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을 역사 속 이야기들
'당신이 몰랐을' 시리즈!
셀카
코닥은 1800년대 후반부터 아마추어 사진가들을 공략하며 휴대용 사진기 시장에 뛰어든다.
1914년,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녀였던 아나스타샤는 코닥의 브라우니 시리즈 사진기를 손에 넣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찍으려고 궁리하던 끝에 거울을 이용한 셀카 방법을 개발한다.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아있는 인류 최초의 거울 셀카였다.
셀카가 마음에 든 아나스타샤는 친구에게 사진을 동봉한 편지를 보낸다.
다음과 같은 감상문과 함께.
"거울 보면서 나를 찍은 거야. 손 떨려서 너무 힘들었어."
잘 있거라
사진 속 청년은 전장에서 부상을 당해 밀라노의 육군병원에 입원 중이다. 제1차 세계 대전이던 1918년 7월, 의용병으로 활동하던 중 이탈리아 전선에서 박격포 파편에 중상을 입어서다.
청년은 반년간의 요양 생활에서 7살 연상의 미국인 간호사에게 열병 같은 사랑을 앓는다.
청년은 매일같이 사랑을 전하며 결혼과 미래를 속삭였다. 이에 처음엔 청년을 귀엽게만 여기던 간호사도 조금씩 마음을 열어갔다.
허나 결국 이뤄지지 않은 사랑에 청년은 크게 절망했고, 10년 후에 자신이 겪은 전쟁과 사랑에 대한 경험을 모델로 장편 소설을 낸다.
이 소설로 청년은 단박에 미국 문학계의 거물이 된다.
소설의 제목은 <무기여 잘 있거라>였다.
'그'의 소나타
18세기경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로 명성을 떨쳤던 주세페 타르티니. 그의 대표작과 관련한 흥미로운 일화가 존재한다.
어느 날 꿈에서 악마를 만나게 된 타르티니. 그는 악마도 음악에 조예가 있을지 궁금해 자신의 바이올린을 쥐여줬다. 그러자 악마가 연주를 선보였다.
황홀한 기분으로 잠에서 깬 타르티니는 곧바로 그 음악을 악보로 옮겼다. 그리고는 '악마의 트릴'이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이후 <악마의 트릴>은 그의 대표곡으로 역사에 널리 알려지는 소나타가 된다. 허나 타르티니는 오리지널을 겨우 흉내만 낸 수준이라며 몹시 괴로워했다고 전해진다.
저는 커서
이 귀엽게만 보이는 꼬마 아이는 장차 세상을 뒤집어 놓으며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가 된다.
아이는 히피이자 68세대인 모친의 영향 아래 사회 인습에서 자유롭고 반권력 성향으로 자라났다. 13살엔 처음 접한 컴퓨터를 통해 보안을 뚫는 일에 열중한다.
아이큐가 146을 상회할 정도로 좋은 두뇌 회전 그리고 컴퓨터광이라는 특성을 살려 10대 후반엔 군대, 은행, 기업들의 네트워크에 침입해 자료를 훔쳐내는 등 악명을 떨친다.
이후 30대 중반이 된 남자는 권력기관의 기밀을 공개하는 프로젝트를 만든다.
위키리크스의 시작이었다.
원산지
사람들은 위키리크스가 내부 폭로자들로부터 건네받은 기밀자료만을 폭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허나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사실 위키리크스는 정식으로 오픈하기 이전부터 100만 건이 넘는 세계 각국의 기밀문서를 보유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
2000년대 초반, 세계 각국 정부에선 문건의 디지털화가 이미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문제는, 보안 의식 미비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네트워크 보안 체계였다. 미국 국방성이나 나사 같은 곳의 보안망도 엉망일 정도였다. 그래서 당시만 해도 기본적인 크래킹 프로그램으로 네트워크 침입이 가능했을 정도였다.
위키리크스는 바로 이 무렵 유출된 기밀자료들을 손에 넣은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손에 넣었던 것일까?
인터넷의 심연 중 가장 깊은 곳에 토르라는 것이 존재한다. 미국 해군 연구소에서 개발한 토르는 현존 최고 수준의 익명 인터넷 서비스 프로그램이다. 사용자가 토르를 통해 접속하면 다량의 서버들을 우회하며 정보 요청을 하기 때문에 자신의 흔적을 완벽에 가깝게 은폐할 수가 있다.
토르 내의 모든 서버에서는 자료 교환이 암호화 상태로 이루어지며 서버의 시스템 관리자조차 자료의 출처와 수취인을 파악할 수가 없다. 관리자가 사용자에게 액세스하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토르 내의 서버에서는 일반적으로 접할 수 없는 자료들이 오가고 있었다.
허나 토르 시스템에는 하나 맹점이 존재했다. 서버 운영자는 운영하는 서버 내의 자료를 읽기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착안한 위키리크스의 활동가중 하나가 뜰채를 펼쳐놨고, 2007년 1월 6일 마침내 대어가 걸려든다. 대어의 정체는, 중국 정보기관을 위시한 타 국가 정보기관들이 해킹한 세계 각국 정부 기관의 기밀문서였다.
그 수만 해도 100만 건이 순식간에 넘어갈 정도였다. 당시 있었던 일을 두고서 위키리크스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수중에 들어온 자료들의 정체에 대해 대부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자료 분량이 테라바이트를 넘어서면서는 아예 저장을 포기했습니다."
손이 이래가
연금술과 오컬트가 한창이던 1700년대 유럽에선 전설로 떠돌던 물건이 있었다. 이 물건의 이름은, 그 이름도 찬란한 '영광의 손'이었다.
영광의 손에는 크게 두 가지 능력이 있었다. 하나는 사람이나 동물을 향해 겨누면 움직임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떤 잠긴 문이든 열 수가 있는 능력이었다.
영광의 손 제작법으론 다양한 방식이 구전된다. 레시피에서 다소간의 차이가 존재하며, 기본적인 틀은 다음과 같다.
먼저 교수형 당한 흉악범의 손을 절단한 뒤 향신료와 여러 기상천외한 재료들로 보름에서 한 달 정도 버무리고는, 100일간 햇볕에 말리거나 혹은 하루 동안 교회 문에 매단다.
중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과학과 의학이 진보해 왔건만, 놀랍게도 수면에 대한 연구는 그 시작부터가 아주 느렸다.
수면에 대한 연구는 1950년대 시카고 대학원생이었던 유진 아세린스키로부터 시작됐다. 사진의 남자가 바로 그 무렵의 아세린스키이다.
아세린스키는 수면 중인 피실험자의 두피에 전극을 부착해, 수면 중 뇌의 활동과 안구 운동 그리고 생리학적 변화를 연구했다. 이 과정에서 뇌와 안구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단계를 발견하는데, 이 단계가 바로 꿈에 빠져드는 렘수면 단계이다.
그렇게 현대 수면 연구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아세린스키는, 77세의 나이로 운전 도중 나무와 충돌하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사고 원인으론, 졸음운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추락하는 것은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인간은 하늘을 날기 위해 숱한 노력을 쏟아왔다. 특히, 1890년대 후반부터는 유인동력비행을 위한 본격적인 시도가 이어졌다.
허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고, 이에 <뉴욕 타임즈>는 1903년 10월 9일 자 기사에 다음과 같은 논평을 내놓는다.
"실제로 날 수 있는 비행기로의 발전은 100만 년에서 1,000만 년 동안 수학자 및 기계공들의 꾸준한 노력이 있어야겠다."
이러한 기사가 나오고서 69일 후인 1903년 12월 17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키티호크에서 라이트 형제가 인류 최초의 유인동력비행이라는 업적을 달성한다. 형제가 날린 비행기는 직경 6.4m, 폭 12.3m로 59초 동안 259.6m를 비행했다.
이같은 인간의 끝없는 열망이 66년 후 사람을 달에 보내게 된다.
이종격투기
인류 역사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흥행력이 높은 대회로 월드컵이 꼽힌다. 그리고 이 월드컵 이전엔 콜로세움이 있었다.
콜로세움은 서기 79년에 완공된 고대 로마제국 시대의 원형 경기장으로 수용 인원이 최대 8만 명이나 됐다.
콜로세움에선 검투사들의 투기 경기가 가장 유행이었다. 검투사는 주로 범죄자, 전쟁포로, 노예 출신이었으며 흥행을 위해 검투사 훈련소에서 훈련이 이뤄졌다.
검투사는 같은 검투사와 전투를 벌이거나 아니면 맹수와 사투를 치르곤 했다. 이러한 잔악한 흥행 쇼는 당대 최고의 버라이어티였다.
영국의 역사가와 고대 로마 학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마지막으로 기록된 결투가 서기 435년이며 이때까지의 총 사망자는 300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반짝반짝 작은별
역사상 가장 유명한 발명가이자 사업가인 토머스 에디슨. 그는 생전 1,000개가 넘는 특허를 등록했으며 미국의 대기업 제너럴 일렉트릭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1890년에 야심 차게 출시한 제품이 있으니, 바로 사진 속 인형이다.
축음기 발명가이기도 한 에디슨은 인형 안에 축음기를 내장해 말하는 인형을 만들었다. 이 인형은 판매 당시 지금의 한화 가치로 400-500달러에 달할 만큼 고급 인형이었는데, 겨우 500개 정도만 판매되고는 몇 주 만에 시장에서 철수해야 했다.
여러 기술적 결함들이 그 이유로 꼽혔다. 허나 가장 큰 이유로는, 사람들이 인형의 음성이 기괴하고 소름 끼친다고 반응했기 때문이다.
가라사대
게일로드 페리는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우완 투수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양대 리그에서 사이 영 상을 수상한 최초의 투수이기도 하다.
이런 그에게도 취약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른 투수들과 마찬가지로 타격이었다.
메이저리그 신인 시절이던 1962년, 그가 소속된 자이언츠의 앨빈 다크 감독은 페리의 타격폼을 두고서 다음과 같이 한탄한다.
"저 친구가 홈런을 치기 전에 사람이 먼저 달에 가겠네."
7년 후인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다.
그로부터 30분 후, 타격에 들어선 페리가 자신의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홈런을 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