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스퀘어 한복판에 갑자기 나타난 시간 여행자
경찰이라면, 그리고 경찰이었다면, 응당 '사건 이야기 하나'를 가슴에 품고 있는 법이다. 누군가가 '경찰 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 뭐였나요?'라고 물어올 때를 대비해서 말이다.
이제 막 은퇴한 뉴욕 경찰청의 경감 휴버트 림(66) 역시, 다른 경찰들과 마찬가지로 그런 '사건 이야기 하나'를 지니고 있다.
다만 다른 경찰들과 조금 다른 점이라면, 어떤 사건을 '사건 이야기 하나'로 꼽을지 고민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거겠다.
이 이야기는, 세상에 공식적으로 발표된 림 경감의 '사건 이야기 하나'이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으니까.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당신 얼굴을 보고 싶으니까.
1950년 6월이었습니다. 제가 은퇴를 코앞에 두던 때였죠.
그날 자정이 다 돼갔을 때였어요. 저는 뉴욕 경찰청 실종자 부서의 담당자였고, 벨뷰병원 시립 영안실에서 인턴 하나와 커피를 마시고 있었죠. 시신 하나가 들어와서요.
서른은 될까 한 젊은 남자였어요. 좀 웃긴 모습을 하고 있었죠. 머튼 촙(구렛나룻을 아래로 점점 넓게 길러 콧수염과 이어질 정도가 되는 스타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옷차림도 우스꽝스럽게 보였죠.
길에서 죽는 사람을 많이 보는 편이죠. 신원을 확인하는 데 오래 걸릴 때도 있고요. 그래서 이 남자의 외형이 아니라 남자의 소지품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남자의 주머니에는 5센트 잔돈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전에 찍힌 발행연도가 제일 최근 게 1876년이었습니다. 전부 새것처럼 상태도 좋았죠. 지폐들 역시 오래전에 발행되던 크기가 큰 지폐거나 지역 은행에서 은행장이 직접 서명하던 방식의 예전 것들이었죠.
렉싱턴 애비뉴의 마구간에서 끊은 청구서도 나왔습니다. 말 관리와 마차 세탁 비용으로 3달러가 청구됐다는 내용이었죠.
남자의 지갑에선 편지가 나왔습니다. 편지는 1876년 6월 필라델피아 소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그를 통해 그의 이름과 주소를 알 수 있었죠.
남자는 뉴욕시 5번가의 루돌프 펜츠였습니다.
주소를 따라 도착한 곳은 가정집 같은 거주지가 아니라 한 가게였습니다. 가게 사람은 가게가 들어선 지 몇 년밖에 되지 않았으며, 누구도 펜츠라는 사람을 알지 못했죠.
전화번호부나 워싱턴의 지문 기록에서도 그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잠깐 남자의 차림새에 대해 말해보죠. 처음에 그의 옷차림이 우스꽝스럽게 보였다고 했었죠.
그 말대롭니다. 뻣뻣한 카라에 커다란 검은 나비넥타이, 라펠 달린 조끼, 검정과 흰색의 체크무늬가 큼직하게 나 있고 통이 좁게 재단됐으며 주름 없이 다림질된 바지, 뒤쪽으로 두 개의 단추가 달린 숏한 컷어웨이 코트, 키가 큰 실크햇, 단추 달린 구두까지.
그러니까, 70-80년 전 우리 아버지 세대의 차림새를 하고 있던 거죠.
근데 남자는 서른도 채 안 돼 보였어요. 남자의 실크햇에는 23번가 모자 가게 라벨이 있었는데, 지난 세기에 이미 폐업했던 곳이었죠.
남자의 사인은 교통사고였습니다.
사건을 목격했던 경관이 말하길, 밤 11시 15분경 극장 문이 막 닫은 타임스퀘어 차도 한복판에 남자가 나타났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분주하게 돌아가는 장소와 시간대에 있었던 거죠.
남자가 어쨌는지 아십니까?
마치 별세계를 본다는 듯이 그 자리에서 멍하니 사방을 둘러보더랍니다. 신호가 바뀔 때까지도 말이죠.
그냥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었으면 좋았을 겁니다. 차들이 피해 가도록요. 하지만 남자는 갑자기 몸을 돌려 인도 쪽으로 내달렸고, 그렇게 택시에 치여 즉사했죠."
"여하튼 지건, 남자의 신원에 대해 알아낼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러다 언제나처럼 오래된 전화번호부들을 뒤지던 끝에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1939년 여름에 발행된 전화번호부였죠. 거기서 이스트 50번가 거리의 루돌프 펜츠 주니어라는 이름을 찾아냈습니다.
건물 관리인은, 펜츠 주니어가 은퇴한 60대 남성으로 1942년에 이사를 갔다고 했습니다. 조사해 보니, 몇 블록 떨어진 은행에서 일해오다 1940년에 은퇴했다고 하더군요.
펜츠 주니어는 이미 5년 전에 세상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부인은 여동생과 플로리다에 살고 있었고요. 부인께 편지를 보냈고, 그녀는 이렇게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남편의 부친이자 제 시아버님인 루돌프 펜츠는, 남편이 2살 무렵이던 당시 실종됐어요. 어느 날 밤 10시쯤이었대요. 시아버님이 산책을 나갔대요. 시가 냄새가 집안에 벨까봐 잠자리에 들기 전 그렇게 잠깐씩 밤산책을 나갔었대요. 그런데 그날은 나가서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실종된 거죠. 가족들이 많은 돈을 들여서 시아버님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끝내 행방을 찾지도 소식을 들을 수도 없었다네요. 시아버님이 실종됐다던 시기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 1870년대 중반쯤이었던 것 같아요.'
이게 노부인이 말해준 전부였답니다."
"한 번은 작정하고 시간을 내서 오래된 경찰 기록을 뒤진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정답이었죠. 1876년 실종자 파일에서 펜츠의 기록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문이 누락돼 있었습니다. 만약 그의 지문 기록을 찾을 수만 있다면, 제 남은 인생의 1년을 바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곤 숙면을 취할 수 있겠죠.
그래도 기입된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연령이 29살이고, 머튼 촙에 키가 큰 실크햇을 착용하고서, 체크 무늬 바지와 코트를 착용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말입니다. 거주지도 뉴욕 5번가였고요.
마지막으로, '사건 최종 처리: 소재 불명'이 적혀있었습니다.
도대체 뭐죠?
이 남자가 1876년에 사라졌다가 1950년에 나타난 거라고 생각해야 하나요?
이젠 이 사건이 정말 싫어졌어요. 처음부터 몰랐었다면 좋았을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리고, 무슨 표정을 짓고 계시나요?"
놀랍고도 즐거운 시간 여행자 이야기인 '루돌프 펜츠의 실종 사건'.
해당 사건.. 아니, 이야기는 1970년대부터 잡지와 기사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이어 미스터리 소재가 대중 오락의 대표적인 컨텐츠로 자리 잡던 1990-2000년대에서는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기도 한다.
그렇다면, 펜츠는 정말로 74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시간 이동을 했던 것일까?
펜츠는, 우주에 존재하는 먼지만 한 오류의 희생자였던 것일까?
펜츠의 이야기가 잡지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던 2000년이었다.
역사 속 미스터리 및 UFO 케이스 컬렉션 편집 분야의 대표적 인사이자, 이러한 케이스 컬렉션 협력 네트워크 프로젝트인 'Magoniax'의 공동 창립자로도 유명한 민속학자 크리스 아벡 역시 펜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그렇게 아벡은 시간을 거슬러 조사를 진행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펠츠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대두된 게, 바로 1972년 5/6월호에서였다는 것을.
왜 놀라운 사실이냐면, 이 가 親 미스터리/UFO 성향으로 유명한 저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벡은 이어진 조사 끝에, 가 1953년 출판된 책에서 펠츠의 이야기를 인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여담으로, 이 책의 작가인 랄프 홀랜드는, 평소 초자연현상과 SF에 관심이 많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아벡은 자신의 조사 결과를 2001년 8월 미국의 일간지를 통해 기고한다.
그리고, 이에 흥미를 느낀 이들이 보다 깊숙한 조사에 돌입한 결과 다음의 진실이 밝혀지게 된다.
"최초의 오리지널은, 미국의 유명 작가였던 잭 피니가 1951년 9월 대중지 <Collier's>에 기고한 단편 소설 <I'm Scared> 중 한 챕터에 속하던 이야기이다."
그렇다.
1951년에 공개된 <I'm Scared>는, '뉴욕에서 발생한 시간의 균열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한 단편 소설이었다.
그리고 훗날, 이러한 에피소드들 중 펜츠의 이야기가 마치 실지 뉴욕에서 발생했던 사건인 양 이용됐던 것이다.
한편 이 깔끔하게 구성된 흥미로운 시간 균열 이야기는, 7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환영받고 있다.
진정한 시간 여행자는, 바로 '이야기'인 셈이다.
참조
<I'm Scared> Jack Finney
<The Museum of Hoaxes/Rudolph Fentz, Accidental Time Travel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