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법 역사에 남은 기괴한 몽유병 사건
* 본 글은 단순히 범죄사건과 관련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오락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사건의 악랄한 범행성을 알림과 동시에 범죄의 연보年譜를 통한 교육에 그 목적을 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몽유병이란 무엇인가?
'수면 상태에서 걷거나 움직이거나 혹은 보다 복잡한 행동을 하는 수면장애'라는 것을 다들 상식선에서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보다 세세하게 이야기해 보자면..
1990년 설립된 미국의 비영리단체 국립수면재단은 몽유병의 대표적인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잠꼬대 또는 비명에서부터 복잡한 움직임에까지 다양
쉽사리 잠에서 깨어나기 어려움
깨우려는 사람에 대해 공격성을 보임
잠에서 깨면 몽유병 당시의 일을 거의 또는 전혀 기억하지 못함
또, 이번 이야기 배경인 캐나다의 정신과협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제시한다.
보통 서파수면(가장 깊은 수면 단계에 해당)에서 시작됨
보통 새벽 늦게가 아닌 한밤중 또는 이른 새벽에(수면의 첫 1/3 시기에) 발생
보통 지속 시간은 30분 미만
이따금 폭력, 부상, 자해가 발생하기도 하며 성적인 각성/자극은 나타나지 않음
단순히 침대에 걸터앉거나 걷는 것에서부터 집안을 돌아다니거나 집을 나와 장거리 이동하는 것에까지 다양
몽유병 현상은 주로 어린이에게서 나타남
이러한 몽유병은 우리들에게 그닥 생소한 현상은 아니다.
물론, 유병률이 대게 10% 내외로 낮으며 일시적인 경우도 존재해 자신이 직접 겪은(정확히는 타인이 알려준) 이는 많지가 않을 것이다.
다만, 워낙 오래도록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병명이기도 하고 심심찮게 건너 건너 경험담을 접하기도 하는 일상 속의 비교적 흔한 질환이기도 하다.
또, 그간 문학 작품 또는 매체 등지에서 극적인 이야기 연출을 위해 소재로 사용된 바도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이번에 소개할 이야기는..
이러한 몽유병과 관련해 가장 끔찍한 실제 사건으로 꼽히는 이야기이다.
1987년 5월 24일 일요일 새벽 1시 30분경, 캐나다 토론토.
그리고, 195cm에 120kg이 넘는 거구를 지닌 23세의 케네스 팍스.
이날 그는 소파에서 TV를 시청하던 도중 깜빡 잠에 들었고, 그의 아내와 5개월 된 딸은 이미 침실에서 숙면에 빠져있었다.
팍스는 아주 아주 깊은 수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팍스가 눈을 떴을 땐, 그의 손과 옷가지가 피 칠갑인 상태였다.
쇼크 상태에 빠진 팍스가 본능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그가 서 있는 곳은 집이 아니었다.
다만, 아주 낯이 익은 곳이었다.
그리고..
보다 낯이 익은 노인 둘이 미동도 없이 피웅덩이 곁으로 널러져 있었다.
두 노인은, 바로 팍스의 장인과 장모였다.
장모의 감기지 않은 두 눈과 닫히지 않은 입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쇼크 상태에 빠진 팍스는 기겁하며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누군가가.. 강도가 장인댁에 침입했던 것일까?
그런데.. 왜 TV를 보던 자신이 집에서 23km 떨어진 살인사건 현장에 있는 것일까?
너무도 급작스러운 사태에 직면하며 얼이 빠져있던 팍스의 시야로 주차된 자신의 차량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이 차 키 역시 소지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또한, 자신의 손에 식칼이 쥐어져 있는 것도.
그 순간..
팍스의 뇌리로 한 단어가 스쳐 지나간다.
몽유병
새벽 4시 45분경.
차를 몰고서 인근의 경찰서로 향한 팍스가 피 묻은 손을 연신 떨어대며 경찰에게 고해한다.
"방금 제 손으로 사람을 죽였어요! 세상에! 방금 사람을 죽였다고요! 두 사람을 죽였어요! 세상에나! 방금 전 제 손으로 두 사람을 죽였어요! 맙소사! 방금 두 사람을 죽였어요! 내 손이.. 두 사람을 죽였어요! 제가 그분들을 죽였어요! 방금 전에 두 사람을요! 제가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죽였어요! 제가 찌르고 때려서 그분들을 죽였어요! 모두 제 잘못이에요!"
그렇게..
수십 년간 범죄학자, 수면&수면장애 전문가, 정신과 및 신경과 전문의들의 뜨거운 화두로 오르내리게 되는 'R v Parks'의 시작이었다.
결론적으로, 팍스는 1명을 살해하고 1명을 중상에 빠뜨렸다.
그는 차 트렁크에서 타이어 지렛대를 꺼내어 일전에 장인장모로부터 받았던 집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뒤 1층 두 처제의 닫혀있던 방문 앞에서 마치 노려보듯 잠시간 가만히 서 있던 팍스는직후 2층의 침실로 향한다.
이후 지렛대로 장모의 머리부위를 가격하고는, 주방의 식칼(현장에서 습득한 것으로 추정)로 대여섯 차례 찔러댔다. 이로 인해 장모는 두개골 골절 및 지주막하출혈을 당했으며, 식칼에 의해 심장 부위가 치명상을 입으며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만다.
그는 또 장인의 목을 거의 질식사에 가깝게 있는 대로 졸라댔으나 다행히 사망에 이르지는 않는다. (장인과 장모의 공격 순간 순서가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는 확실치 않음)
그 후 집을 나와 쥐고 있던 식칼을 바닥에 그대로 유기하고는 자신의 차량을 운전해 인근의 경찰서로 가 자백을 한다.
그렇게..
1급&2급 살인 혐의 및 살인 미수 혐의로 기소된 팍스는, 다음 해 1988년 재판대에 서게 된다.
검사 측은 '몽유병인 상태에서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모른 채 살인을 했다'라는 팍스 측의 주장에 대해 거세게 반발했다.
컨설턴트로 참여한 수면 전문가들조차 다소 회의적인 견해를 견지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했다.
물론, 19세기 무렵부터 심각한 몽유병 질환으로 인해 가족을 살해한 케이스가 몇몇 존재하긴 했다.
허나 그건 모두 같은 한집 안에서 바로 주변의 가족, 모두 무방비 상태의 아기 및 어린아이 혹은 배우자를 목 조르거나 하는 식이었다.
팍스의 경우처럼 복잡한 몽유병 케이스는 일찍이 없었다.
옷을 챙겨입고서 차량 열쇠와 장인장모댁 열쇠까지 챙기고, 23km 거리의 도로를 운전하며 신호에 의한 사고도 없이 장인장모댁에 도착하고는, 각기 다른 흉기를 챙겨 2층 침실로 향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공격을 가한 것처럼은 말이다.
또, 검사 측은 팍스에게 살해 동기 또한 있었다고 주장한다.
사건 발생 2개월 전인 1987년 3월.
전기유통업체에서 기획 관련 업무에 종사하던 팍스는 횡령 사실이 발각됨과 동시에 절도 혐의로 기소되는 처지가 된다.
당시 팍스에겐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도박 중독이었다.
어찌나 심각한 수준이었던지, 가족 소유의 저축을 모두 탕진한 것도 모자라 금융회사에서까지 돈을 끌어다 쓰며 모두 경마장에 꼬라박기까지 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회사 자금 30,452.38달러를 사취하기까지..
그렇게 결국 기소가 이뤄지면서, 팍스는 아내에게 사실을 고하고는 자금 횡령으로 인해 살던 집을 매물로 내놓는 처지가 된다.
그리고..
바로 사건 당일인 5월 24일 일요일에 본래는 아내와 함께 장인장모댁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하여 검사 측은 팍스가 심경의 변화 내지는 은폐를 목적으로 사전에 흉기를 준비했던 것이거나, 또는 장인장모와의 말다툼 및 대립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흉기를 쥐어 들고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견지를 펼친다.
한편..
팍스의 변호인 측은 '몽유병 상태에서 자각하지 못한 사건'임을 견지하면서, 살인죄는 분명한 살해의 의도가 있어야 성립되므로 혐의가 없음을 주장했다.
또한, 팍스에게 장인장모를 살해할 동기가 없음을 주장했다.
팍스가 도박중독 문제로 집을 매물로 내놓는 상황에까지 이르며 장인장모와도 관계가 소원해진 것은 사실이었다.
허나, 그가 아내와 만나던 순간부터 장인장모는 그를 신뢰하고 좋은 관계를 쭉 유지했었다.
처음 팍스가 아내를 만났을 무렵 그의 아내는 가출한 상태였다. 그리고 팍스가 아내를 부모님께 돌아가도록 설득하면서 관계가 시작됐다.
이로 인해 장인장모는 결혼 이전부터 팍스를 신뢰하고 호의적으로 대했으며, 특히 장모의 경우 팍스를 '내 순둥이 거인'이라고 애칭할 정도로 사이가 돈독했다.
물론 도박중독 문제로 일시적으로 관계가 소원해지긴 했으나, 사건 4일 전인 5월 20일에 도박중독자 치료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하면서 다시금 격려를 받는 관계가 됐다.
사건 당일인 5월 24일에 부부 내외가 방문하기로 한 것도, 관계 회복 겸 향후의 일을 함께 논의하고자 바비큐 파티를 즐길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이른 새벽 TV를 보다 곯아떨어지기 전까지 팍스에겐 어떠한 징조도 심경의 변화도 없었다는 게 변호인 측의 주장이었다.
더군다나, 팍스는 사건 이전에 폭력성을 보였던 사례가 있거나 동종 전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특히나, 팍스의 재판이 열릴 때마다 내내 부모를 잃은 그의 아내가 남편의 곁을 지키면서 진술의 신빙성은 물론이고 배심원단에 깊은 인상을 주기 충분했다.
결국..
재판 과정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사안은, 팍스가 정말로 사건의 순간 자아와 인지가 없던 몽유병 상태였느냐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거의 유무였다.
그리고..
그러한 입증 과정에서 놀랄 만한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처음 컨설턴트로 참여한 수면 전문가들조차 회의적 입장이었던 팍스의 몽유병 증세..
이후 의학적 검토를 위해 투입된 신경생리학자이자 수면 및 수면장애자 전문가, 정신과 전문의, 신경과 전문의, 정신과&신경과 전문의, 법의학 정신과 전문의까지 총 5명의 의학 전문가가 본격적으로 팍스의 수면장애 정도를 체크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5명의 전문가는 입을 모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검토 결과, 피고는 기소된 행위를 저지를 당시 실제로 몽유병을 앓고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처음에는 회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종국엔 사건 당시 피고가 몽유병을 앓고 있었다고 만장일치가 됐습니다.
몽유병은 의학적으로 신체적 및 정신적 또는 신경학적으론 질병으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또, 우리는 몽유병 상태의 환자가 자발적인 행동을 할 수 없다고 만장일치로 동의했습니다. 몽유병 환자는 사전에 깨어있을 때 미리 계획을 세우고서 이후 수면 중에 그러한 계획을 실행할 수도 없습니다.
수면 중 우리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가장 놀라운 특징은, 깨어 있을 때의 사고와는 독립적인 형태라는 점이겠습니다. 수면 상태에서는 우리의 마음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죠. 깨어 있을 때엔 의지에 따라 자발적으로 일을 계획하는 경우가 많지만, 몽유병 상태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몽유병은 불완전한 각성 과정의 일부에 불과하며, 모든 연구자는 여기에 자의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리고 피고는 몽유병 상태에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인식하지 못했을 겁니다. 도중에 멈출 수도 없었고요. 모든 것이 통제되지 않고 계획되지 않는 무의식적 행동의 발현이기 때문입니다.
몽유병의 경우 통계적으로 성인 중 2-2.5%가 한 번 이상 경험한 바가 있습니다. 피고의 가족 중 몽유병 환자가 여럿 있었다는 사실도 중요하겠습니다.
피고의 가족들 배경에는 몽유병, 야뇨증과 같은 역사가 존재했다는 게 밝혀졌으며, 이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이러한 몽유병 현상이 종종 가족 구성원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피고 역시 만성적인 잠꼬대, 쉽사리 깨지 못하는 깊은 수면, 가끔씩 몽유병을 앓았다고 합니다.
피고에서처럼 몽유병 상태에서 타인에게 심각한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공격성의 동반 위험은 일반적으론 무한히 낮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유전적 소인에 더불어 심각하게 쌓인 모든 부차적 촉발 요인들이 더해져야 하겠습니다. 스트레스, 수면 부족, 격렬한 운동의 배제와 같은 수면 위생과 약물 치료 통해 심각한 공격성의 재발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는 몽유병 상태에서의 공격성 발현은 매우 드물며, 최근 연구소에서 개인적으로 수집한 케이스는 지난 5년 동안 총 5-6건에 불과합니다.
피고가 몽유병 상태에 돌입하는 서파수면(가장 깊은 수면 단계에 해당)에서는, 사고와 자발적 움직임을 제어하는 뇌의 일부 피질이 본질적으론 혼수 상태에 머뭅니다. 따라서 몽유병 환자는 일상과 달리 뇌의 다른 부위에 의해 움직임이 제어되며 어느 정도는 반사적 형태로 이뤄지는 거죠."
조사를 담당했던 전문 학자들의 말마따나 팍스의 몽유병력은 분명 특이했다.
가족 친지들 3대 20여 명에 걸쳐 다양한 수면장애가 관찰됐으며, 보통 몽유병 증세가 주로 발현되는 시기인 어린이 시절에 다수의 사건들이 있었다는 증언이 있었다.
팍스는 11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수면장애가 나타났으며, 특히 수면 중 야뇨증으로 인해 이불에 소변을 지리고도 깊은 잠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곤 했단다. 보통 어린아이가 수면 중 실례를 할 경우 반사적으로 깨는 것과 달리 말이다. (몽유병 증세로 공격적인 행위를 보이는 성인의 경우 다수가 어린 시절 이러한 모습을 보였다는 1947년 연구 결과도 존재)
또 이 무렵 6층 집의 창문을 통해 나가려는 것이 가족에 의해 발견되거나, 심지어 위급한 순간에 다리를 붙들어 잡다시피 한 경우도 있다고.
야간 수면 뇌파 조사 과정에선 팍스가 아주 깊은 수면 단계에 빠져드는가 하면, 특이하게도 다른 이들과 달리 아주 자연스럽게 수면 단계를 자주 전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사건 당시 현장 1층 방에서 수면 중이었던 팍스의 처제들은 문 앞에서 마치 동물이 크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
변호인 측과 조사에 참여한 전문 학자들의 주장 및 의견을 종합하자면, 팍스는 몽유병 상태에서 우리의 인지를 담당하는 전두엽 피질 부분이 깊은 수면으로 인해 깨어나지 않고서 완전히 비활성인 상태로 그저 상황의 몰이해 가운데 혼란 상태의 반사적 행위만을 이어갔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이러한 심각한 증세는 결코 흔한 게 아니지만 소수의 환자들 중 전문 학자들의 설명 따라 '심각하게 쌓인 모든 부차적 촉발 요인'이 가해질 경우 평상시처럼 행동하고 운전과 요리와 같은 복잡한 행위도 발현되는 게 집계되고 있다고.
유전적 소인 측면에서 팍스의 경우 굉장히 드문(3대 20여 명) 유전력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부차적 촉발의 요인은?
재판에 참여한 전문 학자들은 이러한 부차적 촉발의 대표적 요인들로 '스트레스, 수면 부족, 격렬한 운동'을 꼽았다.
그리고, 팍스의 경우 사건 전부터 이 대표적 요인들 모두로부터 한꺼번에 영향을 받고 있었음이 증명됐다.
도박중독으로 말미암은 자금 횡령죄 기소와 가족 저축 및 자가의 상실 그리고 그로 인한 결혼생활의 위기로 깊고 오래 지속 심인성 스트레스가, 또 만 이틀간 거의 제대로 된 수면이 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더위 땡볕 가운데 럭비를 하면서 육체적으로 한계에 가까운 스트레스까지.
이렇듯 전에 없던 3요소의 심화로 인해 극단적인 몽유병 증세가 발현됐다고 전문 학자들은 결론 내렸다.
그렇게..
처음 팍스의 주장에 회의적인 입장일 수밖에 없었던 전문 학자들 모두 만장일치로 '사건 당시 피고는 자신의 행위를 인지하지 못했다.'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따라서 전문 학자들의 의견대로라면, 우리가 모두 현실과 꿈속에서의 반응 및 사고방식이 다르듯 팍스 역시 사건 당시 그저 파도처럼 밀려오는 단편적이고 인지가 불가능한 상황 인식 속에서 단순히 반응 체계만이 발휘됐을 것이다.
또, 전문 학자들 및 경찰과 검찰로부터 총 7차례에 걸친 인터뷰 및 심문에서도 일관된 진술을 내놨으며 진술상 오류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팍스의 무죄를 가장 크게 뒷받침해 줄 물증과 증언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사건 당시 그가 자백했다던 경찰서의 경찰들이었다.
자백 당시 팍스의 손은 피투성이였다. 장모를 식칼로 찌르던 과정에서 칼날이 미끄러지며 손가락 사이의 힘줄이 부상을 입은 것인데, 이는 맨손으로 칼로 사람을 찌르는 범행 과정에서 으레 나타나곤 하는 현상이었다.
헌데, 팍스의 경우 당장 수술을 요할만큼의 힘줄 부상이 여러 곳에서 존재했다.
이런 정도의 부상이 발생할 경우 당연히 고통으로 인해 공격 행위가 멈춰진다. 허나 팍스의 부상으로 미루어 그는 부상이 연이어 발생하는 데에도 개의치 않고서 그러한 공격 행위를 이어갔고, 이는 그가 고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정도로 깊은 수면 단계에 빠져있었다는 방증이었다.
경찰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팍스는 황당함과 공포 및 두려움의 표정을 내비치며 자백을 하고 있었고 그러한 자백 뒤에야 자신의 힘줄 부상을 깨닫고는 고통스러워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팍스는 배심원 만장일치로 판사로부터 1급&2급 살인 혐의 및 살인 미수 혐의 무죄를 선고받는다.
그리고 검찰 측의 항소로 1992년 대법원판결에까지 이어지나, 그대로 원심이 유지되면서 팍스는 최종적으로 무죄를 판결받는다.
한편, 법원은 팍스가 사건 당시 정신질환이 아닌 수면장애를 앓고 있던 것으로 판결 내렸기에 재판 후 정신질환 치료가 아닌 수면장애 치료를 받도록 명령한다.
그렇게 팍스는 약물치료를 통한 수면장애 관리를 받으며 심각한 증세는 더는 발현되지 않았으며, 그저 수면 도중 간혹 일어나 앉는 정도의 증세를 보였던 게 전부라고 전해진다.
'팍스의 몽유병 살인 사건'은 캐나다 법 역사 최초의 '수면 중 살인사건' 무죄인 동시에 몽유병이 범죄행위의 방어권으로 인정받은 케이스이다.
또한 전례가 없던(근처의 사람을 죽게 만들거나 피해를 입힌 경우는 심심찮게 있었으나 20km 떨어진 곳의 사람을 해한 경우는 없었음) 케이스인지라 법 그리고 정신 및 수면 학계에서는 종종 다뤄지는 사건이다.
비교적 최근에는 저명한 수면 임상의 카를로스 쉔크가 팍스 재판 기록 1,737페이지를 검토한 분석 결과를 자신의 저서 <Paradox Lost>와 매년 뉴욕에서 개최되는 <World Science Festival>을 통해 발표했다.
쉔크는 재판 당시 만장일치로 무죄 결정을 내렸던 배심원단이 올바른 판단을 내린 것이며, 해당 사건과 같은 수면 중 행동은 어디까지나 극단적인 예시로 의도치 않은 비극적 결과가 초래된 사례이긴 하지만, 수면장애를 앓는 사람은 수면 부족, 신체적 및 감정적 스트레스를 피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후 팍스는 재판 내내 자신의 곁을 지켰던 아내와 끝내 이혼하게 된다.
가장 가까운 사이들에게서 발생한 비극적인 참극.
아내 입장에서는 남편과 자신의 부모 사이에서 벌어진 사건을 이해나 납득하고자 노력은 가능할지 몰라도, 사건 자체를 잊는다는 건 결코 불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간단한 약물 치료로 증상이 잡히므로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일반에 채 자리 잡기 이전 발생했던 사건이기에 피해자 모두에게 더욱 비극적일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참조
<Chicago Tribune/SLEEPWALKING CANADIAN WALKS ON MURDER CHARGE>
<Mental Floss/A Bump in the Night: When Sleepwalkers Turn Violent> Matt Soniak
<Supreme Court of Canada/R. v. Parks>
<World Science Festival/The Mind After Midnight: Where Do You Go When You Go to Sle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