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의 영혼이 범인을 밝힌 희대의 사건
* 본 글은 단순히 범죄사건과 관련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오락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사건의 악랄한 범행성을 알림과 동시에 범죄의 연보年譜를 통한 교육에 그 목적을 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1977년 2월 21일 밤 8시 40분경이었다.
미국 시카고 내 파인 그로브 애비뉴 구역의 한 아파트 15층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출동한 소방수들이 최초 발화지에서 진압을 시도했다.
그리고, 불길이 사그라들은 거실 한켠에서 연기 바깥으로 끔찍한 비극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중년의 여성이, 나체 상태에서 칼에 가슴팍이 박힌 채로 방치돼 있었던 것이다. 여성의 시신은 옷더미와 매트리스로 아무렇게나 덮여 있었다.
한편, 현장에서 발견된 여성의 다이어리에는 다음과 같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A.S.에게 영화관 티켓 얻어주기"
미국 시카고 역사상, 그리고 미국 법 역사상 가장 괴이한 사건의 시작이었다.
피해자는 필리핀 태생의 48세 테레시타 바사였다.
유명 변호사 집안에서 외동딸로 태어난 그녀는, 1960년대에 음악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향한다. 이후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정착하게 되면서, 시카고 사립대인 로욜라 대학에서 음악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그녀는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병원인 에지워터 병원(2001년에 폐업)에서 호흡기 치료사(심장 내지 폐질환 환자를 진단 및 치료를 돕는 전문 의료인)로 본업을 두고 있었다.
그녀의 본업과 내향적이고 평화로운 일상으로 인해, 어떠한 트러블에 휘말리거나 원한 및 계획범죄의 표적이 될 가능성은 전무했다.
헌데 사건 당시 현장에선 자상들과 함께 발가벗겨진 상태로 발견됐기에, 의심할 수 있는 건 성범죄 또는 강도가 유력했다. 그리고 범죄 직후 증거를 인멸하고자 그같은 짓을 벌인 뒤 방화까지 저질렀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허나, 현장에서 강도당한 귀중품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할 도리가 없었다. 몇 주에 걸쳐 가족과 남자 친구 및 지인과 주변인들을 인터뷰했으나, 특별히 그녀에게 원한을 갖고 있거나 혐의가 존재하는 인물을 도출할 수가 없었다.
불특정 대상을 타겟으로 한 강도의 소행이었던 것일까?
수사관들이 사건에서 얻은 소득이라곤, 그녀의 다이어리에 적혀 있던 'A.S.에게 영화관 티켓 얻어주기'라는 수수께끼의 메모였다.
허나, 사건과 관련해 직간접적인 연관이 있다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당연히 수사의 초점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이때까지는 말이다.
사건으로부터 6개월 후인 1977년 8월.
난항에 빠져있던 수사가 일순 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제보자가 나타난 것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를 건네는 제보자를.
제보자는 부부인 호세 추아와 레미비아스 추아였다. 호세는 시카고의 한 병원에서 외과 조수로 일하던 사람이었고, 레미비아스는 피해자인 바사와 같은 병원에서 근무했었던 호흡기 치료사였다.
레미비아스는 바사와 같은 병원(에지워터 병원)에서 동일한 의료 근무에 임하던 이였으나, 둘은 서로 업무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얽혀있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저, 바사가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가 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뿐.
그렇다면, 이들 부부는 무슨 제보를 하고자 사건 수사관들을 찾았던 것일까?
부부의 주장에 따르면 이렇다.
바사의 사건이 있은 지 몇 달 후, 레미비아스가 직장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잠자리에 들던 레미비아스가, 무아지경인 상태에서 남편인 호세에게 낯선 목소리로 기이한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저는 테레시타 바사에요. 부디 저를 좀 도와주세요. 저를 살해한 사람이 아직 붙잡히지 않았어요."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몇 주 후에도, 레미비아스는 무아지경 상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를 살해한 사람은, 바로 앨런 샤워리에요."
허나, 부부는 이러한 일을 곧이곧대로 수사관들에게 제보할 수가 없었다. 자신들 역시 일련의 상황을 쉬이 믿을 수 없는 데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다시 레미비아스가 무아지경에 빠지는 일이 벌어진다.
"앨런 샤워리가 저를 살해했어요. 그가 저희 집에 텔레비전을 수리하러 방문해서는, 저를 살해하고서 불을 지르고는 보석을 훔쳐 달아났어요."
32세의 앨런 샤워리는 에지워터 병원에서 호흡기 치료 부문에서 보조 및 잡무 업무를 맡던 이였다.
지금보단 심령현상에 대해 비교적 관대했던 시대적 배경이긴 하나, 수사관들은 추아 부부의 말을 당연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허나, 수사의 진전을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야했다.
게다가, 바사의 다이어리 속 메모의 이니셜도 A.S.가 아니었는가.
그렇게..
수사관들은 처음 수사포커스에서 조금은 벗어나, 에지워터 병원 근무자들에게 바사와 샤워리의 관계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탐문에서 의미심장한 진술을 확보한다.
바사와 샤워리는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 중이었다. 둘은 같은 병원의 같은 업무권에다 같은 동네 권에 거주했다. 특히 금전적 상황이 좋지 않던 샤워리에게, 자상하고 남에게 베풀 줄 알던 바사가 잡무를 맡기고서 넉넉한 보수를 지불하곤 했다는 것.
한편, 사건 당일 샤워리가 바사네 집 텔레비전을 수리해 주겠다고 방문하기로 한 사실도 병원 근무자들의 증언을 통해 밝혀졌다.
빙의된 레미비아스의 주장과 일치했다!
샤워리는 심문에서 자신은 바사네 집을 방문한 적이 없다고 발뺌한다. 허나, 이미 병원 근무자들로부터 증언을 확보한 수사관들이 압박해 오자, 다음과 같이 진술을 번복한다.
"바사 씨네 집을 방문한 건 맞습니다. 텔레비전을 수리하러요. 저녁 일찍 방문했는데, 텔레비전을 고칠 수가 없어서 그냥 돌아왔어요. 그게 전붑니다."
한편, 샤워리의 여자 친구는 수사관들에게 아주 의미심장한 진술을 한다.
"텔레비전을 고치려 방문했었다고요? 앨런은 전기 관련 지식이 전혀 없는데.. 아, 이거요? 앨런이 2월 말에 뒤늦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거예요. 아주 이쁜 옥 펜던트와 진주 칵테일 반지를요."
이에 수사관들은 협조를 구해 문제의 펜던트와 반지를 바사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확인해 보도록 한다.
그리고..
펜던트와 반지는 생전 바사의 것이었다는 증언을 확보한다.
결국, 궁지에 몰린 샤워리는 범행 일체를 자백한다.
평소 자신에게 관대한 베품을 보이던 바사를 두고서 샤워리는 그녀가 부유한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하여, 마침 텔레비전에 문제가 생긴 바사에게 자신이 고쳐준다고 하고는, 집에 방문한 자리에서 끔찍한 범행을 자행한다.
이어 집안을 샅샅이 뒤져 현금과 함께 귀중품을 훔치고는 증거인멸을 꾀하고자 방화까지 저질렀던 것이다.
한편, 막상 재판이 진행되면서 기류가 조금 불안하게 흘러갔다.
수사관들이 적법한 수사 프로토콜을 통해 합법적인 심문 과정을 거쳐 체포에 이르른 것인지, 샤워리의 자백을 제외하곤 그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존재하는지, 사건의 유일한 정황 증거가 레미비아스의 빙의 중 주장에 불과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또 샤워리는 경찰이 자신의 임신한 여자 친구 역시 살인죄로 체포하겠다고 협박해왔기에, 경찰 측이 제공한 사건 정보를 따라 거짓 자백을 했던 것이라 번복했다.
그렇게..
재판은 교착 상태에 빠지며 배심원단 측의 분위기도 점차 무죄 쪽으로 향하던 순간이었다.
헌데, 또 한 번 기이하게도 샤워리가 돌연 태도를 바꿔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는 일이 벌어진다.
하여 무죄 석방을 코앞에 뒀던 샤워리는 사건 2년째인 1979년 2월, 14년형의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정말이지..
당시 재판에서 검사 측이 발언한 다음의 말이 해당 사건을 가장 잘 표현한다고 할 수 있겠다.
"우리 중 누구도 이런 기괴한 이야기를 들어본 바가 없었다고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레미비아스 부인은 정말로 바사의 원혼에게 빙의됐던 것일까?
해당 사건은, 피해자의 원혼이 재판 승소를 이끈 최초의 역전재판인 것일까?
재판 당시 샤워리의 변호사 측은, 레미비아스가 평소 샤워리와 직장 내에서 사이가 나빴으며 적대관계에 가까웠기에 그같은 빙의를 빙자한 사기극을 펼친 것이라 주장했다.
허나, 이러한 주장은 현실적으로 다소 무리가 따른다.
애초에 샤워리를 곤경에 빠뜨릴 이유였다면, 그저 증인 보호를 통해 샤워리의 사건 당시 행적(그가 바사와 약속이 있었다는)을 제보하면 그만이다. 오히려 빙의 소동을 통해 전국 언론에 오르내리며 전면에 자신을 부각시킬 이유가 없었다.
위의 주장 그리고 '정말로 빙의' 가설 외에 하나 유력한 현실적인 이론이 존재한다.
흥미롭게도, 레미비아스는 바사와 마찬가지로 필리핀에서 미국으로 이주해 같은 병원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던 동성의 사람이었다.
한편, 레미비아스는 병원에서 해고당한 뒤로 정신적으로 힘겨워하던 와중 그러한 빙의에 시달렸다고(?) 말한다.
허면 직장 동료이자 동포인 자신의 또래가 잔혹하게 살해당한 데다가 해고라는 불운이 겹쳐지면서 동질감, 동정심, 우울감, 예민해진 감수성으로 인해 일종의 정신적 착란 상태가 찾아오게 됐다면?
그리고, 평소 그녀가 좋지 않은 시선으로 봐왔던 샤워리가 사건 당일 바사와의 약속이 있었다는 사실을 다른 직원들처럼 사전에 알고 있었다면?
하여, 마음속 한켠에서 지속적으로 평소의 무의식이 더해져 한 편의 살인 시나리오가 펼쳐졌다면?
..물론, 이제는 진실의 이면이 무슨 색으로 칠해져 있는지 알 방도가 없어졌다.
놀라운 사실이 아직 하나 남았다.
애초에 14년형의 징역형 선고 자체가 전과가 없어서 그러했던 것인지 유죄 인정 과정에서 딜이 있었던 것인지 모르나..
14년형을 선고받은 샤워리가, 4년 만인 1983년 7월에 가석방됐다는 사실이다.
이는 샤워리가 복역 과정을 모범수로 있었으며, 사건 이전 전과기록 역시 깨끗한 편이었음을 시사한다.
여하튼 지건 중요한 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던 바사의 영혼이 과연 이러한 참작을 용납하겠느냐는 것이겠다.
참조
<Block Club Chicago/Did Teresita Basa Solve Her Own Murder? True Life Ghost Story Still Haunts> Linze Rice
<JimHarold.com/The Strange and Sad Case of Teresita Basa – Unpleasant Dreams>
<Mysteriesrunsolved/The strange case of Teresita Basa: Did her ‘ghost’ solve her own mur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