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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사진

자신의 아이들을 판다는 푯말!

이상한 옴니버스
이상한 옴니버스
- 17분 걸림 -

(Bettmann/CORBIS)

비극적이게도,

그리고 망각적이게도,

인생에서 모든 아이들이 전부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여기, '20세기 미국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진'이 있다.

네 아이와 엄마 앞으로 순백의 표지판이 꽂혀있는.

(Bettmann/CORBIS)

1948년 8월 4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지역 신문인 <Chicago Herald-American>에 끔찍한 사진이 실린다.

다음의 설명과 함께.

"이들은 경매대에 오른 아이들이다. 이 작은 아이들은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사는 레이 샬리푸 부부의 자녀들이다. 40세인 레이와 24세인 아내 루실은 입에 풀칠하고 지붕 아래서 살아가고자 오랜 세월을 필사적으로 싸워왔으나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일자리를 잃고서 거의 텅 비어 있는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고, 부부는 가슴 아픈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사진에는 계단에 앉아 놀란 듯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아이들과 흐느끼는 그 어머니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한편..

이 충격적인 사진은 곧 미국 전역의 신문사들에 실리며 큰 반향을 일으킨다.

특히, 사진의 무대인 시카고에서는 많은 지역 주민들이 일자리와 주거지 그리고 가족 부양에 도움을 주고자 나섰다.

허나..

이후 사진 속 아이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1948년 8월 5일, 미국 인디애나주 포터군의 지역 신문 1면에 실린 해당 사진. Vidette Times)

알려진 바에 의하면..

석탄 트럭 운전사였던 남편 레이(40세)는 실직 상태였으며, 아내인 루실(24)은 다섯째 아이를 임신 중인 상태였다.

루실과 네 아이의 구도는 사진작가의 의도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루실은 흐느끼고 있던 것이 아니라 부끄러움에 고개를 돌려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는 것이 정설이며, 네 아이는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포즈를 취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훗날 사진 속 아이 일부는 어머니가 촬영의 대가로 돈을 받았노라 주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진작가는 자신의 아이들을 판다는 푯말을 발견하고선 보다 극적인(?) 연출을 위해 루실에게 협상안(?)을 권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사진 구도 자체에서부터도 사전 연출이 있었음을 알 수 있음)

또한, 푯말과 푯말의 글씨체가 다소 인위적이고 전문적이기에 그 자체도 연출이 있었다는 의혹도 존재한다.

대공황 시절에서부터 극빈층 사이에선 친척 및 지인에게 아이를 입양 보내는 사례들이 왕왕 있어왔으나, 이처럼 대놓고 아이를 금전적으로 판매한다는 푯말 홍보는 법적으로도 문제의 소지가 컸기에 케이스가 전무했기 때문.

확실한 건..

부부가 아이를 입양 보내려 했다는 것과(이러한 불법적인 입양에선 예로부터 지금까지 당연히 금전이 오갔음), 사진작가의 의도(?)대로 이 사진 하나가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다는 것이겠다.

'소시민 가정에서 벌어진 비극'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해당 사진은, 세계 최강국으로 일컬어지는 미국에게 있어 자국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진 중 하나로 불명예를 기록하게 된다.

이렇듯 미국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진이지만, 사진 속 인물들에 대한 자세한 후속 보도가 이뤄진 것은 그로부터 65년 후인 2013년에서였다.

사진이 촬영된 1948년 당시엔, 샬리푸 부부가 집세를 마련하지 못해 주거지에서 쫓겨날 처지인 데다 입에 풀칠조차 하기 힘들었다고 알려졌었다. 그래서 가족의 생존을 위해 하릴없이 아이들을 입양 보내고자 했었다는 것이 당시의 설명이었다.

그렇다면, 1948년 미국의 경제 상황은 어떠했던 것일까?

1929년 뉴욕 증권시장의 붕괴로 인해 10년간 대공황이 미국 전역을 지배했다. 그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전쟁 물자 생산 확대 등으로 인해 회복세를 탔고, 전쟁 직후부터는 전후 호황기가 시작되며 급격한 GDP 성장이 뒤따랐다.

따라서 사진을 마주한 우리가 으레 '대공황 시기에 찍힌 것이구만'라고 선입견을 가질 수 있는 것과 달리, 당시 미국 경제는 전반적으로 그레이트했다고 볼 수 있다.

허나, 어느 시기이든 불평등이나 격차가 존재하듯..

당시 국가 경제가 거시적으로 좋아진 것은 확연했으나 전후 군수 물자 수요가 급감하면서, 전쟁 동안 군수&제조업 분야 활성화를 누렸던 시카고와 같은 도시에서도 일시적인 일자리 문제 및 범죄 이력으로 인한 실직으로 극빈층 또는 노숙 위기에 내몰린 이들도 적지 않았다.

사진이 미국 전역으로 전파되면서 많은 시카고 지역 주민들이 일자리와 가족 부양에 도움을 주겠노라 나섰다고 한다.

정확히 어떤 그리고 실지로 도움이 이뤄졌는지도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샬리푸 부부는 그로부터 2년 정도를 버티고는 다섯 아이 모두를 내보냈다고 한다.

아니, '버티고는'은 잘못된 표현일 수 있겠다.

남편인 레이는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으나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가 행방이 묘연하다고 알려졌다. 기록에 의하면 그에겐 범죄 기록이 있었고, 그로 인해 실직 상태가 이어지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아내인 루실은 1949년에 다섯째 아이인 베드포드를 출산했으며 정부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헌데..

1950년 여름, 루실이 사귀던 동거남이 그녀의 아이들을 원치 않아 했고..

이에 루실은 친자식 다섯을 모두 내보내는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다섯 아이 모두 이후 결코 평탄치 않은 삶을 보내게 된다.

(Bettmann/CORBIS)

라나(6세)의 이후의 삶

다른 가정으로 입양됐다.

이후 다른 형제자매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행적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SNS를 통해 그녀의 가족들과 소통한 결과 1998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Bettmann/CORBIS)

레이앤(5세)의 이후의 삶

레이앤은 친모인 루실이 빙고 게임 머니를 위해 2달러에 팔았다고 주장한다. 당시 루실이 사귀던 동거남이 아이들을 원치 않아 했기에 모두 입양 보낸것이라 주장한 사람도 레이앤이다.

조이테만 부부에게 불법적으로 입양 보내질 당시 남동생인 밀튼(4세)가 워낙 서럽게 울어제끼자 부부는 둘 모두 입양을 결심했다고.

그녀는 문제의 사진 촬영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며 친부에 대한 기억 역시 없다고 했다.

다만..

자신과 남동생 밀튼 모두 입양된 가정에서 헛간에 가둬져 쇠살에 묶인 채 생활했으며, 그저 밭에서 농장일을 해오며 학대받았다는 기억만은 선명하다고.

10대 후반 무렵엔 납치돼 성폭행을 당하며 원치 않는 임신을 했고, 이후 미혼모를 위한 보호시설로 보내져 딸을 출산했으나 곧 다른 곳으로 입양 보내졌다고 한다.

그녀는 사랑과 배려를 받지 못한 가정들에서 나와 이후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게 됐고, 그녀의 아들이 SNS를 통해 생이별한 형제자매들을 다시 연결시키는 데에 일조하게 된다.

그녀의 아들은 말한다.

"어머니의 삶은 끔찍한 공포 스토리 같아요. 사람들은 그런 일이 진짜라는 걸 잘 믿지 않죠. 그래도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다정하고 헌신적인 사람으로 자라났어요. 세상에 더 없을 분이죠. 못 이겨낼 게 없는 분이세요.

어머니는 21세 무렵에 친어머니와 재회한 적이 있대요. 전혀 좋지가 않았대요. 친어머니는 입양 보냈던 일에 대해 전혀 후회나 죄책감을 보이지 않았대요. 어떠한 애정 표현도 없었다네요.

이후 입양 보내졌던 곳의 양아버지에겐 딱 한 번 애정을 느낀 적이 있대요. 양아버지가 임종을 앞두고서 안아달라며 생전 처음으로 포옹을 청하고는, 사실은 정말 사랑했었다라는 말을 남겼다네요."

(Bettmann/CORBIS)

밀튼(4세)의 이후의 삶

앞서 서술했듯 둘째 누나 레이앤과 함께 조이테만 부부의 집으로 입양, 이후 감금과 중노동이라는 학대의 나날을 보낸다.

밀튼은 당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린 시절 기억은 잊고 싶은 것투성이고 실제로 기억나는 것도 별로 없습니다.

농장에 첫발을 디디던 날부터 양아버지에게 묶인 채로 심하게 두들겨 맞고는 농장의 노예가 돼야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어린 저는 그저 알겠습니다라고만 할 뿐이었죠. 그때는 워낙 어려서 노예가 뭔지도 몰랐을 때였는데 말이죠. 그날 양어머니가 상처를 치료해 주며 저를 사랑한다고, 이제부터 자기가 엄마가 되어준다고 말했던 게 기억나네요.

이후 양아버지에게 매일같이 맞고 발로 차이고 며칠씩 헛간에 홀로 묶여 감금된 채로 우유랑 땅콩버터만 먹으며 버텼어요. 쥐들이 매번 달려들어 쫓아내기 일쑤였죠. 어느 날 양아버지에게 왜 그러는 거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제가 겁을 먹어야 자기 말을 잘 들을 거라고 대답하더군요."

고등학교 시절, 그때까지의 학대로 인해 내면에 분노가 쌓일 만큼 쌓인 밀튼은 경찰관과의 충돌 과정에서 물리력을 행사하며 법정에 서게 된다. 여기서 정신병원이나 소년원 중 한 곳을 선택하라는 판결에, 소년원에 대한 무서운 소문을 들었던지라 정신병원을 택하게 된다.

그렇게 정신병원에서 조현병 및 분노 발작을 진단받고서 한동안 입원해야 했다.

23세에 다시금 세상으로 나온 밀튼은 이후 가정을 꾸려 60대 무렵까지 결혼 생활을 이어갔었다.

성인이 된 이후 친모와 재회한 적이 있으며, 26세 무렵엔 1달가량 친모의 집에서 함께 지내기도 했다고. 허나, 친모의 재혼 상대(과거 동거남으로 아이들을 원치 않아 입양에 일조했었던)와 다투면서 친모에게 쫓겨났다고 한다.

밀튼은 말한다.

"내 친어머니는 날 전혀 사랑하지 않았어요. 날 팔아넘긴 것에 대해 사과 같은 것도 전혀 하지 않았죠. 그저 나를 혐오하듯 대했어요."

(Bettmann/CORBIS)

수 엘렌(2세)의 이후의 삶

존슨 부부에게 합법적으로 입양됐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말을 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폐암이악화된 상태였던 지라 종이에 글로 써가며 간신히 답을 했다고.

둘째 언니인 레이앤과 재회한 것에 대해 묻자 "정말 멋진 일입니다. 너무나 좋아요."라고 적었으며, 친모에 대한 생각을 묻는 것엔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 사람은 지옥에서 불타고 있어야 해요."

(Bettmann/CORBIS)

베드포드(태아)의 이후의 삶

당시 아이가 없던 맥대니엘 부부에게 합법적으로 입양됐으며 서류도 존재한다.

양부모에 의하면 베드포드가 입양됐을 당시 온몸에 빈대에 물린 자국이 가득해 가정 상황이 굉장히 좋지 않았음을 알았다고.

둘째 누나인 레이앤 및 첫째 형 밀튼이 입양된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았기에, 둘이 헛간에 감금돼 학대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10대 무렵 반항 어린 시절을 보내나 양부모님 아래에서 올바른 도덕심과 가치관을 배우며 형제자매 중 가장 심신으로 풍족한 성장기를 보낸다.

허나, 엄격간 기독교 가정 내의 분위기를 참지 못하고서 16세 무렵 가출해 그대로 20년간 군 생활에 매진하고는 이후 트레일러 운전일을 해온다.

20대 초반 무렵 베트남전 참전 중 휴가를 받고서 누나 레이앤을 만났으며, 30대 중반 무렵에도 한 차례 만남을 가진 적이 있다고.

베드포드는 친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복잡한 심경을 지니고 있다.

"그분은 우리를 전부 버리고는 다른 사람과 결혼해 딸 넷을 낳았어요. 우리는 버렸지만 그 새로운 자식들은 곁에 둔 셈이죠.

성인이 되고서 만난 적이 있어요. '네 아버지를 빼다 닮았구나'라고 하더군요. 사과 같은 건 일절 없었고요. 그 시절엔 그냥 살아남는 걸 해야 했던 거였죠. 지금 우리가 함부로 판단할 수 있겠나요.

우리 모두 사람이고 실수를 저지르죠. 어쩌면, 그분은 애들이 굶어 죽느니 이렇게라도 하자고 생각했을 수 있죠."

에필로그

아이들의 친부였던 레이
입양 보내지기 전의 레이앤, 베드포드, 밀튼
조이테만 부부의 집으로 입양된 레이앤과 밀튼
레이앤의 십대 시절 모습
2013년 70세 레이앤의 모습. 그녀가 들고있는 것은 자신이 입양 보내질 당시 입고 있던 드레스 (The Times of Northwest Indiana)
여동생 수 엘렌과 재회한 레이앤. 레이앤은 여동생을 만나러 떠났던 여행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 술회한다 (The Times of Northwest Indiana)
레이앤이 여동생에게 네일을 발라주고 있는 모습. 여동생인 수 엘렌은 이 만남후 몇주 후에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The Times of Northwest Indiana)
어느덧 60대 중반이 된 막내 베드포드. 당시 그는 종종 자전거나 말을 타고서 조이테만 부부의 헛간으로 가 몰래 누나와 형을 풀어주곤 했단다 (David McDaniel)

네 아이..

아니, 다섯 아이 중 맏이였던 라나의 딸이라고 밝힌 한 여성은 2018년경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인생에서 받는 상처든 사랑이든, 그것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지를 반드시 결정짓는 건 아니라는 것을 어머니를 통해 배웠습니다. 어머니가 바로 그 증거였거든요."


참조

<The Times of Northwest Indiana/Sold-off siblings shown in old photo tell their stories> Vanessa Renderman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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