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건 넘는 범죄 사건 해결에 관여한 몽타주 화가

(Guinness World Records)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법의학 예술가'라는 칭호와 함께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된 사람이 있다.

로이스 깁슨이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1989년 이래 미국 휴스턴 경찰서 소속 법의학 예술가로 활동, 범죄 용의자 몽타주 스케치를 통해 2010년대 초반까지 1,266건의 유죄 판결에 조력했다.

피해자들 대부분은 찰나의 순간을 통해서만 범죄자의 얼굴을 목격한다. 이러한 범죄 특성상 피해자는 늘상 가해자에 대한 기억이 불안정하다.

로이스는 그런 피해자들과의 면담에서 언제나 다음의 질문을 건넨다.

"그 사람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던가요?"

거의 모든 피해자가 처음엔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토로하다가도, 표정(인상)을 기억해 내는 과정에서 윤곽과 디테일이 잡혀 나간다는 게 로이스의 오랜 경험이다.

피해자들은 실지론 가해자의 얼굴을 목격하고 인식했음에도 무의식적으로 묘사에 있어 소극적으로 된다는 것.

때문에, 로이스는 항시 얼굴을 맞대고 리액션하고 공감하면서 끌어내는 작업을 해왔다.

이게 바로 그녀의 성공 비결이다.

동시에..

여기엔 피해자에 대한 진실된 이해와 정의 구현에 대한 갈망이 본바탕을 이루고 있다.

(Guinness World Records)

197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21살이던 로이스는 고향을 떠나 이곳 아파트에서 홀로 거주하며 모델과 TV 댄서로 활동 중이었다.

그렇게 꾸준히 경력을 쌓아가던 그녀는, 이 무렵 연쇄강간범에게 피해를 당하며 간신히 살아남는다. 끔찍한 범행 과정에서 20여 분에 걸쳐 목이 졸려야 했고, 그로 인해 눈과 목에선 피가 흘러나왔을 정도였다.

신고 자체가 너무도 부끄러워 혼자 속앓이하며 심신이 무너져 내린 끝에 자살까지 기도했던 로이스.

그런 그녀가 사건으로부터 6주 후,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체험을 하게 된다.

그날은 어째서인지 차를 몰고서 집으로 복귀하던 중 다른 길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가파른 언덕을 올라 정상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경찰들이 어떤 남성을 구타하며 과격하게 체포하는 현장을 목격한다.

그 남자는 자신을 강간했던 그 사람이었다. 그는 다량의 코카인 혐의로 체포되고 있었던 것이다.

로이스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연신 환호성을 내지르며 생각했다.

'정의를 보았다! 이게 정의를 쟁취하는 기분이구나!'

그녀는 정의를 너무도 간절히 원한 끝에 죽을 뻔한 적이 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게 된다.

그렇게..

본디 그림에 재능이 있었던 로이스는, 로스앤젤레스를 떠나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의 텍사스 대학교에서 미술 학위를 취득한다.

그녀의 이상과 집념은 궤를 같이했다.

우등으로 졸업한 그녀는 거리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3,000장의 초상화를 그리며 기술을 연마했다. 그리곤 자신의 실력을 의심치 않을 정도가 된 그녀는, 이후 휴스턴으로 이사해 그곳의 경찰서로 다짜고짜 쳐들어간다.

20세기 중반 무렵부터 범죄 사건에 몽타주가 본격적으로 활용되긴 했으나 80년대 당시 시대상은 아직 법의학 예술가는 직종의 전문화는 이뤄지지 않던 시절로, 여전히 몽타주 스케치는 경찰 및 수사 기관에서 부차적인 역할로 수행되던 것이었다.

한편..

휴스턴 경찰서에 자원봉사 식으로 몽타주 화가를 자처했던 로이스는 첫 살인 사건에서부터 범인 체포에 도움을 줬고, 이후 7년간이나 경찰서에 프리랜서로 있으면서 전문적인 법의학 예술가 직종에 대한 거부감과 부정적 인식을 타파한 끝에 정규직으로 채용된다. (1986년엔 FBI 아카데미 법의학 예술가 과정을 이수)

그렇게..

로이스는 법의학 예술가 및 몽타주 화가라는 직종의 대중화와 전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하나로 꼽히게 된다.

그리고 해당 직종의 선구자이자 대가가 된 그녀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후임 양성을 위해 꾸준히 체력 관리를 하며(일주일에 6시간 웨이트 트레이닝) 노스웨스턴 대학교 등지에서 법의학 과정을 가르쳐왔다.

로이스는 말한다.

"제 바람은, 모든 곳에 법의학 예술가가 있어 범죄 피해자들이 도움을 받아 정의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로이스 깁슨의 대표적인 작업물들

(Galveston County Daily News)

1992년 작업물.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약물을 넣은 스크램블 에그를 먹여 의식을 잃게 만든 뒤 귀중품을 훔쳐 달아남. 1993년 체포됐는데, 범행 당시 실수로 자신이 만든 약을 넣은 달걀을 먹었다가 현장에서 지문을 채 지우지 못해 덜미가 잡힘 (Lois Gibson)

1998년 작업물. 5세 소녀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된 성폭행 가해자의 몽타주, 1999년 공공음주 혐의로 체포된 과정에서 게시판의 몽타주와 닮았다고 생각한 경찰관이 형사에게 연락하며 덜미가 잡힘 (Lois Gibson)

상가 주인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된 총기 강도의 몽타주. 가해자는 이후에도 소규모 상가를 대상으로 50건 이상의 범행을 저지르던 과정에서 어느 상가 주인에게 총상을 입어 중상을 당함. 병원으로 이송된 가해자를 본 한 형사가 해당 몽타주 속 인물과 흡사하다는 생각에 수사에 착수. 가해자는 총상으로 인해 사망했으며, 수사 과정에서 그가 범인이었음이 확인됨. 가해자의 정체는 전직 마피아 청부 살인범이었음 (Lois Gibson)

1990년, 8세 소녀를 납치해 들판에서 성폭행 후 목을 거의 절단하다시피 했던 가해자. 소녀는 14시간 동안 방치된 끝에 발견되며 병원으로 이송돼 생존. 소녀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된 몽타주로, 해당 사건에서 남은 DNA와 일치하는 사건이 2009년경 벌어지면서 체포 (Lois Gibson)

임신 7개월 차인 시각장애 여성을 성폭행한 가해자. 가해자는 피해자가 장애가 있기에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 범행을 저지름. 사건 당시 버스 운전사가 피해자를 따라 버스에서 내리던 가해자를 목격했고 이를 토대로 몽타주를 작성. 해당 몽타주를 본 현장 부근 식료품점 매니저가 해고 예정이던 가해자를 알아보면서 체포. 당시 버스 운전사의 증언에 너무도 비협조적이라 몽타주의 완성도가 좋지 않았다고 술회 (Lois Gibson)

1996년 작업물. 상단 좌측의 아기 사진은 의뢰자가 오래전 헤어진 남동생. 당시 2세였으며, 이를 토대로 현재 연령인 32세의 몽타주로 작업. 해당 몽타주는 미국의 인기 범죄 다큐 프로그램에 공개되면서 1996년 크리스마스에 남매가 재회할 수 있었음. 하단 좌측의 몽타주는 기존 몽타주에 헤어스타일과 콧수염 변화를 줘, 실지 모습과 얼마나 흡사한지를 비교한 사진 (Lois Gibson)

신원 미상의 살인 사건 피해자 두개골 상부만을 통해 작업한 몽타주. 3년 후 DNA로 피해자의 신원이 확인됨 (Lois Gibson)

살인 사건 피해자의 두개골을 통해 작업한 몽타주. 이후 DNA 대조로 피해자 신원이 확인됨 (Lois Gibson)

신원 미상의 살인 사건 피해자 두개골을 통한 몽타주 작업물. 해당 몽타주가 뉴스에 공개된 직후 친척들에 의해 제보가 이뤄지면서 신원이 확인됨. 작업 과정에 있어서 눈썹 사이 미간의 상처가 다소 아문 것을 신경 써서 묘사했다고 함 (Lois Gibson)

신원 미상의 살인 사건 피해자 두개골을 통한 몽타주 작업물. 이후 DNA 대조로 신원이 확인됨. 작업 과정에서 코끝이 작고 둥근 형태일 것이라 추정했으며 헤어스타일도 정확히 묘사 (Lois Gibson)

버려진 폐가에서 발견된 살인 사건 피해자의 두개골을 통한 몽타주 작업물. 수년 후 DNA 대조로 신원이 확인됨 (Lois Gibson)

신원 미상의 살인 사건 피해자 두개골을 통한 몽타주 작업물. 해당 몽타주가 뉴스로 방영된 직후 피해자의 가족이 신원 확인을 요청. DNA 대조를 통해 신원이 확인됨 (Lois Gibson)

로이스 깁슨이 기억에 남는 몽타주로 꼽은 사건. 2007년경 살해된 채 커다란 파란색 플라스틱 다용도 상자에 비닐로 담긴 부패한 여아의 시신 몽타주 작업물. 몽타주 공개 3일 만에 자신의 손녀일지 모른다며 신고가 들어왔고, 그 말대로 해당 여아는 부모에 의해 학대당한 후 유기된 2세 라일리 소이어스였음. 해당 사건은 전국적인 공분을 샀고, 이후 체포된 부모는 모두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판결받음 (Ask a Forensic Artist)

참조

<ABC News/Forensic Artist Seeks Justice For Others After Surviving Rape>
<Ask a Forensic Artist/Forensic Artist Q&A with Artist/Instructor Lois Gibson>
<Guinness World Records/The world's most successful forensic artist: How Lois Gibson's incredible sketches have helped solve thousands of crimes> Kristen Stephenson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