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름다운 자살' 그녀의 이야기

'가장 아름다운 자살'

성립될 수 없는 단어들의 조합으로 이뤄진 문장.

헌데 이러한 문장으로 포장돼 한 세기 가까이 팝 문화의 아이콘으로 상징되는 존재가 된 사진이 있다.

바로, 다음과 같은.

사진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해당 사진은 대중적으로 낯이 익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진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도 얼추 알고들 있을 것이다.

"빌딩 건물에서 뛰어내린 여자를 촬영한 사진이잖아."

그렇다.

사진 속 여성은 미국의 대표적인 마천루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86층에서 뛰어내렸던 24세의 여성이다.

여성은 당시 주차 중이던 UN 캐딜락 리무진 차량 위로 추락했고, 길 건너편의 사진학도였던 남성이 촬영했던 사진이다.

해당 사진은 1947년 5월 12일 자 <LIFE> 잡지의 금주의 사진으로 처음 게재됐다. 잔혹한 추락과 대비되는 너무도 평온하고 우아한 자태로 인해 해당 사진은 사람들의 마음에 감응을 일으켰다.

그렇게..

이 사진은 약 80년간 유력 매체들의 보도 거리에 이어, 앤디 워홀로부터 테일러 스위프트에 이르기까지 많은 아티스트들의 예술적 소재로 사용됐다.

이렇듯 사진 하나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탄 그녀.

허나..

우리는 그녀를 진짜로 알지 못한다.

'죽음의 공포와 참사 속에서 발현되는 아이러니한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미덕으로 받아들이곤 하는 인간의 감성을 세차게 자극한다는 핑계로 그저 하나의 이미지로만 소비됐던 사진 속 주인공을, 우리는 진짜로 알지 못한다.

그러니..

이 사진을 알고 있던 사람이라면 그리고 이 사진에 관심이 생긴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미덕으로나마 사진 속 '인간'의 진짜 이야기를 알아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유년 시절 막내 남동생과 함께

그녀의 이름은 에블린 프랜시스 맥헤일이다.

에블린은 1923년 9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은행가였던 아버지를 따라 가족이 워싱턴 D.C.에 이어 뉴욕으로 이사하면서 명문 공립 고등학교였던 이스트체스터 고등학교를 다녔다.

이 무렵 에블린네 가정에 커다란 문제가 발생한다. 그녀의 어머니가 당시에는 제대로 된 진단명조차 없었던 질환을 앓고 있던 것이다.

그 질환이란, 바로 우울장애였다.

1950-1970년대에 처음으로 신경안정제가 미국 내에서 처방약으로 범대중적인 인기를 끌었고 1980-1990년대에서야 세로토닌계 항우울제가 등장했으니, 1930년대 당시엔 어떠했을지 상상이 갈 것이다.

그리하여..

결혼 생활에서 끊임없는 문제가 발발하며 결국 부부는 이혼하기에 이른다.

이에 에블린은 양육권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를 따라 세인트루이스로 이주해 그곳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당시 학교 측 기록에 따르면, 에블린은 조용한 성향인 동시에 모든 주제에 대해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이렇듯 미성년자 시절 에블린에게 끼쳐졌던 악영향은, 잦은 이사로 인한 교류 관계의 문제보다는 불안정한 가정 상황과 어머니의 정신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어머니가 지녔던 정신적 문제에 대해 에블린의 예민한 감수성이 훗날의 단초를 쌓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주식 중개인으로 직업을 바꿔 세인트루이스로 이주했던 아버지를 따라 그곳에서 성인을 맞이한 에블린.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여군에 입대해 사무기기 운용 관련 보직으로 있었으며 전쟁 기간 동안 지역의 병영에서 복무했었는데, 앞선 그녀의 성향에서 쉬이 유추가 가능했듯이 군대는 그녀의 체질이 아니었다. 그녀는 제대 직후 군복을 불태웠다고 한다.

그렇게 1944년 말..

에블린은 뉴욕 롱아일랜드 볼드윈의 친오빠와 올케가 거주하던 자택으로 이주한다.

이어 곧바로 그곳의 판화 회사 회계원으로 취직한 그녀는, 1945년 새해 전야 파티에서 동갑내기 남성과 첫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남성은,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던 중 육군에서 항법사로 복무를 마친 배리 로도스였다.

에블린과 배리가 약혼을 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가 않았다.

둘은 1947년 6월에 식을 올리기로 계획했으며, 그렇게 둘의 사랑 전선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단 하나 문제는, 에블린의 정신 건강이었다.

에블린은 본인이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정신적 문제를 물려받았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실지로 유전학적 연구에 따르면 우울증의 발병 원인 중 유전력이 40%를 차지하며, 유전 외에도 특히 가족 중 엄마가 증상을 보인다면 아이들의 경우에도 발병 위험도가 2-3배 이상이 될 수 있다는 게 작금의 연구 고찰이다.

에블린이 정말로 유전적 요인 또는 후천적으로 발병했거나, 혹은 선천적으로 예민한 성격이 스스로 우환을 불러일으킨 것이든 간에 결과적으로 이 무렵 그녀의 정신 건강 문제가 본격적으로 외부로 발현된 게 사실이다.

1946년 여름, 배리의 남자 형제가 결혼하면서 에블린은 신부 측 들러리가 됐다.

여기서 결혼식 직후, 에블린은 자신의 드레스를 찢어발기며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고 한다.

"다시는 이런 거 보고 싶지 않아!"

배리에 따르면, 에블린이 '아내'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어 종종 그러한 생각에서 벗어나게끔 설득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1945년경, 조카를 안고서

정신질환의 가장 무섭고도 안타까운 사실은, 진중하고 애정어린 설득과 위로만으론 해결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1947년 4월 30일.

에블린은 배리의 24번째 생일을 축하하고자 그가 거주하던 펜실베이니아 이스턴에 방문했다.

그렇게 함께 생일을 보내고서 다음날..

아침 7시경, 에블린은 배리의 마중을 받으며 뉴욕으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배리와 굿바이 키스를 나눈 그녀에게선 어떠한 이상이나 징후도 발견할 수 없었다.

허나..

우울증을 앓는 이의 마음속 파도엔 밀물과 썰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2번 펜 역 -> 7번 거너버 클린튼 호텔 -> 1번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ㄷ;

아침 9시경, 뉴욕 맨해튼 복판의 펜 역에 도착한 에블린.

그녀는 그대로 길 건너편의 거너버 클린튼 호텔로 가 그곳의 편지지에다 유서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그 후 두 블록 떨어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 향한 그녀는, 아침 10시 30분경 전망대 티켓을 구입한다.

그로부터 10분 후..

지상에서 교통 정리를 순경이 문득 고개를 들다 흰색의 스카프가 나풀거리는 것을 본다.

그리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으로부터 약 60m 떨어진 34번가.

이곳에 주차 중이던 UN의 캐딜락 리무진 지붕으로 엄청난 굉음이 발생한다.

316m에서의 투신.

현장 주변의 쇼핑객들은 공포에 질려 패닉상태가 됐고, 일부 사람들은 리무진 근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길 건너로 있던 사진학도 로버트 와일스가 소란의 정체를 알아차리고선 현장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사진기를 들이민다.

에블린이 추락한 지 4분 만의 일이었다.

에블린의 시신을 수습 중인 경찰

리무진 위의 에블린.

두 다리는 살며시 포개어 있었고, 장갑 낀 한 손으론 진주 목걸이를 조심스레 쥐고 있었으며, 살짝 감겨진 곧은 눈으론 달콤한 꿈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서늘함이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줬고..

'정신적 문제로 끔찍한 결과를 맞이한 젊은이'는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뮤즈가 되며 자신의 유언과 전혀 다른 처지에 놓이게 된다.

100년 가까이 말이다.

"가족을 포함해 그 누구에게도 제 모습 일부라도 보이고 싶지가 않아요. 제 시신을 화장해서 없애주실 수 있나요?

여러분과 제 가족에게 간청합니다. 저를 위한 어떠한 의식이나 추모도 하지 말아주세요.

제 약혼자는 6월에 결혼하자고 했지만, 저는 누구에게라도 좋은 아내가 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이는 제가 없는 게 훨씬 더 나을 거예요.

제 아버지께 전해주세요. 저는 제 어머니의 기질을 너무도 많이 닮았다고."

에블린의 약혼자였던 배리.

그는 이후 엔지니어가 됐으며..

2007년 10월 9일, 플로리다 멜버른에서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평생을 미혼인 채로.

본인 또는 지인이 자살 충동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도움 요청이 필수입니다.
2024년 1월부터 상담번호 '109'번을 통해 전문 상담사 100명이 24시간 도움을 제공합니다.

참조

<Codex 99 / Evelyn McHale, Photojournalism as Iconography>
<TIME / ‘The Most Beautiful Suicide’: A Violent Death, an Immortal Photo> Ben Cosgrove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