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하는 백룸? 아니, 백홀? 미스터리한 '멜의 구멍'
미국에는 <Coast to Coast AM>라는 심야 라디오 토크쇼가 존재한다.
1988년 탄생한 이래 미국 전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야간 라디오 방송 타이틀을 고수하고 있으며, 전성기 무렵엔 매주 1,000만 명이 넘는 청취들의 밤을 하염없이 지새우게 만들었다.
<Coast to Coast AM>는 게스트 및 시청자들이 제보하는 초자연현상/미스터리/음모론/오컬트를 메인 주제로 삼는다.
미국의 대표적인 타블로이드 신문인 동시에 맨 인 블랙들이 외계인 정보 수집처로 활용하는 <위클리 월드 뉴스>가 '진담 조금 유머 듬뿍'의 성향을 띠고 있다면, 의 모토는 '우리부터 전력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믿는다'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내의 많은 학자들이 <Coast to Coast AM>를 두고서 '미국인들에게 유사 역사와 유사 과학을 주입시키는 현대 미디어의 대표적인 병폐물'이라고 비판하는 반면, 음모론자들은 정부의 진실 은폐에 맞서는 참된 방송이라 주장한다.
하나 분명한 사실은, 해당 방송에서 전파되는 이야기들에서 그 옛날 20세기 미스터리 컨텐츠물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본 글에서 소개하는 이야기는, 바로 이 <Coast to Coast AM>에서 1997-2002년에 걸쳐 방송된 멜 워터스라는 사람의 제보다.
워터스가 워싱턴주 키티타스군 엘렌스버그의 한 작은 외딴 시골 마을 마나스타시에 거주한 지 수년이 지났다. 이곳으로 이사한 직후부터 그이 호기심을 자극했던 건, 마을에 커다란 구멍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약 1m 높이의 제법 그럴싸한 돌담으로 둘러싸여 마치 우물처럼 보이던 구멍은, 너비가 약 3m였으며 이미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 존재를 알고 있던 오래된 구멍이었다.
워터스는 이 마을에서 수년간 지내오며 마을 주민들이 문제의 구멍에 온갖 쓰레기들을 버리는 것을 봐왔다.
구멍은 마치 거대한 쓰레기 처리소와도 같았다. 분명 오래전부터 그래왔을 터인데, 이상한 건 그처럼 많은 쓰레기가 버려졌음에도 결코 구멍이 메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 구멍에 대고 소리를 질러봐도 에코 현상은 발생하지가 않았다.
워터스는 어느날, 도대체 얼마나 깊은 구멍인 거냐는 호기심을 해결하고자 전문 상어 낚시용 릴대 2개를 챙기고서 실험을 진행한다.
그렇게 추를 단 릴을 고정하고서 구멍 안으로 흘려보낸 워터스. 허나, 릴은 언제까지고 계속해서 아래로 아래로 내려갔다.
최종적으로 구멍에 흘려보내진 릴 줄의 합산은, 무려 80,000피트(24km)에 달했다.
구멍에 대해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는 더욱 놀라운 것을 알게 된다. 마을 사람 모두가 구멍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구멍은 마치 지역의 실존하는 전설과도 같았다.
이 구멍과 관련해 전해지는 이야기를 하나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사냥꾼이던 어떤 남자가 자신이 기르던 개가 죽자, 그 개를 매장의 의미로 구멍에 던졌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놀랍게도, 사냥을 나선 자리에서 똑같이 생긴 개를 봤다는 것이다. 그 개는, 생전 자신의 개가 목걸이에 하고 있던 작은 금속을 차고 있었다.
워터스는 이 이야기를 듣게 된 뒤로, 자신의 유언장에 만약 자신이 죽게 되면 그 구멍에다 던져 달라는 당부를 미리 적어놨다고 한다.
이 구멍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자세한 건 알 수 없으나, 워터스는 구멍 주변 일대의 땅이 본디 아메리카 원주민의 땅이었기에 그와 관련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한다고.
워터스는 구멍이 오래된 광산과 연관된 게 아닐까 여긴다면서,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깊은 구멍이라고도 생각한단다.
한편 첫 제보 방송 이후..
워터스는 정부 요원들이 자신을 찾아와선 부동산을 압수하더니, 호주로 이주하는 조건으로 25만 달러를 지불하겟다며 강압적으로 위협했다고 한다.
또 테라서버(1997년 미국에서 시작된 항송 및 위성 이미지 전문 웹사이트) 상에서 문제의 구멍 지역이 삭제됐으며, 워터스의 부동산 기록이나 구멍과 관련한 공공 행정 기록에 조작이 가해졌다고.
그렇게 오래도록 워터스의 이야기가 청취자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을 무렵..
자신을 아메리카 원주민과 백인 사이에서의 혼혈로 레드 엘크라는 이름의 부족 주술사라고 소개한 제랄드 오스본이 방송에 제보해 온다.
오스본은 자신이 어린 소년이던 1961년 무렵 아버지를 따라 구멍을 자주 방문했으며, 자기가 알기론 구멍의 깊이 38-45km라고 한다.
이외에도 엘렌스버그 지역에선 '너무도 깊어서 결코 채워지지 않는 구멍' 이야기가 이미 예전부터 전해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 구멍은 마나스타시 능선 부근에 존재하며, 너무 깊어서 끝이 보이질 않는 데다 돌이나 바위를 던져도 바닥에 도달한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과연..
멜 워터스의 이름을 따 '멜의 구멍'이라고 불리우는 이 구멍의 정체는 무엇일까?
다른 차원과 이어지는 포탈?
요즘 화자 되는 '백룸'과 같은 초자연적 공간, '백홀'?
여기까지가, '멜의 구멍'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날로그 미스터리 이야기의 향수에 취하고 싶다면, 여기서 읽는 것을 중단하고서 공상의 시간을 즐기도록!
멜의 구멍.
멜의 백룸.
이 구멍을 미국 정부가 기밀리에 조사하고 연구해 왔을까?
한편..
이후 10년 넘도록 멜의 구멍을 두고서, 이야기에 심취한 이들로부터 구멍을 찾아내고자 탐사대가 여러 번 발족되기도 했으나..
끝내 현실에선 발견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구멍의 유력한 지역으로 꼽히는 마나스타시 능선 지역은 화산에 의해 형성됐던 화산암 지형이기에, 그만한 규모의 구멍이 존재할 수가 없다.
더불어..
워싱턴주의 지면 두께는 20-40km로 추정되므로, 깊이가 24km 이상이라는 멜의 구멍은 단단한 암석 지대를 지나 섭씨 715도 이상의 열기를 뿜어내야 한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알려진 마리아나 해구의 경우 그 깊이가 10-11km이다.
마지막으로..
멜의 구멍 이야기가 미국 전역에 도시전설화되면서 마침내 기자들까지 참전하게 됐고, 기자들을 비롯한 추적대 모두 워터스와 멜의 구멍에 대한 어떠한 기록 및 증거물도 찾아내지 못한다.
지금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