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실존했던 여성 뱀파이어 레나
19세기 후반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여성 뱀파이어!

19세기 후반, 미국 로드 아일랜드주 워싱턴 카운티의 변경 마을인 엑서터에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엑서터 마을은 '버려진 엑서터'라고 불릴 정도로 황폐화되고 있었다.
자급자족의 농업 공동체였던 이곳은 사방이 바위투성이의 비옥하지 못한 토양, 남북전쟁의 여파, 젊은이들의 이주로 인해 가뜩이나 소촌이었던 이곳은 주민 수가 절반 이하(961명)로 급감한다.
그리고 바로 이 무렵이었다.
1882년 겨울, 마을의 동쪽 끝자락에서 작은 농가를 일구던 농부 조지 브라운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아내와 첫째 딸(20)이 병치레를 하더니 극심한 고통 속에서 세상을 떠나고 만 것.
둘은 날이 갈수록 기력이 쇠한 채 앙상하게 말라갔고 이마엔 땀방울 맺혔으며, 뺨은 진홍으로 물어가는 가운데 눈은 움푹 꺼져선 가쁜 숨을 연신 불쾌하게 내뱉어갔다.
마치, 무언가가 그녀들의 생명과 피를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조지의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10년 후인 1892년 1월, 둘째 딸인 19세의 머시 브라운양이 동일한 증상을 보이더니 손써볼 틈 없이 병사한 것.

그리고, 조지의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하나 남은 막내 아들 에드윈마저 예의 '그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건장하고 체격 좋던 10대 에드윈이 급작스레 시름시름 앓아가자, 마을 주민들은 저마다 소리 높여 주장하기 시작한다.
"거, 사악한 무언가가 브라운씨네 가족을 노리고서 생명력을 빨아먹는 거 아냐?"
세상 어느 바닥이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이런 외딴 지역은 여론이 곧 진실이 되는 법이다.
1720-30년대 이래 서구권에서 본격적으로 파생되던 '뱀파이어 신화'는 이후 미국 시골 중의 시골 마을에서조차 통용될 정도로 대중적인 문화가 됐고, 엑서터 마을의 주민들은 의학이 아닌 민간 신앙에 의지하기로 뜻을 모은다.
하여..
주민들이 조지에게 찾아와 과거 사망한 가족들의 무덤을 확인해 보자고 설득한다.
조지의 아내, 첫째 딸, 둘째 딸, 이 셋 중에서 누군가가 가족의 피와 살을 빨아먹던 원흉이며 죽음을 위장하고선 밤마다 묘지에서 나온다는 믿음에서였다.

조지는 주민들의 의견에 동조한다.
조지 역시 차례로 덮쳐오는 비극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것인지, 혹은 언제 불행이 옮겨붙을지 모른다고 걱정하던 주민들의 광기가 그를 굴복시켰던 것인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1892년 3월 17일 아침, 조지는 참석을 거부한 채 마을 주민 중 선별된 남자 몇몇이 장비를 챙겨 무덤가로 향한다.
이 자리엔 브라운 가족의 주치의와 신문 기자도 참석했다.
먼저, 조지의 아내 메리 엘리자의 무덤이 파헤쳐졌다.
그녀의 유해는 뼈만 남다시피 한 상태였다.
다음으로, 첫째 딸인 메리 올리브의 무덤이 파헤쳐졌다.
그녀의 유해는 뼈만 남다시피 한 상태였다.
마지막으로, 둘째 딸인 머시 레나 브라운의 무덤이 파헤쳐졌다.
관뚜껑이 열리고..
그자리의 사람들 모두 일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레나는 마치 방금 잠에 든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의 몸은 부패하지 않았으며 부드러운 얼굴 피붓결로 선홍의 혈색이 덧칠된 것만 같았다.
심지어, 머리카락과 손톱도 자란 것처럼 보였다.
주민들은 민간 신앙에서 말해지는 전통 법에 따라 레나의 심장과 간을 꺼낸다.
그렇게 꺼낸 심장을 가르자 엉켜 붙은 피가 흘러내렸다.
주민들은 심장과 간을 불태워 가루로 만들고는 그러한 가루와 액체를 혼합해 강장제를 만들었다.
브라운 가문의 하나뿐인 아들 에드윈을 치료하기 위해서.

'머시 레나 브라운 뱀파이어 소동극'은 곧바로 언론과 학술지 등을 통해 대서특필되며 해외로까지 전파된다.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의 '뱀파이어 신화'가 외딴 시골 마을 사람들의 광기를 자극했다고 해석하자, 영국의 언론에선 그게 미국의 문제지 어째서 영국의 민속 신화가 문제인 것이냐라고 반박하는 일도 있었다.
한편, 미국 내 언론의 주된 기조는 '엑서터 마을 사람들의 무지와 미신에 대한 추종이 빚은 촌극'이었다.
허나, 과연 그러한 평가가 무조건적으로 옳은 것일까?

당시 1800년대는 '소모증'이라는 질병이 만연하며 미 북동부 지역의 사망 원인 1순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이 소모증은 1882년 결핵균의 발견으로 인해 그 정체가 밝혀졌으나, 당연히 미국의 시골 지역 사람들의 인식에까진 폭넓게 자리할 수가 없었다.
결핵의 치료약이 등장한 것은 1940년대에서나이고, 당시만 해도 그저 물에 설탕을 타 마시는 처방 정도만 내려질 정도였다.
브라운 가족의 연이은 사망 무렵에도 주치의는 소모증(결핵)이라 병명을 진단했다. 레나의 무덤이 파헤쳐지던 순간에도 그녀의 시신 속 폐를 확인한 의사는 결핵균에 잠식된 상태임을 재차 강조했다.
또, 엄마와 첫째 딸은 이미 매장된 지 10년의 세월이 있었으나 레나는 한겨울에 묻혀 2개월의 시간이 흘렀을 뿐이었다.
허나, 집단 패닉에 빠진 마을 사람들을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비단 엑서터 마을 사람들뿐만 아니라..
당시 소모증, 아니, 갖가지 질병들은 저마다의 맹목적이고 야만적인 미신들에 결부된 채 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한편..
강장제를 먹은 에드윈은 2달이 채 되지 않아 숨지고 만다.
미국 내에선 브라운 가족에게 덮친 불행에 대해 많은 기사가 발행됐고..
마침 미국을 순회 중이던 런던의 극단 무대감독이자 신예 소설가 하나가 그러한 기사 하나를 접하고서 스크랩한다.
이 아일랜드의 작가 브램 스토커는 그로부터 1년 후, 불세출의 고딕 소설 걸작 <드라큘라>를 출간한다.
해당 소설 <드라큘라>에는 드라큘라 세력의 주요 등장인물로 루시(Lucy)라는 여성 드라큘라 등장하는데, 그녀가 19세의 나이로 병사하고서부터 마을에선 주민 피해가 접수된다.
호사가들은, 이 Lucy가 19세의 나이로 사망한 후 뱀파이어로 몰렸던 머시 레나(Mercy Lena)에서 따온 것이 아니겠느냐고 이야기한다.
참조
<Smithsonian Magazine/The Great New England Vampire Panic> Abigail Tuc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