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범죄사에서 가장 치밀하고 기괴했던 연쇄살인마
* 본 글은 단순히 범죄사건과 관련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오락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사건의 악랄한 범행성을 알림과 동시에 범죄의 연보年譜를 통한 교육에 그 목적을 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2012년 2월 1일 수요일이었다.
미국 알래스카 내에서 가장 크고 인구가 많은(서울 면적의 약 6배에 인구수 30만 명에 육박) 도시 앵커리지에서였다.
이곳은 도시 면적 중 10%도 채 안 되는 구역에서만 사람이 거주했다.
사건은 바로 이곳에서 고요한 밤에 발생했다.
저녁 7시 땡.
이스라엘 키이스는 자신의 흰색 쉐보레 픽업트럭을 몰고서 15분 거리인 대형 매장 홈 디포의 주차장으로 향했다.
어둠이 활개 치는 가운데 어린애보다도 높게 쌓인 눈더미들 틈새로 찬 공기가 왕래하고 있었다. 키이스는 길가로 놓여진 커먼 그라운즈를 탐닉하듯 훑기 시작했다.
커먼 그라운즈는 사람 하나와 적당히 구비된 식자재들로 채워진 소형 드라이브 스루 커피숍이었다. 큰 길가로 위치해 종종 차량들이 지나가곤 했지만, 눈이 쌓일 때면 경사 차로 인해 가게가 가려지곤 했다. 또 폐점 직전인 저녁엔 손님의 왕래도 끊기다시피 했다.
키이스가 며칠째 같은 시각 같은 곳에서 관찰을 이어가며 알아낸 사실이다.
저녁 8시 5분, 폐점 직전.
안면 마스크를 뒤집어쓴 키이스는 플라스틱 케이블 타이, 헤드램프, 그리고 22구경 반자동 권총인 PT22를 챙기고선 차량에서 내려 커먼 그라운즈로 걸어 나갔다.
커먼 그라운즈에 당도한 키이스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며 창문 너머를 확인했다. 이런 공공도로 내 소형 매점 형태의 가게엔 대게 젊은 여성이 홀로 일하곤 한다. 키이스는 이를 잘 알고 있었으며 상대가 누구이든 상관없었다. 그저, 오늘 자기 일을 하는 게 중요할 뿐이었다.
18세의 바리스타 사만다가 아메리카노를 건네자 키이스가 품 안의 총을 꺼내 들고는 태연하게 말했다.
"강도야."
사만다는 예정에 없이 방문한 공포로 인해 아무 생각도 어떠한 목소리도 낼 수 없었지만, 그녀의 본능이 두 손을 들도록 종용했고 이를 충실히 따랐다.
"불 꺼."
사만다는 몸을 돌려 나아가 가게 불을 끄고는 다시 창문 앞으로 돌아왔다.
"계산대에 있는 현금 전부 내놔."
사만다는 조금 오른쪽으로 이동해 금전 등록기 안의 돈을 몽땅 꺼내 키이스에게 건넸다.
"바닥에 엎드려."
주변으로 무심히 지나쳐가는 차량들을 살펴보던 키이스가 마침내 가게 안으로 들어서선 케이블 타이로 사만다의 양 손목을 뒤로해 묶었다. 이어 안쪽으로 향한 키이스가 헤드램프를 비추며 조리대 주변을 살폈다.
"차량은 어디 있지?"
"차 없어요."
키이스가 예상한 대답이었다. 가게 근처로 주차된 차량이 없는 걸 이미 확인했으니까.
"근데 아빠가 30분 후에 데리러 오기로 했었요.. 그러니까 곧 올 거예요."
키이스는 비릿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간 상념에 빠졌다. 진짜일까? 어쨌든 상관없었다.
"경보 눌렀어? 거짓말할 생각은 말고. 내 귀에 경찰 스캐너가 있으니까"
키이스가 한쪽 귀로 자리한 꼬불한 선 달린 이어폰을 보였다. 경찰의 특정 무전 주파수를 수신할 수 있는 스캐너였다.
"아니요."
"경찰이 여기로 출동한다는 소리가 들리면 널 죽일 거야."
"맹세코 안 눌렀어요."
"좋아. 이름이 뭐지?"
"..사만다 코닉이요."
키이스는 가게 냅킨 한 웅큼을 사만다의 입에 쑤셔 넣고선 말했다.
"좋아. 사만다, 이제 산책을 하러 가자."
키이스는 주차장을 향해 사만다의 팔목을 잡아끌며 나란히 걸어 나갔다. 그러다 땅에 떨어져 있는 카메라를 발견한다. 캐논 카메라였다. 팔면 300달러는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키이스가 몸을 굽혀 남은 한 손으로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사만다는 몸을 틀어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으나 몇 초 되지 않아 키이스에게 붙잡혔다.
사만다의 갈비뼈로 섬뜩한 촉감의 쇳덩이가 느껴졌다.
"또 도망쳐봐. 그냥 쏠 테니까."
사만다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복종을 표하고서야 키이스는 총을 거뒀다.
주차장의 흰색 쉐보레 픽업트럭에 도착하자 그곳엔 몇몇 사람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키이스는 다시금 사만다를 공포로 마비시킬 필요가 있다고 여겨, 차량 조수석 문을 열고는 사만다의 귓가에 속삭였다.
"너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이건 그냥 몸값을 요구하려는 납치니까. 근데 이 22구경엔 아주 조용한 탄약이 장전 돼있어. 너를 죽게 만들 테지. 그러니, 내가 그러지 않게 해."
사만다는 조수석에 올라타 주변으로 자신들의 차량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곧이어 운전석에 자리한 키이스가 시동을 키고는 차량을 출발시켰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도로를 탄 지 불과 몇 분.
빨간 신호등에 멈춘 키이스의 차량 옆으로 한 대의 경찰차가 자리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키이스는 건너편 마을에서 큰 규모의 축제가 열려 모든 경찰이 그곳에 배치됐다는 사실을 알고서 범행 루트를 정했던 것이니까.
사만다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졌다.
빌어먹을 한파 때문에 경찰차의 창문은 빈틈없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도 미친 듯이 창문에다 머리를 찧어대면 알아차리지 않을까? 하지만 그러다가 남자가 총을 발포한다면? 하지만 이 남자가 결국엔 나중에라도 나를 죽일 거라면? 하지만 이 남자가 목적만 달성하고선 풀어줄 거라면?
그렇게..
당장 맞이할지 모를 죽음의 공포, 그리고 희망 섞인 미래 사이에서 채 결심을 내리기도 전에 붉은 미등이 모습을 감추며 경찰차는 뒷모습과 함께 떠나갔다.
그로부터 16일 후인 2월 17일.
키이스는 사만다의 얼굴 위로 분주히 분칠을 덧댔다.
또, 그녀의 긴 머리를 세심히 손을 놀려가며 차례차례 땋아갔다.
그리고 눈이 중요했다. 자꾸만 눈꺼풀이 힘없이 가라앉아 자연스러운 표정이 나오지 않았다. 좋은 방법이 있었다. 낚싯줄을 이용하는 거다. 키이스는 한땀 한땀 위아래로 낚싯줄을 교차시켰고, 양쪽 작업이 끝났을 땐 마침내 만족스러운 사만다의 눈빛이 나올 수 있었다.
그 뒤 사만다를 벽면에 조심스레 고정시켜 앉힌 뒤, 그 옆으로 지역 신문 2월 13일 자를 들어 보이고서, 남은 한 손으론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들어 올려 촬영 버튼을 눌렀다.
인화된 사진을 흑백으로 복사하자 원하던 노이즈와 흐릿함이 사만다 주변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감쪽같았다. 사만다는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다시금 그 비명을 귓가로 건네줄 것만 같았다.
키이스는 복사된 용지를 수동 타자기에 꽂고선 그 뒷면으로 철자들을 타이핑해 갔다.
"사만다 코닉의 안전을 보장하고 싶다면 그녀의 계좌로 3만 달러를 입금하시오."
2012년 2월 2일 목요일 아침.
전날 근무자였던 사만다 코닉의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경찰에 실종 신고가 접수된다. 사만다로부터 그녀의 남자 친구와 직장 상사 앞으로 대뜸 휴가를 떠난다는 문자가 왔으나(이스라엘 키이스가 그녀의 핸드폰으로 보낸 것이었음), CCTV 확인 결과 강도로 추정되는 누군가로부터 위협을 받아 범죄에 연루된 게 명백했다.
하여, 평화로운 알래스카 도시에서 터진 중범죄 가능성에 즉각 지역 경찰 및 FBI의 수색이 시작됐다.
한편..
키이스는 사만다를 실종 당일 새벽 주거지 뒷마당 창고에서 성폭행 후 교살했다. 범행 무렵, 사만다를 결박한 후 그 앞에서 술을 마시면서 성폭행을 한 뒤 목 졸라 죽일 것이라고 예고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주거지에서 잠들어있던 자신의 여자 친구와 여자 친구의 어린 딸 몰래 빠져나와 새벽 2시경 사만다를 살해한 키이스는, 사만다의 주거지에 정차 중인 그녀의 트럭에서 ATM 카드를 챙긴다. (납치 당시 카드의 위치와 핀 번호를 파악)
그리고 새벽 5시, 키이스는 여자 친구와 그녀의 딸과 함께 택시를 타고서 공항으로 향한다.
사실..
여자친구 그리고 여자친구의 딸과 함께 2주간 카리브해 크루즈 여행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
이렇듯 키이스는 가족 여행을 몇 시간 앞두고서 잔악한 범행을 저지르고는, 시신을 뒷마당 창고에 유기하고선 태연자약하게 휴가를 보냈던 것이다.
그리곤 여행에서 돌아와 사진과 금전 요구문을 준비해 지역 공원 내에다 비치한 뒤, 사만다의 핸드폰으로 그녀의 남자 친구에게 해당 장소를 명시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에 사만다의 가족은 당장 마련한 5,000달러를 입금시킨다.
이무렵..
키이스는 사만다의 시신을 전기톱으로 토막 내고는, 지역 인근의 마나누스카 호수로 가 얼어있던 물가에 구멍을 뚫고는 그곳에 유기한다.
2012년 2월 29일.
이날을 기점으로 키이스는 사만다의 카드를 사용해 ATM 기기에서 몸값으로 입금된 현금을 인출하기 시작한다.
첫날 과 이튿날은 앵커리지 지역에서였으나, 3월 7일에는 무려 애리조나 윌콕스에서였다. 두 지점은 미국 대륙의 북서부-남서부의 끝에 위치하며, 차량으로 이동 시 60시간을 훌쩍 넘기는 거리이다.
이후 뉴멕시코 로즈버그, 텍사스 험블, 셰퍼드를 돌며 80달러에서 480달러에 이르는 소액을 인출해오던 키이스의 발자취를 흐릿하게나마 끈질기게 추적하던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FBI였다.
FBI는 지역 경찰들의 협조를 구해 키이스가 사만다의 카드를 사용한 ATM 기기 주변 일대를 중심으로 탐문을 이어갔고, 마침내 범인이 흰색 포드사 포커스 모델 차량을 이용해(ATM 기기 영상 배경으로 그의 차량이 살짝 노출됨) 텍사스주를 따라 I-10 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비록 알아낸 사실은 그뿐이었으나, FBI는 텍사스 경찰 및 해당 고속도로 전역의 법 집행 기관에 해당 정보를 전달하며 불상의 흰색 포커스 차량에 대한 감시 태세에 돌입한다.
그렇게..
3월 13일.
텍사스 고속도로 순찰대가 한 호텔 주차장에서 범인의 것으로 강력히 의심되는 렌트카 차량을 발견하고는 해당 사실을 전파한다.
곧이어 키이스가 차량에 탑승하고는 59번 고속도로를 타기 시작했고, 그 꼬리를 텍사스 경찰 및 FBI 요원들이 기민하게 따라다녔다.
문제는..
당초 영장이 없었기에 호텔 주차장에서부터 그저 뒤꽁무니만 쫓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릴없이 한동안 드라이브를 이어가던 찰나, 마침내 그토록 바라던 실수가 발생한다.
키이스가, 제한 속도보다 4km/h 빠른 속도를 내면서 과속 운전 범위에 들어선 것이다.
키이스의 렌트카 차량에선 잡아뗄 수 없는 확실한 증거물들이 나왔다.
범행에 사용된 안면 마스크, 총기, 현금 뭉치, 그리고 사만다의 핸드폰과 ATM 카드..
그렇게..
2012년 3월부터 살인 혐의로 수감되며 이후 법정 탈출극이라는 소동까지 벌였던 34세의 키이스는, 반년 넘게 이어진 면담 및 인터뷰를 통해 그를 담당한 수사관 및 특수 요원 그리고 언론으로부터 '현대 미국 범죄 역사에서 가장 기괴한 연쇄살인마'라는 설명이 붙여지게 된다.
키이스는 1978년 미국 유타주 리치몬드에서 10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의 성장 과정은 여타 연쇄살인마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지가 않았다.
리치몬드에서 워싱턴주 북동부의 외딴 마을인 콜빌 외곽 숲속으로 이주한 그의 부모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그 방향성이 분명 잘못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정상적인 교회가 아닌 인종주의에 기반한 극단적 근본주의 교리를 바탕으로 하는 교회들을 거쳐 가며 자녀들은 전기와 수도도 없는 원룸 오두막에서 지내며 홈스쿨링으로 학교를 대신했다.
그렇게 키이스는 형제자매들을 따라 원시적인 생활을 하며 지냈고, 여기서 키이스는 동물 사냥에 커다란 흥미를 느끼게 된다.
또 사춘기 무렵 이미 키가 180을 훌쩍 넘긴 키이스는 동물 학대, 방화, 절도를 즐기며 연쇄살인마들의 성장 과정에서 나타나는 주된 특징들을 보인다.
특히 키이스는 동물 학대에서 크나큰 재미를 느꼈는데, 고양이를 학대하고서 죽이고는 즐거워하는 것과 달리 다른 친구들은 구토를 하고 괴로워하는 것에서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
이 무렵에 대해 키이스는,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다른 누구에게도 정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을 알고서 그때부터 외톨이가 됐다'라고 술회했다.
이렇듯 자신의 성향을 보고서 기겁하며 떠나가는 친구들을 보고서 키이스는 자신이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지만, 여타 연쇄살인마들의 성장 과정에서처럼 그를 똑바로 선도하고 이끌어줄 제대로 된 주변인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키이스는 '행동과 사상의 교정' 대신,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속내를 숨기며 생활하는 방식을 택하기에 이른다.
16세 무렵부턴 직접 오두막집을 지을 정도로 숙련된 목수가 된 키이스는 목수 일을 이어간다.
이 무렵 그의 부모는 점점 과잉되는 잘못된 종교관으로 인해 자녀들을 옥좨오기 시작했고, 질려버릴 대로 질린 키이스는 공개적으로 무신론을 선언하며 격렬한 다툼을 벌였다.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다툼 끝에 그의 부모는 장남인 키이스를 신성 모독죄로 의절과 함께 집에서 쫓아내며 다른 자녀들과도 연락을 끊을 것을 강요한다.
이즈음 키이스는 여성을 상대로 첫 범죄를 실행한다.
강가를 거닐던 한 10대 금발 소녀를 칼로 위협해 외딴 캠핑장 화장실로 끌고 가 밧줄로 결박하고는 성폭행을 저지른 것이다.
키이스는 당초 목을 졸라 교살한 후 시신을 화장실 구덩이에 유기할 심산이었으나, 계속해서 소녀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하소연하자 마음이 흔들려 놔줬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그는 '다시는 소심해져서 일을 그르치지 말자'라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20살이 되던 해, 키이스는 육군 입대한다.
그는 군 생활에 얼핏 잘 녹아들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군에서 가르치는 서바이벌 기술들에 큰 흥미를 느꼈고, 새로 사귄 군인 친구들도 생겼다.
물론..
그렇게 외부로는 사람들과 일상적인 관계를 맺는 것처럼 보였으나, 조용한 태도를 유지하며 주로 혼자 있기를 바랐으며 주말이면 술독에 빠지다시피 하며 지냈다. 그는 이 무렵 남몰래 두 차례 강간을 시도했으며 속으론 계속해서 환상을 키워가고 있었다.
이제 사람을 진짜로 죽여봐야지.
한편..
2001년, 3년 간의 군 생활을 끝으로 명예 제대한 키이스.
이후 그는 워싱턴주 올림픽반도 내의 마카 부족 아메리카 원주민 보호구역에 똬리를 튼다. 온라인을 통해 만나게 된 아메리카 원주민 여자 친구와 동거하게 됐으며 그 사이에서 딸도 생겼다.
그 후..
6년 동안 이곳에서 건설 노동에 종사하던 키이스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선 2007년엔 알래스카로 돌아와 건설업 사업체를 시작한다.
그렇게 키이스는 군 제대 후 2001년부터 2012년까지..
평소엔 지역의 조용하고 모범적인 건설업 노동자로 주변으로부터 좋은 평판을 유지하면서..
남몰래 온갖 범죄들을 자행하던 지킬 앤 하이드 인생을 보내온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리고 키이스 본인이 자백한 바에 따르면 그가 이 무렵 벌인 범죄는 은행 및 주택지 강도 수십 건 및 2건의 살인이다.
키이스는 실로 장대(?)한 목표를 수립하고서 그에 맞춰 행동했다.
그 목표란, 자신의 환상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 전역을 돌며 낯선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강도질을 통해 범죄 자금을 마련했고, 그러한 것들은 주로 핸드폰을 끈 채로 비행기를 타고서 목표 지역으로 가 그곳 숙박업소에서 머물며 차량을 렌탈하고는 범행을 저지르는 식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모두 현금을 사용하며 일체의 디지털 흔적을 남기지 않았으며, 범행에 사용할 이른바 '살인 Kit(삽, 비닐봉지, 총, 탄약, 현찰 등과 같은)'을 미리 범행 예정지인 외딴 지역에다 숨겨놓는 집착을 보였다.
키이스가 자백한 2건의 살인은, 2011년 6월에 벌어졌다. (당시 심문을 담당한 FBI 요원에 의하면, 그가 해당 사건을 자백하면서 몹시 성적인 흥분을 했다고 함)
그는 버몬트 벌링턴 지역에 미리 숨겨놨던 살인 Kit을 꺼내 소음기 달린 총과 덕트 테이프 따위를 챙긴 뒤, 한밤중 주변 일대를 돌아다니며 마침내 한 집을 선택한다. 그가 집 주변을 수색하며 경보 시스템의 부재를 확인하고 전화선을 끊은 뒤 차고로 침입해 부엌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집 안엔 키이스의 예상(집 뒤뜰에 어린이의 장난감이나 맞춤 시설과 같은 게 전무했으므로)과 같이 50대의 커리 부부가 거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부부가 침실에서 눈을 떴을 땐, 그 앞으로 검은 옷의 복면을 뒤집어쓴 남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키이스는 부부가 서로를 결박하도록 위협한 뒤, 부부를 자신이 끌고 온 렌트 차량에 싣고선 이렇게 말했다.
"걱정 마. 이건 그저 몸값을 받아내려는 납치일 뿐이니까."
이후 키이스는 미리 점찍은 국도에서 떨어진 외딴곳의 버려진 농가에 차를 세우고선 부부를 그 안으로 데려간다.
여기서..
지하실에 따로 가둔 남편 쪽이 아내를 구하고자 격렬히 저항하며 몸싸움을 벌이려 하자, 키이스는 들고 있던 40구경 리볼버를 수 차례 발사한다.
한편 연이은 총격에도 남편 쪽은 끝까지 덤벼들었으나 결국은 바닥에 쓰러져 거친 숨을 내쉬더니 사망하고 만다.
그렇게..
키이스는 남은 아내 쪽을 두 번이나 성폭행하고는 지하실로 데려가 죽은 남편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고는 뒤에서 밧줄로 교살하기까지 한다.
이후 키이스는 시신을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각각 담은 뒤 지하실 구석에 유기하고는, 그 위로 각종 쓰레기와 나뭇더미로 위장하고선 현장을 떠난다.
훗날 누군가가 해당 지역의 땅을 구매하고서 이 폐가를 그대로 허물어 처리할 것이며, 시신의 부패한 냄새는 야생 동물의 체로 받아들여져 오히려 사람들의 접근을 막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그의 예상대로..
커리 부부의 실종 이후 해당 폐가는 허물어지면서 통째로 지역 쓰레기 매립지에 묻혀, 키이스의 자백 이후 현장을 확인한 FBI는 끝내 부부의 유해를 발굴하는 데에 실패한다.
키이스는 평소 유명 프로파일러들의 책이나 연쇄살인마를 주제로 한 책들을 섭렵하고 있었다. 그는 여기서 얻은 지식을 10년 간의 지킬 앤 하이드 생활에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범행 철칙은 '주거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신과 관련 없는 무작위의 사람을 대상으로 삼는다'였다. 만약 이러한 철칙을 계속해서 고수했다면, 분명 그의 체포 시기는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연쇄살인마의 체포에서 가장 난감한 부분이, 바로 무작위의 사람을 범행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허나 무작위로 보이는 범행 대상 선택에도 연쇄살인마 고유의 개성이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과, 이들의 범행 수법에서 발현되는 아이덴티티(요즘은 시그니처라고 흔히 표현하는)로 인해 범죄자 프로파일링이라는 학문이 대두되면서 용의자 특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
또, 연쇄살인마 중 대다수가 처음부터였든 결국에 그렇게 됐든 '어그러지고 비뚤어진 욕망과 환상'에 잠식되면서 범행 현장에 스스로 단서를 제공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한편..
키이스의 경우 철두철미하게 이러한 부분을 경계해 왔다고 할 수 있겠다. 범행을 저지르는 데에 있어서 10년 간이나 그처럼 번거로운(연쇄살인마에게 있어선 극히 곤혹스러운) 절차를 고수했던 연쇄살인마 케이스는 분명 드물다.
그러나 결국엔 그 역시 자신만의 규칙을 어기면서 여타 연쇄살인마처럼 자신을 노출시킨다.
그는 이전 범행들과 달리 자신의 주거지인 알래스카 지역에서 납치를 시도했으며, 이러한 납치 사실을 피해자 가족들에게 공표했고, 납치 당시와 ATM 기기들에서 CCTV에 동선을 지속적으로 노출하면서 꼬리가 잡혔던 것이다.
반년간의 면담 및 인터뷰에선 키이스가 자백한 2건의 살인(부부 살해)과 사만다 살해 외에도, 그가 자신이 살해했음을 암시하거나 또는 그의 동선과 일치하는 피해자들이 존재한다.
물론, 여타 연쇄살인마와 같이 블러핑 또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수용시키고자 면담자에게 거짓 정보를 늘어놨을 가능성이 존재하며 실지로 몇몇 건은 그러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FBI는 최종적으로, 키이스가 11명 내외의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추정했다.
어찌하여 추정으로 그쳤느냐하면..
체포돼 수감된 지 9개월째인 2012년 12월 2일..
아직 정식 재판도 시작되기 전에..
키이스가 자살했기 때문이다.
키이스는 면도날로 손목을 긋고는 목을 매 자살했다.
그는 여타의 연쇄살인마처럼 감시 속에서 좁은 공간에 '관리'되고 있는 상황을 못 견뎌 했다.
특히, 자신의 범죄 행각이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자신의 딸이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는 것과 동시에 연쇄살인마의 자식으로 세간에 알려지고 휩쓸리는 것을 원치 않아 했다고 한다.
그는 10월 30일까지 정기 면담 및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 한 달 뒤인 11월 29일에 다시금 인터뷰가 재개됐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다른 피해자들의 유무 및 시신의 위치를 요구했던 FBI 요원들의 요청을 끝내 묵살하고서 목숨을 끊어버린 것이다. (보안 제한을 받고 있던 그의 손에 어떻게 면도날이 입수된 것인진 불분명)
결국, FBI는 최종적으로 키이스가 11명 내외의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추정하며 사건들 일부는 미제로 남아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FBI가 '11'이라는 숫자를 직접적으로 명시한 까닭은 무엇일까?
키이스가 자살한 감방에선 유서가 발견됐다.
유서는 총 4페이지 분량이었으며, 주된 내용은 피해자의 최후의 순간을 마치 시구처럼 표현한 역겨운 찬미 그리고 사회에 대한 어긋난 울분(양로원에서 죽는 걸 기다리는 것/리얼리티 TV 프로그램 시청/허영심/무의미한 직업을 얻어 이어가는 것 등과 같은 일상생활의 요소에 대한 극단적이고 비뚤어진 시각, 미국은 거짓의 땅/필요 없는 것을 소비하고 우상화된 스타를 소비한다며 지극히 염세적인 분노를)을 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자살 사유에 대해, 다른 이들의 삶에 혐오감을 느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고 언급했다.
한편..
키이스 바로 근처에서 발견된 유서는 그의 피로 인해 범벅이 됐으나..
침대 밑으로 조심스레 놓여있던 12장의 종이는 깨끗한 상태로 발견됐다.
이 11장의 종이엔 두개골이, 1장에는 악마 숭배와 사타니즘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심볼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두개골이 그려진 종이 중 하나엔 'WE ARE ONE'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 그림과 문구들은 모두 혈액으로 작성된 것이며, 키이스가 자살의 순간 자신의 피를 이용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됐다.
현재까지도, FBI는 공개적으로 제보를 받으며 연쇄살인마 키이스와 관련된 범죄 수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특수 요원 캐서린 넬슨은 "결코 쉽지는 않겠죠.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겠고요. 하지만 결코 노력을 포기하진 않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FBI는 말한다.
이러한 끊기지 않는 수사의 노력과 대중의 도움으로, 언젠가는 키이스가 그린 각 두개골들 모두마다 진짜 이름을 밝혀내길 희망한다고.
그렇다.
다른 모든 미제 범죄 사건들에서처럼..
아니, 모든 범죄 사건에서처럼, 범인의 구속과 벌의 집행만이 '정의의 구현'은 아닐 것이다.
'정의의 구현'은, 그 이후 피해자들을 감싸안을 보듬음과 동일 유형의 사건 재발 방지 및 예방까지를 포함하는 것일 거다.
"그는 영원한 고통의 장소에 들었을 것입니다."
- 키이스의 장례식에서 설교자가
참조
<Alaska Public Media/Police Release Detailed Account Of Koenig Murder> Josh Edge
<American Predator: The Hunt for the Most Meticulous Serial Killer of the 21st Century> Maureen Callahan
<Anchorage Daily News/Unsealed interviews detail two lives of Alaska serial killer Israel Keyes> Michelle Theriault Boots
<CBS News/What do skulls drawn in Israel Keyes' blood mean?> Peter Van Sant
<FBI.gov/Israel Keyes>
<MPR News/Trying to unlock secrets of dead serial killer> Sharon Cohen & Rachel D'oro
<Oxygen/How Israel Keyes, ‘The Most Meticulous Serial Killer,’ Was Caught> Joe Dziemianowicz
<Reuters/Confessed serial killer hid in plain sight, then broke own rules> Yereth Rosen
<The Latin Times/'Serial Killer' Sew Dead Woman's Eyes Open For Ransom Photo After Killing Her, Storing Body In Refrigerator> Mary Adeline Dela Cru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