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인정한 유일한 여자 야쿠자, 그녀와의 대담

(Instagram/kusari_usagi)

일본 현지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구사하고 있는 만화, <고향최고!>

이 만화는 극빈의 환경과 한구레 및 야쿠자계 어둠의 생활상을 적나라하게 노출하면서도, 내용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캐릭터의 여체화와 발랄한 그림체라는 독특한 개성을 통해 트위터 연재에서 단행본 발매에 이르기까지 마니아층을 포섭하고 있다.

헌데, 이런 만화에서나 등장하는 여성 폭력단원(야쿠자)이 일본에 실지로 존재했다. 일본 정부에서 최초의 여성 폭력단원(야쿠자)으로 인정한 니시무라 마코가 그 주인공이다.

과거 젊은 시절 야쿠자에 몸담으며 전형적인 악행들을 거듭했던 그녀(현재 50대)가, 올해 3월 <슈에이샤>와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日本で初めての「女性暴力団員」と認定された壮絶半生「男って血を見ると弱い。下手打った組の人間の指、私が数人飛ばしましたよ」
/ 「修羅場をくぐって来た私も“人生、終わった”と思った」日本初の「女性暴力団員」と認定された女性がもっともヤバいと思った瞬間> 集英社オンライン編集部)

다음은, 바로 이 인터뷰를 부분적으로 옮긴 것이다.

야쿠자 구성원 중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게 됐습니다.

-> 나도 형무소에서 폭력단 탈퇴 신고서를 작성할 때 알게 됐다. 형무관의 "너가 일본에서 처음 있는 케이스라 절차에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거다"라는 말을 듣고서 말이다.

야쿠자 영화에서도 흔히 보이는 장면인데, 내가 출소할 때 형무소 문 앞으로 조직원들이 2열로 서서는 일제히 "수고하셨습니다"라며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걸 본 소장님이 "이런 광경 처음 보네"라며 놀라워했다. 왜냐하면, 여자 형무소엔 야쿠자가 없었으니까.

어쩌다 여자 야쿠자가 된 건가요?

-> 중2 무렵부터 グレ(주: 구렌타이, 불량배. 요즘의 한구레가 바로 半+グレ)였다. 고등학교는 가지 않고서 고향 기후현에서 불량배나 야쿠자와 싸움만 하고 지냈다. 그러는 사이 지는 걸 모르는 사람이라 소문이 나면서 20세 무렵엔 스미요시카이(주: 일본 3대 야쿠자 조직 중 하나) 계열의 두목으로부터 "여자라도 괜찮으니까 야쿠자 해라"라고 권유받아 "하겠습니다"하고 즉답하고는 들어갔다.

20세 무렵의 니시무라 마코 (集英社)

여자 야쿠자라 하면, 남자 못지않은 프로레슬러 같은 체형을 떠올리게 되는데 니시무라 씨는 체중이 50kg도 안 되네요. 무법자 계통의 남성과 싸워도 아무렇지 않았나요?

-> 지지 않았다. 싸움은 일상다반사였다. 어쨌거나 먼저 선수를 친다. 선빵을 내는 게 이기는 거다.

선수 필승이라, 오야마 마스타츠 총재(주: 극진공수도 창시자 최배달)와 같은 말을 하네요. (웃음)

-> 먼저 상대의 다리를 노린다. 제대로 서있지 못하게 한 뒤, 위에 타서 공격하는 거다. 너클이 효과가 좋다. 얼굴에 박아 넣으면 찢어져서 피가 난다. 남자는 피를 보면 약해진다. 오히려 여자 쪽이 그런 부분에선 대담한 편이다.

보통 맞으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도 들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 불안해지지 않도록 나는 절대로 이긴다라고 생각하도록 노력한다. 그렇게 되뇌이며 멘탈을 단련했다.

야쿠자가 되고서는 킥복싱을 다녔다. 패배해서 소문이 나면 야쿠자로서 끝이기 때문에 싸움에 대한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반대로 당한 적은 없나요?

-> 10대 무렵 2번 정도. 건방지다는 이유로 여럿에게 둘러싸여 당했다. 중학교 선배나 폭주족 선배들 그리고 남자들도 섞여 있었다. 그래도 전혀 아프지 않았지만.

야쿠자라 하면 남자로 이뤄진 사회인데, 불편한 건 없었나요?

-> 완전히 남자 취급받았는데 오히려 고생한 적은 없었다. 남자다운 성격이어서 편했다. 원래 머리도 짧게 했고, 싸울 때 스커트를 입으면 팬티가 보여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 바지만 입었었다. 그래서 거부감은 없었다. 말투도 남자 말투였었고.

평소에는 트레이닝복에 청바지 차림이었고 사무소에서는 검은 양복을 입기도 했다. 그래서 조원들로부터 다카라즈카(주: 여성으로 구성된 가극단)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남자들끼리 모인 사회에 있으면서 느낀 점이 있을까요?

-> 다를 회장님 눈치를 보느라 자기 의견을 말하지 못한다고 하더라. 안 좋은 거일 수 있는데, 나는 생각하는 것을 딱 말해 버리기 때문에 이마에 챠카(주: 권총의 은어)가 들이밀어진 적도 있다.

또 남자들은 주저하는 게 있다. 잘못해서 손가락을 자르게 되더라도 좀처럼 각오를 다지지 못한다. 그래서 경험자인 내게 잘라달라고 부탁하고. 그렇게 손가락을 몇 개나 잘랐었다.

스물에 두목으로부터 정식으로 술잔을 받다 (集英社)

마코상도 새끼손가락이 없네요...

-> 책임을 지고서 잘랐었다. 우리 조에서 각성제는 금지였는데, 알고 보니 다들 약을 하고 장사도 하고 있더라.

언젠가는 다들 샤브(주: 각성제의 은어)를 하는 걸 두목에게 들켰다. 본부장이 두목의 화를 가라앉히고자 내가 대표로 손가락을 자르라고 했다. 불합리하게 느껴졌지만 내가 대표로 손가락을 잘라 두목에게 사죄하는 식으로 마무리됐다.

당시엔 '야쿠자니까 손가락이 다 있으면 모양이 안 나지'라는 생각도 했기 때문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아픈데, 어떻게 잘랐나요?

-> 일본도로 직접 잘랐다. 처음에 비스듬히 잘려 손가락이 매달려서 연거푸 자르다 보니 제2 관절까지 가버려선 너무 많이 자른 거다. 새끼손가락이 너무 짧다 보니 주변에서 '몇 번이나 잘못 친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웃음)

각성제를 끊는 게 힘들었나요?

-> 나는 쉽게 끊을 수 있었다. 애초에 몸에 맞지가 않았다. 보는 것만으로 토해 버리는 경우도 있었고.

10대 무렵 처음으로 했었는데, 머리가 뒤집어지는 느낌이 들고 깼을 땐 몸이 나른해 아무 의욕도 들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야쿠자가 되고 나서는, 야쿠자라면 각성제 정도는 해야 폼이 난다고 생각해 상습적으로 했는데... 결국은 그만두면 몸이 괴롭기 때문에 그걸 없애고자 한다는 느낌이었다. 그게 반복되다 보니 할 때마다 후회하면서도 또 했구나, 이런 식이었다.

경험자로서 거리에서 각성제 중독자를 보면 알 수 있나요?

-> 바로 알 수 있다. 분명히 움직임이 이상하니까. (웃음) 게다가 절대로 눈을 마주치질 않는다.

문신은?

-> 처음에는 직접 팔뚝과 허벅지에 새겼다.

문신을 직접 새기다니... 그림에 소질이 있었나요?

-> 자신은 전혀 없었다. 그래도 역시 불량이니까 문신 정도는 하지 않으면 볼품없으니까.

18세 무렵 문신사 선생한테 등에 새겨달라고 했다. 그런데 완성 전에 그 선생이 각성제 중독으로 사망해서 색이 채워지지 않았다. 소년원에 들어갔을 때 문신이 도움이 됐다. 등에 화각(주: 일본 전통 그림 바탕의 문신)을 짊어진 여자 따위는 없으니 아무도 거역해 오지 않았다.

역시나 현역 때 권총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 야쿠자인 이상 권총을 가지고 있는 게 당연하다.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받은 70만 엔으로 몰래 콜트를 산 적도 있다. 사용은 안 했지만 주머니에 넣고선 슬쩍슬쩍 들여다보곤 했다.

사격이 취미인 동료가 저녁에 시골로 데려가 기차 소리에 묻혀 시험 삼아 쏴본 적이 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걸 실제로 하는 거였군요. 권총은 어디에 숨겼었나요?

-> 사무실 내 셔터가 닫히는 방에다.

그런 가택 수색하면 금세 찾아질 곳에다... 20대 후반엔 야쿠자를 그만두고서 다른 조직의 두목과 결혼해 두 아들을 낳았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아이였나요?

-> 정말 성실히 자랐다. 문신도 절대 하고 싶지 않다고 할 정도. 애가 어렸을 때 물건이 날아다니는 부부싸움을 하면 110번에 신고하는 아이.

참관일엔 "오지 마!"라고 하길래 나 대신 남편이 간 적도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편 쪽이 더 야쿠자 얼굴인데.

니시무라 씨가 스미요시카이 계열, 남편분이 야마구치 계열. 적대하는 조직끼리 동거하는 건 야쿠자 역사상 처음이 아닐까요. 만화 설정 같다고나 할까.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관계도라니...

-> 주변에서도 말도 안 된다고 놀라 했다. 하지만 집에서 남편은 과묵하고 나도 그런 거에 관심이 없다 보니 서로 간섭하지 않고서 살았다.

40대 초반 무렵 옛 조직에 복귀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사실 아이를 위해 건실한 사람이 되려고 30대 무렵 전문학교에 다니며 요양보호사 2급과 의료부기사(주: 의료&복지서비스업의 회계 및 행정관리 업무) 자격증을 취득했었다. 그런데 요양보호사 목욕 보조를 하다가 팔뚝 문신이 들통나서 '문신 있는 사람은 고용할 수 없다'고 퇴짜를 맞았다. 이후 몇 번이나 도전했지만 채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어 쉽게 돈 벌 수 있는 샤브가게를 다시 하고 있었다. 남편이 집에 돈을 가져오지 않으니 일가의 수입원은 나였다. 아이도 크고 있고. 내가 패킷 분리 작업(주: 약물의 봉지 나누기 작업)을 할 때면 궁금한듯 의아한 표정을 짓곤 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약물을 다루다 보니 그런 생활이 점차 지겨워졌다. 성에 맞지 않았다. 문득 야쿠자로 돌아 갈까 하는 생각이 들어 조직 간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쿠자로 복귀해 보니 충족감이 있었나요?

-> 없었다. 내가 돌아갔을 무렵 업계는 사기가 판을 치고 있었다. 처음 할 무렵엔 사기 같은 게 없었는데. 예를 들어, 대부업자의 의뢰로 나쁜 놈으로부터 빚을 대신 징수하면 정의의 편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돌아왔을 때엔 야쿠자가 사람을 속여 돈을 뜯어내는 일만 하는 것이라고 밖엔 생각할 수 없어 나와 맞지 않기 때문에 다시 그만뒀다.

야쿠자 업계에서 완전히 손을 씻고서 요즘 열중하는 게 있나요?

-> 전 야마구치구미계 의룡회 회장이었던 다케가키 사토루 씨가 시작한 오인회(주: 五仁會, 폭력단원의 갱생 및 지역사회 범죄 예방 활동을 하는 NPO 법인) 활동에 열중하고 있다.

형무소에서 출소한 사람들의 갱생과 재범 방지에 도움이 됐으면 하고, 기후시 중심부에서 청소 활동에 임하고 있다. 전직 야쿠자들이 잡담할 수 있는 즐거운 장소를 만들어 마약이나 범죄와는 관계없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오인회 청소 활동 모임에 참가 중인 모습 (集英社)

마지막 질문,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나요?

-> 여자로 태어난다면 형사. 멋지지 않나? 조대(주: 과거 조직대책부)에 가고 싶다. 야쿠자를 향해 '오라 오라' 소리 지르며 권총 들고 싸움을 벌이고 싶다.

경찰이라고 해도 권총 들고서 달려드는 건 안 돼요! (웃음)

여기까지가, 일본 정부에서 최초의 여성 폭력단원(야쿠자)으로 인정한 니시무라 마코와의 대담이었다.

반사회적, 폭력적 인생으로 휩쓸려가는 개인을 두고서 많은 사회적 현상 정의 및 학술적 용어를 들이밀 수 있겠다.

하나 확실한 건, 이러한 휩쓸림에 미디어가 일종의 게이트 역할을 수행했다는 데에 누구도 전면 부정을 표하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 지금은 자정의 바람이 거세게 몰아부쳐졌지만.

그리고 더욱 확실한 건, 한때의 뉘우침이든 평생의 깨달음이든 한 번 휩쓸렸다면 그 전 삶의 방식에서 느낄 수 있었던 행복을 결코 다시는 누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