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 리그 전설의 홈런 타자를 삼진 시킨 여고생
17세 여고생의 좌완 사이드암 싱커볼!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MLB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아이콘을 꼽으라면..
분명 베이브 루스가 1위를 차지할 것이다.
그는 투수로 한 시즌 23승을 거둔 바가 있으며 타자로는 60개의 홈런과 .378의 타율을 기록한 바가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야구 선수로 손꼽히기도 한 이 '예고 홈런'의 홈런왕 베이브 루스.
헌데..
이런 루스의 전성기 시절 경기에서 그를 맥 없이 삼진당하게 만든 투수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아니, 그녀는 바로 여고생이었다.

1931년 4월 2일.
미국 테네시주 채터누가의 야구장에서 열린 친선 시합에 약 4,000명의 관중이 모였다.
상대는 그 시절 야구계에서 가장 강하고 유명했던 뉴욕 양키스. 그리고 양키스 타선의 중심에는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이 있었다. (루 게릭은 MLB 역사상 최초의 영구결번자이자 통산 타율 .340)
헌데 이날 두 선수가 마주한 투수는..
마이너 리그팀 채터누가 룩아웃츠의 17세 여성 재키 미첼이었다.
경기는 1회부터 룩아웃츠 선발투수 클라이드 바풋의 난조로 시작됐다.
양키스의 첫 타자가 2루타를 치고 다음 타자가 적시타를 날린 뒤 룩아웃츠 벤치는 투수 교체를 택한다.
그렇게 마운드에 오른 사람이 재키 미첼이었다.
여담으로..
당시는 여성이 남성 프로야구팀과 계약하는 것에 대한 특정한 제재가 없었는데, 1898년에도 20대 초반의 리지 알링턴이 주당 지급으로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하며 여름 내내 전국 각지에서 열린 친선 경기에서 투수와 내야수로 활약한 바가 있다.
그녀는 첫 경기에서 9회 말에 등판해 만루 상황에서 삼자 범퇴를 잡을 정도로 집중력과 기술이 좋았다.
자, 그래서 미국 프로야구 역사상 두 번째로 여성인 재키 미첼이 마운드에 올라섰고..
타석에는 무시무시한 홈런 괴물 베이브 루스가 배트를 쥔 채 그녀를 노려봤다.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면..

초구 볼을 지켜본 루스는 이후 두 공에서 배트가 헛돌았다.
그리고 네 번째 공.
재키 미첼의 공이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을 아슬하게 통과하며 주심이 삼진을 선언한다.
루킹 삼진을 당한 베이브 루스는 방망이를 내던지듯 내려놓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다음 타자인 4번 타자 루 게릭.
그 역시 재키 미첼의 공 세 개에 연달아 헛스윙하며 삼진을 당한다.
이후 재키 미첼은 5번 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낸 뒤 교체됐다.
이날 시합에서 양키스는 결국 14 대 4로 이겼으나, 정작 사람들의 뇌리에 새겨진 건 MLB 역대 최강의 거포 라인을 연달아 삼진으로 잡은 17세 소녀의 이름이었다.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첼은 걷는 법을 배울 무렵 아버지 손에 이끌려 야구장을 전전했다.
이런 야구광인 아버지에 이어..
전승에 따르면..
옆집에는 더한 야구광이 살고 있었는데, 그게 바로 대지 밴스였다. 대지 밴스는 MLB 내셔널 리그에서 7시즌 연속 삼진 부문 1위라는 깨지지 않는 기록을 세운 전설적인 투수였다.
그런 대지 밴스가 미첼에게 '드롭볼'을 전수해 줬는데, 이 드롭볼은 오늘날의 싱커 또는 큰 낙차의 커브에 가까웠다.
그렇게 성장한 미첼은 가족과 함께 채터누가 지역으로 이주한 뒤 현지 야구학교에서 실력을 드러낸다.
바로 여기서, 그녀는 채터누가 룩아웃츠의 구단주 조 엥겔의 눈에 포착된다.
조 엥겔은 야구계에서 손꼽히는 쇼맨이었다.
유격수를 칠면조로 교체하고는 그 칠면조를 요리해 기자들에게 대접하는가 하면, 추첨을 통해 팬에게 집을 제공하거나 경기 전 코끼리 사냥 대회를 여는 등 기상천외한 홍보를 일삼던 사람이었다.
대공황기의 마이너리그 구단에게 관중 유치는 생존 문제였기에 당시 스포츠팀들의 특별 행사 및 전시회는 필수사항이기도 했다.
한편..
조 엥겔은 양키스와의 시범경기를 잡은 뒤 미첼과 계약했고, 17세 소녀가 베이브 루스와 맞붙는다는 소식이 순식간에 전국의 관심사가 됐다.
물론, 언론과 대중은 그녀의 공보다 외모와 성별을 먼저 소비했다.
그녀는 커다란 유니폼을 입고 카메라 앞에서 화장을 고치는 장면까지 연출해야 했다.

그렇게 MLB 역사상 최강의 거포 라인을 삼진으로 틀어막은 후 마운드에서 내려간 미첼.
여기서 남는 의문은 단연코 다음과 같겠다.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은 정말로 미첼의 공을 치지 못했던 것일까?"
과연, 진검승부였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짜여진 각본이었을까.
조 엥겔의 과거 홍보 행적, 원래 경기가 만우절인 4월 1일에 예정돼 있었다가 우천으로 하루 연기된 점, 그리고 일부 당시 보도가 루스와 게릭의 타석을 마치 '역할 수행'처럼 묘사한 점은 연출설에 힘을 싣는다.
반면에..
양키스 선수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갈렸다는 점, 일부는 감독 조 매카시가 그런 연출을 용인할 사람이 아니었다고 증언한 점으로 인해 의견이 분분하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미첼이 좌완인 데다 사이드암이었으며, 드롭볼을 적절히 섞어 던졌다면 실제 삼진을 당한 것일 수 있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왜냐하면..
처음 맞이하는 투수가 좌완 사이드암 자세에서 오늘날의 싱커처럼 낮게 가라앉는 변화구를 섞어 뿌려댄다면, 좌타자였던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의 입장에선 분명 낯선 경험인 데다 첫 타석에서 파악이 까다로웠을 것이기 때문.
보통 야구에서 투수와 타자 간의 첫 대결은 절대적으로 타자 측이 불리하다. 이른바 투수의 구질에 대한 데이터 베이스가 전무한 상태이니까 말이다.
따라서, 아무리 전설의 거포 라인이었다 하더라도..
십 대 소녀의 겉모습에서 전심전력이 발휘되지 않은 상태로 난데없이 좌완 사이드암의 드롭 볼과 직구가 뒤섞여 들이밀어졌다면 '진검승부' 가설이 불가능하지만도 않을 수 있겠다.
물론, 연출 내지는 어느 정도 상황에 순응하던 와중 실지로 좌완 사이드암 싱커볼 투수의 까다로운 공을 맞이하며 삼진을 당했을 가능성도 있겠고 말이다.
경기 직후 미첼의 룩아웃츠 계약은 사실상 끝이났다.
오랫동안 야구 커미셔너 케네소 마운틴 랜디스가 '여성에게 야구는 지나치게 힘든 운동'이라는 이유로 계약을 무효화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다.
허나 이 부분도 확정된 사실로 쓰기 어렵다.
계약이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종료됐는지, 애초에 단발성 흥행 계약에 가까웠는지에 대해서는 자료 해석이 엇갈린다. 메이저리그 공식 역사 담당자인 존 손 역시 커미셔너가 마이너리그 계약에 직접 개입했을 가능성에는 의문을 제기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미첼이 그 뒤에도 야구를 계속했다는 점이다.
그녀는 여러 팀을 거쳐 1933년부터는 수염 난 선수들로 유명했던 순회 야구단 하우스 오브 데이비드에서도 뛰었다.
한 경기에서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등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순회 야구단의 과도한 흥행 연출 요청에 분노와 염증을 느끼며 결국 1937년 야구를 완전히 그만둔다.
이후 아버지의 안경 사업을 돕던 그녀는 1943년 올아메리칸 걸스 프로페셔널 베이스볼 리그라는 미국 여자 프로 야구 리그 창설 무렵엔 은퇴 복귀 요청에도 거부한다.
그리고 1987년 향년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불멸의 기록을 남기고서.

<MLB.com/Here's how teen girl Jackie Mitchell K'd Ruth and Gehrig to become a legend> Kelsie Heneghan
<MiLB.com/Jackie Mitchell: The Girl Who Maybe Struck out “Murderers’ Row”> Erin Donahue
<Smithsonian Magazine/The Woman Who (Maybe) Struck Out Babe Ruth and Lou Gehrig> Tony Horwitz
<Society for American Baseball Research/The Mystery of Jackie Mitchell and Babe Ruth> Leslie He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