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범죄 역사상 가장 기묘한 수수께끼 사건
* 본 글은 단순히 범죄사건과 관련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오락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사건의 악랄한 범행성을 알림과 동시에 범죄의 연보年譜를 통한 교육에 그 목적을 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AI 요약 예고편
- 일본의 대표적 미제사건 '괴인 21면상-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의 시작부터 종결 이후까지를 시간순으로 시퀀스별 재구성한 장편 르포
- 기존 국내에 널리 퍼진 파편적 소개에서 벗어나, 일본 경찰청 백서/국회 회의록/당시 보도/NHK 장기 취재/관련 단행본과 연구 자료를 교차검증
- 사장 납치와 현금 전달 작전, 독과자 테러, 녹음된 목소리, 여우눈의 남자, 1978년 선행 협박, 주요 용의자와 각종 범인 설까지 사건 전체의 흐름과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세부를 함께 다룸
- 단순 사건 정리에 그치지 않고, 공갈 범죄&공동 범행&검거 회피 행동&도구적/표현적 동기 등 범죄심리학과 범죄학을 바탕으로 범인 집단의 구조와 동기 분석
일본 범죄역사에서 가장 기묘한 사건을 꼽으라면..
반드시 순위권에 드는 사건이 있으니..
그건 바로, '괴인 21면상-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이겠다.
이 사건은 경제 호황이 몰아치던 80년대 중반 일본에서 발생한, 유례가 없는 기업 연쇄 협박 및 식품 테러 사건이다.
그리고, 사건의 범인은 스스로를 '괴인 21면상'이라고 칭하며 지속적으로 협박문과 조롱이 담긴 편지를 보내왔다.
해당 사건은 악명과 그 기이함으로 인해 오래전부터 국내에서도 소위 일본통(?)들이 폭넓게 전파시키며 국내 공중파에서도 언급됐을 정도.
헌데,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그러한 컨텐츠들 대부분이 일본 현지의 공통된 혹은 유사 소스를 기준으로 한 일종의 '파편적 번안판'에 가깝다는 것이겠다.
하여..
이상한 옴니버스에서 이번에 좀 더 폭넓고 유력한 소스들을 바탕으로 해당 사건을 재정리해 봤다.
일본 경찰청 백서, 중의원 회의록, 유력 매체들의 수백 페이지 분량 핵심 르포 및 연재 방송물, 사건 관련 간행물들, 범죄심리 및 사회해석 자료 등을 통해 말이다.
자, 그럼 바로 시작하겠다.
정통 르포물 형식의 진행으로!
1984년 3월 18일 일요일 밤,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시.
에자키 글리코(일본 유명 대형 과자 회사)의 사장 에자키 가쓰히사는 집에서 한가로이 목욕을 하던 중이었다. 당시 42세였던 그는 2년 전 사장에 취임한 상태였고, 같은 부지에는 가족이 사는 집과 모친이 사는 집이 따로 있었다.
밤 9시 30분 무렵, 불상의 두 남성이 모친이 있는 집으로 침입한다.
현장을 조사한 수사관들의 기록과 취재를 보면, 범인들은 유리창 일부를 깨뜨린 뒤 안쪽 잠금장치를 여는 이른바 야키키리 계열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어쩌면 일본 만화 등지에서 한 번쯤 봤을는지 모르겠다. 유리에다 파편과 소음을 줄이고자 테이프를 붙이고서 물리적 충격을 가하거나 혹은 화기를 통해 가열을 줬다가 냉각을 통해 소리 없이 깨는.
그렇게 두 침입자는 에자키의 모친을 제압하고서 옆집 열쇠를 빼앗았다. 그리고 그 열쇠로 에자키 가족의 집에 침입한다.
이 대목이 조금은 묘했다.
에자키의 집에는 보안설비가 존재했는데 범인들은 창문이나 현관문을 부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경비가 약한 모친의 집으로 먼저 들어가 열쇠를 확보한 뒤, 그 열쇠로 본채에 침입한 것이다. 후일 사건을 술회한 수사관은 다음과 같이 기억했다.
"입욕 시각까지 알고 있었고 불필요한 움직임이 거의 없었습니다."
한편..
2층에는 에자키의 아내와 장녀가 있었다.
일본 경찰청의 사건 직후 공식 정리에 따르면..
복면을 쓴 범인들은 라이플과 권총처럼 보이는 물건을 들이대고는 두 사람의 손을 뒤로 묶은 뒤, 목욕 중이던 에자키를 끌어냈다. 집 밖에는 차량이 준비돼 있었고 대기 중이던 운전자도 따로 있었다.
밤 9시 36분, 결박을 풀어낸 에자키의 아내가 경찰에 신고했으며 경찰이 도착했을 때 남편 에자키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상장기업 사장이 자기 집에서 무장한 복면범들에게 납치된 사건. 그것만으로도 일본 사회가 들썩일 만했는데, 범인들이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는 몇 시간 뒤 드러난다.
자정을 넘겨 3월 19일 새벽.
오사카부 다카쓰키시에 거주하던 글리코 임원에게 범인의 전화가 걸려 온다. 범인은 어느 공중 전화박스를 지정했고, 그곳을 확인하자 타자기로 찍은 협박장이 놓여 있었다. 요구액은 현금 10억 엔과 함께 금 100킬로그램이었다.
아무리 경제 호황기였다지만, 1984년 당시 10억 엔과 금괴 100킬로그램은 분명 터무니없이 큰 액수였다. 이는 사건 당시 기준으로 금값까지 포함하면 약 12억 9000만 엔이었고, 일본 소비자물가 기준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18억 엔에 해당한다.
이날 오후 6시 23분, 에자키 자택으로 전화가 울린다.
헌데 수화기에서 들려온 것은 범인의 목소리가 아니라, 에자키 본인의 목소리였다.
"이바라키의 레스토랑 XX. 81국 7500번. 너는 앞으로 나카무라다. 혼자서 기다려라."
이 전화는 에자키가 어디선가 직접 걸고 있는 게 아니었다. 범인들이 그에게 적어준 문장을 읽게 한 뒤 미리 녹음해 둔 음성을 수화기에다 갖다 댄 것이었다.
이에 경찰이 곧바로 지정된 장소로 향했지만 범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범인들은 당일에만 몇 차례 장소를 바꾸어가며 지시를 이어갔고, 에자키의 목소리를 이용해 그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도 정작 돈을 받아 가는 자리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몸값을 준비하는 쪽에서는 범인이 언제 다시 전화할지 기다려야 했고, 경찰은 전화 한 통이 올 때마다 다음 장소로 움직였다. 헌데 정작 인질이 어디 있는지는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생존한 인질의 목소리를 이용해 다음 지시를 전달한다', 이 기묘한 방식은 이후 이 사건의 반복되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된다.
에자키가 끌려간 곳은 오사카부 이바라키시, 하천 강변 지역인 안위천 좌안의 수방창고였다. 이는 홍수 등에 대비한 물품을 쌓아두던 외딴 시설로 주변에는 인적이 뜸했으며, 2층 깊숙한 곳에는 짚으로 만든 자루와 각종 자재가 쌓여 있었다. 이곳은 저녁이면 인가도 사람 그림자도 거의 보이지 않는 강변 내 창고였다.
범인들은 감금 중 에자키에게 먹을 것과 갈아입을 옷을 가져다주기도 했고, 마지막 무렵에는 다리의 결박을 풀고 손을 비교적 느슨하게 묶은 채 자리를 비운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고 에자키가 곧장 문밖으로 뛰쳐나가 탈출을 감행했던 것은 아니다. 범인들이 그의 딸도 붙잡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해뒀기 때문.
이후 공개된 취재 기록에서 구조 직후의 에자키는 자신을 발견한 이들에게 딸이 살해당할 수 있다며 두려워했고, 동시에 가족이 무사한지를 반복해서 확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지로 아내와 딸은 앞서 언급했듯 무사히 집에 있었음. 애초에 범인들은 에자키 하나 만을 타겟으로 삼았기에)
납치 사흘째인 3월 21일 오후.
그렇게, 경찰이 범인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에자키가 스스로 빠져나왔다.
당시 그는 탈출 직후 창고를 벗어나 강 건너편에 보이던 국철 오사카 화물터미널 쪽으로 향했고,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자료마다 신고/보호 시각을 몇 분 정도 다르게 적는 경우는 있지만, 오후 2시대에 그가 구조됐다는 큰 줄기는 일치한다. 이는 납치된 지 약 65시간 만이었다.
사장인 에자키가 살아 돌아왔고 범인들은 10억 엔도, 금 100킬로그램도 얻지 못했다.
경찰은 이제 피해자의 진술을 직접 들을 수 있었고, 감금 장소와 그곳에 남은 음식 포장, 음료 용기, 의복 같은 물건도 조사할 수 있었다. 범인에게로 곧장 이어지리란 기대를 품고서 수사관들이 창고를 며칠씩이나 샅샅이 뒤졌다.
허나..
결정적인 지문이나 신원으로 이어지는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이때만 해도 누가 봐도 이제 쫓기는 쪽은 범인들이었다.
여기서 잠시..
이 대목에서부터 당대의 자료에는 범인들을 가리켜 2인조와 3인조라는 표현이 섞여 나온다. 일본 경찰청의 1985년 경찰백서는 집 안으로 들어간 복면 남자를 2명이라고 기록하면서, 에자키를 태우고 달아난 차량에는 별도의 공범 운전자가 있었노라 적는다.
감금 장소도 마찬가지. 일부 회고에는 셋쓰시라고 적힌 경우가 있으나, 경찰청 공식기록과 2024년 고베신문의 현장 재확인은 모두 오사카부 이바라키시 안위천 좌안 수방창고를 가리킨다.
에자키가 탈출 뒤 도움을 청한 오사카 화물터미널 쪽이 셋쓰시에 걸쳐 있어 혼동의 여지가 있지만, 감금 장소 자체는 이바라키시로 보는 쪽이 강하다.
한편..
에자키가 귀환하면서 수사본부가 알게 된 것들이 있었다.
먼저 자택 안으로 들어온 복면범은 두 명이었지만, 밖에서 차량을 운전한 사람이 따로 있었다는 것이다. 경찰청의 공식기록 역시 침입자 2명과 공범 운전자를 구분하고 있어, 납치 실행에는 처음부터 최소 세 사람이 관여했다.
사실, 집 안으로 침입한 두 남성의 대략적인 인상착의는 에자키가 탈출하기 전부터 경찰이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3월 20일 당시 경찰 발표를 전한 기록들을 보면 한 명은 키 약 160센티미터의 30대 중반 남성으로, 흰색 눈구멍 복면과 흰 장갑을 착용했으며 권총처럼 보이는 물건을 들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은 약 170센티미터, 40세 전후로 추정됐고 역시 흰 복면을 썼으며, 눌러 말하는 듯한 낮은 목소리가 특징으로 기록됐다. 이 두 사람에 관한 초기 정보는 에자키가 아직 감금돼 있던 때 발표됐으므로, 집에 남아 있던 가족들의 목격에서 기반한 것으로 봐야겠다.
여기서 잠시..
분명 특이하다고 여길 것이다. 두 침입자 모두 흔히 떠올리는 검은 복면이 아니라 '흰색 복면과 흰 장갑'을 맞춰 착용하고 있었다는 점이 말이다. (둘 중 한 명은 눈 부분이 하나로 트이고 입 부분도 열린 형태의 것이었다고)
당시 일본에서 흰 면장갑/작업 장갑은 흔한 물건이었고 이는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한 준비로 이해가 간다만, 한밤중의 납치범들이 굳이 흰 복면을 골랐던 이유는 지금도 확인되지 않는다.
여하튼 지건, 두 사람이 같은 계열의 위장 도구를 미리 준비해 왔다는 점만큼은 눈에 띈다.
또 당시 가족들이 목도한 '총' 역시 실제 총기였는지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한 명은 권총처럼 보이는 물건을, 다른 한 명은 공기총처럼 보이는 긴 물건을 들고 있었는데, 일부 목격 기록에서는 후자가 플라모델처럼 보였다는 표현도 남아 있다.
반면, 운전자를 맡은 세 번째 남자의 존재는 에자키가 귀환한 뒤 드러났다.
후대에 당시 수사 자료를 재구성한 기록에는 이 남성이 다른 두 사람보다 젊어 보였고, 검은 복면을 썼으며 특유의 억양으로 말을 했다는 설명이 남아 있다. 다만 그 억양을 '고치 사투리'로 언급한 자료와 '가와치/간사이 계열'로 본 자료가 엇갈리므로, 지금 와서는 특정 지역 출신으로 좁히는 것이 무리이겠다.
다시 돌아와..
해당 사건에서 가장 이상한 일은 바로 그다음부터 시작된다.
범인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그러니까..
에자키가 탈출한 뒤에도 협박질이 끝나지 않았다.
4월 2일 그의 집으로 다시 협박장이 도착했다. 이번에는 6,000만 엔을 요구하며 4월 8일까지 돈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처음의 10억 엔과 금 100킬로그램에 비하면 액수는 크게 줄었지만, 중요한 것은 액수가 아니었다. 인질은 이미 스스로 탈출해 집으로 돌아왔고 몸값 거래는 사실상 실패했다. 보통의 유괴 사건이라면 범인 입장에서도 이제 숨어야 할 시점이었다.
헌데 이들은 그 반대였다.
그리고 4월 8일.
이번에 범인들은 전혀 새로운 상대에게 접근한다.
바로, 신문사였다.
매일신문과 산케이신문 오사카본사 등에 한 통의 괴문서가 도착했다. 앞서 회사와 가족에게 몰래 돈을 요구하던 협박장과는 성격부터 달랐다. 이번에는 경찰에게 보내는 공개 도전장이었고, 마치 처음부터 신문에 실려 세상 사람들이 읽을 것을 의식한 듯한 내용이었다.
첫머리는 이랬다.
けいさつの あほども え
직역하자면, '경찰의 바보들에게'였다.
자..
여기서 실제 원문을 그냥 표준어에 맞춰 번역하면 이 편지의 '이상한 맛'이 상당 부분 사라진다.
문장 전체에 '뭐 하고 있냐', '~라면', '우리', '가르쳐주마', '없다', '샀다'에 해당하는 간사이 방언형이 반복되고 있었고, 철자와 띄어쓰기까지 마치 누군가 말하는 소리를 그대로 타자기로 옮긴 것처럼 인위적으로 흐트러져 있었다.
따라서 다음의 번역문은 일본의 간사이와 한국의 특정 지역을 동일시한다는 뜻이 아니다.
일본 독자가 원문에서 느끼는 거칠고 능청스러운 지역색을 한국 독자도 어느 정도 체감할 수 있도록 사투리의 말맛을 살렸고, 원문의 또 다른 특징인 '일부러 소리 나는 대로 쓰기', '한 단어 안에서도 한자와 히라가나를 기묘하게 섞어 쓰기', '비정상적으로 잘게 띄어쓰기' 역시 제한적으로나마 맛을 살려서 옮겼다.
경 찰의 바보들 한테
니들 바보가?
사람은 그리 많이 있으면서 뭐 하고 있는데.
프로라 카면 우리 한번 잡아 봐라.
니들이 너무 불리 하니까 힌트 좀 갈차 주께.
에자키 집 안에는 우리 패 없다.
니시노미야 경 찰에도 우리 패 없다.
수 방조합에도 우리 패 없다.
우리가 쓴 차는 회색이다.
묵을 거는 다이에(주: 일본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에서 샀다.
더 갈차 줬으면 싶으면 신 문으로 부탁 해라.
이만큼이나 갈차 줬는데도 못 잡으면,
니들은 세 금 도둑이다.
현 경 본부장이라도 한번 납치 해주까?
이렇듯..
원문은 상당히 짙은 간사이 사투리로 쓰여 있었을 뿐 아니라, '신문(新聞)'을 '新ぶん', '세금(税金)'을 'ぜい金', '수방조합(水防組合)'을 '水ぼう組あい'처럼 한 단어 안에서도 한자와 히라가나를 뒤섞고, 단어 사이를 유난히 많이 띄어놓는 기묘한 표기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1994년 쓰쿠바대의 언어학자 하가 준이 사건 당시 협박문 6통을 분석한 결과, 이 첫 도전장은 모두 223자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중 한자는 겨우 15자였다. 대신 단어 사이에는 35개의 공백이 들어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건 그냥 간사이 사람이 평소 말투대로 쓴 편지였을까?
그렇게 보기에도 조금 이상하다.
사적인 편지도 아니고, 신문에 공개될 것을 뻔히 아는 범죄자의 도전장이다. 헌데 범인은 굳이 말소리를 그대로 옮긴 듯한 사투리와 유치해 보일 만큼 많은 히라가나, 비표준적인 표기와 과도한 띄어쓰기를 반복했다.
마치 자기 정체를 숨기는 것과 동시에, 세상에 들려줄 '괴상한 목소리' 하나를 따로 만들어낸 것처럼 보인다.
허면, 이를 통해 범인이 진짜 오사카나 간사이 토박이라고 판단할 수가 있을까?
그건 또 아니다.
언어학적으로 문서만 보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글쓴이가 간사이 방언을 상당히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정도겠다. 그곳에서 태어나 평생 사용한 사람인지, 오랫동안 간사이에 살아 익숙해진 사람인지, 아니면 수사에 혼선을 주려고 능숙하게 흉내 낸 것인지는 구분할 방법이 없겠다.
하지만 떠올려보자.
범인들은 이미 얼굴을 복면으로 가리고 차량을 바꿔 사용했으며, 납치 다음 날 현금 전달 지시에서는 에자키 자신의 음성을 미리 녹음해 전화로 틀어주는 식으로 본인들 목소리까지 감췄다. 따라서 편지의 말투라고 해서 반드시 범인의 실제 출신지를 그대로 보여준다고 믿을 이유도 없다.
한편..
이런 문체는 첫 도전장에서 끝나지 않았다.
뒤이어 오는 여러 협박장과 도전장에서도 비슷한 간사이 방언형, 독특한 히라가나 사용, 이상한 띄어쓰기와 철자 습관이 반복됐다. 언어학자 하가는 여섯 문서의 형식과 내용에서 공통점이 상당히 많다는 점을 근거로, 적어도 문장의 기본 골격은 여러 범인이 제각각 만든 것보다 '한 명의 주된 작성자가 만들어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결국, 범인의 고향은 알 수가 없다.
허나 한 가지는 꽤 분명해 보인다.
이들은 경찰에게 돈만 요구하려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어떤 목소리로 세상에 기억될 것인지까지 신경 쓰고 있었다.
첫 도전장에 적힌 '힌트'가 진짜인지, 아니면 거짓말을 섞은 것인지는 당시 경찰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변화는 따로 있었다.
지금까지 범인들이 상대(?)해 것은 에자키와 에자키가 사장으로 있던 글리코(일본 유명 대형 과자 회사), 그리고 자신들을 뒤쫓는 경찰이었다. 전화와 협박장도 기본적으로 그들 사이에서 오갔다.
헌데 이번에는 달랐다.
범인들이 스스로 신문사를 찾아가 자기 목소리를 밖으로 꺼내기 시작한 것이다. 경찰을 공개적으로 조롱하고, 일부러 사건의 '힌트'까지 흘리면서 그 내용을 수많은 독자가 읽도록 만들었다.
이제 사건은 더 이상 범인과 경찰만의 숨은 싸움이 아니었다. 언론이 무대로 입장했고, 그 순간부터 일반 대중도 범인들이 만들어낼 '괴인 21면상'을 앞에 두고서 쇼의 관객이 되기 시작했다.
첫 도전장으로부터 불과 이틀 뒤인 4월 10일 밤.
말로만 경찰을 놀리던 범인들이 행동을 감행한다. 오사카의 글리코 본사 시제품실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같은 날 관련 회사 주차장의 차량에도 화재가 있었다. 에자키 사장이 살아 돌아왔으니 사건도 끝났으리라는 기대와 정반대였다.
4월 12일 경찰청은 이 일련의 범죄를 경찰청 지정 제114호 사건으로 지정했고, 4월 16일에는 오사카부 이바라키시에서 협박문과 함께 염산이 든 플라스틱 용기까지 발견됐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이것은 사장을 납치해 돈을 요구한 유괴사건이었다. 이제 방화와 함께 위험물이 등장하고 언론엔 공개편지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4월 23일 아침.
두 번째 도전장이 발견된다.
내용은 여전히 경찰을 조롱하는 식이었다. 왜 첫 도전장을 숨겼느냐, 거짓말은 도둑질의 시작인 것 아니냐며 비아냥거리면서, 자신들이 공장에 들어간 방법과 편지에 사용한 타자기에 관한 '힌트'를 또다시 던졌다.
한편..
해당 편지 마지막에 처음 보는 서명이 붙어 있었다.
かい人21面相
'괴인 21면상'.
일본 추리소설계의 대표적 거장 에도가와 란포가 1936년 발표한 <괴인 20면상> 속 악역에서 숫자 하나를 더한 이름이었다.
원작의 괴인 20면상은 스무 개의 얼굴을 가졌다고 할 만큼 변장에 능한 괴도로, 범행을 미리 예고한 뒤 보석이나 미술품을 훔치고 명탐정 아케치 고고로와 소년탐정단을 상대로 대결을 벌이는 인물이다. 특이하게도 피를 보는 것을 싫어해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녔다.
그런 캐릭터의 이름에 숫자 하나를 더해, 사건의 범죄자들이 자신들을 '괴인 21면상'이라 칭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후 하나의 브랜드에 가까운 범인들의 얼굴이 된다.
다음 날인 4월 24일.
범인들은 언론에 도전장만 보내고 있던 게 아니었다. 그와 별개로 글리코를 상대로 또 하나의 현금 거래(?)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 무렵 글리코 상근감사역의 집으로 별도의 협박장이 도착해 있었다. 요구액은 1억 2,000만 엔. 여기서 범인들은 24일 밤에 글리코 본사의 운전기사 한 명이 승용차를 몰고 도요나카의 한 레스토랑으로 돈을 가져오도록 지시하고 오후 7시 30분쯤 다시 연락하겠다고 했다.
글리코 측은 즉각 이를 경찰에 알렸고, 경찰은 이번에는 범인을 현장으로 끌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고 판단했다. 요구에 응하는 척 현금 전달 작전을 벌이기로 하고서 지정된 레스토랑과 그 주변에 수사관들을 배치했다.
그리고 약속한 시각.
감사역의 집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헌데..
수화기에서 흘러나온 것은 성인 남성의 육성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30-40대 여성의 것으로 추정된 녹음 음성이었다.
"명신고속도로를 시속 85킬로미터로 달려 스이타 서비스에어리어까지 가라."
이것은 미리 녹음한 음성을 전화기 수화기에 대고 일방적으로 틀어놓은 것이어서, 상대가 무슨 말을 해도 그저 준비된 지시가 계속 재생될 뿐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실지로 당시 음향분석 관계자 역시 문제의 이 녹음 전화가 상대의 말과 상관없이 끝까지 일방적으로 흘러나오던 장면이 유난히 기괴했다고 회고한다.
그렇게..
돈을 운반하던 기사는 지시에 따라 스이타 서비스에어리어로 향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범인을 만날 수 있던 게 아니었다. 다시 다음 장소를 알려주는 지시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것을 따라가면 또 다른 장소가 나왔다.
범인은 처음부터 돈을 받을 최종지점을 알려주지 않은 채, 현금 운반역을 이곳저곳으로 계속 이동시켰다. 마치 에자키 납치 직후의 몸값 전달 때처럼 말이다.
경찰은 그 경로 어딘가에서 범인이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렸지만..
결국, 이날도 범인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여기서 잠시..
사건으로부터 27년 뒤인 2011년, NHK 취재팀이 문제의 녹음테이프를 새로운 장비로 다시 분석하자 전혀 다른 가능성이 제기됐다.
녹음테이프 속 음성이 기존의 30-40대 여성이 아닌,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정도의 소녀로 추정된다는 것이었다.
허면..
당시 그 아이는 누구의 딸이었을까?
범행에 관해 알고 있었을까?
어른이 내민 종이를 아무것도 모르고 읽었을 뿐일까?
현재까지도 알 도리가 없다.
목소리를 녹음했다는 사실이 곧 그 아이가 범죄의 전모를 알고 있는 공범이었다는 뜻도 아니므로.
다시 돌아와..
시간이 흘러 그렇게 5월이 왔다.
5월 10일, 괴인 21면상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위험한 카드를 꺼내 든다.
여러 언론 앞으로 새로운 도전장을 보내며 자신들이 글리코 제품에 시안화나트륨을 넣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편지에는 더 많은 '독과자'를 뿌리겠다는 위협이 이어졌고, '글리코를 먹고 묘지로 가자'는 식의 섬뜩한 문구까지 등장했다.
가난한 경 찰관들 한테
거짓말은 도둑질의 시작이라 캤는데, 그거 틀렸다.
경 찰의 거짓말은 강 도질의 시작이었다.
저번 전 화, 멀리서 건 거를 또 숨기고 있제.
또 경 찰에서 강 도 나오겠네.
글리코는 건방지니까, 우리가 말한 대로
글리코 제 품에 시안화나트륨 넣었다.
0.05그램 넣은 거 2개,
나고야하고 오카 야마 사이 가게에 놔뒀다.
죽지는 않겠지만 입 원은 할 기다.
글리코 묵고 병 원 가자.
열흘 지나면 0.1그램 넣은 거 8개,
도쿄하고 후쿠오카 사이 가게에 놔둘 기다.
또 열흘 지나면 0.2그램 넣은 거 10개,
홋카이도하고 오키나와 사이 가게에 놔둘 기다.
글리코 묵고 무 덤 가자.
괴인 21면상
(주: 범인들은 앞서 언급했듯 4월 23일 두 번째 도전장에서 왜 첫 도전장을 숨겼느냐, 거짓말은 도둑질의 시작인 것 아니냐며 비아냥거렸을 당시 '니들 거짓말하면 안 된다. 거짓말은 도둑질의 시작이다.'라고 썼었다. 이 5월 10일 편지에서는 당시의 말을 끌어와 비틀어서 '거짓말은 도둑질의 시작이라 캤는데, 내가 틀렸다. 경찰의 거짓말은 강도질의 시작이었다.'라고 언급한 것)
첫 도전장에서 보았던 그 기묘한 문체는 그대로였다.
실제 원문에서 '경찰관(警察官)'을 'けいさつ官', '강도(強盗)'를 'ごう盗', '제품(製品)'을 'せい品', '입원(入院)'을 'にゅう院', '병원(病院)'을 'びょう院', '묘지(墓場)'를 'はか場'처럼 한 단어 안에서 한자와 히라가나를 뒤섞어 썼다. 첫 단어인 'まづしい'부터 표준적인 'まずしい'와 다른 비표준 표기였다.
헌데, 내용의 수위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4월의 도전장이 경찰을 놀리고 '힌트'를 던지는 장난스러운 도발이었다면, 이제는 몇 그램의 시안화나트륨을 몇 개의 상품에 넣어 어느 범위의 가게에 두겠다는 식으로 불특정 소비자의 생명을 직접 위협하고 있었다.
이제 범행의 대상은 에자키 사장이나 글리코 직원만이 아니었다.
글리코 과자를 사 먹는 사람 누구나 될 수가 있었다.
회사와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범인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즉시 확인할 방도도 없었다. 그렇다고 어차피 허풍일 것이라며 제품을 계속 팔 노릇도 아니었다. 단 하나라도 진짜라면 사람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상품이 진열대에서 빠지고 생산에도 차질이 생겼다. 협박장 한 통만으로 상품의 안전성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어디까지나 범인들이 '제품에 시안화나트륨을 넣었다'고 주장한 것이지, 매장에서 실지로 시안화나트륨 혼입 글리코 제품은 발견되지 않는다.
범인들은 계속해서 돈을 요구했다.
5월 말, 글리코 측에 다시 3억 엔을 요구하면서 6월 2일 밤 지정한 장소로 돈을 가져오도록 했다. 경찰은 이번에는 범인들이 실제로 돈을 받으러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오사카부 셋쓰시의 불고깃집 '다이도몬' 주차장에 현금을 실은 흰색 승용차를 준비하고 주변엔 수사관들을 매복시켰다.
헌데, 역시나 범인들은 경찰이 예상한 방식을 벗어났다.
그날 밤, 다이도몬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요도가와 제방에 승용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차 안에는 직장동료이자 교제 중이던 22세 남성과 18세 여성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차창 틈으로 총신처럼 보이는 물체가 들어왔다.
남성은 불과 1년 전까지 자위대에 복무하며 64식 소총을 다뤄본 사람이었다. 그는 훗날 당시 상황을 회고하면서 처음에는 장난인가 싶었지만, 총구가 점점 안쪽으로 들어오자 곧 위험을 느꼈다고 했다.
남성이 왼손으로 총신을 붙잡은 채 밖으로 나가 저항하자 기다리고 있던 범인들이 덤벼들었다.
세 명이었다.
모두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이 두 피해자의 진술 등을 토대로 종합한 인상착의에 따르면, 한 명은 30세 전후에 키 약 168센티미터로 검은 털모자와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렸고, 다른 한 명은 25세 안팎의 마른 체형으로 복면을 한 채 과도를 지니고 있었다. 나머지 한 명은 25-30세 정도로 추정됐으며 낮은 목소리가 특징이었다.
다만 이들은 얼굴 대부분을 가린 상태였으므로, 이러한 목격담은 어디까지나 추정치에 기반한 것이덨다.
한편..
남성은 전직 자위관이었고 힘에도 자신이 있었다. 허나, 상대는 세 명이었다. 격렬한 몸싸움 끝에 제압당했고 훗날 경찰에 확보됐을 당시 얼굴에는 구타의 흔적이, 왼쪽 팔에는 큰 상처가 남아 있었다.
범인들은 여성을 따로 붙잡아 인질로 삼았다. 그리고는 남성에게 선택지를 줬다. 여자 친구를 무사히 돌려받고 싶으면 자신들이 시키는 대로 하라면서 말이다.
그 지시라는 게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다이도몬 주차장으로 가서 글리코가 준비해 놓은 흰색 차량을 넘겨받아, 그 안의 3억 엔과 함께 다시 이곳으로 가져와."
즉 괴인 21면상은 경찰의 매복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대신, 길에서 우연히 만난 일반 시민 하나를 '현금 수령책'으로 만들어 범죄 현장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남성은 하릴없이 지시에 따라 다이도몬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미 경찰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성이 지시서를 내밀어 글리코 측이 준비한 차량을 넘겨받고 출발하자, 수사관들 눈에는 마침내 괴인 21면상 일당 한 명이 직접 돈을 가지러 나온 것처럼 보였다.
경찰은 차량을 추적해 멈춰 세우고는 남성을 확보한다.
헌데, 붙잡고 보니 이야기가 이상했다.
남성은 다급하게 자신은 글리코 사건과 아무 관계가 없으며, 함께 있던 여자 친구가 붙잡혀 있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움직였을 뿐이라 설명했다.
자신의 차량을 범인들이 가져갔으며, 여자 친구는 아직 그들에게 붙잡혀 있어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위험하다며 남성은 경찰 차량 안에서 반복했다.
허나, 경찰 입장에서는 당장 그 말을 무턱대고 믿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경찰은 남성에게 빼앗긴 차량의 번호를 대보라고 물었지만 남성은 대답하지 못했다.
어째서 자신의 차량 번호를?
왜냐하면, 당시 남성은 극도의 공포 상태였던 데다 공교롭게도 중고차를 산 지 약 2주 정도밖에 되지 않아 번호가 아직 머릿속에 익지 않았던 것.
따라서 경찰은 남성의 주장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해야만 했다.
그 사이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남성이 약속한 시각까지 돌아오지 않자 범인들은 이변을 눈치채고는 여성을 데리고 그대로 현장을 벗어났다.
후대 자료에 따르면, 범인들은 결국 여성을 풀어주고는 귀가할 택시비 명목으로 2,000엔까지 건넸다고 한다. 그렇게 그녀 역시 무사히 돌아왔고, 두 사람의 진술을 대조한 결과 남성이 괴인 21면상과 아무 관계가 없는 피해자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결론적으로..
범인들은 달아났다.
그나마 다행인 건, 범인들 역시 3억 엔을 챙기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허나, 해당 사건의 의미는 단순히 현금 탈취 실패에 있지 않았다.
괴인 21면상은 이제 자기 대신 전혀 관계 없는 사람을 경찰 앞으로 보내는 수법까지 사용하기 시작했다.
허면 경찰 눈앞에 돈을 가지러 나타난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이 진짜 범인인지 아니면 어딘가에서 가족이나 연인을 인질로 잡힌 또 다른 피해자인지 곧바로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몇 주 뒤..
바로 이 경험으로 인해, 마루다이식품의 현금 전달 작전에서 경찰이 눈앞의 수상한 남자를 즉시 붙잡지 않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한편..
그동안 글리코가 입은 타격은 단순히 몇 차례의 현금거래 실패로 끝나는 수준이 아니었다.
5월 10일 괴인 21면상이 '글리코 제품에 시안화나트륨을 넣었다'고 선언한 뒤, 실제 독과자가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유통업체들은 제품을 진열대에서 걷어내기 시작했고 회사는 생산과 광고 활동까지 크게 위축받을 수밖에 없었다.
범인들이 노린 효과는 거의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괴인 21면상의 도전장은 아사히/마이니치/요미우리/산케이 등 주요 신문사들로 직접 보내졌고, 그 내용이 보도되자 바로 다음 날부터 다이에/자스코/니치이/이토요카도 같은 대형 유통업체들이 글리코 제품을 매장에서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글리코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5월 13일에 전국지와 지방지에 사건에 대한 회사의 입장과 유통업체에 대한 부탁을 담은 '근고(謹告)' 광고를 냈고, 다음 날 에자키 사장은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회사가 숨기고 있는 것은 없노라 밝혔다.
괴인 21면상은 자신들의 편지가 신문에 실리고, 그걸 읽은 유통업체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까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듯하다.
며칠 뒤에는 아예 '다이에 사장에게'라는 제목의 새 도전장까지 보냈다. 먼저 글리코 제품을 매장에서 철수한 것을 두고 '안 팔아서 잘했네. 나중에 알게 될 거다'라며, 마치 실제 독과자가 있었기 때문에 다이에가 화를 피했다는 듯 비꼬았다.
헌데, 바로 이어서 정반대의 요구를 했다. '우리도 곤란하다. 어딜 가도 글리코가 없다. 빨리 가게에 다시 놔라.'라는 것이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앞으로 시안화나트륨을 넣은 제품 8개를 더 매장에 놓아야 하는데, 유통업체들이 글리코 제품을 몽땅 철수해 버리는 바람에 독과자를 정상품 사이에 섞어놓을 수가 없다는 것.
심지어, 처음 다시 글리코 제품을 진열하는 슈퍼나 백화점에는 '8개 가운데 5개를 서비스해 주겠다'는 식의 협박까지 덧붙였다.
이렇듯 범인의 괘씸한 행각이 이어지면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느 제품이 안전한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이들 범인의 주장 자체가 이미 상품 전체를 의심하게 만드는 효과를 내고 있었다.
한편..
그런 상황에서 글리코 본사로 작은 엽서 한 장이 도착한다.
보낸 사람은 시가현에 살던 도모코라는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였다.
도모코는 자신이 원래 글리코 과자를 무척 좋아하지만, 범인이 독을 넣었다고 해서 요즘은 과자를 살 수 없어 슬프다는 이야기를 어린아이의 글씨로 적었다. 그리고 범인이 빨리 붙잡혀 다시 글리코 과자를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글리코는 해당 엽서를 그냥 사내에서 돌려보고 끝내지 않고서, 6월 24일 일요일 아침 전국 주요 신문에 지면 일곱 단을 차지하는 커다란 광고를 냈다.
제목은 '도모코야, 고마워. 글리코는 힘낼게.'였으며, 도모코가 직접 쓴 엽서도 함께 실렸다.
'우리 과자는 안전합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한 아이의 '다시 과자를 먹고 싶다'는 응원에 답하는 형식으로 최선의 방책을 구사한 것이었다.
사실..
도모코의 엽서가 광고에 실린 것은 즉흥적인 결정은 아니었다.
훗날 당시 글리코 광고부장의 설명에 따르면 도모코는 실제로 글리코에 응원 엽서를 보낸 초등학생이었고, 회사는 그 엽서를 광고에 사용하기 위해 본인과 가족의 동의를 받았다. 광고 역시 6월 24일 게재 직전에 급조한 것이 아니라 약 한 달 전부터 기획하고 있었던 것.
그렇게 해당 광고가 신문 지면에 실린 지 불과 이틀 뒤.
괴인 21면상에게서 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이 편지도 첫 도전장과 마찬가지로 원문에는 짙은 간사이 말투뿐 아니라, 단어를 이상하게 띄어놓고 한자 대신 히라가나를 끼워 쓰거나 말소리에 가까운 형태로 적는 범인의 독특한 표기 습관이 그대로 남아 있음. 따라서 아래 번역문도 일본 독자가 원문에서 느끼는 거칠고 능청스러운 말맛을 살리고, 불필요할 정도로 잘게 끊긴 단어와 소리 나는 대로 적은 듯한 느낌까지 가능한 범위에서 옮김)
전국의 팬(주: 글리코 팬) 여러 분 한테
우리도 이제 슬슬 질려 간다.
사장이 머리 숙이고 여기저기 댕기더라.
남자가 저렇게 머리 숙이고 댕기는 긴데,
이쯤 하면 용서해 줘도 되지 않겠나.
우리 패 중에 4 살짜리 애가 하나 있는데,
맨 날 글리코 먹고 싶다 카면서 울고 있다.
우리도 요새는 안 묵지만,
옛날에는 참 많이 묵었다.
애 울리면 안 되제.
맛있는 묵을 거 없어지면
우리도 곤란하다.
에자키 글리코, 용서해 주께.
슈 퍼도 이제 글리코 팔아도 된다.
시 안화나트륨 든 초콜릿 18 개는
다 태워 버렸다.
1 개는 5월 9일
다이에 이바라키 점에 놔뒀다.
어찌 됐는지는 모른다.
1 개는 다른 가게에 놨다가
5월 18일 다시 가져왔다.
일본도 후텁지근해지고 있다.
일 하나 끝내고 나면
유 럽에 갈 생각이다.
취리히, 런던, 파리.
그 셋 중 어딘가에 있을 기다.
경 찰도 수고했다.
이걸로 기죽지 말고 계속 열심히 해라.
홈즈 군이 와도 우리한테는 못 이긴다.
괴인 20면상이나 읽어 보면
머리가 좀 좋아질 기다.
경 찰의 유 럽 투어
괴인 21면상 잡으러
유 럽에 가자.
여행길 친구는 글리코 포키(주: 한국의 빼빼로의 원조격 제품으로 글리코의 대표적인 스낵).
나도 묵고 있다.
맛있는 글리코.
괴인 21면상
내 년 1월에 돌아오마.
'글리코를 용서한다'고 선언한 괴인 21면상.
허나..
이는 종전 선언도 휴전 선언도 아니었다.
사실 이 '용서 편지'가 도착하기 나흘 전인 6월 22일..
다른 식품 회사 앞으로 새로운 협박장이 도착해 있었다.
그렇다.
범인들이 글리코를 용서(?)한 이유는 범죄를 그만두려고가 아니라 이미 다음 회사를 골라놓았기 때문이었다.
1984년 6월 22일.
오사카부 다카쓰키시에 본사를 둔 마루다이식품 앞으로 협박장이 도착한다. 글리코와 같은 꼴을 당하고 싶지 않으면 5,000만 엔을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범인들은 거래에 응한다는 표시로 신문에 파트타임 직원 모집 광고를 내도록 지시했고, 회사는 경찰에 신고한 뒤 요구에 따르는 척하기로 한다.
6월 28일 저녁.
5,000만 엔이 준비됐지만 돈가방을 든 사람은 마루다이 직원이 아닌 직원으로 위장한 오사카부경 수사관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또다시 녹음 음성이 등장한다.
후대 사건기록과 당시 수사 자료를 재구성한 기록들에 따르면, 범인은 여성의 것으로 들리는 녹음된 음성으로 다음 지시 장소를 알려왔다. 이에 따라 다카쓰키의 한 버스정류장 관광 안내판 뒤를 확인하자 또 다른 지시서가 나왔다.
이번 지시서 내용은 국철 다카쓰키역에서 교토 방향 완행열차를 타라는 것이었다.
지정된 자리에 앉아 진행 방향 왼쪽 창문을 열어두고 선로를 보다가, 흰 깃발이 보이면 5,000만 엔이 든 가방을 밖으로 던져라
이날은 비가 내렸다.
후대 NHK 취재에서 당시 현금 운반역을 맡았던 수사관은 선로변의 흰 깃발을 실제로 봤노라 회고했다. 허나 가방은 던지지 않았다. 그대로 내던졌다가는 범인이 돈만 회수하고서 사라질 수 있었기 때문.
오히려, 수사관은 기지를 발휘해 안경을 벗어 빗물에 젖은 렌즈를 닦으며 깃발을 보지 못한 척했다고.
그렇게 조용히 수싸움이 시작됐을 무렵..
함께 열차에 타고 있던 특수반 수사관들의 시야에 오히려 객실 안의 한 남성이 걸리기 시작했다.
한 명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었다. 후대 NHK 취재에 따르면 당시 이 남자를 목격한 오사카부경 특수반 수사관은 모두 7명에 이르렀다고.
남성이 수상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남성은 현금 운반역의 움직임을 줄곧 살피고 있었다. 수사관들의 훗날 증언으론 그가 차량 연결부 근처에 멈춰 현금 운반역을 뚫어지게 바라보는가 하면, 우산 끝으로 열차 바닥을 두드리기도 하고, 손바닥 위에서 동전을 굴리거나 손목시계를 한쪽 손목에서 다른 쪽으로 옮겨 차는 등 이상하게 눈에 띄는 행동을 반복했단다.
한편..
무엇보다도 수사관들의 당시 뇌리에 이 남성의 얼굴이 강하게 남았다고 한다.
특히나, 가늘고 위로 올라간 눈이 말이다.
그것은, 훗날 일본 전체가 보게 되는 바로 그 얼굴이었다.
수사관들은 이 충분히 수상쩍은 남성을 당장 세워 신원을 확인할지 고민한다.
문제는..
불과 몇 주 전인 6월 2일, 이미 한 차례 크게 데인 경험이 있었다는 것.
당시 경찰은 현금을 가지러 나타난 남성을 붙잡고도, 그가 괴인 21면상의 일원이 아니라 연인을 인질로 잡힌 채 억지로 이용당한 일반 시민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헌데 눈앞의 남자도 마찬가지라면?
지금 성급하게 붙잡았다가 그가 돈을 회수하라는 지시만 받은 또 다른 '도구'이거나, 범인들이 일부러 경찰 앞에 던져놓은 미끼에 불과하다면?
차라리 그대로 놔두고 뒤를 밟는다면 진짜 배후로 이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경찰은 체포 대신 미행을 택한다.
열차가 교토역에 도착했다.
현금 운반역이 플랫폼에 내려 잠시 움직이지 않자, 문제의 남성 역시 내리고도 그 자리를 뜨지 않았다. 마치, 돈가방을 든 사람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주변으론 이미 여러 명의 특수반 수사관들이 일반 승객으로 위장해 흩어져 있었다.
그 가운데 연인 행세를 하며 남자를 감시하던 수사관 한 명은 열차 안에서부터 문 유리에 비친 모습을 통해 남성의 얼굴을 계속 관찰하고 있었노라 훗날 회고했다.
한편, 플랫폼에서 남성이 급작스럽게 그 수사관 쪽으로 다가왔다. 상당히 가까운 거리로까지 좁혀졌고, 남성은 정면으로 눈을 맞추며 노려보는 듯했다.
자신을 따라붙는다고 여겨 확인하려는 것인지, 단순히 기분 나쁘게 쳐다본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수사관은 이대로 가까이 있는다면 오히려 정체를 들킬 수 있다고 판단해 무전으로 다른 팀원들에게 인계를 알리고는 한 발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다른 수사관들이 각자 거리를 유지하며 미행을 지속했고, 현금 운반역의 수사관이 교토역 가라스마 중앙 개찰구 방향으로 움직이자 남성도 그 뒤를 따랐다.
헌데, 그 따라가는 모양새가 영 평범하지가 않았다.
남성은 운반역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 벽에 몸을 붙였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 주변을 확인하고 다시 앞으로 따라붙는 행동을 반복했다.
이쯤 되자 수사관 상당수는 남성에게 분명 뭔가 있다고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현금 운반역은 개찰구를 빠져나갔다가 새 표를 산 뒤 다시 역 안으로 들어왔다.
남성은 그동안 개찰구 부근 키오스크 앞에서 그런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빨간 공중 전화 수화기를 들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도 했다.
현금 운반역이 다시 다카쓰키행 열차에 올라타자 남성도 그 뒤를 따랐다. 이쯤 되면, 우연히 동선이 겹쳤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열차 안에서 수사관들 사이에 다시금 의견이 오갔다.
"지금 잡자고! 적어도 직무질문을 하고서 신원이라도 확인하던가!"
당시 특수반 관계자들의 후일 증언에 따르면 보다 과격한 의견들도 나왔다고 한다. 예컨대, 무임승차 문제든 사소한 시비든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어 경찰서로 데려가 조사하자는 식의.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괴인 21면상의 일원이라면 이만한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알 수 없었을 테니까.
허나..
지휘부의 판단은 달랐다.
아직 이 남성이 현금에 손을 댄 것도 아니다. 단순한 연락책일 수도 있고, 아니면 범인들이 경찰의 대응을 시험하고자 일부러 붙여놓은 미끼일 수도 있다. 지금 성급히 잡았다가 신원을 물어도 입을 다물어버리면 거기서 끝이다.
반대로, 계속 미행을 지속하면 어쩌면 다른 일당이나 아지트까지도 도달할 수 있다.
그렇게 지휘부의 결론은..
'붙잡지 말고 계속 따라가라'로 결정된다.
완행열차는 다시 다카쓰키역으로 들어왔다.
현금 운반역의 수사관은 여기서 개찰구를 빠져나갔다.
이쯤이면..
작전도 사실상 끝난 셈이었다.
돈가방은 던지지 않았고 따라서 범인이 돈을 회수하는 시도도 없었다. 함께 열차에 타고 있던 수사관들 역시 하나둘 철수할 준비를 했다.
헌데..
말라 보이는 얼굴, 가늘고 위로 올라간 눈. 이른바 여우 눈의 남성이 운반역을 따라나서지 않았다. 남성은 운반역이 개찰구 밖으로 완전히 나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뒤, 몸을 돌려 다시 교토행 열차가 들어오는 승강장으로 향했다.
여기서 수사관들의 의심은 짙어질 대로 짙어진다.
백번 양보해 우연히 같은 열차를 탔던 승객이었다면, 다카쓰키에서 내린 현금 운반역이 역 밖으로 나가는 것까지 확인한 뒤 혼자 다시 교토로 돌아갈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때까지 남성을 주시하던 수사관은 여섯 명. 그 가운데 네 명은 현금 운반역과 함께 오사카부경 본부로 복귀하고, 두 명이 남아 계속해서 남성을 미행하기로 한다.
두 수사관은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남성과 같은 교토행 열차에 올라탔다.
앞선 교토역에서 남성이 한 수사관에게 바짝 다가와 정면으로 노려본 일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더 조심해야 했다. 자신들이 경찰이라는 사실을 결코 눈치채게 해서는 안 됐다.
붙잡지 않고 말도 걸지 않는다. 그저 어디로 가는지만 확인한다. 남성이 누군가와 접촉한다면 그 상대까지 따라간다. 어딘가의 아지트로 들어간다면 그 장소를 확보한다.
이렇듯 수사본부가 원했던 것은 눈앞의 한 사람보다 그 사람 배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괴인 21면상의 전체 그림'이었다.
그렇게 다시 교토역.
열차가 멈추고 남성이 플랫폼으로 내려서자 두 수사관도 뒤따라 내렸다.
헌데, 남성은는 곧장 개찰구로 향하질 않았다. 잠시 플랫폼에 머물며 마치 반대편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정말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것인지, 뒤를 확인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미행자가 붙었는지 시험하는 것인지 수사관들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한 번 이미 자신들을 의식하는 듯한 행동을 보였었기에 섣불리 거리를 좁힐 수도 없었다.
하릴없이 두 수사관은 떨어져서 그의 움직임을 지켜봤고, 잠시 뒤 남자가 다시 움직이며 플랫폼을 벗어나 지하통로 쪽으로 향했다.
수사관들도 곧장 뒤를 따랐다.
바로 그때..
남성이 지하통로로 들어선 순간..
주변으로 사람들이 오가는 순간 잠시 시야가 끊기고 만다.
마치, 형사영화의 낡은 클리셰처럼 말이다.
두 수사관이 남성의 모습을 좇아 앞쪽과 통로, 다시 방향을 바꿔 주변 일대를 샅샅이 훑으나 이미 남성은 없었다.
한편..
사람을 놓쳤다고 해서 당장 손에 쥔 단서까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조금 전 교토역에서 남성은 현금 운반역이 개찰구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역 안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가라스마 중앙 개찰구 부근 키오스크의 빨간 공중 전화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었다.
그렇다면 아직 두 가지가 남아 있었다.
하나는, 전화기 자체였다.
괴인 21면상과 관련된 인물일 가능성이 높은 남자가 조금 전까지 직접 수화기를 잡고 있었다. 당시 미행에 참가했던 특수반 수사관은 훗날, 수화기에 지문이 남아 있을 수 있으니 감식을 넣으려 했다고 회고했다.
만약 쓸 만한 지문이 검출된다면 기존 수사 자료와 대조할 수 있고, 훗날 신원이 의심되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도 중요한 물증이 될 수 있었다.
헌데..
감식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해당 수사관의 후일 증언에 따르면, 상부의 지시로 중단됐단다. 왜 그런 판단이 내려졌는지까지는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 명확하게 확인되지가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
어쩌면 지문보다 더 직접적인 단서가 될, '그 남자는 대체 누구에게 전화했을까?'가 있었다.
범인 측 연락책에게 보고한 것이라면? 현금 운반역의 움직임을 전달한 것이라면? 그렇다면 통화 상대의 번호 하나만 알아도 그 번호의 가입자, 사용 장소, 주변 인물을 따라 또 다른 핵심 수사선이 열릴 수 있었다.
물론, 그 전화가 범행과 아무 관계 없는 개인적인 통화였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적어도 확인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허나..
당시 현장 수사관들은 공중 전화에도 언제, 어디로 전화를 걸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발신 기록이 남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날도, 그다음 날도 전전공사(당시 일본의 국영 통신 공기업)에 기록 보존을 요청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무려 약 반년 뒤. 한 수사관이 뒤늦게야 공중 전화에도 발신 기록이 남는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급히 전전공사에 확인하러 간다.
결과는..
조금 늦었다.
해당 기간의 기록은 이미 삭제된 뒤였다. 애석하게도, 공중 전화의 기록은 일정 기간 동안만 보존이 이뤄지고 있었다.
결국, 해당 작전에서 경찰이 확실하게 손에 넣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여우 눈을 한 남성의 인상착의 말이다.
그것도 잠깐 스쳐본 얼굴이 아니었다.
작전 과정에서 남성을 직접 본 오사카부경 특수반 수사관은 모두 일곱 명이었다. 교토역에서는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서 정면으로 얼굴을 마주한 수사관까지 있었다.
그래서 남성의 인상착의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남았다.
그에 따르면..
나이 35-45세, 신장 약 175-178센티미터, 테 없는 안경을 쓰고 있었으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안경 너머로 보이는 가늘고 위로 치켜 올라간 눈매였다. 머리는 가볍게 파마를 한 듯 구불거렸고 눈썹과 입술은 얇았다. 회색 양복에 셔츠와 넥타이를 갖춰 입은 차림이었으며 오른손에는 우산, 왼손에는 신문을 들고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그 눈.
수사관들은 입을 모아 가늘게 찢어진 눈꼬리가 위쪽으로 올라가 있었고, 때문에 사람을 빤히 노려볼 때 더욱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하여, 수사 내부에서는 언제부턴가 이 남성을 여우를 뜻하는 영어 FOX의 첫 글자를 따 F라고 부르게 된다.
훗날 대중에게 퍼지는 남성의 호칭은 조금 더 직설적이게 'キツネ目の男(여우눈의 남자)'였다.
여우눈의 남자를 놓치고서 다음 날인 6월 29일.
수사관들의 기억을 토대로 그의 얼굴을 그린 몽타주가 만들어지나 경찰은 곧바로 일반에 공개하지는 않는다. 아직 남성을 찾아내서 그 뒤의 배후까지 추적할 가능성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게 몽타주는 한동안 경찰 내부에서만 머문다.
그러다 약 반년 뒤인 1985년 1월 10일.
수사 진전이 없던 경찰은 결국 더는 숨겨둘 수 없다고 판단한 끝에 몽타주를 전국에 공개한다.
한편, 당시 마루다이 사건은 이 한 번의 추격전(6월 28일의 추격전) 실패로 끝이 난 게 아니었었다.
경찰이 여우눈의 남자를 눈앞에서 놓치고서 불과 며칠 뒤인 7월 3일. 마루다이 측에 재차 협박장이 도착했으니, 이번에도 돈을 준비하라는 요구였다.
범인은 마루다이 측에 7월 4일과 5일 신문에 특정 광고를 내 거래에 응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7월 6일 밤에는 이바라키시의 한 레스토랑에서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그렇게..
경찰과 마루다이가 다시 움직였다.
7월 6일 오후 8시 7분.
전화가 걸려 왔는데 이번에도 범인의 육성은 아니었다. 수화기에서 흘러나온 것은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미리 녹음한 테이프 음성이었다.
앞서 글리코 사건에서는 여성으로 들리는 음성이, 첫 번째 마루다이 거래에서도 녹음된 여성 음성이 등장하더니 이번에는 아이였다.
범인은 그 목소리를 이용해 현금 운반역에게 다음 장소를 알렸고 그곳으로 가면 또 다른 지시가 기다렸다.
다시 이동하고 또 다른 장소가 나오고..
이런 식으로 지시 장소가 네 차례나 바뀌었다.
현금 운반역과 주변 수사관들은 밤중에 범인이 정해놓은 길을 계속 따라가야 했다. 어디가 마지막 장소인지 알 수 없었고, 그 과정의 어느 지점에서 범인이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채로 말이다.
한편..
마침내 현금이 든 가방을 지정된 장소에 놓으라는 지시가 나오고서 경찰은 잠복한 채 누군가 돈을 가지러 나오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이번에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6월 28일에는 적어도 수상한 남성(여우눈의 남자) 하나라도 모습을 드러냈으나 이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전화 속 아이의 목소리와 사람을 이곳저곳 끌고 다닌 지시만 남은 채 거래는 또다시 무산됐다.
그로부터 닷새 뒤인 7월 11일.
마루다이 앞으로..
그렇다.
또 협박장이 날아왔다.
그리고 오히려 범인은 화를 내고 있었다.
'니들 대체 무슨 생각이고.'라며 마루다이 측을 몰아붙이면서, '다음에는 1억 엔으로 한다.'라고 통보를 해오기까지 했다.
이렇듯..
마루다이를 향한 두 차례의 협박 거래가 불발로 끝난 사실이 수사진 내부에만 묻힌 가운데, 세간에선 괴인 21면상이 글리코를 용서한다고 편지를 보낸 뒤 사건이 종전된 것으로만 비치고 있었다.
허나 범인들은 이미 다른 회사를 골라 협박을 이어오고 있었고, 경찰은 비밀리에 현금 가방을 들고 지정된 장소를 몇 차례씩 오가고 있었으며, 그러는 동안 수사에 대한 진전은 별다를 게 없었다.
즉, 마루다이가 괴인 21면상의 표적이었다는 사실 자체를 일반 대중이 명확히 알게 된 게 몇 달 뒤였다. 범인이 언론에 보낸 편지에서 '다카쓰키의 어느 식품 회사'를 협박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떠벌리고, 마루다이의 유명 광고문구를 비틀어 조롱하면서부터 말이다.
그렇게 범인들은 1984년 3월 글리코의 사장 에자키를 납치했을 무렵부터 끊임없이 기업들을 협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경찰들마저 조롱하듯 따돌려가면서 말이다.
그해 여름 동안 경찰은 여우눈의 남자 몽타주를 내부에 보관한 채 신원을 추적했고, 마루다이와의 비밀 거래에서 나온 전화/녹음 음성/지시서와 이동 경로를 계속해서 검토했다.
허나, 이렇다할 진전 없이 설상가상(?) 어느 순간부터 마루다이에 대한 범인의 접촉도 잦아든다.
그렇게 7월이 지나고 8월도 흘러가고..
9월 12일.
오사카의 모리나가제과 관계 사업소에 새로운 협박장이 도착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사건은 다시 한번 성격을 바꾸기 시작한다.
모리나가 측에 1억 엔을 요구하는 괴인 21면상의 협박장이 도착했다.
돈을 내지 않으면 제품에 시안화나트륨을 넣어 매장에 놓겠다는 위협이었으며, 후대의 주요 사건 자료에서는 약 30그램의 시안화나트륨까지 동봉된 채 보내졌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9월 18일.
모리나가 측 전화에서 예의 그 녹음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남자아이로 들리는 목소리였다. 헌데 단순히 장소 하나를 알려주고 끝난 전화가 아니었다. 미리 녹음된 아이의 목소리는 같은 지시를 다섯 차례나 반복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레스토랑에서 국도 1호선을 남쪽으로 1,500미터. 모리구치 시민회관 앞, 게이한혼도리 2초메 육교 계단 아래의 빈 깡통."
경찰과 모리나가 측은 지시대로 움직였다.
육교 계단 아래를 확인하자 정말로 빈 깡통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에는 다시 다음 장소를 가리키는 '게이한 모리구치시역 동쪽 출구'라는메모가 들어 있었다.
물론, 그곳에서도 끝이 아니었다.
범인은 처음부터 돈을 받을 최종 장소를 알려주지 않은 채, 현금 운반역을 모리구치 시내의 여러 지점으로 계속 끌고 다녔다. 글리코와 마루다이 때처럼 말이다.
그렇게 밤이 돼서야 준비한 1억 엔은 범인이 지시한 모리구치 시내의 장소로 옮겨진다.
경찰은 누군가가 돈을 가지러 나타나기를 기다렸으나 역시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범인은 끝내 돈을 가져가지 않았고 이날의 현금 전달(?)작전 역시 실패로 끝났다.
이틀 뒤인 9월 20일.
마이니치신문이 모리나가제과가 괴인 21면상으로 추정되는 범인에게 협박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한다.
앞서 언급했듯, 그동안 마루다이 사건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며 대중의 눈에는 괴인 21면상이 글리코 다음으로 선택한 기업이 바로 모리나가인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해당 사건명도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이라는 명칭으로 유명)
그리고 며칠 뒤..
괴인 21면상이 스스로 무대 위로 다시 올라서서는, 9월 24일 무렵 언론사들 앞으로 또 한 통의 도전장을 보내온다.
이번 편지는 모리나가 현금 전달 작전을 아예 소재로 삼고 있었다. 범인은 경찰이 레스토랑에서 모리구치까지 이동하는 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느냐며 비웃고, 직원으로 위장한 수사관 역시 행동이 너무 어색해 형사라는 티가 났다는 식으로 조롱해댔다.
심지어, 모리구치시역 앞에서 자기들과 얼굴까지 마주쳐놓고선 왜 잡지 못 했느냐고 떠벌렸다.
물론, 그 말들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실지로 범인 일당이 현장에서 수사관을 지켜보고 있었는지, 현장에 몇 명이나 있었는지, 정말 서로 얼굴을 마주쳤는지가 말이다.
헌데 경찰 입장에서는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범인은 9월 18일 작전의 진행 과정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고, 경찰이 비밀리에 벌인 현금 전달 작전 자체를 다시 언론용 '이야깃거리'로 바꾸고 있었다.
그로부터 약 2주 뒤.
범인들은 말로만 경찰을 조롱하는 차원을 넘어서서는, 9월의 협박장에서 예고했던 일을 정말로 현실에다 옮긴다.
1984년 10월 7일, 효고/오사카/교토/아이치 등지의 슈퍼마켓과 편의점에서 이상한 모리나가 제품들이 하나둘 발견되기 시작했다.
포장지 위로 붙어 있던 작은 종이 속 경고문으로 '독 들었다 위험하다', '먹으면 죽는다'와 같은 문구와 함께 괴인 21면상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당시 동시대 보도에 따르면 일요일 저녁 매장 직원이 이런 경고 표시가 붙은 제품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고, 이후 각지의 매장에서도 비슷한 제품들이 잇따라 회수되기 시작했다. 경찰은 즉시 해당 제품들을 수거해 내용물을 감정에 넘겼다.
또 허풍일 가능성도 있었다. 5월에도 괴인 21면상은 이미 글리코 제품에 시안화나트륨을 넣었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지만, 당시 일반매장에서 실제 독과자는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데, 이번에는 달랐다.
성분분석 결과 정말로 시안화나트륨이 검출됐다.
경찰청과 동시대 보도는 회수된 캐러멜/초콜릿/초콜릿 과자 등 여러 종류의 모리나가 제품에서 실제로 치명적 위해를 줄 수 있는 양의 시안화물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정리하자면..
이것은 공장에서 처음부터 잘못 들어간 원료나 생산 사고가 아니었다. 괴인 21면상이 매장에 있는 정상 제품 가운데 몇 개를 골라 현장에서 독을 넣었다는 뜻도 아니었다.
경찰청의 공식 표현은 보다 명확했다.
"범인들이 미리 시안화나트륨을 넣어 변조한 모리나가 제품을 슈퍼마켓 등의 매장에 가져다 놓았다."
범행의 구조는 대략 이랬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단, 범인들이 매장에 들어가 진열된 과자를 그 자리에서 뜯고 독을 집어넣은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시중에 정상 유통된 모리나가 제품을 별도로 확보한다. 이후 제품에다 시안화나트륨을 넣고, 겉에는 '독 들었다. 위험하다. 먹으면 죽는다'는 경고지를 붙인다.
그리고 그렇게 준비한 독과자를 다시 들고 일반 소매점으로 들어가, 정상적인 모리나가 제품들이 놓인 진열대 사이에 슬쩍 끼워놓는 방식.
다만..
포장을 어떤 방법으로 열고 다시 손봤는지까지는 끝내 일반에 밝혀지지(공개되지) 않았다.
한편 범인들은 훗날 편지에서 모리나가 제품은 기후현에서 구입했으며, 일부 독과자는 동네 아이들에게 돈을 주고 매장에 놓게 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그간 행보에서처럼 범인들과 실제 진열대에 가져다 놓은 사람조차 달랐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허나 이 역시 범인 스스로 떠벌린 내용일 뿐, 전부가 독립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동시대 외신 보도에선 일부 회수품을 두고서 독극물이 과자에 묻혀 있었다는 식으로 보도됐지만, 제품 종류가 여러 가지였던 만큼 모든 제품에 정확히 같은 수법이 사용됐다고 단정할 수도 없겠다.
여하튼 지건, 경찰 수사의 초점은 누군가 완제품을 외부에서 변조한 뒤 직접 소매점에 다시 가져다 놓았다는 쪽으로 향했다.
독과자 발견은 10월 7일 하루로 끝나지가 않았다.
경찰이 각지의 점포를 뒤지고 유통업체들도 매대에 놓인 모리나가 제품을 하나씩 확인하면서, 비슷한 경고지가 붙은 과자가 계속해서 회수됐다.
10월 9일 당시의 외신 보도를 보면 경찰이 확보한 경고 표시 제품은 13개였고, 그 가운데 11개에서 사람에게 치명적인 양의 시안화물이 검출됐다고 한다.(13개에는 슈퍼마켓에서 회수한 12개뿐 아니라 방송사로 보내진 1개도 포함)
경찰청은 1985년 백서에서, 10월 7일 이후 시안화나트륨이 든 모리나가 제품이 슈퍼마켓 등 16곳에 모두 18개가 놓였다고 기록했다. 범행 지역도 처음의 오사카/효고에 머물지 않고서 교토와 아이치, 이후 도쿄까지 확장됐다고 정리한다.
문제는..
발견된 18개가 전부라는 것을 누가 보장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직 발견하지 못한 19번째가 없다고 어떻게 확신할까. 다음번에도 범인이 독 포함이라는 경고지를 붙여줄 거라고 누가 확신할까.
바로 이 지점에서 독과자 한 개의 효과는 그 한 개로만 끝나질 않았다.
실지로 10월 9일 무렵에는 일본의 주요 유통업체들이 잇따라 모리나가 제품을 매대에서 철수시키고 있었고, 이에 따라 모리나가의 판매망 전체가 급속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범인이 정말 전국의 모든 점포에 접근할 능력이 있었는지는(의도가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허나 실제 독과자가 하나라도 나온 이상,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섣부른 추측에 소비자의 목숨을 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괴인 21면상이 직접 협박해 온 상대는 그래도 그나마 특정돼 있었다.
에자키 사장, 글리코, 마루다이, 그리고 모리나가.
헌데, 10월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그저 동네 슈퍼마켓에 들어가 진열대에서 과자 하나를 집어 드는 사람도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 일본 경찰청은 당시 이러한 변화를 '국민 전체를 인질로 잡고 사회에 도전하는 범죄'라며 강력한 어조로 평가했다.
한편..
바로 다음 날인 10월 8일.
괴인 21면상은 마이니치/요미우리/산케이/아사히 등 언론사에 또 한 통의 편지를 보내온다.
전국의 엄마들 한테
식욕의 가을이다.
과자가 맛있제.
과자라 카면 뭐니 뭐니 해도 모리나가지.
우리가 특별히 맛을 좀 내줬다.
시안화나트륨 맛이 들어가서 조금 매콤하다.
충치도 안 생길 테니 애들한테 사줘라.
그렇게 맛을 낸 과자에는
독 들었다고 적은 종이 붙여놨다.
하카타 에서 도쿄까지 가게에 스무 개 놔뒀다.
시안화나트륨 0.2그램짜리하고 0.5그램짜리,
두 종류 있다.
열흘 지나면 독 들었다는 표시도 안 한 거 서른 개 전국의
가게에 놔둘 기다.
그 뒤에 뿌릴 것도 잔뜩 준비해놨다.
기대하고 기다려라.
모리나가유업은 모리나가제과하고 다르다.
거기는 안전 하다.
괴 인21면상.
엄마 들아 알고 있나?
경 찰청의 스즈키하고 오사 카부경의 시카타하고,
효 고현경의 요시노가 우리를 못 잡으면
그만둬야 된다 카더라. 불쌍 하제.
/ ̄ ̄ ̄ ̄ ̄ ̄\
스즈키 시카타
슬슬 그만할까? 어쩔 수 없겠제.
│
원문 마지막의 しかた ありまへんな에는 하나의 말장난도 들어 있었다. 오사카부경의 시카타라는 이름과 어쩔 수 없다(仕方がない)는 말을 일부러 겹쳐놓은 것이다. (스즈키와 시카타를 잇는 선은, 일본에서 대중적인 낙서 중 하나인 우산을 표현한 것. 우산을 함께 쓰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로 따지면 썸이나 연인 관계의 둘을 나타냄)
또 오사카부경(大阪府警)을 동음의 婦警(여경)으로, 효고현경(兵庫県警)의 県警을 犬警(개 경찰)로 바꿔 적으며 경찰을 조롱하고 있다.
범인들은 사람 목숨을 놓고서 농담을 하고 있었다.
이 편지가 몰고 온 공포는 단순히 '독과자를 조심하라'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았다.
범인이 정말로 열흘 뒤에는 경고문조차 붙이지 않은 독과자를 풀어놓겠다고 선언하면서, 경찰 입장에선 그저 '독 들었음' 종이가 붙은 제품만 찾아내는 식의 사후 대처로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며칠 뒤부터 경찰도 그때까지의 단서를 대중에게 하나씩 공개하기 시작한다.
10월 11일.
경찰은 앞서 현금 전달 과정에서 범인이 사용한 두 개의 녹음 음성을 일반에 공개했다. 하나는 4월 글리코 협박 과정에서 전화로 흘러나왔던 여성처럼 들리는 목소리, 또 하나는 9월 18일 모리나가 현금 전달 지시 때 사용됐던 어린아이처럼 들리는 목소리였다.
경찰은 아예 전용 전화회선까지 설치해 시민들이 직접 이 음성을 들어보고, 혹시 목소리의 주인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제보하도록 했다.
당시 언론과 전문가들이 주목한 것은 목소리 자체만이 아니었다.
두 음성 모두 대화를 주고받는 식이 아니라, 미리 적어놓은 문장을 그대로 읽어내리는 듯한 말투였다. 억양 역시 범인들의 편지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간사이 사투리와는 달랐다. 당시 언어학자들 사이에서는 도쿄식 표준어 악센트가 상당히 자연스럽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음성이 공개되자 수사본부 앞으로 '이 사람 목소리를 안다', '비슷한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는 식의 정보가 대거 쏟아졌다.
허나, 결정적인 제보는 나오지 않았다.
사실 녹음 속 목소리가 들려준 정보에는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다. 수화기 너머 미리 녹음해 둔 음성을 재생한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한편, 훗날에는 이 목소리를 둘러싼 당시의 추정 자체도 일부 뒤집힌다.
2011년 NHK의 재취재 과정에서 최신 장비로 음성을 다시 분석한 결과, 4월 글리코 협박 때 성인 여성으로 여겨졌던 목소리는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초반 정도의 소녀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또 당시 동일한 아이의 목소리로 여겨지기도 했던 모리나가와 훗날 하우스식품 협박의 어린이 음성 역시, 재분석에서는 서로 다른 아이로 판정됐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정말 이 목소리가 어린아이의 것이었다면, 이는 범인들에게도 상당히 위험한 단서 공개였을 것이다.
생판 모르는 아이에게 돈이나 대가를 지불하고서 몇 문장을 읽게 했든, 평소 알고 지내던 아이에게 별다른 설명 없이 부탁했든, '어른이 시키는 이상한 문장을 녹음했다'는 경험 자체가 아이 입장에선 분명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었다.
더구나 몇 달 뒤 그 목소리가 일본 전국에 공개되고, 경찰이 전용 전화회선 세 개까지 열어 누구든 직접 들어본 뒤 제보하도록 진행시켰다.
따라서 범인과 아무 관계 없는 가정의 아이를 이용했다면 부모나 교사 또는 친구가 목소리를 알아볼 수도 있고, 아이 본인이 어느 날 '저거 내가 읽었던 건데'라고 말할 가능성도 있었다. 실지로 경찰은 바로 그런 효과를 노리고 음성을 공개했고 말이다.
한편, 범인들은 훗날 해당 문제를 본인들 스스로 건드리기도 한다.
1985년 1월 언론사에 보낸 도전장에서 괴인 21면상은 음성분석을 맡고 있던 일본음향연구소의 스즈키 마쓰미를 직접 지목하며, 모리나가 사건에 사용한 아이 목소리에 대해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 동료의 가족이 아닌 다른 가족을 썼다면 들통나는 게 뻔하지 않느냐'는 취지의 말까지 덧붙였다.
그리고 수십 년 뒤 이뤄진 음성 재분석 결과는 범인의 설명과 깔끔하게 일치하지 않았다. 현대 분석에선 4월의 '성인 여성' 음성이 초등학교 6학년-중학교 1학년 정도의 소녀일 가능성이 제기됐고, 모리나가와 뒤의 하우스식품에 사용된 어린이 목소리도 동일한 아이가 아니라 각각 초등학교 저학년 남아와 취학 전 아동으로 구분됐다.
결론적으로, 범인들 역시 음성 속 아이의 목소리가 신원을 추적할 수 있는 위험한 단서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끝내 유의미한 제보는 들어오지 않았다.
하나만 제외하고서.
이듬해인 1985년 5월, 한 주간지 앞으로 문제의 음성 속 소녀를 알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해당 제보는 1984년 4월 글리코 협박 전화에서의 성인 여성처럼 들리던 목소리에 대해서였다. 앞서 언급했듯 해당 음성은 분석 결과 초등학교 6학년-중학교 1학년 정도의 소녀일 가능성이 제기됐었다.
제보자가 누구였고 소녀와 어떤 관계였는지는 일반에 공개된 자료에선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제보를 토대로 어머니와 둘이 교토 시내의 한 맨션에 살고 있던 특정 여중생까지 지목됐다는 점을 보면, 단순히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막연한 신고보다는 그 소녀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진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보를 따라 일본음향연구소의 스즈키 마쓰미와 해당 주간지 기자가 교토까지 찾아갔다. 소녀에게 다짜고짜 네 목소리를 범인이 사용한 녹음 음성과 비교해 보겠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들은 학원 관련 설문조사를 하는 것처럼 접근해 자연스럽게 소녀의 목소리를 녹음한 뒤, 연구소로 돌아가 협박 전화의 음성과 비교했다.
그 결과, 성문이 상당히 비슷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협박 전화 녹음에는 주변 아이들의 소리와 함께 차량이 도로의 철제 덮개를 밟을 때 나는 특유의 타탕 하는 소리가 포함돼 있었는데, 소녀가 살고 있던 맨션 주변 역시 그런 소리가 날 수 있는 환경이었다고 한다.
허나, 거기까지였다.
아이의 목소리는 성장하면서 시시각각 변할 수 있었고, 성문 역시 동일인이라고 100% 확정할 수준은 아니었다. 해당 소녀가 본격적인 경찰 수사 대상이 됐다는 기록도 확인되지 않으며, 결국 그녀가 실제 녹음의 주인이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결국, 전국에 퍼져 나간 목소리들 가운데 범인에게까지 이어지는 실마리는 끝내 없었다.
다시 돌아와..
녹음 음성이 일반에 공개된 지 나흘째인 1984년 10월 15일.
경찰은 독과자가 발견된 효고현 니시노미야의 패밀리마트 고시엔구치점 방범 비디오에 찍힌 한 남성의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은 독과자가 발견된 10월 7일의 오전에 촬영된 것으로, 여기에 찍힌 남성은 훗날 '비디오의 남자'라고 불리게 되는 인물이었다.
이 점포에서는 앞서 '독 들었다. 위험하다'는 경고가 붙은 시안화나트륨 함유 모리나가 드롭(과일맛 사탕)이 발견됐었다. 그리고 문제의 시간대 방범 비디오에는 안경을 쓰고 야구모자를 눌러쓴 한 남성이 과자 매대 주변을 오가며, 나중엔 독과자가 발견된 쪽으로 손을 뻗는 모습까지 기록돼 있었다.
당시 경찰은 해당 남성의 신원을 찾기 위해 일반에 영상을 공개했고, 다음 날 신문에도 그의 사진이 대대적으로 실렸다. 영상 속 남자가 실지로 독과자를 진열대에 내려놓는 결정적인 순간까지 촬영된 것은 아니나, 분명 경찰이 그간 확보한 단서 중에선 분명 희망을 걸어볼 법한 것이었다.
참고로, 이 남성은 앞서 6월 마루다이 현금 전달 과정에서 수사관들이 직접 목격했던 '여우눈의 남자'와는 분명 별개의 인물이었다.
당시 경찰이 비디오의 남자에게 걸었던 기대는 상당했다.
왜냐하면..
방범카메라라는 것 자체가 지금처럼 어디에나 달려 있던 시절이 아니었으니까.
그동안 경찰에게 남은 범인의 얼굴이라고 해봐야 수사관의 기억을 토대로 한 인상착의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실제 사건 현장에 있던 용의자의 모습이 영상으로 남은 것이다.
10월 15일 경찰이 이를 공개하자 다음 날 신문들은 '비디오의 남자 공개, 사건 해결의 돌파구가 될 것인가'라는 식으로 대서특필했고, 오사카에서는 해당 사진이 실린 호외를 받으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는 모습까지 연출됐다.
당연히 경찰은 사진 몇 장을 뿌리는 선에서 멈추지 않았다.
기존의 음성녹음과 더불어 비디오 화면을 공개한 뒤 수백 건의 제보와 단서를 추적했고, 10월 하순에는 비디오의 남자 사진을 들고 오사카 일대의 집과 사업장을 직접 돌아다니는 대규모 탐문까지 준비한다.
이러한 계획의 목표 탐문 규모는 무려 320만 가구와 사업장에 달했다. 여기에 투입할 예정이던 경찰만 약 2만 명이었고 말이다.
당시 괴인 21면상의 무표시 독과자 예고로 인해 전국적으로 동원돼 있던 경찰력까지 합치면 하루 약 4만 4천 명, 즉 일본 전체 경찰관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가 사건에 투입된 것이다.
비록 10월 22일부터 시작하려던 320만 곳 전수 탐문이 일주일가량 연기되긴 했으나, 분명 경찰이 비디오 속 얼굴을 사건 해결의 중요한 돌파구로 보고 있었다는 점만은 분명하겠다.
헌데..
그토록 일본 전국에 얼굴이 퍼졌는데도 남성의 신원은 드러나질 않았다.
10월 21일에도 그는 여전히 신원 미상의 사건 핵심 인물로 남아 있었다. 경찰은 영상과 녹음 공개 이후 들어온 수백 건의 정보를 하나씩 쫓고 있었지만, 적어도 이 시점까지 영상 속 남자를 특정할 만한 결정적인 제보는 나오지 않았다.
사건이 한참 지난 뒤에 실지로 비디오의 남자와 외모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경찰 조사를 받은 인물이 있었으나, 역시 영상 속 남자라는 물증은 나오지 않았다.
다시 돌아와..
한편, 범인이 예고했던('경고문 없는 독과자 살포') 날짜가 다가오자 일본 사회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졌다.
그렇게 10월 17일.
이날 경찰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슈퍼마켓과 백화점의 과자 매대를 중심으로 대규모 경계에 들어갔다. 오사카 일대를 중심으로 1만 명이 넘는 경찰관이 투입됐을 정도였다. 며칠 뒤에는 도쿄에서도 수천 명 규모의 경찰력이 매장 경계에 동원됐다.
범인이 사용한 비대칭 수법의 무서운 점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더불어, 회사 측의 피해도 장난이 아니게 됐다.
모리나가는 상품 생산량을 줄일 수밖에 없었고 TV 광고까지 중단했으며, 10월 전반기의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30% 감소했을 정도였다. 매장에서 제품을 빼버리는 유통업체가 늘어나면서, 이제 범인이 요구했던 액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피해가 회사 앞으로 쌓여만 갔다.
여기서..
계속해서 독자의 머릿속을 헤집는 의문이 있을 것이다.
정말 사람을 죽일 생각이었다면, 처음부터 왜 '먹으면 죽는다'고 경고했던 것일까?
실지로, 사건을 두고서 사람을 직접 해하는 것보다 기업을 공포에 빠뜨리고 상품을 팔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목적 아니었겠느냐는 해석이 오래전부터 따라붙었다.
충분히 가능한 추정이다.
허나, 그것만으로 범인의 의도를 확정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죽은 사람이 없었다는 사실과, 애초부터 아무도 죽일 의도가 없었다는 말은 엄밀하게 따져 동일 선상의 이야기는 아니니까.
오히려 확실한 건, 범인은 사건 도중 무해한 피해자가 발생할지라도 자신들의 행위나 의도가 훨씬 더 중요한 것이라 여겼을 것이라는 거다.
따라서 경고를 통해 공포만 극대화하려 했을 수도 있고, 실제 위해 가능성을 남겨둔 채 회사를 압박하려 했을 수도 있으며, 혹은 그 둘을 동시에 노렸을 수도 있겠다.
모리나가에 대한 협박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11월 1일.
이번에는 모리나가유업 부사장의 도쿄 자택으로 또 다른 협박장이 배달됐다.
범인들은 자신들의 힘을 봤을 것이라며 이번에는 2억 엔을 요구했고, 모리나가 측이 응한다면 11월 5일이나 6일자 마이니치신문의 '사람 찾기' 광고란을 이용해 답하라고 지시했다.
범인들은 '지로(일본에서 흔한 남자 이름)', '모리나가', '엄마', '경찰', '악우(질 나쁜 친구)', '돈', '식사' 단어들을 집어넣어 자신들만 알아볼 수 있는 문장을 만들라고 했다. (범인들 자신=지로, 모리나가=엄마, 경찰=악우, 돈=식사)
그리고 11월 6일.
마이니치신문 아침 판에는 실제로 다음과 같은 짤막한 광고가 실렸다.
지로에게 악우는 없어졌다 어서 돌아오너라 따뜻한 식사가 기다리고 있다 엄마 치요코
마치 가출한 아들을 찾는 광고처럼 보이지만, 범인이 정해놓은 암호대로 읽으면 의미는 전혀 달라졌다. 그러니까, 괴인 21면상 앞으로 경찰은 없어졌고 돈이 준비돼 있다며 범인의 지시에 응해 다음 연락을 기다린다는 신호였다.
한편..
괴인 21면상은 모리나가만 붙들고 있는 게 아니었다.
바로 다음 날인 1984년 11월 7일, 이번에는 새로운 식품 회사인 하우스식품을 향해 협박장이 날아든다.
편지가 도착한 곳은 하우스식품 본사가 아니라 총무부장 와다 히로시의 오사카 자택이었다. 봉투 안에는 와다에게 보내는 편지와 우라카미 이쿠오 사장에게 전달하라는 별도의 협박장이 들어 있었고, 범인들은 현금 1억 엔을 요구하면서 11월 14일을 거래일로 지정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범인들이 진짜 괴인 21면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에자키 카츠히사 사장을 납치했을 당시 녹음했다는 그의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와 시안화물이 섞인 하우스 제품까지 함께 보내졌다고 전해진다.
거래일은 11월 14일이었으며, 오후 7시 30분 1억 엔을 실은 흰색 차량을 교토시 후시미구의 레스토랑 '사토' 후시미점으로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독이 바짝 오른 경찰도 이번에는 상당한 규모로 작전을 준비했다.
차량 안에는 하우스식품 직원으로 가장한 수사관들이 탔고, 주변에는 교토부경과 오사카부경 인력이 은밀히 배치됐다. 범인이 언론 보도를 보고 작전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언론사들도 보도협정에 들어가, 현금 전달 작전 자체를 당장은 보도하지 않기로 했다.
마루다이 사건에서 여우눈의 남자를 눈앞에서 놓친 지 넉 달이 넘은 시기였다. 그사이 범인들은 실제 독과자를 일반 소비자가 드나드는 매장에까지 가져다 놨다. 이번에는 놓칠 수 없었다.
그렇게 저녁 8시를 넘긴 시각.
전화가 걸려 온다.
수화기에서는 또다시 범인 본인의 목소리가 아닌, 미리 녹음해 놓은 어린아이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앞선 사건들에 봤던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이번에 아이가 읽어내린 지시는 교토 후시미구의 조난구 버스정류장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현금 차량이 그곳으로 이동해 벤치 뒤를 확인하자 정말로 다음 지시문이 놓여 있었다. 교토미나미 나들목으로 명신고속도로에 진입해 나고야 방면으로 달린 뒤 오쓰 서비스에어리어로 향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번에도 처음부터 최종 거래장소를 알려주는 방식이 아니었으며 돈을 들고 움직이는 쪽에서는 철저하게 을(?)의 입장이 된 채 언제 어디서 거래가 끝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반대로 범인이 이동 경로 어디선가 그 모습들을 지켜보고 있었다면, 현금차량 주변에 경찰이 얼마나 붙어 있는지를 여러 차례 확인할 수도 있었다.
오쓰 서비스에어리어에 도착한 수사관들의 눈에 한 남성이 포착됐다.
모자를 쓰고 안경을 낀 채 주변을 살피던 수상쩍은 인물이었는데, 가만 보니 낯선 얼굴이 아니었다. 몇 달 전인 6월. 마루다이식품 현금 전달 작전 당시 열차 안에서 위장 수사관을 계속해서 주시하던 바로 그 남자와 닮아 있었다.
그러니까, 여우눈의 남자 말이다.
서로 다른 회사, 서로 다른 현금 전달 작전, 그 사이에 흐른 시간은 약 넉 달, 그리고 흡사한 외모. 수사관들은 동일 인물이라고 판단한다.
경찰에게 지금껏 이보다 더 직접적인 단서도 없었고, 이렇듯 눈앞에 놓인 강력한 용의자도 없었다.
그리고, 이 오사카부경에서만 그 남성을 보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당시 오사카부경은 시가현경 쪽에 명신고속도로 주변 수사에 적극 개입하지 말아 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해놓은 상태였는데, 시가현경은 혹시 벌어질지 모르는 돌발 상황에 대비해 수사원 일부를 오쓰 서비스에어리어에 따로 배치해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도 이 수상한 남성을 발견한 것이다.
훗날 해당 수사원은 NHK 취재에서..
문제의 남성이 서비스에어리어 안에서 주차장 쪽을 살피다가 자신의 뒤를 누가 따라오는지 확인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으며, 벤치 부근에서는 무언가를 붙이는 것처럼 보이는 행동까지 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당시 남성이 범인 쪽 사람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들어 상부에 직무질문을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허나, 돌아온 답은 그러지 말라는 것이었다.
시가현경 수사원들은 애초부터 오사카부경의 작전에 직접 끼어들지 않고 만일의 사태만 대비하라는 조건으로 이른바 극비리에 참여 중인 인력이었다. 여기서 독단적으로 남성을 붙들었다간 당장 자신들의 존재부터 노출될 수 있었다.
비슷한 딜레마는 오사카부경 수사원들에게도 있었다.
여우눈의 남자로 의심되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 건 맞다. 그러나 아직 돈에 손을 댄 것도 아니고, 협박장을 놓는 결정적인 행동을 눈앞에서 확인한 것도 아니다.
그냥 현금 전달 현장에 나타나 주변을 살피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붙잡았다가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나오면, 그 자리에서 사건 전체를 입증하기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당시 수사본부의 목표는 눈앞의 한 사람에게 직무질문을 거는 것보다 실지로 현금을 받으러 나온 순간을 포착해, 가능하다면 그를 따라 공범과 조직 전체까지 끌어내는 것에 가까웠다.
후일 당시 오사카부경 지휘부 역시 해당 판단을 설명하면서, 수상하다는 이유만으로 너무 일찍 접촉하면 범인들이 이후 현금 수령 자체를 포기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렇게..
경찰은 다시 한번 눈앞의 여우눈의 남자를 당장 붙잡는 대신 그가 어디로 움직이는지를 지켜보기로 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부터 일이 꼬인다.
남성 역시 주변을 전혀 경계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었다. 서비스에어리어를 떠나기 시작하자 수사관 한 명이 뒤를 붙었다.
헌데 시야가 탁 트인 연결 통로 쪽으로 접어든 남성이 몇 차례나 뒤를 돌아본다. 그냥 무심코 한두 번 돌아본 정도가 아니라, 뒤에 누가 붙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반복해서 주변을 살폈다. 미행하는 쪽에서는 계속 따라붙었다가 경찰이 뒤에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알려주는 꼴이 될 수 있었다.
결국 수사관은 거리를 좁히지 못하면서 남성은 그대로 서비스에어리어를 빠져나갔다.
이번에도 여우눈의 남자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다.
잠깐!
아직 현금 전달 작전이 끝난 게 아니었다.
현금 차량은 오쓰 서비스에어리어를 떠난 뒤에도 범인이 남겨놓은 지시를 따라 계속해서 명신고속도로 동쪽으로 이동했다.
다음 목적지는 구사쓰 파킹에어리어.
그곳 벤치 뒤에서는 또 하나의 지시문이 발견됐다. 이번에는 나고야 방향으로 시속 60킬로미터 정도를 유지하며 달리다가, 왼쪽 방호펜스에 걸린 가로 약 30센티미터, 세로 약 90센티미터 크기의 흰 천을 찾으라는 내용이었다. 흰 천 아래에다 빈 깡통 하나를 놓아둘 테니, 그 안에 든 마지막 지시를 확인하라는 것.
한편..
현금차량이 아직 구사쓰 파킹에리어에서 다음 지시를 확인하고 있던 오후 9시 18분 무렵.
그보다 동쪽인 시가현 릿토의 지방도로에서는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인적이 드문 밤길에 흰색 라이트밴 한 대가 전조등을 끈 채 서 있는 것을, 우연히 그곳을 순찰하던 시가현경 경찰관들이 발견한다. 차량은 그냥 주차돼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엔진이 돌아가고 있었다.
수상하게 여긴 경찰관들이 순찰차를 가까이 대고 손전등으로 안을 비추자 운전석에 한 남성이 앉아 있었다.
그 순간 라이트밴이 갑자기 튀어 나갔고 경찰도 곧바로 뒤를 쫓았다.
좁은 지방도로를 따라 추격이 이어졌고, 라이트밴은 마치 주변 지리를 잘 알고 있기라도 한 듯 골목과 도로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경찰은 끝내 차량을 따라잡지 못한 채 구사쓰역 부근에서 시야를 놓치고 만다.
그리고 불과 몇 분 뒤인 오후 9시 25분 무렵.
문제의 라이트밴이 구사쓰 시내에 버려진 채 발견된다. 운전자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조사해 보니 차량부터가 수상했다. 이틀 전인 11월 12일, 교토부 나가오카쿄의 한 전기설비 회사에서 도난당한 차량이었다. 게다가 차 안에서는 경찰 무선을 들을 수 있도록 주파수를 맞춘 무선장비까지 발견됐다.
당시 경찰이 계속해서 범인들의 무전 감청 가능성을 우려했던 것이 단순한 상상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실지로 한 달 뒤 국회에서 경찰청 형사국장 가나자와 아키오는 괴인 21면상 일당이 경찰의 무선을 상시 감청하고 있을 가능성을 사건 초기부터 예상하고 있었노라 직접 설명했다. 그래서 바로 이날 작전에서도 일반 순찰차들은 전담 수사망에서 일부러 제외했고, 현금 전달장소가 교토에서 시가 쪽으로 계속 바뀌는 동안에도 그 변화를 경찰 무전으로 알리지 않았다는 것.
따라서, 릿토에서 흰색 라이트밴을 발견한 경찰관들은 자신들이 그날 밤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범죄 수사 현장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그저 밤길에 전조등을 끄고 서 있는 수상한 차량 한 대뿐이었다. 그래서 평소처럼 접근했더니 운전자가 달아났던 것이다.
더군다나 문제의 차량이 서 있던 곳은 범인이 고속도로 위에 걸어놓은 흰 천 표식과 불과 수십 미터 정도 떨어진 아래쪽 지방도로였다.
현금 차량은 얼마 뒤 그 흰 천 앞까지 도착한다.
범인의 지시대로라면 그 아래에 있어야 할 빈 깡통을 찾아야 했으나 깡통은 없었다.
범인도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밤 10시 20분 무렵, 11월 14일의 현금 전달 작전은 중단된다.
경찰이 이날 얼마나 범인에게 근접했는지를 글로 놓고만 봐도 속이 터질 정도겠다.
특히나, 독자의 지금 속이 말이다.
1억 엔은 그대로 경찰 손에 남았지만, 경찰이 괴인 21면상에게 가장 가까이 접근했던 밤 가운데 하나였음에도 역설적으로 가장 쓰라린 실패 가운데 하나가 돼버렸다.
여기서 잠시 터진 속을 진정하고서..
사실, 이 장면은 흔히 시가현경이 아무것도 몰라 범인을 놓쳤다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되곤 한다.
허나 앞서 봤듯 실제 상황은 조금 더 복잡했다.
당시 경찰청은 범인이 경찰 무전을 듣고 있을 가능성 때문에 일반 순찰차를 수사망에서 제외했고, 거래장소의 이동 역시 무전으로 전파하지 않았다.
범인에게 작전정보가 새어나가지 않고자 이러한 의도된 정보 차단은 경찰 내부에까지 확장됐고, 그로 인해 정작 범인일 가능성이 높은 차량을 발견하고도 경찰관이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던 것.
한편..
11월 19일 하우스식품 관계자 앞으로 다시 날아든 범인의 편지에는, 14일 밤 현금 차량의 움직임을 자신들이 지켜보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범인들은 하우스에 좋은 직원들을 두고 있다는 식으로 비꼬면서, 지금은 모리나가를 상대하느라 바쁘니 시간이 나면 다시 연락하겠다고 떠벌렸다.
해당 현금전달 작전으로부터 약 한 달 뒤인 12월 11일.
시가현경은 릿토에서 흰색 라이트밴을 직접 목격했던 순찰 경찰관들의 증언을 토대로 운전자의 몽타주를 공개한다. (이 사람은 여우눈의 남자와는 별개의 인물)
하지만 그 몽타주를 공개하고도 라이트밴 운전자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런 후속 단서가 나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듬해 보도에 따르면 오사카부 이바라키시의 한 시민이 사건 보도로 공개된 흰색 라이트밴 사진을 보고, 범행 직전 자기 직장 근처 사유지 내 사설 도로에 며칠 동안 세워져 있던 차량과 같은 차라고 알아봤다.
이 시민은 11월 12일 밤 처음 해당 차량을 봤고, 이후에도 하루 몇 차례씩 같은 장소에 그대로 서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다 범행 당일인 14일부터 차가 사라졌다는 것.
다른 주차 이용자 가운데도 같은 차량을 봤다는 사람이 있었기에 경찰은 해당 시민을 불러 당시 상황을 다시 조사했다.
후대 취재에서는 도난 당시 남아 있던 연료량과 범행 뒤 발견됐을 때의 연료량, 예상 주행거리를 비교한 결과 문제의 이바라키시에 잠시 숨겨뒀다가 범행 당일 릿토 쪽으로 가져갔다는 경로와 대체로 맞아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왔다.
물론, 이것이 범인의 아지트가 이바라키시에 있었다는 증거는 아니다.
허나 적어도 차량을 훔친 즉시 범행현장으로 몰고 간 게 아니라, 한동안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세워두고 때를 기다렸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서였다.
또 차량 내부에서도 적지 않은 물건들이 나왔다.
개조 무선기와 함께 사파리햇, 여성용 가방, 접착테이프, 로프, 장갑, 플라이어와 철사 등이 발견됐고 사파리햇 안쪽에서는 머리카락 한 올까지 확보됐다.
경찰은 이 머리카락을 오랫동안 보존했다가 사건 시효가 가까워진 1994년에 혈액형 감정을 실시했고 그 결과는 A형이었다. (다만, 이것이 오늘날 말하는 개인식별용 DNA 프로필을 확보했다는 뜻은 아님. 해당 모발에서 이후 DNA형 감정이 이뤄졌는지, 현재까지 시료가 보존돼 있는지, 2000년대 이후 구축된 일본 경찰의 DNA형 데이터베이스와 대조됐는지는 공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음)
흥미롭게도, 몇 달 전 네야가와에서 현금전달용 차량을 빼앗기 위해 커플을 습격했던 범인 가운데 한 명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혈흔 역시 A형이었다.
훗날 수사가 계속되면서, 그날 릿토 일대에 수상한 사람이 라이트밴 운전자 한 명만 있었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최종 현금 수령지점 부근에서는 여성용 자전거를 탄 안경 쓴 남자가 경찰의 직무질문을 받은 사실이 있었고, 합동수사본부는 나중에 해당 남성을 범인 그룹과 관련된 인물로 보고 별도의 몽타주까지 만들어 배포했다.
부근에서 2~3명이 탄 차량과 도로변 숲으로 들어가는 남성을 봤다는 목격정보도 뒤늦게 수사선상에 올랐다.
그러니까..
그날 밤 경찰이 마주친 것은 어쩌면 한 명의 운전자가 아니었을 수도 있었다.
오쓰에는 여우눈의 남자. 릿토에는 흰색 라이트밴의 운전자. 그 주변에는 또 다른 감시역으로 의심되는 사람들.
실제로 이들이 모두 하나의 조직원이었는지는 끝내 입증되지 않았지만, 최초의 사건인 에자키 사장 납치 사건에서부터 밝혀졌던 최소 3인조 이상의 범행이라는 게 재차 확인되는 셈이었다.
수사본부 측에는 이제 쓰기에 지극히 부담스러운 비장의 카드 하나 만이 남았다.
6월 마루다이식품 사건에서 처음 목격됐고, 11월 하우스식품 현금 전달 작전에서 다시 나타난 남성. 서로 다른 회사를 상대로 벌어진 두 차례의 현금 전달 현장에 약 넉 달의 간격을 두고서 현장에 반복해 나타났으며, 경찰이 강력한 용의자이자 동일인으로 판단하고 있던 남성.
이른바, 여우눈의 남자 말이다.
경찰은 이미 첫 목격 직후부터 수사관들의 기억을 토대로 여우눈의 남자 몽타주를 만들어 내부 수사에 활용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수사가 계속해서 장기간 난항을 겪음에도 일반에는 공개하지 않았다.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몽타주를 전국에 뿌리는 순간, 여우눈의 남자 당사자 역시 경찰이 자기 모습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껏 조용히 신원을 특정한 다음 미행을 붙여 그 뒤의 공범과 배후까지 따라가려 했는데, 공개수배는 그런 방법을 사실상 포기하는 선택이기도 했다.
또, 몽타주 공개로 인해 경찰이 두 차례나 현장 코앞에서 용의자를 놓쳤다는 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고 말이다.
허나..
경찰이 그간 여우눈의 남자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알아내지 못하는 동안 괴인 21면상은 잠잠해지기는커녕 공격 대상을 계속해서 넓히고 있었다.
범인들은 1984년 12월엔 후지야(일본의 대표적인 제과/식품 회사)를 노렸다.
12월 7일 후지야 관계자 자택으로 협박장이 도착했고, 안에는 시안화나트륨과 녹음테이프까지 동봉돼 있었다. 뒤이어 범인들은 오사카의 백화점 옥상에서 2천만 엔을 뿌리라는 기괴한 요구를 내놓았고, 연말에는 다시 도쿄 이케부쿠로의 건물 옥상에서 돈을 살포하라는 지시까지 보냈다.
후지야는 어느 쪽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경찰은 이제 더 망설일 틈이 없었다.
그렇게 1985년 1월 10일.
경찰은 마침내 수사관들의 기억을 토대로 제작했던 여우눈의 남자 몽타주를 일반에 공개한다.
그리고 대중의 반응은 예상대로 뜨거웠다.
'저 사람과 닮은 사람을 안다'는 제보가 수사본부로 쏟아졌고, 경찰은 그때부터 전국에서 지목되는 수많은 유사 인물의 행적을 하나씩 확인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는 단순한 해프닝 수준을 넘어 실지로 경찰이 찾아가 알리바이까지 확인한 사람도 나왔다.
훗날 작가로 유명해지는 미야자키 마나부가 대표적이었다.
그는 몽타주와 외모가 상당히 닮았을 뿐 아니라 교토 일대의 지리에 밝았고, 과거 글리코 노사분규와 관계했던 이력 등 여러 조건이 겹치면서 경찰과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이에 경찰은 여우눈의 남자가 처음 목격된 날 미야자키가 어디에 있었는지까지 확인했다.
헌데..
그날 그는 도쿄에서 노동조합 관련 행사에 참석하고 있었고 이를 뒷받침할 자료도 남아 있었다. 적어도 현장에서 목격된 여우눈의 남자 본인일 가능성은 없었다.
(해당 인물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자세히 살펴보겠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몽타주 공개가 가진 양면성이겠다. 그러니까, 이러한 유명 사건에 대한 몽타주가 전국에 공개될 때의 부작용 역시 따라왔다는 말이겠다.
여우눈의 남자에 대한 제보와 닮은 사람은 계속해서 늘어났고, 그 가운데 실제 두 현장에 나타났던 사람이 맞는지를(그리고 유의미한 제보인지를) 가려내는 일은 또 다른 문제가 됐다.
얼굴을 전국에 보여주면 수백만 명의 눈을 수사에 동원할 수 있으나, 몽타주가 반복해서 신문과 방송에 노출되면 닮았다는 사람의 제보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법이다. 그때마다 경찰은 정말 6월과 11월 두 현장에 나타났던 바로 그 사람인지를 확인해야 했다.
즉 여우눈의 남자를 추적하고자 전국의 눈을 빌렸는데..
역설적으로 그 눈들이 수많은 또 다른 여우눈의 남자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셈이었다.
한편 범인들은 마치 이런 공개수배를 비웃기라도 하듯 재차 움직인다.
1월 16일.
이번에는 요미우리신문 오사카 본사 현관 부근에서 시안화나트륨이 든 모리나가 과자 세트와 도전장이 발견됐다. 경찰이 여우눈의 남자의 얼굴을 공개한 지 불과 엿새 만이었다.
도전장에는 앞서 우리가 살펴봤던 음성분석 전문가 스즈키 마쓰미까지 거론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범인들은 경찰이 공개한 얼굴과 자신들이 남긴 목소리를 언론을 통해 지켜보면서, 수사가 어디까지 왔는지까지 역으로 관찰하고 있었던 셈이다.
또 1월 말에는 하우스식품을 다시 협박했고, 2월 6일에는 한동안 '용서해 준다'던 글리코의 에자키 사장 앞으로까지 새로운 협박장을 보냈다.
그러더던 1985년 2월.
괴인 21면상은 다시 평범한 소비자의 손 바로 앞에다 독과자를 가져다 놓는다.
시점이 참으로 악랄했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를 코앞에 둔 2월 12일부터 도쿄와 나고야 곳곳에서 '독 들었다. 위험하다'는 취지의 경고문이 붙은 초콜릿과 과자들이 잇따라 발견된다.
(동시대 보도의 초기 집계와 후대 일본 자료의 사이에는 다소 숫자 차이가 있음) 2월 13일 보도 시점에는 12개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고, 후대 일본 연표에서는 12곳에서 모두 13개, 그중 8개에서 시안화나트륨이 확인된 것으로 언급된다.
중요한 건..
이번에도 실제 독이 들어 있었으며 더 이상 모리나가 제품에만 한정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1984년 10월까지만 해도 '모리나가를 공격하기 위해 모리나가 제품에 독을 넣는다'는 범인의 의도에 대해 최소한의 대응이라도 잡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어떤 회사의 어떤 과자가 다음 도구로 이용될지조차 알기 어려워진 셈이다.
범인들은 이번에도 언론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내용은 밸런타인데이 자체를 조롱하는 것이었다.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는 풍습을 비웃으면서 '그렇게 사랑한다면 독 든 초콜릿을 먹고 같이 죽으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악의적인 농담을 늘어놓고, 전국에 시안화나트륨이 든 과자를 풀겠다고도 위협했다.
이미 범인들은 극히 적은 수의 물건에다 손대는 것만으로 일본 전체 식품 유통망을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게 밸런타인데이까지 일본 전역을 뒤흔들어놓고서..
2월 27일, 괴인 21면상은 또다시 익숙한 행동을 취한다.
이번에는 모리나가를 향해, '모리나가, 용서해 주겠다.'며 글리코 때와 거의 같은 짓을 벌이고 있었다.
편지에서는 모리나가 직원들이 열심히 버텼다느니, 파트타임 노동자를 다시 고용했다느니 하는 회사 내부 사정까지 거론했고, 아이들은 천사라느니 여성은 얌전히 있어야 한다느니 하는 말을 늘어놓다가, 다음 밸런타인데이에 또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벌어지면 다시 반복하겠다는 위협까지 덧붙였다.
허나 모리나가를 '용서했다'고 해서 사건 전체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불과 일주일 뒤인 3월 6일.
이번에는 와카야마의 오래된 제과회사 스루가야 앞으로 현금 5천만 엔을 요구하는 협박장이 배달됐다.
거래는 3월 8일로 예정돼 있었지만, 범인들은 다시 연락을 취해 '경찰이 시끄러워 못 해 먹겠다'는 식으로 거래를 연기했다.
그리고..
그 뒤로 스루가야에는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스루가야는 괴인 21면상이 직접 돈을 요구한 마지막 식품 회사 가운데 하나가 된다.
범인들의 활동은 이 무렵부터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겨울까지만 해도 며칠 간격으로 기업을 협박하고 언론에 도전장을 보내며 실제 독과자를 뿌리더니, 봄이 지나고 여름이 찾아올 때까지 더는 그전과 같은 대형 범행을 이어가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경찰 수사가 멈춘 건 아니었다.
여우눈의 남자를 찾아 전국에서 들어온 제보를 하나씩 확인하고 범행에 사용된 타입라이터를 추적했으며, 도난차와 무선기 같은 유류품의 판매/유통경로를 계속해서 거슬러 올라갔다.
경찰은 범인이 편지 작성에 사용한 타입라이터의 제조사와 기종까지 특정해 전국의 납품처를 하나씩 확인했는데, 일반에 판매된 수천 대 가운데 70% 이상의 소유자를 추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범인에게는 끝내 닿지 않았다.
이 사건은 단서가 없었던 사건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많은 것들이 남아 있었다.
헌데..
참으로 기묘하고도 기막히게도 언제나 마지막 한 칸이 비어 있는 꼴이었다.
(사건 3년째인 1987년에도 경찰은 국회에서 여우눈의 남자 신원확인과 타입라이터 특정, 무선기 등 유류품 추적을 여전히 핵심 수사 과제로 꼽고 있었다. 당시에도 관계 경찰 약 600명이 수사를 계속하고 있었지만, 경찰 스스로 '유효한 목격 정보가 부족하고 대량 생산품인 유류품에서 범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첫 사건으로부터 1년 5개월째인 1985년 8월.
그리고 8월 7일.
당시 시가현경 본부장이던 야마모토 쇼지(59)가 관사 뒤뜰에서 자신의 몸에 등유를 붓고는 불을 붙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날 그는 시가현경 본부장직에서 물러나 경찰청으로 이동하는 인사가 난 상태였다.
해당 소식은 즉각 괴인 21면상 사건과 연결됐다.
전년도 11월 하우스식품 현금 전달 작전에서 시가현경 순찰경찰관들이 범인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높은 흰색 라이트밴을 눈앞에서 발견하고도 놓친 뒤, 야마모토는 공개적으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한 인물이었기 때문.
주변 사람들도 그가 그때의 실패를 상당히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 전했다.
(다만, '야마모토는 괴인 21면상을 놓친 죄책감 때문에 자살했다'고 널리 알려졌으나 당시 경찰은 그의 자살 동기가 무엇인지 즉시 확정할 수 없었으며 사건과 직접 연결된다는 결정적 증거도 없다고 밝힘)
헌데..
야마모토가 죽은 지 불과 닷새 뒤인 8월 12일.
몇 달간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괴인 21면상이 다시 언론 앞으로 편지 한 통을 보내온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괴인 21면상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편지가 된다.
국회의원 여러분한테 2
(주: 그해 2월 이미 같은 제목으로 경찰과 국회를 조롱하는 첫 번째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음)
니들 참 잘도 잊어버리네.
우리를 잡을 법 률은 대체 어찌 되고 있는데.
빨리 사형까지 시킬 수 있는 걸로 하나 만들어라.
시가현경의 야마 모토 죽었더라.
시가에는 우리 패도 아지트도 없는데, 참 바보네.
죽을 거였으면 요시노나 시카타가 죽었어야제.
(주: 효고현경의 요시노와 오사카부경의 시카타를 말하는 것)
1년 하고 5개월이나 대체 뭐 하고 있었노.
우리 같은 악당 그냥 놔두면 안 되지.
따라 하는 바보 아직 억수로 많다.
밑바닥부터 올라온 야마 모토가 사나이답게 죽었으니,
우리도 조 의금 하나 하기로 했다.
식품 회사 괴롭히는 거 이제 그만이다.
이 뒤에 협 박하는 놈은 가짜다.
우 수한 경찰 한테 신고하면 된다.
대학 나온 요시노나 시카타가 알아서 잘 해줄 기다.
우리는 악당이다.
식품 회사 괴롭히는 걸 그만둬도 아직 얼마든지
할 일이 있다.
악당 인생 재밌네.
괴인 21면상
이게 괴인21면상의 마지막 연출이었다.
범인들이 왜 그 시점에서 물러났는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겠다.
야마모토의 죽음이 실지로 어떤 감정적 충격을 줬을 수도 있고, 이미 수사가 자신들에게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껴 철수할 구실을 찾았을 수도 있다.
애초부터 일정 기간만 범행할 계획이었을 수도 있으며, 우리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겠다.
한편..
괴인21면상의 마지막 편지가 있었던 1985년 8월 12일에는 또 다른 비극이 벌어졌다.
범인들이 아홉 달 전 1억 엔을 요구했었던 하우스식품의 우라카미 이쿠오 사장이 도쿄 하네다에서 오사카 이타미로 향하는 일본항공 123편에 탑승했다.
후대 보도에 따르면 그는 괴인 21면상의 범행 중지 소식을 접한 뒤, 이를 창업자인 부친의 묘전에 알리고자 오사카로 향하던 길이었다고 전해진다.
오후 6시 12분 하네다를 출발한 일본항공 123편은 비행 도중 심각한 기체 이상을 일으켰고, 약 44분 뒤 군마현 산악지대에 추락한다.
탑승자 524명 가운데 520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라카미 사장 역시 그중 한 사람이었다.
물론, 괴인 21면상 사건과 일본항공 123편 사고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는 증거는 전혀 없으며 전혀 별개의 사건이다. 그저 공교롭게도(?) 날짜가 겹쳤을 뿐.
여하튼 지건, 괴인 21면상은 그날 이후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범행이 끝났다고 해서 사건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경찰은 이후에도 오랫동안 수사를 계속했고, 여우눈의 남자와 비디오의 남자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을 수사선상에 올렸다. 40년이 지난 뒤 경찰 수사를 되짚은 고베신문은 한때 수사 대상으로 검토된 사람이 약 12만 5천 명에 달했을 정도라 전했다.
허면..
대체 그 많은 사람 가운데 괴인 21면상은 누구였을까?
아니, 그 많은 사람 가운데 괴인 21면상이 있기는 했을까?
괴인 21면상은 사라졌지만 경찰은 수사를 계속했다.
범행마다 적용되는 죄와 시효가 달랐기 때문에 사건이 한꺼번에 법적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허나..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씩 시효가 만료했고, 마지막까지 남은 독과자 관련 살인미수 사건까지 포함해 2000년 2월 13일 일련의 사건은 모두 공소시효를 맞는다. 경찰청의 2000년 경찰백서도 일련의 사건이 2000년 2월까지 모두 시효를 맞았다고 공식적으로 정리했다. 사건 발생에서 거의 16년이었다.
경찰은 범인의 얼굴이라고 의심한 남자도 봤고, 녹음 음성도 확보했고, 차량과 무전기 등의 유류품도 찾았으며, 수많은 협박장과 실제 독과자를 손에 넣었다. 고베신문의 40주년 취재에 따르면 수사 대상에 오른 사람만 약 12만 5천명에 달했다고 한다. 헌데 마지막 날까지 기소할 사람 한 명을 특정하지 못했다.
2026년 일본 국회에서 이 사건이 다시 언급됐을 때에도 경찰청 측은 개별 수사내용을 확인해주지 않았고, 일반론적으로는 공소시효가 완성된 사건의 수사는 통상 종결된다고 답했다. 당시 한 의원이 범인들에 관해 리더와 5-6명으로 이뤄진 그룹, 현장 지문 등을 거론했는데 그것은 의원과 취재진의 주장이지 경찰청이 사건별 공식 결론으로 확인한 내용은 아니었다.
이렇듯 법적인 시계는 모두 멈춰버렸다.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하나다.
대체 누가 이런 일을 자행했던 것일까.
해당 사건에는 일찍이부터 기업 내부자설과 조직범죄 설이 따라붙었으며, 사건이 끝난 뒤에도 기자와 작가들이 서로 다른 진범을 제시했다.
심지어 첫 사건 당시인 1984년보다 6년이나 앞선 기이한 자료도 존재한다. 이것은 1978년, 쇼와 53년. 훗날 '쇼와 53년 테이프(昭和53年テープ)'라고 불리게 된 '녹음' 테이프다.
1993년 효고현경은 1978년 글리코의 한 임원 자택으로 보내졌던 협박 테이프 일부를 공개했다.
테이프의 화자는 1억 7,500만 엔을 요구하면서,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글리코 제품에 독물을 넣어 여러 도부현의 슈퍼에 뿌리겠다는 취지로 협박을 가했다고 전해진다. 테이프가 전달된 지 15년 뒤 경찰이 이를 공개할 당시, 수사당국은 1984년 사건과의 관련 가능성을 함께 조사하고 있었다.
이후 알려진 더 자세한 내용에 따르면 유괴와 방화, 신문광고를 통한 연락처럼 1984년 사건과 놀랄 만큼 흡사한 요소들도 등장한다.
녹음 시간은 거의 한 시간에 달했다. 목소리의 주인은 관서 지방 말투가 섞인 중년 이상의 남성이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괴인 21면상의 편지처럼 대놓고 욕설을 퍼붓는 식은 아니었다.
오히려 말투는 극히 정중하고 장황했다. 공개된 음성 일부에서 남성은 자신들을 남의 일을 해결해 주고, 그 덕을 본 사람에게 이익의 10-15% 정도를 사례로 받아 생활하는 사람들처럼 설명한다.
남성의 이야기에 따르면, 자신과 아는 사이인 교토 쪽의 과격파 청년 세 명이 글리코에서 3억 엔을 뜯어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단다.
그리고 그 방식이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사장인 에자키 카츠히사의 납치, 글리코 시설 방화, 시안화물이 든 글리코 과자를 시중에 뿌리는 것까지. 훗날 실지로 벌어졌던 괴인 21면상 사건들이 정확하게 오버랩되는 방식이다.
남성은 자신이 그 계획 자체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겠지만, 3억 엔이라는 요구액을 1억 7,500만 엔까지 낮춰줄 수는 있다며 사실상 돈을 요구하고 있었다.
글리코가 이에 응한다면 '지정된 방식'의 '신문 광고를 내서' 의사를 표시하도록 했으며, 현금은 '흰색 라이트밴'에 싣고 회사 임원이 직접 오사카 공항 부근까지 운반하라는 식의 지시까지 있었던 것으로 당시 수사 보도는 전한다.
1986년 요미우리신문 보도에 따르면, 수사본부는 언어학자에게 이 문제의 쇼와 53년 테이프 속 목소리와 말투를 분석하게 한 뒤 테이프의 화자를 괴인 21면상 그룹의 핵심 인물과 연결해 보는 쪽으로 진행했다.
처음에는 목소리만 듣고서 화자를 55-65세 정도의 남성으로 추정했으나, 언어 특징을 다시 분석하면서 당시 실제 연령을 40-50대 정도로 낮춰 잡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테이프 남성의 관서 지방 말투와 어휘 가운데 일부가 훗날 괴인 21면상의 도전장에 나타나는 표현들과 닮아 있었고, 그 말투의 지역성 역시 시가/나라/오사카 일부와 겹친다는 분석이 나왔다.
또 테이프에는 화자인 남성의 목소리 말고도 뭔가가 녹아 들어가 있었다.
그건 바로, 전철 지나가는 소리였다.
1989년 요미우리신문은, 음향분석 결과 이 배경음이 시가현을 달리는 근江철도(오미철도) 열차의 주행음일 가능성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열차의 모터음과 통과음 등을 토대로, 경찰이 테이프가 근江철도 연선 어딘가에서 녹음됐을 가능성을 검토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하우스식품 현금 전달 작전의 마지막 무대가 된 곳도 시가현이었기에, 수사당국에게는 이것이 그냥 우연으로 치부하기엔 아까운 지역적 단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첫 사건(에자키 사장 납치)이 시작된 지 거의 10년이 흐른 1993년 12월.
효고현경은 마침내 쇼와 53년 테이프의 음성을 일반에 공개했다.
다만 약 한 시간짜리 원본 전체를 공개한 것은 아니고, 방송을 통해 약 1분-1분 30초 정도로 추린 일부가 전파를 탔다. 목소리를 아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일종의 공개 수배용 단서였던 셈이다.
허나 아이들의 음성 녹음 때와 마찬가지로 끝내 유의미한 제보나 단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수사과정에서 실제 용의선상 인물들의 목소리를 해당 테이프와 비교하는 성문감정까지 이뤄졌고, 여러 조직범죄/과격파 관련 인물들이 검토됐으나 결정적인 진전은 없었다.
한편..
해당 녹음 테이프가 보내지기 또 약 2년 전부터, 글리코 관계자에게'황건족(黄巾族)'을 자칭하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편지와 전화로 협박을 계속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다만 이 역시 황건족->쇼와 53년 테이프->괴인 21면상을 하나의 동일조직으로 직선 연결할 만한 공개된 물증은 없는 처지이다.
허면, 괴인 21면상은 1984년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미 1978년부터 글리코를 노리던 사람들이었을까?
가능성은 분명 있다.
허나 동일범이라는 증거는 없다.
1978년 테이프의 발신자를 특정하지도 못했고, 해당 테이프 속 화자를 1984년 범인 집단과 직접 연결하는 법의학적 증거도 공개된 바가 없다. 유사한 수법은 동일범의 단서가 될 수는 있어도 동일범의 증명까지 해결해 주진 못한다.
한편, 해당 테이프로 인해 자연스레 힘을 얻은 가설이 하나 더 있었다.
괴인 21면상이 아무 이유 없이 대기업들을 닥치는 대로 골랐던 게 아니라, 최초의 뿌리에는 글리코를 향한 오래된 원한이나 내부 사정을 알고 있던 사람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설이 그것이다.
말인즉슨, 일련의 범인 그룹은 글리코의 직간접적 내부자 또는 회사와 오래된 악연을 가진 집단이라는 설이다.
첫날을 다시 떠올려보면(현재 아주 먼 강을 건너왔지만), 왜 내부자설이 그토록 일찍부터 각광받았는지 이해가 쉬울 것이다.
1984년 3월 18일 밤, 범인 둘은 에자키 카츠히사(글리코 사장)가 가족과 살던 집으로 곧장 침입하지 않았다. 같은 부지에 따로 있던 모친의 집부터 침입해 당시 70세였던 모친을 제압하고, 옆집인 에자키 자택의 열쇠를 빼앗은 뒤 정문으로 들어갔다. 때문에 당시 최신식 방범설비가 설치돼 있던 에자키의 집에 창문을 깨거나 해서 들어갈 필요조차 없었다.
그 순간 에자키는 욕실에서 목욕을 하고 있었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전직 경찰관은 훗날 이를 두고서 범인들이 목욕하는 시간까지 파악하고 있었으며, 군더더기가 없는 치밀한 계획 범행이었다는 취지로 회고했다. 범인들은 차량과 감금 장소까지 미리 준비했고, 집 안으로 들어간 두 명 외에 자동차를 맡은 별도의 공범도 있었다. 첫 장면부터 즉흥적인 납치라기보다 상당한 사전 조사를 거친 범행임이 분명했다.
여기에 앞서 언급했던 1978년의 쇼와 53년 테이프를 다시 강조하자면..
사장 에자키 납치, 글리코 시설 방화, 시안화물을 이용한 제품 협박, 현금 요구, 신문을 이용한 연락까지 그 6년 뒤 실지로 벌어지는 괴인21면상의 범행들과 놀라울 만큼 겹쳐진다.
그렇다면 괴인 21면상의 출발점에는 글리코를 오래 지켜봤던 사람, 회사 내부 사정을 잘 알았던 전/현직 관계자, 혹은 글리코와 오랜 원한이나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실지로 수사선상에는 내부자 범행설, 총회꾼, 폭력단, 외국인 관련설, 주가 시세조작으로 이익을 노린 이른바 仕手筋(시테스지, 투기/작전 세력) 범행설까지 다양한 범인상이 떠올랐다. 당시 경찰 역시 한 가지 가능성만 고집하지 않고서 글리코 주변 인맥과 범죄 조직, 기업 공갈에 익숙한 인물들을 광범위하게 확인했다.
허나..
범인이 글리코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과 범인이 글리코 내부자였다는 것은 완전히 동일한 의미는 아니다.
에자키의 생활시간과 동선은 장기간 감시하면 충분히 알아낼 수 있다. 같은 부지에 모친이 따로 살고 있다는 사실 역시 외부에서 확인할 수 있고, 모친 집에 열쇠가 있다는 정보도 어떤 방식으로든 사전에 얻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범인들이 해당 범행 준비에 대해 조금이라도 전문적인 관련 지식이 있거나 혹은 그러한 사람에게 청부했을 경우에 말이다.
한편..
알다시피 사건은 글리코 하나에서 끝나지 않았다.
마루다이, 모리나가, 하우스식품, 후지야, 스루가야까지 공격 대상은 서로 아무런 내부조직을 공유하지 않는 여러 기업으로 계속 확장됐다.
그러니까 범행의 출발점이었던 글리코 사장 납치 사건을 미루어 볼 때, 글리코와 오래된 접점 또는 원한을 가진 사람이 최소한 그룹 내에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하다. (공격 대상은 서로 아무런 내부조직을 공유하지 않던 서로 다른 기업들)
반대로 괴인 21면상 전체가 글리코 내부자들(혹은 원한을 지닌)로 이뤄졌다는 주장까지 가려면 그에 마땅한 증거 역시 필요할 것이다.
해당 사건의 용의자 이야기를 꺼낼 때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미야자키 마나부이다.
그는 훗날 작가와 사회평론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는 인물이다.
그가 용의선상 한가운데로 들어오게 된 가장 직관적인 이유는, 앞서 한 번 언급했듯 무엇보다도 여우눈의 남자 몽타주와 상당히 닮아서였다.
헌데 얼굴만 닮았던 것도 아니다.
미야자키는 교토 출신으로 학생운동 경력이 있었고, 언론과 건설업계에서 활동했으며 과거 기업 공갈 사건으로 체포됐다가 불기소된 전력도 있었다. 글리코 노사분규 당시 노동조합 측을 지원한 경력이 있었고, 주간지 기자 시절에는 주식 관련 지면을 담당한 적도 있었다.
이렇듯 거의 모든 특징들에서 유사함이 겹치며 경찰과 언론도 그에게 강한 관심(?)을 보였었다.
허나..
미야자키 범인 설에는 처음부터 커다란 구멍이 존재한다.
여우눈의 남자가 최초로 목격된 날의 알리바이 말이다.
사건 자료들에 따르면 1984년 6월 28일 마루다이식품 현금 전달 작전에서 여우눈의 남자가 수사관들에게 목격됐을 당시, 미야자키는 도쿄의 한 음악대학에서 노동조합 관련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고 경찰 역시 이 알리바이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그래서 '적어도' 미야자키 마나부가 바로 그 여우눈의 남자였다는 주장은 성립하기가 어렵겠다.
물론 괴인 21면상이 복수범이었던 이상, 이것만으로 미야자키가 사건의 어느 부분에도 전혀 관계없었다는 사실까지 완벽하게 증명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공개된 기록상 미야자키를 독과자, 협박장, 도난 차량, 무선기 같은 구체적인 범행 물품에 연결하는 물증과 정황은 일체 확인되지 않았으며 미야자키 본인 역시 사건 관여를 일관되게 부인했다.
여담으로..
미야자키 본인은 훗날 '경찰이 처음부터 나를 용의로 선정하고 내 사진에 맞춰 몽타주를 만든 것 아닐까'라는 언급도 했었다.
아무래도, 미야자키와 여우눈의 남자 사진이 서로 지나치게 닮아있어서 말이다.
해당 사건은 용의선상에 특정 인물 하나를 올리는 대신, 범인의 조직 형태부터 생각해 보는 편이 오히려 더 현실적일 수 있겠다.
왜냐하면, 이 부분에서는 가설이 아니라 처음부터 확인되는 사실 하나가 있기 때문이다.
괴인 21면상은 첫날부터 한 명이 아니었다.
3월 18일 에자키 자택 안으로 들어간 복면범은 두 명이었고, 밖에는 자동차를 운전한 별도의 공범이 있었다. 경찰청의 공식 백서 역시 납치 단계에서 이미 세 사람이 움직였던 구조를 기록하고 있다.
이후 사건이 확대되면서 필요한 역할은 더욱 다양해진다.
협박문과 도전장을 작성해야 한다. 차량을 훔치고 준비해야 한다. 전화와 녹음테이프를 사용하고, 현금 전달 현장의 동선을 설계해 주변에서 경찰의 움직임을 살펴야 한다. 실제 시안화나트륨을 확보하고, 여러 종류의 과자를 변조한 뒤 서로 다른 지역의 소매점에 가져다 놓는 일도 필요했다.
물론, 한 사람이 여러 일을 도맡았을 수도 있으니 역할 하나당 사람 하나 플러스 식으로 계산할 수는 없겠다.
허나..
1987년 일본 국회에서 일본 경찰청은 그때까지의 범행 형태를 종합할 때, 범인 집단을 여성을 포함한 4-5명 정도의 비교적 통제가 잘 되고 결속력이 강한 그룹으로 보고 있노라 공식적으로 답했다.
재미있는 것은 경찰 내부에서 그 숫자가 처음부터 고정됐던 건 아니라는 점이다.
2011년 NHK 취재팀이 입수한 당시 경찰 수사 자료에는 한때 범인을 최소 7명 정도로 상정한 조직도가 등장한다.
에자키 납치를 실행한 세 명, 두 번이나 현금 전달 현장에 나타난 여우눈의 남자, 협박장과 도전장을 작성하는 두뇌파 리더, 그리고 전화에 사용된 성인 여성과 어린 남자아이의 목소리 주인까지 합쳐 일곱 명 말이다.
헌데 앞에서 살펴봤듯, 후대의 음성 재분석은 경찰이 작성한 조직도를 반증한다.
당시 성인 여성으로 여겼던 음성이 실지로는 어린 소녀일 가능성이 제기됐고, 모리나가와 하우스식품 사건의 남아 음성도 서로 다른 아이였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목소리의 주인들이 애초부터 범행의 의미를 알고 참여한 조직원이었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경찰 역시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여러 사람이 결속된 집단을 기본 범인상으로 보고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폭력단 관계자, 총회꾼, 기업 공갈에 익숙한 인물, 과거 좌익 운동 관계자, 주가조작 세력까지 성격이 서로 다른 집단이 수사선상에 오른 것도 그래서였다. NHK가 확보한 수사 자료에는 폭력단 관계자와 전직 좌익 활동가 등을 검토한 흔적도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괴인21면상 그룹은 서로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손을 잡은 조직은 아니었을까.
납치와 차량 확보에 익숙한 사람, 기업 내부 사정과 금융을 아는 사람, 글리코와 오래된 접점이 있는 사람, 신문을 상대로 도전장을 쓰고 사회 반응을 계산하는 사람, 독극물과 상품 변조를 맡은 사람과 같이..
목적을 위해 또는 목표로 향하는 동안 결부된 이른바 혼합형 조직 말이다.
지금까지는 괴인 21면상이 어떤 그룹/집단/조직의 발현체였는가를 살펴봤다.
헌데..
사실, 그보다 근본적인 부분이 있다.
대체, 이 사람들은 무엇을 얻고자 그 모든 위험을 '오래도록' 감수했던 걸까?
괴인 21면상 집합체 구성원은 하루이틀 함께 범죄를 저지르고 흩어진 일회성 공범들이 아니었다.
1984년 3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방식과 표적을 바꿔가며 1년 넘게 움직였다. 누군가는 납치 현장에 직접 들어가야 했고 누군가는 차량을 준비하고 운전했으며, 현금 전달 현장에서는 경찰과 맞닥뜨릴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다. 훗날에는 실제 시안화나트륨을 다루고 식품을 변조해 일반 매장에 놓는 단계까지 나아갔다.
범죄 세계의 기본 원칙이라면..
공범이 늘어나면 할 수 있는 일은 많아지지만, 동시에 입을 열 사람과 실수할 사람도 늘어난다.
현대의 공동 범행과 범죄 네트워크 연구에서도 반복적인 협력이 유지되려면 단순히 함께 범죄를 수행할 능력뿐만 아니라 신뢰, 기존의 인간적 관계, 공동의 이해관계처럼 그 추가 위험을 상쇄할 요소가 필수 시 된다.
그러니까, 해당 사건의 동기를 생각할 때는 이른바 중2병 리더 한 명이 재미있어해서 친구들이 계속 도와줬다는 정도로 끝낼 수가 없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그토록 오랫동안 위험을 공유했다면, 적어도 집단 안에는 지속적으로 참여할 만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을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그게 무엇이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당연히..
돈이다.
첫 사건부터 범인들이 요구한 것은 현금 10억 엔과 금괴 100킬로그램이었다. 이후에도 마루다이, 모리나가, 하우스식품 등을 상대로 구체적인 금액과 복잡한 현금 전달 방법을 제시했다.
특히 1984년 6월 2일 사건은 중요하다.
범인들은 요도가와 제방에서 우연히 자동차를 타고 있던 남녀를 습격해 여성을 인질로 붙잡고, 남성에게 글리코의 현금 운반 차량을 덮쳐 돈을 가져오도록 강요했다.
이건 단순히 신문을 놀라게 하기 위한(성공여부를 떠난) 연출로 보기 어렵다.
그러니까 괴인 21면상은 사실 처음부터 돈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는 식의 해석은 현재 남은 행동 증거와 잘 들어맞지가 않는다.
돈은 분명 실제 목적 가운데 하나였다.
문제는 바로 그다음이다.
공개적으로 확인되는 범위에서 범인들은 그렇게 요구했던 거액을 결국 제대로 손에 넣지 못했다.
여기엔 도전장을 통한 조롱과 달리, 현금전달 작전에서의 지극히 조심스러운 범인들의 성향도 한몫했다.
그럼에도 범인들은 범행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왜?
여기서 흔히 나올 법한 해석이 있다.
"돈을 못 받았는데도 계속했으니(그리고 현금전달 작전 당시마다 소극적이었으니), 돈은 애초부터 진짜 목적이 아니었다!"
허나, 여기서 공갈 범죄에 대해 좀 더 파악할 필요가 있겠다.
공갈 범죄에 관해 피해자에게 주어지는 주된 화두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저 사람이 말한 위협을 정말 실행할까?'이다.
돈을 주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면 피해자 입장에서 꾹 버티면 된다.
그래서 공갈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한 연구에서는 '위협의 신뢰성'이 핵심 문제로 다뤄진다. 이전에 실제 보복을 했거나 위협을 실행할 능력과 의지가 있다는 평판을 가진 집단일수록, 다음 피해자는 그 협박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괴인 21면상의 행동은 조금 다르게 읽힌다.
처음에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돈을 요구한다. 그런데 정말로 사장을 납치한다. 돈을 주지 않자 회사 시설과 차량에 불을 지른다. 시안화나트륨을 보내고, 나중에는 실지로 독이 든 과자를 시중의 매장에다 끼워 넣는다.
그리고, 그 사실을 언론을 통해 일본 전체가 알게 만든다.
그 순간부터 괴인 21면상이라는 이름 자체가 협박의 도구이자 하나의 브랜드가 된다.
어떤 기업이 처음 보는 익명의 편지를 받는 것과, '실제 사장을 납치하고 회사에 불을 지르고 독과자까지 뿌린 그 괴인 21면상이 우리를 노리고 있다'고 인지하는 것은 천지 차이겠다.
말인즉슨..
사전에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당시 범인들이 언론에 연출성 도전장을 보내고 시안화나트륨까지 동봉하면서, 매스미디어를 교묘하게 이용해 자신들이 원하는 협박 효과를 높였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현금을 한 번 못 받았다고 해서 그 전의 범행이 모두 실패였던 게 아닌 셈이다.
실제 위해 행동을 가할 때마다 괴인 21면상의 브랜드는 보다 견고해졌고(?), 그 유명세와 공포 유발은 다음 기업을 협박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범죄적 평판이 됐다.
당장은 돈을 얻지 못했더라도 다음번 현금거래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한 투자였다고 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하여, '현금획득 실패 = 금전 동기 부재'라는 공식은 성립하지가 않다고 봐야겠다.
그렇다고 반대로, 결국 모든 행동이 다음번 돈을 받기 위한 계산이었다라고만 설명하기도 어렵다.
시간이 흐를수록 해당 사건에는 단순한 공갈의 효율성만으로는 설명하기 곤란한 행동들이 더해졌다.
신문사로 보내는 편지는 단순히 돈을 받아내기 위한 연락 수단의 범위를 넘어섰다. 경찰 간부들을 실명으로 조롱하고, 사건 당시 보도를 소재로 농담을 늘어놓으며, 이상한 맞춤법과 사투리, 그림까지 사용하면서 괴인 21면상이라는 캐릭터를 스스로 키워나갔다.
그 편지들은 협박문이면서 동시에 공연이었다. 자신의 범행을 과시하고 즐기는 짓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서 범죄심리학의 도구적 동기와 표현적 동기라는 구분이 도움이 되겠다. 도구적 행동은 돈이나 특정 결과를 얻기 위한 수단이고, 표현적 행동은 분노나 지배감, 자기과시, 흥분처럼 행동 그 자체가 심리적 의미를 갖는다.
물론 실제 범죄에서는 둘이 깔끔하게 나뉘지 않지만, 괴인 21면상의 언론플레이는 하나의 좋은 예시가 된다.
이들은 전국 신문에 자신들의 편지가 실리는 것을 즐겼을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신문에 독과자 이야기가 크게 보도될수록 소비자가 겁을 먹고 기업의 손실은 커지며 다음 협박의 위력도 높아진다.
즉 과시가 곧 협박 수단이기도 했다.
돈을 노리는 계산적인 범죄자였느냐, 경찰을 갖고 노는 것을 즐기는 극장형 범죄자였느냐 가운데 하나를 고를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두 가지는 동시에 작동할 수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헌데, 해당 사건은 한 번 더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건 바로, 괴인21면상의 행위가 개인범이 아닌 집단범죄였다는 것이다.
한 개인이 이상한 만족감을 얻기 위해 계속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라면 그 사람의 심리만 설명하면 된다.
허나, 여러 명의 공범이 장기간 움직였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누군가 한 사람의 개인적 쾌감과 쾌락만을 위해 다른 구성원들이 반복적으로 체포와 중형의 위험을 감수했다고 가정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강한 지배관계나 충성 관계 같은 별도의 설명이 필요하다.
반대로, 모든 구성원이 똑같은 동기를 가질 필요도 없다.
공동 범행 연구에서 중요한 것은 반드시 모두가 같은 것을 원한다는 게 아니라, 같은 행동이 서로 다른 사람에게 각기 참여할 만한 보상을 줄 수 있느냐이다.
한 사람은 돈을 원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은 특정 기업에 강한 원한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동료나 가족과의 관계 때문에 함께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경찰을 계속 따돌리는 집단의 일원이라는 지위나 성취감 또는 소속감을 보상으로 느꼈을 수도 있다.
목적이 서로 다르더라도 그 목적들이 같은 범행을 통해 동시에 충족된다면 집단은 유지될 수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보다 정확한 질문은 '괴인 21면상의 동기는 무엇이었나 보다는', '괴인 21면상이라는 집단은 구성원들이 계속 참여할 수 있도록 어떤 보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나' 일는지 모른다.
해당 지점에서 꽤나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등장한다.
비록 범인들이 단 한 번도 현금 가방을 제대로 가져가지 못했다곤 해도, 사건 자체는 계속해서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대표적인 피해 기업 모리나가제과를 보자.
일본 정부가 1987년 국회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모리나가제과의 매출은 사건 직전인 1983년 약 1,220억 엔에서 1984년 약 990억 엔으로 떨어졌고, 세후 42억 엔의 흑자를 내던 회사가 약 30억 엔의 적자로 돌아섰다.
일부 제품은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철수됐고, 공장 가동률은 한때 거의 제로에 가까워졌으며 임시직과 파트타임 노동자 약 450명의 고용이 중단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러니까 만약 집단 내부의 누군가에게 중요한 목표가 현금을 손에 넣는 것뿐 아니라 특정 기업에 실제 피해를 주는 것이었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범행은 계속된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꾸준한 성과였을 것이다.
그렇다.
기업을 흔드는 게 목적이었다면 대성공이었다.
특정 기업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게 목적이었다면 대성공이었다.
일본 경찰에 대한 적개심과 공개적인 도전이 목적이었다면 수만 명의 경찰력과 막대한 수사 자원을 계속 움직였으니 역시 대성공이었다.
언론을 장악하고 자신들의 존재를 과시하는 데 만족을 느꼈다면, 일본 전체가 괴인 21면상의 다음 편지를 기다리는 상황까지 만들어냈으므로 말이 필요 없겠다.
따라서, '범인들은 요구한 현금을 받지 못했다'와 '범인들은 범행을 통해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는 사실 전혀 일맥상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제법 매혹적인 후보가 하나 등장한다.
사건 밖에서 얻은 금전적 이익.
바로 주가조작 세력, 이른바 시테스지 범행설이 그렇다.
만약 범인이 사건 전에 피해 기업의 주가가 폭락할 것을 알고 그 방향에 돈을 걸었다면, 기업에서 현금 가방을 받아오지 않고도 사건을 키울수록 돈을 벌 수가 있다.
그러면 위험한 범행을 계속한 이유도 설명되고 남은 수수께끼가 매력적으로 풀려나간다.
범인들이 사건이 커질 때마다 실지로는 다른 곳에서 돈을 벌고 있었다면 말이다.
허나..
여느 범죄 사건이든 간에, 수수께끼를 너무 잘 해석한다고 해서 곧 그것이 사실인 건 아니다.
경찰은 당시 시테스지 범행 가능성을 수사선에 올렸었다.
그러나 괴인 21면상의 구성원이나 그와 연결된 특정인이 범행 전 피해 기업 주가의 하락에 베팅했고 이후 실제 수익을 실현했다는 거래 기록은 공개적으로 확인된 바가 없다.
행동만으로 어디까지를 추론할 수 있을까?
초기의 범행은 상당히 금전 목적성이 뚜렷하다. 에자키를 직접 납치하고 10억 엔과 금괴를 요구하며 위험한 작전까지 벌였다.
헌데, 돈을 받아내는 데 연이어 실패했는데도 범죄는 중단되지 않았다.
오히려 표적 기업은 늘어나고, 언론을 이용한 도전은 더 커졌으며, 독과자를 사용해 특정 경영진이 아니라 기업의 영업과 소비자 전체를 직접 압박하는 단계로 확대됐다. 현금 전달 작전에서의 어찌보면 소극적으로까지 보이던 그 조심성이, 막상 이어진 행보들을 보면 도통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어쩌면 이러한 모습은 그리 모순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현금 전달 작전에서는 여우눈의 남자조차 미행을 몇 번씩 확인하고, 경찰과 거리를 재면서 좀처럼 돈을 직접 픽업하러 나오질 않았다. 반면 신문사 앞으론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고 범행을 전국에 광고하며, 나중에는 아예 일반 소비자가 언제 독이 든 과자를 집어 들지 모르는 상황까지 만들어버렸다.
한쪽에서는 지나칠 만큼 조심스럽고, 다른 한쪽에서는 일부러 세상 전체의 시선을 자기들에게 끌어당겼다.
언뜻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허나 범죄 수사에서 말하는 검거회피 행동(precautionary acts)의 관점으로 보면 조금 다른 그림이 나온다.
범죄자가 반드시 흔적 자체를 남기지 않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니다.
범죄자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그 흔적이 자기 신원으로 되돌아오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괴인 21면상이 실지로 택했던 방식들을 떠올려보자.
자기 목소리 대신 녹음된 여성과 아이의 목소리를 사용하고, 손 글씨 대신 타입라이터로 문서를 만들며, 자신의 자동차가 아닌 도난 차량을 사용한다. 현금 역시 한 장소에서 직접 받아 가는 대신 피해자를 이곳저곳 이동시키면서 경찰의 추적 여부를 확인했다.
그러니까 이들에게 위험했던 것은 보여지는 것 자체가 아니라, 자신들의 흔적에서 실제 사람 하나를 역추적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했던 셈이다. (이들이 남긴 유류품들은 전부 용의선상 범위를 확대시킬 수 있는 공산품들이었음)
이렇게 생각하면 신문사에 편지를 계속 보낸 행동도 반드시 '범죄의 운영보안'과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편지는 전국에 공개돼도 괜찮다. 그 종이와 문장이 실제 작성자의 신원으로만 이어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오히려 공개될수록 얻는 이익도 있었다.
실제 독과자가 한 매장에서 발견되는 것과, 어디엔가 또 독과자가 있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전국 소비자가 알고 있는 것은 기업이 받는 압력의 크기부터가 완전히 다르다.
말인즉슨, 범행을 널리 알리는 행위 자체가 공격의 일부였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 하나의 부수 효과가 따라왔다.
수사에 들어오는 정보의 양도 폭발했다.
사건이 전국적인 유명 사건이 되면서 저 사람을 닮은 사람을 안다, 수상한 차량을 봤다, 범인 같은 사람을 봤다는 식의 제보가 엄청난 규모로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또 괴인 21면상을 흉내 내 기업을 협박하는 모방범까지 잇따랐다. 경찰청 공식 백서에 따르면 1984년 말까지만 해도 이런 편승형 기업 협박 사건 가운데 32건이 검거됐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수사관 입장에서 보자면, 진범이 남긴 신호와 사건 유명세 때문에 생긴 잡음을 동시에 처리해야 했다. 정보가 적어서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은 정보 속에서 무엇이 진짜인지를 골라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여기서 괴인 21면상이 처음부터 경찰을 이른바 정보의 홍수에 빠뜨리고자 의도적으로 사건을 전국화했다고 단정할 증거는 없다.
범죄학에서 말하는 스테이징(staging)처럼 가짜 단서를 심어 다른 사건처럼 꾸몄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확인되지는 않았다. 따라서 이를 엄밀히 의도적인 기만작전이었다고 부르는 것은 무리겠다.
허나..
범인들이 자신들의 유명세가 경찰 수사를 얼마나 복잡하게 만드는지 전혀 몰랐다고 보기엔 어폐가 있다.
이들은 언론보도를 꼼꼼히 읽고 경찰의 행동을 편지에서 바로바로 언급했으며, 수사 방식을 조롱하면서 그 반응을 지속적으로 관찰했다. (당시는 인터넷 세상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실전에서 다음을 학습했을 가능성 정도는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자신들은 보다 크게 떠들수록 기업에는 더 큰 압력을 줄 수 있고, 반대로 경찰에게는 더 많은 얼굴과 목소리와 제보를 남길 수 있다는 점 말이다.
말하자면, 괴인 21면상이 원했던(처음부터였든 도중부터였든) 것은 자신들의 존재는 최대한 크게 보이되 정작 그 존재를 구성하는 개별 인간은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한 명의 범인을 찾고 있는데 전국에서 수백, 수천 개의 비슷한 얼굴이 튀어나온다면 실제 얼굴 하나는 오히려 그 군중 속에 묻힐 수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이 사건에서 보이는 대담함과 조심성은 서로 반대되는 성격이라기보다, 어쩌면 같은 운영 원칙의 두 얼굴이었을 가능성이 있겠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이렇다.
사회적으로는 최대한 크게 보이고 법의학적으로는 최대한 작게 남긴다
괴인 21면상이 실지로 그러한 전략을 의식적으로 설계했는지는 끝내 확인할 수가 없다.
허나, 그들이 남긴 행동만 놓고 보자면 결과적으로는 놀라울 만큼 해당 방향으로 작동했다.
후반의 하우스식품 사건에서도 범인들은 여전히 실제 현금 1억 엔을 넘겨받기 위한 작전을 진행했다.
그래서 현재 이들의 행동에 가장 잘 들어맞는 것은 단일 동기보다 혼합 동기 모델이겠다.
돈이라는 목적은 끝까지 남아 있었다. 다만 사건이 진행되면서 범행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보상이 점점 많아졌다. 다음 협박의 초기 진입(?)을 낮춰주는 범죄적 평판, 특정 기업에 가해지는 실질적인 손실, 경찰을 계속 앞선다는 내부적인 성취감(그리고 그를 통한 단결력), 일본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자기들 말 한마디로 바꿀 수 있다는 통제감. (특히, 범죄자에게 있어서 이 통제감이라는 욕구는 언제나 우선순위에 놓이는 '동기'에 해당한다)
또, 괴인 21면상이라는 이름 아래 움직이는 집단 자체에서 구성원 스스로가 느끼는 정체성까지.
어떤 구성원이 어느 보상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다. 허나, 이 정도 규모의 장기 공동범행을 단순히 몇몇 이상한 사람들이 재미로 벌인 장난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행동의 복잡성과 지속성을 지나치게 축소하는 것이다.
그리고 1985년 8월 12일.
괴인 21면상은 자신들의 판단으로 범행 중지를 선언한다.
경찰이 핵심 구성원을 체포한 것도 아니고 조직을 와해시킨 것도 아니었다. 더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는 '직접적으로' 돈을 갈취해 낸 적도 없다.
1987년 경찰청도 국회에서 마지막 도전장 이후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었노라 확인했다.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에 스스로 끝을 낸 것일까?
경찰의 수사가 점차 자신들에게 가까워졌다고 판단했던 것일까?
혹은..
조직 내부의 사정이 바뀌었거나 누군가가 이탈했을 수도 있고, 더는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체포에 따른 리스크가 커졌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만약 이들이 순전히 현금 수익만을 목적으로 한 범죄사업체였다면, 기대했던 액수를 아예 달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들이 기껏 쌓아온 브랜드(?)와 수법 전체를 폐기해 버린 모습은 조금 이상하게 보인다.
반대로..
특정 기업에 이미 원하는(속일 풀릴) 만큼 타격을 줬거나, 경찰과 사회를 상대로 충분한 힘을 과시했거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목적이 어느 정도 충족됐거나, 또는 그 모든 보상보다 이제 체포될 위험이 더 커졌다고 집단이 판단했다면..
그렇다면 이러한 자발적인 종료는 조금 더 이해하기 쉬워진다.
의미심장한 것은, '시가현경 본부장이던 야마모토 쇼지(59)가 관사 뒤뜰에서 자신의 몸에 등유를 붓고는 불을 붙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소식과 함께 이들이 발 빠르게 범행 중지를 선포(?)했다는 것이다.
허면, 내부에선 야마모토의 사망 소식을 접함과 함께 '이제는 중단해야 할 때'라는 빠른 합의가 도출됐다는 것이겠다.
즉, 경찰 측 인사의 직접적인 피해로 인한 경찰 내부의 결속력과 보다 공격적인 수사를 사전에 인지했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범인들은 범행 과정에서 서로 각자마다 충족되는 '동기의 해소'가 있었을 테지만..
결국 가장 중요시 여겼던 것은 현금과 같은 금전적 이득 보다도 '공권력에 의해 붙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할 수 있겠다.
강력한 심리적 동기나 범행 목적 그 자체에 의의를 두고 있었다면 좀처럼 이러한 발 빠른 제동력은 발휘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해당 사건에서 정말 흥미로운 질문이란..
'괴인 21면상은 결국 얼마를 벌었을까?' 가 아니라, '이 사람들은 무엇을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라는 것이겠다.
돈이었는가, 복수였는가, 기업의 몰락이었는가, 자신들이 만든 공포가 일본 전체를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었는가..
아니면, 지금까지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전혀 다른 이득(물질적이든 심리적이든)이 있었는가.
그렇게..
괴인 21면상이 무엇을 원했는지는 끝내 확정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그리고 그 답을 알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이 사건을 일본 범죄 역사상 가장 기묘한 수수께끼로 만드는 이유일지 모른다.
에필로그
사건이 끝난 지 거의 9년이 지난 뒤.
일본에서 터진 대형 미제사건 하나가 괴인 21면상과 연결된다.
1994년 8월 5일이었다.
고베 산노미야의 후쿠토쿠은행 고베지점에서 현금 약 5억 4천만 엔이 강탈됐다.
범행은 금요일 오전 9시 20분 무렵 벌어졌다. 일본은행 고베지점에서 현금을 싣고 온 수송차가 은행에 도착해, 행원 세 명이 돈이 든 주랄루민 케이스를 지점 안으로 옮기려던 순간 두 남자가 접근했다.
한 명은 회색 작업복에 야구모자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권총처럼 보이는 물건을 들고 있었으며, 다른 한 명은 아예 얼굴 전체를 붕대 같은 것으로 감고 있었다.
두 사람은 행원 세 명을 현금수송차 뒤쪽에 밀어 넣은 뒤, 현금 5억 4,100만 엔이 든 주랄루민 케이스 세 개를 빼앗아 근처에 세워둔 경승합차를 타고 달아났다. 그나마 다행이게도 다친 행원은 없었다.
한편..
사전에 도주차량이 준비돼 있었다.
범인들이 사용한 차량은 불과 며칠 전 고베 나가타구에서 도난당한 것이었고, 거기에는 또 다른 지역에서 훔친 차량의 번호판까지 붙어 있었다. 그렇게 달아난 차량은 약 30분 뒤 현장에서 700미터가량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지만, 범인과 5억 4,100만 엔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금요일이었다. 은행 측 설명에 따르면 주말에 사용할 자금을 준비하느라 평소 평일의 약 세 배에 달하는 현금을 운반하고 있던 날이었다.
적어도, 우연히 은행에 들어갔다가 눈앞에 놓인 돈을 턴 즉흥적인 강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도난차와 위장용 번호판을 미리 준비하고, 현금수송차가 도착하는 순간을 노려 두 명이 역할을 나눠 움직인 계획범죄였다.
경찰은 사건 발생 약 석 달 뒤 배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의심한 M이라는 인물을 수사선상에 올렸지만, 실지로 지명수배에까지 이른 것은 1999년이었다. 당시 수사 간부는 훗날 이렇다 할 결정타가 없었던 것을 그 이유로 꼽핬고, 그렇게 사건은 끝내 미제로 남았다.
해당 사건과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을 하나로 묶은 사람이 있다.
바로, 기자 모리시타 가에이다.
그녀는 장기간 취재 끝에 <진범―글리코·모리나가 사건 최종보고>라는 책을 펴냈고, 출판사의 공식 소개문에서부터 아예 괴인 21면상의 주모자가 이 5억 4천만 엔을 강탈한(시효도 넘긴) 대형 은행강도 사건의 범인과 동일인이라는 주장을 전면에 내걸었다.
두 사건을 나란히 펼쳐보면 혹하는 부분들이 있다.
둘 다 관서 지역을 무대로 하고, 복수인이 역할을 분담하며, 사전에 준비한 차량과 거액의 현금을 다루고, 경찰 수사가 오랫동안 배후에 닿지 못했다는 것 말이다.
하여, 그 시절 관서 지역에는 이런 대형 범죄를 수행할 수 있는 이른바 공통적 범죄인맥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마치 범죄 오락영화에서 각각의 캐릭터들이 주선자에 의해 팀을 구성하듯)
분명 흥미롭지만, 너무 흥미롭다는 게 문제다.
현재 공개된 경찰 자료에서 후쿠토쿠은행 사건과 괴인 21면상이 동일한 조직이었다는 정황은 확인되지 않으며 같은 DNA나 지문, 같은 총기, 같은 차량, 자금흐름과 같이 두 사건을 직접적으로 묶는 법의학적 연결고리는 입증된 바가 없다.
따라서 모리시타의 취재는 흥미로운 탐사보도 속 가설이라는 범위 내에서만 유효한 것이 사실이다.
에필로그 2
괴인21면상의 정체를 굳이 하나의 구체적인 집단상으로 좁히면서 이야기를 마무리 짓겠다.
괴인 21면상은 단순한 '야쿠자 조직'이나 '글리코 내부자 집단'보다는, '관서권에서 이미 서로 알고 지내던 기업 공갈/사건 브로커/범죄 실무자들이 결합한 소규모 폐쇄형 조직'에 가장 높은 가능성을 두고 싶다.
흥미롭게도..
실제 수사 당시에도 이와 상당히 구체적으로 겹치는 보도가 존재했다.
1985년 일본 국회에서는 그해 4월 5일 일본경제신문의 보도를 인용, 경찰이 '교토대 출신 S라는 48-49세 남성을 리더로 한 6-7인 그룹'을 수사선상에 올렸다는 이야기가 직접 거론됐다.
경찰은 합동수사본부가 그런 내용을 공식 발표한 적은 없다고 부인했으므로, 이를 경찰이 인정한 유력 진범 후보군이라 말할 수는 없겠다.
허나, 적어도 당시 수사 주변에서 이처럼 구체적인 소수집단이 진지한 후보로 보도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된다.
그리고 2년 뒤인 1987년.
일본 경찰청이 국회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범인상은 '여성을 포함한 4-5명 정도로 비교적 통제가 잘 되고 결속력이 강한 그룹'이었다. 후대의 음성 재분석 때문에 여기서 '여성'이라는 부분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졌지만, '소수의 구성원이 장기간 역할을 나누면서도 내부통제가 유지된 폐쇄적인 집단'이라는 기본 그림은 여전히 중요하다.
실제 범행을 되짚어봐도 그렇다.
누군가는 기업과 언론의 반응을 계산하며 협박문을 만들었고, 누군가는 에자키 자택에 직접 침입했다. 별도의 인물이 차량을 운전했고, 이후에는 차량을 훔쳐 도난차를 준비했고, 경찰 무선을 들으며 현금 전달 현장을 감시했다. 또 누군가는 시안화나트륨을 확보하고 상품을 변조했으며, 여러 지역의 매장과 고속도로 및 철도를 이용한 복잡한 현금 전달 경로를 설계했다.
그렇다고 역할 하나마다 사람이 한 명씩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몇 명의 핵심 구성원이 여러 역할을 겸했을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을 1년 넘게 반복하면서도 결정적인 내부고발이나 배신 없이 조직이 유지됐다는 점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돈 한번 벌어보자며 임시로 모인 집단보다는, '이전부터 서로의 능력과 침묵을 신뢰할 만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이들의 출발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오히려 처음부터 '일본의 식품기업들을 상대로 연쇄 공갈을 벌이자'는 계획으로 조직이 결성됐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 출발점에는 '글리코라는 특정 기업이 먼저 우선시됐을 가능성'이 높겠다.
1984년 첫 범행에서 에자키 사장의 생활 패턴과 자택 구조를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 6년 전인 1978년 이미 글리코를 상대로 한 이른바 '쇼와53년 테이프'가 존재한다. 그 테이프에서도 에자키 납치, 방화, 시안화물을 이용한 제품 협박, 거액의 현금 요구, 신문광고를 통한 연락처럼 훗날 실제 괴인21면상 사건에서 나타나는 여러 요소가 미리부터 등장한다.
물론, 1978년 테이프와 1984년 괴인21면상이 동일범이었다는 물증은 없다.
허나 만약 두 사건의 계보가 일부라도 이어진다고 가정한다면, 가장 간명한 그림은 이렇다.
"1970년대부터 글리코와 어떠한 접점/분쟁/원한 또는 공갈관계를 가지고 있던 인물이 있었고, 이후 그 사람을 중심으로 납치와 차량 확보 같은 현장 범죄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들까지 결합하면서 하나의 범죄조직이 결성됐다."
허면, 괴인21면상의 최초 목적 역시 의외로 단순했을 수 있다.
"글리코에 대한 거액의 금전 갈취. 그리고 그룹 구성원 가운데 누군가에게 존재했을지도 모르는 글리코와의 오래된 갈등이나 원한의 해소."
에자키 사장을 실지로 납치해 10억 엔과 금괴 100킬로그램을 요구한 이상, 돈이 단순한 연출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후에도 괴인21면상은 반복해서 현금을 요구했고, 연인관계의 일반 시민을 인질로 잡아 해당 시민을 현금수령책으로 이용할 정도로 실제 돈을 확보하고자 했다.
헌데, 첫 계획은 에자키가 탈출하면서 크게 틀어졌다.
그리고 바로 여기서 범죄의 성격이 변했을 가능성이 있다.
범인들은 자신들이 글리코를 위협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자산 하나를 얻게 됐다.
바로, '괴인21면상'이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브랜드의 공포와 신뢰성 말이다.
사장을 실지로 납치하고, 회사 시설에 불을 지르고, 훗날에는 정말 시안화나트륨이 든 과자까지 매장에 놓았다는 사실이 전국에 알려지면서 괴인21면상은 더 이상 정체불명의 협박범이 아니었다. 새로운 회사에 편지 한 통만 보내도 상대가 '그 독과자를 실제로 뿌린 놈들'이라고 알아보는 범죄적 브랜드가 된 것이다.
그때부터 범행은 '글리코 하나를 대상으로 한 거액 공갈에서, 이미 만들어진 공포의 평판을 다른 식품 회사에 재사용하는 연쇄 기업 공갈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마루다이, 모리나가, 하우스식품, 후지야, 스루가야로 표적이 계속 확장된 것도 해당 그림이라면 이해하기가 쉽다. 글리코에서 돈을 얻는 데 실패했더라도 괴인21면상이라는 이름이 살아 있는 한 새로운 기업을 상대로 다시 현금거래를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이러한 표적 확대는 뜻하지 않은 또 하나의 효과도 만들었다.
만약 범인의 최초 출발점에 정말 글리코와의 오래된 인연이 있었다면, 계속 글리코만 공격할수록 경찰은 '글리코와 과거에 관계가 있었던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찾게 된다. 허나 서로 관련 없는 식품 회사들까지 연이어 공격하면서 사건은 어느 순간 '글리코에 원한을 가진 사람의 범죄'가 아니라 '식품기업 전체를 노리는 괴인21면상의 연쇄 공갈'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를 범인들이 처음부터 계산한 기만 전략이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허나, 결과적으로는 '조직의 최초 출발점을 희석시키는 효과'까지 자아냈다.
그렇다면..
이 집단의 최종적인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돈은 분명 실제 목적이었다. 동시에 초기에는 글리코와 관련된 별도의 원한이나 이해관계가 존재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리고 사건이 커진 뒤에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공포와 명성 자체가 또 다른 범죄 자산이 됐다. 경찰을 반복해서 따돌리고 언론을 움직이며 기업의 판매망을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집단 내부의 위신이나 성취감, 통제감 역시 부수적인 보상이 됐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겠다.
"괴인21면상은 관서권에서 오래전부터 글리코와 어떠한 접점을 가지고 있던 인물을 중심으로, 기업 공갈과 현장 범죄에 익숙한 기존 인맥이 결합해 만들어진 소규모 폐쇄 조직이었으며, 최초에는 글리코를 상대로 한 거액 갈취와 모종의 갈등 해결을 목적으로 움직이다가, 첫 계획이 실패한 뒤 자신들이 만들어낸 '괴인21면상'이라는 공포의 브랜드를 이용하는 연쇄 기업 공갈 집단으로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경찰 내부에서 존재했다던 후보군 가운데 해당 가설과 유난히 흥미롭게 겹치는 것이..
바로, 1985년 일본경제신문에 등장했던 '교토대 출신 S를 리더로 한 6-7인 그룹'이다.
조금 더 들여다보자면..
당시 보도 내용은 단순히 '그런 그룹이 의심된다'는 수준도 아니었다.
1985년 5월 17일 일본 중의원 법무위원회에서 하야시 햐쿠로 의원이 직접 읽어 내려간 4월 5일 자 일본경제신문 기사에 따르면..
오사카부경과 효고현경 등의 합동수사본부는 그달 4일까지 '교토대 출신의 S라는 48-49세 남성을 리더로 한 6-7인 그룹'의 존재를 파악하고, 일련의 범행이 벌어진 날짜별 알리바이와 주변 관계를 극비리에 조사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도됐다.
당시 수사당국은 이미 여러 그룹을 수사선상에 올린 뒤 각각 프로젝트팀을 붙여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었으며, S그룹 역시 그 후보 가운데 하나였다는 내용이었다. 흥미롭게도 하야시 의원은 회의장에서 S의 실제 이름도 알고 있지만, 신문이 이니셜로 표기했으니 자신도 S라고만 부르겠다고 언급했다.
허나 경찰청 수사1과장은 해당 보도가 있었던 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합동수사본부가 그런 내용을 발표하거나 비슷한 취지의 코멘트를 한 사실은 전혀 없노라 답변했다. 기사에서 지목한 대상이 누구인지도 명확하지 않으며 사건이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구체적인 내용 확인 역시 거부했다.
이렇듯..
애석하게도..
경찰은 해당 보도를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지 않았으며, S그룹을 괴인21면상과 연결하는 결정적인 물증 또한 공개된 바가 없다.
참조
<朝日新聞出版/グリコ・森永事件「最終報告」真犯人> 森下香枝
<文春オンライン/「けいさつのあほどもえ」7人も刑事が目撃したが「キツネ目の男」に職質できなかった理由> 藤原健
<文春オンライン/〖グリコ・森永事件〗Nスペで放送できなかった「4人目の子どもの声」…「ワー」「キャッキャッ」> 中村直文
<文春オンライン/グリコ・森永事件の現場鑑識が記した“誘拐現場の異様”「犯罪傾向の進んだ人物による計画性の高い犯行というのが第一印象」《昭和の未解決事件》> 山下征士
<江崎グリコ/協同一致 Glicoグループ100年史各種ガイド版 会社の歴史(1980-1991)>
<幻冬舎/グリコ・森永事件 最重要参考人M> 宮崎学 & 大谷昭宏
<警察庁/昭和60年 警察白書 第2章 犯罪情勢と捜査活動>
<警察庁/平成12年 警察白書>
<神戸新聞NEXT/グリコ森永事件の現場コンビニ移転 発生から36年>
<神戸新聞NEXT/浮かんでは消えた「キツネ目の男」 「倉庫に社長監禁」12万5千人が捜査対象に グリコ・森永事件18日で40年>
<神戸新聞NEXT/福徳銀行事件30年、元捜査員「不手際が重なったんや」 時効成立、「証拠が弱い」と任意聴取できず>
<国立国会図書館 国会会議録検索システム/第102回国会 参議院 地方行政委員会 第3号 昭和59年12月11日>
<国立国会図書館 国会会議録検索システム/第109回国会 参議院 農林水産委員会 第7号 昭和62年9月10日>
<国立国会図書館 国会会議録検索システム/第109回国会 参議院 農林水産委員会 第8号 昭和62年9月17日>
<共同通信/グリコ・森永事件 兵庫県警、脅迫テープの一部を初公開>
<新潮社/未解決事件 グリコ・森永事件 捜査員300人の証言> NHKスペシャル取材班
<新聞研究 403号/ドキュメント「グリコ・森永事件」報道協定> 古野喜政
<衆議院/第221回国会 法務委員会 第8号 令和8年5月8日>
<筑波大学つくばリポジトリ/脅迫文の分析と解釈―江崎グリコ事件から> 芳賀純
<読売新聞/6年前、酷似の脅迫状 1億要求テープ グリコ役員宅へ 初老の男「毒入れる」>
<読売新聞/53年のグリコ脅迫 「21面相」首謀者と断定 挑戦状に言葉遣い酷似 テープ鑑定>
<読売新聞/グリコ・森永事件 脅迫テープに近江鉄道の通過音 沿線にアジトか>
<KADOKAWA / 二本の棘 兵庫県警捜査秘録> 山下征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