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와 스탈린이 두려워한 초능력자 울프 메싱의 진실
* 본 이야기는 2015-2016년경 외부 연재했던 글을 새로이 확장&리마스터한 글입니다.
현대 인류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족속'을 꼽으라면, 단연코 '초능력자'를 빼놓을 수 없겠다.
그중에서도..
가장 혼란스럽고 격정적이었던 시대의 중심부에서 그 이채로움을 뽐내던 초능력자가 있었으니..
그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초능력을 믿을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가 하면, 아돌프 히틀러와 이오시프 스탈린 두려움에 빠뜨렸던 남자.
평소에는 자신을 마술사로 위장해 마술 공연을 해오다 이따금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능력과 예언력을 선보였던 남자.
스탈린이 자신의 곁에 두고자 했었으나 곧 감당 못할 능력 앞에서 두려움에 떨게 됐다는 전설.
이 남자는..
바로, 울프 메싱이었다.
울프 메싱은 1899년 9월 10일 폴란드 고라 칼와리아(당시 러시아 제국령인 바르샤바에서 남동쪽으로 25km 떨어진)에서 태어났다.
메싱이 자신이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 채 태어났다는 사실을 인지한 건 11살 무렵이었다.
이렇듯 어려서부터 자신에게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독심술, 상대의 마음을 조정하는 마인드 컨트롤 능력, 그리고 투시력 등의 초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메싱. 그런 그에게 있어 학교 수업은 따분하고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13살 무렵, 학교에서 도망쳐 충동적으로 독일 베를린행 열차에 무임승차 탑승한 메싱.
열차표 검사를 돌던 차장이 표를 보여달라고 요구하자 신문지 귀퉁이를 찢은 부분을 내밀며 ‘이것은 열차표다’라는 마인드 컨트롤을 사용했고, 신문지 귀퉁이를 본 차장은 군말 없이 돌아섰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떠돌이 생활에 접어들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게 된 메싱.
그런 그가 어느 날 정신병 전문의인 아벨 교수를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아벨 교수는 메싱에게 다양한 초능력이 있음을 알고는 그러한 능력을 이용해 마술 공연을 해보라고 조언한다.
괜찮은 조언이었다.
메싱은 베를린 시장에서 거리 마술사로 시작해 16살 무렵에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국외 공연을 가기까지 이른다.
그렇게 마술 공연을 가장한 초능력쇼를 펼치던 메싱의 유명세는 날이 갈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이에 빈에 거주하던 한 이론물리학자가 관심을 갖게 되니..
그건 바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었다.
당시 막 일반 상대성 이론의 완결된 장방정식을 최초로 구현해 내는 데에 성공한 아인슈타인.
그런 그가 오스트리아에서 초능력과도 같은 마술을 선보이던 소년에게 적지 않은 흥미가 동했었나 보다. 친분이 있던 심리학계의 거장이자 정신분석학의 아버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함께 메싱을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세간의 화제인 소년을 직접 마주한 당대의 두 석학.
둘은 메싱에게 초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직접 보여줄 수 있겠느냐고 정중히 부탁한다.
여기서 그들이 보여달라고 한 초능력은 독심술이었다. 아마, 마술사의 손놀림과 같은 기교
에 넘어가는 일 없이 똑바로 능력 그 자체를 판단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게다가 설령 속임수나 멘탈매직을 쓰려고 해도 체험자로 프로이트가 나섰으니 사실상 진검승부가 강요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승부..
가만히 앉아 있는 프로이트를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던 메싱이 갑자기 자리를 떠나 목욕탕으로 향하더니, 그곳에서 가져온 핀셋으로 태연히 아인슈타인의 콧수염을 뽑자 두 학자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한 명은 느닷없이 자신의 콧수염을 뽑혀 그러했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유희로만 여기다 애송이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그대로 읽혀버려 그러했다.
프로이트가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게 욕실의 핀셋을 가지고 와 아인슈타인의 콧수염을 정확히 세 가닥 뽑으라는 것이었고, 메싱은 그런 속마음을 독심술로 읽어내며 그대로 실행했던 것이다.
그렇게 이 16살 소년의 초능력 앞에서 둘은 경악하느라 찬사를 보내는 것도 잊고 만다.
승부 결과, 초능력자 승!
1937년, 메싱의 나이 38.
크게 성공한 마술사였던 메싱은 폴란드의 바르샤바로 귀환한다.
발작적으로 신문지 하나 들고서 독일로 향해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던 어린아이가, 마침내 고향으로 금의환향한 것이다.
그렇게 이제는 고향에서 마술 공연을 이어가던 메싱. 이에 당연하게도 자국이 배출한 초능력자+마술사를 보러 인파가 끝없이 이어졌고, 메싱의 앞날에도 성공한 자의 전형인 안락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헌데..
어느 날, 한 극장에서 있었던 마술 공연이 풍파의 단초가 된다.
수천의 관객 앞에서 공연을 펼치던 중 한 관객이, 당시 독일 정권을 장악한 뒤 그때까지 이어지던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평화협정을 사실상 파괴한 아돌프 히틀러에 대해 그의 앞날에 어떠한 일이 벌어지겠느냐고 물은 것.
이러한 질문에 메싱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하틀러가 동부로 향한다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건 그의 죽음뿐입니다."
이 유명 인사가 내뱉은 충격적인 예언은 곧 독일에까지 퍼지게 된다.
물론, 소식을 접한 히틀러가 격노한 것은 당연지사.
그렇게 1939년.
메싱에게 어린 시절 거리를 떠돌며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하던 첫 시련에 이은 두 번째 시련이 찾아온다.
독일과 소련이 서로 독소불가침조약을 맺고는 폴란드를 순식간에 함락한 것이다.
그리하여..
히틀러의 지시로 메싱의 얼굴이 실린 지명수배 전단지가 폴란드 전역을 뒤덮으며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만다. 메싱의 목에 걸린 현상금이 20만 마르크였으니, 히틀러의 분노가 어느 정도였는지 유추가 가능하다. (당시 독일 국민 1인당 국민소득은 약 1,000마르크 내외)
결국..
급변한 자신의 처지로 하릴없이 숨어지내던 메싱. (고향의 한 상인이 자신의 지하실을 내어줌)
허나, 어느 날 저녁 잠시 바깥을 나왔을 때 나치 경찰에게 길에서 체포되며 경찰서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메싱이 누군가. 사춘기가 제대로 오기도 전에 신문지 하나 쥐고서 베를린까지 갔던 그가 아닌가. 메싱은 무사히 탈출에 성공하며 히틀러 앞에 끌려가 끔찍한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을 발휘해 경찰 및 간수들을 옥에 가두고는 유유히 정문으로 빠져나온 것.
여담으로..
훗날 히틀러는 동부 전선에서의 참패로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 이른다.
그렇게 소련으로 도주한 메싱.
이 무렵..
언제나처럼 마술 공연으로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또 한 명의 위험한 남자가 관심을 보이니..
그는 바로, 소련의 국가원수였던 이오시프 스탈린이었다.
메싱의 소문을 익히 들어왔던 스탈린은 메싱이 소련에서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이내 최고 정보기관인 NKVD에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하달한다.
"울프 메싱을 내 앞으로 데려오도록."
1940년, NKVD는 스탈린의 명령을 즉각 성실히 이행했다.
그렇게 공연 도중 끌려가 스탈린 앞에까지 모셔진(?) 메싱은 초능력자라는 것을 입증해 보이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 입증이란, 모스크바에 있는 국영은행을 방문해 초능력으로 10만 루블을 가지고 나오라는 것.
이러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받은 메싱.
여기서 커다란 가방과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백지를 가지고서 은행을 방문한 메싱은, 담당 은행원에게 백지를 인출 서류로 보이도록 최면을 건다.
그렇게 가방 한가득 돈을 싣고서 유유히 10만 루블을 인출하는 데에 성공한 메싱.
이에 스탈린은 크게 흡족해하며 메싱과 잠시간 수다를 떨다가 농담조로 말한다.
"하지만 메싱 동무, 내가 당신 통행증에 서명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경비병들에게 누구도 이 크렘린(주: 당시 소련 공산당 본부)을 빠져나가선 안 된다고 지시를 내린다면? 당신은 이곳을 통과할 수 있겠소?"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메싱이 크렘린을 빠져나와 건너편에 우뚝 선 채로 스탈린의 사무실을 올려다봤고, 이에 스탈린은 즐거운 듯 손을 흔들어 보이며 '들어오시오'라고 외쳤다.
그리곤 다시 마주한 자리에서 메싱은 통과 비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간단했습니다. 마주치는 경비원들에게 일종의 전자기파를 보냈습니다. '스탈린 장군이 오고 있으니 통과시켜야 한다'라고요."
이를 계기로 스탈린은 깐깐한 성격의 스탈린으로부터 신임을 얻어 일종의 초능력 고 인사로 임명된다.
이후 메싱의 발자취는 흐릿하게 기록돼 있다.
스탈린이 끝내 그를 암살로 처리했다는 후문도 있다.
왜?
'남들과 다른 것'은 결국 배척의 대상이 되는 게 인간사의 순리. 메싱이 지닌 초자연적 능력을 바라보는 시선엔 그저 경탄만 존재했던 게 아니었다.
메싱의 과한 퍼포먼스. 그것은 독재자의, 아니, 인간의 심리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메싱의 패착이었다.
특히나 '피의 숙청'으로 인해 평소 안위에 각별히 신경 쓰던 스탈린은 측근들조차 구조를 모르던 비밀별장을 건설했는데, 이후 이곳에서 자신을 찾아보라는 명령을 메싱이 손쉽게 이행하면서 더욱 그러했다.
여담으로..
훗날 스탈린은 이러한 비밀별장의 복잡한 시스템으로 인해 뇌출혈의 처치가 늦어지면서 사망하게 된다.
또, 대표적인 설로는 다음의 이야기가 있다.
"메싱이 히틀러에 이어 스탈린에 대해서도 예언을 한 바가 있다. 스탈린의 죽음을 예지한 메싱은 예의 자신의 초능력을 활용해 잠적했고, 그로부터 20시간 후 스탈린은 혼수상태에서 결국 뇌출혈로 사망하게 된다.
마침내 자유의 몸이 된 메싱은 모스크바 지역에서 조용히 말년을 보내다 1974년 75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한편, 메싱의 사망 직후 그가 생전 작성했던 일기와 문서 등 일체의 자료를 소련의 정보기관 KGB가 몰수한다."
이상, 역사상 가장 뛰어난 초능력을 보유했었다고 여겨지는 메싱의 이야기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고대의 전설이나 신화가 아닌, 현대사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이렇듯 이채로움을 뽐내고 있던 초능력자가 있었던가!
'초능력자 울프 메싱'의 신화를 보고 있자면 놀라움을 넘어 뭉클스러울 정도다.
왜냐하면, 초자연적 능력이란 정말이지 과거 아날로그 시절 책이나 공상으로만 접하던 그 시절 대표적인 향수 아이템이니까.
허면..
정말 '울프 메싱의 초능력 이야기'는 실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현대사 기록에는 결코 적지 않은 수의 '초자연적 능력을 보유한 초능력자'들이 등장한다.
물론, 이러한 초능력자들 중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례는 전무하다. 모두 당사자 또는 주변인에 의해 기본적인 뼈대에 온갖 거짓 일화들이 덕지덕지 붙여져 전설로 내려오는 것에 불과하다.
(대표적으로 제정 러시아 말기의 그리고리 라스푸틴 케이스가 있으며, 이상한 옴니버스가 2011년 블로그에서 그리고 2015-2016년경 외부 연재를 통해 전설의 민낯을 소개한 바가 있음, 사람들이 특히 궁금해하던 '거대한 그것'의 정체 역시도)
헌데..
메싱의 경우는 분명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그의 전설이 진짜라는 건 아니다.
메싱이 일찍이 어려서부터 마술의 재능을 타고나 마술사로서 일생을 살아왔던 것은 사실이다.
허나, 그가 초능력을 지니거나 발휘했던 적은 없었다.
물론, 그를 따라다니는 전설들도 실지론 모두 역사에서 일어난 적 없던 일이고 말이다.
말했듯, 메싱은 10대 시절부터 서커스 등지에서 마술 공연을 일삼던 프로 마술사였다. 그리고 그의 주 종목은 당시 유행하던 심령술 컨셉의 마술과 멘탈매직이었다.
즉, 메싱은 사람의 심리적 효과를 연구해 이를 마술에 이용하는 멘탈리스트 마술사였던 것이다.
그는 상대의 호흡, 맥박, 음색 등의 특징 및 변화를 캐치하는 데에 능숙했으며 이를 자신의 멘탈매직에 활용했다.
스스로도 인터뷰에서 자신의 비법을 살짝 공개한 바가 있다. 그는 여기서, 사람의 뇌세포가 전신의 근육에 자극을 전달하므로 자신이 읽는 건 상대의 마음이 아닌 근육이라고 설명한다.
(멘탈매직 분야에서 가장 이름나있는 현존 마술사론 데런 브라운이 있으며, 이상한 옴니버스에서도 그의 재기발랄한 멘탈매직을 몇 차례 소개한 바가 있음, 추후 따로 그의 멘탈매직들을 이야기 글로 올리겠음)
자, 본격적으로 '울프 메싱의 전설'을 파헤쳐보도록 하겠다.
먼저, 16살 무렵인 1915년경에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 앞에서 독심술을 선보였다는 대목을 떠올려보자.
당시 메싱에 관심을 두고 있던 이 두 학자가 그를 초청했다고 하는데..
사실,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는 각각 47세와 70세였던 1927년에야 베를린에서 처음 마주했었다. 심지어 만남의 장소인 오스트리아 빈의 경우, 아인슈타인은 1913년-1925년 동안 방문 기록이 없다.
메싱이 스탈린의 테스트 시험에서, 모스크바에 있는 국립은행에서 담당 은행원에게 백지를 인출 서류로 보이도록 최면을 걸어 10만 루블을 인출했다는 이야기도 사실이 아니다.
이는 당시 국립은행의 시스템을, 아니, 보통의 은행 시스템을 아는 사람이라도 간과할 수 없던 대목일 것이다.
왜냐하면,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은행원 한 명이 인출과 관련한 서류를 받아 들고는 그대로 돈을 인출해주는 게 아니라 소속 회계사 또는 담당 인사가 서류를 면밀히 검토한 뒤 인출 허가를 내면 그때서야 은행원이 돈을 내주는 것이니까.
물론, 당시 국립은행에서도 고액 인출의 경우 내부 전문 감사인 1-2명의 심사를 거치는 시스템이었다.
그렇다면, 히틀러와 스탈린이 두려움이 기저에 깔린 감정으로 메싱을 대했다는 일련의 에피소드들은?
러시아 국립 군사 기록 보관소에 소장된 800개가 넘는 당시의 소련 및 독일 관련 기록물, 그리고 폴란드&독일&러시아와 관련된 국가 및 군사 기록/총독부/외무부/대사관/관방/선전부/뉴스국 등지의 기록 보관소 자료 그 어디에서도 메싱과 두 역사적 인물과의 연결고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시 폴란드 내의 간행물에서도 초심리학 또는 신비주의 관련 인물 항목에서 메싱의 언급은 없었다.
이렇듯..
메싱이 등장하는 기록물에선 그가 오로지 심령마술과 멘탈매직을 하던 유명 프로 마술사였다는 기록만이 존재할 뿐이다.
단 하나, 메싱의 회고록을 제외하곤 말이다.
그렇다.
전설 타고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내려온 작금의 '초능력자 울프 메싱' 이야기.
그 이야기의 전신이, 바로 메싱의 회고록 <О самом себе나 자신에 대해>였다.
이 회고록은 1965년 소련의 유명 대중잡지인 <Наука и религия과학과 종교> 7-11호에 실리며 베스트 셀러급 인기를 자랑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초자연적 능력을 학문으로 진지하게 상대하던 초심리학이 일대 유행이었고, 초심리학자를 위시한 이들에 의해 미국과 독일 비롯한 세계 각국으로 번역판이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그처럼 1970-1980년대에 각국으로 발췌본이 갖가지 버전으로 전파됐고..
1990년, 소련에서 마침내 완전판 격인 <Я — телепат나는 텔레파시 능력자다>이 출판된다.
이후 전 세계적인 미스터리 붐에 힘입어 울프 메싱은 인류 역사를 대표하는 초능력자 중 하나가 될 수 있었고, 점차 전설에 살이 붙여진 채 많은 다큐와 컨텐츠로 대중에 소비된다.
그처럼..
그의 전설은 마치 역사적 사실인 양 대중 사이에서 인식됐고, 우리나라에서도 각종 미디어 및 언론에서 심심찮게 '히틀러와 스탈린을 두려움에 빠뜨렸던 초능력자'로 소개되곤 해왔다.
어찌나 유명세가 끈덕진지, 메싱의 사후 그의 지기가 보관 중이던 회고록 자료를 열성팬인 언론인 갈리나 코간 등이 2013년 어느 요양원에서 발굴하며 이후 <Я – телепат Сталина나는 스탈린의 텔레파시 능력자다>를 출판하기까지 한다.
이렇듯..
메싱이 평생을 순회 공연을 돌던 소련 내 유명 프로 마술사이긴 했으나, 그런 그의 회고록이 오래도록 전 세계적 히트를 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지금껏 소개한 '초능력자의 모험담' 덕분이었다.
오리지널 판 회고록에는 대표적으로 다음의 모험담을 담고 있다.
"16세에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와 동등하게 대화를 나누며 초능력을 선보임.
간디와 같은 유명 인사들과도 친분을 맺음.
수천의 관객 앞에서 히틀러의 최후를 예언하며 분노한 히틀러가 20만 마르크의 현상금을 건 끝에 체포하나 초능력으로 탈출해 소련으로 건너감.
소련에서 은행에서 10만 루블 인출하기-이후 출납원은 너무 놀라 심장마비 증세를 보이다 간신히 회복, 삼엄한 경계를 뚫고서 스탈린인 양 마인드컨트롤 해 크렘린 빠져나가기or스탈린의 오른팔인 베리야의 집무실에서 빠져나가기를 선보이며 스탈린의 고문이 됨."
한편..
이렇듯 너무도 매력적인 구성의 모험담으로 인해 해당 회고록이 소련 전역에서 화제가 되면서 수많은 이들이 감명을 받는데..
이중에는 니콜라이 키타예프라는 사람이 있었다.
청년 시절 메싱의 회고록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키타예프. 그런 그가 1974년 6월경 말년의 메싱을 직접 만난 게 커다란 계기가 된다.
당시 회고록으로 일대 유명 인사가 된 메싱의 공연은 연이어 매진을 기록했는데, 소련의 이르쿠츠크 지역에서 열린 공연에서 사적인 만남을 가졌던 것.
어떻게?
당시 키타예프는 이르쿠츠크 지역의 검찰청 소속 수사관이었는데, 같은 수사관이었던 지인이 만남을 주선했던 것.
어째서?
회고록 이후 메싱에게 추가로 붙여진 전설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초능력을 활용한 범죄 수사 도움'이었다. 하여, 수사관들 사이에서도 제법 유명세가 돌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만남에서 메싱의 진짜 정체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느낀 키타예프는, 훗날 아주 오래도록 이어질 집요한 추적을 시작하게 된다.
해당 만남을 계기로 키타예프는 메싱의 전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훗날 검찰청 소속으로 20년 넘게 전문 수사관의 커리어를 이어가던 그는 본업 틈틈이 메싱의 추적을 이어갔다.
그처럼 집요한 추적을 통해 그는 전설 이면엔 경악할만한 진실이 있다고 결론 내린다.
바로 다음이, 그가 추적 끝에 결론 내린 사항을 요약한 것이다.
"아인슈타인과 프로이트와 같은 유명 인사들과의 만남 기록 자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시기상 오류가 존재함. 메싱은 말년에 한 인터뷰에서, 아인슈타인이 자신이 크게 될 것이라고 추켜세우며 빈의 주거지에서 몇 달간이나 머물게 해줬다고 언급.
허나 인슈타인은 1913년-1925년 동안 빈에서 거주했던 기록이 없음. 또, 아인슈타인의 거주지에 책이 아주 많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고 회고록에서 언급되는데, 아인슈타인은 사실 주요 저널 및 논문들만 소량 보관해 오던 라이프 스타일이었음.
은행 시스템은 출납원 한 명이 인출과 관련한 서류를 받아 들고는 그대로 돈을 인출해주는 게 아니라 소속 회계사 또는 담당 인사가 서류를 면밀히 검토한 뒤 인출 허가를 내면 그때서야 은행원이 돈을 내주는 것임.
러시아 국립 군사 기록 보관소에 소장된 800개가 넘는 당시의 소련 및 독일 관련 기록물, 그리고 폴란드&독일&러시아와 관련된 국가 및 군사 기록/총독부/외무부/대사관/관방/선전부/뉴스국 등지의 기록 보관소 자료 그 어디에서도 메싱과 히틀러 및 스탈린의 연결고리는 존재하지 않음.
이미 회고록 출판 4년 전인 1961년에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멘탈매직에 대한 원리(사람의 근육 움직임을 포착)를 설명함. 여기서 자신의 마술은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고 강조.
그가 신문 지면상에 등장하는 케이스는 지면 광고에 실린 마술 공연 홍보와 같은 것들.
결론적으로, 메싱의 전설은 1965년 그의 회고록과 함께 탄생한 것.
회고록 <О самом себе나 자신에 대해>는 최초 소련의 유명 대중잡지 <Наука и религия과학과 종교> 7-11호에 연재됐고, 동시기 소련의 유명 대중 출판물들에 단편식으로 게재되며 소련 전역에서 베스트 셀러급 히트를 침.
미하일 바실리예프라는 필명의 저널리스트가 있었음. 소련 내 저널리스트 사이에서도 대표적인 저명인사였음. 그는 당시 소련에 불던 대중과학의 붐을 본격적으로 일으킨 대표적인 인물임. 그처럼 대형 과학 대중 시리즈물을 연재하며 트렌드를 이끌던 그는, 그러나 유사 과학적 흥미 요소를 내세운 스타일로 대중의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
그런 그가 소련에서 가장 인기 있던 '심령마술&멘탈매직의 대가 메싱' 캐릭터를 이용하고자 꾀함. 그는 메싱을 끈덕지게 설득한 끝에 자신이 회고록 대필을 맡기로 함. 메싱은 어려서부터 평생 마술 공연에 매진했던 사람이었기에 문맹에 가까웠음. 때문에 모든 글 작업은 바실리예프가 도맡으며 대신 인세의 80%를 받기로 계약.
그렇게 모스크바 외곽 바실리예프의 별장에서 둘은 일주일을 칩거하며 신화 일대기를 만들어냄. 당시는 유명 인사들의 전기를 위조하는 행태가 무분별하게 이어지던 시대.
당시 전 세계적으로 초자연적 능력을 학문으로 진지하게 상대하던 초심리학이 일대 유행이었고, 특히나 미국에서 이러한 유행을 선도하던 시대.
그렇게 1970년대에 미국으로 메싱의 회고록이 '발췌 번역본' 및 자의적인 수정판들이 수입되면서 미국 및 유럽 등지에서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 이 과정에서 '메싱 신화 애호가'들에 의해 점차적으로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파생됨.
이러한 바리에이션 중에는 메싱이 1950년대 초에 초능력으로 소녀 살해범을 밝혀냈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역시 수사 기록 및 법원 기록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으며 사건 수사 관련자들도 이를 부정."
이와 같은 폭로를 담고 있는 키타예프의 출판물 <"Криминалистический экстрасенс" Вольф Мессинг: правда и вымысел"법의학 심령술사" 울프 메싱: 진실과 허구>가 2006년에 출판되면서, 소련 내의 언론 및 미디어들이 키타예프와 인터뷰를 진행한다.
또, 키타예프의 폭로 속 내용을 인정하는 메싱 및 바실리예프의 지인과 동료들도 언론에 나선다.
생전 바실리예프는 저널리스트들 사이에서 대부 격의 인사였기에 조심스러운 분위기였으나, 그래도 진실을 밝혀야겠다며 동료 저널리스트들이 인터뷰에 나선 것이었다.
이에 따르면, 당시 소련 내에 불던 대중 과학 붐을 타고서 바실리예프의 '흥미 위주의 대중 공상 과학 이야기(거짓 UFO 사진, 호수 괴물, 달은 외계 문명의 인공물 등)'가 진위여부 없이 전역에 전파되던 시기에 벌어진 일이라고.
이렇듯..
2006년에 이미 전설의 민낯이 까발려졌음에도..
지금까지도 '초능력자 울프 메싱의 전설'에는 군살이 덕지덕지 붙여진 채 끊임없이 컨텐츠를 생산하고 소비되는 형국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설 만들기'와 '전설 소비하기'는 비단 울프 메싱에만 한정되는 현상이 아니다.
왜일까?
그야, 전설이 역사보다 자극적이니까.
실지로 울프 메싱 전설은 지난 60년간 다양한 컨텐츠로 끊임없는 재생산과 소비를 이뤄냈다.
반면 키타예프의 폭로를 담은 출판물은 고작 200-300부만이 팔렸을 뿐이며, 그가 언론과 한 인터뷰와 이후 전면 공개에 나선 그의 출판물 모두 '초능력자 울프 메싱'을 이야기할 때 대중의 관심에서 외면받는 것들이다.
어째서일까?
혹시..
사람들은 믿음의 양이 많은 이야기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 아닐까?
참조
<"Криминалистический экстрасенс" Вольф Мессинг: правда и вымысел> Kitaev Nikolay
<Московский Комсомолец в Питере/Вольф Мессинг-мистификация века> Valery Mishakov
<О самом себе> Wolf Mess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