진짜였다.

진짜일 뿐만 아니라 진짜배기(?)였다.

2009년 말부터 2010년 6월까지 캘리포니아와 오하이오를 오가며 대량의 대마초가 반복적으로 운반됐고, 전체 규모는 약 3.2미터톤이었다.

리제트 자신은 2011년 법정에서 약 14차례의 운송과 그 과정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연방검찰이 평가한 그녀의 역할은 단순한 여행 가방 운반책이 아니라, 주된 운반자이자 조직의 대외적인 얼굴이었다.

즉, 전세기를 빌리고 일정을 만들며 다른 운반책을 모으고 그들에게 돈을 지급하는 사람이었다.

반면 자신에 관해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 가운데 명확한 거짓으로 드러난 것도 있다.

하버드를 다녔다는 이야기, Buckley와 Montclair Prep 같은 학교에 다녔다는 이야기, Vogue 표지모델이었다는 이야기. 리제트 자신이 훗날 이런 이야기들이 사실이 아니었다고 인정했다. (디카프리오나 호날두 같은 유명 인사와의 데이트, 음반 가수 이야기나 아시아의 유명 팝스타였다는 이야기도 전혀 입증되지 않음)

그리고 무엇보다..

삼성의 공식적인 상속녀이며 창업주와 혈연 관계라는 주장은 전혀 증명된 바가 없으며, 그녀가 삼성가를 대표한다고 적힌 회사 문서 역시 삼성 측이 실제 원문과 비교해 변조/위조 사실을 설명했다.

또한, 위조 문서에는 'The ower's of samsung'과 같은 비문이 등장하는 것을 꼬집기도 했다.

추가로, 삼성 측은 이미 선대 이병철 회장이 돌아가시고 23년이 지났음에도 그간 리제트 측이 접촉을 취하던가 사진 또는 편지 하나라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리제트 측으로부터 아카데미상 시상식 때 삼성 북미법인에 연락을 해서는 LED TV 공급 요청과 함께 VVIP 대상으로 신제품 시리즈 마케팅을 제안하기에 북미법인이 받아들였던 게 전부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삼성 측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말은 못하지만, 여러 가지 충실히 확인해 본 결과 리제트 리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여담으로, 리제트가 주변인들에게 아버지 쪽 가문이 소니(Sony)를 창업한 모리타 집안과도 연결됐다고 이야기했던 것은..

그녀의 생부 요시 모리타의 경우, 소니사 및 소니관계사 주식을 소유한 주주라는 사실까지만 확인됐다. 역시나 친족관계라는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고 말이다.

고급차와 경호원, 전세기를 보면서 사람들은 리제트가 누구인지를 짐작했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곁에 있는 것들이 증명해주는 듯했기 때문이다.

공항에서도 겉으로 보이는 풍경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세기가 착륙했고 일행은 짐을 내렸으며, 타고 갈 고급 차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헌데..

그날은 누군가가 겉모습을 보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녀의 여행 가방들을 열어본 것이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리제트의 진짜 모습이기도 했다.

어쩌면..

우리도 때때로 그처럼 직접 열어보고서 확인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참조

<ABC News/How Well Do You Know Your BFF?>
<Associated Press/Calif.-to-Ohio Pot Case Winding Up With Plea Deals>
<California Woman Indicted for Transporting More Than 500 Pounds of Marijuana to Columbus Aboard Private Jet> U.S. Attorney's Office, Southern District of Ohio
<California Woman Receives 72-Month Sentence for Transporting Marijuana to Ohio Aboard Private Jet> U.S. Attorney's Office, Southern District of Ohio
<LA Weekly/Orange Is the New Green> Siran Babayan
<Lee v. United States>> Elizabeth A. Preston Deavers
<Los Angeles Times/Alleged Samsung Heiress Has South Koreans Riveted> John M. Glionna & Ethan Kim
<Rolling Stone/The Gangster Princess of Beverly Hills> Sabrina Rubin Erdely
<Samsung Statement on Lisette Lee> Samsung
<Smoke: How a Small-Town Girl Accidentally Wound Up Smuggling 7,000 Pounds of Marijuana With the Pot Princess of Beverly Hills> Meili Cady
<Two Plead Guilty to Conspiring to Transport Marijuana from California to Ohio Aboard Private Jet> U.S. Attorney's Office, Southern District of Ohio
<VICE/I Talked to the Actress Who Says She Was Tricked Into Smuggling 3.5 Tons of Pot> Allie Conti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