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80시간 근무에 최저시급이라 회사 금고를 털겠습니다
* 본 글은 단순히 범죄사건과 관련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오락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사건의 악랄한 범행성을 알림과 동시에 범죄의 연보年譜를 통한 교육에 그 목적을 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주당 80시간 근무, 시급 8달러, 12시간 교대 근무.
현금 수송 업체 직원이었던 남자는 말 그대로 박봉에 업무 과중으로 점철된 생활을 이어오고 있었다. 이동식 주택에서 빡빡한 삶을 보내며 그마저 잠을 제외하면 집에서 보내는 시간조차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남자는 생각한다.
"아, 진짜 여기 한번 그냥 털어버릴까?"
1997년 미국에서는 현금 수송 업체 루미스 파고의 한 직원이 자신이 관리하던 회사 금고에서 현금 다발을 꺼내 간 사건이 있었다.
사실, 이런 내부자 절도 사건은 세계 어디에서든 이따금 일어나는 일이긴 한데..
문제는, 액수가 무려 1,704만 4,200달러에 달했다는 것이다.
2026년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약 3,530만 달러, 즉 우리 돈 480억 원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이 직원은 데이비드 스콧 간트라는 현금 수송 업체 직원이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범행보다 조금 앞선 1996년 말로 돌아간다.
여기, 노스캐롤라이나주 링컨 카운티의 이동식 주택에서 한 무리가 바비큐를 먹고 맥주를 마시며 우노 카드 게임을 하고 있다. 집주인은 스티브 챔버스였고, 그와 학창 시절부터 알고 지낸 켈리 캠벨도 함께였다.
켈리는 얼마 전까지 현금 수송 회사 루미스 파고에서 일했다. 파티를 즐기던 둘 사이에서 회사 이야기가 나왔고, 챔버스가 돈을 훔쳐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꺼낸다.
켈리는 처음에는 '술김에 농담'으로 받아들인다. 게다가, 수송차에 실린 돈을 털자는 이야기는 돈을 다루는 직장에서 한 번쯤 나올 법한 잡담이기도 했으니까. 허나 챔버스는 이후에도 그 이야기를 그만두지 않는다.
이것이 계획의 시작이었다.
챔버스가 궁리한 방법 가운데에는 현금 수송차에 가짜 수류탄을 붙여 운전자를 겁주는 안도 있었다. 켈리는 그런 식으로 차량을 직접 공격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반대했다.
어쨌건, 둘 사이에서 이제 '현금'에 대한 관심은 결코 사라지지가 않았다.
그러다 문득, '밖에서 차량을 공격할 필요 없이 안에서 돈을 꺼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리고, 켈리에게는 마침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란 바로, 데이비드 간트였다.
간트는 1997년 당시 스물일곱 살이었다.
그는 루미스 파고의 샬럿 시설에서 금고 관리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었으며 회사에 보관되는 돈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아는 직원이었다.
간트는 범죄로 먹고살던 사람이 아니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1992년 결혼했으며, 항공기에 연료를 넣거나 지게차를 모는 일을 거쳐 1994년 루미스 파고에 취직했다. 아내 태미와는 킹스마운틴의 이동식 주택에서 거주했다.
그는 어린 시절엔 사립 종교학교에 다니고 가족과 디즈니월드에 다녀왔던 중산층 가정이었으나, 성인이 되고서는 부모가 이루던 생활에 좀처럼 도달하지 못한다고 느꼈다.
근무는 길고 돈은 빠듯했다. 시급은 8.15달러에 한 번에 12시간씩 일하는 교대 근무직이었다. 매일 눈앞에서는 거액의 현금이 움직이는데, 정작 자기 생활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불만도 내심 있었다.
물론, 월급이 적거나 삶이 답답하다는 사실만으로 범행 동기가 모두 설명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범행 동기'라는 것에는, 무엇보다도 순간적인 충동을 범행 순간까지에 이어갈 특정한 트리거가 있는 법이다.
간트에게 있어선 그것이 한 통의 전화였다.
1997년 9월 초, 켈리가 간트에게 연락한다.
두 사람은 루미스 파고에서 함께 일하며 가까워진 사이였었다. 켈리가 회사를 떠난 뒤에도 연락이 이어졌고, 간트가 그녀에게 호감이 있었던 게 주변에서도 알 정도였다. (두 사람 모두 배우자가 있었음)
켈리는 회돈을 횡령하자는 이야기를 꺼낸다.
간트는 처음에는 예전에 함께 일하며 주고받던 농담의 연장으로 여긴다. 켈리는 한번 생각해 보라는 취지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했고, 이에 간트는 그때부터 사념에 빠지게 된다.
이후 간트는 사념과 망설임 사이에서 갈등한다.
정말로 일을 저지른다면, 아내와 부모를 두고서 외국으로 달아나야 했으며 지금까지의 생활을 통째로 버려야만 했기 때문.
반면..
신용카드 명세서를 들여다보다가, 최소 납부액만 갚는 방식으로는 빚을 없애는 데 30년이 걸리겠다는 계산을 하는 자신이 있었다.
며칠 뒤 켈리가 간트와 협상안을 구체화한다.
"그래서, 너한테 뭘 제공해 주면 이 일을 할 건데?"
간트에게는 돈을 옮길 사람과 새로운 신분, 해외로 빠져나갈 방법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가 기대하는 미래에는 켈리도 들어 있었다. 자신이 먼저 멕시코로 가면 켈리가 두 아이를 데리고 따라와 함께 사는 계획이었다.
둘은 만나서 준비 상황을 이야기하고 키스도 한다. 이제 간트에게는 거액의 돈을 손에 넣는 일과 켈리와의 새 생활이 목표로 설정된다.
허나..
켈리가 보는 미래에는 멕시코가 없었다.
간트에게 연애 감정도 없었고, 다만 그가 자신에게 품은 감정을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계획을 짜는 과정에서는 이상한 '보안 장치'가 존재했다.
그건 바로..
현장인 금고에 들어갈 간트와 밖에서 일을 주도할 챔버스(최초 켈리와 범행을 모의했던)가 서로 대면하지도, 또 전화 통화를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는 누군가 붙잡히더라도 다른 사람의 신원을 쉽게 밝힐 수 없도록 하자는 의도에서였다. 따라서 연락은 오로지 켈리를 통해 주고받는다.
하여, 간트는 함께 범행을 준비하는 상대의 이름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챔버스는 돈을 옮길 인원을 구했다. 오랜 친구인 에릭 페인과 사촌 스콧 그랜트에게 각각 10만 달러를 약속했다. 사촌인 그랜트는 처음엔 망설이다가 총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합류한다.
돈의 분배에 관련한 '약정'은, 다른 가담자들에게 지급할 돈을 제하고서 간트와 챔버스 부부 그리고 켈리가 나누기로 했다. (챔버스의 아내 미셸도 포함)
정리하자면 이랬다.
챔버스와 켈리: 최초 범행 모의 및 계획안 수립
간트: 현장에서 금고를 터는 역할
페인, 랜트: 현금 다발을 옮기는 역할
한편..
간트의 계획은 이랬다.
자기 몫 전부가 아닌 당장 쓸 현금만 가지고서 멕시코로 출국하고, 나머지 거액의 돈은 미국의 공범들에게 맡긴다. 그러면 그들이 나중에 보내준다는 것.
간트는 거액의 현금을 훔친 뒤에는 한동안 손을 대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다. FBI가 처음에는 눈에 불을 달고서 달려들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관심도 줄어들 것이라는 나름의 계산에서였다.
헌데..
이러한 판단이 맞는지 시험하기 전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금고에서 돈을 꺼내기 전에는 공범들이 누구보다 간트를 필요로 한다. 허나 돈을 넘긴 뒤에는 간트가 공범들을 필요로 한다. 금고에 들어가 범행을 끝내는 순간, 간트의 처지는 외국에서 돈을 보내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도망자 신세로 바뀌는 것이다.
간트는 자기 회사의 신뢰를 배신할 계획에 동참하면서도 공범들의 신뢰는 믿고 있었다.
여기서 루미스 파고가 어떤 회사였는지 잠시 짚고 가겠다.
이곳은 단순히 현금을 장갑차로 실어 나르기만 하는 회사는 아니었다.
은행이나 금융기관, 대형 상점 등으로부터 현금을 넘겨받아 안전하게 운송하고, 자체 시설의 금고에 보관하며 돈을 세고 분류하는 일부터 ATM에 들어갈 현금을 관리하는 업무까지 맡는 이른바 '현금 물류 회사'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샬럿의 루미스 파고 시설에 쌓여 있던 거액의 현금 역시 회사가 자신들의 매출만 모아둔 것이 아니라, 은행 등 고객사를 대신해 보관/관리하던 돈이었다.
그리고 간트는 바로 그 돈이 들어 있는 금고를 관리하던 직원이었다.
1997년 10월 4일 토요일, 이른바 페이데이였다.
간트는 그날 평소처럼 새벽부터 출근해 정상 근무를 한다. 금고 관리 책임자였던 만큼 시설 내부와 주 금고에 들어갈 권한도 있었고, 실제 범행 순간에도 자신의 열쇠를 이용해 금고를 열었다.
중요한 것은 퇴근 무렵이었다.
처음부터 디데이는 간트가 다른 직원들이 모두 돌아간 뒤 건물에 혼자 남을 수 있는 토요일로 선택됐다. 계획은 근무가 끝날 즈음 금고 문을 완전히 닫지 않고 잠시 혼자 있을 시간을 만든 뒤, 그 사이 현금을 회사 밴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오후 6시 무렵 페인(운반 역)은 버젯 렌터카에서 대여한 화물 밴을 자신이 일하던 레이놀즈 앤드 레이놀즈의 주차장으로 가져간다. 토요일 저녁이라 비어 있는 이곳에서 현금을 다른 차량으로 옮길 참이었다.
켈리는 루미스 파고 건너편에서 대기하고 여기에 챔버스와 그랜트(운반 역)도 합류한다. 전화로 진행 상황을 묻자 간트는 6시 30분이나 7시쯤이면 준비가 끝날 것이라고 답해왔다.
실지로, 오후 7시가 넘어가자 건물 안에는 간트 혼자만 남게 된다.
간트가 하고 있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는 켈리와 챔버스 일행이 대기하며 기다리고 있었고, 간트는 안에서 현금 다발을 카트에 실어 약 4.5m 떨어진 회사 소유의 포드 밴까지 계속해서 밀어 날랐다. 그리곤 다시 금고로 돌아와 같은 일을 반복한다. 여러 번 반복이 필요했다. 현금 다발이 좀 많은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날 실려 나간 돈의 무게는 총 2,748파운드였다.
이는 약 1,246kg, 거의 1.25톤에 달하는 무게였다.
여기서 잠시..
미국의 공식 화폐 안내에 따르면, 지폐 한 장의 무게는 액면가와 관계없이 약 1g이다.
100만 달러를 전부 100달러권으로 준비하면 지폐만 약 10kg이지만, 1달러권으로 준비하면 약 1,000kg이다. 같은 돈인데 무게는 백 배 차이가 나는 셈이다.
그날 간트가 빼돌린 현금 다발의 무게는 총 2,748파운드였으며 절도액은 총 17,044,200달러에 달했다.
다시 돌아와..
오후 7시 45분 무렵, 간트는 마침내 현금을 싣는 작업을 마친다. 그리곤 땀에 흠뻑 젖은 채 이번엔 보안 녹화 장비로 향한다.
그렇게 간트는 녹화 테이프(1997년이었다) 두 개를 챙기고서 밴에 오른다. 자신이 찍힌 기록까지 가져가려는 준비에서였는데, 문제는 다른 녹화 기록이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
말인즉슨, 여러 카메라가 녹화기에 연결돼 있는 상태에서 자신의 모습이 노출된 세 개의 테이프 중 두 개만을 챙겨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냥, 긴장이 풀린 건지 뭔지 부주의해서였다.
물론, 그 사실을 모르던 간트는 1톤이 넘는 현금 다발을 싣고서 밴을 몰고 나간다.
헌데..
탈주(?)를 목전에 두고 회사 출입문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전혀 뜻밖의 문제가 하나 생긴다.
루미스 파고 시설은 외곽 전체가 철망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차량이 밖으로 나가려면 그 끝의 무거운 철제 게이트를 통과해야 했다. 이제 다 마무리하고서 1,700만 달러가 넘는 현금을 싣고 그 게이트 앞까지 당도했으나, 혼자서 문을 여는 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문이 잠겨있고 간트가 열쇠를 찾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잠금장치를 풀지 못했다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간트가 무거운 철제 게이트를 여느라 씨름했던 것이다.
왜 그날 저녁 게이트가 그 상태로 닫혀 있었는지, 자동으로 닫혔는지 아니면 정상적인 야간 보안 절차에 따른 것이었는지까지는 공개된 자료를 통해 확인되지 않는다.
한편..
길 건너 차량 안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리더 격의 챔버스도 결국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운반 역이었던 그랜트에게 나가서 간트를 도우라고 지시한다.
그랜트는 내키지가 않았다. 애초 계획상 자신과 간트는 서로 얼굴조차 모르는 상태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허나, 약속된 보수가 10만 달러였다.
결국 그랜트는 되도록 얼굴을 간트 쪽으로 노출시키지 않은 채 게이트로 달려가고, 두 사람이 힘을 합친 뒤에야 무거운 철제문이 열린다.
하여..
간트는 드디어 1,700만 달러를 실은 밴을 루미스 파고 구내 밖으로 빼내는 데 성공한다.
금고를 폭파하거나 경비원을 제압하는 장면 없이 범행은 아주 스무스하게 마무리 지어졌다.
밴은 약속한 주차장으로 향했고, 간트는 열쇠'고리'를 넘긴 뒤 켈리와 함께 떠났다. 이제 나머지 공범들에게는 현금을 옮겨 싣는 작업이 남았다.
헌데..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한다.
간트로부터 건네받은 열쇠'고리'에는 열쇠가 약 200개나 달려 있었던 것. 간트는 그중 어느 것이 밴을 여는 열쇠인지 알려주지 않고서 떠난 상태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열쇠고리가 아니라, 시설 관리자가 수많은 설비 열쇠를 관리할 때 쓰던 약 20cm 크기의 대형 금속 키링)
역시나, 긴장이 풀린 건지 뭔지 부주의해서였다.
하릴없이 그랜트는 밴 뒤쪽 문에 열쇠를 하나씩 넣어보고 챔버스 역시 다른 문에다 맞는 열쇠를 찾기 시작한다. 도중에 마음이 급해진 나머지 차량 유리를 깨려는 시도까지 하지만 이마저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게 약 10분이 지나서야 문이 열렸다.
이제 눈앞에는 말로만 듣던 무수한 현금 다발이 있었다. 간트에게 사전에 금고에 약 1,500만 달러가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돈이 가득한 밴을 직접 마주하는 것은 또다른 일이었다.
그랜트가 밴 안으로 들어가 현금 다발을 밖으로 넘기기 시작했다. 챔버스와 페인(운반 역)은 그것을 받아 파란 드럼통에 넣었다. 준비한 통은 55갤런짜리 세 개, 미국 갤런을 기준으로 하나당 약 208리터에 달하는 크기였다.
헌데, 통을 채워갈수록 또다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니..
그것은 바로, 남은 돈 전부를 통에다가 담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챔버스는 결국 주로 1달러와 5달러짜리로 된 나머지 현금 다발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통으로 옮기지 못하고서 회사 밴 안에 남는 돈이 약 330만 달러였다.
한마디로, 돈이 너무 많아 걱정인 셈이었다.
그렇게..
회사(루미스 파고) 밴은 현장에 버려지고, 현금이 실린 렌터카는 공범들과 함께 챔버스의 집으로 향한다.
미셸(챔버스의 아내)은 계산기와 고무밴드를 준비하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랜트는 돈 세는 과정을 끝까지 지켜보지 않고서 약속받은 보수 가운데 선금 6,000달러를 챙겨 나간다.
이렇게 미국에 남은 공범들은 거액의 현금을 손에 넣었다.
반면, 간트가 들고 움직이는 돈은 전체의 극히 일부였다.
그가 처음 챙긴 돈은 약 2만 5천 달러에 불과했다.
한편, 켈리는 간트를 약 90마일(약 144km) 떨어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컬럼비아까지 직접 데려다준다.
물론, 그녀가 간트와 함께 멕시코로 도망가려던 것은 아니었다.
간트가 먼저 혼자 멕시코로 빠져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켈리가 두 아이를 데리고 합류한다는 계획이었는데, 간트는 그 약속을 진짜로 믿고 있었다.
허나, 켈리는 처음부터 멕시코로 갈 생각은 없었으며 일단 간트를 미국 밖으로 보내는 게 목적이었다.
두 사람은 컬럼비아 공항까지 갔지만 이용할 만한 비행편을 찾지 못했고, 켈리가 이를 챔버스에게 알리자 그는 간트를 애틀랜타행 버스에 태워 보내고 돌아오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리하여..
1,700만 달러를 꺼낸 남자는 고작 몇만 달러를 들고 혼자 버스에 올랐고, 켈리는 다시 미국의 공범들에게로 돌아갔다.
간트는 자신이 먼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고 생각했지만..
켈리에게는 애초 따라갈 생각이 없었다.
사건 다음 날인 10월 5일 일요일 아침.
간트의 아내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다며 실종 신고를 한다. 루미스 파고에서는 직원(간트)과 차량, 현금이 함께 사라진 일이 드러난다. 초기 AP 보도를 보면 수사기관도 간트가 피해자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상태는 아니었다.
허나, 현장에는 간트가 미처 없애지 못한 녹화 기록이 하나 남아 있었다.
그러니까, 간트가 미처 회수하지 못했던 녹화 테이프가 말이다.
앞서 언급했듯..
간트는 범행 직후 보안 녹화 테이프 두 개를 빼내 가져갔지만, 자신이 알지 못했던 세 번째 테이프(자신의 모습이 찍힌)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그렇게 루미스 파고 관리자들은 영상 속에서 돈을 옮기는 직원을 단박에 알아본다.
헌데..
간트가 놓친 건 영상 하나뿐이 아니었다.
이틀 뒤, 회사 시설에서 약 2마일(약 3.2km) 떨어진 숲에서 버려진 루미스 파고의 밴이 발견된다. 안에는 미처 옮기지 못한 현금 약 330만 달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여기서 수사관들은 조금 어처구니없는 물건들도 함께 발견한다.
간트가 회사에서 일부러 빼내온 보안 녹화 테이프 두 개, 그리고 루미스 파고 소유의 .38구경 권총을 말이다.
더 황당한 것은..
간트가 현장을 떠나기 전 공범들에게 범죄 증거가 될 수 있는 이 테이프와 권총을 없애라고 말했었다는 사실이다.
즉, 챔버스 일행은 밴의 문을 열어 1,000kg이 넘는 현금을 드럼통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돈이 너무 많아 330만 달러까지 포기한 뒤 차량을 숲에 버렸는데..
정작 없애야 할 증거물인 녹화 테이프와 총까지 차 안에 그대로 두고 간 것이다.
왜 그랬는지는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아마, 긴장이 풀린 건지 뭔지 부주의해서였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FBI는 한쪽에서는 루미스 파고에 남아 있던 세 번째 테이프를 통해 간트의 범행 장면을 확인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버려진 밴에서 그가 훔쳐 간 나머지 두 테이프와 회사 권총까지 회수할 수 있었다.
사라진 사람을 걱정하며 실종 신고와 함께 드러나기 시작한 사건은..
이제 그 직원이 어디로 도망갔는지를 찾는 사건으로 완전히 바뀐다.
이렇듯..
FBI가 유력 용의자의 신원을 알아내는 데는 오래 걸리지가 않았다.
허나, 신원을 파악했다는 것과 그 사람을 잡았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겠다. 돈 대부분의 소재도 알 수 없고, 간트가 혼자서 그 돈을 처리했다고 보기에도 상황이 맞지 않는다.
사건의 규모로 인해 전국적인 관심이 쏠리면서, 당시 보도들은 해당 사건을 미국 역사에서 손꼽힐 규모의 현금 절도 사건으로 다룬다.
신문에 자신들의 범행이 나오기 시작한 이때, 공범들이 해야 할 교과서적인 법칙은 가능한 한 평소처럼 지내는 것이었다.
잡히지 않으려면 적어도 그랬어야 했다.
범행 이틀 뒤인 10월 6일.
미셸은 은행으로 향한다.
범행 당일 밤, 그녀는 남편인 챔버스의 집에서 계산기와 고무밴드를 들고 산더미 같은 현금을 정리하던 사람이었다. 이후에도 여러 계좌에 현금을 넣고 집과 물건을 사는 일을 직접 처리하는, 이른바 money person이었다.
그날 그녀가 찾아간 곳은 네이션스뱅크(미국의 유명 은행) 지점이었다.
미셸은 현금 5,000달러가 든 서류 가방을 들고 창구로 가 직원에게 묻는다.
"현금을 얼마까지 입금하면, 그러니까, 별도의 서류를 작성하지 않으려면 현금을 얼마까지만 입금해야 하죠?"
즐, 별도의 정부 관련 서류를 작성하지 않아도 되는 현금 입금액 마지노선을 묻는 취지였다.
사실, 은행 창구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만 해도 충분히 이상하다.
헌데..
미셸은 직원이 돈의 출처를 묻지도 않았는데도 한마디를 더 붙인다.
"아, 뭐 마약으로 벌거나 한 돈은 아니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분명, 은행 직원 입장에서는 그냥 지나칠 법한 순간이 아니었다. 현금이 든 가방을 들고 와 신고 기준부터 묻더니 갑자기 불법 자금이 아니라는 해명까지 먼저 하고 있으니까.
결국, 직원은 의심 거래 보고 제도에 따라 Suspicious Activity Report(의심 거래 보고서) 서류를 작성한다.
미셸의 실수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해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챔버스 부부는 여러 차례 은행에 현금을 집어넣는다. 한 은행에서만 47차례에 달할 정도였으며, 모두 합치면 27만 1,500달러에 달하는 입금이 이뤄졌다.
범행 약 한 달 뒤, 미셸은 벨몬트 지역의 한 은행에 이전보다 훨씬 큰 가방을 들고 들어간다. 안에는 현금 20만 달러가 들어 있었다.
그녀는 은행 관리자에게 다시 비슷한 질문을 한다.
"얼마까지 입금해야 은행에서 정부에 보고하지 않을까요?"
헌데, 이번에는 질문보다 돈 자체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관리자가 가방 속 현금을 살펴보니 일부 지폐 다발에 여전히 Loomis Fargo의 현금 띠지가 부착 중이었다. 이들 일당이 털어먹은 회사인 루미스 파고 이름이 찍힌 띠지가 말이다.
관리자는 거래를 진행하지 않고서 적당한 이유를 대며 미셸을 돌려보냈다.
물론, 그냥 보내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당시 해당 관리자는 관련 신고 서류를 작성하면서, 미셸이 '얼마까지 넣어야 보고되지 않느냐'고 물었던 사실 자체를 의심스러운 거래 요청으로 기록했다.
여기서 잠시..
일정 규모의 현금 거래를 보고하는 제도와, 거래 정황이 의심스러워 보고하는 제도는 서로 다르다. 특정한 금액을 넘기지 않았다고 의심 거래 보고까지 자동으로 패스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손님이 보고 절차를 물었다는 사실 하나가 범죄의 증명이 되는 것도 아니겠다. 돈의 출처, 반복되는 거래, 관련 인물들이 함께 검토되는 제도이니까 말이다.
이 사건에서는 실지로 은행 보고들이 훗날 자금 추적에 기여했다. 미셸은 나름대로(?) 눈에 띄지 않는 방식을 찾으려다 긁어 부스럼을 일으킨 것이다.
그렇다고 곧장 경찰이 집으로 들이닥치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시 돌아와..
챔버스 부부의 생활에 계속해서 변화가 생긴다. 계좌에 돈이 들어오고, 대여금고가 생기고, 현금이 쇼핑으로 바뀐다. 심지어 오랜 시간에 걸친 것도 아니었다. 범행 한 달 안에 두 사람은 이동식 주택을 떠나 고급 주택가로 이사했다.
이들이 이사 간 곳은 크래머 마운틴 지역의 63만 5천 달러짜리 집이었다. 약 7,000제곱피트(약 650㎡) 규모였으며, 커다란 거실과 와인 저장고에다 넉넉한 차고도 있었다. 집 안으로 가구들이 채워지고 말이다.
이사를 맡은 인부들에게 챔버스는 점심을 사주고 팁도 준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운이 좋아 큰돈을 벌었다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현금으로 마련한 물건도 점차 늘어난다. BMW Z3 컨버터블, 고급 가구와 회화, 값비싼 반지까지. 특히 미셸이 갖게 된 3.5캐럿 다이아몬드 반지의 가격은 약 4만 3천 달러에 달했다.
챔버스 부부는 갑자기 생긴 검은돈을 자신들의 생활로부터 감췄어야 했음에도, 이렇듯 오히려 신이 나서 매일을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헌데..
이건 다른 공범들도 비슷했다.
인쇄업체에서 일하던 페인(운반 역)은 신용카드 빚을 갚고 새 차량과 이동식 주택,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지른다. 딸의 일곱 번째 생일에는 기다란 리무진이 주택 단지로 들어와 아이와 친구들을 태우고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기도.
이러한 수상쩍은 생활상의 변화는..
쥐도 새도 모르게 조금씩 FBI의 귀에 들어간다.
11월 12일에는 챔버스가 이동식 주택에서 저택으로 옮겼다는 제보가 들어오고, 그다음 주에는 페인의 달라진 위상에 관한 제보가 이어진다.
당시 담당 수사관은 이미 간트와 켈리가 서로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챔버스와 페인에게 갑자기 설명하기 어려운 큰돈이 생겼다는 정보도 있었다. 허나, 아직은 이들 두 무리를 직접적으로 이어줄 증거가 없었다.
이 무렵..
챔버스는 돈을 은닉하고 정상적인 자금처럼 바꿔줄 사람들을 계속해서 끌어들인다.
그중 하나가 지인이었던 마이클 굿맨과 그의 아내 킴벌리였다.
킴벌리는 은행에서 일하고 있었고, 챔버스는 이 부부를 이용해 훔친 현금 20만 달러를 공식 은행수표로 바꾼다. 굿맨 부부가 그 대가로 받은 돈은 1만 달러였다.
물론 이것만으로 남은 수백만 달러를 전부 세탁할 수는 없었다.
돈은 여러 사람의 대여금고와 계좌로 흩어졌고, 동시에 챔버스 부부가 새로 시작한 호화로운 생활에도 계속해서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여기서..
전혀 다른 종류의 전문가 한 명이 사건에 등장한다.
변호사인 제프리 걸러였다.
범행이 벌어진 지 불과 며칠 뒤.
걸러는 자신의 법률사무소 비서에게 챔버스 명의의 새 파일 하나를 만들도록 지시한다.
용도는 부동산 매매였다.
챔버스 부부가 크래머 마운틴 지역의 고급주택을 구입하려 하고 있었고, 걸러의 사무실이 그 거래의 closing(계약금과 대금 지급, 소유권 이전 등 주택 매매의 법률 절차)을 맡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앞서 언급했던 챔버스 부부의 이동식 주택에서의 이사 건을 말이다.
그리고 범행 후 약 2주 무렵..
걸러의 법률사무소 비서가 사무실 창고에서 조금은 수상쩍은 물건을 보게 된다.
종이상자 안에 들어 있던 커다란 검은색 가죽 더플백이었는데, 가방을 열어보니 그곳엔 현금 다발이 가득 차 있었다. 옆에는 다음의 메모 한 장도 있었다.
$436,000
43만 6천 달러.
비서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맡은 업무는 새 고객 스티브 챔버스의 고급 주택 매매 서류를 만드는 것이었다. 헌데 그 이후 변호사 사무실 창고에 뜬금없이 현금 43만 6천 달러가 든 가방이 놓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금 출몰은 한 번으로 끝나지가 않았다.
그로부터 나흘 뒤에는 챔버스의 아내 미셸이 직접 사무실에 나타난다. 이번에 가져온 것은 현금 가방이 아니라 여러 장의 money order(송금용 지급 증서)였다. 각각의 금액은 5-8만 달러였고, 수취인은 변호사인 걸러였다.
비서는 그 증서들을 걸러의 은행 계좌에 입금하는 일을 맡는다.
마침 당시 미국의 대표적인 범죄 르포 TV 프로그램 America's Most Wanted에서는 루미스 파고 절도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방송에서는 범인 검거와 돈 회수에 결정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50만 달러의 포상금이 걸려 있다는 사실도 함께 소개됐다.
걸러의 비서 역시 해당 방송을 시청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바로 그 시기, 자신이 일하던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챔버스의 새 주택 매매를 처리 중이었고 말이다.
이는 범행이 벌어진 지 불과 며칠 뒤의 일이었다.
비서는 걸러의 지시를 받아 크래머 마운틴의 고급 주택 매매 파일을 만들었고, 그 뒤 사무실 창고에서 43만 6천 달러가 든 검은색 더플백을 보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나흘 뒤에는 미셸이 다시 방문해, 이번에는 각각 5-8만 달러에 달하는 money order 여러 장을 걸러 앞으로 가져왔고 말이다.
비서는 그것들을 걸러의 은행 계좌에 입금하는 일까지 직접 맡았다.
그러니까..
그녀 입장에서는 이상한 정황이 하나씩 계속해서 따라와 붙은 셈이다.
이쯤 되자 그녀 입장에선 마냥 지나치기가 어려웠다.
하여, 그녀는 결국 걸러에게 그때까지의 정황을 직접 말하기에 이른다.
한편..
루미스 파고에서 사라진 현금인 것 아니냐는 비서의 직접적인 물음에, 걸러는 어떠한 해명이나 설명 대신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걸 증명할 수는 없지 않아?"
그 말을 듣고서 얼마 지나지 않아 걸러의 비서는 America's Most Wanted 방송에 나온 제보 번호로 전화를 건다.
그리고..
자신이 지금까지 본 것들을 하나씩 설명한다. 갑자기 고급 주택을 구입하고 있는 챔버스 부부, 그 부동산 거래를 맡은 변호사 걸러, 사무실 창고에서 발견한 43만 6천 달러짜리 현금 가방, 며칠 뒤 미셸이 가져온 수만 달러짜리 money order들, 그리고 자신이 직접 그 돈을 걸러의 계좌에 입금하는 과정까지.
헌데..
제보 전화를 받은 쪽의 첫 반응은 그녀가 기대했던 것과 조금 달랐다.
상담원은 당시 자신들이 스티브 챔버스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용의자(간트)를 추적하고 있다는 취지로 답을 해왔다.
그렇게..
꽤나 결정적일 수도 있었던 그녀의 첫 제보는 당시엔 별다른 반향 없이 흐지부지되고 만다.
한편..
그동안 간트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머물고 있었다.
멕시코에 도착한 간트는 꽤나 즐거운 자체 휴무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그해 10월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일들을 즐긴다. 패러세일링과 스쿠버다이빙, 낚시를 하고 또 마야 유적지를 방문하기도 한다. 칸쿤에서는 현지에서 알게 된 웨이터의 도움으로 해변 근처 아파트를 구한다.
밤이면 식당에 가고 바다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보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시계를 보며 다음 반나절 근무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간트가 원했던 생활이 갑자기 손에 들어온 셈이었다.
그가 머문 곳 가운데에는 플라야 델 카르멘의 호텔 라 토르투가도 있었다. 이곳에서 간트는 제임스 T. 켈리라는 이름을 쓰며 휴가 나온 석유 시추 노동자로 자신을 소개한다. 직원은 로비 옆 101호실을 내준다.
당시 호텔 직원들이 기억하는 그의 모습은 초호화 도피 생활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간트는 방에서 M&M's와 스니커즈를 먹고 테킬라를 마시며 이글스의 음악을 들었다. 해산물을 파는 식당들이 있어도 자주 찾는 곳은 버거킹이었다. 만화책과 멕시코 지도를 들여다보고, 수영장에 발을 담근 채 혼자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다.
아마, 의도치 않게 그저 혼자 여행 온 평범한 미국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간트는 도피 중 여러 곳에서 나날을 지냈다. 그러다 11월이 되면서 처음의 여유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간 관광과 레저를 즐기며 가지고 온 돈을 쓰다 보니, 이제는 직접 파스타와 구운 치즈 샌드 위치를 만들어 먹으며 생활비를 아껴야 하는 상황이 이른 것.
간트는 전화카드를 이용해 켈리에게 연락을 취한다.
미국에 있는 자기 몫에서 돈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 말이다.
켈리는 그 말을 챔버스에게 전한다.
여기서..
진부한 클리셰를 예상했을 수 있었겠으나..
의외로 그런 일은 없었다.
다만, 멕시코로 돈이 전달되기 위해서는 조금 절차가 필요했다.
하여, 이 무렵 간트에게 돈을 전달할 새로운 사람이 등장한다.
이름은 마이클 매키니로, 전직 해병대원인 남자였다.
사실, 매키니는 간트와 직접 만나기 전부터 이미 이 사건에 발 한쪽을 걸치고 있었다. 간트가 멕시코에서 신분을 감추기 위해 사용한 가짜 신분증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마이크 매키니 명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챔버스는 먼저 매키니에게 돈을 주고 그의 신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했고 이후에는 멕시코에 숨어 있는 자신의 '친구'에게 현금을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한 것.
물론, 챔버스가 매키니에게 사건과 관련한 모든 사실을 털어놓은 것은 아니었다.
매키니가 들은 이야기는, 멕시코에 있는 친구가 마약 거래 문제로 몸을 숨기고 있는데 생활비가 필요하니 돈을 좀 가져다 달라는 것이었다.
1997년 11월 중순.
매키니는 현금 1만 달러를 전달받아 멕시코로 향한다.
목적은 간단했다.
챔버스가 알려준 사람에게 돈을 전달하는 것.
헌데..
여기서 진부한 클리셰가 등장한다.
간트를 채 만나기도 전에 매키니는 가져간 돈 상당액을 여행 중에 써버렸고,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챔버스에게는 상대를 찾지 못했다고 둘러댄다.
이에 챔버스는 매키니를 다시 멕시코로 보낸다. 이번에는 간트가 묵고 있는 곳까지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면서 말이다. 그렇게 두 번째로 멕시코로 향한 매키니는 마침내 간트를 찾아낸다.
새벽 5시 30분 무렵.
매키니가 간트의 숙소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침대 위에 현금을 내려놓는다.
액수는..
고작 8,500달러였다.
간트는 당연히 불만이었다. 자신이 미국에 맡겨두고 온 돈은 수백만 달러였는데, 애태우다가 마침내 전달된 액수가 몇천 달러에 불과했으니까.
매키니의 애초에 자기도 이것밖에 받지 못했다고 항변했다.
이 무렵부터 간트는 자신에게 약속된 거액의 몫을 끝내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헌데 말이다..
간트는 그동안 어찌해서 공범들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 철석같이 믿었던 것일까?
간트는 팀워크를 믿었다고 한다. 그는 군대와 직장들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믿고 협력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다. 마음 맞고 좋은 사람들로 팀을 구성하면 무엇이든 괜찮을 것이라는 사고방식을 지녔던 것.
허나 그가 간과한 건, 돈을 맡긴 사람들은 같이 회사 일을 마칠 동료가 아니라 함께 회삿돈을 훔친 범죄자였던 것이겠다.
간트의 기대와 달리..
사실, 챔버스는 그에게 약속한 몫을 제대로 보낼 생각이 없었다. 실지로는, 필요에 따라 간트를 죽이려 했던 게 챔버스의 계획이었다.
범죄를 성공시키기 위해 간트는 필요불가결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 돈이 이미 수중에 들어온 뒤에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몫을 요구하고 잡히면 다른 사람에게까지 위험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챔버스는 돈을 보내는 대신 간트를 없애는 계획을 시행하기 시작한다.
간트 제거 계획은 범행 전부터 존재했었다.
다만, 당시에는 챔버스가 간트 살해를 거론했었고 이에 켈리가 반대하면서 무마됐던 계획이었다.
헌데..
범행 후 10월 말에 이르러선 켈리도 이 계획에 동의한다. 은행 절도와 자금 세탁뿐 아니라 살인 공모까지 모의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때까지도 간트는 켈리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범행을 준비하던 시절부터 두 사람 사이에는 한 가지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간트가 먼저 혼자 멕시코로 빠져나가 자리를 잡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켈리가 두 아이를 데리고 그에게 합류한다는 것 말이다.
간트에게는 이 모든 게 단순한 도피에 그치는 게 아니었다. 직장과 아내, 지금까지의 생활을 모두 버리고서 켈리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둘은 사격장 뒤편과 같은 한적한 곳에서 만나 범행을 논의했고, 그 과정에서 실지로 키스까지 했다.
헌데..
말했듯, 켈리에게는 애초 멕시코로 갈 생각이 없었다. 그녀에겐 아이들을 데리고 평생 도망자처럼 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챔버스 역시, 간트가 계속 계획에 협조하도록 필요한 것은 뭐든 해주라는 취지로 켈리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간트가 믿고 있던 '멕시코에서의 새 인생'은 처음부터 한쪽만 진지했던 약속이었다.
물론..
범행이 끝난 직후부터 그 약속이 곧바로 깨졌노라 통보한 것은 아니었다.
간트는 멕시코에서 전화카드를 이용해 대략 일주일에 한 번씩 켈리에게 연락했다. 언제 이곳으로 올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돈은 언제 보내줄 것인지를 묻기 위해서 말이다.
켈리는 간트가 요구한 내용을 챔버스에게 전달하며, 이 시점에서 사실상 미국에 남은 공범 일당과 멕시코의 간트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간트는 여전히 켈리가 자기 편이라고 믿고 있었다.
반면 미국에 남은 공범들에게 간트는 조금씩 다른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반드시 필요했던 내부자에서, 이제는 수백만 달러의 자기 몫을 계속 요구하고 붙잡히면 자신들의 이름을 불어버릴 도망자로 말이다.
그렇게 10월 말.
할로윈을 맞아 챔버스의 집에 켈리와 일당들이 모인다.
그 자리에서 챔버스는 다시금 간트 이야기를 꺼낸다. 범행 전에도 한 차례 제안했다가 켈리의 반대로 무산됐던 일. 바로, 간트를 그냥 없애버리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것 말이다.
처음 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 켈리는 반대했었다. 간트는 자신의 친구였고, 무엇보다 자신을 신뢰하는 사람이었으니까.
헌데 이번에는 달랐다.
이미 돈은 자신들의 수중에 들어왔고, 간트는 멕시코에서 일주일에 한 번꼴로 전화를 걸어 자기 몫을 보내달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붙잡힐 경우 자신들의 이름을 말할 수도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필요불가결했던 내부자는 어느새 수백만 달러를 계속 요구하는 위험 요소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켈리는 이번에는 챔버스의 의견에 동의한다.
간트를 죽이는 쪽으로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앞서 멕시코에서 몇 번이나 등장했던 사람이 다시 등장한다.
마이클 매키니 말이다.
간트는 그를 미국의 공범들이 자기 돈을 보내기 위해 붙여준 배달원쯤으로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1만 달러를 들고 멕시코까지 왔다가 돈 상당액을 자기가 써버렸고, 두 번째에는 새벽 5시 반에 숙소 문을 두드려 침대 위에 고작 8,500달러를 내려놓았던 남자.
헌데..
간트가 모르고 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매키니는 단순히 돈을 전달하라는 요청만 받고서 멕시코에 내려온 사람이 아니었다.
11월 초, 챔버스가 일리노이에 살던 매키니를 노스캐롤라이나로 불러들였을 때 이미 계획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있었다.
챔버스는 애초 매키니에게 그의 신분을 이용하는 대가로 5만 달러를 지급했고, 처음에는 멕시코에 숨어 있는 친구에게 생활비를 전달하는 일을 맡기겠다고 설명했다.
허나, 매키니가 노스캐롤라이나에 도착했을 때 챔버스는 진짜 용건을 꺼낸다. 멕시코에 있는 그 친구를 죽여달라고 말이다.
대가는 25만 달러였고 그중 절반은 선불로 지급하겠다는 조건이었다. 챔버스는 눈앞에 쌓여 있는 거액의 현금까지 보여줬고, 이에 매키니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앞서 매키니가 1만 달러를 들고 멕시코에 내려가 여행비로 써버렸을 때도, 두 번째 방문에서 간트의 침대 위에 8,500달러를 내려놓았을 때도, 그가 맡은 임무는 단순한 배달이 아니었다.
돈을 조금씩 전달하며 간트가 미국의 공범들을 계속 믿게 만들고, 기회가 생기면 그를 죽이는 것. 그게 챔버스가 매키니에게 맡긴 실제 일이었다.
그저, 간트만 해당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11월 말, 매키니가 세 번째로 멕시코에 내려온다.
이번에는 간트에게 멕시코시티 쪽으로 거처를 옮기는 일을 도와주겠노라 접근한다.
앞선 두 차례의 방문을 통해 간트도 이제 이 낯선 미국인을 어느 정도 미국 쪽 연락책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이 세 번째 만남에서..
간트는 매키니에게 처음으로 자신의 정체를 털어놓는다. 자기가 왜 멕시코에 숨어 있는지, 미국에서 정확히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루미스 파고에서 사라진 1,700만 달러, 그리고 그 돈을 직접 금고에서 꺼낸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이야기를 말이다.
그 말을 들은 매키니가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잠깐.. 이 정도 규모의 사건에 낀 거라면.. 받기로 한 돈이 너무 적은데?'
그렇다.
25만 달러를 받고 사람을 죽이러 온 남자는, 표적이 1,700만 달러짜리 절도의 장본인이라는 사실을 알고선 청부 대금부터 다시 계산하기 시작한 셈이다.
헌데 그렇다고 매키니가 맡은 일을 제대로 실행한 것도 아니다. 그는 멕시코를 몇 차례 오가면서도 간트를 죽일 적당한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그러던 사이..
청부살해를 맡은 사람이라면 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 실수까지도 저지른다.
현지에서 로버트라는 이름으로만 불리던 남자와 가까워지더니, 자신이 멕시코에 누군가를 죽이러 왔다는 이야기를 떠벌린 것이다.
그리고 타겟의 정체를 알게 된 로버트는..
그 이야기를 다시 간트에게 전한다.
간트는 대략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할 수가 있었다.
간트는 로버트에게 감사 표시로 3,000달러를 건넸고, 그 뒤부터는 매키니와 절대로 단둘이 만나지 않는다.
하여, 간트의 멕시코 생활은 완전히 다른 단계로 넘어간다.
이제 피해야 할 사람은 FBI만이 아니었다.
그는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고, 가족과 아내를 그리워하며 술독에 빠지다시피 했다.
그동안 FBI는 미국에서 두 무리를 연결할 흔적을 찾아간다.
12월, 켈리가 현금 3만 달러를 주고 산 토요타 미니밴이 단서로 포착된다. 차량에는 챔버스가 사용하던 가명 가운데 하나가 연결돼 있었던 것이다.
미셸이 은행에 넣은 약 8,000달러의 지폐 띠지에서도 루미스 파고의 흔적이 발견된다.
이제 그럴듯한 정황 증거에서 벗어나, 챔버스 쪽의 현금과 루미스 파고를 이어줄 물증을 확보한 것이다.
그렇게 수사가 계속되던 1998년 2월 11일, FBI는 챔버스 부부의 전화를 감청하기 시작한다. 샬럿 지부가 상당한 인력을 동원한 수사였다.
이 전화 통화들을 통해 챔버스들로부터 해외 계좌로 돈을 옮기는 이야기와 비싼 물건에 관한 이야기, 멕시코에 있는 간트에게 사람을 보내는 이야기까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제는 돈의 위치 파악뿐만 아니라 살해 위협에 대해서도 FBI는 멕시코에 있는 간트를 찾아야 했다.
1998년 2월 27일.
켈리에게 걸려 온 간트의 전화가 멕시코에서의 그의 위치를 좁히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이틀 뒤인 3월 1일 일요일, 플라야 델 카르멘의 호텔 주변에 평상복 차림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멕시코 경찰과 인터폴 관계자, 그리고 FBI 요원이었다.
간트기 세탁물을 챙겨 밖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침내, 간트는 자신이 묵던 곳 근처에서 붙잡힌다. 호텔 직원들이 기억하는 장면과 간트가 설명한 동선에 세부 차이는 있지만, 그날 플라야 델 카르멘에서 신병이 확보된 것은 확실했다.
약 다섯 달의 도피가 끝이 났다.
다음 날 간트는 미국으로 귀환한다.
그와 비슷한 시각, 미국에서도 주요 관련자들의 체포가 시작된다. 챔버스 부부와 켈리, 페인, 그랜트, 매키니 등 그동안 수사에 등장했던 사람들이 차례로 연방 당국의 손아귀로 들어간다.
이들은 범행 전에는 서로를 모르게 한다며 얼굴과 이름까지 감췄으나, 막상 범행 직후부터는 돈을 숨기거나 쓰는 과정에서 서로 연결되는 기록을 계속해서 남겼다.
그리고 붙잡힌 뒤에는 입도 적극적으로 열었다. 오히려 비밀 엄수를 강조했던 리더 격의 챔버스가 관련자들의 이름을 수사관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 사건은 법정으로 올려져 이 범죄 일당 각자가 무엇을 했는지 따져진다.
간트는 1998년 유죄를 인정한다. 그에게 적용된 죄는 bank larceny(연방법상 은행 절도)와 두 건의 money laundering(자금 세탁)이었다. 그리고 1999년 4월 29일, 판사는 그에게 징역 90개월을 선고한다. 7년 6개월의 징역형이었다.
간트는 선고 전, 자신의 행동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며 후회를 드러냈다. 전망 없던 직장과 행복하지 않았던 삶으로 자신을 간접적으로 변호하기도 했다.
한편..
간트가 어느 정도 액수를 취득했느냐를 두고서 첨예한 법정 다툼이 발생했다.
법원은 간트가 체포되기 전 실제 받은 돈은 3만 달러를 넘지 않았다는 변호인의 설명을 받아들인다.
헌데, 간트가 실지로 공범들로부터 배분받기로 한 액수는 약 400만 달러였었다.
그러니까, 실제 받은 액수와 약정상의 액수를 두고서 법정 공방이 생긴 것이다.
여기서 잠시..
이건 단순히 3만 달러냐 400만 달러냐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절도 전체의 피해액과 별도로, 간트 개인에게 귀속된 범죄 수입을 어떻게 볼지가 주요 쟁점이었다.
당시 적용된 연방 양형기준은 일정 요건 아래 개인의 범죄 수입이 100만 달러를 넘으면, 양형 계산에 쓰는 등급을 네 단계 올리도록 했다. 그리고 법원은 실지로 지갑에 들어온 액수만을 보지 않고, 공범들과의 분배 약정에 따른 몫도 계산에 넣었다.
이는 사건과 해당 조항에 관한 판단이지, 범죄자끼리 약속한 돈을 일반적인 계약상 권리처럼 보호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간트는 이 가중 판단에 불복한다.
허나, 2000년 3월 31일 제4연방항소법원에서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90개월형 또한 유지된다.
다른 공범들에게도 물론 형이 내려졌다.
계획을 주도한 챔버스와 간트를 죽이러 멕시코를 오간 매키니에게는 각각 11년 3개월이 선고된다. 운반 역이었던 페인과 그랜트는 각각 6년 6개월형과 4년 8개월형을 받는다. (돈을 은폐하러 뒤늦게 가담했던 그랜트의 형제도 징역을 받음)
챔버스의 아내 미셸에게는 7년 8개월형과 약 480만 달러의 배상 명령이 내려진다. 켈리도 은행 절도와 자금 세탁, 살인 공모에서 유죄를 인정하며 6년에 가까운 형을 받는다.
변호사 걸러는 자금 세탁과 자금 세탁 공모로 97개월, 즉 8년 1개월형을 선고받는다. 그의 항소심에서도 유죄와 형이 유지된다.
1999년 9월, 피고인 21명 가운데 20명이 유죄를 인정했고 한 명은 재판에서 유죄를 받았다.
수사 과정에서 돈도 되찾을 수 있었다.
FBI는 현금 1,300만 달러 이상과 약 100만 달러 상당의 자산을 회수했다.
허나, 동시대 보도에 따르면 200만 달러 이상이 여전히 행방불명이었다고.
한편..
재판이 진행 중이던 1999년 2월에는 차량과 보트, 오토바이, 가구와 대형 텔레비전, 태닝베드 등 천여 점이 경매에 나온다. 그 가운데에는 벨벳 바탕의 엘비스 프레슬리 회화도 있었다. 경매 수익은 절도 피해를 보상한 보험사의 손실을 메우는 데 쓰였다.
사건이 종결되고..
세월이 흘러..
간트가 출소한다.
그는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 건설 일을 하며 재혼과 함께 가족을 만들어 지냈고, 이러한 모습이 2016년 지역 공영방송 WFAE의 인터뷰를 통해 등장했다.
그리고 그해, 자기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개봉한다.
영화 제목은 마스터마인드(Masterminds)였다.
잭 갤리퍼내키스가 간트를, 크리스틴 위그가 켈리로 분했으며, 스티브 챔버스 역에는 오언 윌슨, 그리고 매키니 역은 제이슨 수데이키스가 맡았다.
장르는 코미디였으며, 간트가 사전에 제작에 참여했다. 당시 작업복과 권총의 형태, 금고 세트와 차량의 색상 같은 세부를 설명하는 자문 역할로 말이다. 배우가 자신을 더 어수룩하고 서투른 사람으로 연기한다는 것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편..
비록 형기는 끝났어도 돈 문제까지 끝난 건 아니었다.
2022년, 지역 언론지 Charlotte Observer는 범행 25주년을 맞아 연방법원 담당자에게 배상금 납부 상황을 확인한다. 당시 간트에게 부과된 배상액은 약 381만 달러였는데, 약 20년 가까이 동안 납부한 돈은 5만 달러가 채 되지 않았다.
같은 취재에서 켈리의 배상 명령은 약 470만 달러, 미셸은 약 480만 달러로 나왔다. 관련자 14명에게 내려진 배상 명령을 합산하면 약 1,893만 달러였다.
또 2022년 기자와의 통화에서, 간트는 중장비 대여 업체에서 일하고 있으며 평범한 생활을 보내고 있노라 인터뷰한다.
자, 이야기 끝이다.
그리고 번외 보너스로..
'간트의 커뮤 대담'을 준비했다.
2017년 2월.
영어권 최대 규모의 커뮤니티인 Reddit의 r/IAmA 서브레딧(일반인부터 유명인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경험 등에 대해 Q&A를 갖는 갤러리 개념의 게시판)에 데이비드 스콧 간트의 이름으로 글 하나가 올라온다.
간트는 자신을 1997년 루미스 파고에서 거액을 훔친 사람이자 영화 마스터마인드의 실제 모델이라고 소개한다. 본인임을 증명하고자 본인의 트위터 게시물 링크도 덧붙였다.
먼저, 범행 전부터 자신이 이런 범죄를 저지를 사람이었다고 생각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간트는 이렇게 답변했다.
"그전에는 생각도 해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삶이 뒤통수를 때리는 것 같더군요. 때로는 일주일에 75-80시간씩 일했고 시급은 8.15달러였어요. 집에 거의 없었으니 가정생활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죠. 늘 일을 했고 불행했어요. 당시 나이를 생각하면 이해할 만한 일이기도 하고요. 궁지에 몰린 기분이었고, 어느 날부터 휴게실에서 회사를 털자는 농담이 그렇게 터무니없게 느껴지지가 않았죠."
이후 진지한 질문과 농담들이 댓글로 이어졌다.
한편, 간트는 이런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그냥 제 삶을 바꾸고 싶었어요. 돌이켜보면 빠르고 쉬운 방법이 언제나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죠. 제가 한 일을 권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 붙잡히지 않았더라도 권하지 않았을 거임?
"아니요... 원칙적으로는 권하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카리브해에서 사는 인생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 돈으로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이었음?
"장기적으로는 돈을 은행에 넣어두고 배를 사서 카리브해를 돌아다니며 낚시하고 다이빙하고 싶었어요. 말하자면 영구 관광객 같은 거요."
- 어떤 배를 생각했었음?
"별로 눈에 띄지 않을 만한 걸 원했어요. 작은 40피트(약 12m)짜리 트롤러 보트를 알아보고 있었죠."
- 멕시코에서 마약과 술, 성매매에다 돈을 썼음?
"어, 아니요. 지루하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당시 가진 현금으로 멕시코에서 보낸 시간은 휴가 중인 사람이라면 꽤 평범하게 할 만한 것들이었어요. 칸쿤에서 관광객이 할 만한 일들이요."
- 가장 바보 같은 소비는 무엇이었음?
"하루에 부츠를 네 켤레 산 일이요.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네요. 뭐라고 하겠어요. 그냥 멋져 보였고 충동구매 중이었으니까요."
- 행방을 알 수 없는 200만 달러는 어디 있음? 정말 얼마 안 되는 돈만 갖고 멕시코로 갔던 거임?
"어디 있는지 몰라요. 당시 제가 갖고 있었던 건 떠날 때 가지고 있던 돈과 나중에 보내온 돈뿐이었어요."
- 돈을 땅에 묻어둔 거 아님?
"아니요. 참고로 미국 지폐에는 사실 완전히 마르지 않는 잉크를 써요. 돈을 묻으면 곰팡이가 생기고 썩어서 쓸모없어질 수가 있죠."
(주: 미국 조폐인쇄국 BEP의 공식 제작 설명에는 지폐 뒷면을 인쇄한 뒤 3일 동안 건조하고, 앞면 인쇄 뒤에도 다시 건조하는 과정이 나온다. 그 설명이 잉크의 모든 화학적 성질까지 알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간트가 언급한 '완전히 마르지 않는 잉크 때문에 썩는다'는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음. 습한 곳에 묻어 손상될 수 있다는 것과 잉크가 영원히 마르지 않는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
- 범행에서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이었음?
"솔직히 말하면 그 일을 한 것 자체가 가장 큰 실수였어요. 물론 시간이 지나고 관점이 생긴 뒤에 하는 생각이지만요. 한 가지 말하자면, 비밀이 있다면 혼자 간직하는 게 가장 좋답니다. 하하."
- FBI가 가까워질 무렵에는 오히려 안도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안도했어요. 이제 일이 끝나가겠구나 싶었죠. 감옥에 갈 걸 알고 있었는데도 붙잡히는 게 스트레스를 덜어줬으니까요."
- 실제 감옥 생활은 어떠했음?
"빗자루 보관함 같은 곳에 다른 두 사람과 들어가서 매일 병원 음식 같은 걸 먹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부분은 정말 끔찍했어요. 다시 돌아오지 않게 하려면 끔찍해야 하는 곳이겠죠. 자유는 정말, 정말 소중한 겁니다."
- 교도소에서 자신을 위해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이었음?
"저 자신을 다시 만드는 일이었죠. 그러니까, 책을 집어 들었어요."
- 그 절도가 첫 범죄였음?
"실제로 첫 범죄였어요. 그전까지는 깨끗했죠."
- 자기 회사의 돈을 그만큼 훔친 사람에게 다른 고용주가 다시 일을 맡겼음?
"좋은 질문이네요.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하면 뜻밖에도 대부분의 고용주는 이해해 줬어요."
-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1,700만 달러를 훔쳤지만 형기를 마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대체 그런 말을 어떻게 꺼냈던 거임?
"그 이야기를 부드럽게 꺼낼 방법은 없어요. 처음에는 대부분 1,700만 달러라는 부분을 잘 믿지도 않고요."
- 출소 후 생활은 어떠했음?
"제 삶은 사실 꽤 평범해요. 영화가 나온다고 달라진 것도 없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아침에 일어나 일하러 갑니다."
- 영화에서 잭 갤리퍼내키스가 연기한 간트와 실제 간트는 무엇이 다르며, 어떤 장면이 정확했음?
"우선 제가 잭보다 키가 크고, 캐롤라이나 억양도 달라요. 잭도 자기가 훨씬 '멍청한 버전'의 저를 연기했다고 말해요. 실제 저는 꽤 느긋한 편이거든요. 아주 정확했던 장면 하나는 금고를 떠날 때 추는 승리의 댄스였어요."
- 켈리와 연락함?
"아니요.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도 몰라요."
- 간트 역할에 다른 배우를 고를 수 있다면 누구를 선택했음?
"모건 프리먼이요. 저처럼 차분한 데다 목소리도 훌륭하잖아요. 간식 포장지 뒷면을 읽어줘도 저는 듣고 있을 거예요."
- 영화로는 얼마 벌었음?
"돈을 받은 건 아니에요. 대신 좋은 휴가와 버킷리스트 하나를 지울 기회를 얻었죠.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별로 신나는 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평범한 제가 영화 촬영장에 가볼 기회를 얻었다니까요. 누가 싫어하겠어요? 게다가 푸드트럭도 훌륭했어요. 아침을 두 번 먹으니까 아내가 저를 호빗이라고 불렀죠. (주: 반지의 제왕 원작에서 호빗은 하루에 여러 번 식사하는 종족으로 묘사되며, 영화판에서는 두 번째 아침 식사를 당연한 끼니처럼 언급하는 장면이 유명)
- 푸드트럭에서 공짜로 아침을 한 번 더 먹었다고? 그건 규모만 작아졌지 또 트럭에서 훔친 거잖아?
- 훔친 돈도 그해 소득으로 신고해야 함? 체포된 뒤 세무 당국이 연락해 사용한 돈에 세금을 매겼었음?
"좋은 질문이네요. 간단히 말하면 전부 제 벌금에 더해졌고, 합치면 약 380만 달러가 됩니다."
- 다시 돌아가면 그때의 일을 아예 하지 않을 거임? 아니면 붙잡히지 않도록 다르게 행동할 거임?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제 삶은 완전히 달랐을 거예요. 이후 일어난 일들 덕분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죠. 출소 뒤 이곳으로 이사 오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이에요. 그리고 우리에게는 훌륭한 아이도 생겼고요. 그렇다고 해도 그때의 행동은 지금의 저와는 아주 다른 사람이 한 일이었어요. 제가 한 일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이제 와서는.. 이미 그렇게 된 일이죠."
자..
정말 이야기 끝이다.
돈이 너무 없다며 돈을 털었던 간트는, 결국 너무 많은 돈 때문에 걱정으로 나날을 보내며 목숨을 잃는 대신 죗값을 치르게 됐다.
자신이 일하던 회사와 동료를 배신하면서도, 함께 회사를 턴 이들과의 약속은 지켜질 것이라고 믿었다.
1,700만 달러를 훔치고서 승리의 댄스를 쳤던 남자는, 수십 년 뒤 사람들에게 가장 즐거운 기억이 영화 촬영장에서 아침을 두 번 먹었던 일이라 회고했다.
그렇다.
인생이라는 게 가끔은 참 이상하다.
1,700만 달러로 평생을 관광객처럼 살고 싶었던 사람.
그리고 종국에 그런 사람의 기억에 남는 것은 공짜 아침.
어쩌면..
이 사건에서 가장 이상했던 점은 '엉망진창 범죄'가 아닐지도 모른다.
계획대로 금고를 털었는데도, 원했던 삶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게 가장 이상했던 점일 것이다.
참조
<Financial Crimes Enforcement Network/1st Review of the Suspicious Activity Reporting System (SARS)>
<Associated Press/3 Plead Guilty in $17-Million Heist>
<Associated Press/6-Year Sentence For Kelly Campbell>
<Associated Press/8 held in theft of $17 million from warehouse>
<Associated Press/Key players in vault heist sentenced to federal prison>
<Associated Press/Loot from $17 million armored car heist going, going, gone>
<Associated Press/Wife of heist ringleader sentenced>
<FBI/Charlotte: Field Office History>
<Loomis US/Cash Management>
<LRM Online/LRM Exclusive Interview: David Ghantt, Real Life Thief Who Inspired MASTERMINDS Movie>
<MEL Magazine/'Can I Keep the Velvet Elvis?': The Great Hillbilly Heist of 1997> Zaron Burnett III
<U.S. District Court for the Western District of North Carolina/Norman v. Loomis Fargo & Co., 123 F. Supp. 2d 985 (2000)>
<Oxygen/How Did A Model Employee Manage To Steal More Than $17 Million In Untraceable Cash?> Jill Sederstrom
<The Bureau of Engraving and Printing/The Buck Starts Here: How Money is Made>
<The Charlotte Observer/'Like pulling teeth': Loomis Fargo bandits still owe as much as they stole 25 years ago> Michael Gordon
<The Charlotte Observer/Regular folks, big dreams and a ton of money: How the Loomis Fargo heist happened> Paige Williams
<The Washington Post/DUMB & DUMBER> Jeff Diamant
<U.S. Court of Appeals for the Fourth Circuit/United States v. Ghantt, No. 99-4383 (2000)>
<U.S. Court of Appeals for the Fourth Circuit/United States v. Guller, No. 99-4460 (2000)>
<U.S. Court of Appeals for the Fourth Circuit/United States v. Goodman, No. 00-4038 (2001)>
<WFAE/'Mastermind' Of Infamous Heist Knew It Would Be A Great Comedy. Now It Is.> Sarah De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