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지 않는 여인' 그녀의 이야기
이번에 소개할 이야기는, 사진 속 여인 바이올렛 콘스탄스 제솝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침몰하지 않는 여인'으로 불리운다.
왜냐하면..
바이올렛은 1887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최남단 항구도시인 바이아블랑카 인근에서 태어났다.
양을 치고 농사를 짓는 아일랜드 이민자 부모님 사이에서 장녀로 태어났으며, 그녀의 밑으론 다섯 명의 형제자매가 있었다. (밑으로 총 여덟이 있었으나 셋은 일찍이 사망)
그녀는 유년기 시절 결핵에 걸리며 의사들로부터 남은 시간이 불과 몇 달 밖에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는다.
허나, 그녀는 죽음을 극복해 낸다.
사춘기 무렵 그녀의 아버지가 수슬 합병증으로 사망하자, 그녀의 어머니는 가족들을 이끌고서 영국으로 이주한다.
그녀의 어머니가 영국의 대형 해운 회사인 로얄 메일 라인에서 승무원으로 일하던 중 건강이 악화되면서, 바이올렛은 학교를 도중에 그만두고서 이곳의 승무원으로 취업한다.
이후 다른 대형 해운 회사인 화이트 스타 라인(훗날 1927년에 로열 메일 라인과 합병)으로 이직한 그녀는, 하루 17시간씩 북대서양 항로의 짠바람을 누비게 된다.
그렇게..
24살인 1911년 9월 20일.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호화 민간 여객선이었던 'RMS 올림픽호'에서 승무원으로 일하던 그녀는 첫 번째.. 아니, 두 번째 도전을 받게 된다.
죽음으로부터의 도전을.
올림픽호가 영국 해군 순양함 HMS 호크와 충돌하면서 선체에 손상이 발생했으나, 다행히 물에 뜬 채로 항구까지 복귀할 수 있었다.
선내 사망자는 없었으며, 이는 바이올렛의 '첫 번째' 선박 사고였다.
비록 사고가 있었으나 바이올렛은 RMS 올림픽호에서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헌데, 그녀는 주변으로부터 화이트 스타 라인의 새로운 호와 여객선으로 승무원 자리를 옮겨보라는 설득과 제안을 받으며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그렇게..
그녀는 새로이 세계에서 가증 큰 호화 민간 여객선 자리에 오른 신상 여객선의 승무원으로 합류하게 된다.
이 여객선의 이름은, 절대 침몰하지 않는 불침선 'RMS 타이타닉호'였다.
그리고..
1912년 4월 10일.
승객 및 승무원 총 2,200여 명을 태운 타이타닉호가 첫 항해로 영국 사우샘프턴->미국 뉴욕행에 나선다.
4월 14일, 언제나의 항해에서처럼 바이올렛은 잠자리에 들기 전 갑판에서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습관을 이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한 아일랜드인 노파가 그녀에게 히브리어로 쓰여진 기도문 사본을 건네준다. 바이올렛은 침대에 자리를 잡고서 해당 기도문을 소리 내어 읽는다.
기도문은 다소 엉뚱하고 이상했다. 화재와 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기도들이었다.
한편..
침대에 누운 바이올렛은 조금씩 졸기만 할 뿐 좀처럼 숙면에 빠져들지 않았다.
그러던 밤 11시 40분경, 타이타닉호의 우현이 높이 18m, 무게 30만 톤의 거대한 빙산과 충돌하게 된다.
이후 10분 만에 선수에 4.5m 높이로 물이 차더니 자정 무렵엔 침수가 본격화되기 시작하면서 구명정 20척(탑승 인원 절반을 태울 수 있는) 전부가 대기 상태에 들어선다.
밤 12시 25분경, 최고 속도로 항해하면 4시간 거리인 '카르파티아호'에서 구조에 나선다.
밤 12시 40분경, 첫 번째 구명정이 내려지며 아이와 여성이 먼저 탑승하라는 지시가 떨어지나 막상 당사자들은 탑승을 주저한다.
이에 선원 측으로부터 안전성을 확인시켜 주라는 명령을 받은 바이올렛이 구명정에 탑승하는 시범을 보이며 탑승객들을 독려한다.
이후..
죽음의 문턱에서 끝까지 기사도를 발휘하며 아이와 여성을 우선적으로 구명정에 태우던 타이타닉호의 나머지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은, 구명정의 탑승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타이타닉호와 함께 북대서양에 가라앉고 만다.
그리고 새벽 4시 30분경, 현장에 도착한 카르파티아호에 의해 구조 작업이 시작된다.
8시간 뒤 구조된 바이올렛은 구명정에서 건네받아 자신이 돌보던 아기를 아기의 어머니에게 전달한다.
화이트 스타의 올림픽호와 타이타닉호에 이은 막내인 대서양 횡단 여객선 'HMHS 브리타닉호'.
이 브리타닉호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병원선으로 개조돼 징용되는 신세에 이른다.
물론(?)..
바이올렛이 탑승하고 있었다.
다만, 승무원이 아닌 영국 적십자 간호사로 말이다.
그렇게 브리타닉호를 타고서 몇 차례 항해를 하며 간호사로 복무하던 바이올렛은 네 번째 도전을 받기에 이른다.
1916년 11월 21일 아침, 그리스 케아섬 인근 항해하던 브리타닉호가 기뢰 폭발에 휘말린 것이다. 기뢰는 독일 제국 해군 U-보트가 심어놓은 것이었다.
이에 선체에 치명상이 발생하면서 배를 포기하고 구명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몰린다. 그래도 다행히 1,000여 명의 승선 인원을 모두 태우고도 남을 구명정이 구비된 상태였다.
헌데..
문제가 발생했다.
지속적으로 돌고 있던 선박의 스크류로 인해 그 프로펠러 날이 구명정을 덮치면서 33명의 사망자를 낳은 것이다.
바이올렛은 프로펠러 날과 낙하해 오는 갑판의 기기들을 피해 계속해서 머리를 숙인 채 저항하다가 바닷물로 뛰어내렸다.
허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 직후 선체 부위로 빨려 들어가며 그대로 머리를 강타당한다.
그래도 끝까지 정신을 놓지 않은 그녀는 다행히 구조될 수 있었다.
타이타닉호 때와 달리, 근방에서 구조 작업을 도울 다른 선박이 있었으며 아침인지라 해수 온도 또한 견딜 만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바이올렛은 심한 두통으로 인해 진료를 받았고..
의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음, 두개골 골절을 겪은 일이 있네요."
그렇게..
죽음으로부터 네 번의 크나큰 도전을 받았던 바이올렛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선박들이 차례로 사고를 당하고 침몰하는 가운데 무사히 살아남는다.
'절대 침몰하지 않는 불침선'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잇달아 지켜내지 못했던 여객선들..
그 와중 정말로 침몰하지 않는 건 바이올렛이었다.
아아! 침몰하지 않는 여인 바이올렛이여.
42년간 바다를 누볐던 바이올렛은 은퇴 후 영국 잉글랜드 서퍽 그렛 애쉬필드에서 조용하고 평화로운 노년을 보낸다.
그리고..
1971년, 83세의 나이에 울혈성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난다.
여담으로..
'절대 침몰하지 않는 여인'이었던 바이올렛은 죽음의 고비를 모두 넘기고서 36세에 직장 동료와 결혼을 하나..
그 1년 후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서 슬하에 자식 없이 평생을 지낸다.
참조
Encyclopedia Titan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