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선고법을 바꾼 살인마 이야기
* 본 글은 단순히 범죄사건과 관련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오락적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사건의 악랄한 범행성을 알림과 동시에 범죄의 연보年譜를 통한 교육에 그 목적을 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녀, 메리 빈센트
1978년 여름, 그리고 가을이었다.
메리는 15살이었고 집을 나왔다.
기계공인 메리의 아버지는 군 복무 중 만난 블랙잭 딜러인 어머니와 결혼해 슬하에 7명의 자녀를 두었다.
메리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자라며 또래 10대 여자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댄스와 화장에 푹 빠져있었다.
다만, 엄격한 집안 분위기에서 오히려 반발이 작용했는지 그 정도가 조금 지나쳤다. 툭하면 수업을 빼먹고 가출하기 일쑤였다.
그렇다.
메리는 호르몬과 감수성에 어지러이 비행하는 청소년이었다.
그해 여름, 메리는 집을 나와 남자 친구와 함께 한동안 차량 안에서 지낸다. 그러던 와중 남자 친구가 성범죄 혐의로 체포되면서 다시금 홀로 길을 떠난다.
잠시간 삼촌 집에서 신세를 지던 메리는, 600km 넘게 떨어진 할아버지 집으로 향하고자 결심한다.
메리는 어째서 긴 방황에 나섰던 것일까?
이 무렵, 메리의 부모가 본격적인 이혼을 목전에 두고서 집안 분위기는 그야말로 살얼음판이었다. 여기에 더해, 평소 메리의 행실에 화를 쌓아뒀던 아버지가 날을 잡고서 벼르고 있단 이야기를 자매에게 전해 듣고는 그대로 집을 나와버린다.
그렇게 된 이야기였다.
거리를 전전하며 남자 친구와 대형 쓰레기통 뒤편이나 문이 잠기지 않은 차량 안으로 들어가 밤을 보냈다.
그러다 버티다 못해 자신의 남은 안식처는 할아버지 집뿐이라는 생각에 히치하이킹 길에 올라섰다.
9월 29일, 메리는 히치하이킹을 하려다 알게 된 다른 히치하이커 2명과 캘리포니아주 버클리 지역에서 열심히 팻말을 나부꼈다.
그리고..
마침내 오후 무렵 파란색 밴 차량 하나가 히치하이커들 앞에 정차한다.
차량 주인은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 푸근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었다. 기름과 맥주로 채워진 배 위로 파란색 점프수트가 헐렁하게 걸쳐진 남자가 말했다.
"보시다시피 공간이 넉넉지 않아서.. 여성 한 명이 탈 공간밖에 없네."
경계하며 말리는 다른 히치하이커들을 뿌리치고서 메리가 올라탄다. 더는 홀로 하루도 버틸 수가 없었다. 너무도 괴롭고 피곤했다.
"리노로 가고 있었네. 가다가 우회해서 로스앤젤레스에 내려주지."
한참 길을 가던 중, 샌프란시스코 근방에서 남자는 자기 집에 들려 세탁물을 가지러 가야 한다며 메리에게 도와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메리는 기꺼이 세탁물을 차량으로 옮기는 것을 도왔다.
헌데, 다시금 길을 떠나면서 남자는 우유 팩을 홀짝이기 시작했다.
메리는 그 안의 풍기는 냄새로 술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허나, 남자에 대한 믿음이 어느 정도 쌓이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는 깜빡 잠이 들었다.
메리가 눈을 떴을 때..
도로 표지판은 네바다로 향하는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메리는 화가 났다. 이게 무슨 수작질이람.
메리는 차량 안에 방치 중이던 뾰족한 막대기를 꼬나들고는 엄중히 경고했다.
"난 내 몸 하나 지킬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당장 차 돌려요."
그러자 남자가 즉각 대답했다.
"길을 잘못 들어섰던 거야. 정말로 착각한 거란다. 널 해치거나 할 생각 없어."
자신의 말을 따르는 남자를 보고서 메리는 사뭇 놀라 자신이 착각한 것인지 당혹스러웠다.
그렇게..
해가 지고서야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온 둘.
남자는 화장실이 급하다며 한적한 길가로 차량을 세우고는 바깥으로 나갔다.
메리는 기회라고 생각하며 결정을 내렸다.
본능적으로 남자의 낌새가 좋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는 달아나기로 한 것이다.
메리는 중년의 남성보다 훨씬 더 빠르게 달릴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살그머니 바깥으로 나와 틈을 보던 중 신발 끈이 풀려버린 것을 보고는 끈을 매고자 잠시 몸을 구부렸다.
이제 끈만 매면 곧장 내달리리.
그리곤 한 발을 내디디던 그 순간.
사방 천지가 장막으로 가려지더니 동시에 어마어마한 충격이 덮쳐왔다. 두 번이나 말이다.
돌아본 곳에선, 망치를 손에 쥔 남자가 다가와 거칠게 메리를 잡아채고 있었다. 남자는 메리를 차량 안으로 밀어 넣으며 말했다.
"비명 지를 생각 마. 그러지 않으면 죽여버릴 거니까."
남자는 순식간에 차량 뒤편 바닥으로 놓인 메리의 손을 묶고는 자신의 옷과 메리의 옷을 벗어젖히기 시작했다.
그리곤 범죄가 시작됐다.
이후 남자는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 운전석에 앉아 한적한 협곡 길을 따라 수 km 운전해 가다가 다시금 차량을 정차했다.
남자가 메리의 묶인 손을 풀어주고서 술 한 컵을 따라 주고는 말했다.
"내 말에 복종하면 풀어 줄 거야. 자, 마셔. 마시지 않으면 죽여버릴 거니까."
그리고는..
또다시 범죄가 시작됐다. 메리는 공포와 취기에 못 이겨 그만 기절해 버리고 만다.
메리가 정신을 차리자, 남자가 명령했다.
"차에서 내려서 길가로 누워."
메리가 나체 상태로 엉거주춤 길가로 향하자, 남자는 차량 안에서 무언가 뒤적거리더니 이윽고 메리에게로 다가와 왼손을 잡아채고는 말했다.
"자유로워지고 싶지? 내가 그렇게 해줄게."
그 말과 동시에, 남자가 손에 들린 손도끼를 치켜들었다.
휘둘러진 손도끼가 메리의 왼쪽 팔꿈치 바로 아랫부분을 짓이기기 시작했다. 엄청난 고통과 함께 몇 번의 휘둘림으로 메리의 왼쪽 손이 뭉개지듯 떼어져 나갔다.
이어 메리의 오른쪽 팔꿈치 바로 아래로 도끼가 휘둘려졌고, 메리는 너무도 극심한 고통에 지르던 비명을 채 끝내지도 못하고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남자는..
그런 메리를 9m 높이의 협곡 아래 제방 배수관으로 마치 쓰레기를 투기하듯 던져버렸다.
그, 로렌스 싱글턴
플로리다주 탬파에서 태어나 상선 선원으로 일했던 싱글턴. 사건 당시인 1978년 9월 29일, 그는 생일을 2달 앞두던 50세의 중년이었다.
그의 인생은 결코 순탄지 않았다.
1971년 아내와 이혼, 1976년에 재혼했으나 이번 결혼생활은 2년이 채 가지 못했다.
1978년 봄, 10대 딸과도 격렬하게 다투며 가족들과의 관계는 끊어지다시피 한다.
인생의 대부분을 바다에서 보내며 술만 마시면 난폭해지던 싱글턴. 그런 그가 9월 29일, 히치하이커 중 하나를 자신의 차량에 태우게 된다.
자신의 딸과 같은 10대 소녀.
그런 소녀의 양 팔을 절단하고는 나체 상태로 마치 번거로운 쓰레기라도 투기하듯 9m 높이의 협곡 아래로 던져버린 싱글턴.
그리고, 경찰에 체포돼 재판대에 세워진 그.
허나, 당시 미국의 법은 지금에 비해 너무도 관대했고 이는 캘리포니아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범죄자인 싱글턴은 기소된 혐의들에 대해 모두 유죄 판결을 받으나..
1979년 3월, 그에게 부여된 벌은 징역형 14년이었다. 기소된 혐의들 중 최대 형량을 부여받은 셈이었다.
판사는 다음과 같은 말과 함께 유죄를 선고했다.
"제게 권한이 있다면, 그를 평생 감옥에 보냈을 겁니다."
한편..
싱글턴은 한결같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혹시나 제가 그런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떻게 내 옷과 손도끼에 피가 묻어있던 걸까 하고 계속 생각했죠. 제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그녀를 공격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에게 혐오감이 들었죠. 당시 취한 상태에서 그녀의 신고하겠다는 말을 듣고서 폭력성이 유발됐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최종적으로..
1987년, 싱글턴은 8년의 징역을 살고서 60의 나이에 교도소를 나왔다.
이전에 징역을 산 적이 없으며, 모범수로 교도소 보조 업무직을 수행하며 형기를 감형받았던 까닭이었다.
물론, 이러한 소식에 캘리포니아주는 물론이고 미국 전역에서 분노에 찬 여론이 일어났다.
당연히 캘리포니아주 내의 모든 지역사회에선 싱글턴의 거주를 극렬히 거부하며 피켓 시위가 산발했고, 이에 1년간의 가석방 기간 동안 캘리포니아주에서 가장 오래된 교도소인 샌 퀜틴 주립 교도소 내 부지의 트레일러에서 감시를 받으며 생활하도록 조치가 취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여론은 그의 이름을 딴 '싱글턴 법안'의 통과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캘리포니아주에선 고문을 사용한 중범죄자의 조기 석방이 금해지며 형량도 최소 25년에서 종신형까지 부여되는 선고법이 탄생한다.
한편..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가석방 기간 만료 후, 싱글턴은 자신의 고향인 플로리다주 탬파에서의 거주를 허락받는다.
물론, 주민들이 항의와 더불어 누군가가 싱글턴 거주지 근처에서 사제 폭탄을 터뜨리는 등 극렬한 반대가 있었지만.
1990년, 싱글턴은 10달러 미만의 물품을 훔치다 2번이나 절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으며 징역 60일형을 선고받기도 한다.
싱글턴은 판사에게 자신이 정신이 온전치 않은 노인네라고 항변했고..
이후 한동안 별다른 문제 없이 지내는가 싶었다.
감옥에서 나온 지 10년째인, 1997년 2월 19일 이전까지는 말이다.
이날 싱글턴의 자택 페인트칠 보수를 위해 현장을 방문한 두 페인트공은 집안에서 들려오는 억눌린 듯한 신음과 외침을 듣는다.
이에 페인트공 하나가 차고 문을 통해 집안을 살폈고, 거기서 끔찍한 장면을 목도한다.
그 장면이란..
술 냄새가 사방으로 퍼진 거실에서 피투성이 나체 차림의 싱글턴이 몸을 구부려 소파에 쓰러져있는 나체의 여성 쪽으로 웅크리고 있던 것이었다.
페인트공은 본능적으로 도망쳐 나왔다가, 곧이어 용기를 내 주변의 빗자루 하나를 쥐어 들고선 재차 집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더욱 끔찍한 장면과 마주한다.
싱글턴이 쓰러져있는 여성을 목 조르더니 곧 닥치라고 외치며 머리와 목 부위로 주먹질을 가했고, 그때마다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끔찍한 소음이 발생했다.
너무도 공포스럽고 압도적인 상황에, 페인트공들은 현장에서 잠시 도망쳐 곧바로 경찰과 911에 신고를 한다.
그렇게..
경찰이 싱글턴의 집으로 출동한다.
싱글턴은 곳곳에 피가 묻은 채 술 냄새를 풍기며 여자 친구와 잠시 말다툼이 있었다고 변명했다.
허나, 경찰은 문틈 사이로 쓰러져있는 여성의 발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현장 확보와 함께 싱글턴을 체포한다.
그리하여..
싱글턴은 다시금 중범죄로 재판대에 서게 된다.
사건 현장 전체엔 피가 고여있다시피 했고, 여성은 얼굴과 가슴 그리고 배 부위에 칼로 총 7번을 찔리면서 심장과 간에 치명상을 입으며 잔인하게 살해됐다.
이 31세의 여성은 아직 어린 세 아이를 둔 엄마로, 가족을 부양하고자 성 노동에 종사하던 록산 헤이즈였으며, 사건 당일 싱글턴의 차량을 타고서 그의 자택으로 향했다가 변을 당하고 말았다.
한편..
싱글턴은 이번에도 자신의 행위에 대해 변명을 일삼으며 항변에 나섰다.
"그녀를 몇 달 전 만났던 적이 있습니다. 사건 당시 그녀를 집으로 데려 오기로 결정했을 땐 제가 우울한 상태였고 약물 과다 복용에다 술에 취해있었습니다. 일이 끝나고서 우리 둘 모두 나체 상태였고, 저는 그녀에게 집으로 가는 택시비로 10달러 건네주려고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 그녀가 제 지갑을 훔쳤고, 저는 그걸 되찾으려고 몸싸움을 벌였습니다.
그때 야채를 썰려고 거실 탁자 위에 놓아둔 칼을 그녀가 집어 들었습니다. 이후 약 30초 동안 몸싸움이 있었고, 제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겨 칼을 빼앗으려 시도할 때마다 그녀가 빼앗기지 않으려는 반동으로 스스로를 찔러버렸던 것 같습니다. 그녀가 소파에 쓰러지고서야 그녀가 다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두 팔로 저를 두르고는 안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그녀를 꼭 안아줬고 우리는 그렇게 포옹하고 있었습니다. 이어 그녀에게 병원에 가야 한다고 말하고선 부축하다가 이내 둘 다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저는 무릎이 나가버려 그대로 주저앉아 울면서 그녀의 얼굴을 문지르고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이어, 그의 변호인 측도 항변에 나섰다.
"우리는 래리 싱글턴이 록산 헤이즈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책임이 없다곤 단 한 순간도 말한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싱글턴은 피해자를 살해하려는 계획적인 의도를 지니고 있지 않았습니다. 일말의 악의도 증오도 없었습니다. 그는 각종 약물과 와인으로 만취 상태였으며, 사건은 우발적으로 발생했습니다. "
그리고 이에, 검사는 다음과 같이 반론했다.
"피고는 피해자가 상처를 입거나 피를 흘리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으며 신음을 내지도 울지도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나중엔 피해자가 안아주길 원했다고도 했죠. 피고의 말을 믿는다면 이건 꽤나 감동적인 순간이었을 겁니다. 그의 증언을 믿는다면, 그가 저지른 유일한 범죄는 자살을 방조한 것뿐이겠죠.
배심원 여러분, 록산 헤이즈는 간부터 척추까지 7인치 깊이의 상처를 입었습니다. 방어흔은 그녀의 손 부위 뼛속 깊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이 방어흔은 피고가 그녀 위에 서서 칼을 찔렀음을 방증합니다. 증거가 말하고 있습니다. 싱글턴이 의도적으로 그녀를 7번에 걸쳐 칼로 찔렀다는 것을요!"
그리고 마침내..
배심원단과 세상을 향해 싱글턴의 악행을 상기시키고자, 자신이 내내 지니고 있던 공포와 두려움과 다시 한번 맞서 싸우려 재판장을 찾은 증인이 증언대에 나섰다.
캘리포니아에서 플로리다까지 날아온 증인.
증언대에 선 그녀가 싱글턴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는 강간당했습니다. 팔이 잘려 나갔습니다. 그가 도끼로 그랬습니다. 그리곤 제가 죽게 내버려뒀죠."
다시, 그녀 메리 빈센트
"자유로워지고 싶지? 내가 그렇게 해줄게."
그 말과 동시에, 남자가 손에 들린 손도끼를 치켜들었다.
휘둘러진 손도끼가 메리의 왼쪽 팔꿈치 바로 아랫부분을 짓이기기 시작했다.
메리는 엄청난 고통에 순간 나자빠졌다가 반사적으로 싱글턴의 팔을 꽉 움켜쥐며 저항했다.
허나 몇 번의 휘둘림으로 메리의 왼쪽 손이 뭉개지듯 떼어져 나갔고, 이어 메리의 오른쪽 팔꿈치 바로 아래로 도끼가 휘둘려졌다. 신원 확인을 방지하고자 의도에서였는지, 싱글턴 본인의 가학성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는지 모를 도끼질이.
메리는 필사적으로 발길질을 하며 격렬하게 저항했으나, 곧이어 비명과 함께 머릿속에선 차라리 순순히 죽는 게 낫겠다는 유혹이 도래해왔다.
그리고..
너무도 극심한 고통에 지르던 비명을 채 끝내지도 못하고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의식을 잃고 말았다.
아니, 뜨거운 열감과 함께 피와 진물이 양 팔목으로 새어 나오며 세포마다 고통이 새겨지는 가운데에서도 메리는 모든 것을 느끼고 받아들이면서도 의식을 꺼뜨리지 않았다.
메리가 죽었다고 확신한 싱글턴이, 메리를 9m 높이의 가파른 협곡 아래 제방 배수관으로 마치 쓰레기를 투기하듯 던져버렸다.
그리곤 차량을 타고서 유유히 현장을 떠났다.
메리는 그곳에서 죽었어야 했다.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고 과다출혈로 비참한 최후레 잡아먹혔어야 했다.
하지만, 메리는 그러지 않았다.
저항하진 못했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그대로 눈을 감고서 편안해지고 싶었지만 몸을 일으켰다.
메리는 잘려진 양 팔목을 진흙더미 속으로 꽂듯이 반복해서 문질러댔다.
그렇게 상처를 덮고서 출혈을 막은 다음 두 다리로 일어서선 절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9m 높이의 협곡 위로 올라온 그녀는, 양팔을 번쩍 치켜올려 안의 혈액과 근육들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하고는 고속도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5km를.
그렇게 고속도로로 들어선 메리는 피범벅에 양 팔목이 잘린 나신 상태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으나..
처음 다가온 차량은 잠시 속도를 늦췄다가 놀래서 급가속과 함께 사라져갔다.
다행이도, 두 번째 나타난 신혼여행 중인 부부의 차량이 멈춰서선 메리를 태웠다.
메리는 싱글턴이 또 다른 피해자를 물색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리고 그를 꼭 붙잡아야 한다는 복수심에 자신을 경찰서로 데려가달라고 우겼다.
메리는 살아남았다.
아니, 불운과 악의로 범벅된 구렁텅이에서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메리는 경찰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는 와중에도 진술을 이어가며 아주 정확하고 상세한 몽타주가 나올 수 있었고, 그러한 몽타주가 공개되자마자 10일 만에 싱글턴의 한 이웃이 제보하면서 빠른 체포가 가능했다.
그리하여..
싱글턴은 납치 및 강간, 신체 상해와 살인 미수 혐의 등으로 재판대에 세워졌다.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채 회복이 될 리 만무했던 메리는 의수를 착용하고서 반년 만에 법정을 찾아 싱글턴을 응시하며 그의 죄를 증언했다.
의수로 싱글턴을 가리키며 증언을 마치고서 법정을 떠날 때, 가까운 거리에서 지나쳐가는 메리를 향해 싱글턴이 속삭이듯 내뱉었다.
"언젠가 마무리를 지어 주지. 내 남은 인생 전부가 걸리더라도."
싱글턴은 그렇게 감옥에 갇히게 됐다.
죗값에 모자른 짧은 시간이지만.
이어진 민사 재판에서 메리에게 256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으나, 싱글턴은 실업 상태에다 저축도 없어 끝내 보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싱글턴이 복역하는 동안..
메리는 끊임없이 싸워야했다.
자신의 정신과 싸워야했고, 놀랍고도 아이러니하게도 주변의 시선과 태도와도 싸워야했다.
사람들은 의수를 찬 피해자를 색안경 낀 시선으로 바라봤고, 학교 친구들에게 히치하이킹의 위험성을 알리면 누군가는 '나한텐 그런 일 없을 건데 뭐'라며 무례한 발언을 일삼기도 했다.
그렇게 수년에 걸쳐 메리의 정신적인 상처가 잘려져 나갔다.
정신과 의사도, 심리학자도, 피해자 단체 역시도 메리에게 어떠한 도움도 되질 않았다. 당시엔 세상 누구도 메리 같은 상황에 처한 이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질 몰랐다.
메리는 곧 학교를 그만두고서 자신의 오랜 친구들과도 교류를 끊으며 세상과 고립된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자신의 내면에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커다란 골에 스스로 기어들어 가지 않았다.
평생이 가도 그 깊숙한 골을 결코 메울 순 없으나, 그렇다고 남은 생 동안 그 골만 쳐다보는 건 거부했다.
의수를 착용하고서 자신이 손재주가 있단 걸 처음 깨달은 메리는 미술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성인이 된 이후엔 네바다 주립 대학교를 다니기도 한다.
그렇게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된 메리.
허나, 사건으로 입은 물리적 상처의 고통이 줄어들수록 마음속 증오와 두려움은 늘어만 갔다.
그러던 1998년..
싱글턴이 다시금 중범죄로 재판대에 서게 되고..
결백을 주장하는 싱글턴에 맞서..
그의 과거 악행을 다시금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고자 메리는 자신의 골을 차지하고 있던 트라우마와 정면을 맞닥뜨리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싱글턴 법안' 통과 당시 직접 참여하며 여론을 이끌었던 메리가 또 한번 의수를 치켜들어 싱글턴의 악행을 가리켰고..
싱글턴은 1급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이 내려지면서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리고 그 후
싱글턴은 2001년 12월 28일, 플로리다 교도소 병원에서 암으로 사망한다.
메리는 지방 검사실에서 사무원으로 일하던 당시 만난 수사관과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슬하에 두기도 하나, 여전히 마음속 골을 외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는 끝내 사람에 대한 불신감으로 이어지면서 메리는 친가 가족과도 내외함은 물론이고 남편과도 이혼하며, 오로지 자신의 두 아들만을 신뢰할 수 있는 처지가 된다.
악몽 때문에 놀라 침대에서 떨어지며 어깨가 탈골되고 갈비뼈와 코가 부러지는 날도 있었다.
그녀의 증오와 괴로움 그리고 슬픔은 서로가 서로를 붙잡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그러다 2009년, 다시금 사랑에 빠지며 두 번째 결혼을 올린 메리는 비로소 자신의 골과도 마주할 정서적 여유가 생긴다.
그렇다.
이제 당신이 깨달았듯..
이 이야기는 캘리포니아의 선고법을 바꾸게 한 살인마의 이야기 따위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자신의 마음에 생겨버린 골을 마주하진 않지만 외면하지도 않으며 결코 굴복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이렇게.
"그동안 저는 증오와 괴로움, 그리고 슬픔을 너무도 오랫동안 붙들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증오심을 버리는 일입니다. 용서하지 마세요. 잊어버리지 마세요. 하지만 증오심을 버리세요."
참조
<CBS News/U.S. Singleton Found Guilty Of Murder>
<Florida State University/Lawrence Singleton vs State of Florida>
<Key Peninsula News/The Heart of a Survivor: Blood, Courage, Triumph> Tina Mckail
<People/A Victim's Life Sentence> Diana Waggoner & Michelle Green
<Seattle Post-Intelligencer/A victim, a survivor, an artist> Regina Hackett
<SFGATE/Lawrence Singleton, despised rapist, dies / He chopped off teenager's arms in 1978> Michael Taylor
<Tampa Bay Times/Singleton guilty in stabbing murder> Sue Carl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