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편] 고대에서부터 기록된 작품 속 UFO+외계인

(Zentralbibliothek Zürich)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활용해서 낯선 것을 이해합니다.

구름에서 강아지를 보고 벽면의 얼룩에서 사람의 얼굴을 찾아냅니다. 불완전한 시각 정보를 빠르게 해석해야 하는 인간의 지각력에 있어선 꽤나 자연스러운 일이죠.

그리고..

고대에서부터 중세, 르네상스, 계몽시대에 이르기까지 UFO(+외계인)가 기록된 작품들이 존재합니다.

아니, 현대에 들어와 UFO라고 일컬어지기 시작한 작품들이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까마득한 고대에서부터 외계인이 UFO를 타고 지구를 방문했으며, 예술가는 자신들의 작품 속에 그러한 것을 기록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그 시대의 문화성이 담긴 상징법 또는 시대상에 따른 미술사적 표현법을 그저 현대인의 시각에서 간과한 것에 불과한 걸까요?

지금부터 함께 탐구해 봅시다.

(다음의 특정 전문용어는 중복해서 등장하므로 미리 알아두시면 편리함.

도상: 특정 인물이나 사건/개념을 나타내기 위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이미지와 상징/표현 방식을 의미. 쉽게 말해, 당시 사람들이 어떤 대상을 어떻게 그려서 알아보게 했는가에 관한 일종의 그림 언어인 셈)

1. 사하라 사막의 우주복을 입은 사람들
타실리 나제르 원두형 암벽화 / 대략 1만-7천 년 전으로 추정, 정확한 연대는 논쟁 중, 선사 미술 전통

(Mohammed Beddiaf)

지금은 끝없이 메마른 사막이 펼쳐져 있는 알제리 남동부의 사하라 사막. 그곳에는 타실리 나제르라는 거대한 사암 고원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해당 지역에는 1만 5천 점이 넘는 암벽화와 암각화가 남아 있고, 사하라의 기후와 인간 생활이 수천 년 동안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한 장소에서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유독 기괴한 그림들이 존재한다. 사람인데 얼굴이 없으며, 머리는 크고 둥글고, 몸은 현실의 인간과는 꽤나 다른 비율로 그려져 있다. 어떤 존재는 공중에 떠 있는 듯하고, 또 어떤 것은 머리 주변이 헬멧이나 거대한 후광처럼 부풀어 있다.

현대인의 눈에는 우주복을 입은 사람이나 외계인의 모습과 너무도 겹쳐지는 게 사실.

이 그림들은 흔히 Round Head, 즉 원두형 미술로 불린다. 둥글고 특징 없는 머리와 형태가 흐릿한 몸, 떠 있는 듯한 인물 표현이 대표적 특징.

프랑스의 유명한 탐험가 앙리 로트는 1950년대 이 타실리 미술을 대대적으로 기록하는 과정에서 일부 기괴한 인물들에게 농담 삼아 '화성인' 같은 별명을 붙였다. 그리고 해당 별칭은 그 자체로 너무도 강력했다.

여담으로 2024년 프랑스 국립자연사박물관 산하 인간박물관은 로트 팀이 남긴 세파르의 유명 트레이싱(암벽화의 윤곽을 베껴 옮긴 것) 자체도 완벽하게 복사한 것이 아니라, 일부가 잘못되고 실제 벽면에 존재하는 이미지의 약 3분의 1만 담긴 불완전한 기록이라고 전한다. 즉, 적어도 이 트레이싱을 바탕으로 인터넷에 재생산된 '고대 외계인' 이미지는

원작 -> 1950년대 트레이싱 -> 현대 복제

라는 여러 층을 거친 셈.

그럼 당시 사람들은 실지로 무엇을 그린 걸까?

정확히는 알 방도가 없다. 특정한 신을 나타낸 것인지, 의례를 행하는 사람인지, 가면이나 신체 장식을 표현한 것인지, 신화적/초자연적 존재인지 무엇도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같은 지역의 원두형 미술 전통에 속하는 그림들을 함께 놓고 보면 둥근 머리와 비현실적인 신체, 거대한 인간형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즉, 당시 공유되던 시각 문법이라는 것.

여기서의 시각 문법이란, 그 시대 사람들이 인물이나 특정한 존재를 표현할 때 관습적으로 반복해 사용하던 표현 방식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괴한 모습의 인간형 존재 하나하나를 두고서 실제 생물의 생김새를 그대로 옮긴 기록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먼저 당시 사람들이 공유했던 '그림의 표현 관습'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겠다.

2. 고대 이집트 무덤에 나타난 그레이 외계인
프타호테프와 아케트호테프의 마스타바 / 이집트 고왕국 제5왕조 말기, 기원전 24세기 전후

(Cosmic Conspiracies)

고대 이집트 사카라의 프타호테프 무덤 부조(평평한 벽면을 파거나 도드라지게 새긴 조각). 이 부조 한구석에는 커다란 머리와 검은 아몬드형 눈을 가진 존재가 자리하고 있으며, 해당 존재는 바로 고대의 그레이 외계인이었노라 오랫동안 소비돼왔다. 저화질 이미지로 보면 정말 그레이 외계인의 얼굴처럼 보인다.

편견(?)을 버리고서 다시 봐보자. 벽에는 사냥과 어업, 동물 묘사, 놀이, 제물과 일상생활 장면이 여러 층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고화질 이미지로 보면 외계인의 얼굴은 기존 인식 속에서 사라진다.

(Bonechi)

'두 개의 거대한 눈'으로 보였던 검은 형상은 식물의 잎으로, 얼굴 아래쪽처럼 보였던 윤곽은 그 식물을 담은 용기로 읽히며, 주변 장면에서도 유사한 식물/용기/제물 요소가 반복됨을 알 수 있다. 즉, 그레이 외계인의 얼굴이 아니라 장례와 제물을 표현한 도상의 일부였던 것이다.

여기서의 도상이란, 특정 인물이나 사건/개념을 나타내기 위해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이미지와 상징/표현 방식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당시 사람들이 어떤 대상을 어떻게 그려서 알아보게 했는가에 관한 일종의 그림 언어인 셈.

3. 헬멧을 착용한 입이 없는 외계인
완지나 / 서호주 킴벌리, 적어도 약 5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오늘날까지 이어진 암벽화 전통

(Graeme Churchard)

호주 북서부 킴벌리의 암벽에는 둥글고 하얀 얼굴, 커다란 검은 눈, 입이 없는 인간형 존재들이 그려져 있다. 머리 주변으론 거대한 원형의 테두리가 둘러져 있어, 현대 UFO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겐 그레이 외계인의 얼굴이나 투명한 우주 헬멧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완지나는 호주 원주민 워로라(Worrorra)/응가리닌(Ngarinyin)/우남발(Wunambal) 계통 공동체에서 지금도 문화적 의미가 이어지는 '창조와 관련된 신화적 존재'이며, 그림을 다시 칠하고 유지하는 재도색 행위 자체가 전통의 일부로 남아 있을 정도다.

해당 완지나와 지역을 돌볼 권리 및 책임을 지닌 원로들이 암벽화를 재도색했고, 그러한 행위는 우기의 시작과 연결된다. 그러니까 머리 주변의 'halo'와 방사형 선은 구름과 번개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되며, 일부 완지나 표현에 등장하는 진주조개 장식 역시 비를 부르는 것과 연관된다.

우리식으로 굳이 비유하자면, 완지나를 다시 칠하고 돌보는 행위에는 일종의 기우 의례와 비슷한 성격도 있는 셈.

원주민 예술가들의 완지나 작품. 좌측 상단부터 Alec Mingelmanganu, Charlie Numbelmoore, Waigin Djanghara, Lily Karedada의 작품

인터넷에선 종종 고대인들이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을 신으로 떠받들어 이러한 암벽화를 기록했다고 설명한다.

허나 해당 공동체의 문화에서 해석하면 비와 번개, 조상과 법, 의례/공동체 질서와 연결된 그들 특유의 문화적 존재인 것이다. 쉽게 말해, 완지나는 원주민의 종교적/문화적 존재이고, 우리가 보는 암벽화는 그 존재를 표현한 도상이라는 것.

4. 파라오의 신전에 새겨진 헬리콥터, 잠수함, 전투기
아비도스 세티 1세 신전 / 제19왕조, 세티 1세와 람세스 2세의 명문이 겹친 13세기 BCE 팔림프세스트

(Olek95)

아비도스 세티 1세 신전의 석재 아키트레이브(기둥 위를 가로지르는 수평 들보)에는 정말 헬리콥터처럼 생긴 형상이 있다. 위에는 긴 로터, 뒤에는 꼬리처럼 보이는 선이 있고, 주변에는 잠수함이나 전투기 같은 실루엣까지 늘어서 있다. 아무리 봐도 그렇게만 보인다.

헌데, 해당 형상들은 고대 이집트인이 한 번에 그린 하나의 그림이 아니다. 세티 1세의 기존 왕명/칭호 위를 메우고 후계자 람세스 2세의 문자를 다시 새겼는데, 수천 년 동안 충전재와 표면이 떨어져 나가면서 옛글자와 새 글자의 일부가 포개지면서 우연찮게 그러한 모양을 형성한 것.

즉, 이는 문자 두 층이 겹친 팔림프세스트(기존 글을 지우거나 메운 뒤 그 위에 새 글을 덧써, 이전 글의 흔적과 새 글이 겹쳐 남은 것)다.

그러니까 먼저 한 문장이 있었고 그 위를 메운 뒤 다른 문장이 새겨졌는데, 이후 충전재가 떨어지면서 두 문장의 잔해가 제3의 형상을 만든 것이다. 재미있게도, 두 파라오의 글자가 3천 년 뒤 우연히 헬리콥터/잠수함/전투기를 조립했던 셈이다.

(Hypnôs)

참고로, 여기에 새겨졌던 세티 1세와 람세스 2세의 핵심 왕실 칭호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탄생을 새롭게 하는 이, 강대한 팔을 지닌 이, 아홉 활을 물리치는 이. 상·하이집트의 왕, 두 땅의 주, 멘마아트레."

"이집트의 수호자, 이방의 땅들을 제압하는 이. 상·하이집트의 왕, 두 땅의 주, 우세르마아트레-세테펜레."

(아홉 활: 이집트 왕권 도상에서 파라오에게 복속되는 여러 외적/적대 세력을 상징하던 전통적인 표현)
(멘마아트레: 라의 마아트가 확립되어 있다)
(우세르마아트레-세테펜레: 라의 마아트는 강력하며, 라에게 선택된 자)
(라: 태양과 연결된 고대 이집트의 주요 신으로, 파라오의 왕권과도 매우 밀접하게 연결)
(마아트: 고대 이집트에서 진리/정의/질서, 특히 우주와 사회가 올바르게 유지되는 질서를 뜻하는 핵심 개념이자 이를 의인화한 여신)

5. 일본에서 출토된 고대의 우주복을 착용한 외계인
샤코키 도구 / 조몬 만기 중심, 대략 기원전 1200-400년

(东京国立博物馆)

거대한 머리, 몸보다 지나치게 큰 눈 부위, 전신을 덮은 복잡한 무늬, 관절처럼 나뉜 띠와 부풀어 오른 팔다리. 일본 조몬시대의 도구 가운데 이른바 샤코키 도구는, 'NASA가 존재하기 수천 년 전에 존재했던 우주복'으로 보기에 꽤나 그럴듯하다.

여기서 조몬시대의 '도구'는 道具가 아닌 土偶로, 사람의 모습을 본떠 흙으로 빚은 작은 조형물을 의미한다.

이 샤코키 도구는 조몬 말기에 해당하는 만기에 특히 유행한 유형으로, 그 이름(遮光器)부터가 심상치 않다. 말 그대로 빛을 가리는 도구라는 뜻인데, 물론 조몬 사람들이 붙인 이름은 아니다. 크게 부풀어 오른 눈이 이누이트가 설원에서 사용하던 차광기, 즉 스노 고글과 닮았다고 해서 후대에 붙은 분류명이다.

해당 도구는 정확히 무엇에 쓰였던 것일까?

도구의 정확한 기능은 여전히 논쟁 중이다. 특히 샤코키 계열은 대부분 여성형으로 해석되며 옷의 무늬와 귀 장식, 몸의 문양이나 문신, 머리모양 같은 요소가 매우 정교한 것을 알 수 있다. 많은 도구가 파손된 상태로 발견되는 데다 일부 출토 맥락도 의례적 성격을 보여, 치유/주술/의례와 관련한 여러 가설이 제시돼 왔다. 일부러 신체 일부를 부러뜨렸다는 해석도 유명하지만, 모든 파손이 의도적인 것이었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그러니까, 헬멧처럼 보이던 머리는 다양한 머리 장식과 과장된 신체 표현을 특성으로 지닌 그 시대의 토우 전통으로 해석해야 마땅하겠다.

여담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도구는 약 2만 점에 이를 정도. 허나, 아직도 정확한 용도가 하나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현재 고고학계에서는 실생활에 쓰는 물건이라기보다 기도 및 의례와 관련된 조형물이었다는 큰 틀에 무게가 실린다. 특히 유방과 불룩한 배를 지닌 여성형이 많아 임신 및 출산, 자손 번성, 풍요를 비는 목적과 연결 짓는 해석이 가장 대표적이다.

6. 예수의 무덤 뒤에 착륙한 원반형 UFO
상크타 상크토룸 성유물함의 '무덤을 찾은 여인들' / 6세기

(Sancta Sanctorum)

작은 목제 성유물함(성인의 유해 및 성지의 물건 등 종교적으로 성스럽게 여긴 유물을 보관하는 함)의 뚜껑 안쪽에 그려진 것으로, 예수의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 뒤로 돔 형태의 UFO가 착륙해 있다. 인터넷에선 예수의 부활 현장에 나타난 UFO로 소개되기도. (이미지의 가장 상단 좌측)

그렇다면, 이 둥근 돔 형태는 무엇일까? 예수를 부활시키려고 지구를 방문한 UFO?

현재 바티칸 박물관은 해당 성유물함 뚜껑을 6세기 작품으로 편년 한다(자료와 양식 등을 비교해 제작 시기를 정하는 것). 팔레스타인에서 제작됐을 가능성이 높으며, 내부에는 성지의 흙과 돌이 그리스어 표기와 함께 보관됐다. 그러니까 일종의 '휴대용 성지'였던 셈이다. 뚜껑에는 탄생과 세례, 십자가형, 무덤을 찾은 여인들, 승천 같은 예수의 생애 장면이 압축돼 있다.

문제의 UFO는, 사실 예루살렘의 성묘를 나타내는 건축도상(특정 건축물을 알아보게 하는 상징적 표현)이다. 연구자들은 이 장면이 예수의 무덤을 감싼 에디큘(Aedicule, 작은 사당/성소 형태의 건축 구조)과 그 주위를 둘러싼 아나스타시스 로툰다(성묘를 중심으로 세워진 원형 건축공간)를 한 화면에 압축해 표현한 것으로 본다. 특히 UFO처럼 공중에 떠 있는 듯 보이는 위쪽의 둥근 형상은 로툰다의 돔을 나타낸다.

그렇게 좁은 프레임(일종의 컷) 안에 돔과 지붕, 기둥, 입구 같은 건축 특징이 압축되니 우리의 시선에선 건물이 마치 UFO처럼 보이는 것.

현대인은 건물이라면 바닥과 벽, 지붕이 현대적인 원근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마땅하다고 기대한다. 허나 이 6세기의 제작자는 그 공간을 사진처럼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곳은 예루살렘의 그 무덤'이라는 정보를 압축해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7. 우주선을 조종하는 마야의 왕
키니치 하나브 파칼의 석관 뚜껑 / 팔렌케, 7세기 후반

좌측은 고대우주인설에 따라 재연한 모형 (Gaia)

멕시코 팔렌케(고전기 마야의 대표적인 도시국가 및 유적) 비문의 신전 깊숙한 곳에서 발견된 왕 파칼의 석관 뚜껑은 고대우주인설을 대표하는 이미지다. 워낙 유명하기에 미스터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봤을 그림이겠다.

그림은 마치 누군가가 몸을 앞으로 숙여 조종간을 만지고, 발은 페달에 얹은 채 복잡한 엔진과 배관 속에서 로켓을 조종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래쪽으론 불꽃이나 배기가스처럼 보이는 형상까지 있다.

허나 해당 인물은 팔렌케의 왕 K’inich Janaab Pakal이며, 석관 주변의 마야 문자와 무덤 전체의 장식은 그의 죽음/왕권/사후세계라는 공통된 주제 아래 구성돼 있다. 마야의 왕 파칼은 683년에 사망했고, 신전의 장식과 건축은 그의 후계자 하에서 마무리됐다.

(Merle Greene Robertson)

'우주선'의 중심을 이루는 십자형 구조는 마야 도상학(그림과 상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연구하는 분야)에서 세계수(하늘/지상/저승을 이어주는 우주적 나무)와 연결된다. 아래쪽에는 저승/제의(종교적 의식)/신성한 왕권과 연관된 요소가 있고, 주변과 문자까지 함께 놓고 보면 기계의 단면도가 아닌 죽음과 재생을 우주 구조 속에 배치한 왕실 장례도상(왕의 죽음 및 사후세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으로 읽힌다.

파칼 왕의 몸 아래쪽에서 로켓 엔진과 화염처럼 보였던 부분은 지하 세계의 벌어진 아가리와, 파칼을 떠받치는 백골화된 '사분 표장(Quadripartite Badge)'이 겹쳐 보이는 부분이다. 이 사분 표장은 조개껍데기와 가오리 가시, 천 묶음이 담긴 불붙은 제의용 그릇으로 해석되며, 옥수수 신 도상은 별개의 하단 물체라기보다 파칼 자신에게 부여된 죽음과 재생의 정체성과 연결된다.

파칼의 코 근처에 위치해 산소 호흡기처럼 보이는 작은 장식 역시 기계 장치가 아니라 코 장신구를 표현한 것이다. 팔렌케의 실제 출토품 연구에 따르면 이런 코 장신구는 왕과 사제가 신격을 구현하는 의례에서 착용한 엘리트 복식의 일부였고, 파칼의 석관 부조에도 같은 유형이 표현돼 있다.

여담으로 파칼의 자세는 한 방향으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어떤 연구는 그가 지하 세계의 아가리에서 솟아오르는 장면을 강조하고, 다른 설명은 지하 세계로 내려감과 옥수수 신으로 다시 태어나 올라옴을 함께 담은 죽음과 재생의 변환으로 읽는다.

결론적으로, 이는 한 왕의 죽음과 사후세계를 마야인들의 우주관 속에 배치한 장례도상인 것이다.

8. 십자가 옆에서 날아가는 두 명의 우주비행사
비소키 데차니 수도원 십자가형 프레스코 / 1338-1348년

(Visoki Dečani Monastery)

코소보의 비소키 데차니 수도원 내 십자가형 프레스코(회벽이 마르기 전에 안료로 그리는 벽화)에는 예수 양옆 하늘로 길쭉한 물체 두 개가 떠 있다. 물체 안에는 인간형이 탑승해 있고 뒤쪽에는 광선이나 추진 불꽃처럼 뾰족한 선이 표현됐다. 음모론자들의 '조종사가 탄 우주선', 'UFO와 외계인'이라는 해석이 지당해 보일 정도로 강렬한 존재감을 자랑한다.

수도원 공식 미술사 자료에 따르면, 교회 내부의 방대한 프레스코 전체는 여러 화가가 약 10년에 걸쳐 작업했으며 제작 기간은 1338-1348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예수 양옆으로 의미심장하게 연출된 이 두 비행체(캡슐코러페이션의 제품으로 보이는)의 정체는 무엇일까?

(Visoki Dečani Monastery)

핵심 도상은 태양과 달의 의인화다.

중세 기독교 미술의 십자가형 주제 작품에서는 복음서의 어둠과 예수의 죽음을 우주적 의미를 표현하면서 태양과 달을 십자가 양옆에 놓는 전통이 오랫동안 반복됐다. 어떤 작품에서는 단순한 원반이고, 어떤 작품에서는 얼굴을 가진 원이며, 또 어떤 경우에는 고대 그리스/로마의 전통을 이어받아 인간형 존재로 표현된다.

해당 프레스코의 특이점은 그러한 태양과 달이 눈물방울 또는 길쭉한 캡슐 같은 외곽 안에 자리한다는 것이겠다. 이로 인해 UFO스러운 인상도 훨씬 강해졌다.

허나 그림에서 상징하는 대상은 태양과 달이고, 인간형 천체는 오래된 기독교 도상전통(특정 성서 장면을 일정한 상징과 배치로 반복해 표현해온 관습)과도 연결된다.

이제부터는 조금 딥하게 들어가겠다.

고대 후기와 비잔틴, 서유럽 중세 화가들은 예수의 죽음이 지상의 사건에 그치지 않고서 온 우주가 슬퍼하며 응답한 사건임을 보여주고자, 십자가 양옆 하늘에다 태양(보통 예수 오른쪽, 관람자 기준 왼쪽)과 달(예수 왼쪽, 관람자 기준 오른쪽)을 나란히 배치하는 구도를 수백 년 동안 반복해서 그렸다.

이때 태양과 달을 오늘날처럼 단순한 동그라미로만 그린 게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로마 미술에서 태양신과 달의 여신을 인간의 모습으로 의인화했던 시각적 전통이 후기 고대와 비잔틴을 거치며 기독교 미술에도 계승 및 재해석되면서, 원반이나 빛의 영역 안에 인간의 상반신이나 얼굴을 그려 넣는 '천체의 의인화'가 이어졌던 것.

실지로 해당 비소키 데차니 벽화의 두 물체를 자세히 보면, 왼쪽 형상에는 붉은 원반에서 여섯 갈래의 광선이 바깥으로 뻗어 있다. 중세 미술에서 태양은 붉거나 황금빛을 띤 원반과 방사형 광선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흔했기 때문에, 이쪽은 태양을 식별하기에 비교적 직관적이다.

반면, 오른쪽 형상은 그 정체가 조금 덜 직관적이다. 이쪽 역시 인간형 존재가 천체 안에 들어가 있으며, 바깥으로 세 갈래의 광선이 뻗고 그 앞뒤로 두 개의 8각별이 함께 그려져 있다.

여기서 8각별 자체가 곧 '달'을 의미하는 전용기호는 아니다. 다만 별들이 인간형 천체의 주위에 배치되면서, 태양과 대비되는 밤하늘의 천체라는 성격을 한층 분명하게 만든다. 실제 미술사 연구에서도 왼쪽 전체를 태양의 의인화, 오른쪽 전체를 달의 의인화로 식별하며, 오른쪽의 두 8각별 역시 달 형상의 세부 요소로 해석한다.

9. 로마 하늘을 뒤덮은 비행접시 모선
마솔리노 다 파니칼레,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의 창건' / 1427-1429년경

(Masolino da Panicale)

이탈리아 화가 마솔리노의 해당 작품 속 하늘에는 납작한 회색/검은 타원들이 수십 개 떠 있다. 현대 UFO 학문(?)에 따르면 전형적인 원반형 UFO 편대로 해석되며, 맨 위의 커다란 구름 위에는 예수와 성모가 자리한다. UFO학 담론으로 치환하면, 거대한 모선 아래 소형 비행체들이 편대를 이루고 예수와 성모는 외계 문명과 밀접한 관계로 이어진다.

허나, 해당 작품의 주제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 창건(성당을 처음 세운 유래)과 관련한 '한여름의 눈 기적'이다.

8월 초 교황과 로마 귀족의 꿈에 성모가 나타나 눈이 내리는 장소에다 성당을 세우라 지시했고, 다음 날 에스퀼리노 언덕에 기적적으로 눈이 내렸다는 후대 전승을 그린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납작한 형상에서 하얀 점(작아서 자세히 봐야 함)들이 떨어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모선에서 소형 UFO들이 출동하는 게 아니라, 눈을 내리고 있는 구름을 표현한 것이니까.

15세기 화가들은 구름을 현대 사진 속 적운처럼만 그리지 않았다. 얇고 납작한 층을 겹치거나 천상의 영역을 받치는 무대처럼 형식화했고, 같은 시대의 여러 화가에게서 비슷한 렌즈형 구름이 나타난다. 종교화에서 구름은 기상학적 대상이면서 동시에 지상과 신적 공간의 경계를 만드는 시각 장치였던 셈이다.

15세기 관람자에게 구름으로 읽히던 형태가 20세기의 관람자에게 비행접시가 된 것은 그림의 형태가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다. 구름을 분류하는 관람자의 시각사전(눈으로 본 형상을 무엇으로 인식할지 결정하는 익숙한 이미지의 목록)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10. 성모에게 광선을 쏘는 원반형 비행체
카를로 크리벨리, '성 에미디우스와 함께 있는 수태고지' / 1486년

(Carlo Crivelli)

연출 자체의 강렬함으로 인해 UFO 음모론자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작품.

르네상스 도시 상공의 구름 속 둥근 영역에서 가늘고 강한 황금빛 광선이 내려온다. 빛은 건물 사이를 지나 벽의 작은 구멍을 통과한 뒤 방 안에서 기도하는 성모 마리아의 머리에 정확히 도달한다. 거리의 인물도 이에 반응하는 듯 보인다.

현대 UFO 학문(?)적 담론으로 번역하자면, '상공의 원반형 비행체가 여성에게 빔을 발사하는 장면'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빔을 받고 있는 여성은 예수의 모친인 성모 마리아다.

해당 작품의 주제는 수태고지(천사 가브리엘이 성모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하게 될 것임을 알리는 사건)다. 따라서, 처녀의 몸으로 예수를 잉태한 '방법'이 UFO의 빔이라는 의미가 되겠다.

물론, UFO학이 아닌 미술학적으로 보자면 얼토당토않은 음모론에 불과하다.

성모를 향해 빛을 따라 내려오는 비둘기는 성령을 상징하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줄기는 기계가 발사한 빔이 아니라 신적 개입을 현실 공간 안에다 시각화한 것이다. 신적 개입을 현실 공간 안에다 시각화한 것이다. 원반처럼 보이는 둥근 영역 역시 금속 비행체가 아니라, 구름 속 천상 영역을 시각화한 부분이고 말이다.

(Carlo Crivelli)

당시 종교 회화에서 구름이 갈라지거나 빛나는 영역이 열리고 그곳에서 광선이나 천사가 나타나는 표현은, '기상현상의 기록'이라는 개념이 아니다. 이는 지상의 현실 공간과 신적/천상 영역이 맞닿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구분해 보여주는 관습에 가까웠다. 현대인의 눈에는 마치 UFO나 포털의 출몰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하늘이 열리고 신의 개입이 내려온다'는 종교적 사건을 표현하는 하나의 시각적 언어였던 셈이다.

즉 이 작품은 성화의 단골 주제인 수태고지를 당시 기독교 도상(성서의 인물/사건/개념을 일정한 상징과 이미지로 표현하는 전통)에 따라 연출한 것이다.

그러니까, 외계 문명의 개입이 아니라 수태고지를 당시의 종교관과 미술 전통에 따라 연출한 작품이라는 것.

11. 1490년경에 그려진 구체형 UFO
자크 르그랑의 'Livre des bonnes moeurs' 필사본 삽화 / 약 1490년, 삽화가 미상

(Jacques Legrand)

프랑스 샹티이의 콩데 미술관이 보관한 해당 필사본(손으로 글을 쓰고 삽화와 장식을 더해 만든 책)에는 기묘한 물체가 등장한다. 한 여인이 거대한 수레바퀴 옆에 서 있고, 그 주변으로는 군중과 더불어 공중에 떠 있는 황금빛 구체가 그려져 있다.

둥근 몸체와 복잡한 장식. 요즘 유행하는 '금속 재질의 구체형(orb) UFO'를 자연스레 연상시킨다.

그렇다면, 문제의 둥근 물체는 무엇일까?

그림 왼쪽 여인의 정체부터 확인하면 실마리가 보인다. 그녀는 Fortune, 즉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다. 옆의 거대한 바퀴 역시 중세 미술에서 인간의 흥망과 변덕스러운 운명을 상징하던 그 유명한 '운명의 수레바퀴'다.

그리고 포르투나는 고대부터 바퀴뿐 아니라 구체(orb)와도 연결돼 표현됐다. 여기서 구체는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세계와 그 운명을 상징하는 도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문제의 황금빛 구체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포르투나의 세계구(세계를 하나의 구체로 나타낸 상징적 이미지)로 보는 해석이 가장 자연스럽다. 특히 표면이 장식선을 통해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는 당시 유럽에서 세계를 아시아/유럽/아프리카 세 부분으로 나타내던 중세의 T-O 지도(바깥의 원은 세계를 둘러싼 바다, 내부의 T자는 세 대륙의 경계를 나타내는 중세 서유럽식 세계지도)를 연상시킨다.

그러니까 도상 맥락상 문제의 물체는 UFO라기보다 포르투나와 연결된 상징적 구체, 특히 세계구로 읽는 해석이 훨씬 자연스럽다는 것.

12. 성모 마리아의 주변을 비행 중인 아담스키형 UFO
본 노트르담 성당 '성모의 생애' 태피스트리 / 15세기 4/4 분기, 1500년 완성

(Conseil régional de Bourgogne)

프랑스 부르고뉴의 본 노트르담 성당에는 성모 마리아의 생애를 여러 장면으로 이어놓은 대형 태피스트리(색실로 그림이나 무늬를 짜 넣은 장식 직물) 연작이 남아 있다. 모두 5점으로 구성되고, 프랑스 문화부는 1500년에 완성된 것으로 기록하며, 작품의 제작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해당 '성모의 방문(Visitation)' 장면은 예수를 잉태한 성모 마리아가 세례자 요한을 임신한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간 일화를 표현한 것이다. 화면 중앙에서는 두 여인이 서로 마주 보며 손을 맞잡고 있고, 뒤로는 언덕과 성곽 및 건물이 이어진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Conseil régional de Bourgogne)

그런데 그 풍경 위 하늘로 마치 모자 형태와 같은 물체가 자리한다. 현대인의 눈에는 전형적인 클래식 스타일 아담스키형 UFO로 보인다.

그렇다면 물체는 두 여인(예수와 세례자 요한을 각각 잉태한)을 감시 또는 확인하려던 UFO일까, 혹은 단순한 구름에 불과한 것일까?

일부 해설에서는 이 '모자 모양의 구름'을 본 지역과 깊은 관계였던 추기경 장 롤랭을 암시하는 '추기경 모자'로 해석하기도 했다.

1474년 본 노트르담 참사회가 화가 피에르 스피크르에게 맡긴 별도의 성모 주제 장식 계약에는, 실지로 장 롤랭을 기도하는 모습으로 그리고 그의 곁에 개와 추기경 모자를 배치하라는 내용이 남아 있다. 허나 현존 연작은 1500년에 위그 르 코크가 봉헌한 것이며, 프랑스 문화부는 이것이 25년 전 스피크르의 도안을 바탕으로 제작됐는지는 알 수 없다고 명시한다.

여기서 추기경 모자는 단순한 복식 소품이 아니었다. 중세 후기와 르네상스의 종교미술에서 성직자의 모자와 문장은 그 인물의 신분이나 후원을 알아보게 하는 일종의 작품 속 시각적 '명찰'로 사용됐다. 장 롤랭을 위해 제작된 15세기 미사경(가톨릭 미사에 쓰는 기도문과 성경 구절 등을 모은 전례서)들에서도 그의 문장 위에는 추기경 모자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같은 테피스트리 중 다른 장면에서도 하늘로 각각 추기경 모자와 가문의 문장으로 보여지는 X자 상징물을 볼 수 있음 (Conseil régional de Bourgogne)

이런 표현은 롤랭만의 특수한 사례도 아니다. 성 예로니모는 후기 중세 미술에서 추기경 모자를 곁에 둔 모습으로 자주 그려졌고, 다른 종교 태피스트리에서도 주문자의 문장 위에 추기경 모자를 얹어 신분을 표시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추기경 모자와 문장으로 성직자나 후원자의 신분을 드러내는 것은 당시 종교미술에서 충분히 자연스러운 시각 언어였다.

13. 성모와 예수 그리고 UFO
피렌체 베키오 궁전, '어린 세례자 요한이 있는 성 가족' / 1500-1549년, 작가 귀속 논쟁

(Palazzo Vecchio)

일명 'Madonna dell'UFO'. 오래된 미술품에서 UFO를 찾는 이야기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표적인 그림이다.

화면 중앙에는 두 손을 모은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내려다보고 있고, 왼쪽의 또 다른 아이는 어린 세례자 요한이다. 뒤쪽에는 성 요셉과 소&당나귀가 자리하며, 멀리 풍경으로는 목동과 개, 양까지 그려져 있다.

헌데, 성모의 오른쪽 어깨 너머 하늘을 자세히 보면 뭔가 이상하다.

짙은 회색빛을 띤 타원형 물체가 공중에 떠 있고, 주위로 가느다란 황금빛 빛줄기가 번지는 것처럼 보인다. 더 흥미로운 것은 바로 아래 언덕이다. 한 목동이 손을 눈가에 댄 채 그것을 올려다보고 있으며, 곁의 개 역시 같은 곳을 바라보는 듯하다.

마치 UFO가 성모와 아기 예수 일행을 관찰 혹은 감시하고 있으며, 목동과 개가 그러한 UFO를 놀라서 쳐다보는 것만 같다.

(Palazzo Vecchio)

이탈리아 국가 문화재 카탈로그 상 현행 제목은 'Sacra Famiglia con San Giovanni Battista bambino', 즉 '어린 세례자 요한이 있는 성 가족'이다. 현재 피렌체의 베키오 궁전 박물관에 있으며, 지름 약 90cm의 둥근 목판에 유화로 그려졌다.

박물관 표지에서는 한때 야코포 델 셀라이오의 작품으로 귀속했지만, 국가 문화재 카탈로그의 현재 귀속란에는 세바스티아노 마이나르디가 올라가 있다. 다만 그 해설에서도 마이나르디 본인의 확정작이라기보다는 기를란다요 계열 화가였던 마이나르디의 주변(ambito)에 더 가까운 작품이라고 설명하며, 성모의 표현에서는 로렌초 디 크레디와의 유사성도 보인다고 지적한다. 즉, 정확한 작가 분류는 여전히 깔끔하게 끝난 게 아니다.

이 그림에서 목동이 하늘을 바라본다는 사실 자체는 별로 이상하지 않다. 작품 전체에 깔려 있는 것이 바로 '예수 탄생의 시각 언어'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에서는 들판의 목동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예수의 탄생을 알린다. 하여, 중세와 르네상스의 탄생화에서는 본 장면과 조금 떨어진 배경에다 '목자들에게 알림' 시퀀스를 작은 부속 장면처럼 집어넣는 일이 흔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한 로렌초 모나코의 1406-1410년경 '예수 탄생'에서도 화면 한쪽 먼 곳에 천사가 목동들에게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작은 장면이 들어가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역시 이 부분을 명시적으로 '목동들에게 알리는 천사의 환영'이라 설명한다.

마이나르디 계열로 귀속되는 또 다른 후기 15세기 원형 그림이 이탈리아 솜마리바 페르노에 남아 있는데, 여기서도 한 목동이 손을 이마에 댄 채 하늘의 출현을 바라본다. 여기엔 빛나는 구름 속 천사의 모습이 보다 분명하게 표현될 정도다.

따라서, 이 그림을 분석한 일부 해설에서는 문제의 회색 형상 역시 목동들에게 예수 탄생을 알리는 천상 현상을 빛나는 구름 형태로 축약한 것일 가능성을 제시해왔다. 다만 이탈리아 국가 문화재 카탈로그는 화면의 하늘 요소를 '별(stella)'로 분류하고 있어, 문제의 형상을 정확히 '빛나는 구름'이나 '천사'라고 확정할 수는 없다.

여기, 앞서 살펴본 10번 카를로 크리벨리의 1486년작 '성 에미디우스와 함께 있는 수태고지'도 떠올려볼 만하다.

그 그림에서도 하늘의 천상 영역에서 황금빛 광선이 성모를 향해 내려온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는 이 빛을 성령의 비둘기가 하늘에서 성모에게 내려오는 '신성한 빛'으로 설명한다. 문제의 형체가 서로 완전히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하늘의 작은 빛나는 영역과 그곳에서 뻗어 나오는 광선으로 신의 개입을 표현하는 방식 자체가 당시 종교 회화에서 낯선 시각 문법은 아니었다.

당시 종교 회화에서 구름이 갈라지거나 빛나는 영역이 열리고 그곳에서 광선이나 천사가 나타나는 표현은, '기상현상의 기록'이라는 개념이 아니다. 이는 지상의 현실 공간과 신적/천상 영역이 맞닿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구분해 보여주는 관습에 가까웠다. 현대인의 눈에는 마치 UFO나 포털의 출몰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시에는 '하늘이 열리고 신의 개입이 내려온다'는 종교적 사건을 표현하는 하나의 시각적 언어였던 셈이다.

즉 성모와 아기 예수, 어린 세례자 요한, 성 요셉, 소와 당나귀, 목동과 개, 양이라는 그림 전체의 맥락과 당시 탄생화에서 반복되는 '목자들에게 알림' 도상, 그리고 매우 비슷한 비교 작품들을 함께 놓으면, 문제의 형상을 예수 탄생과 관련된 별 또는 빛나는 천상 현상으로 읽는 편이 분명 UFO 해석보단 훨씬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14. 예수 탄생 장면에 출몰한 금속 구체
핀투리키오, 바글리오니 예배당 '목자들의 경배' / 1500-1501년

(Pinturicchio)

이탈리아 움브리아의 작은 도시 스펠로. 그곳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교회 안 바글리오니 예배당에는 르네상스 화가 핀투리키오가 그린 대형 프레스코 연작이 남아 있다.

1500년 늦여름부터 이듬해 봄 사이 제작된 이 연작은 왼쪽 벽의 '수태고지', 오른쪽의 '박사들과 토론하는 예수', 그리고 중앙의 '목자들의 경배'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중앙 프레스코의 먼 배경에는 동방박사의 행렬까지 이어지면서, 예수 탄생을 둘러싼 여러 사건이 하나의 거대한 풍경 안에서 동시에 펼쳐진다.

헌데, UFO 음모론자들의 시선은 성모와 아기 예수보다 오히려 그 멀리 하늘로 향했다.

산등성이 부근 중심에서 황금빛이 퍼져 나오는 둥근 금속성 물체가 보이고, 조금 떨어진 하늘에도 작고 밝은 원형이 하나 더 떠 있다. 마치, 빛을 내뿜는 금속성 구체 두 대가 예수 탄생 현장을 지켜보는 것 같다. 문제의 두 구체는 요새 다시 유행하기 시작한 '구체 UFO' 형상을 꼭 닮아있다.

(Pinturicchio)

해당 작품은 대부분의 종교 회화에서처럼, 단순히 성모와 아기 예수만 그린 그림이 아니다. 앞쪽에서는 목동들이 갓 태어난 예수를 경배하고 있고, 뒤쪽으로는 동방박사의 행렬이 베들레헴을 향해 이동한다. 미술사적으로 해설하자면, 화면 위쪽 구름에 모여 있는 날개 달린 천사들은 예수 탄생을 찬미하는 천사들의 합창으로 설명된다.

즉 이 거대한 한 화면에는 목동들의 경배와 천사들의 찬미, 그리고 배경으론 동방박사의 행렬이 한꺼번에 펼쳐져 있는 셈이다.

따라서 하늘의 작은 빛들도 이 종교적 서사에서 떼어내 볼 이유가 하등 없다.

실지로 오래전부터 문제의 두 빛을 각각 태양과 동방박사를 인도한 별로 보는 해석이 있어왔다. 이미 동방박사의 행렬이 화면에 그려져 있다는 점에서 구체가 '별'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은 충분히 자연스럽고, 지평선 가까이에서 방사형 빛을 내는 다른 원형 역시 태양 또는 일출을 연상시킨다.

말인즉슨 작은 구체는 동방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인도한 별로 오래전부터 식별돼 왔고, 방사형의 큰 원반은 떠오르는 태양으로 해석할 수가 있다. 후자의 경우 예수의 탄생을 어둠 뒤에 오는 새로운 빛과 연결하는 상징적 의미까지로 읽어볼 수 있겠다.

여담으로, 핀투리키오는 작품의 여러 디테일에 금빛 장식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었다. 그의 회화에는 금을 이용한 광택과 입체 장식이 빈번했고, 바글리오니 예배당 역시 오랜 세월 훼손과 복원을 겪었다.

현재 확인 가능한 복원/미술사 자료만으로는 문제의 구체 자체가 원래 금박으로 덮여 있었고, 그것이 마모나 박리로 사라져 오늘날 회색으로 보인다고 결론 내려지진 않는다. 따라서 '본래는 금빛으로 빛나는 물체였다'는 설명은 추정 가능한 가설 정도겠다.

다시 돌아와, 물론 스펠로 시의 공식 작품 설명과 현재 주요 미술사 자료는 두 원형을 각각 '태양'과 '베들레헴의 별'이라고 직접적으로 명명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작은 구체=베들레헴의 별은 동방박사의 행렬이라는 도상 맥락상 강한 해석으로, 방사형의 큰 원반=태양은 그보단 한 단계 낮은 유력한 해석으로 구분하는 게 정확하겠다.

결론적으로, 이 두 구체 역시 외부에서 난데없이 끼어든 물체라기보다 예수 탄생의 종교적 서사 및 문맥 안에서 읽어야 할 도상 요소라는 것이다.

15. 1600년에 그려진 인공위성
벤투라 살림베니, '성체에 관한 논쟁' / 1600년

(Ventura Salimbeni)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몬탈치노. 이곳 산 로렌초 인 산 피에트로 성당에는 시에나 화파의 화가 벤투라 살림베니가 그린 대형 종교화 '성체에 관한 논쟁'이 있다.

왼쪽에는 예수, 오른쪽에는 성부가 앉아 있고, 그 사이에는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위치했다. 즉, 삼위일체다. 아래쪽에는 성체(가톨릭 미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받아들이는 축성된 빵)를 중심으로 교회의 박사들과 성직자들이 자리하면서 작품 전체가 성체성사와 삼위일체를 연결한다.

헌데, 그림 상단 한가운데에 커다란 청회색 구체가 있다. 그 위로 길고 가느다란 막대 두 개가 비스듬히 뻗어 있고 말이다.

1957년 이후의 시각으로 보자면, 구체는 안테나가 달린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와 기묘할 만큼 닮았다. 때문에 작품 속 형상에는 실지로 일명 '몬탈치노의 스푸트니크'라는 별칭까지 붙었을 정도.

이 안테나처럼 보이는 두 막대를 따라가 보면 하나는 예수가, 다른 하나는 성부가 직접 손으로 잡고 있다.

그렇다. 기계에서 솟아난 안테나가 아니라, 홀(sceptre, 군주나 신적 통치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의례용 지팡이)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가운데 푸른 구체는 무엇일까?

구체에는 태양과 달이 표현돼 있으며, 미술사적으로는 특정 행성을 사실적으로 그린 지구본이라기보다 신이 창조하고 지배하는 세계와 우주를 상징하는 '천구'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여기서 천구란, 하늘과 우주를 하나의 구체로 나타낸 표현을 의미한다.

말인즉슨, 성부와 성자가 각각 홀을 댄 모습 자체가 온 창조 세계에 대한 신의 통치권을 보여주는 종교적 도상인 셈.

16. 1656년 프랑스 화폐 속 비행접시
프랑스 1656년 제톤, 'OPPORTVNVS ADEST'

(CGB)

1656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작은 금속 제톤 하나에는 구름 낀 하늘에서 커다란 원반형 물체가 내려오는 기묘한 장면이 새겨져 있다. 아래에는 전원 풍경이 펼쳐지고, 물체의 중심에서는 뾰족한 축 같은 것이 튀어나와 있다.

현대인의 시각에서는 그야말로 구름 사이에서 나타난 비행접시다.

엄밀히 말해, 해당 물건은 일반 화폐가 아니라 제톤(계산/회계 또는 기관의 기념/상징 용도로 사용하던 동전 모양의 금속 패)이다.

프랑스 회계 감사원의 공식 전시 자료에서는 해당 제톤의 도안을 '폭풍으로부터 시골을 보호하는 천상의 방패'라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UFO가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 지상을 보호하는 '상징적 요소'의 방패인 것이다. 문제의 도안 테두리로 새겨진 OPPORTVNVS ADEST라는 문구 역시 '때맞춰 나타난다'라는 의미.

게다가 같은 계열의 도안이 노르망디 회계원뿐 아니라, 통상적인 군대 운용비를 관리하던 'Ordinaire des Guerres'의 1656년 제톤에서도 동일한 문구와 함께 등장한다. 즉 여러 행정기관에서 반복해 사용된 '보호와 구원의 우의적 도상'이었던 셈.

여기에는 오래된 고전 전통이 배경에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다.

고대 로마에선 누마 폼필리우스 왕의 시대에 역병이 돌자 청동 방패 하나가 하늘에서 내려왔고, 그것이 로마를 구원할 신성한 방패가 됐다는 유명한 '안킬레' 전승이 있었다.

문제(?)의 제톤 도안 제작자가 직접 안킬레를 그렸다고 밝혀진 자료는 없지만, 프랑스의 화폐 전문지에서도 이 '천상의 방패'가 고대 안킬레 전승을 차용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17. 예수의 양옆으로 자리한 두 대의 UFO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십자가형 / 문제의 회화층은 1678-1688년경

(Svetitskhoveli Cathedral)

조지아의 옛 수도 므츠헤타에 있는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건축의 주요 부분이 11세기에 세워진 이곳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대성당 자체는 11세기 건축물이지만, 문제의 십자가형이 포함된 '생명을 주는 기둥(Life-Giving Pillar)' 주변 회화군은 훨씬 뒤인 17세기 후반의 작업)

이곳의 내부 십자가형 벽화를 보면 예수의 양옆 하늘에 반원형 물체 두 개가 떠 있고, 각각의 내부에는 사람의 얼굴 또는 인간형이 들어가 있다. 아래쪽으로 뻗은 광선까지 더해지면서 현대인의 눈에는 두 대의 해파리형 UFO나 비행 캡슐처럼 보인다.

그리고 여기까지 정독한 독자라면 이제 쉬이 정체를 유추할 것이다.

그렇다.

앞서 8번에서 소개했던 비소키 데차니 수도원의 십자가형과 거의 동일한 연출로, 이 반원형 물체 두 개는 각각 태양과 달의 의인화다.

재차 해당 '전통'을 설명하겠다.

기독교의 십자가형 도상에서는, 예수의 죽음에 온 우주가 반응한다는 의미로 십자가 양옆에다 태양과 달을 배치하는 전통이 오랫동안 반복됐다. 단순한 원반 형태로 그리기도 했지만, 얼굴이나 인간형을 넣어 천체 자체를 사람처럼 표현하기도 했다. 비잔틴 계열의 십자가형에서 이러한 태양과 달의 의인화는 여러 시대와 지역에서 확인된다.

따라서 서로 수백 년 떨어진 데차니(8번)와 스베티츠호벨리(17번)에서 얼굴을 지닌 두 물체가 하필이면 똑같이 십자가의 좌우에 나타나는 이유도, '예수의 처형 순간에 맞춰 출몰한 UFO'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대와 지역의 기독교 미술이 공유했던 동일한 도상 전통'으로 설명되는 것이다.

18. 세례를 받는 예수에게 광선을 쏘는 UFO
아렌트 데 헬더, '그리스도의 세례' / 약 1710년

(Arent de Gelder)

네덜란드 화가 아렌트 데 헬더의 '그리스도의 세례'에서는 요르단강의 예수와 세례자 요한 위로 둥글게 빛나는 하늘이 열리고, 그곳에서 여러 줄기의 강한 광선이 정확히 예수에게 내려온다.

마치, 예수의 세례식을 UFO가 거행하는 것처럼 말이다.

허나, 여기까지 정독한 독자라면 이번에도 도상의 의도와 의미를 파악했을 것이다.

복음서에선 예수가 세례를 받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며, 하늘에서 신의 음성이 들렸다고 전한다.

때문에 기독교 미술의 예수 세례 장면에서는 열린 하늘과 성령의 비둘기, 그곳에서 예수에게 내려오는 신성한 빛이 수백 년 동안 반복적으로 표현됐다. 실제 여러 시대의 세례화에서도 열린 하늘이나 구름 사이에서 비둘기가 광선과 함께 예수에게 내려오는 구도를 찾아볼 수 있다.

해당 그림 역시 문제의 밝은 원반 중심을 자세히 보면 성령을 상징하는 작은 비둘기가 자리한다. 즉 아래로 내려오는 광선은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예수를 비추는 탐조등 따위가 아니라, 열린 하늘에서 성령과 함께 내려오는 신적 의미의 빛을 표현한 것이다.

여담으로, 데 헬더는 렘브란트에게 직접 사사받은 마지막 제자로 렘브란트의 화풍을 18세기까지 계승한 화가였다. 어둠 속에서 특정 인물과 사건만 강렬한 빛으로 드러내는 극적인 명암 표현 역시 그의 회화에서 중요한 특징이다.

따라서 '열린 하늘 + 성령의 비둘기 + 신성한 빛'이라는 도상을 데 헬더가 훨씬 대기적이고 물리적인 광원처럼 연출하면서, 유독 해당 작품에 대해 현대인의 시각에선 하늘에 떠 있는 UFO가 빛을 쏘는 장면처럼 보이게 된 셈이다.

말인즉슨, 화가가 표현한 건 사건 자체에서 벌어진 현실 속 자연현상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에서 실지로 일어났다고 믿는 초자연적 사건'인 것.

19. 1783년 영국 밤하늘을 가로지른 불타는 함대
1783년 대화구 / 8월 18일, 영국과 서유럽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1783년 8월 18일 밤, 영국 윈저성 북동쪽 테라스에서 사람들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관측 시각은 동시대 기록끼리 조금 엇갈린다. 카발로의 1784년 논문 본문에선 약 밤 9시 25분이라고 언급하고, 같은 기록의 각주에서는 샌드비의 시계가 9시 17분을 가리켰다고 밝히며, 샌드비 판화의 설명문은 또 9시 18분으로 기록한다.

여하튼 지건, 그 무렵 밝은 빛의 물체 하나가 나타났고 처음에는 둥글었던 형상이 점차 길쭉하게 늘어나더니 여러 개의 발광체로 갈라져 하늘을 가로질렀다.

당시 장면을 기록한 문제의 폴 샌드비의 판화를 보면, 커다란 선두 발광체 뒤로 작은 빛들이 줄지어 따라붙는다. UFO 편대 비행처럼 말이다.

판화에 직접 새겨진 설명문에서도 처음 발견된 물체가 점점 길쭉해진 뒤 작은 발광체들이 긴 열을 이루도록 분열했고, 각각에는 꼬리가 있었다고 기록됐다.

해당 물체의 정체는 이미 교차검증이 이뤄졌다.

영국박물관에는 토머스 샌드비(형)에게 귀속된 드로잉과 폴 샌드비(동생)의 판화가 전해지고, 왕립 학회에는 당시 윈저성에서 직접 현상을 목격한 자연철학자 티베리우스 카발로의 원고와 도판을 비롯해 같은 날의 유성을 다룬 여러 관측 보고가 남아 있다.

또, 이듬해 Philosophical Transactions(영국 왕립 학회가 발행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과학 학술지)에는 카발로뿐 아니라 알렉산더 오베르, 윌리엄 쿠퍼, 리처드 러벨 에지워스 등의 보고가 잇달아 실렸다.

말인즉슨, 매우 밝은 유성이 대기권을 길게 가로지르며 여러 조각으로 분열한 '유성 행렬'의 대표적 역사 사례였던 것이다.

여담으로, 같은 현상을 그린 헨리 로빈슨의 1783년 판화에선 해당 유성을 '날아다니는 용'이라고 일컫는다. 당시에도 이미 유성 현상을 인식하고 있었으나, 그 표현에는 훨씬 오래된 하늘의 괴이한 존재에 대한 언어가 여전히 살아 있었던 것.

20. 1803년 일본 바닷가에 떠밀려온 비행접시
우쓰로부네(虚舟) / 히타치국 표착 괴이담, 1803년

(漂流記集)

1803년 일본 히타치국의 어느 해안. 관련 기록들에 따르면, 어부들이 바다에서 기묘한 물체 하나를 발견했단다.

크기는 약 3간, 오늘날 단위로 5.5m 남짓. 둥글납작한 몸체의 위쪽에는 내부가 훤히 보이는 유리창이 둘러져 있고, 틈에는 방수를 위한 송진 계열의 물질이 발라져 있었다. 아래쪽에는 철판이 덧대어져 있었다고 하며, '兎園小説'의 서술자는 이것이 바위와 충돌해도 부서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추측했다.

더 기이한 것은 내부였다.

배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묘한 문자들이 적혀 있고 물과 음식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한 명의 젊은 여성이 타고 있었다.

여자는 일본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기록에 따라 디테일이 조금씩 다르지만 창백하거나 복숭앗빛의 얼굴, 붉은색 또는 적갈색 머리와 눈썹, 낯선 옷차림이 반복해서 묘사된다. 무엇보다도 두 자(약 60cm) 사방의 상자를 품에 안은 채 누구에게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결국, 하릴없이 사람들은 여자를 다시 그 둥근 배에 태워 바다로 돌려보냈다.

불시착한 UFO였을까?

아니면, 요새 다시 유행하기 시작한 바다 깊은 곳의 UFO인 USO(미확인 수중물체)?

해당 설화(?)는 '우쓰로부네'라고 불리며 일본 내에선 제법 유명한 괴이담으로도 꼽힌다.

일본 국립공문서관에는 '弘賢随筆' 속 'うつろ舟の蛮女'이라는 이야기로 보존돼 있고, '兎園小説', '鶯宿雑記', '漂流記集', '梅の塵' 등 여러 문헌에서도 조금씩 다른 형태의 이야기로 존재한다. 2026년에는 일본 국립공문서관이 외국선의 내항과 표착에 관한 기사들을 모은 40책짜리 '沿海紀聞'에 수록된 또 다른 우쓰로부네 기록과 삽화 원본을 특별전시하기도. (다만 '沿海紀聞' 자체는 에도 후기부터 막말의 외국선 관련 기록을 후대에 편찬한 자료이므로, 새로운 목격 기록 등이 발견됐다는 뜻은 아님)

심지어, 정말 최근인 2026년 10월에도 또 하나의 중요한 원본 자료가 공개됐다.

사이타마현 구키시의 옛 촌장 집안에서 전해온 약 4,900점의 '오카다 가문 문서'에서 '小笠原越中守知行流来候空舩之図'라는 우쓰로부네 문서가 바로 그것.

구키시립 향토자료관은 필적과 종이의 질/크기, 충해 상태 등을 같은 오카다 가문 문서들과 비교해 해당 문서를 향화기(享和期, 1801-1804년) 무렵 작성된 자료로 추정한다. 다만 이것 역시 현장에서 직접 작성된 목격 조서라기보다, 당시 전해진 이야기를 기록해둔 문서로 평가된다. 문서에는 약 스무 살의 여성, 창백한 얼굴과 붉고 검은 눈썹, 흰 옷, 60cm가량의 상자, 음식, 기묘한 문자, 5.5m가량의 배 등이 언급된다.

사건 당시인 1803년부터 수십 년간에 걸쳐 각종 문서에 등장하는 우쓰로부네 이야기

자, 그렇다면 이 여성은 대체 누구였고 무엇이었을까?

'弘賢随筆'의 기록자는 배 안의 기호를 외국선에서 보았던 문자와 비교하면서 영국, 네덜란드, 아메리카 등 어느 외국 왕의 딸이 아닐까 추측했다.

'兎園小説'에서는 여성의 복식과 헤어스타일을 당시 알려져 있던 러시아 관련 자료와 직접 비교하는 주석이 붙어 있다. 러시아 여성은 몸에 맞는 소매와 옷을 입고 머리에 흰 가루를 사용한다는 기록을 끌어온 뒤, 우쓰로부네 여성의 길고 하얀 머리 장식 역시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추측하며 러시아 속국의 여성이 아닐까 하는 가능성까지 제시한다.

에도시대 사람들은 여성의 정체에 대한 후보 중 하나로 이국에서 표류해온 이방인을 꼽았던 것. 이는 시대상으로도 그럴듯한 추측에 해당한다.

1792년 러시아의 락스만 사절단이 네무로에 와 통상을 요구했고, 우쓰로부네 사건 바로 다음 해인 1804년에는 레자노프 사절단이 나가사키에 도착한다. 1803년은 말 그대로 일본이 북쪽에서 내려오는 러시아라는 새로운 외국세력을 강하게 의식하기 시작하던 시기 한가운데였다.

이렇듯 '러시아 표류물' 가설도 존재한다. 당시 일본 근해에서 활동하던 러시아 선박이 난파했고, 그 생존자나 관련 소문이 우쓰로부네 이야기의 씨앗이 됐을 가능성 말이다. 허나, 이를 입증할 자료 내지는 사건 기록 공문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어디까지나 가설에 불과하다.

보다 색다르고 흥미로운 가설도 존재한다.

'금색희(金色姫/곤지키히메)'에 대한 전승이 그것이다.

히타치 지방에는 오래전부터 양잠(누에를 기르고 고치를 얻는 작업)의 기원을 설명하는 기묘한 전승이 있었다.

천축, 즉 인도의 왕녀 금색희가 계모에게 계속 박해를 받자 아버지가 그녀를 뽕나무로 만든 '우쓰보부네'에 태워 바다로 떠나보낸다. 배는 머나먼 바다를 건너 히타치 해안에 도착한다. 그녀는 결국 죽지만 그 뒤 누에와 양잠이 시작됐다는 이야기로 이어지며, 이 일대에서는 금색희가 양잠의 신으로 숭배됐다.

그리고 우쓰로부네의 유력한 표착지 후보로 거론되는 오늘날의 가미스시 일대에는, 실지로 양잠 신앙의 중심지였던 쇼후쿠지(星福寺)가 있었다.

여기서 잠시. '우쓰로부네'와 금색희의 '우쓰보부네'라는 이름이 눈에 걸릴 것이다. 사실 두 이름은 전혀 무관한 단어가 아니다. 일본어의 '우쓰호(うつほ)', '우쓰보(うつぼ)', '우쓰로(うつろ)'는 모두 '속이 비어 있다'라는 같은 계열의 오래된 표현이다. 사전에서도 우쓰호부네/우쓰보부네/우쓰로부네를 본디 큰 나무 속을 파서 만든 속 빈 배, 즉 통나무배를 가리키는 이형으로 연결한다.

이렇듯 우쓰로부네 이야기와 금색희/양잠 신앙 사이에는 흥미로운 접점이 있다는 설이 존재한다. 여러 우쓰로부네 자료 가운데 금색희와 강하게 닮은 여성상은 특히 '미토 문서'에서 두드러지며, 이미 세간에 퍼지고 있던 우쓰로부네 소문을 쇼후쿠지 쪽에서 양잠 신앙과 결합해 활용했을 가능성도 제시된다. 물론 금색희 전승이 1803년 이야기의 초기 형성에 직접 섞여 들어간 것인지, 아니면 소문이 퍼진 뒤 일부 판본에서 둘이 결합된 것인지는 아직 가설 단계다.

좌측이 이바라키현 가미스시 쇼후쿠지에 모셔진 산레이손(蚕霊尊). 양잠의 기원을 전하는 금색희(금색공주) 전승을 형상화한 상이다. 우측은 '미토 문서'에 그려진 우쓰로부네의 여성. 두 인물의 복식, 특히 허리 앞쪽에 상하로 겹쳐진 두 단의 나비매듭과 전체적인 인물 표현이 유사함을 볼 수 있다 (「常陸国うつろ舟奇談」に隠された養蚕金色姫の暗号)

우쓰로부네 괴이담 중에는 여성이 지니고 있던 상자 안에 남자의 잘린 머리가 들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붙는 버전도 존재한다.

헌데, 이와 같은 '낯선 여자+기묘한 모양새의 배+남자의 잘린 머리' 이야기 자체는 1803년보다 오래됐다.

일본 국립공문서관이 소개하는 자료에는 무려 1698년, 미카와국 요시다우라에 '우쓰호부네'가 표착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안에는 말이 통하지 않는 여자가 있었고, 배 앞쪽에는 남자의 잘린 머리까지 있었다고.

여기서 등장하는 '우쓰호부네(ウツホ舟)' 역시 앞서 설명한 우쓰보부네/우쓰로부네와 같은 계열의 단어다. 시대와 문헌에 따라 우쓰호/우쓰보/우쓰로처럼 표기와 발음이 달라졌을 뿐, 모두 '속이 빈 배'를 가리키는 오래된 명칭으로 연결된다.

또 '閑窓自語'에선 1796년, 그러니까 히타치 사건보다 불과 7년 전에 가가 지역 해안으로 유리창을 두른 낯선 작은 배가 표착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안에는 아름다운 여성과 남자의 머리가 있었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 결국 다시 바다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낯선 여자, 말이 통하지 않음, 이상한 배, 비밀스러운 상자, 죽은 남자의 머리가 있을지도 모르는 상자, 그리고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지는 결말.

이미 상당수의 서사 재료가 1803년 이전부터 일본 문헌상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빈 배'의 전승은 일본(바다로 둘러싸인) 전역에서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바다 건너의 신이나 귀인이 속이 빈 배에 실려 인간세계에 도착한다는 이야기, 버려진 사람이나 시신을 배에 넣어 바다로 보내는 이야기 등이 반복된다. 일본국문학연구자료관이 공개한 한 연구에서도 '우쓰보'를 단순한 선박 명칭을 넘어 신이나 영혼을 담아오는 그릇이라는 오래된 민속적 맥락과 연결하기도.

'우쓰보'라는 말 자체는 본래 말 그대로 내부가 빈 것, 공동(空洞)을 뜻했고 '우쓰호부네' 역시 큰 나무를 파낸 속 빈 배를 가리켰다. 헌데 일본의 근대 민속학자들은 여러 표착신/이방인 전승을 비교하면서, 이런 '속 빈 그릇'이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신이나 영혼을 외부 세계에서 인간세계로 운반하는 일종의 '혼의 용기'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내놨다.

말인즉슨, '빈 배'라는 실제 명칭 위에다 보다 오래된 종교/민속적 의미가 겹쳐진 셈.

여담으로, 우리에게도 유명한 모모타로 이야기 역시 강에서 떠내려온 복숭아 속 아기가 주인공. 그리고 이야기의 시작은 '외부에서 물을 통해 도착한 그릇 속 존재'이다. 이렇듯 낯선 존재가 물길을 타고 인간세계에 도착한다는 서사 자체는 동아시아 민담에서 그다지 낯선 발상이 아니었다.

한편, 최근에는 '외국에 관한 공포와 소문이 괴이담 형성에 작용했다'는 해석도 본격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의 국제 정세와 에도의 세태, 러시아와의 관계라는 맥락에서 우쓰로부네 전승의 진위가 검토되면서 말이다.

하나 의미심장한 사실은 해당 괴이담이 언급된 문헌들마다 배의 형태, 여성의 모습, 표착지, 영주 이름, 문자 모양 등이 조금씩 달라지는 한편 '둥근 배+이국 여성+상자+수수께끼 문자' 같은 핵심 요소는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부 자료가 동일하게 잘못된 영주명이나 비슷한 문구 및 도안을 공유하고, 구키시의 오카다 가문 문서 역시 현장 목격 기록이 아니라 당시의 전언을 적어둔 것으로 평가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하나 또는 몇 개의 초기 이야기가 가와라반, 문인 네트워크, 필사를 거치며 복사되고 변형됐을 가능성도 현실적이라 볼 수 있겠다.

그나마 추정을 해보자면 어떤 실제 표류 사건이나 외국선에 관한 소문, 혹은 이미 존재하던 표착 괴이담 가운데 하나 이상이 씨앗이 됐고, 거기에 오래된 우쓰로부네 계열 전승, 일부 판본에서 연결되는 금색희/양잠 신앙, 당시의 이국인에 대한 상상과 러시아에 대한 현실적 긴장 등이 전승 과정에서 여러 층으로 결합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아는 기묘한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겠다.

흥미롭게도 당시 서양에는 이미 우쓰로부네를 연상시키는 초기 목재 잠수정들이 존재했다. 러시아에서는 1720년대 예핌 니코노프가 목제 비밀선을 제작했고, 미국에서는 1776년 부시넬의 터틀이, 프랑스에서는 1800년 철제 골격이 사용된 풀턴의 Nautilus가 실제 시험됐다. 이미지는 현대의 재연 복제품 (Serguei Fadeev/Geni/Zenit)

당시는 19세기 초, 에도 막부의 대외 통제가 엄격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실제 외국 선박이 난파하고 정체불명의 외국 여성이 해안에 나타났다면 상당한 사건이므로 관리의 조사와 '공식 기록'이 남았을 가능성이 지대하다. 허나 지금껏 그러한 기록은 확인되지 않았다.

사실 앞서 소개한 우쓰로부네 자료들은 주로 문인/개인이 남긴 수필, 잡기, 기담/풍문집 또는 후대의 편찬 기록이다. 실제 표류 사건들을 모은 '표류기집'도 포함되지만 이 자료 자체가 막부의 공식 행정문서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공식 기록’이란 외국 선박의 난파/표착과 외국인 출현 같은 사건을 조사한 막부나 해당 번의 행정 기록을 뜻하며, 현재까지 1803년 우쓰로부네 사건에 해당하는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때문에 해당 이야기를 실제 외국인의 표류사건 그대로라기보다, 당시 전해지던 우쓰로부네 계열의 표착 괴이담에다 외국선의 출현과 외부 세계에 대한 불안 같은 현실적 배경이 뒤섞이며 만들어진 일종의 '에도시대 도시 전설'로 보는 연구도 존재한다.

21. 16세기 뉘른베르크 상공에서 벌어진 우주전쟁
한스 글라저, 1561년 4월 14일 천상 현상 단엽 인쇄물

(Zentralbibliothek Zürich)

본 주제를 마지막에 배치한 것은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전체 주제 중 해당 이야기가 가장 최근 가장 공신력 있는 '고대의 UFO 기록'으로 화제가 됐기 때문. (정확하게는 국내에서 한정해)

함께 첨부된 원문의 내용을 순서에 따라 풀어 옮기자면 대략 이렇다.

(Zentralbibliothek Zürich)

"1561년 4월 14일 새벽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의 자유제국도시 뉘른베르크에선 해가 막 떠오르던 동쪽 하늘로 이상한 광경이 시작됐다.

태양을 중심으로 먼저 기묘한 형상들이 나타났다.

태양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피처럼 붉은 반원형 형상 두 개가 보였고, 그 주변에는 붉은색과 푸른색, 검은색 또는 쇳빛을 띤 둥근 구체들이 흩어져 있었다. 일부는 태양 위로 겹쳐 보였고, 일부는 그 위아래와 좌우에 자리했다.

어떤 구체들은 세 개씩 일렬로 늘어서 있었고, 또 어떤 것들은 네 개가 모여 사각형을 이루었다. 그 사이사이에는 붉은 십자가와 길쭉한 막대 같은 형상들도 함께 나타났다.

태양의 좌우에선 더욱 기묘한 형상도 보였다. 커다란 관이나 긴 통처럼 생긴 물체들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세 개, 네 개 혹은 그 이상의 작은 구체들이 줄지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뒤, 이 형상들이 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양 위로 겹쳐 보이던 구체들은 바깥쪽의 구체들을 향해 움직였고, 반대로 바깥에 있던 구체들과 긴 관 속의 구체들은 태양 쪽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이 태양 주변을 오가며 서로 뒤엉키며 마치 양쪽 진영이 하늘에서 서로 싸워대는 모습 같았다.

이런 광경은 약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다 이 형상들이 힘을 잃은 듯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하며 불에 타는 것처럼 지상으로 추락했다고 한다. 또 이 형상들은 커다란 연기나 증기와 함께 지상에서 서서히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이 끝난 뒤, 마지막으로 하늘에는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형상 하나가 나타났다.

그건 바로, 동쪽에 자루를 두고 그 끝은 서쪽을 향한, 거대하고 검은 창처럼 보이는 물체였다."

이 모든 광경을 그림과 글로 묶어 한스 글라저가 제작 및 발행한 것이 1561년 뉘른베르크 인쇄물이다.

수십 개의 원반과 구체, 포탄을 발사하는 모선처럼 보이는 원통, 추락하는 물체와 연기,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검은 물체까지.

분명, 외계 함대끼리 한바탕 싸움을 벌인 뒤 패잔병들이 지상으로 추락하는 장면이라 캡션을 붙여도 무방할 정도의 묘사다.

허면, 정말로 1561년 뉘른베르크에선 지구를 둘러싸고 외계 세력 간 모종의 전투가 있었던 것일까?

해당 인쇄물은 뉘른베르크 시청의 공식 사건 조서도 아니고, 뉘른베르크 일대에서 모두에게 목격됐다고 확인된 것도 아니며, 목격자들의 증언이 정식으로 크로스체크된 기록물도 아니다.

자료 원문에는 이 현상을 뉘른베르크 시내와 성문 밖, 주변 들판에서 '많은 남성과 여성'이 목격했다고만 추상적으로 언급돼 있다. 개별 진술 및 목격 위치 같은 상세 내용이 기록된 바 없으며, 인터넷에서 종종 보이는 '수천 명이 목격했다', '수백 건의 독립 증언이 남았다', '뉘른베르크 전역에서 목격됐다'는 식의 표현 역시 원문에서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해당 인쇄물의 성격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이 인쇄물은 현대적 의미의 신문 기사나 호외, 학술지 삽화가 아니다.

이것은 목판으로 찍어낸 그림을 채색하고 아래에는 활자로 긴 설명문을 인쇄한 약 26×38cm 크기의 단엽 인쇄물이다. 단엽 인쇄물이란 신문이 정착하기 전 뉴스/기이한 사건/포고 등을 그림과 글로 한 장에 인쇄해 유통하던 매체다.

그렇다면 기록을 남긴 한스 글라저는 누구였을까?

그는 천문학자나 시청 조사관, 역사학자가 아니었다.

글라저는 1538년부터 뉘른베르크에서 활동한 목판공/인쇄업자/브리프말러(목판 인쇄물과 그림을 제작 및 채색하던 장인)였다.

그는 전쟁과 공성전, 정치적 사건, 유명인뿐 아니라 혜성이나 기이한 천상 현상 같은 화제성 높은 이야기를 그림과 글이 결합된 단엽 인쇄물로 제작해 판매했고, 신성로마제국 각지로 뉴스물을 유통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1561년 원문 어디에도 글라저 자신이 직접 해당 현상을 관측했다고 명시돼 있지 않다.

그림 자체에 대해서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UFO 관련 주장들에서는 흔히 그림 속 기다란 물체들을 '원통형 모선'으로 바라본다. 허나, 원문을 읽으면 이 형상들을 설명하는 당시의 시각적 비유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드러난다.

글라저는 커다란 형상을 Rorn/Rohr, 즉 관이나 긴 통을 뜻하는 말로 지칭했다. 또 다른 붉은 막대형 형상은 hocken rhor과 비슷하다고 표현했다. 이를 당시의 Hakenrohr 같은 초기 화기와 연결해 읽을 여지는 있지만, 이 표현만으로 글라저가 특정 화기를 정확히 지칭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림과 본문 전체가 이 현상을 당시 사람들에게 익숙했던 '전투'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말인즉슨, 1561년 독자에게는 이 모습이 '포신과 탄환을 닮은 하늘의 전쟁'처럼 읽혔을 것이며 글라저 역시 그러한 것을 의도했거나 염두에 뒀을 수 있다는 것.

또 중요한 건, 원문에선 시간을 두고 진행됐다고 서술한 여러 장면을 한 장의 그림 속에다 압축한 '서사화'라는 것이다. 한가운데 태양에다 사람 얼굴까지 그려 넣은 것 역시, 이 그림이 현대의 관측도나 현장 사진이 아니라 당대의 도상 관습과 서사적 표현법을 따른 이미지라는 점을 보여준다.

자, 이제 16세기 독자가 해당 그림을 바라보던 방식으로 회귀해보자.

당시 독일어권에는 분더차이헨(Wunderzeichen), 즉 혜성/일식/헤일로/오로라/기이한 빛이나 형상 같은 하늘의 현상을 단순한 자연현상으로만 보지 않고서, 인간에게 보내는 신의 표징(앞으로 일어날 일이나 신의 뜻을 드러낸다고 여긴 징조)과 경고로 읽는 문화가 폭발적으로 유행하고 있었다.

1550-1599년 사이 독일어권에서 발행된 천상의 분더차이헨(기적의 표징) 관련 단엽 인쇄물과 소책자는 재판까지 포함해 거의 400종이 확인된다.

여기에는 혜성이나 일식처럼 오늘날 명확히 천문 현상으로 분류되는 것뿐 아니라 막대, 십자가, 천사, 장례 행렬, 군대가 하늘에 나타났다는 이야기까지 들어간다. 당시 단엽 인쇄물은 큼직한 그림과 사건 설명, 제작자의 해석, 그리고 신의 자비를 구하는 기도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글라저의 1561년 인쇄물 역시 이러한 시대적/문화적 문법을 거의 그대로 따른다.

실지로, 원문에선 '우주전쟁' 묘사가 끝나자 곧바로 이렇게 방향을 튼다.

"그러나 이러한 표징들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오직 신만이 아신다. 최근 우리는 하늘에서 이토록 많고 다양한 표징들을 잇따라 보고 있는데, 전능하신 신께서는 우리의 죄 많은 삶 때문에 우리를 회개로 이끌고자 그것들을 나타나게 하신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나 감사할 줄 몰라 이러한 신의 위대한 표징과 기적을 업신여기고, 비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우리의 배은망덕 때문에 신께서 우리에게 무서운 벌을 내리실까 두렵다. 그러나 신을 경외하는 자들은 이를 결코 업신여기지 않고, 하늘에 계신 자비로운 아버지의 이 모든 경고를 마음에 새겨 삶을 고치고 신께 간절히 기도할 것이다. 그리하여 신께서 정당한 분노와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을 거두어주시고, 우리가 그분의 자녀로서 이 세상에서는 잠시 살고 저세상에서는 영원히 살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신께서 우리 모두를 도우시기를. 아멘."

사실, 이런 식의 천상 현상 인쇄물은 16세기 독일어권에선 그리 드문 것이 아니었다.

특히 오로라는 피와 불꽃, 검과 창, 천상의 군대 같은 이미지로 번역되곤 했다. 실제 1560년 12월 28일 유럽 여러 지역에서 관측된 오로라도 이듬해 여러 단엽 인쇄물로 제작됐는데, 그 가운데 게오르크 메르켈이 제작한 인쇄물은 에골스하임 일대에서 본 현상을 거대하며 넓고 긴 불꽃 같은 모습으로 묘사했다. 같은 오로라(밤베르크와 리히텐펠스에서 본) 현상을 다룬 또 다른 인쇄물에는 불타는 검을 든 전사와 군기가 서로 맞서는 군대처럼 배치돼 있고, 그 배경에는 피로 물든 구름과 붉은 별, 흰 빛줄기까지 그려져 있다.

게오르크 메르켈이 표현한 오로라 현상 (Zentralbibliothek Zürich)

또한, 당시 북극광을 그린 단엽 목판화 21점 가운데 9점에 검이나 창을 든 군사적 형상이 등장한다. 즉 당시 사람들은 낯선 하늘의 빛을 '하늘에서 벌어지는 전투' 같은 익숙한 시각적 언어로 번역하곤 했던 것이다.

더 결정적인 비교 자료로 글라저가 발행한 다른 인쇄물이 존재한다.

문제의 1561년보다 7년 전인 1554년, 글라저는 오버팔츠의 발데크 성 위에서 관측됐다는 천상 현상을 인쇄물로 만들었다.

독일 게르만국립박물관은 해당 현상을 아마도 오로라였을 것으로 설명한다. 그럼 글라저가 발행한 인쇄물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묘사됐을까?

한그 글라저가 표현한 오로라 현상 (Zentralbibliothek Zürich)

이처럼 하늘의 현상을 불타는 검을 들고 맞서는 두 명의 무장한 남자로 표현했다.

그리고 1556년 뉘른베르크에서 글라저가 제작한 '태양에 나타난 기이한 광경(Ein vngewonlich gesicht / an der Sonnen erschinen)'이라는 단엽 인쇄물도 언급할 만하겠다.

여기에는 태양 주위에 거대한 고리가 생긴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취리히 중앙도서관은 이를 1556년 5월 12일 뉘른베르크 상공에서 관측된 태양 헤일로에 대한 기록으로 분류한다. 해당 인쇄물 역시 이 현상을 참된 회개와 최후의 심판에 대비해야 할 종교적 경고로 연결한다.

한스 글라저가 표현한 태양 헤일로 현상 (Zentralbibliothek Zürich / Jelly Tse)

말인즉슨, 글라저가 제작한 이런 천상 현상 인쇄물들은 오늘날 오로라로 해석되거나 태양 헤일로로 분류되는 자연적인 천상 현상조차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간에게 보내는 신의 표징과 경고라는 당대의 종교적 문법 속에서 다뤘다는 것.

그렇다면, 당시 실제 하늘에서는(이러한 인쇄물의 소재가 됐던) 대체 어떤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었을까?

오로라는 앞서 이미 살펴봤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게 바로 헤일로다. '헤일로'라고 하면 흔히 태양 주위에 동그란 고리 하나가 생기는 모습만 떠올리기 십상이다.

헌데, 실지로는 훨씬 복잡하다.

높은 하늘의 얼음 결정에 햇빛이 굴절되면 태양 둘레에 22도 헤일로가 생길 수 있고, 태양의 좌우 약 22도에는 또 하나의 작은 태양처럼 밝게 빛나는 환일(sundog/parhelion)이 나타날 수 있다.

태양 위아래로 길게 솟은 빛기둥인 태양주(sun pillar)나, 헤일로의 위아래와 주변에 나타나는 여러 종류의 호(활처럼 휘어진 빛의 띠)까지 나타날 수 있으며, 조건이 맞으면 이러한 현상 여러 개가 동시에 펼쳐지기도 한다.

즉 하늘 한쪽에 단순한 무지개 하나가 생기는 정도가 아니라 태양을 중심으로 원과 호, 밝은 점, 수직 및 수평으로 뻗은 빛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꽤 기괴한 광경이 실제 자연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 (수백 년 전 사람들이 이를 목도했다고 상상해 보라!)

현대에 촬영된 환일(선독)과 여러 빙정 후광효과. 태양 좌우 약 22도 지점에 두 개의 밝은 환일이 나타나고, 태양을 가로지르는 수평의 빛과 수직 광주가 겹치면서 찬란한 십자가와도 같은 형상을 만든다. 이런 광경을 근대 이전의 기독교 문화권 사람들이 목도했다면? 하늘에 나타난 성스러운 십자가나 세 개의 빛나는 형상을 삼위일체와 연결해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충분, 아니, 충만하시겠다 (CarlosEnrique84)
현대에 촬영된 복합 빙정 후광과 환일 현상들. 대기 중 육각형 얼음결정의 굴절과 반사로 태양 좌우에 밝은 환일(선독)이 나타나고 22도 후광과 환일원, 접호를 비롯한 여러 빛의 원과 호가 동시에 겹쳐질 수 있다. 조건에 따라 하나의 태양 주변에 여러 개의 가짜 태양, 거대한 원과 아치, 수평/수직의 빛줄기가 한꺼번에 나타나 매우 복잡한 천상 형상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현상은 겨울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고도의 권운/권층운 속에 얼음결정이 존재하면 계절과 관계없이 나타날 수 있다. 다만 극지나 고산, 한겨울처럼 지상 가까이까지 차갑고 안정된 공기가 형성되는 환경에서는 다이아몬드 더스트까지 더해져 훨씬 화려하고 복잡한 후광이 나타나기 십상 (Cowboy State Daily / NOAA Corps)

특히 환일은 태양이 낮게 떠 있을 때 잘 보이고, 태양주 역시 일출이나 일몰 무렵 두드러지기 쉽다.

그리고 16세기 독일인들도 당연히 이런 현상을 보고 있었다. 다만 오늘날과 같은 대기광학적 설명체계가 없었던 데다 천상 현상을 신의 표징이나 경고로 읽는 문화가 강했기에, 이를 종교관에 맞춰 해석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뿐.

때문에 이러한 인쇄물은 대체로 현상의 물리적 원인을 설명하기보다 신의 표징과 종교적 경고를 읽어내는 방향으로 이어졌으며, 일부 인쇄물에선 요엘서와 다니엘서의 성경 구절까지 동원해 이를 종말을 경고하는 표징으로 해석하고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실제 취리히 중앙도서관의 개별 소장 자료를 살펴보면 당시 '기이한 천상 현상'으로 인쇄됐던 사례 가운데 오늘날 헤일로나 환일로 명확하게 분류되기도 한다. 또 전문 연구에서는 동시대 여러 인쇄물의 소재가 된 현상을 오로라 기록으로 분석하기도 하고 말이다.

실지로 당시 유럽의 단엽들은 이런 현상을 '세 개의 태양', '무지개', '십자가' 등의 모습으로 묘사했으며 때로는 이를 신의 경고나 종말론적 징조로 해석했다. 이미지는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자유제국도시였던 뉘른베르크 및 로텐부르크옵데어타우버에서 1560-1580년대에 유통되던 단엽 인쇄물. 오늘날의 대기광학 현상을 두고서 당시 사람들은 앞으로 닥칠 형벌을 알리는 신의 기적/징조로 해석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게 유행이었을 정도 (Zentralbibliothek Zürich)

그렇다면, 문제의 뉘른베르크 우주전쟁 인쇄물은?

해당 인쇄물에서 전투처럼 묘사된 주요 형상들은 태양과 그 주변으로 집중돼 있었다. 태양을 가로지르는 붉은 반원형 형상, 태양 안과 주변에 놓인 여러 둥근 형상, 좌우로 배치된 기다란 물체와 막대 같은 형상들이 등장하면서 말이다.

따라서 가장 먼저 검토해야 할 후보 중 하나는, 여러 요소가 동시에 나타나는 복합적인 태양 헤일로 계열의 현상이겠다.

태양 주변에 형성되는 고리와 호, 좌우의 환일, 수직으로 뻗는 태양주 등이 함께 나타난다면 이 글라저의 인쇄물에 등장하는 일부 형태와 꽤 흥미로운 유사점이 형성된다. 상층운의 얼음 결정 상태와 배열, 태양의 고도가 변하면서 보이는 요소 역시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말이다.

또 하나 고려할 수 있는 건, 실제 관측이나 사람들에게 전해진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되 이를 당대의 종교적/전쟁적 시각과 언어 속에서 서사적으로 재구성했을 가능성이다. 서로 다른 자연현상이나 여러 전언이 하나로 뒤섞였을 수도 있다. 즉 최종적으로는 글라저의 인쇄물 안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서사로 재구성됐을 가능성 말이다.

게다가 이미 언급했듯, 문제의 단엽은 여러 장면을 한 장의 그림 속에 압축한 ‘서사화’ 성격을 지닌다. 따라서 단순히 하나의 헤일로 현상만을 묘사했다기보다, 서로 다른 대기광학/기상/천문 현상이 한 장면 안에 함께 표현됐을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해 볼 수 있겠다.

확실한 건, 현재 확인되는 자료 가운데 그의 원문 설명만큼이나 장대한 기현상이 실제로 벌어졌음을 독립적으로 뒷받침하는 별도의 목격 조서나 공식 관측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겠다. 인터넷에서 전파되는 음모론 속 주장과 달리 말이다.

그저, 당시의 실제 현장 관측에 관해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1561년 4월 14일 뉘른베르크의 여러 사람이 기이한 천상 현상을 봤다고 한스 글라저의 단엽 인쇄물이 전한다'는 정도일 뿐이다.

1564년 2월 19일 라이프치히 상공에서 관측됐다고 전하는 천상현상을 그린 한스 치머만의 단엽. 구름과 불꽃 사이로 대포나 기다란 관처럼 보이는 여러 개의 원통형 기둥이 비스듬히 나타나 있다. 원문에선 이를 신의 경고와 최후의 심판을 예고하는 천상징조로 해석했다. 글라저의 단엽에서처럼, '포신과 탄환을 닮은 하늘의 전쟁'처럼 시각적으로 묘사됐다. 현재 소장기관인 취리히 중앙도서관은 해당 현상을 오로라로 분류한다 (Zentralbibliothek Zürich)

결론을 내리자면 이렇다.

쉽고 직관적으로 말해, 글라저는 뉴스와 기이한 사건을 상품화하면서 그 위에다 당대의 종교적 해석과 훈계를 결합한 단엽 인쇄물을 제작 및 판매하던 상업 장인이었던 셈이다.

왜냐하면, 예나 지금이나 똑같으니까.

유행 중인 컨텐츠에다 자극적이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첨가는 대중에게 반드시 인기를 끄니까.

22. 뉘른베르크 우주전쟁으로부터 5년, 바젤 상공에 나타난 검은 구체들의 공중전
사무엘 아피아리우스&사무엘 코키우스, 1566년 바젤 천상 현상 단엽 인쇄물

(Zentralbibliothek Zürich)

앞선 뉘른베르크의 우주전쟁 이야기와 세트로 묶여 소개되는 일화가 바로 이 바젤 공중전 이야기다.

뉘른베르크의 우주전쟁으로부터 불과 5년 뒤인 1566년 7월 27일. 이날 스위스 바젤의 하늘은 맑았으며 태양도 하루 종일 따사롭고 밝게 빛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해가 질 무렵, 갑자기 태양의 모습과 색이 변했다.

빛을 잃은 태양은 보름달보다도 크지 않아 보였고, 마치 피를 흘리는 것처럼 붉게 변해버렸다. 그 뒤의 하늘과 배경 역시 검게 보였으며, 해당 모습은 바젤 시내와 주변 지역의 여러 사람이 목격했다고 기록됐다.

그렇게 태양이 지고 난 뒤에는 달마저 거의 피처럼 붉은색을 띤 채 밤하늘에 떠 있었다고.

그리고 다음 날인 7월 28일 아침.

떠오른 태양은 전날 저녁과 거의 같은 모습을 보였고, 그 붉은빛이 집과 거리 주변까지를 마치 불이나 피로 물든 것처럼 비췄다고 한다.

그러고 열흘가량이 지난 8월 7일.

이번에는 훨씬 더 기묘한 광경이 등장한다. 일출 무렵과 그 직전, 하늘에 '수많은 커다란 검은 구체'들이 나타났다.

그것들은 태양 앞을 매우 빠르게 움직였고, 서로를 향해 되돌아가며 마치 싸움을 벌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중 일부는 붉고 불타는 것처럼 변하더니 이내 소진되며 꺼졌다고 한다.

앞서 본 뉘른베르크 케이스가 '애꿎은 지구에서 벌어진 서로 다른 외계 종족 함대 간의 우주전쟁'이라면, 바젤의 경우 역시 모선에서 나온 UFO 편대가 공중전을 벌이는 장면으로 연상된다.

해당 단엽 인쇄물은 사무엘 코키우스가 본문을 쓰고, 사무엘 아피아리우스가 인쇄했다. 본문 마지막에는 코키우스가 자신을 '성서와 자유 학예를 공부하는 바젤의 학생'이라고 밝힌다.

아피아리우스 역시 한스 글라저와 비슷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인쇄업자였으며 1566년 바젤로 옮긴 뒤 민요와 달력, 관청 명령뿐 아니라 '새로운 뉴스(Neue Zeitungen)' 같은 시사성 인쇄물도 찍어냈다.

이 단엽 인쇄물 전체는 7월 27일의 붉어진 석양과 달, 7월 28일 아침의 붉은 태양, 그리고 8월 7일의 검은 구체들처럼 서로 다른 날짜에 나타난 현상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은 것이다. 반면 목판화 부분에서 실지로 선택된 장면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극적인 마지막 사건, 즉 8월 7일의 '검은 구체들' 편이다.

또 하나. 뉘른베르크 케이스 때와 마찬가지로, 두 제작자 모두 해당 현상들을 직접 관측한 바가 없다. 목격자로부터 전해지던 이야기와 그 밖의 간접적인 보고를 이용해 인쇄물로 구성한 것이다.

한편 제작자 코키우스는 인쇄물 본문 결말부에다 신에게 황제와 신성로마제국 그리고 여러 통치자를 도와달라고 기도하면서, 오스만 세력('그리스도교 세계의 숙적'이라 표현한)에 맞설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취리히 중앙도서관도 해당 내용을 '신의 징조로 해석하고, 회개와 튀르크인들에 맞선 신의 도움을 청하는 글'이라고 설명한다.

사실 문제의 1566년은 바로 오스만 제국의 술레이만 1세가 대군을 이끌고 재차 헝가리로 진격한 해였으며, 그는 그해 9월 시게트바르 공성전 도중 사망한다.

그러니까, 바젤 사람들이 저 인쇄물을 접했을 당시는 오스만과의 전쟁이 먼 나라 옛이야기가 아닌 실지로 당장 벌어지고 있던 국제 정세였던 것.

자, 그렇다면 바젤 상공의 '검은 구체'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먼저, 7월 27-28일의 현상부터 살펴보자.

해 질 무렵 태양이 광채를 잃고서 짙게 붉어졌으며, 거의 보름에 가까운 달 역시 붉게 보였고, 다음 날 떠오르는 태양까지 다시 또 붉었다.

이런 현상 자체는 현대의 대기과학으로 충분히 가능한 광경이다.

태양이나 달이 지평선 가까이에 있을 때 빛은 훨씬 긴 대기층을 통과한다. 이 과정에서 짧은 파장의 빛이 더 많이 산란돼 붉은빛이 상대적으로 강해지고, 여기에 먼지나 연기, 연무 같은 에어로졸이 더해지면 빛의 산란과 흡수 상태가 달라지면서 태양과 달이 평소보다 어둡거나 붉게 보일 수 있다. 미국 해양대기청에서도 일출과 일몰의 붉은색이 대기 중 입자와 빛의 산란 상태에 크게 좌우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먼지나 연무, 연기 같은 대기 중 입자가 7월 말의 광경에 관여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산불 연기의 영향을 받은 태양과 보름달. 대기 중 연기와 미세입자가 짧은 파장의 빛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산란 및 감쇠시키면서 태양뿐 아니라 달도 짙은 주황색이나 붉은색으로 보일 수가 있다. 이처럼 같은 대기 상태가 해 질 무렵의 태양과 밤의 달을 연이어 붉게 만드는 현상은 현대에도 실지로 관측된다 (Steve Jespersen)

참고로, 달이 붉게 보였다는 구절을 두고서 개기월식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허나 NASA의 16세기 월식 목록을 확인하면, 1566년에 발생한 월식은 5월 4일과 10월 28일뿐이다. NASA는 1582년 10월 15일 이전 날짜에는 율리우스력을 사용하므로, 7월엔 월식이 없었던 게 맞다.

자, 그럼 8월 7일의 '검은 구체'는 또 무엇이었을까?

원문의 세부 디테일을 현대 대기과학과 하나씩 대조해 보면 비교적 설득력 있게 검토해 볼 수 있는 평범한 후보가 하나 있다.

바로, 구름이 그 주인공이다.

정확하게는, 떠오르는 태양 앞을 지나가던 여러 개의 둥근 구름 덩어리나 조각구름이다.

오늘날 세계기상기구의 구름 분류에서도 고적운은 둥근 덩어리와 작은 구름 요소들이 모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고, 층적운 역시 둥근 덩어리들이 반복되며 짙고 어두운 특징을 흔하게 갖는다. 일부 두꺼운 층적운은 태양 자체를 가릴 만큼이나 불투명하고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젤 검은 구체 사건 당시 태양의 위치겠다.

원문에선 검은 구체가 관측된 시점을 '일출 무렵과 그 직전'으로 기록한다.

구름이 관찰자와 태양 사이에 놓여 뒤에서 강한 빛을 받을 경우, 관찰자에게는 상대적으로 어둡게 보일 수가 있다. 세계기상기구 역시 뒤에서 빛을 받은 적운은 상대적으로 짙게 보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반대로 태양이 지평선 가까이에 있을 때는 구름이 노랑/주황/붉은색으로 물드는 것도 정상적인 현상이고 말이다.

말인즉슨, 처음에는 떠오르는 태양의 강한 역광 앞에서 검은 덩어리처럼 보이던 구름 조각이 위치와 조명각이 바뀌면서 붉은 햇빛을 받아 불타는 듯한 색으로 변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작은 구름 조각이 흩어지며 형태를 잃고 사라지는 모습 역시, 당시 관찰자 입장에서는 '소진되고 꺼졌다'고 표현됐을 수 있겠다.

일출 및 일몰 무렵 낮은 태양빛 아래에서 보이는 구름의 다양한 모습. 좌측은 미국 해양대기청 NOAA가 제시한 일출 무렵의 고적운으로, 긴 대기 경로를 통과한 태양빛->짧은 파장이 더 많이 산란되고 남은 적색/주황빛이 구름을 비추면서 각각의 구름 조각이 붉게 물들어 있다. 우측 사진처럼 비교적 두꺼운 조각구름은 관찰자 쪽으로 직접 들어오는 빛이 적을 경우 짙고 거의 검은 덩어리처럼 보이는 한편, 낮게 들어오는 붉은 태양빛이 아랫면이나 가장자리만 비추면서 일부가 불타는 듯 붉게 물들 수도 있다 (NOAA / Sweta Gupta)

물론, 실제 구름은 바젤 단엽에 그려진 것처럼 완벽한 원형일 필요는 없다.

직접 목격자의 현장 스케치가 아니라 전언을 바탕으로 제작된 목판화이며, 원문이 '검은 구체들(Kugeln)'이라고 표현한 대상을 삽화가가 단순한 원형 기호처럼 도식화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그림 속 동그란 윤곽 자체를 실제 관측물의 정확한 형태로 받아들일 수는 없겠다.

바젤 기록의 '검은 구체'와 이후 '붉고 불타는 듯한' 모습 역시 이처럼 구름의 두께와 조명각 변화, 그리고 목판화의 도식적 표현이 함께 작용한 결과였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허면, 서로 싸우는 듯한 움직임은?

여기서는 원문의 표현부터 정확히 볼 필요가 있다. 기록은 검은 구체들이 태양 앞을 '매우 빠르게' 움직였으며, 서로를 향해 되돌아가 '마치 싸움을 벌이는 것처럼' 보였다고 전한다. 즉 빠르게 움직였다는 인상 자체는 분명히 기록돼 있지만, 이들이 실지로 서로 전투를 벌였다는 부분은 원문 자체가 애초부터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헌데, 구름 가설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반드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하늘을 보다가 '오늘은 구름이 왜 저리 빨리 움직이지?' 하고 유난히 빠른 움직임을 체감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실제 풍속이 평소보다 몇 배 빨라진 것은 아니다. 구름까지의 거리만 달라져도 동일한 속도의 움직임이 시야 상으론 전혀 달리 느껴질 수가 있다. 동일한 속도로 움직이더라도 가까운 구름은 같은 시간 동안 우리 시야에서 더 큰 각도를 가로지르기 때문에 훨씬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구름의 형태도 영향을 준다.

넓고 균일하게 펼쳐진 구름층은 전체가 이동해도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덜 두드러질 수 있는 반면, 작고 떨어진 조각구름은 각각의 윤곽과 그 사이의 빈 공간이 뚜렷하기에 위치 변화가 더 쉽게 눈에 들어올 수 있다. 게다가 일부 조각구름은 이동하는 동안 가장자리가 빠르게 흐트러지고, 일부가 사라지는 동시에 다른 부분이 형성되는 등 윤곽 자체도 계속해서 변한다. 이러한 이동과 형태 변화가 한꺼번에 일어난다면, 구름의 움직임이 실제보다 더 빠르거나 불규칙하게 느껴질 수 있다.

여기에 대기는 높이가 달라지면 바람의 속도와 방향 역시 달라질 수가 있다.

이를 연직 바람 시어(vertical wind shear)라고 한다. 가령 특정 높이의 구름 조각들은 오른쪽으로 흐르는데, 그 위나 아래에 있는 다른 구름들은 다른 속도나 반대 방향으로 지나간다고 해보자. 멀리 있는 관찰자에게는 여러 높이의 구름이 하나의 하늘 화면 위에 겹쳐 보이므로, 검은 덩어리들이 서로 접근하고 마주치고 교차한 뒤 다시 반대편으로 흩어지는 듯한 장면이 만들어질 수 있다. 개별 구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하지 않았다면 서로 다른 조각들의 연속된 움직임이 하나의 물체가 '되돌아간' 것처럼 받아들여졌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사건이 벌어진 것은 일출 무렵이었다.

일출이라고 해서 구름 자체가 특별히 빨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낮은 위치의 태양이라는 밝고 고정된 배경 앞을 작고 검은 실루엣들이 차례로 가로지르면 각각의 위치 변화가 더욱 또렷하게 느껴질 수 있다. 여기에 일부 구름이 붉은 새벽빛을 받고, 윤곽이 흐트러지며 사라지는 과정까지 겹친다면 그 움직임과 변화는 상당히 극적으로 느껴졌을 수가 있다.

그리고 앞서 바젤 단엽 속 '검은 구체'가 완벽한 원형이라고 해서 실제 관측대상까지 정확한 구형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었던 것처럼, 그림에 표현된 운동 역시 실제 궤적을 영상처럼 추적해 옮긴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코키우스와 아피아리우스는 이 현상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 아니었으며, 1&2차 전언을 바탕으로 단엽을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빠르게 오가며 서로 싸우는 듯했다'는 전언의 인상이 최종 목판화에서는 수많은 둥근 물체가 뒤엉킨 하나의 극적인 '하늘의 전투' 장면으로 압축/도식화됐을 가능성 역시 강력하게 고려할 수 있겠다. (단엽물의 성격을 고려할 )

추가로, 구름 가설의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지만 당시의 수문(水文, 강수/하천/수위 등 물의 분포와 움직임) 및 기상 배경도 하나 참고할 만하다.

1566년에는 알프스에 겨우내 막대한 눈이 쌓였고, 그 융설의 영향으로 알프스 전면의 호수들과 라인강의 높은 수위가 장기간 이어졌다. 전문 수문학(水文學) 연구에 따르면 라인강은 약 두 달 가까이 높은 수위를 유지했으며, 6월 29-30일과 7월 23일에는 두 차례의 큰 홍수가 바젤을 덮쳐 다리가 파괴됐다. 당시 6월은 습했던 것으로 기록돼 있고, 연구자들은 두 홍수에 광범위한 강한 강수가 관여했을 가능성도 제시한다.

다만, 이것만으로 8월 7일 새벽 바젤 상공에 특정한 형태의 구름이 있었다고 입증할 수는 없다. 홍수와 장기간의 높은 수위는 그해 여름의 넓은 수문/기상적 배경을 보여주는 자료일 뿐, 사건 당시 하늘의 상태를 직접 복원하는 관측 기록은 아니기 때문이다. 허나, 적어도 1566년 여름의 기상 배경이 구름 가설과 모순되지는 않았음을 시사한다.

정리하자면 이 둥근 조각구름 가설은 검은 실루엣, 복수의 둥근 형태, 매우 빠르게 느껴질 수 있는 움직임, 서로 접근하고 교차하는 듯한 운동, 일출 무렵 붉게 물드는 색 변화, 그리고 형태가 흐트러지며 사라지는 과정까지를 하나의 대기현상 안에서 비교적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가 있다.

즉 여러 높이의 구름 덩어리나 조각구름이 낮은 태양 앞을 지나치며 검은 실루엣으로 보였고, 서로 다른 바람과 형태 변화 때문에 마치 충돌하거나 싸우는 듯 움직였으며, 일부는 붉은 새벽빛을 받아 불타는 것처럼 보이다가 흩어져 사라졌다는 가설이다.

여기에 비유적 표현과 전언, 그리고 목판화의 도식적/서사적 표현까지 더해졌다고 본다면 원문에 등장하는 여러 핵심 요소를 비교적 한데 설명할 수 있는 조건부 후보 중 하나가 되겠다.

허나, 뉘른베르크 케이스와 마찬가지로 해당 1566년 단엽에도 개별 목격자들의 독립적인 진술이나 여러 증언을 서로 크로스체크할 수 있을 정도의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어디까지나 이 가설 역시 현존하는 원문의 세부와 현대 대기과학, 당시의 기상 배경을 서로 대조해 얻은 조건부 가설이겠다.

이야기 끝입니다.

어쩌면..

본 글에서 마주친 많은 UFO는 바로 그곳에서 태어났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과거의 작품과 현대의 시각 사이, 우리가 모르는 것을 바라보며 가장 익숙한 이름을 붙이는 그 찰나의 순간에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과거의 하늘이 덜 신비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UFO와 외계인이 사라진 자리에는 고대인의 종교와 사라진 미술의 문법,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의례, 실지로 관측된 장대한 자연현상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니까요.

사실..

결국 우리가 옛 작품들에서 찾아야 할 것은 '현대의 무엇과 닮았는가?'가 아니라, 그보다 더 어려운 질문일 것입니다.

"이 작품을 만든 사람에게는 이것이 무엇이었을까?"

이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 그 자리에 우리가 잊고 있던 과거의 세계가 본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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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久喜市立郷土資料館/第16回特別展図録補足資料 — 特別章「空舩」原本初公開 中里村の名主は栗橋宿で何を見たのか>
<文化科学研究/「常陸国うつろ舟奇談」に隠された養蚕金色姫の暗号> 田中嘉津夫
<三弥井書店/うつろ舟伝説が表象する文化露寇 : 享和三年のフェイクニュース> 佐藤秀樹
<Art Gallery of South Australia/Wandjina spirit>
<ATINATI/MURALS OF SVETITSKHOVELI CATHEDRAL IN MTSKHETA>
<Bulletin Monumental/La tenture de la Vie de la Vierge à Notre-Dame de Beaune>
<Catalogo Generale dei Beni Culturali/disputa sull'Eucaristia>
<Catalogo Generale dei Beni Culturali/fondazione della 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 a Roma>
<Catalogo Generale dei Beni Culturali/Sacra Famiglia con San Giovanni Battista bambino>
<CGB Numismatique/BULLETIN NUMISMATIQUE n°211>
<Cour des comptes/LE CONTRÔLE DES COMPTES PUBLICS - catalogue d’exposition>
<Culture and Cosmos/An Examination of the Images of the Sun and the Moon in the Visoki Dečani Monastery in Kosovo> Dragana Van de Moortel-Ilić
<Enciclopedia dell’Arte Medievale, Treccani/Fortuna> F. Pomarici
<Germanisches Nationalmuseum/"EIN ERSCHRÖCKLICHES WUNDERZEICHEN" - Wunderzeichen über Schloss Waldeck>
<Hydrological Sciences Journal/The largest floods in the High Rhine basin since 1268 assessed from documentary and instrumental evidence> Oliver Wetter&Christian Pfister&Rolf Weingartner&Jürg Luterbacher&Tom Reist&Jürg Trö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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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T/Anatomy of a Palimpsest: The Not-So-Strange Case of the "Abydos Helicopter"> Joshua Aaron Rob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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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 International Cloud Atlas/Halo Phenomena>
<Zentralbibliothek Zürich, e-manuscripta/Ein vngewonlich gesicht / an der Sonnen erschinen> Hans Glaser
<Zentralbibliothek Zürich, e-manuscripta/Himmelserscheinung über Nürnberg vom 14. April 1561> Hans Glaser
<Zentralbibliothek Zürich, e-manuscripta/Seltzame gestalt so in disem M. D. LXVI. Jar/... zu Basel ...> Samuel Apiarius & Samuel Coccius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