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
2017년 2월 6일.
이 일은 이날 새벽 시베리아의 가장 황량한 곳 중 하나에서 실지로 있었던 일이다.
간략한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러시아 내에는 22개의 공화국이 존재한다. 시베리아 최남단으로 산과 산맥에 뒤덮인 투바 공화국도 그중 하나이다.
투바 공화국은 몽골계 민족인 투바인으로 구성됐으며, 이들은 과거 튀르크족의 오랜 지배로 튀르크어 계통 투바어를 사용한다.
이곳은 면적이 우리나라의 1.7배에 달하고 8,000개가 넘는 강과 면적의 80%에 달하는 산과 산맥으로 구성된 곳으로, 인구수는 30만이 갓 넘는 수준이다.
이러한 척박한 지역에서 투바 공화국의 주된 경제 활동은 광업이다. 이곳에선 한 해에만 약 4천만 톤의 석탄이 생산되며, 이는 러시아의 연간 평균 석탄 생산량의 9.4%에 달한다.
물론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몽골 제국의 영향 아래에 있었던 연유로, 투바인들은 유목민 문화로 형성돼 있다.
배경 설명 끝!
이러한 투바 공화국의 수도에서 200km 넘게 떨어진 인구수 1,400명의 시골 지역으로 쿤구르투그 마을.
또 해당 마을로부터 20km 넘게 떨어진 곳에 위치한 양치기 지역.
그리고, 이 양치기 지역의 외딴 오두막집.
바로 여기서 일어난 일이다.
이 오두막집엔 네 살배기 소녀 사글라나 살차크가 살고 있었다.
사글라나는 60대 외조부모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사글라나 집안 역시 유목민 문화를 따르고 있었으며, 사글라나의 엄마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말과 양 떼를 몰고 다니던 유목민이었다. 특히나 2017년 겨울은 대설로 인해 이동이 불가피했고, 너무 어린 사글라나에게 있어 동행은 무리였기에 조부모에게 맡겨졌다.
사글라나의 외조부모는 소와 말을 키우며 고기와 가죽을 내다 팔고 있었다. 그들이 거주하던 이 외딴 오두막집은 통신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주변으로 8km 떨어진 곳에 가축을 기르던 이웃 하나 있을 뿐이었다.
때문에 사글라나의 엄마가 시간이 날 적마다 이곳을 방문해 음식을 공수하고 안부를 확인하곤 했다.
2017년 2월 6일 새벽.
이곳의 아침은 동이 채 뜨기도 전에 시작된다.
이날 가장 먼저 일어난 사람은 사글라나였다. 본디 외할머니나 외할아버지가 1등을 차지하곤 했는데 이날은 달랐다.
사글라나는 여느 때처럼 일어나자마자 외할머니를 껴안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외할머니가 어떠한 반응도 보이질 않았다. 그저 누운 채 꼼짝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눈이 멀면서 지난 수년간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던 사글라나의 외할아버지는 두려움의 소용돌이로 빠지게 된다. 지병 하나 없던 아내에게 간밤에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급작스러운 사태에서 아내를 돌볼 수도, 집을 따뜻하게 하고 음식을 만들 수조차 없는 무력한 자신, 그리고 아직 아기인 손녀딸..
설상가상, 사글라나의 엄마가 오두막집을 방문하려면 며칠이 있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극심한 공포가 외할아버지의 정신을 지배하던 그때..
손녀딸 사글라나가 말한다.
"할아버지, 내가 갔다 올게!"
눈 쌓인 영하 34도의 날씨, 동면에 들어가지 않은 야생 동물들의 위협..
외할아버지는 손녀딸의 제안을 단박에 거절한다.
허나, 사글라나는 이미 굳세게 마음을 다잡은 상태였고 둘에겐 다른 방도도 없었다.
그렇게..
사글라나는 옷을 두텁게 챙겨입고는 주머니에 성냥 한 상자를 넣고서 털모자를 깊게 눌러쓴 채 길을 나섰고, 외할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부처님께 손녀를 위한 기도를 올렸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때였다.
가장 가까운 이웃까지는 눈길을 뚫고서 8km를 걸어가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글라나가 외할머니와 함께 강을 따라 여러 번 이웃이 살던 지역 근방을 방문한 적이 있는 데다, 얼마 전 이 이웃이 말이 끄는 썰매를 타고서 오두막집에 방문해 음식을 갖다준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사글라나는 그 작은 보폭을 잠시도 쉬지 않고서 강을 따라, 또 썰매가 끌린 자욱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사방으로 둘러진 숲과 높다랗게 자리 잡은 강둑 사이를 거닐면서, 그리고 가슴 높이로 쌓인 눈더미를 손으로 헤치면서 사글라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너무도 춥고 배고프고 힘에 겨웠다. 언제라도 해당 지역을 터전으로 삼던 늑대 떼가 출몰해 모든 걸 앗아갈 수 있었다. 외할머니가 올가미로 늑대 사냥에 성공한 적도 있지만, 그런 외할머니도 지금은 곁에 없었다.
그래도 사글라나는 쉼 없이 걸어 나갔다.
무려, 6시간을.
마침내 이웃이 사는 곳에 다다랐다고 여긴 순간.
어째서인지 이웃집이 보이질 않았다. 그만 길을 잃고 만 것일까.
그렇게 사글라나가 육체의 한계에 짓눌린 채 비틀거리며 걸음을 멈춰가던 순간..
무성한 덤블로 인해 보이질 않던 건너편에서 이웃이 사글라나를 발견한다.
얼굴과 머리카락이 두터운 서리로 범벅된 사글라나는 달려온 이웃에게 힘겨이 다음의 말을 내뱉는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 같아요. 도와주세요."
이웃은 위성 전화로 의사, 소방구조대, 경찰 등에 신고한다.
허나, 의사가 오두막집에 도착해 외할머니의 상태를 확인했을 땐 안타깝게도 이미 간밤에 심장마비(평소 혈압이 높았다고 한다)로 사망한 뒤였다.
구조대원 등은 오두막집으로 향하면서, 어떻게 어린 소녀가 이런 험준한 길을 극복해냈을 지 연신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던 사글라나는 즉시 지역병원으로 이송됐다.
그리고..
진단 결과, 굶주림과 추위에 노출되면서 가벼운 감기에 걸린 게 전부라는 결과가 나온다.
언론을 통해 이날의 일이 전파되면서 시베리아의 이 외딴곳에 여러 일들이 발생하게 된다.
지역 행정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글라나의 외조부모에게 사람들과 인접한 곳으로 거주지를 옮길 것을 여러 차례 권고했었다고 항변했다. 허나 자신들은 평생 이곳에서 산 노인인데 어디로 가겠느냐며 강력히 저항했다고 한다.
사회 정책 행정부에선 사글라나를 부모님의 목축 작업이 끝나는 5월까지 사회복지 센터에서 머물도록 조치했으며, 사글라나의 외할아버지는 친형제가 있는 곳으로 옮겨졌다고 알려왔다.
지역 정치인 다수가 직접 과자를 사 들고서 사글라나를 방문해 소녀의 용기에 경의를 표해왔다.
한편..
러시아 연방 수사 당국 기관 중 투바 공화국 조사위원회에선 이 '노인과 미성년 어린이에게 발생한 위험'에 대해서 수사를 개시하겠다고 알리면서, 해당 지구의 사회 정책 담당자들에 대한 조사를 약속했다.
또, 사글라나의 엄마가 딸을 자신의 부모에게 맡기면서 안전이 보장되지 않음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는가에 따라 방치로 인한 법적인 문제가 되므로 형사 소송을 제기하겠다고도 공표했다.
이러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외신에까지 알려지면서 '구소련 시대에서도 투바 공화국의 목동들은 통신 시설을 구비하고 있었는데 21세기에 이럴 수 있는 거냐. 범죄는 아이의 엄마가 아닌 당국이 저지른 것이다.'라는 여론이 거세졌다.
다행이도..
사글라나의 마지막 소식은 해피엔딩이다.
러시아의 아동권리위원회는 사글라나 집안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친권 제한은 제기한 바가 없으며, 사글라나의 위업을 높게 평가해 매년 어려운 삶의 상황을 극복한 어린이 및 청소년에게 주어지는 국가상을 수여할 계획이라 밝혔다. 또한, 사글라나 가족이 인근 지역 마을로 새 주택을 구입해 이주할 계획이라고도 전해왔다.
언론과 투바인들은 사글라나를 일컬어, '시베리아에서 가장 용감한 소녀'라고 추켜세웠다.
"안 무서웠어요! 그냥 걷고 또 걸어서 도착했어요! 근데 진짜 배고팠고 좀 추웠어요."
- 사글라나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참조
<The Siberian Times/Bravest girl in Siberia dodges wolves on icy 8 km walk to summon help after her granny dies> Yury Darbaa
<Worldometer/Coal Production by Country>
<Комсомольская правда/В Туве 4-летняя девочка прошла 8 километров по заснеженной тайге, чтобы позвать людей на помощь> Ирина КИРШЕВА
<СЛЕДСТВЕННЫЙ КОМИТЕТ РФ/В Республике Тыва по результатам проверки сообщения СМИ по факту оставления в опасности престарелых граждан и несовершеннолетнего ребенка возбуждено уголовное дело>
<Уполномоченный при Президенте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по правам ребенка/Анна Кузнецова: «Вопрос о возвращении Сагланы в семью реше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